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라자스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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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라자스펠드는 1901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다. 빈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빈 학파에서 활동하며 사회주의 활동가로도 활동했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어크 대학교와 프린스턴 라디오 프로젝트를 거치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여론조사, 커뮤니케이션 연구, 선거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했으며, 특히 《민중의 선택》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2단계 흐름" 가설을 제시하며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라자스펠드는 연구 방법론 개발에도 기여했으며, 현대 경험 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의 연구는 비판도 받았지만,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과학적 학문 분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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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자스펠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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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파울 펠릭스 라자르스펠트 |
출생 | 1901년 2월 13일 |
출생지 | 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사망 | 1976년 8월 30일 |
사망지 | 뉴어크, 뉴저지주, 미국 |
국적 | 오스트리아 미국 |
거주지 | 해당사항 없음 |
출신 도시 | 해당사항 없음 |
배우자 | 마리 야호다 (1926년 결혼, 1934년 이혼) 헤르타 헤르초크 (이혼, 1945년) (1949년 결혼) |
자녀 | 로테 베일린 로버트 라자르스펠트 |
부모 | 로베르트 라자르스펠트 조피 라자르스펠트 |
학력 | |
출신 학교 | 빈 대학교 (PhD, 1925년) |
학위 논문 제목 | 해당사항 없음 |
지도 교수 | 해당사항 없음 |
학문적 조언자 | 해당사항 없음 |
경력 | |
분야 | 사회학 |
세부 분야 | 수리 사회학 |
직장 | 컬럼비아 대학교 |
박사 과정 학생 | 제임스 새뮤얼 콜먼 |
주요 관심사 | 해당사항 없음 |
주요 저서 | 해당사항 없음 |
사상과 영향 | |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 | 제한 효과 이론 마취적 역기능 2단계 흐름 의사소통 모형 |
영향을 준 인물 | 바니 글레이저 엘리후 카츠 C. 라이트 밀스 |
2. 생애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의 사회학자로, 수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정량적 사회 조사 방법론을 개척하고 커뮤니케이션학 분야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초기 유럽에서는 빈 학파와 교류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프린스턴 라디오 프로젝트와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 연구국(Bureau of Applied Social Research)을 이끌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쳤다. 그의 연구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효과, 여론 형성 과정, 투표 행태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 특히 《민중의 선택》(The People's Choice)과 《개인적 영향력》(Personal Influence)은 해당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2. 1. 초기 생애 (유럽)
라자스펠드는 비엔나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러 학파 치료사인 소피 라자스펠드였고, 아버지 로버트는 변호사였다. 그는 빈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1925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의 수학적 측면을 다루었다.1920년대에 그는 오토 노이라트와 루돌프 카르나프를 포함한 철학자들이 활동하던 빈 학파와 같은 서클에서 활동했으며, "사회주의 활동가"로도 활동했다.[3] 그는 수학 및 양적 방법론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학 연구를 시작했으며, 1930년–1931년에는 라디오 청취자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설문 조사를 포함한 여러 초기 양적 연구에 참여했다.
