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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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살로니카 왕국은 제4차 십자군 이후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고 십자군에 의해 건국된 국가이다. 1204년 몬페라토의 보니파치오 1세가 테살로니카를 점령하고 왕국을 선포했으며, 아카이아 공국 등 십자군 국가들의 종주국 역할을 했다. 에페이로스 공국의 공격으로 1224년 테살로니카가 함락되어 데메트리우스 1세가 망명하면서 멸망했으나, 왕위는 명목상으로 1320년까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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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카 왕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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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일반 명칭 | 테살로니카 왕국 |
고유 명칭 (라틴어) | Regnum Thessalonicae |
국가 코드 | p1: 앙겔로스 왕조의 동로마 제국 image_p1: Simple Labarum.svg s1: 테살로니카 제국 border_s1: no flag_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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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테살로니카 |
공용어 | 공식: 라틴어 통용: 그리스어 |
종교 | 공식: 로마 가톨릭 통용: 동방 정교회 |
정치 체제 | 봉건 군주제 |
존속 기간 | 중세 |
건국 | 1204년 |
멸망 | 1224년 |
성립 사건 | 왕국 설립 |
멸망 사건 | 에피로스에 테살로니카 함락 |
계승 국가 | 에피로스 공국 |
통치자 | |
군주 칭호 | 테살로니카의 왕 |
1대 국왕 | 보니파시오 |
재임 기간 | 1205년 ~ 1207년 |
2대 국왕 | 데메트리오 |
재임 기간 | 1207년 ~ 1224년 |
역사 | |
이전 국가 | 동로마 제국 |
기타 | |
상태 | 라틴 제국의 봉신 (1204년 ~ 1224년) |
통화 | 알려진 바 없음 |
2. 역사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하자, 십자군 기사들과 제후들은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을 새 황제로 선출했다. 보니파치오는 군대를 이끌고 테살리아를 점령,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우고 보니파키오스 1세(또는 보니파키우스 1세)로 선포했다. 보니파치오 1세와 데메트리우스 1세 시대에 왕국은 아카이아 등 펠로폰네소스반도 십자군 국가들의 종주국이 되었고, 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등과 경쟁했다.
보니파치오 1세는 동로마 제국과 관계를 맺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후 헝가리 공주 마르기트와 결혼, 제4차 십자군 지도자였기에 라틴 제국 황제 후보로 유력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 견제로 황제가 되지 못하고 그리스에서 테살로니카 왕국을 건국했다.[1]
테살로니카 왕국은 그리스인 지지로 마케도니아에서 에게해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불가리아 제국, 에피루스 전제공국과 대립했다. 알렉시우스 3세가 코린토스를 점령했지만, 보니파치오 1세는 이를 격파하고 아카이아 공국, 아테네 공국 건설을 지원하며 종주권을 가졌다.[1]
1207년 9월, 불가리아 칼로얀의 급습으로 보니파치오 1세는 전사했고, 왕위는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다.[1] 어린 데메트리오 즉위 후 귀족들은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1209년 5월,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귀족들을 격파하고 섭정권을 얻었다. 에피루스와 불가리아 공격을 막았지만, 라틴 제국은 니케아 제국 방어에 집중하여 테살로니키 왕국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1215년 테오도로스가 에피루스 군주가 되자 왕국 영토는 점차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1]
테오도로스 콤네노스 두카스 통치 시기, 에페이로스 공국은 강력해져 왕국을 여러 번 공격했다. 1224년, 수도 테살로니카 함락으로 데메트리오스 1세는 도시를 탈출, 왕국은 멸망했다. 이후 왕국 칭호는 1320년까지 유지되었다.
2. 1. 배경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하고, 십자군 기사들과 제후들이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을 새 황제로 선출했다. 보니파치오는 군대를 이끌고 테살리아를 점령,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우고 보니파키오스 1세로 선포했다.몽페라토의 보니파스는 동로마 제국과 관계를 맺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후 전 황후인 헝가리 공주 마르기트와 결혼, 제4차 십자군의 지도자였기에 라틴 제국 황제의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강력한 황제를 원치 않았던 베네치아 공화국 때문에 황제 대신 그리스에서 테살로니카 왕국을 건국했다.[1]
보니파키오스와 그의 아들 데메트리우스 1세 시대에 왕국은 아카이아와 펠로폰네소스반도 십자군 국가들의 종주국이 되었고, 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등과 경쟁했다.
