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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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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법은 전투에서 부대의 전개와 관련된 전술적 문제로, 부대의 기강 유지, 지휘 통제, 전투력 집중을 위해 중요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육해공군에서 다양한 진형이 사용되었으며, 시대와 무기의 발전에 따라 진형의 형태와 운용 방식이 변화해 왔다. 고대에는 밀집 대형이, 근대에는 산병 대형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해군과 공군에서는 함대 및 항공기의 효율적 배치를 위해 진형이 활용된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다양한 진형이 개발되어 사용되었으며, 서양에서는 팔랑크스, 레기온, 테르시오, 방진 등이 주요 진형으로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미사일, 항공기 등의 발달로 인해 해군과 공군의 진형 운용 방식이 변화하였다.

2. 역사

진법은 전투에서 부대의 전개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술적 문제였다. 부대의 기강을 높이고 인원의 고립과 부대의 혼란을 피하며 부대에 대한 통신과 지휘통제를 확실히 하며, 부대의 전투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진법의 기본적 형태로써 부대 단위의 종대, 횡대라는 교련 진법(drill formation)이 있고, 이들은 행군이나 식전행사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진형(陣形) 전환이 쉬울 뿐 아니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부대를 전진시킬 수 있다. 후에 교련대형의 훈련을 통해 부대 규율을 강화하고 나아가 복잡한 진형 전환의 기초가 된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육군은 창이나 방패를 갖춘 보병부대나 기병부대, 활과 화살을 장비한 부대를 밀집시킨 대형을 운용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화약 무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된 것과 함께 밀집대형 대신 산병(散兵) 전투대형이 주류가 되었다. 해군(海軍)이나 공군(空軍)에서는 현대에도 진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함대나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하기 위한 전투용 배치법이 채용되고 있다.

한편 서양에서의 진법 운용은 확실하게 규명된 것이 없지만 고대의 문헌을 토대로 발굴 유물이나 벽화, 무기나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등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는 당초 기병이 탁월한 군사력으로 꼽히며 국가체제도 귀족제였지만 그 뒤 중장보병(重装歩兵)이 국가의 전투력의 중심이 되는 민주정으로 바뀌었다. 고고학의 관점에서 그 이전의 히타이트이집트에서는 전차라는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가 사용되었음이 알려져 있다. 전차는 기병 전력으로 대체되거나 기병에 밀리고 나아가 기병이 중장보병에게 구축되는 등의 과정 속에서 고대 민주정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고대 전투 형태는 불명확한 점이 많아,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발굴된 유물, 벽화, 무기, 항아리 그림 등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는, 처음에는 기병이 군사력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국체는 귀족제였지만, 이후 중장 보병이 국가의 전력 중심이 되면서 민주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적 관점에서는 그 이전에 히타이트나 이집트에서 전차가 사용되었던 것이 알려져 있으며, 전차는 기병 전력에 의해 구축되고, 이윽고 기병이 중장 보병에 의해 구축되어 고대 민주정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여겨진다.

2. 1. 고대 ~ 중세

진법은 전투에서 부대의 전개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술적 문제였다. 부대의 기강을 높이고 인원의 고립과 부대의 혼란을 피하며 부대에 대한 통신과 지휘통제를 확실히 하며, 부대의 전투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진법의 기본적 형태로써 부대 단위의 종대, 횡대라는 교련 진법(drill formation)이 있고, 이들은 행군이나 식전행사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진형(陣形) 전환이 쉬울 뿐 아니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부대를 전진시킬 수 있다. 후에 교련대형의 훈련을 통해 부대 규율을 강화하고 나아가 복잡한 진형 전환의 기초가 된다.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육군은 창이나 방패를 갖춘 보병부대나 기병부대, 활과 화살을 장비한 부대를 밀집시킨 대형을 운용하였다. 고대 전투 형태는 불명확한 점이 많아,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발굴된 유물, 벽화, 무기, 항아리 그림 등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서양에서의 진법 운용은 확실하게 규명된 것이 없지만 고대의 문헌을 토대로 발굴 유물이나 벽화, 무기나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등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는 당초 기병이 탁월한 군사력으로 꼽히며 국가체제도 귀족제였지만 그 뒤 중장보병(重装歩兵)이 국가의 전투력의 중심이 되는 민주정으로 바뀌었다. 고고학의 관점에서 그 이전의 히타이트이집트에서는 전차라는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가 사용되었음이 알려져 있다. 전차는 기병 전력으로 대체되거나 기병에 밀리고 나아가 기병이 중장보병에게 구축되는 등의 과정 속에서 고대 민주정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2. 2. 근대

