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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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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웰러는 1958년 영국에서 태어난 싱어송라이터로, 지난 30년간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 후반 펑크 록 밴드 더 잼(The Jam)의 리더로 데뷔하여, "In the City", "Going Underground"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80년대에는 키보디스트 믹 탈보트와 함께 스타일 카운슬(The Style Council)을 결성하여 재즈, 블루아이드 소울, 하우스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1990년부터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Wild Wood", "Stanley Road", "Illumination" 등 여러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다. 웰러는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2024년에는 영화 '런던 공습'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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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웰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웰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2009년 벨기에 브뤼헤의 칵투스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웰러
이름폴 웰러
본명존 윌리엄 웰러
출생일1958년 5월 25일
출생지영국 워킹
배우자디 C. 리 (1987년–1998년, 이혼)
해나 앤드루스 (2010년 결혼)
직업가수
작곡가
음악가
활동 시기1972년–현재
과거 소속 그룹더 잼
더 스타일 카운슬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음악 스타일
장르뉴 웨이브
펑크 록
모드 리바이벌
블루 아이드 소울
악기보컬
기타
피아노
베이스
해먼드 오르간
대표 악기리켄배커 330
깁슨 SG
펜더 텔레캐스터
에피폰 카지노
회프너 베이스
기타
관련 활동The Jam
The Style Council
Smokin' Mojo Filters

2. 초기 생애 (1958–1975)

폴 웰러는 1958년 5월 25일 잉글랜드 서리주 워킹에서 존과 앤 웰러(옛 성씨 크래독)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이름은 존 윌리엄 웰러였으나, 부모에게 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5]

웰러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이자 건설업자였고, 어머니는 파트타임 청소부였다.[6] 그는 메이베리 카운티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시작했다.[7]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비틀즈를 시작으로 스몰 페이시스를 통해 시작되었다.[7] 웰러가 열한 살 때 시어워터 카운티 중학교로 진학했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7]

1972년 스테이터스 쿼의 콘서트를 본 후 웰러의 음악적 소명은 확고해졌다.[8] 그는 학교 친구들인 스티브 브룩스(리드 기타), 데이브 월러(리듬 기타), 닐 해리스(드럼)와 함께 잼의 첫 번째 모습을 형성하여 학교와 지역 청소년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9] 해리스와 데이브 월러가 밴드를 떠나자 학교 친구인 릭 버클러(드럼)와 브루스 폭스턴(리듬 기타)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다.[9][10] 웰러의 아버지는 그들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4인조 밴드를 지역 노동자 클럽에 예약하기 시작했고,[11] 밴드는 웰러와 브룩스가 작곡한 곡들과 커버곡들을 연주하며 지역에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9] 1976년 브룩스가 밴드를 떠난 후, 웰러와 폭스턴은 기타 역할을 바꾸어 웰러가 기타리스트가 되었다.[10]

웰러는 1974년 후반, 특히 더 후의 "마이 제너레이션"을 듣고 1960년대 모즈 서브컬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람브레타 스쿠터를 타고, 머리를 스티브 매리엇처럼 스타일링하고, 1960년대 소울과 R&B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안으로 더 잼은 무대에서 모헤어 수트를 입기 시작했고, 그와 폭스턴은 (1960년대 중반 후와 비틀즈가 선호했던) 리켄배커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후로 헌신적인 모드였으며, 1991년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모드일 것이다. 나를 모드로 묻어도 좋다"라고 선언했다.[12]

3. 음악 경력

폴 웰러는 더 잼, 스타일 카운슬을 거쳐 솔로 활동까지,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며 영국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6년부터 1982년까지 활동한 펑크 록 밴드 클래시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고, "이튼 라이플스", "고잉 언더그라운드"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웰러는 잼에서 신랄한 가사와 팝 멜로디를 결합한 음악을 선보였지만, 더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기 위해 1982년 밴드를 해체했다.

1983년, 웰러는 믹 탈보트와 함께 스타일 카운슬을 결성하여 재즈, 블루아이드 소울, 하우스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했다. 스타일 카운슬은 초기에는 영국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1980년대 후반 인기가 하락했고, 결국 1989년 해체되었다.

