이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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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흥실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감독, 프런트이다. 선수 시절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하며 K리그 MVP, 신인상, 도움왕 등을 수상했고, K리그 최초의 30-30 클럽을 달성했다. 국가대표팀으로 199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전북 현대 모터스 코치 및 감독 대행, 안산 무궁화 FC 및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베트남 비엣텔 FC,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김천 상무 FC 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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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옥은 대한민국의 축구인으로, 2017년 경남 FC 코치로서 팀의 K리그 챌린지 우승에 기여했다.
이흥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선수 정보 | |
이름 | 이흥실 |
본명 | 이흥실 |
로마자 표기 | I Heung-sil |
출생일 | 1961년 7월 10일 |
출생지 | 경상남도 진해시 |
키 | 168cm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클럽 경력 | |
대학교 | 한양대학교 (1981-1984) |
선수 생활 | POSCO 아톰즈 (1985-1992): 169경기 47골 완산 푸마 (1993): 0경기 0골 |
국가대표 경력 | |
대한민국 B | (1982-1989) |
대한민국 | 9경기 0골 (1982-1990) |
감독 경력 | |
감독 |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대행) (2012) 안산 무궁화 (2015-2016) 안산 그리너스 FC (2017-2018) 비엣텔 FC (2019) 대전 시티즌 (2019) |
2. 선수 경력
이흥실은 1985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여 1992년까지 활약한 K리그 초창기의 대표적인 미드필더이다.[1] 데뷔 첫해 신인상을 수상했고, 1986년에는 팀의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되었다. K리그 베스트 11에는 총 5차례(1985, 1986, 1987, 1989, 1990년) 이름을 올렸으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30-30 클럽을 달성하기도 했다.[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1988년 교통사고 관련 문제[13] 및 FA 자격 문제 등이 있었고, 결국 1993년 완산 푸마로 이적했으나[14] 얼마 지나지 않아 현역에서 은퇴했다.[15] 그는 포항 아톰스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내며 팀의 K리그 우승에 기여한 핵심 선수로 평가받는다.[1]
2. 1. 포항 스틸러스 시절 (1985-1992)
1985년 한양대학교 재학 중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여 1992년까지 한 팀에서만 활약한 원 클럽 플레이어였다. 데뷔 시즌인 K리그 1985 시즌에 21경기에 출전해 10득점 2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선수상과 K리그 베스트 11에 동시에 선정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다음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이른바 '이년차 징크스'를 겪지 않았다.1986년에는 포항의 K리그 우승을 이끌며 K리그 MVP와 K리그 베스트 11을 동시에 수상했다. 강력한 드리블과 창의적인 패스,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작은 탱크'라는 별명을 얻으며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수비 능력과 신체 조건(신장)은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2]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하며 K리그 베스트 11에 총 5번(1985, 1986, 1987, 1989, 1990년) 선정되었고, 1989년에는 K리그 도움왕을 차지했다. 또한 K리그 역사상 최초로 30-30 클럽(30골 30도움)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 그는 K리그 초창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활약하여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선수 생활 후반기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88년 10월 12일에는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 혐의로 포항경찰서로부터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으며,[13]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 문제 등이 겹치면서 구단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구단 운영 방침에 따라 1993년,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가 받는 조건의 1:8 트레이드를 통해 완산 푸마로 사실상 떠밀리듯 이적하게 되면서[14] 그의 포항 스틸러스 시절은 막을 내렸다.
2. 2. 완산 푸마/전북 버팔로 시절 (1993)
1988년 10월 12일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일[13]과 더불어 FA 문제가 겹치면서 당시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즈 구단과 갈등을 겪었다. 구단이 선수들의 권리를 제한하려 하면서 이흥실은 이에 저항했지만, 결국 1993년 1:8 트레이드를 통해 신생팀 완산 푸마[14](1994년에 전북 버팔로로 팀명이 변경됨)로 떠밀리듯 이적하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완산 푸마에 지명되었던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로 넘기는 조건이었다.[14] 완산 푸마로 이적한 후에는 대통령배 대회에 단 1경기만 출장하였고, 이적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15]2. 3. 국가대표팀 경력
1982년 대학 재학 중 처음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하였다.3.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모교인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16] 이후 2005년 7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최강희 감독을 보좌했고,[17] 2012년에는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18] 2012년 말 감독 대행직에서 사임한 후 영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며,[21][22] 2014년에는 경남 FC에서 수석 코치를 지냈다.[23]
2015년 안산 무궁화 FC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6년 팀의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7년에는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안산 그리너스 FC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24] 2018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 후, 2019년 베트남 V리그 1의 비엣텔 FC와 K리그2의 대전 시티즌 감독을 차례로 역임했다.