진법은 전투에서 부대의 전개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술적 문제였다. 부대의 기강을 높이고 인원의 고립과 부대의 혼란을 피하며 부대에 대한 통신과 지휘통제를 확실히 하며, 부대의 전투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진법의 기본적 형태로써 부대 단위의 종대, 횡대라는 교련 진법(drill formation)이 있고, 이들은 행군이나 식전행사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진형(陣形) 전환이 쉬울 뿐 아니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부대를 전진시킬 수 있다. 후에 교련대형의 훈련을 통해 부대 규율을 강화하고 나아가 복잡한 진형 전환의 기초가 된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육군은 창이나 방패를 갖춘 보병부대나 기병부대, 활과 화살을 장비한 부대를 밀집시킨 대형을 운용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화약 무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된 것과 함께 밀집대형 대신 산병(散兵) 전투대형이 주류가 되었다. 해군(海軍)이나 공군(空軍)에서는 현대에도 진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함대나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하기 위한 전투용 배치법이 채용되고 있다.

한편 서양에서의 진법 운용은 확실하게 규명된 것이 없지만 고대의 문헌을 토대로 발굴 유물이나 벽화, 무기나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등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는 당초 기병이 탁월한 군사력으로 꼽히며 국가체제도 귀족제였지만 그 뒤 중장보병(重装歩兵)이 국가의 전투력의 중심이 되는 민주정으로 바뀌었다. 고고학의 관점에서 그 이전의 히타이트이집트에서는 전차라는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가 사용되었음이 알려져 있다. 전차는 기병 전력으로 대체되거나 기병에 밀리고 나아가 기병이 중장보병에게 구축되는 등의 과정 속에서 고대 민주정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고대 전투 형태는 불명확한 점이 많아,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발굴된 유물, 벽화, 무기, 항아리 그림 등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는, 처음에는 기병이 군사력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국체는 귀족제였지만, 이후 중장 보병이 국가의 전력 중심이 되면서 민주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3. 현대

진법은 전투에서 부대의 전개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술적 문제였다. 부대의 기강을 높이고 인원의 고립과 부대의 혼란을 피하며, 부대에 대한 통신과 지휘 통제를 확실히 하고 부대의 전투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진법의 기본적 형태로써 부대 단위의 종대, 횡대라는 교련 진법(drill formation)이 있고, 이들은 행군이나 식전 행사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진형(陣形) 전환이 쉬울 뿐 아니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부대를 전진시킬 수 있다. 후에 교련 대형의 훈련을 통해 부대 규율을 강화하고 나아가 복잡한 진형 전환의 기초가 된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육군은 창이나 방패를 갖춘 보병 부대나 기병 부대, 활과 화살을 장비한 부대를 밀집시킨 대형을 운용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화약 무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되면서 밀집 대형 대신 산병(散兵) 전투 대형이 주류가 되었다. 해군(海軍)이나 공군(空軍)에서는 현대에도 진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함대나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하기 위한 전투용 배치법이 채용되고 있다.

한편 서양에서의 진법 운용은 확실하게 규명된 것이 없지만, 고대의 문헌을 토대로 발굴 유물이나 벽화, 무기나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등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는 당초 기병이 탁월한 군사력으로 꼽히며 국가 체제도 귀족제였지만, 그 뒤 중장보병(重装歩兵)이 국가의 전투력의 중심이 되는 민주정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그 이전의 히타이트이집트에서는 전차(戰車)라는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가 사용되었음이 알려져 있다. 전차는 기병 전력으로 대체되거나 기병에 밀리고 나아가 기병이 중장보병에게 구축되는 등의 과정 속에서 고대 민주정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3. 한국의 진법

