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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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쉬는 타이베이 출신의 바둑 기사로, 1994년 프로에 데뷔하여 일본 바둑계에서 활약했다. 그는 2002년 NHK배 우승을 시작으로, 혼인보, 명인, 기성 등 7대 타이틀을 모두 획득하며 2010년에는 조치훈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9년에는 사상 최초로 5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장쉬는 통산 24기의 7대 타이틀을 획득하며 일본 기전 최다 타이틀 보유자 7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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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조우 |
| 본명 | 우초 (U Chō) |
| 중국어 (번체) | 번체 張栩 |
| 중국어 (간체) | 간체 张栩 |
| 병음 | Zhāng Xǔ |
| 출생일 | 1980년 1월 20일 (44세) |
| 출생지 | 타이베이, 타이완 |
| 거주지 | 도쿄, 일본 |
| 스승 | 린하이펑 |
| 입단 | 1994년 |
| 단 | 9단 |
| 소속 | 일본기원 도쿄 본원 |
| 타이틀 정보 | |
| 타이틀 합계 | 41회 |
| 기성 | 3기 (2010-12) |
| 명인 | 5기 (2004-05, 07-08, 18) |
| 혼인보 | 2기 (2003-04) |
| 왕좌 | 7기 (2003-05, 08-11) |
| 천원 | 1기 (2008) |
| 고세이 | 4기 (2006-09) |
| 십단 | 2기 (2009-10) |
| LG배 | 우승 (2005) |
| TV 아시아 선수권 | 우승 (2005) |
2. 생애
대만 타이베이 출신으로,[2]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고, 선준산의 소개로 린하이펑과 인연을 맺었다.[3] 10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린하이펑의 내제자가 되었으며, 1994년 프로에 입단했다.
2000년 후지쓰배 8강에 진출하고[4] 기성전 리그에 최연소로 참가하는 등[5][6]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해 53승 12패 1무(持碁)의 성적[8]과 최고 승률(81.1%)로 기도상을 수상했다.[9] 2001년에는 본인방전 도전자 결정전까지 올랐으나 오메이엔에게 패했다.[11][12]
2002년 제49회 NHK배에서 우승하며 최연소 우승 기록과 함께 첫 타이틀을 획득했고,[15] 그해 7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18] 슈사이상을 수상했다.[19] 2003년에는 제58기 본인방전에서 가토 마사오를 꺾고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이 우승으로 최연소 9단 승단 기록을 세웠다.[20] 같은 해 오자전에서도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23]
이후 명인전(2004년), 고세이전(2006년), 천원전(2008년), 십단전(2009년), 기성전(2010년) 타이틀을 차례로 획득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24] 2004년에는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연간 상금 1억엔를 돌파했으며,[25] 2005년에는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우승하며 첫 국제 타이틀을 획득했다.[26] 2009년에는 사상 최초로 5관왕(명인, 십단, 천원, 왕좌, 고세이)에 올랐고, 2010년 기성전 우승으로 조치훈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7대 타이틀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10년에는 상금 9049.9만엔(당시 약 112.00000000000001만달러)으로 상금 랭킹 1위를 기록했다.[27]
그랜드슬램 달성 이후 이야마 유타의 부상과 함께 점차 타이틀을 잃으며 슬럼프를 겪었고, 2015년에는 일시적으로 생활 거점을 대만으로 옮기기도 했다.[45] 2016년 NHK배 우승으로 재기에 성공했으며, 2018년에는 이야마 유타를 꺾고 9년 만에 명인 타이틀을 탈환하는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51]
2011년 5월에는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성전 상금 1500만엔을 기부하기도 했다.[28]
2. 1. 어린 시절
장쉬(張栩)는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2] 6살 반 무렵, 바둑 학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장위안쉬(張遠煦)로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장쉬가 3살 때부터 트럼프, 체스, 샹치와 같은 다양한 두뇌 게임을 가르치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이는 처음부터 바둑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버지는 장쉬의 바둑 실력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아버지의 지도 아래 장쉬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여, 보통 아이들이 1년 걸려 배울 내용을 2~3개월 만에 익혔다. 바둑을 배운 지 1년 만에 대만의 아마 초단(일본 아마 3~4단 수준)이 되어 주위로부터 천재 소년이라는 말을 들었다.[44]초등학교에는 5살 반에 조기 입학했으며, 2학년 또는 3학년 때 1년간 휴학하고 바둑 공부에만 매진했다. 점차 어린이 대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만 전국 대회인 십걸전에 출전하여 7위를 기록했다. 8살 무렵에는 신문 기획 대국에서 만난 작가 선준산의 소개로 대만 프로 기사 천궈싱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천궈싱의 소개로 린하이펑(현 명예 톈위안)과 만나게 되었다.[44]
10살이 되자 장쉬는 대만 동년배 중 최고 실력자로 인정받았고,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한 일본 유학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대만 바둑계는 프로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바둑으로 성공하려면 일본에서 프로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길이었다. 린하이펑, 왕리청, 왕밍완에 이어 대만 바둑계의 큰 기대를 받으며, 본인의 의지보다는 주변의 기대로 일본행이 결정되었다.[44]
10살 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린하이펑의 내제자가 되었다. "일본에서 반드시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을 안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일본 원생들의 높은 수준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원생 중에는 훗날 라이벌이 되는 야마시타 게이고, 미조카미 도모치카, 아키야마 지로, 쑤야오궈 등이 있었다.[44] 린하이펑의 지도 방식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아버지나 스승의 지시에 따라 공부해왔던 장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크게 당황했다. 서툰 일본어와 긴장된 생활 속에서 압박감은 점점 커져갔다. 함께 내제자 생활을 하던 린쯔위안(현 8단)과 서로 위로했지만, 경쟁 상대이기도 했기에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어려웠다.[44]
특히 중국 출신의 동갑내기 쑤야오궈의 뛰어난 재능은 장쉬에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평소 장난기 많은 모습과 달리 바둑판 앞에서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프로가 되기 전까지는 대만에 돌아가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일본에 온 후 가족과 만나지 못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힘든 점을 혼자 감내했다. 그러던 13살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머니가 일본으로 찾아왔다. 장쉬가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챈 어머니는 "바둑을 그만둬도 괜찮다"며 미국에 있는 누나와 함께 공부하는 길을 제안해주었다. 이 문제를 린하이펑 스승과 상의하자, 스승은 대만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했고, 한 달 뒤 아버지가 일본에 와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44]
결국 다음 프로 기사 채용 시험을 마지막으로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시험 결과는 10승 7패로 6위. 보통이라면 탈락이었지만, 그해에만 특별히 채용 인원이 늘어나면서 패자 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도쿄 지역 5, 6위와 중부·관서 지역 차점자 등 총 4명이 겨루는 패자 부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극적으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44]
