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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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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식은 남송 시대의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총명하고 조숙한 면모를 보였으며, 호굉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교를 공부했다. 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요절했다. 장식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성선설을 옹호하고 불교를 비판했으며, 이정의 학문을 계승하고 주희와 교류하며 학문을 발전시켰다. 그의 저서로는 『남헌집』, 『남헌역설』 등이 있다. 황종희는 장식을 주희가 마음속으로 깊이 감복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했으며, 전조망은 그가 정호와 비슷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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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남송)
기본 정보
장식
개인 이름장식 (張栻)
경부 (敬夫), 흠부 (欽夫), 낙재 (樂齋)
남헌선생 (南軒先生)
시호문선공 (文宣公)
상세 정보
출생1133년
사망1181년
출신지면죽 (綿竹)
직업학자, 정부 관료

2. 생애

장식은 뛰어나게 총명하고 조숙했다. 커서 호굉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2] 음서로 승무랑에 임명되었고, 남송 효종이 즉위하자 젊은 나이에도 조정에 들어가 국사를 논의하는 데 참여하여 임금의 올바른 정치를 도왔다. 뭇 신하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일찍 죽었다.[2] 부친 장준이 주전론을 주장했는데, 장식 또한 효종에게 금나라와 전쟁을 불사하는, 과감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1]

처음에는 직비각에 임명되었고, 그 후 지방관을 역임했으며, 중앙으로 돌아와서는 이부시랑에서 우문전 수찬이 되었다. 재상 우윤문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지만 효종의 신임은 두터웠다. 왕부지는 『송론』에서 장식을 "고금에 드문 대현이나, 왕안석 이래의 인재 박해·언론 탄압에 질려 세상을 떠나려고 노력하여, 재능을 발휘하려 하지 않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3. 사상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인(仁)이 사덕(四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했고, 맹자성선설(性善設)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본성은 하늘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본래 선한 것이라고 했다. 불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1]

장식의 학문은 이정(二程, 정호·정이)을 계승하고, 주희와의 교우를 통해 발전했다. 『논어』, 『맹자』의 해석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4. 평가

황종희(黃宗羲)는 "주희가 평생에 서로 어울리며 도움을 받았던 사람은 여조겸, 육구연, 장식 등 몇 사람뿐이다. 주희는 여조겸의 잡다함을 지적했고, 육구연의 이론이 (禪)에 가까움을 지적했으나, 오직 장식에 대해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감복했다."고 말했다. 또한 "경부(장식의 자)의 식견은 탁월하여 내가 미칠 수 없다. 오랫동안 그와 사귀며 어울리는 동안 거듭해서 나의 식견을 늘려 준 것이 많았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경부의 학문은 더욱 높고 견해가 탁월하여, 그 의견은 사람들의 의표를 찌른다. 근래에 그의 말을 읽다 보니,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슴이 탁 트이며 시원해지니, 참으로 탄복할 만하다"고 했다.[3]

전조망(全祖望)은 장식이 정호와 비슷하고, 주희는 정이와 비슷하다고 평하며, "장식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학문이 어디까지 나갔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3]

5. 저서

장식(張栻)은 정호·정이의 학문을 계승하고, 주희와의 교우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켰다. 『논어』, 『맹자』의 해석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저서로는 『남헌집(南軒集)』 44권, 『남헌역설(南軒易説)』, 『이천수언(伊川粋言)』,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계사맹자설(癸巳孟子説)』이 있다. 그 외에도 《논어해》(論語解), 《맹자설》(孟子說), 《경세편년》(經世編年), 《수사언인》(洙泗言仁) 및 《남헌문집》(南軒文集)이 있다.

참조

[1] 웹인용 장식 [張栻] https://www.doopedia[...] 두산 2017-11-10
[2] 서적 송대 성리학사(Ⅱ) 울산대학교 출판부 2017-11-09
[3] 문서 《송원학안》 권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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