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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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바리드는 슬로베니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소차 계곡의 줄리안 알프스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로마 시대에는 방어 시스템의 중요한 기지였다. 1184년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슬로베니아어 이름은 고대 슬라브어에서 유래했다. 1차 세계 대전 중 이손조 전투의 무대가 되어 도시가 파괴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1991년 슬로베니아에 귀속되었다. 현재는 관광 중심지로, 코바리드 박물관과 나폴레옹 다리가 주요 명소이다.
코바리드는 1184년 문헌에서 ''Kauoretum''으로 처음 언급되었고(1258년에는 ''de Cavoreto'', 1291년에는 ''Caboret'', 1343년에는 ''de Chiavoretto''로 언급됨), 슬로베니아어 이름은 고대 프리울리아어의 ''*Kaborệdu''에서 차용된 ''*Koboridъ''에서 유래했다. 이름의 원래 로망스어 형태인 ''*Cap(o)rētum''은 라틴어 ''caper''('염소'를 뜻함)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염소가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 도시는 프리울리아어로는 ''Cjaurêt'', 독일어로는 ''Karfreit'', 이탈리아어로는 ''Caporetto''로 알려져 있다.[1]
코바리드시는 슬로베니아 최서단에 위치하며, 소차 (이손초) 강 상류 계곡의 줄리안 알프스 산맥에 자리 잡고 있다. 나디자 (나티소네) 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탈리아 국경과 가깝다. 남서쪽으로는 이탈리아 ''코무네''인 풀페로와 이어진다. 코바리드시는 역사적인 고리슈카 지역 북부에 속하며, 더 넓게는 슬로베니아 연안 지역의 일부이다.
코바리드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할슈타트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5세기 로마 제국 시대에는 율리아 알프스 방벽 방어선의 최전선에 위치한 중요한 기지였다. 6세기에는 슬라브족이 정착했고, 1184년에 코바리드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되었다.
묘지 집단 매장지(슬로베니아어: Grobišče na pokopališču)는 마을 묘지 입구 오른쪽에 있는 묘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줄 사이에 있었다. 여기에는 1945년 4월 콜로브라트에서 전사한 11명의 독일군 병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다. 슬로베니아의 대부분의 집단 매장지와는 달리, 이 무덤은 공산주의 시대에도 잘 관리되었다. 유해는 2000년에 발굴되어 류블랴나의 잘레 묘지 공동 묘지에 재안치되었다.[1]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코바리드는 중요한 관광 중심지로 떠올랐다. 코바리드 박물관 외에도 나폴레옹 다리는 코바리드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이 다리는 코바리드 주변 산과 소차 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2. 명칭
3. 지리
4. 역사
이후 코바리드는 아퀼레이아 총대주교국, 베네치아 공화국,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1754년부터는 고리치아-그라디스카 백국에 속했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슬로베니아 민족 부흥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이손조 전투의 격전지로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후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파시즘 통치를 겪었으며, 반파시즘 저항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 의해 해방되었고, 종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4. 1. 선사 시대 ~ 로마 시대
코바리드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 왔다. 이 지역에서는 할슈타트 시대의 고고학 유적이 발견되었다. 인근의 토노코프 그라드(Tonocov Grad) 고고학 유적지에는 5세기 로마 제국 시대의 건물 유적이 남아 있으며,[3] 당시 이 지역은 율리아 알프스 방벽 (Claustra Alpium Iuliarum) 방어 시스템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었다. 이 정착지는 포룸 율리이 (현재의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에서 프레델 고개와 노리쿰 속주까지 이어지는 로마 가도의 중요한 기지였다.
4. 2. 중세 시대
6세기에는 현대 슬로베니아인의 조상인 슬라브 부족이 이 지역에 정착했다. 코바리드는 1184년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아퀼레이아 총대주교국이 통치하는 프리울리 지방의 일부였다.[1]
1420년까지 서부 지역의 영지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의해 점차 정복되었지만, 코바리드는 톨민 및 고리차 백작령과 함께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내 오스트리아 영토에 편입되었으며, 카르니올라와 로어 슈타이어마르크의 슬로베니아어 사용 지역과 같았다.[1]
4. 3. 근대
1754년부터 코바리드는 새로 설립된 고리치아-그라디스카 백국에 속했으며, 이는 나중에 이스트라 변경백국과 트리에스테 자유 제국 도시와 함께 오스트리아 연안을 형성하는 합스부르크 왕령이었다.