도쿄 중화학교 중학부를 졸업한 후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둑에 전념하기로 했다. 중학교 졸업 후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시에는 인터넷 바둑이 활성화되지 않아 실전 대국 기회가 부족했고, 기보를 복기하는 것도 즐기지 않았던 장쉬는 대신 사활 문제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는 기사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44]
2. 2. 일본 유학
장쉬는 어린 시절 선준산의 소개로 린하이펑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일본 바둑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3]2000년, 예선 토너먼트를 통해 제13회 후지쓰배에 출전하여 1라운드에서 롭 반 자이스트를, 2라운드에서는 중국의 강자 마샤오춘을 꺾었으나 8강에서 한국의 목진석에게 패했다.[4] 같은 해 5월, 20세의 나이로 제25기 기성전 리그에 최연소로 참가하여 3승 3패를 기록했다.[5][6] 연말에는 제56기 본인방전 리그 예선을 통과했지만, 제26기 명인전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7] 이 해 장쉬는 53승 12패 1무(持碁)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는 야마시타 케이고에 이어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이었다.[8] 또한 81.1%의 최고 승률로 기도상을 수상했다.[9] 당시 한 살 위인 라이벌 야마시타 게이고가 21세에 기성 타이틀을 획득하자 큰 자극을 받았고, 다카오 신지, 쑤야오궈, 미조가미 도모치카 등과 연구회를 하며 실력 향상에 매진했다.[44]
2001년 4월 16일, 장쉬는 7단으로 승단했다.[10] 제56기 본인방전 리그에서 5승 2패로 1위를 차지하며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 도전권을 획득했다.[11] 당시 타이틀 보유자였던 왕밍완과의 7번기 승부는 최종국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승 4패로 아쉽게 패배했다.[12] 이 해 장쉬는 상금으로 2698.5만엔을 벌어들였다.[13]
2002년 2월, 제1회 월드 오자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고,[14] 3월에는 제49회 NHK배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는 NHK배 최연소 우승 기록이기도 했다. 당시 바둑 기자 존 파워는 장쉬의 침착함, 집중력, 뛰어난 수읽기와 형세 판단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일본 바둑계를 이끌어갈 인물로 주목했다.[15] 같은 해 제4회 농심 신라면배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고,[16] 10월에는 처음으로 명인전 리그에 진출했다.[17] 2002년 한 해 동안 7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18] 슈사이상을 수상했다.[19] 12월에는 제58기 본인방전 리그에서 6승 1패를 기록, 왕밍완과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다시 한번 본인방 도전권을 노리게 되었다.
2003년 4월 7일, 본인방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왕밍완을 꺾고 2년 만에 다시 본인방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다. 7월 11일, 가토 마사오와의 본인방 도전기에서 1승 2패 후 3연승을 거두며 4승 2패로 생애 첫 7대 타이틀인 본인방을 획득했다.[20] 이 우승으로 장쉬는 메이저 타이틀 최연소 획득 3위, 본인방 최연소 획득 2위, 그리고 일본 최연소 9단 승단 기록을 세웠다.[20] 이후 아곤배 결승에서는 가토 마사오에게 패했지만,[21] 왕좌전에서는 왕밍완을 3승 1패로 꺾고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인 왕좌를 획득했다.[22][23]
2004년에는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조선진, 이야마 유타에 이어 역대 5번째로 '명인 본인방'의 영예를 안았고, 당시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10월 열린 제52기 왕좌전 방어전에서는 라이벌 야마시타 게이고의 도전을 3승 1패로 물리쳤다. 또한 2004년에는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연간 상금 1억엔 이상을 벌어들인 기사가 되었다.[25]
이후 장쉬는 고세이(2006년), 천원(2008년), 십단(2009년), 기성(2010년) 타이틀을 차례로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의 정상급 기사로 자리매김했다.[24] 2005년에는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중국의 위빈을 꺾고 생애 첫 국제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2003년 조치훈의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일본 기사가 오랜만에 거둔 국제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26]
2010년에는 9049.9만엔 (당시 약 112.00000000000001만달러)[27]의 상금을 획득하며 상금 랭킹 1위에 올랐다. 2011년 5월에는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성전 상금 1500만엔을 기부하기도 했다.[28]
2. 3. 프로 데뷔와 성장
장쉬(張栩)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포커와 브리지를 즐겼으며, 아버지 장위안쉬(張遠煦)에게 바둑을 배워 세 살 때 이미 가족들을 이기기 시작했다.[2] 일곱 살 때 만난 초기 스승 선준산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족에게 린하이펑을 소개해 주었다.[3]1994년 프로에 입단하였다. 2000년에는 예선을 거쳐 제13회 후지쓰배에 출전하여 1회전에서 네덜란드의 롭 반 자이스트 아마 7단을, 2회전에서는 중국의 강자 마샤오춘을 꺾었으나 8강에서 한국의 목진석에게 패배했다.[4] 같은 해 5월, 리그제가 처음 도입된 제25기 기성전 리그에 당시 최연소인 20세의 나이로 진출하여 3승 3패를 기록했다.[5][6] 연말에는 제56기 혼인보전 리그 예선을 통과했으나, 제26기 명인전 리그 최종 예선에서는 고마츠 히데키에게 패했다.[7] 그해 53승 12패 1무(持碁)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야마시타 케이고에 이어 다승 2위를 기록했고,[8] 최고 승률(81.1%)로 기도상을 수상했다.[9] 2001년 4월 16일에는 7단으로 승단했다.[10]
제56기 혼인보전 리그에서는 5승 2패를 기록하며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했으나, 오메이엔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11][12] 2001년 상금 수입은 2698.5만엔였다.[13] 2002년 2월, 제1회 도요타덴소배 세계왕좌전의 일본 대표 자리를 획득했고,[14] 3월에는 제49회 NHK배에서 우승하며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NHK배 최연소 우승 기록이었다. 바둑 기자 존 파워는 그의 침착함, 집중력, 뛰어난 수읽기와 형세 판단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일본 바둑계를 이끌 재목으로 주목했다.[15] 같은 해 제27기 신인왕전에서도 우승했으며, 제4회 농심배에 일본 대표로 처음 출전했다.[16] 10월에는 처음으로 명인전 리그에 진출했고,[17] 연간 7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18] 슈사이상을 수상했다.[19]
2003년 7월 11일, 제58기 혼인보전에서 가토 마사오를 4승 2패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우승으로 메이저 타이틀 최연소 3위, 혼인보 최연소 2위, 일본 최연소 9단 승단 기록을 세웠다.[20] 이후 아함동산배 결승에서는 가토 마사오에게 패했지만, 왕좌전 도전자 결정전에서는 승리하여 오메이엔에게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21][22] 왕좌전에서는 3승 1패로 승리하며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다.[23]
이후 장쉬는 명인전(2004년), 작은기성전(2006년), 천원전(2008년), 십단전(2009년), 기성전(2010년) 타이틀을 차례로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의 정상급 기사로 자리매김했다.[24] 2004년에는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연간 상금 1억엔를 돌파했다.[25] 2005년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중국의 위빈을 꺾고 생애 첫 국제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이는 2003년 삼성화재배에서 조치훈이 우승한 이후 일본 기사가 거둔 오랜만의 국제대회 우승이었다.[26] 같은 해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와 NHK배에서도 우승했다.
