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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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병선은 짚풀문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의 짚풀문화학자이다. 1935년 평안남도 룡강군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 중 제주도로 피난을 갔다. 1957년 시인 신동엽과 결혼하여 1녀 2남을 두었으며, 신동엽 사후 짚풀문화에 매진하여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설립하고 짚풀문화재단을 만들어 짚풀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기여했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짚풀문화연구회 회장, 국립민속박물관 짚풀 문화 특별전 개최,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수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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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병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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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인병선 |
원어 이름 | 印炳善 |
출생일 | 1935년 6월 26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용강 |
필명 | 아호는 추경(秋憬) |
직업 | 민속학자, 짚풀문화학자, 시인 |
언어 | 한국어 |
학력 |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전문학사 |
모교 |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
활동 기간 | 1956년 ~ 현재 |
장르 | 시문학 |
배우자 | 신동엽 |
부모 | 인정식(부), 노미석(모) |
소속 |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
자녀 | 신좌섭, 신우섭, 신정섭(2남 1녀) |
수상 | 2005년 대한민국문화유산상 2009년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
웹사이트 | 짚풀문화박물관 |
2. 생애
1935년 6월 26일 평안남도 룡강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업경제학 권위자이자 동국대학교 교수인 인정식이다. 한국 전쟁으로 오빠는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아버지는 납북되었다. 인병선은 1·4 후퇴 직전 피난대열에 섞여 어머니와 단둘이 제주도로 피난, 제주시 기상대 아랫집에 세 들어 살면서 제주도 오현중 마당 천막학교를 다녔다. 당시 인병선의 어머니는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팔아 생활했다. 인병선은 군용 담요로 멜빵 바지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빨갱이 딸'이라고 따돌림 당했지만, 문학을 꿈꾸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수의 권유로 히브리어와 종교사를 배워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게 된다.[1]
1953년 겨울, 서울 돈암동 네거리의 한 고서점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 3학년이던 인병선은 신동엽을 만나 운명처럼 그에게 빠져들었다. 인병선(필명 추경[秋憬])은 신동엽(필명 석림[石林])과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하고 1957년 신동엽과 결혼하여 그의 고향으로 갔다. 그 해 맏딸 신정섭을 낳았다. 인병선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부여 읍내에 양장점을 열었다. 신동엽은 1958년 폐결핵으로 학교를 그만두었고, 인병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돈암동 친정으로 돌아갔다.[1]
1969년 4월 7일, 신동엽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병선은 출판사에서 번역 등을 하며 홀로 1녀 2남(신좌섭, 신우섭)을 키웠다.[1]
인병선은 남편 신동엽 사후 그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우연히 백성들의 전통 짚풀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농민들의 분신 같던 짚풀이 급속히 사라지는 것에 주목했다.[2]
1978년부터 전국을 답사하며 짚풀 문화를 조사, 채록했고 오키나와 국립민족학박물관 연구원을 역임했다. 계간 민속지 ‘생활용구’를 창간했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짚풀문화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2]
1993년 문화관광부에 짚풀생활사박물관을 등록,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운영하다가, 2001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전하였다. 짚풀 특히 볏짚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설립한 박물관으로는 세계에 유일하다. 짚을 삼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짚풀문화연구회를 통해 교육도 하고 있다.[2]
2008년 자신이 운영하던 짚풀 생활사 박물관에 대한 사적인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평생 수집해온 유물을 온 국민이 함께 뜻 모아 관리하는 체제로 가게 하기 위해 '짚풀문화재단'을 만들어 비영리 재단법인화하였다.[2]
2. 1. 유년 시절과 피난
1935년 6월 26일 평안남도 룡강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업경제학 권위자이자 동국대학교 교수인 인정식이다.평안남도 룡강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대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훗날 평안남도 평양에서 11살까지 '보통국민학교'를 다녔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오빠는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아버지는 납북되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생 이였던 인병선은 1·4 후퇴 직전 피난대열에 섞여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제주도로 피난 왔으며, 제주시 기상대 바로 아랫집에 세 들어 살면서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제주도 오현중 마당 천막학교를 다녔다. 당시 인병선의 어머니는 피난 올 때 가져온 재봉틀로 누런 광목을 표백해서 적삼을 만들어 팔아 생활했다. 그런 모습을 본 인병선은 군용 담요를 사와 멜빵 바지를 만들어 판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빨갱이 딸'이라고 따돌림 당했다. 문학을 꿈꾸며 바닷가에 나가 늘 혼자 놀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수가 중앙대학 신학대학 청강을 권해 히브리어와 종교사를 배워 그 영향으로 나중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2. 2. 신동엽과의 만남과 결혼