1990년부터 웰러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Into Tomorrow", "Uh Huh Oh Yeh" 등의 싱글과 ''Paul Weller''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 ''와일드 우드(Wild Wood)'', ''스탠리 로드(Stanley Road)'' 등의 앨범을 통해 브릿팝 운동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웰러는 ''헤비 소울(Heavy Soul)'', ''헬리오센트릭(Heliocentric)'',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스튜디오 150(Studio 150)'', ''애즈 이즈 나우(As Is Now)''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2006년에는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 음악에 대한 뛰어난 공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 1. 더 잼 (1976–1982)

1982년 뉴캐슬에서 공연하는 웰러(왼쪽)와 잼


잼은 클래시, 더 댐드, 섹스 피스톨스와 같은 펑크 록 밴드들과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 클래시는 잼을 일찍부터 지지했으며, 1977년 5월 자신의 화이트 라이엇 투어에 잼을 오프닝 밴드로 초청했다.[13] 1977년 4월 29일 첫 싱글 "인 더 시티"를 발매했고, 곧바로 영국 톱 40 차트에 진입했다.[14]

더 잼은 폴 웰러가 태어난 런던 교외 서리주 워킹에서 비틀즈 등의 노래를 커버하던 파티 밴드였다. 결성 당시에는 폴 웰러가 베이스, 브루스 포크스턴과 스티브 브룩스가 기타, 릭 백러가 드럼을 맡는 4인조였으나, 스티브가 탈퇴하면서 폴이 기타를, 브루스가 베이스를 담당하게 되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라이브에 영감을 받아 밴드는 점차 모타운 등의 R&B를 고속으로 연주하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이윽고 오리지널 곡 중심이 되어, 펑크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였지만 당시 펑크족들과는 달리 모두 세련된 정장을 입고 연주하는 쿨한 스타일과, 웰러의 킨크스, 스몰 페이시스, 등 모즈 아티스트를 따르는 모습이 인기를 얻어 "모즈 리바이벌"이라 불리는 붐을 일으켰다.

1979년, 그룹은 "이튼 라이플스"를 발매하여 처음으로 톱 10에 진입, 11월에 3위를 기록했다.[15] 웰러의 신랄한 가사와 팝 멜로디의 조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결국 1980년 3월 첫 1위 싱글 "고잉 언더그라운드"를 발표하며 영국 최고의 밴드로 불릴 정도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16]

잼은 비틀즈 이후 같은 싱글의 A면과 B면("타운 콜드 멀리스"와 "프레셔스")을 모두 한 번의 ''탑 오브 더 팝스'' 방송에서 공연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17] "댓츠 엔터테인먼트"(1981)와 "저스트 후 이즈 더 파이브 오클락 히어로?"(1982) 두 싱글은 영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싱글 발매의 수입 판매에 힘입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 각각 21위와 8위를 기록했다.[18] 당시 "댓츠 엔터테인먼트"는 영국 차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전용 싱글이었다.[19]

웰러의 음악적 성향은 그 후 R&B와 펑크를 비롯한 흑인 음악에 더욱 심취하는 모습을 보였고, 대담한 호른 섹션 도입 등에 그런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모타운에 대한 존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싱글 "악의라는 이름의 거리"가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밴드는 국민적인 인기를 유지했지만, 웰러는 이 무렵부터 자신의 음악적 변화가 더 이상 더 잼에서는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1982년 10월, 이미 버클러와 폭스턴에게 밴드를 떠난다고 말한 웰러는[21] 잼이 그 해 말 해체될 것이라고 발표했다.[22] 웰러는 밴드를 끝내고 나아가려고 했지만, 이 결정은 밴드가 더욱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폭스턴과 버클러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23] [21] 결국 1982년 3월 발매된 6번째 앨범 『더 기프트』를 마지막으로 웰러는 갑작스럽게 밴드 해산을 결정했다. 6년간의 활동을 거쳐, 더 잼은 절정의 순간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135]

그들의 마지막 싱글 "비트 서렌더"는 첫 주에 1위를 차지하며 영국 차트에서 네 번째 1위를 기록했다.[24]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작별 콘서트는 매진되었고, 마지막 콘서트는 1982년 12월 11일 브라이턴 센터에서 열렸다.[25]

3. 2. 더 스타일 카운슬 (1983–1989)

1983년, 웰러는 키보디스트 믹 탈보트와 함께 스타일 카운슬을 결성했다.[26] 웰러는 드러머 스티브 화이트와 가수 디 씨 리를 영입했는데,[27] 디 씨 리는 웰러의 여자친구이자 아내가 되었으며, 이전에 왬!의 백킹 보컬리스트였다.[28]