2008년에는 기성전 3연패, 명인전 2연패(당시 19세 이야마 유타 상대), 아함동산배 3연패, 천원전 첫 우승, 왕좌전 탈환(통산 4기)을 달성하며 사상 네 번째로 7대 타이틀 중 4관왕에 올랐다. 2009년 4월, 제47기 십단전에서 다카오 신지를 꺾고 우승하며 사상 최초의 5관왕(명인, 십단, 천원, 왕좌, 작은기성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5관왕 등극 직후 다리에 대상포진이 발병하여 수개월간 극심한 통증으로 고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개인 최다인 17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제34기 명인전에서 다시 만난 이야마 유타(당시 20세)에게 1승 4패로 패배하며 명인 타이틀을 내주었고 5관왕 시대도 막을 내렸다. 장쉬는 당시 컨디션 난조를 겪었으며, 이야마가 전년보다 더욱 강해졌다고 평가했다.[44]
2010년 2월, 제34기 기성전에서 야마시타 케이고에게 도전하여 4승 1패로 승리, 첫 기성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로써 조치훈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7대 타이틀을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8월, 4연패 중이던 제35기 작은기성전에서는 처음으로 도전 대국에 진출한 관서기원의 사카이 슈지 7단에게 2승 3패로 패배했다.
2011년 5월,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성전 상금 1500만엔를 기부했다.[28] 이후에도 NEC배(2011년), 아함동산배(2012년, 2019년), NHK배(2016년), 명인전(2018년) 등에서 우승하며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 연도 | 대회명 | 결과 | 비고 |
|---|---|---|---|
| 2002년 | 제27기 신인왕전 | 우승 | |
| 2002년 | 제49기 NHK배 | 우승 | |
| 2003년 | 제58기 혼인보전 | 우승 | 첫 메이저 타이틀, 2연패 (2003~2004) |
| 제51기 왕좌전 | 우승 | 3연패 (2003~2005) | |
| 2004년 | 제29기 명인전 | 우승 | 2연패 (2004~2005) |
| 제4회 농심배 | 일본 대표 | ||
| 2005년 |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 우승 | 첫 국제 타이틀 |
| 제17회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 우승 | ||
| 제52기 NHK배 | 우승 | ||
| 제5회 농심배 | 일본 대표 | ||
| 2006년 | 제31기 작은기성전 | 우승 | 4연패 (2006~2009) |
| 제15기 용성전 | 우승 | ||
| 제13기 아함동산배 | 우승 | ||
| 제6회 농심배 | 일본 대표 | ||
| 2007년 | 제3회 도요타덴소배 | 준우승 | |
| 제32기 명인전 | 우승 | 2연패 (2007~2008) | |
| 제16기 용성전 | 우승 | ||
| 제14기 아함동산배 | 우승 | ||
| 2008년 | 제56기 왕좌전 | 우승 | 4연패 (2008~2011) |
| 제34기 천원전 | 우승 | ||
| 제15기 아함동산배 | 우승 | 3연패 | |
| 제55기 NHK배 | 우승 | ||
| 2009년 | 제47기 십단전 | 우승 | 2연패 (2009~2010), 5관왕 달성 |
| 2010년 | 제34기 기성전 | 우승 | 3연패 (2010~2012), 그랜드 슬램 달성 |
| 제35기 작은기성전 | 준우승 | ||
| 2011년 | 제30기 NEC배 | 우승 | |
| 2012년 | 제19기 아함동산배 | 우승 | |
| 2013년 | 제15회 농심배 | 일본 대표 | |
| 2016년 | 제63기 NHK배 | 우승 | |
| 제18회 농심배 | 일본 대표 | ||
| 2018년 | 제43기 명인전 | 우승 | |
| 2019년 | 제26기 아함동산배 | 우승 | |
| 제44기 명인전 | 준우승 |
2. 4. 전성기와 그랜드슬램
2002년 2월, 제1회 월드 오자 일본 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14] 같은 해 3월에는 제49회 NHK배 결승에서 하네 나오키를 꺾고 우승하며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NHK배 최연소 우승 기록이기도 했다. 당시 바둑 기자 존 파워는 "조우는 일본 바둑계의 지배적인 선수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그는 침착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며, 수읽기가 매우 뛰어나다. 어려운 싸움을 즐기는 것 같으며, 뛰어난 형세 판단력이 가장 큰 무기"라고 평가했다.[15] 같은 해 10월, 처음으로 명인전 리그에 진출했으며,[17] 한 해 동안 70승을 거두는 대기록을 세우며[18] 슈사이상을 수상했다.[19]2003년 7월 11일, 제58기 혼인보전에서 가토 마사오를 4승 2패로 꺾고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우승으로 당시 메이저 타이틀 최연소 3위, 혼인보 최연소 2위 기록을 세웠고, 일본기원 최연소 9단 승단 기록도 경신했다.[20] 같은 해 아함동산배 결승에서는 가토 마사오에게 패했지만,[21] 왕좌전 도전자 결정전에서는 가토 마사오를 꺾고 오메이엔에게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22] 이어 왕좌전 결승에서 오메이엔을 3승 1패로 누르고 우승하며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고, 2005년까지 3연패를 달성했다.[23]
이후 장쉬는 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차례로 석권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4년에는 명인전에서 요다 노리모토를 꺾고 우승하여 2005년까지 2연패했으며,[24]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연간 상금 1억엔을 돌파한 기사가 되었다.[25] 2005년에는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중국의 위빈을 3승 1패로 꺾고 생애 첫 국제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2003년 삼성화재배에서 조치훈이 우승한 이후 일본 대표 기사로서는 첫 국제대회 우승이었다.[26] 같은 해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와 제52회 NHK배에서도 우승했다.