1926년 그는 사회학자 마리 야호다와 결혼했다. 이후 한스 자이젤과 함께 실업이 작은 공동체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고전적인 연구인 ''Die Arbeitslosen von Marienthal''(마리엔탈의 실업자들)을 1932년에 저술했다. 이 연구는 1971년 ''The sociography of an unemployed community''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출판되었다.[4]
2. 2. 미국으로 이주
마리엔탈 연구는 록펠러 재단의 주목을 받아, 라자스펠드는 1933년부터 1935년까지 2년간 미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펠로우십 기회를 얻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연방 비상 구호청에서 일하며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경험적 사회 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들을 방문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여행 중 로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루터 프라이를 만났는데, 이 만남은 약 20년 후 발표될 ''개인적 영향력'' 연구의 중요한 영감이 되었다. 또한 ''미들타운'' 연구로 잘 알려진 로버트 S. 린드와도 교류했다. 린드는 라자스펠드가 미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이후 뉴어크 센터 및 프린스턴 라디오 연구소 소장직을 그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라자스펠드는 응용 심리학 기법을 기업 문제 해결에 적용하고자 비영리 단체인 심리학 법인에 여러 프로젝트를 제안했으나, 상업성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한편, 코넬 대학교의 응용 심리학자 존 젠킨스를 도와 자신이 빈에서 학생들을 위해 저술했던 통계 입문서("숫자로 말하기")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이유 분석' 개념을 설명하는 연구를 수행하여, 그 결과를 널리 읽힌 논문 "왜 묻는 기술" (1935)을 통해 발표했다. 이러한 활동과 당시 유럽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은 그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2. 3. 뉴어크 대학교와 프린스턴 라디오 프로젝트
1935년 록펠러 재단 펠로우십이 끝나갈 무렵,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상황 악화로 비엔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라자스펠드는 미국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로버트 S. 린드의 추천 등으로 국립 청소년 관리국(National Youth Administration, NYA)의 학생 구호 사업 국장직을 맡게 되었는데, 이 기관의 본부는 당시 뉴어크 대학교(현 러트거스 대학교 뉴어크 캠퍼스)에 있었다.1년 후, 라자스펠드는 뉴어크에 비엔나 시절의 연구 센터를 모델로 한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여겼던, 당시에는 주변적인 분야였던 여론 연구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이 연구소를 유럽과 미국의 연구 모델을 잇는 중요한 다리로 생각했으며, 연구소의 미래를 자신의 경력보다 우선시하여 때로는 가명을 써서 출판물 수를 늘리기도 했다. 뉴어크 센터는 경험적 연구와 연구 관리자로서의 라자스펠드에 대한 관심을 성공적으로 불러일으켰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센터에서 수행된 연구들, 예를 들어 미라 코마로프스키(Mirra Komarovsky)의 저서 『실업자와 그의 가족』(The Unemployed Man and His Family)을 위한 연구 등은 경험적 연구가 학계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영역에도 유용하고 흥미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라자스펠드는 이를 "행정 연구"(administrative research)라고 불렀는데, 이는 대규모 전문 인력이 연구 센터에서 특정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량 시장 조사, 데이터 통계 분석, 포커스 그룹 작업 등 다양한 사회 과학적 조사 방법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연구 자금은 대학뿐 아니라 연구를 의뢰한 상업 고객들로부터도 조달되었다. 이를 통해 우유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낙농업계 연구나, 사람들이 쇼핑을 너무 많이 하는지 평가하는 코스모폴리탄 잡지(Cosmopolitan magazine)를 위한 설문 조사 같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뉴어크에 재직하는 동안 라자스펠드는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Radio Research Project)의 프린스턴 사무소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나중에 컬럼비아 대학교로 이전되었다. 1937년, 그는 처음에 프로젝트를 뉴어크로 가져오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뉴어크 연구소와 프린스턴 프로젝트 양쪽에서 시간을 나누어 일했다. 그는 자신의 관리가 없으면 뉴어크 연구소가 실패할 것을 우려했다.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에서 라자스펠드는 부국장인 해들리 캔트릴(Hadley Cantril)과 프랭크 스탠턴(경영인)(Frank Stanton)이 제시한 연구 목표를 확장했다. 1939년 2월, 그는 자신이 편집한 『응용 심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특별호를 통해 프로젝트에서 진행된 다양한 연구들을 통합하여 발표했다. 