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죽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죽간은 고대 중국에서 널리 사용된 기록 매체로, 대나무를 깎아 만든 얇은 조각에 글을 쓴 것이다. 종이가 보급되면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점차 사라졌지만, 유적에서 출토된 죽간은 역사 및 문자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활용된다. 중국 각지에서 다양한 죽간이 출토되었으며, 한국에서는 극히 드물게 1건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2. 죽간의 형태와 특징

죽간은 끈으로 묶어 엮었는데, 이를 "책을 엮다" 또는 "편집하다"라고 한다. 엮어진 간은 "한 편의 책"이라 불렀고, 이를 말아 놓은 것은 "한 권의 책"이라고 했다. 간을 끈으로 묶은 것은 "책(冊)"이라고 하는데, 이는 판(간)을 끈으로 묶은 모습을 본뜬 상형 문자이다. 덧붙여 판을 묶어 놓은 구조물은 "책(柵)"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나무의 안쪽 부분인 죽황을 글을 쓰는 면으로 사용했지만, 대나무의 바깥쪽 부분인 죽청에 글을 쓴 경우도 있다.[1]

죽간은 고대에 주로 사용되었지만, 역사서나 성어 등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서를 "청사(青史)"라고 부르는 것은 대나무의 푸른색에서 유래했다. 공자주역을 반복해서 읽다가 묶인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 고사는 책을 정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위(韋)"는 가로 실로 엮은 책을 뜻하며, 가죽 끈이 아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운다"라고 하는데, 이는 이름이 대나무 간과 비단에 기록되어 남는 것을 의미한다. 하급 관리를 뜻하는 "도필리(刀筆吏)"에서 "도(刀)"는 간을 만들거나 글자를 수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작은 칼을 의미한다.[1]

3. 죽간의 역사와 가치

죽간은 고대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역사서인 "청사(靑史)"나 책을 정독하는 것을 뜻하는 "위편삼절(韋編三絶)"과 같은 고사성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2] 공자주역을 반복해서 읽다가 묶인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위편삼절"은 책을 정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2]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운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이름이 대나무 간과 비단에 기록되어 남는 것을 의미한다.[2] 하급 관리를 의미하는 '도필의 리(刀筆吏)'에서 '도(刀)'는 간을 만들거나 문자를 수정할 때 사용하던 작은 칼을 뜻한다.[2]

동진 환현의 명에 따라 공적인 자리에서 죽간 사용이 중단되었지만, 대나무로 만든 종이인 죽지는 여전히 일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2]

유적에서 출토된 죽간은 역사문자 연구의 중요한 사료이며, 서예가에게는 고대 서체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2] 목간(목독)과 죽간을 합쳐 "간독(簡牘)"이라고 부른다.[2]

3. 1. 주요 출토 죽간

죽간에 기록된 내용들은 당대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특히 법률 관련 죽간은 고대 법체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죽간이 출토되었으나, 그 외 지역에서는 출토 사례가 매우 드물다. 일본에서는 죽간이 발견된 적이 없으며[5], 한반도에서는 단 한 건의 사례만이 알려져 있다[6].

