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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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스카나의 군주는 토스카나 지역을 통치했던 군주들을 의미하며, 토스카나 변경백국, 피렌체 통치 시기, 토스카나 대공국, 에트루리아 왕국, 프랑스 통치 시기, 이탈리아 통일 이후의 명목상 작위 주장자들을 포함한다. 9세기부터 1197년까지는 보니파치 가문, 아를 가문, 제 가문, 카노사 가문 등이 변경백으로 통치했으며, 1197년 이후에는 피렌체, 피사, 시에나 등 여러 공화국으로 분열되었다. 1569년부터 1737년까지는 메디치 가문이 대공국을 통치했으며, 1737년부터 1801년까지는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이, 1801년부터 1807년까지는 부르봉파르마 가문이, 1807년부터 1814년까지는 프랑스가, 1814년부터 1860년까지는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이 통치했다. 1860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는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이 명목상 작위 주장자로 남아있다.
9세기에는 변경백들이 토스카나 변경백령의 일부였던 이 지역을 통치했다.[6] 11세기부터 이 지역은 피사, 피렌체, 시에나, 루카, 아레초 등을 포함한 여러 독립 도시로 분할되었다.[6]
2. 토스카나 변경백국 (812년–1197년)
토스카나 변경백은 다음과 같다:이름 재위 기간 보니파초 3세 1002년 - 1012년 라니에리 디 토스카나 1014년 - 1024년 콘라트 2세 폰 샤이언-다하우 1120년 - 1127년 하인리히 10세 1135년 - 1139년 울리히 폰 아템스 1139년 - 1152년 벨프 6세 1152년 - 1167년 라이날트 폰 다셀 1160년 - 1163년 크리스티안 1세 폰 부흐 1163년 - 1173년 필리포 디 즈베비아 1195년 - 1197년
2. 1. 보니파초 가문
보니파치 가문은 본래 루카 백작이었으나, 점차 영토를 확대해 나갔다.2. 2. 보소 가문
이들은 본래 이탈리아의 군주 위그 다를의 친척들(대부분 서자)이며, 위그 다를이 보니파초 가문을 없앤 후 이들에게 이 작위를 임명하였다.
2. 3. 보니파초 가문 (재건)
2. 4. 비왕조 시기
: 본래는 루카 백작이었으나, 점차 영토를 확대해 나갔다.
| 이름 | 재위 기간 |
|---|---|
| 보니파초 1세 | 812년 - 813년 |
| 보니파초 2세 | 828년 - 834년 |
| 아가노 | 835년 - 845년 |
| 아달베르토 1세 | 847년 - 886년 |
| 아달베르토 2세 | 886년 - 915년 |
| 귀도 | 915년 - 929년 |
| 람베르토 | 929년 - 931년 |
;아를 가문
: 이탈리아 왕 우고는 전 토스카나 변경백 가문을 배제하고 자신의 친족에게 변경백위를 주었다.
; 제 가문
;카노사 가문
| 이름 | 재위 기간 |
|---|---|
| 보니파초 4세 | 1027년 - 1052년 |
| 페데리코 | 1052년 - 1055년 |
| 마틸데 | 1052년 - 1056년 |
| 베아트리체 디 바르 | 1052년 - 1076년 |
| 고프레도 1세 | 1054년 - 1069년 |
| 고프레도 2세 | 1069년 - 1076년 |
| 마틸데 (복위) | 1076년 - 1115년 |
| 구엘포 | 1089년 - 1095년 |
; 제 가문
| 이름 | 재위 기간 |
|---|---|
| 콘라트 2세 폰 샤이언-다하우 | 1120년 - 1127년 |
| 하인리히 10세 | 1135년 - 1139년 |
| 울리히 폰 아템스 | 1139년 - 1152년 |
| 벨프 6세 | 1152년 - 1167년 |
| 라이날트 폰 다셀 | 1160년 - 1163년 |
| 크리스티안 1세 폰 부흐 | 1163년 - 1173년 |
| 필리포 디 즈베비아 | 1195년 - 1197년 |
2. 5. 카노사 가문
이들은 카노사 백작 가문의 후손이다.[1]- 보니파초 4세: 1027년–1052년[1]
- 페데리코: 1052년–1055년[1]
- 마틸데: 1052년–1115년[1]
- * 베아트리스 드 바르(페데리코와 마틸데의 어머니로서 섭정): 1052년–1055년[1]
- * 고드프루아 2세 드 바스로타링기아(베아트리스의 남편이자 페데리코와 마틸데의 계부로서 섭정): 1053년–1069년[1]
- * 고드프루아 3세 드 바스로타링기아(마틸데의 남편으로서 섭정): 1069년–1076년[1]
- * 겔포 5세(마틸데의 남편으로서 공동 섭정): 1089년–1095년[1]
2. 6. 비왕조 시기
- 라보도 (1116–1119)[1]
- 코라도 (1119/20–1129/31)[2]
- 람프레트 (c. 1131)[3]
- 엥겔베르트 (1134/5–1137)[4]
- 엔리코 (1137–1139)[5]
- 울리히 폰 아템스 (1139–1152, 황제 대리)[6]
- 벨프 6세 (1152–1160)[7]
- 벨프 7세 (1160–1167)[8]
- * 라이날드 폰 다셀 (1160–1163, 황제 대리)[9]
- * 크리스티안 1세 폰 부흐 (1163–1173, 황제 대리)
- 벨프 6세 (1167–1173)
- 필리프 (1195–1197)
::1197년에 필리프는 독일의 군주로 선출되었고, 다수의 토스카나 귀족, 도시, 주교들은 교황의 지지와 함께 토스카나 동맹을 결성하였다.
