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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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국기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초승달과 별이 있는 디자인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의 공식 상징이다. 국기의 기원은 1793년 오스만 제국 시대에 나타났으며, 1844년에 별이 추가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 선포 이후 오스만 제국의 국기를 유지했으며, 1936년 터키 국기법에서 비례 표준화가 도입되었다. 국기 규격은 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빨간색은 CIELAB 색 공간에서 27.5/44.8/15.6으로 지정된다. 튀르키예 국기는 국가 기관, 군복, 기념일 및 행사, 장례식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며, 다른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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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국기 | |
---|---|
국기 정보 | |
용도 | 국기, 상선기 |
문양 | [[File:FIAV flag code 111111.svg|20px]] |
비율 | 2:3 |
제정일 | 1844년 (오스만 제국 국기), 1936년 5월 29일 (표준화) |
디자인 | 붉은 바탕에 흰색 별과 초승달이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있음 |
명칭 | |
한국어 | 튀르키예의 국기 |
튀르키예어 | Türk bayrağı (튀르크 바이라으) Al bayrak (알 바이라크) Al sancak (알 산자크) |
별칭 | Ay Yıldız (아이 을드즈, 달과 별) |
2. 역사
튀르키예의 국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디자인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 초승달과 별의 유래: 튀르키예 국기에 있는 초승달과 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군대의 침입을 초승달 빛이 막아냈다는 전설이 있다.
- 1398년 코소보 전투 후 피바다에 나타난 달과 별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다.
- 오스만 1세의 꿈, 메흐메트 2세가 본 밤하늘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 혁명 승리의 밤에 전장에서 본 피바다에 비친 초승달과 별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 오스만 제국 시대: 튀르키예 국기의 기본 형태는 셀림 3세가 통치하던 1793년경에 나타났고, 1844년에 별이 추가되었다. 이 디자인은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별과 초승달 문양은 18세기 말부터 오스만 제국의 국기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1844년에 공식적으로 국기로 채택되었다.[4]
- 튀르키예 공화국: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된 후에도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국기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1936년 6월 5일 튀르키예 국기법을 통해 국기의 비율이 표준화되었다.[3]
이 붉은색 바탕의 깃발은 튀르키예 혁명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2. 1. 오스만 제국 이전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대가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의 성벽 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398년 코소보 전투 이후 피바다 속에 나타난 신비로운 달과 별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기의 기본 형태는 술탄 셀림 3세가 지배하던 1793년경에 나타났고, 1844년에 별이 추가되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사용하였다.2. 2. 오스만 제국 시기
별과 초승달 디자인은 18세기 말 또는 19세기 초부터 오스만 제국 국기에 나타났다. 1844년에 탄지마트 개혁의 일환으로 빨간색 바탕에 흰색 별과 초승달이 있는 오스만 제국의 국기가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4]1398년의 코소보 전투가 끝난 후 피바다 속에 나타난 신비로운 달과 별을 가리킨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있다. 기의 기본 형태는 술탄 셀림 3세가 지배하던 1793년경에 나타났고, 1844년에 별이 추가되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사용하였다.
1923년 터키 공화국 선포 이후, 새로운 행정 체제는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국기를 유지했다. 1936년 터키 국기법에서 비례 표준화가 도입되었다.[3]
'''초승달과 별의 깃발''' 혹은 '''월성장 기'''(Ay Yıldıztr)는 원래 1844년에 공식적으로 정해진 오스만 제국의 국기(1844년-1923년)이며, 거의 같은 디자인이다. 1844년에 공식 국기가 채택되기 전까지, 오스만 제국에는 단일 국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오스만 제국 기 외에, 룸 렐리 기나 술탄 기, 전쟁 기, 해군 기, 시민 기 등, 용도별로 다양한 깃발이 사용되었다(이들은 공식 국기 제정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현재 이 초승달과 별의 조합은 이슬람교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이슬람교가 공식적으로 상징으로 채택한 것은 아니며, 소아시아에서는 이슬람교의 보급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오스만 제국 시기에 사용되었던 국기들이다.
깃발 | 사용 기간 | 설명 |
---|---|---|
-- | 1204년-1461년 | 트라페주스 제국의 국기 |
-- | 1517년 이전 | 오스만 제국의 국기 |
-- | 1793년 이전 | 오스만 제국의 국기 |
1793년 이전 | 오스만 제국의 해군기 | |
-- | 1793년 이전 | 오스만 제국의 제독기 |
-- | 1793년 이전 | 무슬림 전용 상선기 |
-- | 1793년 이전 | 유대인 전용 상선기 |
-- | 1793년 이전 | 그리스인 전용 상선기 |
-- | 1793년 | 오스만 제국의 국기 |
-- | 1844년-1922년 | 오스만 제국의 국기 |
-- | 술탄의 기 |
2. 3. 터키 공화국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선포 이후, 새로운 행정 체제는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국기를 유지했다. 1936년 터키 국기법에서 비례 표준화가 도입되었다.[3] 현재의 국기 형태는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36년 6월 5일 추인한 것이다.[3]'''초승달과 별의 깃발''' 혹은 '''월성장 기'''(Ay Yıldıztr)라고 불린다. 원래는 탄지마트 개혁으로 1844년에 공식적으로 정해진 오스만 제국의 국기(1844년-1923년)이며, 거의 같은 디자인이다. 1844년에 공식 국기가 채택되기 전까지, 오스만 제국에는 단일 국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오스만 제국 기 외에, 룸 렐리 기나 술탄 기, 전쟁 기, 해군 기, 시민 기 등, 용도별로 다양한 깃발이 사용되었다(이들은 공식 국기 제정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초승달과 별의 깃발" 혹은 "월성장 기"는 복잡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이 붉은색 바탕의 깃발은 튀르키예 혁명에서도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2. 4. 국기 디자인에 관한 전설
튀르키예의 국기 디자인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전설이 전해진다.-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흘러나온 엄청난 피바다에 초승달과 별이 비쳐 보였고, 이를 술탄 무라트 1세가 국기로 삼았다고 한다.
- 오스만 1세의 꿈속에서 그의 가슴에서 나온 초승달과 별이 확대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의 전조를 알렸다.
-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의 밤에 메흐메트 2세가 초승달과 별을 밤하늘에서 보았다.
- 가장 신빙성 있는 설로는 튀르키예 혁명의 지도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 혁명 승리의 밤에 전장을 걷다가 사카르야의 바위산에서 흘러나온 피바다에 초승달과 별이 비쳐 보였다고 한다.
- 초승달과 별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비잔티온(비잔티움, 그 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이스탄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오스만 제국의 상징으로 채택되었다고도 한다. 초승달은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상징이며, 별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낸다.
-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대가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의 성벽 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3. 법적 근거
튀르키예 국기의 기본은 1936년 5월 29일 제정된 튀르키예 국기법 제2994호에 의해 마련되었다.[1] 1937년 7월 28일자 튀르키예 국기 규정 제2/7175호와 1939년 7월 29일자 보충 규정 제11604/2호는 국기법의 시행 방식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되었다.[1] 1983년 9월 22일자 튀르키예 국기법 제2893호는 1983년 9월 24일 관보에 게재되었으며, 공포 후 6개월 뒤 발효되었다.[1] 제2893호 9조에 따르면, 시행의 기본을 담은 법령 또한 공포되었다.[1]
4. 규격 및 색상
(#E30A17)
(#FFFF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