1207년 9월, 불가리아 칼로얀의 급습으로 보니파초 1세는 전사했고, 왕위는 어린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다. 귀족들은 데메트리오의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1209년 5월,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이들을 격파하고 섭정권을 얻었다. 이후 에피루스와 불가리아의 공격을 막았지만, 라틴 제국은 니케아 제국 등 방어에 전념하느라 테살로니키 왕국을 지원할 여유가 없었다. 1215년 에피루스 군주가 테오도로스로 바뀌자 왕국 영토는 점차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1]
2. 2. 건국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하고, 십자군 기사들과 제후들이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을 새 황제로 선출했다. 보니파치오는 군대를 이끌고 테살리아를 점령하여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우고 자신을 보니파키오스 1세(또는 보니파키우스 1세)로 선포했다.[1]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게 함락된 후, 보니파스는 십자군과 비잔틴 제국 모두에게 새 황제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공화국은 보니파스가 비잔틴 제국과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형제 몽페라토의 콘라드가 비잔틴 황실과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베네치아는 통제하기 쉬운 황제를 원했고, 플랑드르의 발두인이 라틴 제국의 새 황제로 선출되었다.
보니파스는 이를 수용하고 콘스탄티노플 다음으로 비잔틴 제국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카를 정복했다. 그는 이 도시를 원했던 황제 발두인과 경쟁해야 했다. 1204년 후반에 도시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는데, 이는 발두인에게 종속된 것이었지만 "왕" 칭호는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13세기 말과 14세기 초 자료에 따르면 보니파스는 1180년 그의 남동생 레니에가 마리아 콤네네와 결혼하면서 테살로니카를 받았다는 진술에 근거하여 테살로니카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1]
1204년부터 1205년까지 보니파스는 테살리아, 보이오티아, 에우보이아, 아티카를 거쳐 그리스 남부로 지배를 확장했다. 테살로니카 왕국의 실제 경계는 도모코스, 파르살루스, 벨레스티노까지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제토니온과 라벤니카 마을이 있는 테살리아 남부는 라틴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 지배했고, 그리스 남부 공국들은 보니파스의 봉건적 가신이었다.
보니파초 1세는 이전부터 동로마 제국과 관계를 맺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 후, 전 황비인 헝가리 공주 마르기트와 결혼했으며, 제4차 십자군의 지도자였기에 라틴 제국 황제의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강력한 황제를 싫어하는 베네치아 공화국 때문에 황제로 선출되지 못하고, 그리스로 가서 테살로니키 왕국을 건국했다.
이 국가는 그리스인들의 지지를 받아, 마케도니아에서 에게해까지 영유했지만, 불가리아 제국과 에피루스 전제공국과 대립했다. 알렉시우스 3세가 코린토스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이를 격파하고 아카이아 공국, 아테네 공국 건설을 도왔으며, 그 종주권을 가졌다.
1207년 9월, 불가리아의 칼로얀에게 급습당하여 보니파초 1세는 전사했다. 왕위는 유아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다.
2. 3. 확장과 발전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하고, 십자군 기사들과 제후들이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을 새 황제로 선출했다. 보니파치오는 군대를 이끌고 테살리아를 점령, 테살로니카 왕국을 선포하고 자신을 보니파키오스 1세(또는 ''보니파키우스 1세'')로 칭했다.[1] 그는 콘스탄티노플 다음으로 큰 비잔틴 제국의 도시 테살로니카를 정복했다. 13세기 말과 14세기 초 자료에 따르면 보니파체는 1180년 그의 동생 레니에가 마리아 콤네네와 결혼하면서 테살로니카를 받았다는 주장에 근거하여 테살로니카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1]보니파치오 1세는 동로마 제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후, 전 황후인 헝가리 공주 마르기트와 결혼했으며, 제4차 십자군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라틴 제국 황제의 유력한 후보였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의 견제로 황제가 되지 못하고 그리스로 가서 테살로니카 왕국을 건국했다.
1204년부터 1205년까지 보니파체는 테살리아, 보이오티아, 에우보이아, 아티카를 통과하며 그리스 남부로 지배를 확장했다. 테살로니카 왕국의 실제 경계는 도모코스, 파르살루스, 벨레스티노까지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제토니온과 라벤니카 마을이 있는 테살리아 남부는 라틴 황제가 임명한 총독의 지배를 받았고, 그리스 남부의 공국들은 보니파체의 봉신이었다. 그러나 1208년부터 1209년까지 황제 플랑드르의 앙리가 테살로니카의 반란을 일으킨 롬바르드 남작들을 상대로 원정하여 테살로니카에 대한 아테네 공국, 보도니차 후국, 살로나 영주국, 네그로폰테 삼두정치의 봉건적 종속을 종식시키고 직접적인 제국의 종주권으로 대체했다.