3. 피렌체 통치 시기 (1382년–1569년)
1382년부터 1569년까지 피렌체는 알비치 가문과 메디치 가문의 통치를 받았다. 1494년부터 1512년까지, 그리고 1527년부터 1530년까지는 공화정이 복귀되기도 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1494년부터 1498년까지 신정 정치를 주장하며 피렌체를 통치했으나, 실각 후 처형되었다. 피에로 소데리니는 1502년부터 1512년까지 정의의 기수로서 피렌체를 이끌었지만, 메디치 가문이 복귀하면서 망명했다.[1]
1512년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피렌체의 통치자가 되었으나,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로마로 이동했다. 이후 줄리아노 데 메디치, 로렌초 데 메디치,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이 차례로 피렌체를 통치했다. 1523년에는 이폴리토 데 메디치 추기경과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가 공동 통치했으나, 시민들에 의해 추방되었다.
1530년,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는 독일의 지원을 받아 피렌체에 복귀했고, 1532년에는 피렌체 공작에 봉해졌다.
3. 1. 알비치 가문 참주 시기 (1382–1434)
- 마소 델리 알비치 (1382년-1417년)[1]
- 리날도 델리 알비치 (1417년-1434년)[1]
3. 2. 메디치 가문 참주 시기 (1434–1531)
| 이름 | 재위 기간 | 비고 |
|---|---|---|
| 코시모 데 메디치 | 1434년–1464년 | |
| 피에로 1세 데 메디치 | 1464년–1469년 | 통풍 걸린 자 |
| 로렌초 데 메디치 | 1469년–1492년 | 마니피코 |
| 줄리아노 데 메디치 | 1469년–1478년 | |
| 피에로 2세 데 메디치 | 1492년–1494년 | 불운한 자, 시민에 의해 추방 |
| 공화정으로 수복 | 1494년–1512년 |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1494년–1498년, 실각·처형), 피에로 소데리니 (1502년–1512년, 메디치 가문 복귀로 망명) |
| 조반니 데 메디치 | 1512년–1513년 | 교황 레오 10세로 선출 |
| 줄리아노 데 메디치 | 1513년–1516년 | |
| 로렌초 2세 데 메디치 | 1516년–1519년 | |
| 줄리오 데 메디치 | 1519년–1523년 | 교황 클레멘스 7세로 선출 |
| 이폴리토 데 메디치 | 1523년–1527년 | 시민에 의해 추방 |
|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 1523년–1527년 | 시민에 의해 추방 |
| 공화정으로 수복 | 1527년–1530년 | |
|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 1530년–1531년 | 1532년에 피렌체 공작에 봉해짐 |
3. 3.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공작 (1531년–1569년)
4. 토스카나 대공국 (1569년–1860년)
9세기에 변경백들이 토스카나 변경백령의 일부였던 이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11세기부터 이 지역은 피사, 피렌체, 시에나, 루카, 아레초 등을 포함한 여러 독립 도시로 분할되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의 영토 확장을 통해 토스카나는 단일 지도자 아래 다시 결합되기 시작했고, 1569년 토스카나 대공국이 창설되면서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대공국은 수 세기 동안의 정치적 분열 이후, 대부분의 지역이 단일 지도자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된 최초의 시기였습니다. 대공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토스카나 지역 전체를 거의 포함했지만, 루카 공화국, 피옴비노 공국, 마사 에 카라라 공국, 그리고 프레시디 국가는 예외였습니다.[7]
토스카나 대공국은 1569년 코시모 1세가 초대 대공으로 즉위하면서 시작되었으며, 메디치 가문의 통치는 1737년 잔 가스토네가 후사 없이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 1738년 빈 조약에 따라 로렌 출신의 프란체스코 2세 스테파노가 토스카나 대공위를 계승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부르봉파르마 가문이 에트루리아 왕국을 세워 토스카나 지역을 통치하기도 했으나, 나폴레옹 몰락 이후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이 복위하여 1860년까지 통치했습니다.
1849년과 1859년에는 혁명으로 인해 레오폴도 2세가 일시적으로 축출되기도 했습니다. 레오폴도 2세는 1859년 아들 페르디난도 4세에게 양위했지만, 페르디난도 4세는 토스카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임시 정부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9] 결국 1860년 토스카나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합병되었습니다.[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