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원나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주진형은 원나라 시대의 의학자로, 유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배운 후 독자적인 의학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상화" 이론을 제시하며 인체의 음(陰)을 보양하고 열을 내리는 "자음강화" 이론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격치여론》을 통해 빙의와 같은 증상이 점액으로 인한 혼란이라고 주장하며, 가족 의례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금원사대가 중 자음파로 분류되며, 《단계심법》, 《격치여론》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가르침은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명나라 말기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원나라 사람 - 아무가
아무가는 공민왕의 서자라고 주장하며 위왕에 책봉되었으나 불안정한 정치적 입지를 겪었고,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역사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여 고려 왕실과 관계를 맺었고, 2023년 78세로 사망하여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 1281년 출생 - 유리 3세
유리 3세는 모스크바 공국의 다닐 알렉산드로비치의 아들이자 이반 1세의 형으로, 1303년 모스크바 공작이 되어 트베리 공 미하일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1318년부터 1322년까지 블라디미르 대공을 역임하며 금장 칸국과의 외교를 통해 모스크바 공국의 세력을 확장하려 했으나, 루스 공국들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 1281년 출생 - 루돌프 1세 (보헤미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루돌프 1세는 독일 왕 알브레히트 1세의 아들로, 1306년부터 1307년까지 보헤미아 왕으로 재위했으나 귀족들의 반발과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짧고 혼란스러운 통치를 마쳤으며, 그의 죽음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보헤미아 왕위 획득 시도를 좌절시키고 왕국 내 혼란을 야기했다. - 중국의 의사 - 장보리 (의사)
장보리 (의사)에 대한 정보가 현재 제공되지 않아 위키백과 페이지의 도입부를 작성할 수 없습니다. - 중국의 의사 - 옌리멍
옌리멍은 중국 출신 바이러스학자로, 코로나19 기원 주장을 제기하며 주목받았으나 과학계의 비판을 받았고, 미국 망명 후 관련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며 논쟁을 일으켰다.
| 주진형 (원나라)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주진형 |
| 한자 표기 | 朱震亨 |
| 자 | 彦修 (언수) |
| 호 | 丹溪 (단계) |
| 출생 | 1281년 |
| 사망 | 1358년 |
| 직업 | 의사, 작가 |
| 시대 | 원나라 |
| 활동 분야 | 의학, 유학 |
| 사상 및 학설 | |
| 주요 사상 | 양주음감론 (養陰降火論) |
| 학파 | 금원사대가 (金元四大家) |
| 영향 | 조선 의학에 큰 영향 |
| 저서 | |
| 주요 저서 | 《단계심법 (丹溪心法)》 《격치여론 (格致餘論)》 |
2. 생애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 시절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44세 시절이던 1325년에 의사인 뤄즈티(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하게 된다. 주진형은 원나라 관학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맵고 건조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국방(局方) 의술을 비판하는 한편 덥고 습한 기후를 띠는 장강 이남 지방에 맞는 의술을 연구했다.
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금원사대가에서 자음파(滋陰派) 또는 양음파(養陰派)로 분류되며 경옥고(瓊玉膏), 월국환(越鞠丸), 대보음환(大補陰丸) 등의 새로운 한약을 발명하기도 했다. 1347년, 송나라의 약학을 비판하는 논문인 《국방발휘》(局方发挥)를 썼고, 같은 해에 자신의 주요 의학적 신념을 요약한 《격치여론》(格致餘論)을 썼다.
《격지여론》에서 주진형은 빙의와 같은 증상은 일반적으로 "점액으로 인한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주진형은 연회에서 잘못된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은 후 겉보기에 빙의된 여성의 사례 연구를 제시하며, 퇴마사들의 의식이 오히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분석했다.
주진형은 주희의 『가례』(家禮)를 철저히 읽은 "가족 의례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같은 구내에 10대에 걸쳐 1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살고 있었던 푸장의 정씨 가문에 장례, 제례, 결혼과 같은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저서로는 《단계심법》(丹溪心法), 《격치여론》(格致餘論), 《국방발휘》(局方發揮), 《본초연의보유》(本草衍義補遺), 《금궤구원》(金匱鉤元), 《상한론변》(傷寒論辨), 《외과정요발휘》(外科精要發揮) 등이 있다.