4. 일본의 대표적 진형

무타케 팔진형


일본에서는 중국의 팔진도가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헤이안 시대에 오에노 고레토키에 의해 어린, 학익, 안행, 완월(언월), 봉시, 형액, 장사, 방원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만들어졌다.[4] 고대 중국의 팔진에 대해서는 풍후에 의해 만들어져 손자나 오기, 제갈공명 등에 이용되었다는 많은 사료가 전해지고 있지만[5],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으며, 후세의 사가나 병가, 호사가들이 상상하고 추측한 것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6]

;횡진(오진)

: 부대를 가로로 한 줄로 늘어놓는 형태. 가장 기본적인 진형이다. 대륙 평야에서의 횡진끼리의 회전은 (서로) 유격대가 가장 적지만, 종대 등으로 전선을 돌파당하면 좌우의 전령이 분단되어 각개 격파당하기 쉽다. 또한 국소에 공격이 집중되면 다른 전열 전부가 유격대가 된다. 일반적으로는 말 방책이나 참호, 방루와 같은 지형이나 야전 축성을 이용한다.

;어린(魚鱗)

: 중심이 전방으로 돌출되고 양익이 후퇴한 진형으로, 「△」의 형태로 병사를 배치한다. 밑변의 중심에 대장을 배치하고, 그쪽을 뒤쪽으로 하여 적을 상대한다.[4] 전투의 시작이 좁고 유격대가 많아지며,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을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동성이 많은 대륙 평야의 대회전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산악이나 삼림, 하천 등의 지형 요소가 많은 일본에서는 전국 시대에 자주 사용되었다.[4] 그 경우에도, 전 병력을 완전히 하나의 밀집 진형으로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명 단위의 횡대(밀집 진형)를 단위로 편집함으로써, 개별적인 기동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견고성을 확보한다. 따라서, 전역 전체에서는 다수의 「△」형 소진형이 배치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어린(비늘)이라고 불린다.[4]

: 많은 병사가 흩어지지 않고 국부의 전투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가 무너지기 어렵고, 또한 한 진형이 괴멸해도 다음 진형이 바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소모전에 강하다. 한편 횡대를 요소로 한 집합이기 때문에, 양 측면이나 후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혼란이 발생하기 쉽고 약한 면도 있다. 또한 단일 진형당 병력이 작기 때문에 포위되기 쉽고,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일 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적보다 소수 병력의 경우 정면 돌파에 유효하다. 대진 시에는 전방으로부터의 방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부대 내·부대 간의 정보 전달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기동에도 적합하다.[4]

: 실전에서는, 다케다 신겐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 진형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전투하여, 이를 격파했다. 이에야스는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학익에 어린으로 대치했다.[4]

;학익(鶴翼)

: 양 날개를 전방으로 펼쳐 「V」자 형태를 취하는 진형이다. 어린과 함께 매우 자주 사용된 진형으로, 중심에 대장을 배치하고, 적이 양익 사이로 들어오면 동시에 그것을 닫음으로써 포위·섬멸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적에게 있어서는 중심에 수비가 적고 대장을 공격하기 쉬우므로, 양익의 부대가 포위할 때까지 중군이 버텨야 한다는 위험 부담도 안고 있다. 그래서 중앙부 본진을 두껍게 하고, 초승달형 또는 Y자형으로 편성하는 형이 있다.[4] 완승하거나 완패하거나 하는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기 쉽기 때문에, 상대보다 병력 수가 열세일 때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좌우 양익 등 지휘관이나 타 부대로부터 거리가 먼 위치에서는 부대 간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어려우므로 예정 외의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에는 적합하지 않다.[4]

: 실전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 진형으로 다케다 신겐과 전투하여 참패했다.[4]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는, 차괘의 진형으로 덤벼드는 우에스기 겐신의 군세를, 다케다 신겐의 본대는 학익의 진형으로, 별동대가 돌아올 때까지 버텼다.[4]

;언월(偃月)

: 학익과는 반대로 중군이 앞으로 나와 양익을 내린 「Λ」자 형태로 배치한다. 대장이 선두가 되어 적에게 돌입하기 때문에 사기도 높고, 마와리의 정예도 개막부터 최전선에서 싸우므로 공격력도 높다. 그러나 그만큼 대장이나 상급 장병이 조기에 전사상할 위험도 올라간다. 또한 대장의 부근이 항상 전투 중이 되기 때문에, 지휘관을 포함한 본진이 양익에 지시를 내릴 여유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적의 횡대를 정예로 돌파하여 전열을 분단하는 등 피아의 진형 기동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사령부가 임기응변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비교적 소규모의 부대나 숙련도가 낮은 부대를 직접 지휘할 때 사용된다.[4]