이는 프로젝트의 중심 이론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외부의 의구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1939년 봄, 록펠러 재단 관계자들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자금 지원 갱신 조건으로 "더 확실한 성과 증거"를 요구했고, 그 결과 『라디오와 인쇄 매체』(Radio and the Printed Page)가 출판되었다. 이 두 출판물은 신생 분야였던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통합하고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자스펠드의 여러 연구 중에서도 1940년대의 라디오 연구는 특히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937년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된 이 연구에서 라자스펠드는 총괄 책임자를 맡았고, 캔트릴과 스탠턴이 그를 보좌했다. 연구 내용은 단순히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의 일상적인 접촉 실태를 밝히는 것을 넘어, 퀴즈 프로그램이나 멜로드라마 애호가 연구, 실황 방송 형식으로 각색된 오슨 웰스의 "화성인 침공" 드라마 방송 청취자의 패닉 반응 연구, 전시 국채 판매 촉진을 위한 마라톤 라디오 캠페인 방송 연구 등도 다루었으며, 후대의 이용・만족 연구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라자스펠드가 수행한 라디오 청취 연구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일부인 "오디언스 이론"의 초기 대표적인 연구로 꼽힌다. 또한, 요시미 토시야는 라디오 청취 연구에 대해, 당시 주류였던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프로파간다 연구를 선전 연구와 결합된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변화시켰다고 평했다. 라자스펠드가 중심이 된 컬럼비아 학파의 라디오 연구는 "매스컴의 수용자・효과 연구를 선도하고, 실증적 매스컴 사회학의 수립으로 가는 길을 열었으며, 나아가 응용 사회 조사 연구소를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총본산으로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2. 4. 컬럼비아 대학교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는 프린스턴 사무소에서 시작되었으나, 라자스펠드는 1937년 이를 뉴어크로 이전하려 시도했다. 요청이 거부되자 그는 프로젝트와 뉴어크 연구소 양쪽에서 시간을 나누어 활동했다.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는 라자스펠드에게 중요한 과제였으며, 그는 프로젝트의 다양한 연구를 통합하고 이론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1939년 2월, 그가 편집한 응용 심리학 저널 특별호는 프로젝트의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펠러 재단은 추가적인 성과 증명을 요구했고, 이는 『라디오와 인쇄 매체』(Radio and the Printed Page) 출판으로 이어졌다. 이 두 출판물은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5]이후 프로젝트 부국장이었던 해들리 캔트릴과의 불화(아마도 금전적 문제로 추정됨)를 겪은 후,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는 컬럼비아 대학교로 이전되었고, 이곳에서 저명한 사회 연구국(Bureau of Applied Social Research)으로 발전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라자스펠드는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 방향을 투표 행태 연구에 집중시켰다. 1940년 11월 투표에 대한 연구 결과는 《민중의 선택》(The People's Choice)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책은 정치 연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0년대 동안 대중 커뮤니케이션은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대중 매체의 설득 효과에 대한 라자스펠드의 관심이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증가했다. 1950년대에는 대중 매체의 영향력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라자스펠드는 엘리후 카츠와 함께 《개인적 영향력》(Personal Influence)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는 2단계 유통 이론(Two-step flow of communication), 여론 주도자(Opinion leader)의 개념, 그리고 대중 매체 메시지를 걸러내는 공동체의 역할 등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로버트 K. 머튼과 협력하여 사회에서 매체가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과 함께, 매체가 대중의 사회 문제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는 마취적 기능 장애(Narcotizing dysfunction) 개념을 널리 알렸다.
라자스펠드의 주요 기여는 다음과 같다:
- 매체에서 여론 주도자를 거쳐 일반 대중에게 정보가 전달된다는 2단계 유통 이론(및 다단계 유통 이론).[5]
- 여론 주도자의 특성 연구.
- 의료 혁신과 같은 새로운 정보의 확산 과정 연구.
- 라디오 드라마 청취자와 같은 미디어 수용자의 이용과 충족 연구.
그의 연구는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과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컬럼비아 학파의 라디오 연구는 매스컴의 수용자 및 효과 연구를 선도하고 실증적 매스컴 사회학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사회 연구국을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6년, 라자스펠드는 미국 통계 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6] 그는 1976년에 사망했다.