2006년에는 제31기 작은기성전에서 요다 노리모토를 꺾고 우승했으며, 이 타이틀은 2009년까지 4연패했다.[24] 또한 제15기 용성전과 제13기 아함동산배에서도 우승했다. 2007년에는 제32기 명인전 타이틀을 탈환하여 2008년까지 2연패했고, 용성전과 아함동산배 2연패를 달성했다.
2008년에는 제34기 천원전에서 고노 린을 3-0으로 꺾고 첫 천원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제56기 왕좌전에서도 야마시타 케이고를 3-1로 꺾고 3년 만에 왕좌 자리를 되찾아 2011년까지 4연패했다. 또한 아함동산배 3연패와 제55기 NHK배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장쉬는 명인, 천원, 왕좌, 아함동산배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며 사상 4번째로 4관왕에 올랐다.
2009년 4월 16일, 제47기 십단전에서 다카오 신지를 3-1로 꺾고 우승하며 명인, 십단전, 천원, 왕좌, 작은기성전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 사상 최초로 5관왕을 달성했다. 하지만 5관왕 등극 직후 다리에 대상포진이 발병하여 수개월간 극심한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개인 최다인 17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컨디션 난조 속에 치러진 제34기 명인전 방어전에서는 도전자 이야마 유타에게 1승 4패로 패배하며 최연소 명인 탄생을 허용했고, 5관왕 시대도 막을 내렸다.[44]
2010년 2월, 제35기 기성전에서 야마시타 케이고에게 4승 1패로 승리하며 처음으로 기성 타이틀을 획득했고, 2012년까지 3연패했다. 이로써 조치훈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7대 메이저 타이틀(기성, 명인, 혼인보, 십단전, 천원, 왕좌, 작은기성전)을 모두 한 번 이상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10년에는 상금 9049.9만엔(112.00000000000001만달러)으로 일본기원 상금 랭킹 1위를 기록했다.[27] 2011년 5월에는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성전 상금 1500만엔을 기부하기도 했다.[28]
그러나 그랜드슬램 달성 이후, 이야마 유타의 급부상과 함께 장쉬는 점차 타이틀을 잃기 시작했다. 2012년 제60기 왕좌전에서는 이야마 유타에게 0-3으로 완패하며 이야마의 5관왕 등극을 지켜봐야 했고, 2013년에는 마지막으로 보유하고 있던 기성 타이틀마저 이야마에게 내주며 무관으로 전락했다. 이야마는 장쉬의 5관왕 기록을 넘어 6관왕에 오르게 되었다.
타이틀을 얻지 못한 4년의 시간 동안 장쉬는 슬럼프를 겪으며 바둑에 대한 열정을 잃어가기도 했다. 그는 현 상황 타개를 위해 2015년 5월, 가족과 함께 생활 거점을 대만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아내인 고바야시 이즈미 6단도 일본기원에 휴직계를 내고 동행했다.[45] 대국이 있을 때는 일본에 머물렀지만, 대만에서는 다른 생활 리듬 속에서 현지 기사들과 교류하고 속기 바둑을 두며 자신감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또한 대만에서 프로를 지망하는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등 새로운 활동을 통해 충실한 시간을 보내며 바둑에 대한 애정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술회했다.[46]
2. 5. 슬럼프와 대만 이주
2012년 11월, 4연패 중이던 제60기 왕좌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0-3으로 완패하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다. 이 패배로 장쉬는 자신 이후 두 번째로 이야마 유타가 5관왕에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다음 해인 2013년에는 기성 타이틀마저 이야마에게 빼앗기며 무관으로 전락했고, 이야마는 장쉬의 기록을 넘어 6관왕에 등극했다.4년간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장쉬는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다시는 타이틀을 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주변의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바둑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열정도 점차 식어갔다.[45]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장쉬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육아 문제와 부모님 관련 문제 등을 고려하여 2015년 5월, 가족과 함께 생활 거점을 대만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아내인 고바야시 이즈미 6단과 자녀들도 동행했으며, 고바야시 이즈미는 일본기원에 휴직계를 제출했다.[45]
장쉬는 대국이 있을 때는 일본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대만에서는 다른 생활 방식을 경험했다. 대만 기사들과 교류하고 속기 바둑을 많이 두면서 자신감을 되찾았고, 바둑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만에서 프로 기사를 지망하는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교재를 만드는 등 평소 하고 싶었던 활동을 하며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46]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2016년에는 제64회 NHK배 TV 바둑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약 4년 만에 타이틀을 획득했다. 같은 해 7월, 장쉬는 다시 일본으로 생활 거점을 옮겼다.