3. 1. 안동고등학교 감독 (1993-2005)
선수 은퇴 후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모교인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았다.[16]3. 2. 전북 현대 모터스 코치 및 감독 대행 (2005-2012)
2005년 7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최강희 감독을 보좌했다.[17] 최강희 감독과 함께 공격적인 전술인 '닥공'을 펼치며 팀을 이끌었다.[17]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2012년 1월 5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다.[18]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닥공' 전술을 이어 가며 2012년 시즌을 2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2011년 K리그 우승 팀 자격으로 참가한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고, 특히 광저우 헝다와의 홈 경기에서 1:5로 지는 등[19]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20] 결국 2012년 12월 12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대행직에서 자진 사임했다.[21]
3. 3. 경남 FC 수석 코치 (2014)
2012년 12월 12일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대행직에서 물러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21][22]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페트코비치 감독의 후임으로 고향 팀인 경남 FC의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이차만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흥실은 2014년 경남 FC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이차만 감독을 보좌했다.[23]3. 4. 안산 무궁화 FC /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2015-2018)
2015년 안산 무궁화 FC의 감독으로 취임하였고, 2016년 팀의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이끌었다.2017년 시즌을 앞두고 안산 그리너스 FC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24] 2018년 시즌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였다.
3. 5. 베트남 비엣텔 FC 감독 (2019)
2019년 V리그 1의 비엣텔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구단과의 불화 등을 이유로 부임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3. 6.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2019)
2019년 7월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시즌 마감 후 대전이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물러났다.4. 프런트 경력
(내용 없음)
4. 1. 김천 상무 FC 단장 (2021-2022)
2021년에 김천 상무 FC의 단장으로 선임되어 2022년까지 재임했다.5. 플레이 스타일
"작은 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강력한 드리블과 창의적인 패스가 장점으로 꼽혔다.[2] 이를 바탕으로 경기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신장이 작아 제공권에 약점이 있었고 수비 능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2]
6. 수상 내역
선수 시절 포항 아톰즈 소속으로 K리그1 3회 우승(1986, 1988, 1992)을 경험했으며, 개인적으로는 K리그 영플레이어상(1985), K리그1 MVP(1986), K리그 도움상(1989)을 수상했고 K리그1 베스트 11에 5회 선정되었다.[3][4][5][6][7][8][9] 또한 K리그 1980년대 올스타 팀에도 선정되었다.[10] 대학 시절에는 한양대학교 소속으로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1983년) 경력이 있다.
감독으로서는 안산 무궁화를 이끌고 K리그2 2016 시즌 우승을 달성했으며, 같은 해 6월 K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했다.[11]
6. 1. 선수
1985년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여 1992년까지 원 클럽 플레이어로 활약하였다. K리그 1985 시즌에 21경기에 출장해 10득점 2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선수상을 수상했고, 다음 시즌인 1986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펼쳐 K리그의 이년차 징크스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6년에는 포항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K리그 MVP를 수상했고, K리그 베스트 11에는 1985년, 1986년, 1987년, 1989년, 1990년까지 총 5번 선정되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또한 K리그 역사상 최초로 30-30 클럽(30골-30도움)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활약했으며,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선수 생활 후반기는 순탄치 않았다. 1988년 10월 12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포항경찰서로부터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13] FA(자유계약선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구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당시 구단은 선수들의 권리를 제한하려 했고, 이흥실은 이에 맞섰으나 결국 1993년 트레이드를 통해 완산 푸마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완산 푸마에 지명되었던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가 받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1:8 트레이드였다.[14] 완산 푸마 이적 후 대통령배 대회에 단 1경기만 출장한 뒤, 3개월 만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15]
이흥실은 K리그 초창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포항 아톰스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내며 최우수 선수(MVP), 신인상, 도움왕 등 개인상을 다수 수상했고, 팀의 K리그 3회 우승(1986, 1988, 1992)에 기여했다.[1]
'''주요 경력 및 수상 내역'''
상 | 수상 연도 |
---|---|
K리그 영플레이어상 | 1985[3] |
K리그1 베스트 11 | 1985, 1986, 1987, 1989, 1990[3][4][5][6][7] |
K리그1 MVP | 1986[8] |
K리그 도움상 | 1989[9] |
K리그 1980년대 올스타 팀 | 2003[10] |
6. 2. 감독
선수 은퇴 후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모교인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았다.[16] 이후 2005년 7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수석 코치로 부임해 최강희 감독과 함께 공격적인 '닥공' 전술을 펼치며 팀을 이끌었다.[17]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2012년 1월 5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다.[18]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닥공' 전술을 이어 가며 2012년 시즌을 2위로 마감했으나, 2011년 K리그 우승 팀 자격으로 참가한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특히 광저우 헝다와의 홈 경기에서 1:5로 패배하는 등[19]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20] 결국 2012년 12월 12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대행직에서 자진 사임했다.[21]
사임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다.[22] 2013년 시즌 후 일리야 페트코비치의 후임으로 고향 팀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이차만이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이흥실은 경남의 수석 코치로 임명됐다.[23]