1809년에서 1813년 사이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코바리드는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코바리드는 나폴레옹 이탈리아 왕국에 잠시 포함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 이 도시는 슬로베니아 민족 부흥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4. 4.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 이 지역은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 중 한 명인 루시 크리스탈니그 백작 부인이 적십자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십자 경비병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4] 전쟁 동안 이 지역 전체는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이손조 전투의 무대가 되었다. 이 도시는 1915년에서 1917년 사이에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4. 5. 이탈리아 통치기 (1918-1943)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코바리드는 이탈리아군에 점령되었고, 1919년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줄리안 변경주 지역에 편입되었다.[4] 코바리드는 고리치아 현의 코무네(카포레토)였으나, 1924년에서 1927년 사이에는 고리치아 현이 폐지되어 우디네 현에 합병되었다. 1922년부터 1943년까지 코바리드는 폭력적인 파시스트 이탈리아화 정책에 시달렸고, 많은 현지인들이 인접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 도시는 무장 반파시스트 조직 TIGR의 모집 및 활동의 핵심 중심지가 되었고, 이들은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맞서 지하 투쟁을 벌였다. 이탈리아 행정부 시절 코바리드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역할 때문에 파시스트 당국에게 중요한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도시 위에 이탈리아 군사 납골당이 건설되었고,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8년에 코바리드를 방문했다.
4. 6. 제2차 세계 대전과 유고슬라비아 편입
1918년 전쟁이 끝난 후 코바리드는 이탈리아군에 점령되었고, 1919년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줄리안 변경주 지역에 편입되었다. 코바리드는 고리치아 현의 ''코무네''(카포레토)였으나, 1924년에서 1927년 사이에는 고리치아 현이 폐지되어 우디네 현에 합병되었다. 1922년에서 1943년 사이에 코바리드는 폭력적인 파시스트 이탈리아화 정책에 시달렸고, 많은 현지인들이 인접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 도시는 무장 반파시스트 조직 TIGR의 모집 및 활동의 핵심 중심지가 되었고, 이들은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맞서 지하 투쟁을 벌였다.[4] 이탈리아 행정부 시절 코바리드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역할 때문에 파시스트 당국에게 중요한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도시 위에 이탈리아 군사 납골당이 건설되었고,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8년에 코바리드를 방문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 휴전 직후 코바리드는 파르티잔 봉기에 의해 해방되었고, 슬로베니아 인민 해방 전선이 관리하는 2500km2에 달하는 대규모 해방 지역인 코바리드 공화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이탈리아 행정 25년 동안 코바리드에 정착했던 거의 모든 이탈리아 가족들이 도시를 떠났다. 1943년 11월 초, 나치 독일군은 도시를 점령하여 1945년 5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 의해 최종 해방될 때까지 지배권을 확립했다.
1945년 6월 초, 코바리드는 영국-미국의 공동 점령 하에 놓였고,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간의 최종 국경이 설정될 때까지 연합군의 임시 군사 행정 하에 놓였다. 연합군의 군사 점령 구역을 유고슬라비아 점령 구역과 분할하는 모건 선은 도시 바로 동쪽, 소차 강을 따라 이어졌다.
1947년 9월, 파리 평화 조약에 따라 이 도시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귀속되었다. 특히 브레기니 지역의 수백 명의 주민들은 공산주의 국가의 시민이 되기보다는 이탈리아로 이민을 선택했다.
5. 제2차 세계 대전 집단 매장지
6. 코바리드 현재
1991년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와 함께 코바리드는 독립 슬로베니아의 일부가 되었다.
7. 저명한 인물
참조
[1]
웹사이트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lovenia
http://www.stat.si/e[...]
[2]
서적
Etimološki slovar slovenskih zemljepisnih imen
Modrijan and Založba ZRC
[3]
웹사이트
Kobarid Museum site
http://www.kobariski[...]
[4]
서적
L'ultima estate
[5]
웹사이트
Grobišče na pokopališču
https://www.geopedia[...]
Služba za vojna grobišča, Ministrstvo za delo, družino in socialne zadeve
2009-12-00
[6]
서적
Čebelarski terminološki slovar
Založba ZRC, ZRC SAZU and Lukovica: Čebelarska zveza Sloveni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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