2017년 1월 19일, 제43기 기성전 예선에서 승리하며 사상 25번째로 공식전 통산 900승(388패 2무승부 1무승)을 달성했다. 당시 나이 36세 11개월로, 이는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의 기록을 넘어선 최연소 기록이었다. 입단 후 22년 9개월 만의 달성은 역대 2위에 해당하며[47], 달성 시 승률 0.699 역시 역대 2위의 높은 기록이었다.[48][49] 이 해 기성전 A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여 S리그로 승격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2018년 8월, 제43기 명인전 리그에서 8전 전승을 거두며 도전권을 획득했다.[50] 7대 타이틀 도전은 2013년 왕좌전 이후 약 4년 반 만이었고, 명인전 도전은 자신이 타이틀을 잃었던 2009년 이후 9년 만이었다. 상대는 다시 이야마 유타였다. 11월 2일, 장쉬는 이야마 유타에게 1승 3패로 뒤지던 상황에서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최종 스코어 4-3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명인 타이틀을 탈환했다.[51]
하지만 다음 해인 2019년, 6년 만에 방어전에 나선 제44기 명인전에서는 도전자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1승 후 4연패하며 1-4로 패배, 타이틀을 다시 내주었다. 공교롭게도 10년 전 제34기 명인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패배했을 때와 같은 스코어였으며, 이 결과로 시바노 도라마루는 당시 최연소 명인이자 최연소 7대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진행된 제47기 기성전 B리그에서는 5승 2패로 2위를 차지하여 A리그로 승격했으며[52], 명인전 리그에도 복귀했다.
2. 6. 복귀와 재기
2016년에 4번째로 NHK배 텔레비전 바둑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약 4년 만에 타이틀을 획득했다. 같은 해 7월, 다시 일본에 생활 거점을 두었다.2017년 1월 19일, 제43기 기성전 예선에서 승리하며 공식전 통산 900승(388패 2무승부 1무승)을 달성했다. 이는 사상 25번째 기록이며, 36세 11개월의 나이로 달성하여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의 기록을 넘어선 최연소 기록이다. 입단 후 22년 9개월 만의 달성으로 이는 사상 2번째로 빠른 기록[47]이며, 달성 당시 승률 0.699는 사상 2위[48][49]에 해당한다. 이 성과로 기성전 A리그 1위를 차지하여 S리그로 승격했다.
2018년 8월, 제43기 명인전 리그에서 8전 전승을 거두며 도전권을 획득했다.[50] 이는 2013년 제61기 왕좌전 이후 약 4년 반 만의 7대 타이틀 도전이었으며, 명인전 도전은 자신이 타이틀을 잃었던 2009년 이후 9년 만이었다. 상대는 당시 명인 이야마 유타였다. 같은 해 11월 2일, 이야마 유타 명인과의 7번기 승부에서 초반 1승 3패로 불리한 상황에 몰렸으나, 이후 3연승을 거두며 최종 4승 3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명인 타이틀을 탈환했다.[51]
다음 해인 2019년, 6년 만에 방어전에 나선 제44기 명인전에서는 19세의 신예 시바노 도라마루의 도전을 받았다. 첫 판을 승리했지만 이후 내리 4연패하며 1승 4패로 타이틀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10년 전 제34기 명인전에서 자신이 이야마 유타에게 패배했을 때와 같은 스코어였으며, 시바노 도라마루는 이 승리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명인이자 최연소 7대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진행된 제47기 기성전 B리그에서 5승 2패로 2위를 차지하여 A리그로 승격[52]했으며, 명인전 리그에도 복귀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수상 및 기록
장쉬는 바둑 역사에 남을 만한 여러 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는 조치훈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그랜드슬램(7대 타이틀 모두 획득)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다.[24] 2002년에는 한 해 동안 70승을 거두며 연간 최다승 기록을 세웠고[18], 이를 기념하여 슈사이상을 수상했다.[19]
또한, 사상 최초로 7대 타이틀 5관왕을 달성(2009년)했으며, 기원상 최우수 기사상을 역대 2위에 해당하는 7회 수상했다. 그는 최연소 및 최단 기간 다승 기록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는데, 600승(27세 7개월, 입단 후 13년 4개월), 700승(29세 10개월, 입단 후 15년 8개월), 800승(33세 3개월, 입단 후 19년 0개월), 900승(36세 11개월) 달성 기록이 대표적이다. 특히 700승과 800승 달성 시 승률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상금 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2004년에는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연간 상금 1억엔 이상을 벌어들였고[25], 2010년에는 90499000JPY(당시 약 112.00000000000001만달러)으로 상금 랭킹 1위를 기록했다.[27]
통산 41개의 타이틀을 획득하여 타이틀 획득 수 랭킹 역대 7위에 올라 있으며, 이 중 7대 타이틀 획득 횟수는 24기로 역대 5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5연패 또는 통산 10회 우승 시 주어지는 명예 칭호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 왕좌전과 기성전에서 4연패를 달성했으나, 명예 칭호 획득에는 한 걸음 미치지 못했다.
3. 1. 타이틀 기록
- 1994년: 입단.
- 2002년: 제27기 신인왕전 우승, 제49기 NHK배 우승
- 2003년: 제58기 혼인보전 우승(이후 2004년까지 2연패), 제51기 왕좌전 우승(이후 2005년까지 3연패)
- 2004년: 제29기 명인전 우승(이후 2005년까지 2연패), 제4회 농심배 일본대표로 출전
- 2005년: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17회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우승, 제52기 NHK배 우승, 제5회 농심배 일본대표로 출전
- 2006년: 제31기 고세이전 우승(이후 2009년까지 4연패), 제15기 용성전 우승, 제13기 아함동산배 우승, 제6회 농심배 일본대표로 출전
- 2007년: 제3회 도요타덴소배 준우승, 제32기 명인전 우승(이후 2008년까지 2연패), 제16기 용성전 우승, 제14기 아함동산배 우승
- 2008년: 제56기 왕좌전 우승(이후 2011년까지 4연패), 제34기 천원전 우승, 제15기 아함동산배 우승, 제55기 NHK배 우승
- 2009년: 제47기 십단전 우승(이후 2010년까지 2연패)
- 2010년: 제34기 기성전 우승(이후 2012년까지 3연패), 조치훈에 이어 사상 2번째로 그랜드 슬램(7대 타이틀 모두 획득) 달성.
