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키베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키베라는 케냐 나이로비에 위치한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빈민가 중 하나이다. 1904년 누비아인 군인들에게 토지가 할당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케냐 독립과 함께 인구가 급증했다. 현재 키베라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열악한 위생 환경과 높은 범죄율, 부족한 사회 기반 시설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정부, 유엔, NGO 등의 노력을 통해 주거 환경 개선이 진행되고 있으며, 영화, 문학,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2. 역사

300px


키베라는 1904년 왕립 아프리카 소총대(KAR)에서 복무하고 돌아온 누비아인 병사들에게 토지가 할당되면서 나이로비 외곽 숲에 정착지로 시작되었다. 1963년 케냐 독립 이후, 여러 형태의 주택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키베라는 무허가 정착지가 되었지만,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1974년까지 키쿠유족이 키베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후 케냐 서부 출신의 루오족과 루히야족이 주요 이주민이 되면서 인구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1995년까지 키베라는 주로 루오족이 거주하는 빈민가가 되었고, 인근 마타레 계곡은 주로 키쿠유족이 거주하는 빈민가 지역이 되었다. 케냐의 다당제 정치 부상과 함께 키베라와 랑가타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던 루오족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는 강력한 시위 동원 능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키베라 주민들은 케냐의 주요 모든 민족 배경을 대표하며, 특정 지역은 특정 민족 언어 집단의 사람들이 주로 거주한다. 케냐 정부는 키베라가 위치한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이 정착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33] 유엔 인간 정주 계획(UN-HABITAT) 본부는 키베라 근처에 위치하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첫 달에 방문했다.[58]

2. 1. 식민지 시대

1899년 우간다 철도 건설을 위해 나이로비가 설립되면서 본부와 영국 식민 정부 사무실이 필요하게 되었다.[17][18] 식민 정부는 나이로비를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단기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유지하려 했다. 이들은 단기 계약으로 고용되어 서비스업, 철도 노무, 식민 정부 하급 행정직을 담당했다.[19][20]

1900년부터 1940년 사이, 식민 정부는 1922년 부랑자 법 등 여러 법률을 제정해 사람들을 차별하고, 토착민과 고용 노동자들을 퇴거, 체포, 추방하며 이동을 제한했다.[20][21] 나이로비 내 아프리카인들은 도시 외곽의 격리된 "토착민 보호구역"에 거주해야 했다.[22][23] 나이로비 거주 허가는 비유럽인 거주 지역을 민족 집단별로 분리했다. 그중 하나는 영국 식민군에 복무한 아프리카 군인들이었고, 이들에게 배정된 지역이 현재 키베라로 알려진 빈민가로 발전했다.[24][25][26]

키베라는 1904년 왕립 아프리카 소총대(KAR)에서 복무하고 돌아온 누비아인 병사들에게 토지가 할당되면서 나이로비 외곽 숲에 정착지로 시작되었다. 키베라는 티카 로드를 따라 KAR 본부 근처 KAR 군사 훈련장에 위치했다.[27] 영국 식민 정부는 이 정착지가 비공식적으로 성장하도록 허용했다. 누비아인들은 "토착민 보호구역" 토지에 대한 권리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부족들이 누비아인 지주에게 토지를 임대하기 위해 이주했다. 철도 교통량 증가로 나이로비 경제가 발전하고, 임금 노동을 찾는 농촌 이주민들이 나이로비로 몰려들면서 키베라를 비롯한 빈민가들이 나이로비 전역에 걸쳐 발전했다.[21][28]

1920년대 후반, 유럽인 주택 지역 내에 위치한 키베라를 철거 및 이전하려는 제안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반대했다. 식민 정부는 키베라 재정비 제안을 고려했고, 케냐 토지 위원회는 "키베라 문제" 관련 사건들을 심리했다.[29] 1931년 식민 보고서는 나이로비와 케냐 다른 도시들의 주택 분리 현황을 언급하며, 유럽인 주택은 양호, 아프리카인 및 기타 비유럽인 이주민 빈민가 주택은 널리 퍼져 있다고 보고했다.[30]

2. 1. 1. 누비아인 정착과 키베라의 형성

300px


1899년 우간다 철도 건설을 위해 나이로비가 설립되면서 본부와 영국 식민 정부 사무실이 필요하게 되었다.[17][18] 식민 정부는 나이로비를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단기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유지하려 했다. 이들은 단기 계약으로 고용되어 서비스업, 철도 노무, 식민 정부 하급 행정직을 담당했다.[19][20]

1900년부터 1940년 사이, 식민 정부는 1922년 부랑자 법 등 여러 법률을 제정해 사람들을 차별하고, 토착민과 고용 노동자들을 퇴거, 체포, 추방하며 이동을 제한했다.[20][21] 나이로비 내 아프리카인들은 도시 외곽의 격리된 "토착민 보호구역"에 거주해야 했다.[22][23] 나이로비 거주 허가는 비유럽인 거주 지역을 민족 집단별로 분리했다. 그중 하나는 영국 식민군에 복무한 아프리카 군인들이었고, 이들에게 배정된 지역이 현재 키베라(Kibera)로 알려진 빈민가로 발전했다.[24][25][26]

1904년, 왕립 아프리카 소총대(KAR)에서 복무하고 돌아온 누비아인 병사들에게 토지가 할당되면서 나이로비 외곽 숲에 키베라 정착지가 시작되었다. 키베라는 티카 로드(Thika Road)를 따라 KAR 본부 근처 KAR 군사 훈련장에 위치했다.[27] 영국 식민 정부는 이 정착지가 비공식적으로 성장하도록 허용했다. 누비아인들은 "토착민 보호구역" 토지에 대한 권리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부족들이 누비아인 지주에게 토지를 임대하기 위해 이주했다. 철도 교통량 증가로 나이로비 경제가 발전하고, 임금 노동을 찾는 농촌 이주민들이 나이로비로 몰려들면서 키베라를 비롯한 빈민가들이 나이로비 전역에 걸쳐 발전했다.[21][28]