1282년 저장성 진화시 우저우(현재의 진화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주하던 시냇물 이름을 따서 "단계"(단시/丹溪zh-hant, 문자 그대로 "주사 시내")라는 별명을 얻었다. 1317년과 1320년 두 차례의 과거 시험에서 낙방했는데, 이는 과거 시험이 주희의 가르침에 크게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쉬첸의 권유로 주진형은 이후 고전 연구를 포기하고 의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주진형은 1358년에 사망했다. 그가 죽은 후, 주진형의 측근이었던 송렴은 그의 가족으로부터 주진형의 전기를 저술하도록 위촉받았다. 송렴은 《고단계선생주공석표사》(故丹谿先生朱公石表辭)에서, 주진형이 혈기 왕성한 젊은이에서 겸손한 의사로 성숙해진 과정을 기리고 있다. 그는 또한 주진형이 "악귀를 쫓는 나무 조각상"이 잘못된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구출한 불교 여승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주진형의 몇몇 영웅적인 행적을 이야기한다. 송렴은 찬사 끝에 주진형의 도덕성을 칭찬했다. "청렴하고 절제하는 삶을 실천함에 있어,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냈다."
2. 1. 어린 시절과 유학 공부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다. 36세 시절에는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1317년과 1320년 두 차례의 과거 시험에서 낙방했는데, 이는 과거 시험이 주희의 가르침에 크게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4세 시절이던 1325년에 의사인 나지제(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했다. 그는 거주하던 시냇물 이름을 따서 "단계"(단시/丹溪zh-hant, 문자 그대로 "주사 시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마도 쉬첸의 권유로 주진형은 이후 고전 연구를 포기하고 의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2. 2. 의학 입문과 스승 뤄즈티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 시절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44세 시절이던 1325년에 의사인 뤄즈티(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하게 된다. 주진형은 원나라 관학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맵고 건조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국방(局方) 의술을 비판하는 한편 덥고 습한 기후를 띠는 장강 이남 지방에 맞는 의술을 연구했다.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감정에 체액의 음에 영향을 미치는 "양 내부 열"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금원사대가에서 자음파(滋陰派) 또는 양음파(養陰派)로 분류되며 경옥고(瓊玉膏), 월국환(越鞠丸), 대보음환(大補陰丸) 등의 새로운 한약을 발명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처음에는 의학에 대해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그가 자문한 저장성의 의사들이 광범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학 서적이 스스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1325년, 멘토를 찾아 저장성과 양쯔강 삼각주를 여행한 후, 그는 항저우의 의사이자 류완숙의 2대 제자였으며 장총정, 이고의 의학 철학에도 정통했던 뤄즈티의 제자가 되었다.
뤄즈티의 가르침과 젊은 시절에 공부했던 유교를 통합하여 주진형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2. 3. 자음강화 이론과 의학 활동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1325년, 44세에는 항저우의 의사이자 류완숙의 2대 제자였던 나지제(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했다.주진형은 유완소, 이고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위해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감정에 체액의 음에 영향을 미치는 "양 내부 열"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주요 전략은 "음을 기르고 불을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주진형은 금원사대가에서 자음파(滋陰派) 또는 양음파(養陰派)로 분류되며 경옥고(瓊玉膏), 월국환(越鞠丸), 대보음환(大補陰丸) 등의 새로운 한약을 발명했다. 1347년, 송나라의 약학을 비판하는 논문인 『국방발휘』(局方发挥)를 썼고, 같은 해에 자신의 주요 의학적 신념을 요약한 『격치여론』(格致餘論)을 썼다. 이외의 저서로는 《단계심법》(丹溪心法), 《격치여론》(格致餘論), 《국방발휘》(局方發揮), 《본초연의보유》(本草衍義補遺), 《금궤구원》(金匱鉤元), 《상한론변》(傷寒論辨), 《외과정요발휘》(外科精要發揮) 등이 있다.
『격지여론』에서 주진형은 빙의와 같은 증상은 일반적으로 "점액으로 인한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주진형은 연회에서 잘못된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은 후 겉보기에 빙의된 여성의 사례 연구를 제시하며, 퇴마사들의 의식이 오히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분석했다. 주진형은 그 여성의 변덕스러운 행동의 원인이 여름철 연회로 인해 몸에 갖힌 열과 점액때문이며, 퇴마 의식은 "그녀의 혼을 두렵게"했고, 그녀의 몸에 뿌려진 의식용 물은 그녀를 차갑게 하여, 그녀는 몸 안의 "무더운 열"을 땀으로 배출할 수 없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주진형은 주희의 『가례』(家禮)를 철저히 읽은 "가족 의례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같은 구내에 10대에 걸쳐 1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살고 있었던 푸장의 정씨 가문에 장례, 제례, 결혼과 같은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2. 4. 저술 활동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1325년에는 의사인 나지제(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했다. 주진형은 원나라 관학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맵고 건조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국방(局方) 의술을 비판하는 한편 덥고 습한 기후를 띠는 장강 이남 지방에 맞는 의술을 연구했다.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금원사대가에서 자음파(滋陰派) 또는 양음파(養陰派)로 분류되며 경옥고(瓊玉膏), 월국환(越鞠丸), 대보음환(大補陰丸) 등의 새로운 한약을 발명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처음에는 의학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그가 자문한 저장성의 의사들이 광범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학 서적이 스스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1325년, 멘토를 찾아 저장성과 양쯔강 삼각주를 여행한 후, 그는 항저우의 의사이자 류완숙의 2대 제자였으며 장총정, 이고의 의학 철학에도 정통했던 뤄즈티(羅知悌)의 제자가 되었다.