- 2011년: 제30기 NEC배 우승
- 2012년: 제19기 아함동산배 우승
- 2013년: 제15회 농심배 일본대표로 출전
- 2016년: 제63기 NHK배 우승, 제18회 농심배 일본대표로 출전
- 2018년: 제43기 명인전 우승
- 2019년: 제26기 아함동산배 우승, 제44기 명인전 준우승
일본 기전 최다 타이틀 보유자 7위에 랭크되었다.
| 국내 기전 | ||
|---|---|---|
| 타이틀 | 획득 횟수 | 준우승 |
| 기성 | 3 (2010–2012) | 1 (2013) |
| 명인 | 5 (2004, 2005, 2007, 2008, 2018) | 3 (2006, 2009, 2019) |
| 혼인보 | 2 (2003, 2004) | 2 (2001, 2005) |
| 천원 | 1 (2008) | 1 (2009) |
| 왕좌 | 7 (2003–2005, 2008–2011) | 3 (2006, 2012, 2013) |
| 십단전 | 2 (2009, 2010) | 3 (2004, 2011, 2012) |
| 고세이 | 4 (2006–2009) | 1 (2010) |
| 아함동산배 | 5 (2006–2008, 2012, 2019) | 3 (2002, 2003, 2009) |
| 용성 | 2 (2006, 2007) | 4 (2001, 2005, 2008, 2009) |
| NHK배 | 4 (2002, 2005, 2008, 2016) | |
| 신인왕 | 1 (2002) | |
| NEC배 | 3 (2005, 2007, 2011) | 1 (2009) |
| 다이와 증권배 | 2 (2006, 2010) | |
| 다이와 증권배 그랜드 챔피언 | 2 (2008, 2011) | |
| JAL 슈퍼 하야고 선수권 | 1 (2003) | |
| 합계 | 41 | 27 |
| 대륙 기전 | ||
| 중일 아함동산배 | 1 (2019) | 4 (2006–2008, 2012) |
| 합계 | 1 | 4 |
| 국제 기전 | ||
| 아시안 TV컵 | 1 (2005) | |
| LG배 | 1 (2005) | |
| 도요타덴소배 | 1 (2007) | |
| 합계 | 2 | 1 |
| 통산 | ||
| 합계 | 41 | 32 |
| 수 | 기전 | 기/회 | 연도 | |
|---|---|---|---|---|
| 우승 | 1 | NHK배 | 49회 | 2002 |
| 우승 | 2 | 신인왕전 | 27기 | 2002 |
| 획득 | 3 | 혼인보 | 58기 | 2003 |
| 획득 | 4 | 왕좌전 | 51기 | 2003 |
| 방어 | 5 | 혼인보 | 59기 | 2004 |
| 획득 | 6 | 명인전 | 29기 | 2004 |
| 방어 | 7 | 왕좌전 | 52기 | 2004 |
| 우승 | 8 | NEC배 | 24기 | 2005 |
| 우승 | 9 | NHK배 | 52회 | 2005 |
| 우승 | 10 | LG배 | 9회 | 2005 |
| 우승 | 11 | TV 아시아배 | 17회 | 2005 |
| 방어 | 12 | 명인전 | 30기 | 2005 |
| 방어 | 13 | 왕좌전 | 53기 | 2005 |
| 획득 | 14 | 고세이전 | 31기 | 2006 |
| 우승 | 15 | 용성전 | 15기 | 2006 |
| 우승 | 16 | 아함동산배 | 13기 | 2006 |
| 우승 | 17 | NEC배 | 26기 | 2007 |
| 방어 | 18 | 고세이전 | 32기 | 2007 |
| 우승 | 19 | 용성전 | 16기 | 2007 |
| 우승 | 20 | 아함동산배 | 14기 | 2007 |
| 획득 | 21 | 명인전 | 32기 | 2007 |
| 우승 | 22 | NHK배 | 55회 | 2008 |
| 방어 | 23 | 고세이전 | 33기 | 2008 |
| 방어 | 24 | 명인전 | 33기 | 2008 |
| 우승 | 25 | 아함동산배 | 15기 | 2008 |
| 획득 | 26 | 천원전 | 34기 | 2008 |
| 획득 | 27 | 왕좌전 | 56기 | 2008 |
| 획득 | 28 | 십단전 | 47기 | 2009 |
| 방어 | 29 | 고세이전 | 34기 | 2009 |
| 방어 | 30 | 왕좌전 | 57기 | 2009 |
| 획득 | 31 | 기성전 | 34기 | 2010 |
| 방어 | 32 | 십단전 | 48기 | 2010 |
| 방어 | 33 | 왕좌전 | 58기 | 2010 |
| 우승 | 34 | NEC배 | 30기 | 2011 |
| 방어 | 35 | 기성전 | 35기 | 2011 |
| 방어 | 36 | 왕좌전 | 59기 | 2011 |
| 방어 | 37 | 기성전 | 36기 | 2012 |
| 우승 | 38 | 아함동산배 | 19기 | 2012 |
| 우승 | 39 | NHK배 | 63회 | 2016 |
| 획득 | 40 | 명인전 | 43기 | 2018 |
| 우승 | 41 | 아함동산배 | 26기 | 2019 |
| 바둑 7대 타이틀 획득 기록 | ||
|---|---|---|
| 순위 | 획득 횟수 | 기사명 |
| 1위 | 62기 | 이야마 유타 |
| 2위 | 42기 | 조치훈 |
| 3위 | 35기 | 고바야시 고이치 |
| 4위 | 31기 | 가토 마사오 |
| 5위 | 24기 | 장쉬 |
| 6위(공동) | 21기 | 사카타 에이오 | 하네 나오키 |
| 8위 | 17기 | 오타케 히데오 |
| 9위(공동) | 14기 | 후지사와 히데유키 | 야마시타 케이고 |
| 타이틀 획득 수 랭킹 | ||
|---|---|---|
| 순위 | 획득 횟수 | 기사명 |
| 1위 | 77기 | 이야마 유타 |
| 2위 | 76기 | 조치훈 |
| 3위 | 64기 | 사카타 에이오 |
| 4위 | 60기 | 고바야시 고이치 |
| 5위 | 48기 | 오타케 히데오 |
| 6위 | 47기 | 가토 마사오 |
| 7위 | 41기 | 장쉬 |
| 8위 | 36기 | 요다 노리모토 |
| 9위 | 35기 | 하네 나오키 |
| 10위 | 28기 | 이치리키 료[56] |
| 타이틀 | 결승 대국 | 획득 연도 | 등장 | 획득 기수 | 연패 |
|---|---|---|---|---|---|
| 기성 | 7번 승부 (1-3월) | 2010(34기)-2012 | 4 | 3기 | 3 |
| 명인 | 7번 승부 (9-11월) | 2004(29기)-2005, 2007-2008, 2018 | 8 | 5기 | 2 |
| 혼인보 | 7번 승부 (5-7월) | 2003(58기)-2004 | 4 | 2기 | 2 |
| 왕좌 | 5번 승부 (10-12월) | 2003(51기)-2005, 2008-2011 | 10 | 7기 (역대 2위, 현역 1위) | 4 (역대 2위) |
| 천원 | 5번 승부 (10-12월) | 2008(34기) | 2 | 1기 | |
| 고세이 | 5번 승부 (6-8월) | 2006(31기)-2009 | 5 | 4기 | 4 (역대 3위) |
| 십단전 | 5번 승부 (3-4월) | 2009(47기)-2010 | 5 | 2기 | 2 |
- NHK배 우승: 4회 (제49·52·55·63기)
- NEC배 우승: 3회 (제24·26·29회)
- 신인왕전 우승: 1회 (제27회)
- 아함동산배 우승: 5회 (제13~15·19·26기)
- 용성전 우승: 2회 (제15·16기)
| 기간 | 타이틀 | 일수 | |
|---|---|---|---|
| 4관왕 | 2008.12.9 - 2009.4.16 | 명인·천원·왕좌·고세이 | 129일 |
| 5관왕 | 2009.4.17 - 2009.10.15 | 명인·십단·천원·왕좌·고세이 | 182일 |
| 4관왕 | 2009.10.16 - 2009.12.22 | 십단·천원·왕좌·고세이 | 68일 |
| 4관왕 | 2010.2.27 - 2010.8.27 | 기성·십단·왕좌·고세이 | 182일 |