테살로니카 왕국은 그리스인들의 지지를 받아 마케도니아에서 에게해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불가리아 제국과 에피루스 전제공국과 대립했다. 또한 전 황제 알렉시우스 3세가 코린토스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이를 격파하고 아카이아 공국, 아테네 공국의 건설을 도왔으며, 그 종주권을 가졌다.
1207년 9월, 불가리아의 칼로얀에게 급습당하여 보니파치오 1세는 전사했다. 왕위는 어린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다. 어린 데메트리오의 지위를 둘러싸고 귀족들이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1209년 5월,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이들 귀족들을 격파하고 왕국의 섭정권을 얻었다. 그 후, 에피루스와 불가리아의 공격을 한 번은 막아냈지만, 라틴 제국 자체가 니케아 제국 등에 대한 방어에 바빠 테살로니키 왕국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2. 4. 롬바르디아 귀족 반란
보니파체의 통치는 2년도 채 되지 않아 불가리아 차르 칼로얀에게 기습을 당해 1207년 9월 4일에 사망하면서 끝을 맺었다.[1] 왕국은 아직 아기였던 보니파체의 아들 데메트리오스에게 넘어갔으나, 실제 권력은 롬바르디아 출신의 여러 소규모 귀족들이 쥐고 있었다.[1] 섭정 오베르토를 중심으로 한 이 귀족들은 보니파체의 장남 윌리엄을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며 라틴 제국 황제 플랑드르의 헨리에게 공개적으로 반항했다.[1] 헨리는 1209년에 그들을 공격하여 복종을 강요했다.[1] 그 결과 헨리의 형제 유스타스가 데메트리오스의 섭정이 되었다.[1]2. 5. 에페이로스 공국과의 전쟁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하자, 십자군 참여자들은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을 새 황제로 선출했다. 그러나 보니파치오는 테살리아를 점령하고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웠다. 초기에는 아카이아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십자군 국가들의 종주국 역할을 하며, 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등과 경쟁했다.테오도로스 콤네노스 두카스 통치 시기, 에페이로스 공국은 강력해져 왕국을 여러 번 공격했다. 1224년, 수도 테살로니카가 함락되면서 데메트리오스 1세는 도시를 탈출했고 왕국은 멸망했다.
보니파키우스 1세는 1207년 불가리아 차르 칼로얀의 기습으로 사망했다. 왕위는 아들 데메트리오스에게 넘어갔지만, 롬바르디아 출신 귀족들이 실권을 잡았다. 섭정 오베르토는 윌리엄을 왕위에 앉히려 했고, 라틴 제국 황제 플랑드르의 헨리에게 반항했다. 헨리는 1209년에 이들을 제압하고 유스타스를 섭정으로 임명했다.[1]
이 틈을 타 에피루스의 미카엘 1세가 1210년 불가리아인들과 함께 왕국을 공격했다. 플랑드르의 앙리는 이들을 물리쳤으나, 미카엘 1세 사후 테오도로스가 공격을 재개했다. 테오도로스는 9년 동안 테살로니카를 점차 정복했고, 1224년 데메트리오스가 성장했을 때 테살로니카를 점령하여 왕국은 에피루스 전제 공국에 병합되었다.[1]
1207년 9월, 보니파초 1세는 불가리아의 칼로얀에게 전사했다. 어린 데메트리오 즉위 후 귀족들은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앙리 1세는 1209년 5월 귀족들을 격파하고 섭정권을 얻었다. 에피루스와 불가리아의 공격은 막았지만, 라틴 제국은 니케아 제국 방어에 집중하여 테살로니키 왕국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1215년 테오도로스가 에피루스 군주가 되자 왕국 영토는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 1224년 데메트리오가 친정을 시작했지만, 에피루스 전제공국에 테살로니키를 함락당하고 망명하여 왕국은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2]
2. 6. 멸망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한 후, 테살로니카 왕국은 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등과 경쟁했다. 그러나 에페이로스 공국의 테오도로스 콤네노스 두카스가 여러 차례 공격하여 1224년 수도 테살로니카가 함락되었고, 데메트리오스 1세는 도시를 탈출하여 왕국은 멸망했다.[1] 이후 왕국의 명의는 1320년까지 유지되었다.[1]1210년 보니파키우스 1세의 동맹이었던 에피루스의 미카엘 1세는 불가리아인들과 함께 왕국을 공격했다.[2] 플랑드르의 앙리는 이들을 물리쳤으나, 1214년 미카엘 1세가 사망한 후 그의 형제이자 후계자인 테오도로스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2] 이후 9년 동안 테오도로스는 테살로니카 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를 점령했다.[2] 라틴 제국은 니케아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테살로니카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2] 1224년, 데메트리오스가 성인이 되어 권력을 잡았을 때 테오도로스는 마침내 테살로니카를 점령했고, 왕국은 에피루스 전제 공국에 병합되었다.[2]