1920년대 후반, 유럽인 주택 지역 내에 위치한 키베라를 철거 및 이전하려는 제안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반대했다. 식민 정부는 키베라 재정비 제안을 고려했고, 케냐 토지 위원회는 "키베라 문제" 관련 사건들을 심리했다.[29] 1931년 식민 보고서는 나이로비와 케냐 다른 도시들의 주택 분리 현황을 언급하며, 유럽인 주택은 양호, 아프리카인 및 기타 비유럽인 이주민 빈민가 주택은 널리 퍼져 있다고 보고했다.[30] 1918년 나이로비 근교 숲에 위치한 거주지는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이전 전투 공적에 대한 보상으로 누비아 병사들이 받았다.[58]

2. 1. 2. 식민 정부의 차별 정책과 키베라

나이로비1899년 우간다 철도(Uganda Railway) 건설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이로 인해 본부와 영국 식민 정부 사무실이 필요하게 되었다.[17][18] 식민 정부는 나이로비를 유럽인과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단기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유지하려고 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단기 계약으로 고용되어 서비스업, 철도 노무 및 식민 정부의 하급 행정직을 담당했다.[19][20]

1900년부터 1940년 사이에 식민 정부는 1922년 부랑자 법(Vagrancy Act)과 같은 여러 법률을 제정하여 사람들을 차별하고, 토착민과 고용 노동자들을 퇴거시키고, 체포하고, 추방하며, 이동을 제한했다.[20][21] 나이로비 내에서 아프리카인들은 도시 외곽의 격리된 "토착민 보호구역(native reserves)"에 거주할 수 있었다.[22][23] 나이로비에 거주하려면 허가가 필요했고, 이 허가는 비유럽인들의 거주 지역을 민족 집단별로 분리했다. 그러한 집단 중 하나는 영국 식민군의 군사적 이익을 위해 복무한 아프리카 군인들이었고, 그들에게 배정된 지역은 현재 키베라로 알려진 빈민가로 발전했다.[24][25][26]

키베라는 1904년, 왕립 아프리카 소총대(King's African Rifles, KAR)에서 복무하고 돌아온 누비아인(Nubian people) 병사들에게 토지를 할당받으면서 나이로비 외곽의 숲에 정착지로 시작되었다. 키베라는 티카 로드(Thika Road)를 따라 KAR 본부 근처의 KAR 군사 훈련장에 위치했다.[27] 영국 식민 정부는 이 정착지가 비공식적으로 성장하도록 허용했다. 누비아인들은 "토착민 보호구역"의 토지에 대한 권리가 없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부족들이 누비아인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임대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이주했다. 철도 교통량의 증가로 나이로비의 경제가 발전하고, 임금 노동을 찾는 농촌 이주민들이 도시 나이로비로 점점 더 많이 이동했다. 키베라와 다른 빈민가들은 나이로비 전역에 걸쳐 발전했다.[21][28]

1920년대 후반, 키베라가 유럽인 주택 지역 내에 위치해 있었기에 키베라를 철거하고 이전하려는 제안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이러한 제안에 반대했다. 식민 정부는 키베라를 재정비하기 위한 제안을 고려했고, 케냐 토지 위원회(Kenya Land Commission)는 "키베라 문제"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심리했다.[29] 그 당시 키베라는 유일한 빈민가가 아니었다. 1931년 식민 보고서에서는 나이로비와 케냐의 다른 도시들의 주택의 분리된 성격을 언급했으며, 유럽인을 위한 주택은 양호한 것으로 보고되었고, 아프리카인과 다른 비유럽인 이주민들을 위한 빈민가 주택이 널리 퍼져 있었다.[30]

2. 2. 독립 이후

1963년 케냐 독립 이후, 케냐 정부는 여러 형태의 주택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키베라는 무허가 정착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8년 나이로비 근교 숲에 위치한 거주지를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이전 전투 공적에 대한 보상으로 누비아 병사들이 받았던 이유[58] 등으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곳에 살았으며, 키베라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키베라는 케냐의 주요 모든 민족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특정 지역은 특정 민족 언어 집단의 사람들이 주로 거주한다. 많은 새로운 주민들은 만성적인 저개발과 인구 과잉 문제를 가진 농촌 지역에서 이주해 왔다. 이러한 다민족적 성격과 케냐 정치에 만연한 부족주의는 키베라에서 여러 소규모 민족 갈등을 겪게 된 원인이 되었다. 케냐 정부는 키베라가 위치한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이 정착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서비스, 학교, 진료소, 상수도 또는 화장실은 공공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존재하는 서비스는 모두 민간 소유이다.[33] 유엔 인간 정주 계획(UN-HABITAT) 본부는 키베라 근처에 위치하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첫 달에 방문했다.[58]

2. 2. 1. 인구 증가와 민족 구성 변화

1963년 케냐 독립 이후, 케냐 정부는 여러 형태의 주택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 새로운 규칙은 토지 소유권을 근거로 키베라에 영향을 미쳐 무허가 정착지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곳에 살았고, 1970년대 초에는 집주인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보다 훨씬 많은 세입자에게 키베라의 부동산을 임대했다.[31]

극빈층인 세입자들은 합법적인 주택을 임대할 여력이 없어 키베라에서 제공되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키베라의 주민 수는 무허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라 증가했다. 1974년까지 키쿠유족이 키베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정치적 후원을 통해 유지된 행정직을 장악했다.[31]