;봉시(鋒矢)

: 「↑」의 형태로 병사를 배치한다. 화살표의 후부에 대장을 배치하고, 그쪽을 뒤쪽으로 하여 적을 상대한다.[4] 장점과 단점, 둘 다 어린을 더욱 특화한 것이다. 강력한 돌파력을 가지는 반면, 한 번 측면으로 돌려 포위되면 매우 취약하다. 종횡 모든 각도에서 정찰되어도 병력을 많이 보여줄 수 있고, 적진의 상처를 넓히는 형태가 되므로, 과병이라도 정면 돌파에 유효하다. 진형 전체가 전방으로 돌출하고, 주전장이 본진(사령부)보다 항상 앞을 달려가기 때문에, 전선과 후방 부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기대할 수 없고 유연한 기동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4] 또한, 진의 전방이 중후한 적 부대 진형에 의해 저지되면 후방의 부대는 유병이 되어, 전방 부대의 괴멸에 의한 병사의 사기 저하가 도주나 아군끼리의 싸움 등의 혼란을 가져올 위험도 있다. 따라서 선두는 매우 위험하며, 용맹하고 냉정한 부대장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진다.[4]

: 실전에서는 시마즈 가문의 군대(대장 복수)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퇴각 시 이 진형으로 이이 나오마사, 혼다 타다카쓰, 마쓰다이라 다다요시와 전투하여, 전군인 시마즈 도요히사를 잃으면서도 타다카쓰를 낙마시키고 나오마사와 다다요시를 부상시키고, 퇴각에 성공했다.[4]

;방원(方円)

: 대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병사로 둘러싸는 진형. 전방위로부터의 적의 기습에 대처할 수 있는 방어적인 진형.[6] 정면 부근을 제외하고 각 부대의 진격 방향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이동에는 적합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적군을 맞이하는 형태가 된다. 인원이 분산되기 때문에, 국소적인 공격에 장시간 대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어떤 한 방향으로부터 강력한 타격을 받은 경우에는 곧바로 다른 진형으로 옮겨 전투할 필요가 있다.[6] 기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공격할 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장사(長蛇)

: 병사를 대별로 거의 한 줄로 늘어놓는 진형. 종 방향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경우에는, 매우 유력한 진형이다. 다만 횡 방향으로부터의 공격에 전혀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계곡 등의 특수한 지형에서만 사용한다. 또한, 적이 정면 이외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공격을 용이하게 피할 수 있으므로, 시야가 좋고 돌아다니기 쉬운 대평원에서 야전에서는 불리하다. 의도적으로 이 진형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형적인 이유 등으로 부득이하게 이 형태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형액(衡軛)

: 단차를 둔 두 열 종대. 적의 움직임을 구속하고, 포위 섬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산악전 등에서 사용되었다.

;안행(雁行)

: 장사의 경우보다 폭을 넓게 한 열로 하고, 조금씩 부대를 비스듬하게 한 형태로 구성한 진형. 열의 한가운데에 대장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적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이 경우에는 종 방향으로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돌격하는 것은 없고, 아군의 후위가 있을 때에만 선봉 부대가 사용한다. 후위가 휴식하고 있을 때, 즉전력으로서 적과 대치하는 역할도 한다. 완전한 직렬 종대에 비하면 전후 방향의 두께가 얇아지기 때문에 소모전에는 비교적 약하고, 장시간의 전투에서는 불리하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증원 부대의 도착을 전제로 한 자세이다.

;차괘(車懸)

: 먼저 출격한 부대가 후퇴하고, 대신 새로운 부대가 출격하는, 잇따라 부대별로 공격하고 물러나는 전법 내지 진형. 에치고에서 자주 채용된 진형으로, 추운 겨울철에서의 합전 시, 이동을 계속함으로써 병사의 몸을 따뜻하게 할 필요성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대장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각 부대가 원진을 짜고, 바퀴가 회전하듯이 서로 번갈아 각 부대가 공격하고 물러나는 일격 이탈 전법, 이라는 것이 유력한 설. 다만 에도 시대의 창작이라고도 한다.