더 잼의 제한적인 음악 스타일에서 벗어나, 스타일 카운슬을 통해 웰러는 재즈, 블루아이드 소울, 하우스 등 다양한 음악을 실험했다.[27] 각 트랙마다 다른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뮤지션과 보컬리스트들을 영입했다.[27] 스타일 카운슬은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을 사용했는데, 이는 이후 소피스티팝으로 분류되었다.[29]

스타일 카운슬의 초기 싱글들은 영국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30] 웰러는 "마이 에버 체인징 무즈"와 "유어 더 베스트 띵"이 미국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하면서 북미에서도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다.[31]

1984년 웰러는 밴드 에이드의 "두 데이 노우 잇츠 크리스마스?"에 참여했고, 스타일 카운슬은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영국 공연에 출연했다.[32]

1984년 12월, 웰러는 파업 중인 광부들과 데이비드 윌키 (파업 중 살해당한 웨일스 택시 운전사)의 가족을 돕기 위해 "Soul Deep"을 제작하는 자선 앙상블인 카운슬 콜렉티브를 결성했다. 이 곡에는 스타일 카운슬과 지미 러핀, 주니어 기스콤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했으며,[33] 영국 싱글 차트에서 24위에 올랐다.[34]

1980년대 후반, 스타일 카운슬의 영국 내 인기는 하락했고, 1985년 이후 톱 10 싱글은 하나뿐이었다.[30] 1989년 레코드 회사가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하우스 음악 기반의 ''모더니즘: 어 뉴 데케이드'' 발매를 거부하면서 스타일 카운슬은 해체되었다.[35] 이 앨범은 1998년 회고록 CD 박스 세트 ''더 컴플릿 어드벤처스 오브 더 스타일 카운슬'' 발매를 통해 널리 출시되었다.[36]

윌러는 네오 모즈 밴드 "머튼 파커스(The Merton Parkas)"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믹 탈봇(Mick Talbot)과 함께 /소울 유닛 더 스타일 카운슬(The Style Council)을 결성, 1983년 3월 첫 싱글 "스피크 라이크 어 차일드"를 발표하며 소울과 R&B의 영향이 짙은 블랙 컨템퍼러리적인 사운드로 변화했다. 강직한 이미지였던 잼 시절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지만, 더욱 팝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다. 가사는 당시 대처 정권에 대한 과격한 내용을 담아 정치 비판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곡이 많아 뉴 웨이브 그룹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더 스타일 카운슬은 1984년 첫 앨범 『카페 블루(Café Bleu)』가 높은 평가를 받았고, 1985년 두 번째 앨범 『아워 페이버릿 샵(Our Favourite Shop)』이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새로운 지위를 확립했다. 당시 버블 경제 한가운데 있던 일본에서도 시대에 맞는 "세련된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후 음악적 다양성이 지나치게 심해지면서 방향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판매량도 부진했으며, 1989년 하우스 색깔이 강한 앨범 『모더니즘(Modernism-A New Decade)』을 제작했지만 소속사 폴리도르(Polydor)로부터 발매를 거부당하고, 반쯤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모습으로 해산했다.

더 스타일 카운슬의 멤버이자 절친인 스티브 화이트(Steve White)(드럼, 오아시스 앨런 화이트의 친형)는 윌러의 솔로 활동 후에도 백 밴드의 중심으로 활동하며 현재까지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다.

3. 3. 솔로 활동 (1990–현재)

1989년 웰러는 17세 이후 처음으로 밴드나 음반 계약 없이 홀로 남게 되었다.[37] 1990년 대부분을 휴식을 취한 후, 그 해 말 "폴 웰러 무브먼트(The Paul Weller Movement)"라는 이름으로 투어를 시작했는데, 오랜 친구이자 드러머인 스티브 화이트(Steve White)와 제임스 테일러 콰르텟(James Taylor Quartet)의 세션 베이시스트 폴 프랜시스(Paul Francis)와 함께했다.[37] 과 스타일 카운슬의 명곡들과 새로운 곡들을 섞어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한 후, 1991년 5월 데뷔 솔로 싱글 "Into Tomorrow"를 발매했고,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36위에 올랐다.[38][40] 그의 다음 싱글 "Uh Huh Oh Yeh"는 1992년 8월 영국 차트에서 18위에 올랐고, 이어 데뷔 솔로 스튜디오 앨범인 ''Paul Weller''가 같은 해 9월 영국 차트 8위에 올랐다.[40]