그 이후 케냐의 인구 통계는 변화를 겪었는데, 케냐 서부 출신의 루오족과 루히야족이 주요 내부 이주민이었다. 1995년까지 키베라는 주로 루오족이 거주하는 빈민가가 되었고, 인근 마타레 계곡은 주로 키쿠유족이 거주하는 빈민가 지역이 되었다.[32] 케냐에서 다당제 정치가 동시에 부상하면서, 키베라 대부분 지역과 랑가타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던 루오족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는 즉시 강력한 시위대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마타레 계곡은 갱단 폭력의 온상이 되었다. 2007년 키바키 대통령의 재선 이후, 여러 부족 간의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나이로비 키베라의 상대적 위치


누비아 공동체는 장로회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또한 신탁의 수탁자이기도 하다. 이 신탁은 현재 키베라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토지 면적이 1100acre가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가의 허가된 할당으로 인해 토지 면적이 현재 780acre로 줄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재정착 프로그램은 주장하는 누비아 정착지에 대해 약 300acre의 토지 면적을 구상하고 있다. 어느 쪽도 이러한 입장에서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현재 키베라 주민들은 케냐의 주요 모든 민족 배경을 대표하며, 특정 지역은 특정 민족 언어 집단의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많은 새로운 주민들은 만성적인 저개발과 인구 과잉 문제를 가진 농촌 지역에서 온다. 키베라 인구의 다민족적 성격과 케냐 정치에 만연한 부족주의는 키베라가 1세기가 넘는 역사 동안 여러 소규모 민족 갈등을 겪게 된 원인이 되었다. 케냐 정부는 키베라가 위치한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이 정착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서비스, 학교, 진료소, 상수도 또는 화장실은 공공적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존재하는 서비스는 모두 민간 소유이다.[33]

2. 2. 2. 정치적 긴장과 라일라 오딩가의 역할

1963년 케냐 독립 이후, 케냐 정부는 여러 형태의 주택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 새로운 규칙은 토지 소유권을 근거로 키베라에 영향을 미쳐 무허가 정착지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곳에 살았고, 1970년대 초에는 집주인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보다 훨씬 많은 세입자에게 키베라의 부동산을 임대했다.[31]

극빈층인 세입자들은 합법적인 주택을 임대할 여력이 없어 키베라에서 제공되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키베라의 주민 수는 무허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라 증가했다. 1974년까지 키쿠유족이 키베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정치적 후원을 통해 유지된 행정직을 장악했다.[31]

그 이후 케냐의 인구 통계는 변화를 겪었는데, 케냐 서부 출신의 루오족과 루히야족이 주요 내부 이주민이었다. 1995년까지 키베라는 주로 루오족이 거주하는 빈민가가 되었고, 인근 마타레 계곡은 주로 키쿠유족이 거주하는 빈민가 지역이 되었다.[32] 케냐에서 다당제 정치가 동시에 부상하면서, 키베라 대부분 지역과 랑가타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던 루오족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는 즉시 강력한 시위대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마타레 계곡은 갱단 폭력의 온상이 되었다. 2007년 키바키 대통령의 재선 이후, 여러 부족 간의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누비아 공동체는 장로회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또한 신탁의 수탁자이기도 하다. 이 신탁은 현재 키베라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토지 면적이 1100acre가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가의 허가된 할당으로 인해 토지 면적이 현재 780acre로 줄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재정착 프로그램은 주장하는 누비아 정착지에 대해 약 300acre의 토지 면적을 구상하고 있다. 어느 쪽도 이러한 입장에서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현재 키베라 주민들은 케냐의 주요 모든 민족 배경을 대표하며, 특정 지역은 특정 민족 언어 집단의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많은 새로운 주민들은 만성적인 저개발과 인구 과잉 문제를 가진 농촌 지역에서 온다. 키베라 인구의 다민족적 성격과 케냐 정치에 만연한 부족주의는 키베라가 1세기가 넘는 역사 동안 여러 소규모 민족 갈등을 겪게 된 원인이 되었다. 케냐 정부는 키베라가 위치한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이 정착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서비스, 학교, 진료소, 상수도 또는 화장실은 공공적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존재하는 서비스는 모두 민간 소유이다.[33]

2. 2. 3. 누비아 공동체의 토지 소유권 주장

1963년 케냐 독립 이후, 케냐 정부는 여러 형태의 주택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 새로운 규칙은 토지 소유권을 근거로 키베라에 영향을 미쳐 무허가 정착지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곳에 살았고, 1970년대 초에는 집주인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보다 훨씬 많은 세입자에게 키베라의 부동산을 임대했다.[31]

누비아 공동체는 장로회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또한 신탁의 수탁자이기도 하다. 이 신탁은 현재 키베라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토지 면적이 1100acre가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가의 허가된 할당으로 인해 토지 면적이 현재 780acre로 줄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재정착 프로그램은 주장하는 누비아 정착지에 대해 약 300acre의 토지 면적을 구상하고 있다. 어느 쪽도 이러한 입장에서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3. 지리

키베라는 나이로비 남서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2.5km²로,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약 75%에 해당한다. 추정 인구는 60만에서 120만 명 사이로, 나이로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인구 밀도는 1km²당 30만 명에 달한다.[59] 우간다 철도 역이 지나가며, 공립 올림픽 초등학교가 있다.[60]

3. 1. 위치 및 환경

키베라는 나이로비 남서쪽에 위치하며, 시내 중심부에서 약 6.6km 떨어져 있다. 키베라의 남쪽 경계는 대부분 나이로비 강(Nairobi river)과 나이로비 댐(Nairobi Dam)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로비 댐은 과거 나이로비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인공 호수였지만, 2021년 8월 기준으로 키베라로 들어가는 주요 관로는 두 개이다.

