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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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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마총은 1973년 발굴된 신라 시대의 고분으로, 5~6세기 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무덤으로, 동서로 뻗은 나무 널방을 돌과 흙으로 덮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무덤 내부에서는 금관, 금 허리띠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천마도(天馬圖)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에는 천마 그림이 기린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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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기본 정보
천마도
천마도
다른 이름하늘 말 무덤
위치
상세 정보
종류적석목곽분
축조 연대신라 시대
위치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발견1973년
발굴 조사1973년
특징천마도 발견

2. 역사

이 무덤은 신라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최근 리모델링이 완료되었다.

2. 1. 발굴 과정

1973년 4월 16일에 무덤 발굴이 시작되었으며,[1] 5~6세기경에 축조된 신라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2] 지증왕의 무덤이라는 견해가 있다.[3] 사망자는 키가 약 160cm로 추정된다.[4]

2. 2. 연대 추정

이 무덤은 신라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73년 4월 16일에 발굴이 시작되었다.[1] 무덤의 연대는 5세기 또는 6세기 경으로 추정된다.[2] 이 무덤은 신라의 왕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증왕의 무덤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3] 무덤 주인은 키가 약 160c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4]

2. 3. 보수 및 재개장

천마총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으며, 무덤 내부 구조를 직접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10] 2017년 9월 18일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9] 2018년 7월 27일에 재개장하였다.[11]

3. 구조

무덤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으로, 동서 방향으로 나무로 된 널방을 만들고 돌과 흙으로 덮었다.[5] 이러한 무덤 형태는 스키토-이란 무덤 양식을 따르며, 러시아 파지리크에 있는 무덤과 비슷하다.[6] 무덤 지름은 47m, 둘레는 157m, 높이는 12.7m이다.

3. 1. 고분 형태

무덤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으로, 동서 방향으로 나무로 된 널방을 만들고 돌과 흙으로 덮었다.[5] 이러한 무덤 형태는 스키토-이란 무덤 양식을 따르며, 러시아 파지리크에 있는 무덤과 비슷하다.[6] 무덤 지름은 47m, 둘레는 157m, 높이는 12.7m이다.

3. 2. 규모

무덤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으로, 동서 방향으로 뻗은 나무로 된 널방이며, 돌과 흙으로 덮여 있다.[5]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스키토-이란 무덤의 패턴을 따른 것으로, 러시아 파지리크에 위치한 무덤과 유사하다고 한다.[6] 무덤의 지름은 47m, 둘레는 157m, 높이는 12.7m이다.

3. 3. 내부 구조

무덤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으로, 동서로 뻗은 나무로 된 널방이며, 돌과 흙으로 덮여 있다.[5]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스키토-이란 무덤의 패턴을 따른 것으로, 러시아 파지리크에 위치한 무덤과 유사하다고 한다.[6] 무덤의 지름은 47m, 둘레는 157m, 높이는 12.7m이다.

무덤의 묘실에는 칠기 나무 관이 있었고, 그 주변에 부장품이 놓여 있었다.[2] 무덤에서 총 11,500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무덤의 이름은 자작나무 껍질 안장 덮개, 즉 말 덮개에 묘사된 흰 말 그림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한국어로 "천마" (천마)로 불린다. 이 말은 다리가 여덟 개이고 발에 날개가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신라 회화의 드문 예시이며, 한국의 고구려 왕국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음을 나타낸다.[7] 말 장구류를 묻고 왕과 함께 말을 희생시킨 것은 신라 사회에서 말 문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백성들이 행했던 샤머니즘에서 왕의 중심적인 역할을 나타낸다.[6] 안장 덮개의 다른 면에는 기수와 봉황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무덤에서는 금관과 금 허리띠를 포함한 많은 보물들이 나왔는데, 두 유물 모두 곡옥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왕실의 장식물들은 왕이 무덤에 묻혔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천마총의 허리띠가 금관총에서 발견된 허리띠와 유사하다는 점과,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의 용 문양 사용은 왕이 무덤에 안장되었음을 시사한다.[6] 관과 허리띠 외에도 묘실에는 금 팔찌와 매장된 왕의 모든 손가락에 착용할 수 있는 금 반지가 있었다.[5] 또한 무덤에는 앞서 언급한 칠기 안장 덮개, 쇠 솥, 도자기, 청동 용기, 칠기, 안장, 그리고 길이 98cm의 칼을 포함한 부장품이 가득한 상자가 있었다.[5][7]

