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1. 개요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 왕실과 연관된 집안 출신으로, 옥스퍼드 대학교 졸업 후 정치에 입문하여 보수당 지도자를 거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긴축 재정을 통해 경제 회복을 시도하고,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를 부결시키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2016년 유럽 연합 탈퇴 국민 투표를 실시하고 탈퇴를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론에 직면했다. 총리 퇴임 후에는 정계에서 은퇴했다가 2023년 외무장관으로 복귀하여 국제 분쟁에 관여했으며, 202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한 후 정계에서 다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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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데이비드 윌리엄 도널드 캐머런 |
|---|---|
| 존칭 접두사 | 더 라이트 아너러블 |
| 출생일 | 1966년 10월 9일 |
| 출생지 | 메릴본, 런던, 잉글랜드 |
| 정당 | 보수당 |
| 자녀 | 4명 |
| 친척 | 캐머런 가문 |
| 교육 | 이튼 칼리지 브레이즈노즈 칼리지, 옥스퍼드 (MA) |
| 서명 | Accession Treaty 2011 David Cameron signature.svg |
| {"caption":"캐머런 총리 첫 연설 (2010년 5월 11일)","sound_file":"David_Cameron's_first_speech_as_prime_minister.ogg"} | |
| 재임 기간 | 2010년 5월 11일 ~ 2016년 7월 13일 |
|---|---|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 제1장관 | 윌리엄 헤이그 (2010-2015) 조지 오스본 (2015-2016) |
| 부총리 | 닉 클레그 (2010-2015) |
| 전임자 | 고든 브라운 |
| 후임자 | 테리사 메이 |
| 임기 시작 | 2023년 11월 13일 |
| 임기 종료 | 2024년 7월 5일 |
| 총리 | 리시 수낙 |
| 부장관 | 앤드루 미첼 (2024) |
| 전임자 | 제임스 클레벌리 |
| 후임자 | 데이비드 라미 |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 총리 |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
| 부대표 | 윌리엄 헤이그 |
| 임기 시작 | 2005년 12월 6일 |
| 임기 종료 | 2010년 5월 11일 |
| 전임자 | 마이클 하워드 |
| 후임자 | 해리엇 하먼 |
| 임기 시작 | 2005년 12월 6일 |
| 임기 종료 | 2016년 7월 11일 |
| 전임자 | 마이클 하워드 |
| 후임자 | 테리사 메이 |
| 임기 시작 | 2023년 11월 17일 종신 귀족 작위 |
| 의회 | 영국 |
| 하원 의원 (선거구) | 위트니 |
| 임기 시작 | 2001년 6월 7일 |
| 임기 종료 | 2016년 9월 12일 |
| 전임자 | 숀 우드워드 |
| 후임자 | 로버트 코츠 |
| 2003년 | 추밀원 사무처 |
|---|---|
| 2004년 | 지방 정부 |
| 2004-2005년 | 정책 조정 책임자 |
| 2005년 | 교육 및 기술 |
| 정치 성향 | 정치적 입장 |
|---|---|
| 선거 역사 | 선거 역사 |
| 보수당 A-리스트 | A-리스트 |
| 캐머런 커티 | 캐머런 커티 |
| 위트니 선거구 | 위트니 하원의원 |
| 외무장관 | 외무장관 |
| 그림자 내각 | 그림자 내각 |
| 야당 전면팀 | 전면팀 |
| 원내 보수주의 | 원내 보수주의 |
| 총리 재임 기간 | 총리 재임 기간 |
|---|---|
| 국제 순방 | 국제 순방 |
| 연립 정부 | 연립 정부와 협정 |
|---|---|
| 부총리 재임 | 닉 클레그의 부총리 재임 |
| 재무장관 재임 | 조지 오스본의 재무장관 재임 |
| 긴축 정책 | 긴축 정책 |
| 2010년 예산 | 2010년 예산 |
| 2011년 예산 | 2011년 예산 |
| 2012년 예산 | 2012년 예산 |
| 2013년 예산 | 2013년 예산 |
| 2014년 예산 | 2014년 예산 |
| 2015년 3월 예산 | 2015년 3월 예산 |
| 내무장관 재임 | 테리사 메이의 내무장관 재임 |
| 노동 연금 장관 재임 | 이언 던컨 스미스의 노동 연금 장관 재임 |
| 교육 장관 재임 | 마이클 고브의 교육 장관 재임 |
| 보건 장관 재임 | 제러미 헌트의 보건 장관 재임 |
| 피의 일요일 조사 | 피의 일요일 사과 |
| 지출 검토 | 지출, 전략적 국방, 역량 검토 균형 |
| 리비아 군사 개입 | 리비아 군사 개입 (엘라미 작전) |
| 큰 사회 | 큰 사회 |
| 큰 사회상 | 큰 사회상 |
| 국민 봉사 | 국민 봉사 |
| 대안 투표 국민 투표 | 대안 투표 국민 투표 |
| 뉴스 인터내셔널 전화 해킹 스캔들 | 전화 해킹 스캔들 |
| 2011년 잉글랜드 폭동 | 2011년 폭동 |