키베라는 키안다(Kianda), 소웨토 이스트(Soweto East), 가트웨케라(Gatwekera), 키수무 앤도고(Kisumu Ndogo), 린디(Lindi, Nairobi), 라이니 사바(Laini Saba), 시랑가(Siranga), 마키나(Makina, Nairobi), 살라마, 아야니, 마시모니(Mashimoni)를 포함하여 13개의 마을과 2개의 지역으로 나뉜다.[58]

항목내용
면적약 2.5km²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75%)
추정 인구60만~120만 명[58] (나이로비 인구의 절반 이상)
인구 밀도300000/km2[59]
마을(村) 이름키안다(Kianda), 소웨토(Soweto), 가트웨케라(Gatwekera), 키수무 엔도고(Kisumu Ndogo), 린디(Lindi), 라이니 사바(Laini Saba), 시랑가/운두구(Siranga/Undugu), 마키나(Makina), 마시모니(Mashimoni) 등[60]
교통우간다 철도(Uganda Railway) 역
교육 시설공립 올림픽 초등학교(Olympic Primary School)


3. 2. 마을 구성

키베라는 나이로비 남서쪽에 위치하며, 시내 중심부에서 약 6.6km 떨어져 있다. 키베라의 남쪽 경계는 대부분 나이로비 강(Nairobi river)과 나이로비 댐(Nairobi Dam)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로비 댐은 과거 나이로비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인공 호수였지만, 2021년 8월 기준으로 키베라로 들어가는 주요 관로는 두 개이다.

키베라는 키안다(Kianda), 소웨토 이스트(Soweto East), 가트웨케라(Gatwekera), 키수무 앤도고(Kisumu Ndogo), 린디(Lindi, Nairobi), 라이니 사바(Laini Saba), 시랑가(Siranga), 마키나(Makina, Nairobi), 살라마, 아야니, 마시모니(Mashimoni)를 포함하여 13개의 마을과 2개의 지역으로 나뉜다.[58][59][60]

3. 3. 건축 환경

키베라의 형태는 매우 역동적이다. 2006년부터 2014년 사이에 린디, 마시모니, 라이나 사바, 소웨토 이스트 지역에서 건물과 건물 블록의 시공간적 변화가 측정되었는데, 건물 수는 77% 증가하고 밀도는 10% 증가했다. 그러나 유기적인 구조와 패턴(건물 블록, 통로)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았다.[34]

4. 인구 통계

키베라 서부 키안다 마을의 인구 밀도


2009년 케냐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키베라의 인구는 170,070명이었다.[6]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공식 도시 정착지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여러 기관에서 1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2008년 "맵 키베라 프로젝트"는 키베라 빈민가 전체 인구가 235,000명에서 최대 27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41][42]

키베라에 거주하는 민족 집단과 성별별 구성 비율은 다음과 같다.[43]

민족남성 (%)여성 (%)
루오족34.935.4
루히야족26.532.5
누비아인11.69.1
키쿠유족7.96.4
캄바족7.510.3
키시이족6.42.2
기타5.24.1



300px

4. 1. 인구 규모 논쟁

2009년 케냐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키베라의 인구는 170,070명이었다.[6] 이전에는 키베라 빈민가가 세계에서 가장 큰 비공식 도시 정착지 중 하나로 여겨졌다. 여러 기관에서 수년 동안 키베라 인구 규모에 대한 추정치를 제시했는데,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빈민가이며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도시 빈민 전문가 마이크 데이비스는 키베라의 인구가 약 800,000명이라고 추정했다.[35]

국제주택연합(IHC)은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했다.[36] 유엔 해비타트는 35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로 추정했다.[4][37][38] 이러한 통계는 주로 해당 지역의 항공 사진 분석을 통해 얻어졌다. IRIN은 헥타르당 2000명의 인구 밀도를 추산했다.[39]

2008년, 독립적인 연구팀이 "맵 키베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빈민가의 물리적, 사회인구학적 특징을 매핑하기 위한 방문 조사를 시작했다.[40] 현지인으로 구성된 훈련팀은 임시 조사 방법론을 개발한 후 15,000명 이상의 인구 통계 데이터를 수집하고, 키안다 마을의 5000개 구조물, 서비스(공중 화장실, 학교), 기반 시설(배수 시스템, 상하수도 공급) 매핑을 완료했다. 맵 키베라 프로젝트 팀은 키안다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키베라 빈민가 전체 인구가 235,000명에서 최대 27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여 이전의 모든 수치를 크게 줄였다.[41][42]

키베라에 거주하는 민족 집단과 성별별 구성 비율은 다음과 같다.[43]

민족남성 (%)여성 (%)
루오족34.935.4
루히야족26.532.5
누비아인11.69.1
키쿠유족7.96.4
캄바족7.510.3
키시이족6.42.2
기타5.24.1


4. 2. 민족 구성

2009년 케냐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키베라의 인구는 170,070명이었다.[6] 그러나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공식 도시 정착지 중 하나로 여겨져, 여러 기관에서 100만 명이 넘는다는 추정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약 800,000명,[35] 국제주택연합(IHC)은 50만 명 이상,[36] 유엔 해비타트는 35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로 추정했다.[4][37][38] IRIN은 헥타르당 2000명의 인구 밀도를 추산했다.[39]

2008년 "맵 키베라 프로젝트"라는 독립적인 연구팀이 방문 조사를 통해 키베라 빈민가의 인구를 235,000명에서 최대 270,000명으로 추산하여 이전의 수치를 크게 줄였다.[41][42]

키베라에 거주하는 민족 집단과 성별별 구성 비율은 다음과 같다.[43]

민족남성 비율여성 비율
루오족34.9%35.4%
루히야족26.5%32.5%
누비아인11.6%9.1%
키쿠유족7.9%6.4%
캄바족7.5%10.3%
키시이족6.4%2.2%
기타5.2%4.1%