4. 1. 어린(魚鱗)

중심이 전방으로 돌출되고 양익이 후퇴한 진형으로, 「△」의 형태로 병사를 배치한다. 밑변의 중심에 대장을 배치하고, 그쪽을 뒤쪽으로 하여 적을 상대한다.[4] 전투의 시작이 좁고 유격대가 많아지며,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을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동성이 많은 대륙 평야의 대회전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산악이나 삼림, 하천 등의 지형 요소가 많은 일본에서는 전국 시대에 자주 사용되었다.[4] 그 경우에도, 전 병력을 완전히 하나의 밀집 진형으로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명 단위의 횡대(밀집 진형)를 단위로 편집함으로써, 개별적인 기동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견고성을 확보한다. 따라서, 전역 전체에서는 다수의 「△」형 소진형이 배치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어린(비늘)이라고 불린다.[4]

많은 병사가 흩어지지 않고 국부의 전투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가 무너지기 어렵고, 또한 한 진형이 괴멸해도 다음 진형이 바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소모전에 강하다. 한편 횡대를 요소로 한 집합이기 때문에, 양 측면이나 후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혼란이 발생하기 쉽고 약한 면도 있다. 또한 단일 진형당 병력이 작기 때문에 포위되기 쉽고,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일 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적보다 소수 병력의 경우 정면 돌파에 유효하다. 대진 시에는 전방으로부터의 방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부대 내·부대 간의 정보 전달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기동에도 적합하다.[4]

실전에서는, 다케다 신겐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 진형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전투하여, 이를 격파했다. 이에야스는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학익에 어린으로 대치했다.[4]

4. 2. 학익(鶴翼)



일본에서는 중국의 팔진도가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헤이안 시대에 오에노 고레토키에 의해 어린, 학익, 안행, 완월(언월), 봉시, 형액, 장사, 방원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만들어졌다.[4] 고대 중국의 팔진에 대해서는 풍후에 의해 만들어져 손자나 오기, 제갈공명 등에 이용되었다는 많은 사료가 전해지고 있지만[5],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으며, 후세의 사가나 병가, 호사가들이 상상하고 추측한 것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6]

학익(鶴翼, 鶴翼일본어)은 양 날개를 전방으로 펼쳐 「V」자 형태를 취하는 진형이다. 어린과 함께 매우 자주 사용된 진형으로, 중심에 대장을 배치하고, 적이 양익 사이로 들어오면 동시에 그것을 닫음으로써 포위·섬멸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적에게 있어서는 중심에 수비가 적고 대장을 공격하기 쉬우므로, 양익의 부대가 포위할 때까지 중군이 버텨야 한다는 위험 부담도 안고 있다. 그래서 중앙부 본진을 두껍게 하고, 초승달형 또는 Y자형으로 편성하는 형이 있다.[4] 완승하거나 완패하거나 하는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기 쉽기 때문에, 상대보다 병력 수가 열세일 때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좌우 양익 등 지휘관이나 타 부대로부터 거리가 먼 위치에서는 부대 간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어려우므로 예정 외의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에는 적합하지 않다.[4]

실전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 진형으로 다케다 신겐과 전투하여 참패했다.[4]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는, 차괘의 진형으로 덤벼드는 우에스기 겐신의 군세를, 다케다 신겐의 본대는 학익의 진형으로, 별동대가 돌아올 때까지 버텼다.[4]

4. 3. 언월(偃月)

언월(偃月)은 학익진과 반대로 중군이 앞으로 나오고 양익을 뒤로 내린 「Λ」자 형태의 진형이다.[4] 대장이 선두에서 적에게 돌입하기 때문에 아군의 사기가 높아지고, 정예병들이 최전선에서 싸우므로 공격력도 높다.[4] 그러나 대장과 상급 장병이 조기에 전사할 위험이 높고, 본진에서 양익에 지시를 내릴 여유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4] 적의 횡대를 정예병으로 돌파하여 전열을 분단하는 등, 아군과 적군의 진형 기동을 전제로 하며, 사령부가 임기응변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비교적 소규모 부대나 숙련도가 낮은 부대를 직접 지휘할 때 사용된다.[4]