3. 1. 1. 중국


  • '''급총죽서''' - 서진 함녕 5년(279년) 및 태강 2년(281년)에 위 양왕의 묘에서 도굴된 죽간으로, 『죽서기년』, 『목천자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2]
  • '''증후을묘 초간''' - 1978년 호북성 수현 뇌고돈 1호묘에서 출토된 240매의 죽간이다.[2]
  • '''신양초간''' - 1956년 하남성 신양시 장태관 1호 초묘에서 출토된 148매의 죽간이다.[2]
  • '''신채갈릉초간''' - 1992년 하남성 신채현 평야군묘에서 출토된 1571매의 죽간이다.
  • '''장사 오리패 초간''' - 1951년 호남성 장사시 오리패 406호묘에서 출토된 38매의 초죽간이다.
  • '''앙천호 초묘 죽간''' - 1953년 호남성 장사시 교외 앙천호 25호묘에서 출토된 42매의 죽간이다.[2]
  • '''양가만 초묘 죽간''' - 1954년 호남성 장사시 교외 양가만 6호묘에서 출토된 72매의 죽간이다.[2]
  • '''석양파초간''' - 1983년 호남성 상덕시 석양파 2호묘에서 출토된 2매의 죽간이다.
  • '''자리지초간''' - 1987년 호남성 자리지현 석판촌 36호묘에서 출토된 4371매의 잔간이다.
  • '''강릉 망산 초간''' - 1965년 호북성 강릉현 망산 1호묘에서 출토된 433매의 잔간 및 망산 2호묘에서 출토된 66매의 잔간이다.
  • '''등점초간''' - 1973년 호북성 강릉현 등점 1호묘에서 출토된 24매의 잔간이다.
  • '''천성관초간''' - 1978년 호북성 강릉현 천성관 1호묘에서 출토된 죽간이다.[2]
  • '''구점초간''' - 1981년부터 1989년까지 호북성 강릉현 구점 56호묘, 411호묘 및 621호묘에서 출토된 죽간이다.[2]
  • '''진가취초간''' - 1986년부터 1987년까지 호북성 강릉현 진가취 1호묘, 13호묘 및 99호묘에서 출토된 41매의 죽간이다.
  • '''은작산한간''' - 1972년 산동성 임기현 은작산 1호묘에서 출토된 약 5000매의 죽간으로, 『죽간손자』가 포함되어 있다.[2]
  • '''수호지진묘 죽간''' - 1975년 호북성 운몽현 수호지에 있는 진묘에서 출토된 약 1000매의 법률 관련 죽간으로, 진나라 율령의 내용을 밝혀냈다.[2]
  • '''강릉 장가산 한묘 죽간''' - 1983년부터 1988년까지 호북성 강릉현 장가산 한묘군에서 출토된 약 700매의 죽간으로, 한나라의 『이년율령』, 『주예서』, 『산수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2]
  • '''포산초간''' - 1986년부터 1987년까지 호북성 형문시 십리포진 포산 2호묘에서 출토된 448매(글자 있는 것 278매)의 죽간이다.[2]
  • '''용강진간''' - 1989년 호북성 운몽현 용강 6호묘에서 출토된 진나라 율을 기록한 150매의 죽간으로, 수호지진간의 내용을 보충한다.[2]
  • '''곽점초간''' - 1993년 10월 호북성 형문시 사방포향(현재 기산진) 곽점촌 곽점 1호묘에서 출토된 804매(글자 있는 것 730매)의 초죽간이다.[2]
  • '''토자산간독''' - 2013년 호남성 익양시 혁산구 토자산 고우물에서 출토된 13,000매 이상의 간독(문서)이다.[2]
  • '''삼안교초간''' - 2014년 호남성 상향시 삼안교 1호 우물에서 출토된 700매 정도의 죽간(문서)이다.[2]
  • '''하가대초간''' - 2015년 호북성 형주시 하가대 106호묘에서 출토된 400매 정도의 죽간으로, 시경과 상서의 일부를 포함한다.[2]
  • '''상해 박물관 소장 전국 초 죽서''' - 상해 박물관이 소장하는 전국 시대 초나라 죽간군이다.[2]
  • '''주마루오간''' - 1996년 호남성 장사시 주마루 고우물에서 출토된 간독으로, 목간 2000매, 죽간 10만 편 이상이다.[2]
  • '''용산 리예 진한 고성 진죽간''' - 2002년 호남성 용산현 리예진 고성 고우물에서 발굴된 20,000매에 달하는 진대(秦代) 죽간이다.[2]
  • '''왕가대진간''' - 1993년 호북성 강릉현에서 출토된 813매의 죽간이다.[2]
  • '''주가대진간''' - 1993년 호북성 형주시 주가대 30호 진묘에서 출토된 381매의 죽간이다.[2]
  • '''방마탄진간''' - 1986년 감숙성 천수시 북도구 방마탄 1호묘에서 출토된 460매의 죽간이다.[2]
  • '''호계산한간''' - 1999년 호남성 원릉현 호계산 1호묘에서 출토된 1000매 정도의 죽간이다.[2]
  • '''마왕퇴한간''' - 1972년 호남성 장사시 마왕퇴한묘에서 출토된 312매의 죽간이다.[2]
  • '''쌍고대한간''' - 1977년 안휘성 부양현 쌍고대 1호묘에서 출토된 6000매 정도의 죽간이다.[2]
  • '''윤만한간''' - 1993년 강소성 동해현 윤만 한묘에서 출토된 133매의 죽간이다.[2]
  • '''강릉봉황산한간''' - 1973년 호북성 형주시 봉황산 한묘에서 출토된 죽간이다.[2]
  • '''인대한간'''[2]
  • '''공가파한간'''[2]
  • '''돈황한간'''[2]
  • '''액제납한간'''[2]
  • '''악록서원장진간'''[2]
  • '''청화대학교장 전국 죽간'''[2]
  • '''북경대학교장 서한 죽서'''[2]
  • '''홍콩중문대학문물관장 간독'''[2]

3. 1. 2. 기타 지역

중국 외 지역에서는 죽간 출토 사례가 매우 드물다. 일본에서는 죽간이 발견된 적이 없으며[5], 한반도에서는 단 한 건의 사례만이 알려져 있다[6].

참조

[1] 웹사이트 簡牘(カンドク)とは? 意味や使い方(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
[2] 문서 陳偉 2016
[3] 문서 冨谷 2012
[4] 웹사이트 簡牘 https://kotobank.jp/[...] 2016-04-06
[5] 논문 009 竹簡について https://hdl.handle.n[...] 国立文化財機構 奈良文化財研究所 2021-03
[6] 논문 [研究ノート] 韓国出土の文書木簡:「牒」木簡と「前白」木簡を中心に https://rekihaku.rep[...] 国立歴史民俗博物館 2021-0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