5. 사회 기반 시설

우간다 철도가 지나가고, 주민들은 버스마타투를 이용해 이동한다. 차량 강탈과 교통 문제도 빈번하다.[46] 키베라는 쓰레기, 먼지 등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으며, "날아다니는 화장실" 사용과 열악한 위생 시설로 인해 질병 발생률이 높다. 우만데 트러스트는 바이오가스 생산 공동 화장실을 건설하고 있다.[46] 지역 라디오 방송국인 파모자 FM(Pamoja FM)과 신문인 키베라 저널은 지역 사회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5. 1. 교통

우간다 철도가 이 지역 중심부를 지나가기 때문에 기차를 타는 승객들은 빈민가를 직접 볼 수 있다. 키베라에는 기차역이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버스마타투(matatu)를 이용하여 시내 중심부로 이동한다. 차량 강탈, 무책임한 운전, 미흡한 교통 법규 단속은 만성적인 문제이다.[46]

5. 2. 위생 및 환경 문제

키베라는 인분, 쓰레기, 그을음, 먼지 및 기타 폐기물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개방된 하수 시스템과 "날아다니는 화장실"의 사용으로 인해 인분과 동물 배설물로 오염되어 있다.[46] 위생 시설 부족과 주민들의 영양 실조는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현지 NGO인 우만데 트러스트(Umande Trust)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메탄 가스(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공동 화장실을 건설하고 있다.[46]

5. 3. 미디어

우간다 철도는 이 지역 중심부를 지나가기 때문에 기차를 타는 승객들은 빈민가를 직접 볼 수 있다. 키베라에는 기차역이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버스와 마타투(matatu)를 이용하여 시내 중심부로 이동한다. 차량 강탈, 무책임한 운전, 미흡한 교통 법규 단속은 만성적인 문제이다.

키베라에는 인분, 쓰레기, 그을음, 먼지 및 기타 폐기물로 인해 심각한 오염이 발생하고 있다. 하수 시스템이 개방되어 있고 "날아다니는 화장실(flying toilet)"이 빈번하게 사용됨에 따라 인분과 동물 배설물로 오염되어 있다. 위생 시설 부족과 주민들의 영양 실조는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현지 NGO인 우만데 트러스트(Umande Trust)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메탄 가스(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공동 화장실을 건설하고 있다.[46]

파모자 FM(Pamoja FM)이라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은 키베라 빈민가뿐만 아니라 나이로비의 모든 빈민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키베라 저널(Kibera Journal)은 2006년 11월부터 발행되고 있다. 이 신문은 키베라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다루며, 청소년들에게 기본적인 저널리즘 기술을 교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기술은 그들이 지역 사회의 문제를 보도하는 데 사용된다.

6. 교육

키베라의 교육 시설은 대부분 비공식적이지만, 학교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47] 이들 학교 중 일부는 베이비케어 센터에서 시작해 발전했으며, 대부분 정부 규제를 받지 않는다. 투나판다 연구소(Tunapanda Institute)와 같은 기관에서는 기술, 디자인, 비즈니스 기술에 대한 무료 강좌를 제공한다.[48] 키베라 블랙 스타즈(Kibera Black Stars) 축구팀을 비롯한 여러 지역 청소년 단체들도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49]

6. 1. 학교 및 교육 기관

키베라의 대부분 교육 시설은 비공식으로 분류되지만, 학교를 추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47] 일부는 베이비케어 센터로 시작하여 나중에 학교로 발전한다. 대부분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학교 중 하나는 탁월한 정부 학교 중 하나인 올림픽 초등학교(Olympic Primary School)이다. 키베라에 있는 다른 정부(공립) 학교로는 키베라 초등학교(Old Kibera라고도 함), 아야니 초등학교(Ayany Primary School), 토이 초등학교(Toi Primary School)가 있다. 미래를 향한 학교(Facing the Future School)(FaFu)를 비롯해 여러 교회 소유 및 사립 학교도 이 지역에 있다. 주목할 만한 중등학교로는 동아프리카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East Africa)가 소유한 PCEA 실랑가 고등학교(PCEA Silanga High School), 라일라 교육 센터(Raila Educational centre), 올림픽 고등학교(Olympic Secondary School) 등이 있다. 주민들에게 자영업 기술을 제공하는 직업 훈련 기관인 PCEA 에마누엘 기술훈련센터(PCEA Emmanuel Technical Training Centre)와 기술, 디자인, 비즈니스 기술에 대한 무료 강좌를 제공하는 투나판다 연구소(Tunapanda Institute)가 있다.[48] 키베라 블랙 스타즈(Kibera Black Stars)[49] 축구팀과 같은 여러 다른 지역 청소년 단체도 교육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7. 빈민가 개선 노력

키베라는 유엔 인간 정주 계획(UN-HABITAT) 본부가 가까이 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하는 등 국제적인 관심을 받는 빈민가이다.[33] 케냐 정부, UN-HABITAT, 여러 NGO들이 키베라의 주택 및 위생 상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절도, 열악한 지반, 빽빽한 지형 등 여러 어려움이 존재한다.

2009년 케냐 정부는 키베라를 포함한 나이로비 슬럼 지역 거주민 이주 계획을 시작했다.[50] 이 계획은 유엔과 라일라 오딩가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았으며, 12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새로운 주거 단지를 건설하는 내용을 포함했다.[50][51] 그러나 토지 소유권 문제, 주민들의 반발, 도시 계획가들의 비판 등 여러 논란에 직면해 있다.[50][51]

7. 1. 빈민가 개선 사업

키베라의 많은 지역은 쓰레기와 폐기물로 이루어져 있다.


키베라는 현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엔 인간 정주 계획(UN-HABITAT) 본부가 가까이 있어,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빈민가 중 하나이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지 한 달 만에 이 지역을 방문했다.[33]

케냐에서 가장 두드러진 빈민가 중 하나인 키베라는 집중적인 빈민가 개선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정부, UN-HABITAT 및 여러 NGO(특히 마지 나 우파니시)는 주택과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이 지역에 진출하고 있다.