데뷔 솔로 앨범의 긍정적인 상업적, 비평적 성공에 힘입어, 웰러는 1993년 새롭게 자신감을 가지고 스튜디오로 돌아왔고,[37] 다음 앨범의 대부분 트랙을 한 번에 녹음했다.[38] 스티브 화이트, 기타리스트 스티브 크래독(Steve Cradock)과 베이시스트 마르코 넬슨(Marco Nelson)과 함께 작업한 결과, 머큐리 뮤직 프라이즈 후보에 오른 ''와일드 우드(Wild Wood)''가 탄생했으며, 여기에는 "Sunflower"와 "Wild Wood" 싱글이 포함되어 있다.[39] 1994년 웰러의 첫 번째 솔로 라이브 앨범 ''라이브 우드(Live Wood)''가 발매되어 영국 앨범 차트에서 13위에 올랐다.[40]

1995년, 웰러의 세 번째 솔로 스튜디오 앨범 ''스탠리 로드(Stanley Road)''는 그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영국 차트 정상으로 이끌었고,[40] 그의 경력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41] 그가 자란 워킹(Woking)의 거리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앨범은 그의 초기 시절의 기타 중심 스타일로의 회귀를 의미했다.[37] 이 앨범의 주요 싱글인 "더 체인징맨(The Changingman)" 역시 큰 히트를 기록하여 영국 싱글 차트 7위에 올랐다. 또 다른 싱글인 발라드 "You Do Something to Me"는 그의 연속 두 번째 톱 10 싱글이었고 영국 차트 9위에 올랐다.[40]

웰러는 부상하는 브릿팝 운동과 깊은 연관성을 갖게 되었다.[44]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는 ''스탠리 로드'' 앨범 트랙 "I Walk on Gilded Splinters"에 게스트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다.[42] 웰러도 호의를 베풀어, 오아시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의 히트곡 "샴페인 슈퍼노바(Champagne Supernova)"에 게스트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다.[43]

2000년대 초 공연 중인 웰러


백만 장 이상 판매된 ''스탠리 로드''의 후속작인 ''헤비 소울(Heavy Soul)''은 이전 작품과 비교하여 웰러의 음악 스타일이 '뿌리 깊은', '간결한' 방향으로 변화한 작품이었다.[44] 1996년 첫 번째 싱글 "피콕 슈트(Peacock Suit)"는 UK 싱글 차트에서 5위에 올랐고, 앨범은 1997년 2위에 올랐다.[40] 영국 차트에서의 성공은 컴필레이션 앨범에서도 이어졌다. 잼과 스타일 카운슬의 베스트 앨범들이 차트에 진입했고,[18][30] 1998년 그의 솔로 컴필레이션 앨범인 ''모던 클래식: 그레이티스트 히츠(Modern Classics: The Greatest Hits)''는 7위에 올랐다.[40]

2000년, 그는 다섯 번째 솔로 스튜디오 앨범인 ''헬리오센트릭(Heliocentric)''을 발매했고,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 2위로 데뷔했다.[40] 그의 세계 투어 ''데이스 오브 스피드(Days of Speed)''(어쿠스틱 투어)에서 웰러는 그의 솔로 경력과 잼과 스타일 카운슬 시절의 노래들을 연주했고, 이는 같은 이름의 두 번째 성공적인 라이브 앨범을 만들어냈다.[45] 이 앨범에는 투어 유럽 지역 공연의 라이브 솔로 어쿠스틱 녹음이 담겨 있으며, 2001년 10월 영국 앨범 차트에서 3위에 올랐다.[40][46][47]

2002년 9월, 웰러는 1위 앨범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을 발매했다. 눈데이 언더그라운드(Noonday Underground)의 사이먼 다인(Simon Dine)이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톱 10 히트 싱글 "잇츠 리튼 인 더 스타즈(It's Written in the Stars)"가 앞서 발매되었다.[40][48] 웰러는 눈데이 언더그라운드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서피스 노이즈(Surface Noise)''(2002)에도 참여하여 "아일 워크 라이트 온(I'll Walk Right On)"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다.[49]

2002년 웰러는 테리 캘리어(Terry Callier)와 싱글 "브라더 투 브라더(Brother to Brother)" 작업을 함께했는데, 이 곡은 캘리어의 앨범 ''스피크 유어 피스(Speak Your Peace)''에 실렸다.[50] 같은 해 그는 일렉트로닉 록 듀오 데스 인 베가스(Death in Vegas)와 함께 진 클락(Gene Clark)의 "소 유 세이 유 로스트 유어 베이비(So You Say You Lost Your Baby)" 커버를 작업했는데, 이 곡은 그들의 앨범 ''스콜피오 라이징(Scorpio Rising)''에 실렸다.[51]