1953년 겨울, 서울 돈암동 네거리의 한 고서점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 3학년이던 인병선은 철학 관련 전문서적을 찾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모르지만 이런 책은 어떨까요?"라는 말과 함께, 인병선은 신동엽의 "크고 빛나는 눈"을 마주하고 운명처럼 그에게 빠져들었다.[1]인병선(필명 추경[秋憬])은 신동엽(필명 석림[石林])과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하고 1957년 신동엽과 결혼하여 그의 고향으로 갔다. 그 해 맏딸 신정섭을 낳았다.[1] 인병선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부여 읍내에 양장점을 열었다. 신동엽은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인병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돈암동 친정으로 돌아갔다.[1]
1969년 4월 7일, 결혼 13년 만에 신동엽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병선은 출판사에서 번역 등을 하며 홀로 1녀 2남(신좌섭, 신우섭)을 키웠다.[1]
2. 3. 짚풀문화와의 만남
인병선은 남편 신동엽 사후 그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우연히 무지렁이로 천대받던 백성들의 전통 짚풀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일년 내내 힘들게 일하고도 가난했던 농민들의 분신 같던 짚풀이 급속히 사라지는 것에 주목했다.[2]1978년부터 전국을 답사하며 짚풀 문화를 조사, 채록했고 오키나와 국립민족학박물관 연구원을 역임했다. 계간 민속지 ‘생활용구’를 창간했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짚풀문화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2]
2. 4. 짚풀생활사박물관 설립과 짚풀문화재단
인병선은 남편 신동엽의 죽음 이후 그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다가 우연히 무지렁이로 천대받던 우리네 백성들의 전통, 짚풀문화를 만나게 되었다. 일년 내 힘들게 일하고도 어렵게 살던 농민들의 분신 같은 그것들이 급속하게 사라진다는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2]1978년부터 전국을 답사하며 짚풀 문화를 조사, 채록했고 오키나와 국립민족학박물관 연구원을 역임했다. 계간 민속지 ‘생활용구’를 창간했다. 일본, 중국 등 동남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짚풀문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니면서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수집과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게 되었다.[2]
인병선 관장이 설립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은 1993년 문화관광부에 등록,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운영하다가, 2001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짚풀 특히 볏짚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설립한 박물관으로는 세계에 유일하다. 짚을 삼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짚풀문화연구회를 통해 교육도 하고 있다.[2]
2008년 자신이 운영하던 짚풀 생활사 박물관에 대한 사적인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평생 수집해온 유물을 온 국민이 함께 뜻 모아 관리하는 체제로 가게 하기 위해 '짚풀문화재단'을 만들어 비영리 재단법인화하였다.[2]
3. 학력
4. 경력
- 1991년 '짚풀 문화 특별전'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하고, 문화부 문화가족상 ‘화전’을 수상했다.
- 1993년 '짚풀 생활사 박물관'[https://web.archive.org/web/20101110072913/http://www.zipul.co.kr/]을 설립하고,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망, 망태,망태기전'을 개최했다.
- 1994년 '100주년 기념 동학농민전쟁민속전'과 '맥간공예-보리짚, 밀짚 특별전'을 개최했다.
- 1995년 '중국 운남성 소수민족생활문화전'을 개최했다.
- 1999년 '한국 사립박물관학회' 창립 초대회장을 역임했다.[3]
- 2005년 '제2회 대한민국문화유산상'을 수상했다.
- 2007년 '신동엽 시인 유품전'을 개최했다.[4]
- 2009년 [https://web.archive.org/web/20071201212156/http://www.museum.or.kr/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 주관 제12회 전국박물관인대회에서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5. 저술 활동
인병선은 짚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91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산문집 《벼랑끝에 하늘》을 출간했고, 같은 해 대원사에서 《풀문화》를 펴냈다. 1995년에는 현암사에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짚풀문화》를 출간하여 짚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했다.
1987년에는 풀빛 출판사에서 시모음집을 출간했으며,[5] 1998년 《팽글팽글 팽이 이야기》, 2000년 《풀코스 짚문화여행》, 2005년 《우리 종이 오리기》, 《우리 짚풀문화》, 2006년 《짚과 풀로 만들기》, 2010년 《짚풀 생활사박물관》 등 짚풀 문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을 저술하였다.
2005년에는 김응교가 출간한 《시인 신동엽》의 감수를 맡아 자료 제공 및 고증에 참여했다.[1]
5. 1. 저서
제목 | 출판연도 | 출판사 | ISBN |
---|---|---|---|
벼랑끝에하늘: 인병선산문집 | 1991 | 창작과 비평사 | |
짚 문화 | 1989 | 대원사 | |
풀문화 | 1991 | 대원사 |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짚풀문화 | 1995 | 현암사 | 8932308330 |
팽글팽글 팽이 이야기 | 1998 | 현암사 | 8932309361 |
풀코스 짚문화여행 | 2000 | 현암사 | 8932306478 |
우리 종이 오리기(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 2005 | 현암사 | 8932313334 |
우리 짚풀문화(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 2005 | 현암사 | 8932313482 |
짚과 풀로 만들기 | 2006 | 우리교육 | 8980404182 |
짚풀 생활사박물관(신나는 교과연계 체험학습 28) | 2010 | 주니어김영사 | 8934927003 |
5. 2. 시모음집
인병선한국어 시인이 1987년에 풀빛 출판사에서 출간한 시모음집이다.[5]5. 3. 고증 및 자료제공
김응교(인병선 감수)가 2005년에 출간한 《시인 신동엽》에서 인병선이 감수를 맡았다.[1]6. 인물전
인병선에 대한 인물전은 정란희의 저서 《짚처럼 풀처럼 (우리 인물 이야기 17)》(2007년, 우리교육)에 수록되어 있다. 해당 도서는 ISBN 8980407386으로 식별된다.[1]
7. 가족 관계
참조
[1]
뉴스
‘시인 신동엽’ 펴낸 부인 인병선씨 “이 책으로 남편의 그늘과 ‘이혼’ 입니다”
http://www.hani.co.k[...]
한겨레
2006-03-02
[2]
뉴스
1세대 수집가들, 주저 말고 유물을 사회에 내놓자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08-12-19
[3]
뉴스
한국 사립박물관학회 창립 초대회장에 인병선 회장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1999-07-14
[4]
뉴스
신동엽 시인 유품전 연 아내 인병선씨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7-10-04
[5]
뉴스
들풀이 된 여류시인, 인병선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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