키베라 내 건설 또는 개선에는 세 가지 중요한 복잡한 요인이 있다.

첫째는 절도 및 강력 범죄율이다. 건축 자재는 도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어느 때에도 방치할 수 없다. 폭풍 피해를 입은 주택 소유자가 수리 작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원자재를 도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집터에 남은 자재 위에 캠프를 설치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둘째는 건축 기초의 부족이다. 키베라의 많은 지역은 말 그대로 쓰레기와 폐기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택은 종종 이 불안정한 지면 위에 지어지기 때문에, 빈민가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홍수가 발생할 때마다 많은 구조물이 무너진다. 이는 잘 지어진 건물조차도 인근의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이 무너지면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굴곡진 지형과 지역의 빽빽한 확장이다. 차량 진입이 가능한 집은 거의 없고, 많은 집들이 가파른 경사면 아래에 위치해 있어(홍수 위험을 증가시킴) 건설 작업이 더욱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모든 자재를 손으로 운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7. 2. 슬럼 철거 계획과 논란

키베라 인근에 건설 중인 새로운 아파트


2009년 9월 16일, 키베라가 위치한 토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케냐 정부는 나이로비 슬럼 지역 거주민들을 위한 장기적인 이주 계획을 시작했다.[50]

키베라의 철거는 완료하는 데 2년에서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전체 프로젝트는 9년이 걸릴 것으로 계획되었으며, 도시의 모든 슬럼 거주민들을 재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51] 이 프로젝트는 유엔과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라일라 오딩가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았으며, 12억달러의 비용이 예상되었다.[50][51] 새로운 주거 단지에는 학교, 시장, 놀이터 및 기타 시설이 포함될 계획이었다.[50] 슬럼을 떠나는 약 1,500명의 첫 번째 그룹은 2009년 9월 16일 현지 시간 오전 6시 30분부터 트럭으로 이송되어 월세 약 10USD의 새로 건설된 300개의 아파트에 재정착되었다.[50][51]

프로젝트 시작은 오딩가 총리가 첫날 현장을 감독할 수 없어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52] 그는 첫날 주택부 장관 소이타 시탄다와 그의 보좌관 마가렛 완지루와 함께 거주민들이 소지품을 트럭에 싣도록 도왔다.[52] 또한 여러 명의 무장 경찰이 배치되어 상황을 감시하고 저항을 막았다.[52]

이 과정은 80명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법적 문제 제기되었으며, 케냐 고등법원은 10월에 사건이 심리될 때까지 정부가 철거 작업을 시작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자발적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집은 철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50][51] 80명의 원고는 중산층 집주인과 키베라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키베라의 토지는 자신들의 것이며 따라서 정부는 판잣집을 철거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약 100년 동안 이 지역에 거주해 온 누비아 공동체도 이 계획에 실망하고 있으며, 한 원로는 현재 주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50]

이 프로젝트는 또한 도시 계획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도시 계획가들은 이 프로젝트가 이전 계획의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이전 계획에서는 저소득 가정들이 월세를 내기 위해 2가구 또는 그 이상의 가정과 2베드룸 아파트를 공유하거나, 중산층 가정에 전대하여 다시 슬럼으로 돌아갔다.[50] 케냐의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하루에 2USD 미만을 벌고 있다.[53] 또한 프로젝트의 시기 문제에 대한 논란도 있다. 7,500명을 재정착시키는 1단계가 5년이나 지연되었고, 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 속도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완료하는 데 1,178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51]

8. 대중문화 속 키베라

BBC의 리얼리티 쇼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 ''부자, 유명인 그리고 빈민가에서(Rich, Famous and in the Slums)''는 네 명의 유명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빈민가에서 최악의 직업을 경험하고, 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실제 환경을 접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55] 이 프로그램에는 다음과 같은 가족들이 등장했다.


  • 두 자녀와 부모를 매춘으로 부양하는 미혼모.
  • 끔찍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어린 고아 가족.
  • HIV에 감염된 여섯 자녀의 미혼모이자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지역 보건 의료 봉사자로 활동하는 여성.
  • 나이로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케냐 다른 지역에서 온 20세 키베라 신규 거주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012년 기사에서 키베라가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곳일 수 있다"고 제안하고 "빈민가를 게으름과 비참함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것을 오해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56]

2014년 소설 ''빙고의 질주(Bingo's Run)''(제임스 A. 레빈 저)에는 키베라 출신 15세 소년이 등장한다.

2015년 넷플릭스(Netflix) 시리즈 ''센스8(Sense8)''에는 키베라를 배경으로 하는 가상의 마타투(matatu) 운전사 카페우스 오냥고(Capheus Onyango)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곳의 고난을 보여준다.

8. 1. 영화 및 다큐멘터리

키베라에서 키베라 청소년 수습생들과 협력하여 장편 영화 ''투게더니스 수프림(Togetherness Supreme)''을 촬영하는 모습


키베라는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영화 컨스탄트 가드너에 등장하는데, 이 영화는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 컨스탄트 가드너를 원작으로 한다. 사라 맥라클란의 뮤직비디오 "월드 온 파이어"에도 언급되는데, 이 뮤직비디오는 2005년 ''타임''지로부터 세계 보건 영웅으로 선정된 풀뿌리 조직인 카롤리나 포 키베라의 활동을 조명했다.[54]

로버트 노이워스는 자신의 저서 ''섀도우 시티즈''에서 키베라에 관한 장을 할애하여 무허가 지역 사회라고 부르며, 키베라와 같은 곳이 미래 도시의 원형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이클 홀먼의 2005년 소설 ''해롯드의 마지막 주문''은 ''키레바''라는 가상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다. 빌 브라이슨은 케어를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일기"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는 키베라 방문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키베라는 주민들로만 구성된 출연진이 등장하는 단편 영화 ''키베라 키드(Kibera Kid)''의 배경이 된다. 이 영화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미국 영화계의 학생 에미상을 수상했다. 핫 선 재단과 핫 선 필름즈는 키베라 최초의 영화학교인 키베라 영화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빈민가의 청소년들에게 영화 제작과 자신의 이야기 전달 방법을 가르친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키베라 영화학교와 핫 선 재단은 키베라 키드의 후속 장편 영화인 ''투게더니스 수프림''을 공동 제작했다.