웰러의 커버 앨범인 ''스튜디오 150(Studio 150)''는 2004년 영국 차트에서 2위로 데뷔했으며, 밥 딜런(Bob Dylan)의 "올 어롱 더 왓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와 길 스콧-헤론(Gil Scott-Heron)과 로즈 로이스(Rose Royce) 등의 노래 커버가 포함되어 있다.[40][52]

웰러의 여덟 번째 솔로 스튜디오 앨범 ''애즈 이즈 나우(As Is Now)''(2005)에는 "프롬 더 플로어보드즈 업(From the Floorboards Up)", "컴 온/렛츠 고(Come On/Let's Go)", "히어즈 더 굿 뉴스(Here's the Good News)" 싱글이 수록되었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4위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비평가들은 그가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40][53]

2006년 2월 14일 런던 얼스 코트에서 열린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 그는 음악에 대한 뛰어난 공헌상을 수상했다.[54][55] 웰러는 직접 시상식에 참석하여 잼의 명곡 "타운 콜드 맬리스(Town Called Malice)"를 포함한 네 곡을 공연했다.[56] 그의 솔로 작품과 잼, 스타일 카운슬 시절의 노래들을 담은 더블 라이브 앨범 ''캐치-플레임!(Catch-Flame!)''이 그 해 6월 발매되었다.[57] 2006년 말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히트 퍼레이드(Hit Parade)''에는 잼, 스타일 카운슬, 웰러의 솔로 경력의 싱글들이 수록되어 있다.[58] 웰러는 2006년 생일 기념 명예훈장에서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으로 임명될 것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59]

2007년 웰러는 민속 음악 프로젝트 더 이매진드 빌리지(the Imagined Village)의 노래 "존 바알리콘(John Barleycorn)"에서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으며, 마틴 카시(Martin Carthy)와 엘리자 카시(Eliza Carthy)도 참여했다. 이 곡은 그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다.[60]

독일 뮌헨 공연 (2005년 10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연 (2008년 9월)


스타일 카운실 해체 후, 웰러는 한때 음악계를 은퇴할 생각도 했지만, 결국 "자신에게는 음악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작은 홀이나 클럽을 순회하는 등 다시 처음부터 착실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폴 웰러 무브먼트" 명의로 첫 솔로 싱글 "Into Tomorrow"를 자체 제작 레이블 Freedom High에서 발매했다. 이 시기에는 스타일 카운실 시절에는 연주하지 않았던 잼 시대의 곡도 선보였다. 일본에서도 클럽 칫타 가와사키 등에서 클럽 서킷을 돌았다.

1992년, 자신의 이름을 딴 솔로 1집 앨범 『폴 웰러 (Paul Weller)』를 일본 포니캐니언에서 발표했다(영국에서는 계약을 맺지 못해 일본보다 약 반년 뒤 Go!Discs에서 발매). 자신의 음악에 직면하는 원점 회귀라고도 할 수 있는 소박하고 핵심이 굵은 사운드와 애시드 재즈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유연하고 리듬감 좋은 곡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당시 그는 영국에서는 마이너 아티스트 취급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스타일 카운실 시대부터의 팬들이 굳건했기에 본국보다 히트했다.

1993년에는 2집 앨범 『와일드 우드 (Wild Wood)』를 발표했다. 서서히 차트를 상승하며 솔로로서의 부활을 알렸다. 이 무렵 오션 컬러 씬[136]이나 오아시스[137], 블러와 같은 젊은 세대 아티스트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어, 브릿팝 무브먼트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95년에는 3집 앨범 『스탠리 로드 (Stanley Road)』가 브릿팝의 물결을 타고 대히트를 기록했다. 솔로 전향 후 첫 영국 1위를 차지하는 등 오랫동안 차트에 머물며 완전히 부활했다.

그 후에도 정기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살린 다양한 곡들을 발표했다. 『헤비 소울 (Heavy Soul, 1997년)』, 『애즈 이즈 나우 (As Is Now, 2005년)』, 『헬리오센트릭 (Heliocentric, 2000년)』, 『일루미네이션 (Illumination, 2002년)』 외에도 밥 딜런, 트래픽, 닐 영, 닥터 존 등의 루츠 뮤직에 가까운 작품도 많이 제작했으며, 그 취향은 그의 첫 풀 커버 앨범 『스튜디오 150 (Studio 150, 2004년)』에 응축되어 있다.

