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모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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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모현주는 조선 시대의 왕족으로, 세종과 소헌왕후의 손녀이자 임영대군의 딸이다. 1435년에 태어나 신승선과 결혼하여 3남 4녀를 낳았으며, 막내딸은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이다. 중모현주는 대군의 딸에게 주어지는 현주의 작호를 받았으며, 자녀들은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중종반정 이후 가문이 몰락하고,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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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5년 출생 - 시바 요시타케
시바 요시타케는 2세에 가문을 계승하여 숙부들의 후견을 받았고, 영지 문제와 암살 미수 사건을 겪었으며, 아시카가 요시마사에게 이름자를 받아 개명했지만, 18세에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시바 씨 적류를 단절시켰다. - 1435년 출생 - 영해군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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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은 1506년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이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하여 일으킨 정변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왕권 약화, 붕당 정치 심화 등 조선 정치에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 - 조선 연산군 - 폐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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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조선의 제9대 국왕으로,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 아들이며 예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친정 후 홍문관 설치, 경국대전 반포 등 조선의 통치 체제 확립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나, 폐비 윤씨 사사 사건과 서얼 차별 강화는 비판받기도 한다. - 조선 성종 - 경국대전
《경국대전》은 조선 시대 국가 통치와 사회 전반을 규정한 성문법전으로, 세조 때 시작된 개정과 보완을 거쳐 성종 때 최종 반포되었으며, 6전으로 구성되어 조선 사회의 제도와 법규를 규정하고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했으나 서자 차별을 제도화하는 등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 측면도 있다.
| 중모현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중모현주 |
| 원어 이름 | 中牟縣主 |
| 가계 | |
| 부친 | 임영대군 |
| 모친 | 제안부부인 최씨 |
| 생몰 | |
| 출생일 | 1435년 |
| 사망일 | 미상 |
| 혼인 및 자녀 | |
| 배우자 | 거창부원군 신승선 |
| 자녀 | 3남 4녀 신수근 · 신수겸 · 신수영 이형의 처 · 남경의 처 · 안환의 처 · 폐비 신씨 |
| 작위 | |
| 작위 | 조선의 왕족 |
2. 생애
1435년(세종 17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 이구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최승녕의 딸인 제안부부인 전주 최씨이다. 외조부 최승녕의 누이들은 각각 태종의 서자인 함녕군과,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중모현주에게는 숙부가 되는 금성대군과 혼인하였다. 외숙부 최도일의 딸은 예종의 후궁인 공빈 최씨이다.
대군(大君)의 딸에게 주어지는 '현주(縣主)' 작호를 받아 '''중모현주'''(中牟縣主)에 봉해졌다. 조선 초기에는 대군의 적녀에게도 현주의 작호를 주었으나, 《경국대전》 반포 이후 왕세자의 서녀에게만 부여하였다.
신승선과 혼인하여 3남 4녀를 낳았으며, 이 중 막내딸이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이다.[1] 왕비의 어머니이므로 부부인에 봉작되었을 것이나 이와 관련한 기록은 없고, 일부에서는 흥안부부인(興安府夫人)에 봉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자녀들은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다. 장남 신수근의 딸은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가 되었고, 차녀의 외손자는 성종의 5녀 경순옹주와 혼인하였다.[2]
중종반정으로 막내딸 폐비 신씨는 폐위되었으며, 아들인 신수근, 신수겸, 신수영은 모두 살해되었다.[1] 박원종 등은 중종을 핍박하여 신수근의 딸(중모현주의 손녀)을 내쫓을 것을 청하였고, 중종은 이를 거절했으나 반정 공신들의 압력에 못이겨 단경왕후를 내쫓았다.[2] 단경왕후는 폐위된 지 230여 년 후인 1739년(영조 15년), 영조에 의해 추증되었다.[3]
| 구분 | 이름 | 비고 |
|---|---|---|
| 배우자 | 신승선 | 1436~1502 |
| 장남 | 신수근 | 1450~1506 |
| 며느리 | 한은광 | 1447~?, 한충인의 딸[4] |
| 차남 | 신수겸 | 1453~1506 |
| 며느리 | 진주 강씨 | 1452~?, 강자평의 딸 |
| 삼남 | 신수영 | 1461~1506 |
| 며느리 | 청주 한씨 | 1459~?, 한백륜의 딸, 안순왕후의 여동생 |
| 장녀 | 신씨 | 1466~, 승평부정 이형[5]의 처 |
| 차녀 | 신씨 | 1467~, 남경의 처 |
| 외손자 | 남치원 | 1482~, 성종의 5녀 경순옹주와 혼인 |
| 삼녀 | 신씨 | 1469~, 안환[6]의 처 |
| 사녀 | 폐비 신씨 | 1476~1537, 연산군의 왕비 |
| 외손녀 | 휘신공주 | 1491~?, 길안현주의 아들 구문경과 혼인 |
| 외손자 | 폐세자 황 | 1497~1506 |
| 외손자 | 창녕대군 | 1500~1506 |
2. 1. 출생과 가계
1435년(세종 17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 이구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최승녕의 딸인 제안부부인 전주 최씨이다. 외조부인 최승녕의 누이들은 각각 태종의 서자인 함녕군과,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중모현주에게는 숙부가 되는 금성대군과 혼인하였다. 외숙부인 최도일의 딸 최씨는 예종의 후궁인 공빈 최씨이다.대군(大君)의 딸에게 주어지는 '현주(縣主)'의 작호를 받아 '''중모현주'''(中牟縣主)에 봉해졌다. 조선 초기에는 대군의 적녀에게도 현주의 작호를 주었으나, 《경국대전》 반포 이후 왕세자의 서녀에게만 부여하였다.