4. 4. 봉시(鋒矢)

「↑」의 형태로 병사를 배치한다. 화살표의 후부에 대장을 배치하고, 그쪽을 뒤쪽으로 하여 적을 상대한다.[4] 장점과 단점, 둘 다 어린의 진을 더욱 특화한 것이다. 강력한 돌파력을 가지는 반면, 한 번 측면으로 돌려 포위되면 매우 취약하다. 종횡 모든 각도에서 정찰되어도 병력을 많이 보여줄 수 있고, 적진의 상처를 넓히는 형태가 되므로, 과병이라도 정면 돌파에 유효하다. 진형 전체가 전방으로 돌출하고, 주전장이 본진(사령부)보다 항상 앞을 달려가기 때문에, 전선과 후방 부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기대할 수 없고 유연한 기동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4] 또한, 진의 전방이 중후한 적 부대 진형에 의해 저지되면 후방의 부대는 유병이 되어, 전방 부대의 괴멸에 의한 병사의 사기 저하가 도주나 아군끼리의 싸움 등의 혼란을 가져올 위험도 있다. 따라서 선두는 매우 위험하며, 용맹하고 냉정한 부대장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진다.[4]

실전에서는 시마즈 가문의 군대(대장 복수)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퇴각 시 이 진형으로 이이 나오마사, 혼다 타다카쓰, 마쓰다이라 다다요시와 전투하여, 전군인 시마즈 도요히사를 잃으면서도 타다카쓰를 낙마시키고 나오마사와 다다요시를 부상시키고, 퇴각에 성공했다.[4]

4. 5. 방원(方円)

일본에서는 중국의 팔진도가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헤이안 시대에 오에노 고레토키에 의해 어린, 학익, 안행, 완월(언월), 봉시, 형액, 장사, 방원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만들어졌다.[4] 방원(方円)은 대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병사로 둘러싸는 진형이다. 전방위로부터의 적의 기습에 대처할 수 있는 방어적인 진형이다.[6] 정면 부근을 제외하고 각 부대의 진격 방향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이동에는 적합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적군을 맞이하는 형태가 된다. 인원이 분산되기 때문에, 국소적인 공격에 장시간 대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어떤 한 방향으로부터 강력한 타격을 받은 경우에는 곧바로 다른 진형으로 옮겨 전투할 필요가 있다.[6] 기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공격할 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4. 6. 장사(長蛇)



일본에서는 중국의 팔진도가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헤이안 시대에 오에노 고레토키에 의해 어린, 학익, 안행, 완월(언월), 봉시, 형액, 장사, 방원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만들어졌다.[4] 장사(長蛇)는 병사를 대별로 거의 한 줄로 늘어놓는 진형이다. 종 방향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경우에는 매우 유력한 진형이다. 다만 횡 방향으로부터의 공격에 전혀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계곡 등의 특수한 지형에서만 사용한다. 또한, 적이 정면 이외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공격을 용이하게 피할 수 있으므로, 시야가 좋고 돌아다니기 쉬운 대평원에서 야전에서는 불리하다. 의도적으로 이 진형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형적인 이유 등으로 부득이하게 이 형태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4. 7. 형액(衡軛)

일본에서는 중국의 팔진도가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헤이안 시대에 오에노 고레토키에 의해 어린, 학익, 안행, 완월(언월), 봉시, 형액, 장사, 방원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만들어졌다.[4] 고대 중국의 팔진에 대해서는 풍후에 의해 만들어져 손자나 오기, 제갈공명 등에 이용되었다는 많은 사료가 전해지고 있지만[5],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으며, 후세의 사가나 병가, 호사가들이 상상하고 추측한 것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6]

형액(衡軛)은 단차를 둔 두 열 종대로, 적의 움직임을 구속하고 포위 섬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주로 산악전 등에서 사용되었다.