뤄의 가르침과 젊은 시절에 공부했던 유교를 통합하여 주진형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의학적 접근 방식은 "양은 항상 과다"하고 "음은 항상 부족하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했다. 그는 외부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여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내부 요인, 특히 감정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는 감정에 체액의 음에 영향을 미치는 "양 내부 열"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주요 전략은 "음을 기르고 불을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의 방법을 빌리는" 그의 멘토 뤄의 조언을 염두에 두고, 주진형은 이고가 소화기 건강을 강조하고 설사약을 사용하는 장총정에 주목했다. 동시에 그는 "장난 기후의 습열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접근 방식을 맞춤화했다.
의사이자 교사로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주진형은 아들 위루(玉汝)와 조카 쓰판(嗣氾)을 포함한 더 많은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1347년, 주진형은 송나라의 약학을 비판하는 논문인 『국방발휘』(局方发挥) 또는 『공식 처방 해설』을 썼다. 같은 해에 그는 자신의 주요 의학적 신념을 요약한 또 다른 에세이인 『격지여론』(格致餘論) 또는 『지식 확장에 대한 추가 견해』를 썼다.
『격지여론』에서, 장총정의 정신 질환에 대한 견해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는 주진형은 빙의와 같은 증상은 일반적으로 "점액으로 인한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주진형은 연회에서 잘못된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은 후 겉보기에 빙의된 여성의 사례 연구를 제시한다. 주진형의 충고와 달리, 그 여성의 가족은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퇴마사를 불렀지만, 그들의 의식은 겉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죽음을 초래했다. 주진형의 분석에 따르면, 연회는 여름에 열렸기 때문에 많은 열과 점액이 여성의 몸에 갇혀 그녀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유발했다. 퇴마사들의 주문은 "그녀의 혼을 두렵게"했고, 그녀의 몸에 뿌려진 의식용 물은 그녀를 차갑게 했다. 따라서 그녀는 몸 안의 "무더운 열"을 땀으로 배출할 수 없었고, 이는 그녀의 죽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주희의 『가례』(家禮, 문자 그대로 '가족 의례')를 철저히 읽은 주진형은 또한 "가족 의례 전문가"였다. 그는 당시 같은 구내에 10대에 걸쳐 1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살고 있었던 푸장의 정씨 가문에 장례, 제례, 결혼과 같은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저서로는 《단계심법》(丹溪心法), 《격치여론》(格致餘論), 《국방발휘》(局方發揮), 《본초연의보유》(本草衍義補遺), 《금궤구원》(金匱鉤元), 《상한론변》(傷寒論辨), 《외과정요발휘》(外科精要發揮) 등이 있다.
3. 의학 이론 및 사상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 시절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1325년(44세)에는 의사인 뤄즈티(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했다. 주진형은 원나라 관학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맵고 건조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국방(局方) 의술을 비판하는 한편 덥고 습한 기후를 띠는 장강 이남 지방에 맞는 의술을 연구했다.
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진형은 금원사대가에서 자음파(滋陰派) 또는 양음파(養陰派)로 분류되며 경옥고(瓊玉膏), 월국환(越鞠丸), 대보음환(大補陰丸) 등의 새로운 한약을 발명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단계심법》(丹溪心法), 《격치여론》(格致餘論), 《국방발휘》(局方發揮), 《본초연의보유》(本草衍義補遺), 《금궤구원》(金匱鉤元), 《상한론변》(傷寒論辨), 《외과정요발휘》(外科精要發揮) 등이 있다.
주진형은 처음에는 의학에 대해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그가 자문한 저장성의 의사들이 광범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학 서적이 스스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1325년, 멘토를 찾아 저장성과 양쯔강 삼각주를 여행한 후, 그는 항저우의 의사이자 류완숙의 2대 제자였으며 장총정, 이고의 의학 철학에도 정통했던 뤄즈티(羅知悌)의 제자가 되었다.