2. 2. 혼인과 자녀
신승선과 혼인하여 3남 4녀를 낳았다. 이 중 막내딸이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이다.[1] 왕비의 어머니이므로 부부인에 봉작되었을 것이나 이와 관련한 기록은 없고, 일부에서는 흥안부부인(興安府夫人)에 봉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자녀들은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다. 장남 신수근의 딸은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가 되었고, 차녀의 외손자는 성종의 5녀 경순옹주와 혼인하였다.[2] 사녀는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이다.[1]
중종반정으로 막내딸 신씨는 폐위되었으며, 아들인 신수근, 신수겸, 신수영은 모두 살해되었다.[1] 박원종 등은 중종을 핍박하여 신수근의 딸(중모현주의 손녀)을 내쫓을 것을 청하였고, 중종은 이를 거절했으나 반정 공신들의 압력에 못이겨 신씨를 내쫓았다.[2] 신씨는 폐위된 지 230여 년 후인 1739년(영조 15년), 영조에 의해 단경왕후로 추증되었다.[3]
| 구분 | 이름 | 비고 |
|---|---|---|
| 배우자 | 신승선 | 1436~1502 |
| 장남 | 신수근 | 1450~1506 |
| 며느리 | 한은광 | 1447~?, 한충인의 딸[4] |
| 차남 | 신수겸 | 1453~1506 |
| 며느리 | 진주 강씨 | 1452~?, 강자평의 딸 |
| 삼남 | 신수영 | 1461~1506 |
| 며느리 | 청주 한씨 | 1459~?, 한백륜의 딸, 안순왕후의 여동생 |
| 장녀 | 신씨 | 1466~, 승평부정 이형[5]의 처 |
| 차녀 | 신씨 | 1467~, 남경의 처 |
| 외손자 | 남치원 | 1482~, 성종의 5녀 경순옹주와 혼인 |
| 삼녀 | 신씨 | 1469~, 안환[6]의 처 |
| 사녀 | 폐비 신씨 | 1476~1537, 연산군의 왕비 |
| 외손녀 | 휘신공주 | 1491~?, 길안현주의 아들 구문경과 혼인 |
| 외손자 | 폐세자 황 | 1497~1506 |
| 외손자 | 창녕대군 | 1500~1506 |
2. 3. 몰락과 죽음
신승선과 혼인하여 3남 4녀를 낳았으며, 이 중 막내딸이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이다. 왕비의 어머니이므로 부부인에 봉작되었을 것이나 이와 관련한 기록은 없고, 일부에서는 흥안부부인(興安府夫人)에 봉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왕족으로 태어나 그 자녀들 또한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다.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막내딸 신씨는 폐위되었으며, 아들인 신수근, 신수겸, 신수영은 모두 살해되었다.[1] 신수근의 둘째 딸이자 중모현주의 손녀가 되는 신씨는 성종의 아들 진성대군(중종)과 혼인하였는데,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 등이 중종을 핍박하여 내쫓을 것을 청하였다. 중종은 이를 거절했으나 반정 공신들의 압력에 못이겨 신씨를 내쫓았다.[2] 신씨는 폐위된지 230여 년 후인 1739년(영조 15년), 영조에 의해 단경왕후(端敬王后)로 추증되었다.[3]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사망 | 비고 |
|---|---|---|---|
| 조부 | 세종 | 1397년~1450년 | 조선의 제4대 왕 |
| 조모 | 소헌왕후 | 1395년~1446년 | |
| 아버지 | 임영대군 | 1420년~1469년 | |
| 외조부 | 최승녕(崔承寧) | ? ~ ? | 예종의 후궁 공빈 최씨의 조부 |
| 외조모 | 평산 신씨 | ? ~ ? | |
| 어머니 | 제안부부인 전주 최씨 | ? ~ ? | |
| 남동생 | 오산군 주(烏山君 澍) | 1437년~1490년 | |
| 남동생 | 귀성군 준(龜城君 浚) | 1441년~1479년 | |
| 남동생 | 정양군 순 | 1442년~1492년 | |
| 남동생 | 팔계군 정(八溪君 淨) | 1445년 ~1521년 | |
| 여동생 | 청하현주 | 1447년 ~ ? | |
| 남동생 | 환성군 징(懽城君 澄) | 1450년 ~ ? |
4. 평가
중모현주는 조선 초기 왕실 여성으로서,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가문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신승선과 혼인하여 3남 4녀를 낳았으며, 이 중 막내딸이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이다.[1] 중모현주의 자녀들 또한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막내딸 신씨는 폐위되었고, 아들 신수근, 신수겸, 신수영은 모두 살해되었다.[1] 중모현주의 손녀이자 신수근의 둘째 딸은 중종과 혼인하였으나, 박원종 등 반정 공신들의 압력으로 쫓겨났다.[2] 쫓겨난 신씨는 230여 년 후인 1739년(영조 15년)에 단경왕후로 추증되었다.[3]
이처럼 중모현주는 왕실 가족이었지만, 중종반정을 주도한 진보 정치 세력의 몰락과 함께 가계의 몰락을 피할 수 없었다. 중모현주의 생애는 조선 시대, 특히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왕실 여성의 삶과 가문이 어떻게 몰락해 갔는지를 보여준다.
참조
[1]
서적
연산군일기
1506-09-02
[2]
서적
중종실록
1506-09-09
[3]
서적
영조실록
1739-03-28
[4]
문서
인수대비의 사촌 오빠
[5]
문서
광평대군의 증손자이며 회원군 (1464년)의 아들
[6]
문서
중모현주의 여동생인 청하현주와 안우건 부부의 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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