3. 주요 연구 및 이론
폴 라자스펠드는 사회학 연구 방법론에 대한 혁신적인 기여로 "현대 경험 사회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7] 그는 수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경험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으며, 잠재 계층 모델 발명,[8] 통계 조사 분석, 패널 방법, 잠재 구조 분석, 맥락 분석 등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발전시켰다.[7] 또한 수리 사회학의 공동 창시자로도 여겨진다.[7]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에서는 의사소통의 2단계 흐름 모델을 제시하고, '라자스펠드-스탠턴 프로그램 분석기'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 같은 독창적인 연구 도구를 개발하여 미디어 효과 및 수용자 연구 방법론을 발전시켰다.[2] 그의 많은 아이디어는 후대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쳐 현재는 기본적인 연구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7]
라자스펠드는 연구 기관 설립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비엔나를 시작으로 미국 내 여러 연구 기관 설립을 주도했으며, 특히 컬럼비아 대학교에 설립한 응용 사회 연구소는[2] 재정적으로 독립적이면서도 비영리적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며 다른 대학 연구소 설립에도 영향을 미쳤다.[2]
그는 교육자로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바니 글레이저(근거 이론 창시자), 제임스 새뮤얼 콜먼 등 그의 지도를 받은 여러 제자들이 사회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라자스펠드는 미국 사회학회(ASA) 및 미국 여론 조사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여러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는 등[7]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 연구 센터와 ASA 방법론 분과 경력 성취상,[9] 미국 평가 협회 최고 이론상 등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10]
3. 1. 연구 방법론
폴 라자스펠드는 수학 박사 학위 소지자로서[3] 수학 및 양적 방법론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학 연구에 접근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사회 현상을 경험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현대 경험 사회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데,[7] 이는 그가 사회학 연구 방법론에 남긴 혁신적인 기여 때문이다.라자스펠드는 사회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방법들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주요 기여로는 통계 조사 분석, 패널 조사, 잠재 구조 분석, 맥락 분석 등이 있다.[7] 특히 그는 다변량 이산 데이터를 클러스터링하기 위한 잠재 계층 모델을 발명했으며,[8] 수리 사회학의 공동 창시자 중 한 명으로도 여겨진다.[7] 그의 많은 아이디어는 후대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쳐 현재는 기본적인 연구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7] 또한,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에서는 의사소통의 2단계 흐름 모델을 개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라자스펠드는 양적 연구뿐만 아니라 질적 연구 방법에도 주목했으며, 이 둘을 결합하는 혼합 연구 방법을 선도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 기여 중 하나는 "라자스펠드-스탠턴 프로그램 분석기"(Lazarsfeld-Stanton Program Analyzer영어), 일명 "리틀 애니"(Little Annie영어)이다.[2] 이 장치는 청취자들이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미디어 콘텐츠를 접하면서 느끼는 호불호를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청취자는 콘텐츠가 마음에 들면 녹색 버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간색 버튼을 눌러 즉각적인 반응을 표현했다.[2] 이와 함께 라자스펠드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활용했다. 분석기 사용 후 참가자들은 설문지를 작성하고, 콘텐츠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심층적인 의견을 나누었다.[2] 이러한 혼합 방법은 방송 콘텐츠의 효과를 측정하고 개선하는 데 유용했으며, 양적 데이터와 질적 데이터를 동시에 얻어 미디어 효과 및 청중의 수용 과정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했다.
측정 방법론에 대한 그의 기여는 1940년 오하이오주 이리(Erie) 카운티에서 진행된 대통령 선거 연구에서 사용된 종단 패널 조사와 같은 혁신적인 조사 설계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또한 2x2 분할표, 빈도 분석, 산점도 등 다양한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했다.
이러한 연구 방법론은 특히 라디오 연구에서 잘 활용되었다. 1937년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된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에서 라자스펠드는 총괄 책임자를 맡았다. 이 연구는 단순한 청취 실태 조사를 넘어, 퀴즈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애호가 분석, "화성인 침공" 라디오 드라마 방송 당시 청취자들의 패닉 반응 연구, 전시 국채 판매 캠페인 방송 효과 연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 연구들은 후대의 이용·충족 연구의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받으며,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오디언스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자스펠드가 이끈 컬럼비아 대학교 응용사회연구소는 이러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라자스펠드는 또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응용 사회 연구소와 같은 연구 기관 설립을 통해[2] 이러한 방법론 연구와 교육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지도 아래 바니 글레이저(근거 이론 창시)나 제임스 새뮤얼 콜먼과 같은 많은 후학들이 배출되어 사회학 연구 방법론 발전에 기여했다.