소리우스 사무라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부패와 더불어 살며''에서 케냐 사회 최하층의 부패를 촬영하기 위해 키베라의 한 가족과 함께 지냈다. 또한, 키베라는 2007년 오스트리아 다큐멘터리 Über Wasser: Menschen und gelbe Kanister에 묘사되어 있다.

2011년, BBC는 키베라에 관한 리얼리티 쇼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인 ''부자, 유명인 그리고 빈민가에서(Rich, Famous and in the Slums)''를 방영했다.[55]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012년 기사에서 키베라가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곳일 수 있다"고 제안하고 "빈민가를 게으름과 비참함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것을 오해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56]

2014년 소설 ''빙고의 질주''(제임스 A. 레빈 저)에는 키베라 출신 15세 소년이 등장한다.

2015년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8(Sense8)''에는 키베라를 배경으로 하는 가상의 마타투 운전사 카페우스 오냥고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곳의 고난을 보여준다.

  • 영화
  • * '''나이로비의 꿀벌'''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 '''물 위에서: 사람들과 노란색 용기''' (다큐멘터리, 오스트리아)
  • * Kibera Kid (베를린 영화제 상영)
  • 뮤직비디오
  • * '''세계가 불타오르다''' (사라 맥락랜 작품)

8. 2. 기타



키베라는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영화 컨스탄트 가드너에 등장하는데, 이 영화는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 컨스탄트 가드너를 원작으로 한다. 사라 맥라클란의 뮤직비디오 "월드 온 파이어"에도 언급되는데, 이 뮤직비디오는 2005년 ''타임''지로부터 세계 보건 영웅으로 선정된 풀뿌리 조직인 카롤리나 포 키베라의 활동을 조명했다.[54]

로버트 노이워스는 자신의 저서 ''섀도우 시티즈''에서 키베라에 관한 장을 할애하여 무허가 지역 사회라고 부르며, 키베라,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베이리,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와 같은 곳이 미래 도시의 원형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이워스는 그 외에도 이러한 도시들을 단순히 빈민가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많은 주민들이 훨씬 열악한 농촌 지역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이클 홀먼의 2005년 소설 ''해롯드의 마지막 주문''은 ''키레바''라는 가상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다. 빌 브라이슨은 케어를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여기에는 키베라 방문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키베라는 주민들로만 구성된 출연진이 등장하는 단편 영화 키베라 키드의 배경이 된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미국 영화계의 학생 에미상을 수상했다. 최근, 핫 선 재단과 핫 선 필름즈는 키베라 최초의 영화학교인 키베라 영화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빈민가의 청소년들에게 영화 제작과 자신의 이야기 전달 방법을 가르친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키베라 영화학교와 핫 선 재단은 키베라 키드의 후속 장편 영화인 투게더니스 수프림을 공동 제작했다.

소리우스 사무라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부패와 더불어 살며''에서 케냐 사회의 최하층에서도 발생하는 부패를 촬영하기 위해 키베라의 한 가족과 함께 지냈다. 또한, 키베라는 2007년 오스트리아 다큐멘터리 Über Wasser: Menschen und gelbe Kanister에 묘사되어 있다.

2011년, BBC는 키베라에 관한 리얼리티 쇼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인 ''부자, 유명인 그리고 빈민가에서''를 방영했다.[55] 이 프로그램은 네 명의 유명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빈민가에서 구할 수 있는 최악의 직업을 경험한 후, 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환경을 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기사에서 키베라가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곳일 수 있다"고 제안하고 "빈민가를 게으름과 비참함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것을 오해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56]

2014년 소설 ''빙고의 질주''(제임스 A. 레빈 저)에는 키베라 출신 15세 소년이 등장한다.

2015년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8''에는 키베라를 배경으로 하는 가상의 마타투 운전사 카페우스 오냥고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곳의 고난을 보여준다.

키베라를 배경으로 하거나, 키베라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종류제목제작자비고
영화나이로비의 꿀벌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영화Über Wasser: Menschen und gelbe Kanister다큐멘터리, 오스트리아
영화키베라 키드네이선 콜릿베를린 영화제 상영
뮤직비디오월드 온 파이어사라 맥라클란