1207년 9월, 불가리아의 칼로얀이 보니파초 1세를 급습하여 전사시키고, 왕위는 어린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다. 귀족들은 어린 데메트리오스를 둘러싸고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1209년 5월,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이들을 격파하고 왕국의 섭정권을 얻었다. 이후 에피루스와 불가리아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라틴 제국은 니케아 제국 방어에 집중하느라 테살로니키 왕국을 지원할 여유가 없었다. 1215년 에피루스의 군주가 테오도로스로 바뀌면서 왕국 영토는 점차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 1224년 데메트리오가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에피루스 전제공국이 테살로니키를 함락시키고, 데메트리오는 망명하여 왕국은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 몬페라토 후작 알레라미치 가문은 왕국의 칭호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3. 테살로니카의 군주
몬페라토 후작 보니파초 1세는 동로마 제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 후 헝가리 공주 마르기트와 결혼했으며, 제4차 십자군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라틴 제국 황제의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반대로 황제가 되지 못하고 그리스에서 테살로니카 왕국을 건국했다.
이 국가는 그리스인들의 지지를 받아 마케도니아에서 에게해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불가리아 제국과 에피루스 전제공국과 대립했다. 또한 전 황제 알렉시우스 3세를 격파하고 아카이아 공국, 아테네 공국 건설을 지원하며 종주권을 가졌다.
1207년 9월, 보니파초 1세는 불가리아의 칼로얀에게 급습당해 전사했다. 왕위는 어린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고, 귀족들이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1209년 5월,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이들을 격파하고 섭정권을 얻었다. 이후 에피루스와 불가리아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라틴 제국은 니케아 제국 등에 대한 방어에 집중하면서 테살로니카 왕국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1215년 에피루스의 군주가 테오도로스로 바뀌면서 왕국 영토는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 1224년 데메트리오가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테살로니키는 함락되었고, 데메트리오는 망명하여 왕국은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
이후 왕위는 명목상 몬페라토 후작 알레라미치 가문의 권리로 남아 있었다.
3. 1. 실질적인 군주
1207년 9월, 불가리아의 칼로얀에게 급습당해 보니파키우스 1세가 전사하면서, 왕위는 어린 데메트리우스에게 넘어갔다. 어린 데메트리우스의 지위를 둘러싸고 귀족들이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1209년 5월에 이들 귀족들을 격파하고, 왕국의 섭정권을 얻었다. 1224년, 데메트리우스가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에피루스 전제공국에 테살로니키를 공략당하고, 데메트리우스는 망명하여 왕국은 에피루스에 병합되었다.
3. 2. 섭정
1207년 9월, 불가리아의 칼로얀에게 급습당해 보니파초 1세가 전사하면서, 왕위는 어린 아들 데메트리오에게 넘어갔다.[1] 어린 데메트리오의 지위를 둘러싸고 귀족들이 권력을 잡고 라틴 제국에 반항했다.[1] 라틴 제국 황제 앙리 1세는 1209년 5월에 이들 귀족들을 격파하고 왕국의 섭정권을 얻었다.[1]3. 3. 명의 군주
테살로니카 왕국은 1204년 건국되어 1224년 에피루스 전제 공국에 병합될 때까지 존속했다. 이후 테살로니카 왕의 칭호는 명목상으로만 유지되었다.- 보니파초 1세 디 몬페라토 (1204년 - 1207년): 테살로니카 왕국의 건국자.
- 데메트리오 디 몬페라토 (1207년 - 1224년): 1224년 테살로니카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왕위를 유지했다.
1284년 구리에르모 7세 디 몬페라토의 딸 비올란테 에이레네와 동로마 제국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의 결혼, 그리고 1305년 조반니 1세 디 몬페라토의 사망으로 테살로니카 왕위는 실질적으로 소멸되었다.