2006년 브릿 어워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UK 록/소울을 대표하는 거장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40세가 넘어서는 잼 시대의 곡도 자주 공연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와 젬 아처, 리틀 버리, 전 스톤 로지스의 아지즈 이브라힘, 싱글 "This Old Town"에서 공연했던 전 블러그레이엄 콕슨, 스티브 클래독과 사이먼 다인 등 화려한 게스트들을 초대한 앨범 『22 드림스 (22 Dreams)』를 발매했다.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딸 레아 웰러와 함께 패션 브랜드 DAKS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138]

4. 사생활

1977년 여름부터 1985년 8월경까지 웰러는 브롬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길 프라이스(Gill Price)와 연애했다.[102] 그녀는 잼의 사무실에서 일했고, 웰러의 팬진에 기고했으며,[103] 잼과 함께 투어를 자주 다녔다. 여러 비하인드 사진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104] 그녀는 잼의 마지막 싱글 "비트 서렌더(Beat Surrender)" 앨범 자켓에 등장했고,[105] 웰러의 누나 니키와 함께 스타일 카운슬의 "마이 에버 체인징 무즈(My Ever Changing Moods)"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스타일 카운슬의 성공 절정기에 웰러는 스타일 카운슬의 백킹 보컬리스트였던 디 씨 리(Dee C. Lee)와 연애를 시작했다.[37] 두 사람은 1987년에 결혼했지만 1998년에 이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과 딸, 두 자녀가 있다.

웰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루시 할페린(Lucy Halperin)과의 사이에서 또 다른 딸을 얻었다.[106]

웰러는 매너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던 중 사만다 스톡(Samantha Stock)과 관계를 맺었고,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107]

2008년 10월, 스톡과 웰러는 헤어졌고, 웰러는 그의 ''22 드림스(22 Dreams)'' 스튜디오 앨범의 백킹 보컬리스트이자 그의 밴드와 함께 투어를 다녔던 한나 앤드루스(Hannah Andrews)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2005년 뉴욕(New York City)에서 처음 만났으며, 2010년 9월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서 결혼했다.[108] 이 부부는 2012년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과 2017년에 태어난 딸을 두고 있다.[109][110]

2014년 4월, 웰러는 그의 가족이 쇼핑하는 모습을 찍은 "명백히 훔쳐 찍은" 사진이 메일온라인(MailOnline)에 게재된 후 어소시에이티드 뉴스페이퍼스(Associated Newspapers)로부터 1만 파운드의 손해 배상금을 받았다.[111]

2009년 4월 24일, 그의 아버지이자 잼 시절부터 오랫동안 매니저를 맡았던 존 웰러가 77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했다.[112]

웰러는 2010년부터 금주 생활을 하고 있다.[113]

5. 정치적 견해 및 활동

웰러는 영국 정치와 오랜 연관을 맺어왔다. 1977년 5월, 잼(The Jam)의 첫 ''NME''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 선거에서 보수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오래전부터 농담이었다고 밝혔다.[114]

1980년대 후반부터 핵무기 반대 운동(CND)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CND 배지를 착용한 모습으로 자주 사진에 찍혔다. 잼과 스타일 카운슬(The Style Council) 모두와 함께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115] 또한 인터뷰에서 사회주의자적인 입장을 보였고, 1982년에서 1987년 사이에는 그의 작곡도 점점 더 정치적으로 변했다.[117]

1984년 후반, 밴드 에이드에 참여한 후 영국 광부 파업을 위한 자선 음반 "Soul Deep"을 제작했다. 이 싱글은 카운슬 콜렉티브(Council Collective) 명의로 발매되었다. 이 싱글의 12인치 음반에는 파업 중인 광부들과의 인터뷰가 실렸지만, 모금액의 절반은 파업 파괴자들을 근무지로 데려가다가 살해당한 택시 운전사 데이비드 윌키의 미망인에게 전달되었다.[118] 1980년대 동안 채식주의자이기도 했고 동물 권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스타일 카운슬의 1985년 싱글 "월스 컴 텀블링 다운!"의 B면에 수록된 "Bloodsports"라는 곡을 작곡했다. 이 곡의 저작권료는 당시 브리스틀 HM 교도소에 구금 중이던 사냥 방해자 두 명의 변호 기금에 기부되었다.[119]

1985년 후반부터 웰러는 "좌익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뮤지션, 배우 등의 좌익 집단인 레드 웨지 결성에 참여했다.[120] 그러나 1988년경부터 정치적으로 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더 이상 어떤 정치에도 특별히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121]