-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1회 (제9회)
-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우승: 1회 (제17회)
'''연도별 성적'''
| 연도 | 기성전 (1-3월) | 십단전 (3-4월) | 혼인보 (5-7월) | 고세이전 (6-8월) | 명인전 (9-11월) | 왕좌전 (10-12월) | 천원전 (10-12월) | 기원상 | 상금 대국료 (만 엔) | 비고 |
|---|---|---|---|---|---|---|---|---|---|---|
| 2000년 | 승률, 신인 | 1519 (14위) | ||||||||
| 2001년 | 리그 B조 3위 | 왕밍완 | 본선 1회전 패배 | 최종 예선 패배 | 본선 8강 | 2698 (9위) | 7단 | |||
| 2002년 | 리그 A조 2위 | 리그 2위 | 예선 패배 | 최종 예선 패배 | 2차 예선 패배 | 우, 승, 승률, 대, 슈 | 3034 (8위) | 역대 최다승(70승) | ||
| 2003년 | 리그 B조 2위 | 가토 마사오 | 예선 패배 | 리그 3위 | 왕밍완 | 2차 예선 패배 | 최, 승, 대 | 7789 (1위) | 8단, 9단 | |
| 2004년 | 리그 B조 3위 | 왕리청 | 요다 노리모토 | 본선 결승 패배 | 요다 노리모토 | 야마시타 케이고 | 예선 A 패배 | 최, 슈 | 10495 (1위) | |
| 2005년 | 리그 B조 3위 | 본선 패배 | 다카오 신지 | 본선 1회전 패배 | 고바야시 사토루 | 야마시타 케이고 | 본선 4강 | 최, 대, 국제 | 12343 (1위) | |
| 2006년 | 리그 A조 5위 강등 | 본선 패배 | 리그 4위 | 요다 노리모토 | 다카오 신지 | 야마시타 게이고 | 본선 8강 | 우, 승, 연 | 5781 (3위) | |
| 2007년 | 리그 A조 2위 | 본선 패배 | 리그 4위 | 요코타 시게아키 | 다카오 신지 | 본선 결승 패배 | 본선 1회전 패배 | 최, 승, 연, 대 | 11614 (1위) | |
| 2008년 | 리그 A조 1위 (도전자 결정전 패배) | 도전자 결정전 패배 | 리그 5위 강등 | 야마시타 케이고 | 이야마 유타 | 야마시타 케이고 | 고노 린 | 최, 승, 슈 | 11337 (1위) | |
| 2009년 | 리그 B조 2위 | 다카오 신지 | 리그 4위 | 유키 사토시 | 이야마 유타 | 야마다 기미오 | 야마시타 케이고 | 최, 연 | 7696 (1위) | 5관 달성 |
| 2010년 | 야마시타 케이고 | 야마시타 케이고 | 리그 4위 | 사카이 히데유키 | 리그 2위 | 야마다 기미오 | 본선 4강 | 최, 슈 | 9049 (1위) | 그랜드슬램 달성 |
| 2011년 | 이야마 유타 | 이야마 유타 | 리그 3위 | 본선 8강 | 리그 4위 | 하네 나오키 | 본선 8강 | 8645 (3위) | ||
| 2012년 | 다카오 신지 | 이야마 유타 | 리그 3위 | 본선 16강 | 리그 5위 | 이야마 유타 | 본선 1회전 패배 | 우 | 7604 (2위) | |
| 2013년 | 이야마 유타 | 본선 1회전 패배 | 리그 3위 | 본선 8강 | 리그 3위 | 이야마 유타 | 본선 4강 | 3524 (2위) | ||
| 2014년 | 리그 A조 6위 강등 | 본선 8강 | 리그 3위 | 본선 16강 | 리그 3위 | 본선 1회전 패배 | 본선 16강 | 1247 (10위) | ||
| 2015년 | 최종 예선 패배 | 최종 예선 패배 | 리그 3위 | 본선 8강 | 리그 4위 | 본선 8강 | 예선 A 패배 | 1559 (8위) | ||
| 2016년 | 예선 A 패배 |리그 4위 | 리그 4위 | 최종 예선 패배 | 본선 1회전 패배 | 2802 (7위) | |||||
| 2017년 | 예선 A 패배 |리그 6위 강등 | 리그 4위 |예선 A 패배 | 본선 1회전 패배 | |||||||
| 2018년 | 예선 A 패배 |최종 예선 패배 |본선 16강 | 이야마 유타 |본선 1회전 패배 |본선 1회전 패배 | 4151 (3위) | ||||||||
| 2019년 | 예선 A 패배 |최종 예선 패배 |본선 1회전 패배 |시바노 도라마루 |본선 8강 |본선 8강 | 3227 (4위) | ||||||||
| 2020년 | 최종 예선 패배 |최종 예선 패배 |본선 결승 패배 |리그 8위 강등 |본선 결승 패배 |본선 8강 | 1197 (9위) | ||||||||
| 2021년 | 본선 4강 |최종 예선 패배 |본선 1회전 패배 |최종 예선 패배 |본선 4강 |예선 A 패배 | |||||||||
| 2022년 | 본선 1회전 패배 |최종 예선 패배 |본선 1회전 패배 |예선 A 패배 |최종 예선 패배 |본선 16강 | |||||||||
| 2023년 | | | |리그 7위 강등 | | | | |||||||||
| 2024년 | | | |리그 6위 강등 | | | |
3. 2. 기타 기록
| 단 | 승단 연도 | 비고 |
|---|---|---|
| 1단 | 1994년 | |
| 2단 | 1994년 | |
| 3단 | 1995년 | |
| 4단 | 1996년 | |
| 5단 | 1997년 | |
| 6단 | 1999년 | |
| 7단 | 2001년 | 소요코쿠와의 오오테아이 대국에서 승리.[10] |
| 8단 | 2003년 | 제7단에서 제8단으로 승단, 혼인보전 결승 진출.[29] |
| 9단 | 2003년 | 제8단에서 제9단으로 승단, 제58기 혼인보전 우승.[20] |
장쉬는 7대 타이틀 최다 획득 24기(역대 5위), 타이틀 획득 및 우승 횟수 41기(역대 7위) 등 바둑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세웠으나, 5연패 또는 통산 10회 우승으로 얻을 수 있는 명예 칭호는 하나도 획득하지 못했다. 왕좌전과 기성전에서 4연패를 달성했지만, 명예 칭호 획득에는 한 번의 우승이 부족했다. 그는 7대 타이틀 획득 횟수와 전체 타이틀 우승 횟수 모두에서 명예 칭호를 얻지 못한 기사 중에서는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이다. 반대로 장쉬보다 타이틀 획득 횟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명예 칭호를 보유한 기사도 있다.
4. 기풍
사활 만들기를 취미로 하며, 부채 휘호에도 즐겨 자작 사활을 사용한다. 수읽기가 빠르고 깊으며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부분적인 사활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실리를 중시하는 기풍이지만, 유연한 발상과 결단력을 갖추고 섬세한 전술을 구사한다. 또한 패의 명수로도 알려져 있다.
소목에서 흑1의 위치에 벌리는 수법을 자주 둔다.
소목에서 흑1, 3으로 걸치고 변의 화점에 두는 포석을 저단 시절에 자주 사용하여 스스로 "장쉬 스페셜"이라고 이름 붙였다. 백이 a 등과 같이 걸쳐오면, 쌍립으로 강하게 공격한다. 하지만 이 포석은 우변의 돌 위치가 낮게 치우친다는 단점이 있어 점차 사용 빈도가 줄었다.
2014년 NHK배 등에서 바둑판의 "7의 5" 지점에 네 번 연속 돌을 놓는 독특한 포석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 형태를 장쉬는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5. 가족 관계
타이베이시 출신이며, 혈액형은 O형이다. 3살 위의 누나가 한 명 있다. 아버지 장위안쉬(張遠煦)에게 어릴 적 바둑을 배웠다.[2]