4. 출토 유물

1973년 발굴조사 결과 금관을 비롯한 1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천마도)이 그려진 말다래(障泥)가 나와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10]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꾸몄다.[10]

무덤 안에서는 금관, 금 허리띠, 금 팔찌, 금 반지 등 많은 장신구와 칠기 안장 덮개, 쇠 솥, 도자기, 청동 용기, 칠기, 안장, 길이 98cm의 칼 등 다양한 부장품이 발견되었다.[5][7] 금 허리띠는 금관총에서 발견된 허리띠와 유사하며,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 용 문양이 사용되어 왕이 묻혔음을 짐작할 수 있다.[6]

말 장구류를 묻고 왕과 함께 말을 희생시킨 것은 신라 사회에서 말 문화의 중요성과 샤머니즘에서 왕의 역할을 보여준다.[6] 안장 덮개의 다른 면에는 기수와 봉황이 묘사되어 있다.

4. 1. 국보

4. 2. 보물



무덤에서는 총 11,500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2] 그 중 자작나무 껍질 안장 덮개에 묘사된 흰 말 그림은 한국어로 "천마"(천마)로 불리며, 다리가 여덟 개이고 발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신라 회화의 드문 예시이며, 한국 고구려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7]

금관과 금 허리띠를 포함한 많은 보물들이 출토되었는데, 두 유물 모두 곡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러한 왕실 장식물들은 왕이 무덤에 묻혔음을 시사한다. 천마총의 허리띠가 금관총에서 발견된 허리띠와 유사하고,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 용 문양이 사용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6]

천마총 금관은 신라 시대의 가장 가치 있는 금관 중 하나로 여겨진다.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과 2개의 사슴 뿔 모양 장식이 달린 커다란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옥과 영락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관과 모자는 구멍 무늬로 장식된 4개의 금판을 결합하여 제작되었으며,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 위에 얹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T자형, 다이아몬드형, 꼬인 용 문양 등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게 뚫려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4. 3. 기타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5~6세기경에 축조된 어느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1973년 발굴 당시 금관을 비롯한 1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천마도)이 그려진 말다래(障泥)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10]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으며, 무덤의 내부 구조를 직접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10] 2017년 9월 18일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9] 2018년 7월 27일에 재개장하였다.[11]

천마총 출토 유물 중 하나인 천마도는 한국어로 "천마" (천마)로 불리는 흰 말 그림으로, 다리가 여덟 개이고 발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현존하는 신라 회화의 드문 예시이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7] 말 장구류를 묻고 왕과 함께 말을 희생시킨 것은 신라 사회에서 말 문화의 중요성과 샤머니즘에서 왕의 역할을 나타낸다.[6]

천마총에서는 금관과 금 허리띠를 포함한 많은 보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왕이 무덤에 묻혔다는 것을 시사한다. 천마총의 허리띠가 금관총에서 발견된 허리띠와 유사하고,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의 용 문양이 사용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6]

5. 천마도 논란

최근에 이르러 천마총의 천마 그림이 말이 아닌 기린도(麒麟圖)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린은 성인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짐승이다. 몸은 사슴과 같고 꼬리는 소와 같으며,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고 빛깔은 5색이라고 알려져 있다.[12]

천마총에 보이는 천마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머리에 뿔이 표현되어 있고 입에서 신기(神氣)를 내뿜고 있는 것은 기린 그림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며, 뒷다리에서 뻗쳐 나온 갈기의 표현은 기린이나 용 등의 신수(神獸)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볼 때 말보다는 오히려 기린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12]

6. 의의

천마총은 신라 시대의 무덤으로, 역사적, 예술적,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6. 1. 역사적 의의

천마총에서는 천마 그림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신라 회화의 드문 예시로서 고구려의 영향을 보여준다.[7] 말 장구류와 함께 말을 희생시킨 것은 신라 사회에서 말 문화의 중요성과 샤머니즘에서 왕의 역할을 나타낸다.[6]