2008년, 보수당 지도자 데이비드 캐머런이 잼의 "이튼 라이플스"를 ''황야의 섬 디스크'' 중 하나로 선택하자, 웰러는 "그것은 사관학교를 위한 빌어먹을 즐거운 음주가요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며 혐오감을 표했다.[122] 2015년 ''모조'' 잡지 인터뷰에서 "캐머런이 그것이 그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라고 말한 것에 대해... 나는 그냥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나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123] 웰러는 1982년 이후 처음으로 다시 라이브 공연에서 이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124]

2008년 인터뷰에서 웰러는 CBE를 거절했는데, 왕실, 기득권층 그리고 공무원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라고 말했다.[125]

2010년대 중반, 당시 노동당 지도자 제러미 코빈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2016년 12월에는 '코빈을 위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126]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영국 정치 지형에 대해 "당신은 리시 수낵의 보수당에 투표하거나 키어 스타머의 보수당에 투표할 수 있다."라고 논평했다. 웰러는 또한 수낵, 스타머 그리고 나이젤 패리지를 "[얼간이들]"이라고 칭했고, 같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며 "내가 집단 학살과 인종 청소에 반대하는가?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127]

6. 영향

비틀즈,[85] 더 후, 스몰 페이시스, 킨크스와 1960년대 중후반 탐라 모타운과 스택에서 발매된 소울 및 R&B 음반이 웰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86]

더 잼 시절, 웰러는 섹스 피스톨즈클래시를 포함한 초기 펑크 밴드들[87]과, 갱 오브 포와 조이 디비전 같은 후기 포스트 펑크 밴드들에 영향을 받았다.[41] 1970년대 소울 및 펑크 아티스트, 특히 커티스 메이필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88]

조지 오웰의 작품과 웰러의 친구 데이브 월러가 쓴 단편 소설을 잼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세팅 선즈''(1979)에 결합시키는 등 다양한 문학적 영향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89] 잼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사운드 어펙츠''(1980)의 영감으로 제프리 애쉬의 ''Camelot and the Vision of Albion''(1971), 오웰과 퍼시 비시 셸리를 언급했다.[89]

초기 스타일 카운슬 시절에는 재즈가 웰러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고, 존 콜트레인을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언급했다.[90] 스타일 카운슬 시절 그의 취향은 클로드 드뷔시, 필라델피아 소울, 에릭 사티[41] 등 다양하게 영향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닐 영, 닉 드레이크, 트래픽 같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41][91][92]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도 받아들였다.[93]

2000년 이후, ''온 선셋''의 실험적인 트랙에 피에르 샤페르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을 주요 영향으로 언급했다.[95] ''소닉 킥스''의 "그린"과 "어라운드 더 레이크"에는 노이!의 영향이 있다고 지적되었다.[96]

웰러가 최고의 앨범으로 언급한 것으로는 ''오데시 앤 오라클'', ''써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왓츠 고잉 온'', ''인너비전스'', ''로우'', ''저니 인 사치다난다'', ''더 킨크스 아 더 빌리지 그린 프레저베이션 소사이어티'', 스몰 페이시스의 1967년 동명 앨범, 트래픽의 1968년 동명 앨범, ''맥카트니'', ''다운 바이 더 제티'', ''마이 제너레이션''이 있다.[97] 좋아하는 곡으로는 비틀즈의 "투모로우 네버 노즈"와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스몰 페이시스의 "틴 솔저", 제임스 브라운의 "겟 업 (아이 필 라이크 비잉 어) 섹스 머신", 덱란 오루크의 "갈릴레오 (섬원 라이크 유)", 킨크스의 "워털루 선셋"과 "데이스", 파렐 윌리엄스의 "해피"가 있다.[98]

2012년 길버트 오설리번의 노래 "어론 어게인 (내추럴리)"와 "낫씽 라임드"를 칭찬했다.[99][100]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이다.[101] 1960년대 초반 문화운동인 모즈의 영향을 받았으며, "모드의 아버지"라고 불린다.[133] 소년 시절에는 비틀즈 광팬이었다고 한다.

7. 작품 목록

폴 웰러는 스튜디오 음반 외에도 다양한 라이브 음반과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했다. 또한, 여러 차례 일본에서 공연을 가졌다.