2003년 11월 9일 동료 기사인 고바야시 이즈미와 약혼하였고, 2004년 1월 12일 오키나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53] 결혼 당시 장쉬는 혼인보 타이틀을, 고바야시 이즈미는 여류 혼인보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혼인보 커플'로 불리기도 했다.
슬하에 두 딸을 두었으며, 두 딸 모두 프로 바둑 기사가 되었다.
- 장녀: 장코스미 (張心澄, 초단). 2006년 3월 24일 출생. 2020년 4월 1일 일본기원 소속 프로 기사로 입단했다.[54] 이름은 바둑 용어 '코스미'에서 따왔다.
- 차녀: 장코하루 (張心治, 초단). 2009년 11월 10일 출생. 2022년 4월 1일 일본기원 소속 프로 기사로 입단했다.[55] 이름의 '하루(治)'는 존경하는 기사인 조치훈 9단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내인 고바야시 이즈미 역시 유명한 바둑 기사 가문 출신이다.
- 의부 (장인): 고바야시 고이치 명예 삼관(기성, 명인, 기성).
- 의모 (장모): 고바야시 레이코 전 여류 명인.
- 의조부 (처조부): 기타니 미노루 9단. 기타니 도장을 열어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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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U takes Judan title, is first to achieve quintuple 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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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Taiwanese player to win top 7 Go titles in Japan keeps a cool 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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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張栩拜師 沈君山只敢當乾爹/Cho U pays his respects to his teacher; Shen Chun-shan only dares to call himself "godfather"
http://mag.udn.com/m[...]
200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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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tsu Quarterfi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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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Sonjin wins B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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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U makes 7-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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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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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wanese players to vie for Honinbo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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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o wins Agon Kiriyama Cup, takes revenge on Cho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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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U donates 15 million Japanese Yen for the earthquake-stricke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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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o Shinji sets new record for most 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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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棋院 張栩九段が通算900勝達成!【36歳11か月・史上最年少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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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湾週報2164号-2004年10月28日(台北《民生報》2004年9月29日:二大女流棋士は「台湾媳婦」 第23期女流本因坊戦で熱い火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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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子4代でプロ棋士が誕生 13歳の張心澄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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囲碁・最年少プロの張心治さん 趙治勲九段にあやかり命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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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栩九段、悩み多い時期を打開した「目覚めの一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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