뤄의 가르침과 젊은 시절에 공부했던 유교를 통합하여 주진형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의학적 접근 방식은 "양은 항상 과다"하고 "음은 항상 부족하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했다. 그는 외부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여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내부 요인, 특히 감정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는 감정에 체액의 음에 영향을 미치는 "양 내부 열"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주요 전략은 "음을 기르고 불을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의 방법을 빌리는" 그의 멘토 뤄의 조언을 염두에 두고, 주진형은 이고가 소화기 건강을 강조하고 설사약을 사용하는 장총정에 주목했다. 동시에 그는 "장난 기후의 습열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접근 방식을 맞춤화했다.
의사이자 교사로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주진형은 아들 위루(玉汝)와 조카 쓰판(嗣氾)을 포함한 더 많은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1347년, 주진형은 송나라의 약학을 비판하는 논문인 《국방발휘》(局方发挥) 또는 《공식 처방 해설》을 썼다. 같은 해에 그는 자신의 주요 의학적 신념을 요약한 또 다른 에세이인 『격지여론』(格致餘論) 또는 『지식 확장에 대한 추가 견해』를 썼다.
『격지여론』에서, 장총정의 정신 질환에 대한 견해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는 주진형은 빙의와 같은 증상은 일반적으로 "점액으로 인한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주진형은 연회에서 잘못된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은 후 겉보기에 빙의된 여성의 사례 연구를 제시한다. 주진형의 충고와 달리, 그 여성의 가족은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퇴마사를 불렀지만, 그들의 의식은 겉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죽음을 초래했다. 주진형의 분석에 따르면, 연회는 여름에 열렸기 때문에 많은 열과 점액이 여성의 몸에 갇혀 그녀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유발했다. 퇴마사들의 주문은 "그녀의 혼을 두렵게"했고, 그녀의 몸에 뿌려진 의식용 물은 그녀를 차갑게 했다. 따라서 그녀는 몸 안의 "무더운 열"을 땀으로 배출할 수 없었고, 이는 그녀의 죽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주희의 『가례』(家禮, 문자 그대로 '가족 의례')를 철저히 읽은 주진형은 또한 "가족 의례 전문가"였다. 그는 당시 같은 구내에 10대에 걸쳐 1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살고 있었던 푸장의 정씨 가문에 장례, 제례, 결혼과 같은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3. 1. 상화(相火) 이론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 시절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1325년(44세)에는 의사인 나지제(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했다. 주진형은 원나라 관학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맵고 건조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국방(局方) 의술을 비판하는 한편 덥고 습한 기후를 띠는 장강 이남 지방에 맞는 의술을 연구했다.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3. 2.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
주진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성리학을 배웠고 36세 시절에 허겸(許謙)의 제자가 되면서 유학을 배웠다. 44세 시절이던 1325년에 의사인 나지제(羅知悌)의 제자가 되면서 의학을 배웠고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 의학서를 연구하게 된다. 주진형은 원나라 관학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맵고 건조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국방(局方) 의술을 비판하는 한편 덥고 습한 기후를 띠는 장강 이남 지방에 맞는 의술을 연구했다.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3. 3. 점액과 정신 질환
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이고(李杲)가 제시한 학설을 발전시키면서 "사람의 몸에 있는 양(陽)과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상화(相火) 이론을 제시했다. 주진형은 상화에 의지하는 인체는 오장(五臟, 내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상화가 망동하면 각종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고 건강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을 절제하고 인체의 음분(陰分)을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면서 혈액과 체액이 고갈되어 열이 생긴 인체를 촉촉하게 하고 음을 보양해서 식히자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3. 4. 가족 의례 전문가
4. 후대의 평가 및 영향
주진형은 1347년에 쓰여진 두 편의 에세이와,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본초연의보유(本草衍義補遺)''라는 제목의 ''본초학'' 저술을 남겼다. 그의 가르침은 사후에도 계속 번성했다. 주진형의 제자였던 대원례(戴元禮, 1324–1405)는 주원장의 어의로 활동하면서 주진형의 가르침을 명나라의 다른 주요 의사들과 공유했다.
주진형의 주목할 만한 사례 기록 중 수백 건이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200년 동안 수집되고 보존되었으며, 1552년에 처음 출판된 명나라의 선집인 ''명의류안(名醫類案)''에 포함되었다. 우주론과 윤리를 의학에 주입한 주진형의 학설은 이 기간 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 주진형의 가르침은 "화(火)를 배출"하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여러 의학 자문가들에 의해 모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화 제국 시대 의학의 현대사에서 주진형은 그의 선배인 유완소, 장종정, 그리고 이고와 함께 "금-원대 학술 의학 전통의 4대 명의"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
5. 비판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