3. 2. 커뮤니케이션 연구
폴 라자스펠드는 커뮤니케이션학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후대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1937년,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라자스펠드는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맡았다.[2] 그는 해들리 캔트릴과 프랭크 스탠턴의 보좌를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초기에는 프로젝트를 뉴어크 대학교의 연구소와 병행하며 진행했으나, 이후 프로젝트는 컬럼비아 대학교로 옮겨져 유명한 사회 연구국으로 발전했다.
라디오 연구 프로젝트는 단순히 라디오 청취자의 접촉 실태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퀴즈 프로그램이나 연속극 애청자 연구, "화성인 침공" 라디오 드라마 청취자의 패닉 반응 연구, 전시 국채 판매 촉진 캠페인 방송 연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는 후대의 이용과 충족 이론의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라자스펠드의 라디오 청취 연구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하위 분야인 수용자 연구의 초기 대표 사례로 꼽힌다. 요시미 토시야는 이 연구가 당시 주류였던 선전 연구를 넘어서, 선전 연구와 결합된 매스 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컬럼비아 학파의 라디오 연구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수용자 및 효과 연구를 선도하고 실증적 매스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응용 사회 조사 연구소를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컬럼비아로 옮겨온 후 연구의 초점은 투표 행동으로 옮겨갔다.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오하이오주 이리 카운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 행동 변화를 추적하는 패널 조사를 실시했다. 5월부터 11월까지 매달 3,000명의 표본 중 600명을 추출하여 면접 조사를 진행했다. 이 연구 결과는 1948년 《민중의 선택》(The People's Choice)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정치 연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민중의 선택》 연구를 통해 라자스펠드는 사람들의 의사 결정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의 존재를 확인했다. 사람들은 신문이나 라디오 같은 매스미디어의 정보를 직접 받아들이기보다, 주변의 영향력 있는 인물, 즉 오피니언 리더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의견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스미디어의 정보가 오피니언 리더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2단계 유통 이론이라는 새로운 가설로 이어졌다.[5] 이 발견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미디어가 대중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피하주사 모델 또는 "탄환 이론"에 반박하며, 미디어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제한 효과 모델"로 연구의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다만 라자스펠드는 활자 매체보다는 라디오가 투표 행동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는데, 이는 라디오가 개인적인 관계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여 정서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50년대 들어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자, 라자스펠드는 엘리후 카츠와 함께 《개인적 영향력》(Personal Influence, 1955)을 출판하여 2단계 유통 이론과 오피니언 리더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 연구는 대인 커뮤니케이션과 매스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자스펠드는 로버트 K. 머튼과도 긴밀하게 협력했다. 두 사람은 1948년에 발표한 공동 논문 "매스 커뮤니케이션, 대중의 취향, 조직화된 사회적 행동"(Mass Communication, Popular Taste, and Organized Social Action)에서 매스미디어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분석했다.[12] 이 논문에서 그들은 매스미디어가 특정 인물이나 이슈에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지위 부여 기능,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 규범을 강화하는 사회 규범 강화 기능, 그리고 대중이 미디어 정보에 몰두하느라 실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는 나서지 않게 되는 마취적 기능 장애 등을 제시했다.[13] 또한, 그들은 미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거대 기업이 광고를 통해 미디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피리를 부는 사람이 곡조를 결정한다")를 지적하며, 이로 인한 사회적 순응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했다.[13]
이 외에도 라자스펠드는 커뮤니케이션 연구 방법론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청취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측정하는 라자스펠드-스탠턴 프로그램 분석기(Lazarsfeld-Stanton Program Analyzer, 일명 '리틀 애니')와 심층적인 의견 수렴을 위한 표적 집단 면접 기법을 개발하고 활용했다.[2] 이러한 도구들은 미디어 콘텐츠의 효과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질적 데이터와 양적 데이터를 함께 얻을 수 있게 했다.
