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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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강 채씨는 감찰규정을 지낸 채경연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시대에 채송년이 최향의 난을 평정하고 대장군에 올라 가문을 일으켰으며, 그의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세족으로 성장했다. 조선 시대에는 채제공이 영의정에 올랐다. 주요 인물로는 채정, 채인규, 채홍철, 채하중, 채세걸, 채세영, 채유후, 채제공 등이 있으며, 현대에는 애경그룹 창업자 채몽인, 국회의원 채영석, 채영복, 채일병, 채한병, 채수찬, 채동욱 등이 있다. 평강 채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45명, 무과 급제자 61명을 배출했고, 2015년에는 84,877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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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평강 채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번성한 가문이다. 고려 시대에는 채송년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가문을 빛냈고, 조선 시대에는 채제공이 영의정에 올랐다.
2. 1. 고려 시대
평강 채씨(平康蔡氏) 시조 채경연(蔡敬延)은 감찰규정(監察糾正)의 벼슬을 하였다. 그의 아들 채방(蔡邦)은 검교신호위 대장군(檢校神虎衛大將軍), 손자 채수갑(蔡壽甲)은 문림랑사재동정(文林郞司宰同正), 증손자 채영(蔡泳)은 태묘서령(太廟署令)을 지냈다.채영(蔡泳)의 아들 '''채송년'''(蔡松年)은 고려 고종 때 최향의 난을 평정하고 대장군(大將軍)에 올랐으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시호는 경평(景平)이다. 중시조 채송년의 묘소는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楡津面)에 있으며, 후손들은 대대로 평강에 살면서 본관으로 삼았다.
채송년의 장남 평강군(平康君) 채정(蔡楨)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차남 채자화(蔡子華)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의 벼슬을 하였다. 채자화의 아들 채모(蔡模), 채모의 아들 채종린(蔡宗麟) 등 4세가 연달아 승상(丞相)을 지내면서 8명의 정승을 배출하였다.
채송년의 손자 채인평(蔡仁平)·채인규(蔡仁揆)·채모(蔡謨)는 각각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첨의중찬(僉議中贊)·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지내면서 세족으로 성장하였다. 채인규의 아들 채우(蔡禑)와 채모의 아들 채종린(蔡宗璘)·채종서(蔡宗瑞)도 각각 삼사사(三司使)·우승지(右承旨)·판사(判事)를 지내면서 가세를 이어갔다. 채영의 고손자인 채홍철(蔡洪哲)·채하중(蔡河中)·채하로(蔡河老) 부자도 찬성사(贊成事)·정승(政丞)·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각각 역임하는 등 가세가 더욱 번창하였다.
2. 2.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는 채제공(蔡濟恭)이 영의정에 올랐다.3. 주요 인물
평강 채씨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현대 인물은 아래 표와 같다.
3. 1. 고려
- 채정 : 채송년의 아들. 원종이 몽골에 갈 때 호종한 공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1271년 문하시랑평장사가 되었다.[1]
- 채인규 : 채정의 아들.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에 이르렀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 채홍철 : 1283년(충렬왕 9) 과거에 급제하여 응선부녹사(膺善府錄事)가 된 뒤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로 장흥부(長興府)에 출보되었다.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하였다. 1314년(충숙왕 1)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5도순방계정사(五道巡訪計定使)에 임명되었다. 1315년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오르고, 삼사사(三司事)·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고, 1320년 평강군(平康君)에 봉해졌다. 1332년 충숙왕이 복위하자 다시 찬성사로 기용되어 삼중대광(三重大匡) 순천군(順天君)으로 개봉(改封)되고, 순성보익찬화공신(純誠輔翊贊化功臣)의 호를 받았다.
- 채하중 : 채홍철의 아들. 1342년 정승으로서 1등공신이 되고, 1344년(충목왕 즉위) 우정승을 거쳐 1354년 평강부원군(平康府院君)에 봉해졌다.
3. 2. 조선
- 채인규(蔡仁揆, ? ~ 1303년) : 채정의 아들로, 벼슬은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에 이르렀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1]
- 채홍철(蔡洪哲, 1262년 ~ 1340년) : 자는 무민(無悶), 호는 중암거사(中菴居士)이다. 1283년(충렬왕 9) 과거에 급제하여 응선부녹사(膺善府錄事)에 보임된 뒤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로 장흥부(長興府)에 출보되었다. 1308년 충선왕 즉위 후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 1314년(충숙왕 1)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5도순방계정사(五道巡訪計定使)에 임명되었다. 1315년 첨의평리(僉議評理), 삼사사(三司事)·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고, 1320년 평강군(平康君)에 봉해졌다. 1332년 충숙왕 복위 후 다시 찬성사로 기용, 삼중대광(三重大匡) 순천군(順天君)으로 개봉(改封)되고 순성보익찬화공신(純誠輔翊贊化功臣)의 호를 받았다.
- 채하중(蔡河中, ? ~ 1358년) : 채홍철의 아들. 1342년 정승으로서 1등공신이 되고, 1344년(충목왕 즉위) 우정승을 거쳐 1354년 평강부원군(平康府院君)에 봉해졌다.
- 채세걸(蔡世傑, 1480년 ∼ ?) : 1510년(중종 5) 식년 문과에 아원으로 급제, 이조참판(吏曹參判),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 채세영(蔡世英, 1490년 ~ 1568년) : 1517년 별시 문과에 급제, 명종조에 공조판서(工曹判書), 호조판서(戶曹判書), 의정부 좌우참찬(議政府左右參贊) 겸 지경연(兼知經筵)에 이르렀다.
- 채유후(蔡裕後, 1599년 ∼ 1660년) : 1623년(인조 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효종조에 대제학, 대사헌, 이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 채팽윤(蔡彭胤, 1669년 ∼ 1731년) : 병조참판, 부제학.
- 채제공(蔡濟恭, 1720년 ∼ 1799년) : 1735년(영조 11) 향시에 급제, 1743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대사헌·경기감사·개성유수·예문관제학·비변사당상·홍문관제학·함경도관찰사·한성판윤을 지냈다. 1770년부터 병조·예조·호조판서를 역임하고, 1772년 이후 세손우빈객·공시당상(貢市堂上)이 되었다. 1775년 평안도관찰사를 지냈고, 정조가 왕세손으로 대리청정한 뒤 호조판서·좌참찬으로 활약하였다. 사도세자 죽음에 대한 책임자들을 처단할 때 형조판서 겸 판의금부사로서 옥사를 처결하였다. 1788년 우의정에 특채되었고, 1790년 좌의정이 되어 3년 간 독상(獨相)으로서 정사를 하였다. 1793년 영의정에 올랐다.
3. 3. 현대
4. 과거 급제자
평강 채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5명, 무과 급제자 61명을 배출하였다.[1]
5. 항렬표
6.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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