4. 8. 안행(雁行)

안행(雁行)은 장사진보다 폭을 넓게 한 열로, 부대를 조금씩 비스듬하게 배치한 진형이다.[4] 열의 중앙에 대장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적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이 경우, 종 방향으로 돌격하기보다는 아군의 후위가 있을 때 선봉 부대가 사용한다.[4] 후위가 휴식할 때 즉시 전력으로서 적과 대치하는 역할도 한다. 완전한 직렬 종대에 비해 전후 방향의 두께가 얇아 소모전에 약하고, 장시간 전투에는 불리하여 증원 부대 도착을 전제로 한다.[4]

4. 9. 차괘(車懸)

차괘(車懸)는 먼저 출격한 부대가 후퇴하고, 대신 새로운 부대가 출격하는, 잇따라 부대별로 공격하고 물러나는 전법 내지 진형이다.[4] 에치고에서 자주 채용된 진형으로, 추운 겨울철에서의 합전 시, 이동을 계속함으로써 병사의 몸을 따뜻하게 할 필요성에서 생겨났다고 한다.[4] 대장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각 부대가 원진을 짜고, 바퀴가 회전하듯이 서로 번갈아 각 부대가 공격하고 물러나는 일격 이탈 전법이라는 것이 유력한 설이나, 에도 시대의 창작이라고도 한다.[4]

5. 서양의 진법

고대 전투 형태는 불명확한 점이 많아,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발굴된 유물, 벽화, 무기, 항아리 그림 등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는, 처음에는 기병이 군사력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국체는 귀족제였지만, 이후 중장 보병이 국가의 전력 중심이 되면서 민주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적 관점에서는 그 이전에 히타이트이집트에서 전차가 사용되었던 것이 알려져 있으며, 전차는 기병 전력에 의해 구축되고, 이윽고 기병이 중장 보병에 의해 구축되어 고대 민주정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여겨진다.

육군에서는 다양한 진형이 역사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스 제국에서 널리 사용된 팔랑크스는 16명을 16열로 배치한 방진을 기본 단위로, 큰 방패와 창을 이용해 압도적인 돌격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비정규전과 측면 공격에 취약했다. 테베의 장군 에파미논다스는 팔랑크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선진을 개발했다.

레기온은 로마 군단의 중대 보병 진형으로, 3열로 구성되어 유연성과 지구력이 뛰어났다. 투창, 궁병, 투석기 등으로 돌격력 부족을 보완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이 시대 군병 운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테스투도는 고대 유럽의 진형으로, 큰 방패를 든 보병이 밀집 대형을 이루어 투척물에 대한 방어력을 높였다. 그러나 기동력이 낮고 백병전에 취약했다.

화기가 보급되면서 등장한 테르시오는 장창병과 총병을 결합한 스페인의 방진이다. 공방 밸런스가 좋았지만, 백병전에서 장창의 활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총검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근대 초 보병의 대표적 진형인 방진은 2열 또는 3열의 정방형으로, 높은 방어력을 발휘했다.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의 흉갑 기병이 영국의 방진에 돌격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카라콜은 용기병에 의한 일격 이탈 전법이었으나, 실제로는 효과가 적었다.

소총, 기관포, 대포의 등장 이후에는 화선을 구축하기 위한 부대 배치로서의 진형법이 연구되었다.

전통적으로 해군해전에서 단횡진과 단종진으로 전개하여 전투를 수행했다. 이는 일렬로 정렬함으로써 함대의 지휘 통제를 간략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각 함정의 화력 사용을 상호 방해하지 않기 위한 진형이었다. 정면의 적에 대해 공격을 가하는 경우, 단횡진으로 전진한 후 90도 회두하여 단종진이 됨으로써 모든 함정의 화포를 목표에 지향시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는 T자 반전이라고 불리는 진형 전환이며, 실천된 사례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의 리사 해전, 러일 전쟁에서의 동해 해전, 태평양 전쟁에서의 술라웨시 해협 해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미사일에 의한 해상 전투에서는 이러한 포격을 상정한 함대 운동을 수행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부터는 항공모함이나 전투 지휘함을 호위하기 위해 함정이 윤형진을 형성하여, 항공기에 의한 공격을 효율적으로 배제하는 데 유효한 대공 포화 진형, 또한 대잠 경계 진형으로 실천되었으며, 이러한 함정의 배치가 현대 해전술의 문제가 되고 있다.