2015년 안산 무궁화 FC의 감독으로 취임하였고, 2016년 팀의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이끌었다.
2017년 시즌을 앞두고 안산 그리너스 FC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24] 2018년 시즌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이후 2019년 베트남 비엣텔 FC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구단과의 불화 등을 이유로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9년 7월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시즌 마감 후 대전이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물러났다.
=== 수상 ===
==== 감독 ====
- '''안산 무궁화 FC'''
- * K리그2 우승: 2016
- '''개인'''
- * K리그 이달의 감독상: 2016년 6월[11]
7. 경력 통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9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1988년 10월 12일 교통사고 관련 문제와[13] FA(자유계약선수) 문제가 겹치면서 구단과의 갈등 끝에, 1993년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에 넘기는 조건으로 1:8 트레이드를 통해 완산 푸마로 이적하게 되었다.[14] 그러나 완산 푸마 이적 후 대통령배 대회에 단 1경기만 출장하고, 3개월 만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15]
7. 1. 클럽
K리그 초창기의 뛰어난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선수 생활 전체를 포항 스틸러스에서 보냈으며, 이 기간 동안 최우수 선수(MVP), 신인상, 도움왕을 수상했고, 베스트 11에도 다섯 차례 선정되는 등 화려한 개인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또한 K리그 역사상 최초로 30골-30도움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포항 스틸러스가 K리그에서 3번 우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1]클럽 | 시즌 | 리그 | FA컵 | 리그컵 | 합계 | |||||
---|---|---|---|---|---|---|---|---|---|---|
디비전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포항 스틸러스 | 1985 | K리그1 | 21 | 10 | — | — | 21 | 10 | ||
1986 | K리그1 | 17 | 5 | — | 11 | 1 | 28 | 6 | ||
1987 | K리그1 | 29 | 12 | — | — | 29 | 12 | |||
1988 | K리그1 | 16 | 1 | ? | ? | — | 16 | 1 | ||
1989 | K리그1 | 39 | 4 | ? | ? | — | 39 | 4 | ||
1990 | K리그1 | 19 | 7 | — | — | 19 | 7 | |||
1991 | K리그1 | 15 | 4 | — | — | 15 | 4 | |||
1992 | K리그1 | 13 | 4 | — | 2 | 0 | 15 | 4 | ||
통산 | 169 | 47 | ? | ? | 13 | 1 | 184 | 50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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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http://www.gnnews.co[...]
Gyeongnam Ilbo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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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il Business Newspaper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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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hyang Shinmun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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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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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흥실 수석코치 감독대행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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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프로축구선수 李興實(이흥실) 교통사고로 구속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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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축구단 '완산 푸마' 공식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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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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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K리그 중원 주름잡았던 이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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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흥실 수석코치 감독 대행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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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흥실 감독대행 체제로 ‘닥공’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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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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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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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전북 이흥실 감독대행 자진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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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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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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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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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이차만 감독-이흥실 수석코치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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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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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실, 안산 시민축구단 초대 감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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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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