3. 3. 주요 저서
- 『민중의 선택』(eng, 1944년)
-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오하이오주 엘리 카운티 유권자 600명을 대상으로 5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면접 조사를 실시하여 투표 행동을 분석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사람들의 의사 결정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의 존재가 밝혀졌고, '커뮤니케이션의 2단계 흐름'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는 매스미디어의 정보가 오피니언 리더를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제한 효과 이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라자스펠드는 특히 활자 미디어보다 라디오가 투표 행동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으며, 라디오가 개인적인 관계와 유사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 『투표』(eng, 1954년)
4. 비판 및 한계
라자스펠드의 연구는 여러 측면에서 비판과 한계점을 지적받았다. 그의 연구소 운영 방식은 리더십에 크게 의존하여, 리더십 부재 시 조직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었고, 통계 활용 부족 및 데이터 복제와 일반화의 어려움이라는 방법론적 한계도 있었다.[2]
연구 내용 면에서는 주로 개인의 의사 결정 과정과 미디어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리엔탈 연구를 제외하면, 이후의 연구들은 대부분 분석 단위를 개인에 두어 더 큰 사회 구조나 권력 관계를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라자스펠드 자신은 이것이 유일한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많은 비판가들은 그의 연구가 상업적 또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행정 연구"에 치우쳐 있으며, 경험적이고 단기적인 효과 분석에만 집중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행정 연구 경향은 비판적인 학자들의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라디오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했던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라자스펠드의 경험주의적 접근과 산업과의 협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다른 지적 전통을 대표했다. 아도르노는 라디오를 통해 교향곡이 방송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매스미디어의 문화적 영향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시했다. 또한 C. 라이트 밀스는 라자스펠드의 연구 방식을 거시적인 이론 없이 경험적 자료 수집에만 집중하는 "추상적 경험주의"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경험주의에 대한 집중은 로버트 K. 머튼이 소위 "중범위 이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점 측면에서 보면, 라자스펠드는 개인을 관찰했지만 더 큰 사회 구조와 그 안의 권력 관계를 놓쳤다. 그는 주로 행정 연구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많은 설문 조사를 실시했지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더 큰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것을 꺼렸다. 비록 1940년 연구에서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인지 효과를 발견했지만, 그는 최소 효과 가설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라자스펠드 자신도 자신의 경험적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기대했던 만큼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으로 출판된 논문 중 하나인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그 응용: 추신"(1976)에서 그는 경험적 연구에 대한 흐름이 바뀌었고,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응용'을 연구 주제로 삼을] 필요성을 표현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요구의 대상은 아니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5. 평가
정치학자 H. D. 라스웰, 집단 역학의 이론적·방법론적 기초를 다진 심리학자 K. 레빈, 설득적 커뮤니케이션 효과의 실험 심리학적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C. I. 호브란 등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꼽힌다.
6. 참고 문헌
- 카츠, 엘리후, 그리고 폴 F. 라자스펠드. ''개인적 영향력: 대중 커뮤니케이션 흐름에서 사람들이 하는 역할''. 일리노이주 글렌코: 프리 프레스, 1966.
- 라자스펠드, 폴 F. ''라디오와 인쇄 매체: 라디오 연구 및 아이디어 전달 역할 소개''. 뉴욕: 듀엘, 슬론, 앤 피어스, 1940.
- 라자스펠드, 폴 F., 버나드 베렐슨, 그리고 헤이즐 고데. ''국민의 선택: 유권자가 대통령 선거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출판부, 1944.
- 라자스펠드, 폴 F. "사회 연구의 역사에 관한 에피소드: 회고록." In ''지적 이주: 유럽과 미국, 1930–1960'', 도널드 플레밍과 버나드 베일린 편집, 270–337쪽.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 1969.
- 라자스펠드, 폴 F.와 로버트 K. 머튼, "대중 커뮤니케이션, 대중적 취향, 조직화된 사회적 행동", L. 브라이슨 (편집), ''아이디어의 커뮤니케이션''. 뉴욕: 하퍼, 95–118쪽. 재수록: 존 더럼 피터스와 피터 시몬슨 (편집), ''대중 커뮤니케이션과 미국 사회 사상: 주요 텍스트, 1919–1968''. 메릴랜드주 래넘: 로먼 & 리틀필드, 2004, 230–241쪽.
- 라자스펠드, 폴 F. ''질적 분석; 역사적 및 비판적 에세이''. 보스턴: 앨린 앤 베이컨,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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