'''일본 공연'''

연도날짜공연 장소비고
1991년11월 25일, 26일, 29일클럽 시타(CLUB CITTA), ON AIR
1992년3월 2일
7월 8일, 12일, 13일, 16일
니시 아자부 옐로우
나카노 선플라자(中野サンプラザ), NHK홀
1993년10월 27일, 31일
11월 1일, 5일, 7일
나카노 선플라자(中野サンプラザ), 시부야 고카이도(渋谷公会堂)
간이보험홀, 오사카 페스티벌홀, NHK홀
1994년10월 5일, 7일, 10일간이보험홀, 도쿄 베이 N.K.홀
1997년10월 16일, 17일, 19일, 20일, 22일, 23일오사카 코세이넨킨카이칸, 도쿄 신주쿠 리퀴드룸, 아카사카 블리츠(赤坂BLITZ)
2000년9월 9일, 10일, 13일, 14일, 16일, 17일제프 오사카(Zepp Osaka), 제프 후쿠오카(Zepp Fukuoka), 도쿄 국제 포럼(東京国際フォーラム) 홀 A, 제프 센다이(Zepp Sendai), 코이와이 농장(小岩井農場)
2001년7월 12일, 13일, 14일, 16일, 17일시부야 AX(SHIBUYA-AX), 마더 홀, 드럼 로그스, 아카사카 블리츠(赤坂BLITZ), 시부야 클럽 콰트로
2004년7월 24일, 25일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横浜国際総合競技場), 오사카 돔(大阪ドーム)The Rock Odyssey
2006년3월 29일, 31일
4월 1일, 3일
나카노 선플라자(中野サンプラザ), 제프 도쿄(Zepp Tokyo), 제프 오사카(Zepp Osaka)
2008년8월 7일, 9일, 10일시부야 AX(SHIBUYA-AX), 마쿠하리 멧세(幕張メッセ), 오사카 마이슈(大阪舞州)Summer Sonic 08
2009년4월 3일, 4일, 5일, 7일, 8일, 9일
7월 24일
클럽 시타(CLUB CITTA), 스튜디오 코스트(STUDIO COAST), 클럽 다이아몬드 홀(CLUB DIAMOND HALL), 후쿠오카 드럼 로그스, 난바 해치, 히로시마 클럽 콰트로, 후지락 페스티벌(フジロックフェスティバル)
2012년10월 22일, 23일, 25일, 26일, 27일제프 다이버시티(Zepp DiverCity), 제프 나고야(Zepp Nagoya), 제프 난바(Zepp Namba)게스트: 오카모토즈(OKAMOTO'S), 더 하이어투스(the HIATUS), 더 버스데이(The Birthday), 후지마키 료타(藤巻亮太), 쿠루리(くるり)
2018년1월 19일, 20일, 22일, 23일난바 해치(NAMBA HATCH), 요코하마 베이 홀(YOKOHAMA BAY HALL), 롯폰기 EX 극장(ROPPONGI EX THEATRE)
2024년1월 26일, 27일, 30일
2월 1일, 3일, 4일
오사카 난바 해치, 나고야 다이아몬드 홀, 삿포로 제프 삿포로, 미야기 센다이 핏, 도쿄 EX 극장 롯폰기도쿄 공연 서포트 액트: 리아 웰러[139]


7. 1. 스튜디오 앨범


  • 폴 웰러 (1992)
  • 와일드 우드 (1993)
  • 스탠리 로드 (1995)
  • 헤비 소울 (1997)
  • 헬리오센트릭 (2000)
  • 일루미네이션 (2002)
  • 스튜디오 150 (2004)
  • 애즈 이즈 나우 (2005)
  • 22 드림스 (2008)
  • 웨이크 업 더 네이션 (2010)
  • 소닉 킥스 (2012)
  • 새턴스 패턴 (2015)
  • 어 카인드 레볼루션 (2017)[131]
  • 트루 미닝스 (2018)
  • 온 선셋 (2020)
  • 팻 팝 (볼륨 1) (2021)
  • 66 (2024)

8. 출연 작품

폴 웰러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없다.

8. 1. 영화

2024년 런던 공습에서 제럴드 역을 연기했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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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서적 Pop Art Poems: The Music of the Jam Sheep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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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뉴스 Paul Weller shoots down David Cameron http://www.digitalsp[...]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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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뉴스 'Politicians? They're mugs, all of them': Paul Weller on music, style and the state of the nation https://www.theguard[...]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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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웹사이트 ポール・ウェラーの息子がJ-POP歌手としてデビュー https://natalie.mu/m[...]
[135] 웹사이트 밴드 해산 이유와 인기 절정 시기
[136] 웹사이트 OCS 지원과 Steve Cradd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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