무덤에서 금관과 금 허리띠 등 많은 보물이 발견된 것은 왕이 묻혔음을 시사한다. 천마총의 허리띠는 금관총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며,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 용 문양이 사용되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6]

6. 2. 예술적 의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 중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안장 덮개에 그려진 흰 말 그림은 신라 회화의 드문 예시이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7] 이 말은 다리가 여덟 개이고 발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한국어로 "천마"(천마)라고 불린다. 이러한 말 그림과 말 장구류의 매장은 신라 사회에서 말 문화의 중요성과 샤머니즘에서 왕의 역할을 보여준다.[6] 안장 덮개의 다른 면에는 기수와 봉황이 묘사되어 있다.

무덤에서는 금관과 금 허리띠 등 많은 보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곡옥으로 장식되어 있어 왕이 무덤에 묻혔음을 나타낸다.[6] 천마총의 허리띠는 금관총에서 발견된 허리띠와 유사하며,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 용 문양을 사용했다는 점도 왕의 매장을 시사한다.[6]

천마총 금관은 신라 시대의 가장 가치 있는 금관 중 하나로 여겨진다.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과 2개의 사슴 뿔 모양 장식이 달린 커다란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옥과 영락으로 가득하다. 이 관과 모자는 구멍 무늬로 장식된 4개의 금판을 결합하여 제작되었으며, T자형 문양, 다이아몬드형 문양, 꼬인 용 문양 등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게 뚫려 있다.

6. 3. 사회문화적 의의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과 그 상징성은 신라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무덤 묘실 안에는 칠기 나무 관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11,500여 점의 부장품이 함께 묻혀 있었다.[2]

무덤의 이름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안장 덮개(말 덮개)에 그려진 흰 말 그림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여덟 개의 다리와 날개 달린 발을 가진 "천마"(천마)로 묘사되어 있다.[7] 이는 신라 회화의 희귀한 예시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7]

말 장구류를 함께 묻고 왕과 말을 희생한 풍습은 신라 사회에서 말 문화가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백성들이 믿었던 샤머니즘에서 왕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나타낸다.[6] 안장 덮개의 다른 면에는 기수와 봉황이 그려져 있다.

무덤에서는 금관과 금 허리띠를 비롯한 많은 보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모두 곡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러한 왕실 장식물은 무덤의 주인이 왕족임을 시사한다. 천마총의 허리띠가 금관총에서 발견된 허리띠와 유사하고, 백제 무령왕의 보물과 일치하는 금판 용 문양이 사용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6]

묘실에는 금 팔찌와 왕의 손가락에 착용되었던 금반지도 있었다.[5] 또한, 칠기 안장 덮개, 쇠솥, 도자기, 청동 용기, 칠기, 안장, 길이 98cm의 칼 등 다양한 부장품이 담긴 상자도 발견되었다.[5][7]

참조

[1] 웹사이트 천마총 https://terms.naver.[...] 2021-06-08
[2] 서적 Encyclopedic Dictionary of Archaeology https://books.google[...]
[3] 뉴스 백55호 고분은 지증왕릉 https://www.joongang[...] JoongAng Ilbo 1973-09-19
[4] 뉴스 "慶州(경주) 155號(호) 古墳(고분) 金冠(금관) 「榮華(영화)의 主人(주인)」은 누구" https://newslibrary.[...] The Chosun Ilbo 1973-07-29
[5] 서적 The Archaeology of Korea https://books.google[...]
[6] 서적 Korea: A Historical and Cultural Dictionary https://books.google[...]
[7] 웹사이트 Asian Historical Architecture: A Photographic Survey http://www.orientala[...]
[8] 웹사이트 천마총 http://terms.naver.c[...]
[9] 웹인용 "[서라벌신문] 천마총 41년 만의 새단장, 내년 4월까지 임시 폐쇄" http://www.srbsm.co.[...] 2019-06-19
[10] 문서 천마총 안내문 현지
[11] 웹인용 1천500년전 화려한 신라 무덤이 눈앞에 펼쳐지다(종합) https://www.yna.co.k[...] 2019-06-19
[12] 문서 고대사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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