공군의 항공 작전에서는 항공 관제 하에 다수의 항공기를 관리함으로써, 항공 사고의 발생을 방지하고 있다. 동시에 항공기를 진형으로 배치하는 것도 행해지고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미국 육군의 항공대에서 폭격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방진으로 전개했다. 현재에도 항공전에서 몇 가지 진형은 중요한 진형으로 남아 있다. 전투기는 대 항공전에서 상호 지원할 수 있도록 편대 비행을 한다. 이는 복수의 항공기가 일정한 간격과 위치 관계를 유지하는 비행이며, 상황이나 작전에 따라 간격이나 위치를 변화시킴으로써, 색적이나 기동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5. 1. 육군

육군에서는 다양한 진형이 역사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스 제국에서 널리 사용된 팔랑크스는 16명을 16열로 배치한 방진을 기본 단위로, 큰 방패와 창을 이용해 압도적인 돌격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비정규전과 측면 공격에 취약했다. 테베의 장군 에파미논다스는 팔랑크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선진을 개발했다.

레기온은 로마 군단의 중대 보병 진형으로, 3열로 구성되어 유연성과 지구력이 뛰어났다. 투창, 궁병, 투석기 등으로 돌격력 부족을 보완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이 시대 군병 운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테스투도는 고대 유럽의 진형으로, 큰 방패를 든 보병이 밀집 대형을 이루어 투척물에 대한 방어력을 높였다. 그러나 기동력이 낮고 백병전에 취약했다.

화기가 보급되면서 등장한 테르시오는 장창병과 총병을 결합한 스페인의 방진이다. 공방 밸런스가 좋았지만, 백병전에서 장창의 활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총검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근대 초 보병의 대표적 진형인 방진은 2열 또는 3열의 정방형으로, 높은 방어력을 발휘했다.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의 흉갑 기병이 영국의 방진에 돌격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카라콜은 용기병에 의한 일격 이탈 전법이었으나, 실제로는 효과가 적었다.

소총, 기관포, 대포의 등장 이후에는 화선을 구축하기 위한 부대 배치로서의 진형법이 연구되었다.

5. 2. 해군/공군

전통적으로 해군해전에서 단횡진과 단종진으로 전개하여 전투를 수행했다. 이는 일렬로 정렬함으로써 함대의 지휘 통제를 간략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각 함정의 화력 사용을 상호 방해하지 않기 위한 진형이었다. 정면의 적에 대해 공격을 가하는 경우, 단횡진으로 전진한 후 90도 회두하여 단종진이 됨으로써 모든 함정의 화포를 목표에 지향시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는 T자 반전이라고 불리는 진형 전환이며, 실천된 사례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의 리사 해전, 러일 전쟁에서의 동해 해전, 태평양 전쟁에서의 술라웨시 해협 해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미사일에 의한 해상 전투에서는 이러한 포격을 상정한 함대 운동을 수행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부터는 항공모함이나 전투 지휘함을 호위하기 위해 함정이 윤형진을 형성하여, 항공기에 의한 공격을 효율적으로 배제하는 데 유효한 대공 포화 진형, 또한 대잠 경계 진형으로 실천되었으며, 이러한 함정의 배치가 현대 해전술의 문제가 되고 있다.

공군의 항공 작전에서는 항공 관제 하에 다수의 항공기를 관리함으로써, 항공 사고의 발생을 방지하고 있다. 동시에 항공기를 진형으로 배치하는 것도 행해지고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미국 육군의 항공대에서 폭격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방진으로 전개했다. 현재에도 항공전에서 몇 가지 진형은 중요한 진형으로 남아 있다. 전투기는 대 항공전에서 상호 지원할 수 있도록 편대 비행을 한다. 이는 복수의 항공기가 일정한 간격과 위치 관계를 유지하는 비행이며, 상황이나 작전에 따라 간격이나 위치를 변화시킴으로써, 색적이나 기동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참조

[1] 간행물 Journal of the Polynesian Society
[2] 웹사이트 Ranger Handbook https://armypubs.arm[...] 2023-03-30
[3] 웹사이트 Military document https://web.archive.[...] 2022-12-08
[4] 백과사전 八陣 小学館・日本大百科全書
[5] 문서 続日本紀 天平宝字4年(760年)11月10日条
[6] 논문 「八陣」と「八陣の庭」 https://hdl.handle.n[...] 明治大学農学部
[7] 서적 保元物語 岩波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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