3. 3. 1. 몬페라토 공작가
1224년 에피루스 전제공국에 병합되어 멸망한 이후 테살로니카 왕국의 명목상 왕위 দাবিদার는 다음과 같다.- 데메트리우스 1세 (1224년 - 1227년)
- 보니파초 2세 디 몬페라토 (1227년 - 1255년) - 데메트리우스의 이복형 구리에르모 6세 디 몬페라토(1225년 사망)의 아들
- 구리에르모 7세 디 몬페라토 (1255년 - 1292년) - 보니파초 2세의 아들
- 조반니 1세 디 몬페라토 (1292년 - 1305년) - 구리에르모 7세의 아들
1284년 구리에르모 7세의 딸 비올란테 에이레네와 동로마 제국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의 결혼, 1305년 조반니 사망으로 테살로니카 왕위는 실질적으로 소멸되었다. 테살로니카 왕국은 1284년까지 몬페라토 가문의 명목상 왕들과 부르고뉴 공작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발두인 2세는 라틴 제국을 되찾을 경우 휴 4세에게 이 칭호를 약속했었다.
3. 3. 2. 호엔슈타우펜 가문
- 페데리쿠스 (1230년 ~ 1239년)
테살로니카 왕국은 1284년까지 몬페라토 가문의 명목상 왕들과 부르고뉴 공작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발두인 2세는 라틴 제국을 되찾을 경우 휴 4세에게 이 칭호를 약속했었다.
3. 3. 3. 몬페라토 공작가
- 보니파키우스 2세 (1239–1253)
- 굴리엘무스 (1253-1266)
테살로니카 왕국은 1284년까지 몬페라토 가문의 명목상 왕들과 부르고뉴 공작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발두인 2세는 라틴 제국을 되찾을 경우 휴 4세에게 이 칭호를 약속했었다.
다음은 명목상의 테살로니카 왕 호칭 보유자이다.
(1224년, 테살로니카 왕국은 에피루스 전제 공국에 병합되어 멸망)
이름 | 재위 기간 |
---|---|
데메트리오 디 몬페라토 | 1224년 - 1227년 |
보니파초 2세 디 몬페라토 | 1227년 - 1255년 |
구리에르모 7세 디 몬페라토 | 1255년 - 1292년 |
조반니 1세 디 몬페라토 | 1292년 - 1305년 |
1284년 구리에르모 7세의 딸인 비올란테 에이레네와 동로마 제국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의 결혼, 그리고 1305년 조반니 사망에 따라 테살로니카 왕의 호칭은 실질적으로 소멸되었다.
3. 3. 4. 부르고뉴 공작가
- 우고 4세 (1266-1271)
- 로베르 2세 (1273-1305)
- 우고 5세 (1305-1313)
- 루이 (1313-1316)
- 에우데스 4세 (1316–1320)
테살로니카 왕국은 1284년까지 몬페라토 가문의 명목상 왕들에 의해, 그리고 부르고뉴 공작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발두인 2세는 라틴 제국을 되찾을 경우 휴고 4세에게 이 칭호를 약속했었다.
3. 3. 5. 부르봉 가문
- 루도비쿠스 2세 (1320)
테살로니카 왕국은 1284년까지 몬페라토 가문의 명목상 왕들과 부르고뉴 공작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발두인 2세는 라틴 제국을 되찾을 경우 휴 4세에게 이 칭호를 약속했었다.
4. 십자군 국가
제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일시 멸망하고, 십자군 기사들과 제후들은 새 황제로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을 선출했다. 보니파치오는 테살리아를 점령하고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워 스스로 보니파키오스 1세(또는 ''보니파키우스 1세'')로 칭했다.[1] 보니파치오와 그의 아들 데메트리우스 1세 시대에 왕국은 아카이아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십자군 국가들의 종주국이 되었고, 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등과 경쟁하였다.
그러나 테오도로스 콤네노스 두카스 통치 시기 에페이로스 공국이 강력해져 왕국을 여러 번 공격하여 승리했고, 1224년 수도 테살로니카가 함락되면서 데메트리오스 1세가 도시를 탈출하여 왕국은 멸망했다. 이후 명의뿐인 왕위는 1320년까지 이어졌다.
참조
[1]
서적
Chronicle
1966
[2]
서적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Fred de Fau and Co.
[3]
서적
The Old French Chronicle of Morea: An Account of Frankish Greece after the Fourth Crusade
Routledge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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