참조

[1] 웹사이트 AHI: United States " Kibera: Africa's largest slum http://www.affordabl[...] Affordablehousinginstitute.org 2005-07-07
[2] 웹사이트 Kibera to Nairobi https://www.google.c[...] Google Maps 2017-05-26
[3] 웹사이트 A Trip Through Kenya's Kibera Slum https://internationa[...] International Medical Corps 2006-03-27
[4] 웹사이트 . Sanitation – vacutug | Participating countries http://mirror.unhabi[...] Un-Habitat.
[5] 뉴스 Machetes, Ethnic Conflict and Reductionism http://www.dominionp[...] The Dominion 2008-02-28
[6] 뉴스 Myth shattered: Kibera numbers fail to add up http://www.nation.co[...] 2010-09-03
[7] 논문 Understanding the Grassroots Dynamics of Slums in Nairobi: The Dilemma of Kibera Informal Settlements http://tuengr.com/V0[...] 2011
[8] 웹사이트 Audio Slideshow: Dr. Biden Sees the Neighborhoods of Kenya https://obamawhiteho[...] The White House, United States 2010-06
[9] 뉴스 Kibera: How slum lords cash in on misery https://web.archive.[...] The Nation, Kenya 2013-09-19
[10] 학술지 Kibera: The Biggest Slum in Africa? https://journals.ope[...] 2011-09-01
[11] 학술지 Are slum dwellers at heightened risk of HIV infection than other urban residents? Evidence from population-based HIV prevalence surveys in Kenya 2012-09
[12] 논문 Struggling for the 'right to the city': In situ informal settlement upgrading in Kibera, Nairobi Carleton University
[13] 학술지 Community-supported slum-upgrading: Innovations from Kibera, Nairobi, Kenya 2017-02
[14] 서적 Sanitation and hygiene in Kibera Slums, Nairobi : women´s concerns and nurses promotional tools Metropolia Ammattikorkeakoulu 2008-12-10
[15] 웹사이트 Facts and figures http://www.kibera.or[...] Kibera UK
[16] 뉴스 BBC News – Improving sanitation in Kibera https://www.bbc.co.u[...] 2011-09-29
[17] 서적 Actors and interests: The development of an informal settlement in Nairobi, Kenya Nordic Africa Institute
[18] 서적 A Companion to Media Authorship
[19] 학술지 The African crowd in Nairobi: Population movements and elite politics 1973
[20] 서적 Government and labour in Kenya: 1895–1963 Cass
[21] 학술지 Slum clearance and the informal economy in Nairobi 1992
[22] 논문 The Nubis of Kibera: a social history of the Nubians and Kibera slums https://openaccess.l[...] Leiden University, Netherlands
[23] 학술지 Plague conditions in an urban area of Kenya (Nairobi township) 1936
[24] 서적 A tale of two cities: Policy, law and illegal settlements in Kenya Zed Books Ltd
[25] 학술지 Anticolonial Homelands across the Indian Ocean: The Politics of the Indian Diaspora in Kenya, ca. 1930–1950 2011
[26] 뉴스 Boomtown slum – A day in the economic life of Africa's biggest shanty-town https://www.economis[...] The Economist 2012-12-22
[27] 학술지 Kill Me Quick, A History of Nubian Gin in Kibera 2009
[28] 학술지 Slum and squatter settlements in urban centres of Kenya: Towards a planning strategy 1989
[29] 학술지 Kibra Is Our Blood: The Sudanese Military Legacy in Nairobi's Kibera Location http://artsci.wustl.[...] 1997
[30] 간행물 Colonial Reports, Annual No. 1606 http://libsysdigi.li[...] His Majesty's Stationery Office, London
[31] 서적 The geography of Third World cities https://archive.org/[...] Barnes Noble Books
[32] 서적 The Nubians of Kibera 'Revisited': Detribalized Natives, Slum Dwellers, Middle Clas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33] 뉴스 The strange allure of the slums http://www.economist[...] 2007-05-03
[34] 서적 2019 Joint Urban Remote Sensing Event (JURSE) 2019-05
[35] 서적 The Planet of Slums
[36]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www.intlhc.or[...] 2022-01-15
[37] 웹사이트 . Sanitation – vacutug | Phases http://www.unhabitat[...] Un-Habitat. 2013-01-31
[38]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www.unhabitat[...] 2009-11-29
[39] 웹사이트 IRIN In-Depth | KENYA: Kibera, The Forgotten City | Kenya | Environment | Urban Risk http://www.irinnews.[...] 2006-09-13
[40] 웹사이트 Map Kibera Project http://mapkiberaproj[...]
[41] 논문 GIS, web, and 3D. Tools for holistic and shareable knowledge. The experience of the Map Kibera Project. 2012
[42] 논문 Map Kibera Project. Risultati e analisi dalla prima mappatura indipendente della baraccopoli di Kibera. 2010
[43] 웹사이트 Adolescence in the Kibera Slums of Nairobi Kenya http://www.popcounci[...] Population Council 2012-07-10
[44] 논문 "Kibra Is Our Blood": The Sudanese Military Legacy in Nairobi's Kibera Location, 1902–1968 1997
[45] 논문 The Nubis of Kibera: a social history of the Nubians and Kibera slums Faculty of the Humanities, Leiden University 2011
[46] 웹사이트 Biogas helping to clean up Nairobi slum http://www.dw.de/bio[...] Deutsche Welle 2014-11-03
[47] 웹사이트 Slum dwellers' response to free primary education: a case study of Kibera slum, Nairobi http://erepository.u[...] University of Nairobi 2010
[48] 웹사이트 Tunapanda Institute https://www.socialte[...] 2019-05-14
[49] 웹사이트 Kibera Black stars football club http://kiberablackst[...] 2014-03-01
[50] 뉴스 Kenya begins huge slum clearance http://news.bbc.co.u[...] BBC 2009-09-16
[51] 뉴스 Kenya moves 1,500 slum residents to new homes https://www.google.c[...] The Standard 2009-09-16
[52] 뉴스 Ecstasy as Kibera slum residents finally reach 'promised land' after years of waiting The Standard 2009-09-16
[53] 웹사이트 Kenya https://2001-2009.st[...] State.gov 2006-03-08
[54] 웹사이트 OneWorld South Asia Home / News – Slums have a history too http://www.oneworld.[...] Oneworld.net 2003-10-25
[55] 웹사이트 Famous, Rich And In The Slums Review: Putting Reality Back Into TV http://www.onthebox.[...] 2011-03-03
[56] 뉴스 Upwardly mobile Africa: Boomtown slum https://www.economis[...] 2012-12-22
[57] 웹사이트 Affordable Housing Institute blog http://www.affordabl[...]
[58] 뉴스 The Strange Allure of the Slums 2007-05-05
[59] 웹사이트 WarmAfrica.com article http://www.warmafric[...]
[60] 웹사이트 Map at Caroline for Kibera http://cfk.unc.edu/m[...]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