| 복지 개혁법 | 복지 개혁법 |
| 보건 및 사회 복지법 | 보건 및 사회 복지법 |
| 2012년 하계 올림픽 | 런던 2012 하계 올림픽 |
| 벨파스트 시청 깃발 시위 | 깃발 시위 |
| 블룸버그 연설 | 블룸버그 연설 |
| 결혼 (동성 커플) 법 | 결혼 (동성 커플) 법 |
| 리 릭비 살인 사건 | 울위치 공격 |
|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 투표 |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 투표 |
| 로열 메일 민영화 | 로열 메일 민영화 |
| 두 번째 내각 | 두 번째 내각 (다수) |
|---|---|
| 2015년 7월 예산 | 2015년 7월 예산 |
| 셰이더 작전 | 셰이더 작전 |
| 이라크 ISIL 군사 개입 | 이라크 ISIL 군사 개입 |
| 2015-16년 영국 및 아일랜드 홍수 | 2015–16년 홍수 |
| 2016년 예산 | 2016년 예산 |
| 유럽 연합 회원국 국민 투표 | 유럽 연합 회원국 국민 투표 |
| 브렉시트 | 브렉시트 |
| 조 콕스 살인 사건 | 조 콕스 살인 사건 |
| 파나마 페이퍼스 | 파나마 페이퍼스 |
| 보수당 대표 선거 | 2016년 보수당 대표 선거 |
| 총리 사임 훈장 | 사임 훈장 |
| 위트니 보궐 선거 | 2016년 위트니 보궐 선거 |
|---|---|
| 그린실 스캔들 | 그린실 스캔들 |
| 기름 바른 새끼 돼지 | 기름 바른 새끼 돼지 |
| 회고록 | 기록을 위해 |
| 외무장관 재임 | 외무장관 재임 |
| 국제 순방 | 국제 순방 |
| 내각 개편 | 2023년 11월 내각 개편 |
-
데이비드 캐머런 -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내각 협약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내각 협약은 2010년 영국 총선 후 헝 의회 상황에서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연립 정부 구성을 위해 체결한 협약이며, 재정 적자 감축, 정치 개혁 등을 핵심 과제로 하여 11개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
데이비드 캐머런 -
2010년 영국 정부의 내각 구성
2010년 영국 총선 결과 헝 의회 상황이 발생하여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연립 정부를 구성, 데이비드 캐머런이 총리, 닉 클레그가 부총리를 맡아 선거 제도 개혁, 경제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약을 맺고 영국 정치에 변화를 가져왔다. -
영국의 제54대 하원 의원 -
닉 클레그
1967년 영국에서 태어나 자유민주당 대표와 영국 부총리를 역임한 닉 클레그는 유럽 의회 의원과 영국 하원 의원을 거쳐 연립정부를 통해 부총리직에 올랐으며, 정치 개혁을 추진한 후 페이스북(현 메타)에서 활동하며 자유주의적 정치 이념과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
영국의 제54대 하원 의원 -
고든 브라운
고든 브라운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정치인으로, 영국 의회 하원 의원,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유엔 교육 담당 특사로 활동한다. -
영국의 제56대 하원 의원 -
닉 클레그
1967년 영국에서 태어나 자유민주당 대표와 영국 부총리를 역임한 닉 클레그는 유럽 의회 의원과 영국 하원 의원을 거쳐 연립정부를 통해 부총리직에 올랐으며, 정치 개혁을 추진한 후 페이스북(현 메타)에서 활동하며 자유주의적 정치 이념과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
영국의 제56대 하원 의원 -
제러미 코빈
제러미 코빈은 1949년 윌트셔주에서 태어난 영국의 정치인으로, 노동당 당수와 야당 대표를 역임하고 이즐링턴 노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사회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며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2. 생애
데이비드 캐머런 가문은 영국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먼 친척이다. 다만 서자의 후손이기에 왕위계승권은 없다. 조상 중에는 독일계 유대인도 있으며, 일각에서는 캐머런 가문이 모세의 후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PPE)을 전공하여 최우수 학위(first class honours)를 받았다. 졸업 후 보수당 연구부(Conservative Research Department)에 들어가 노먼 라몬트, 마이클 하워드의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고, 7년 동안 칼튼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법인 업무를 감독했다.
1997년 스태퍼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1년 총선에서 위트니 (옥스퍼드셔주) 선거구에 당선되어 의회에 입성했다. 의회 진출 2년 만에 야당 간부로 승진, 2005년 총선에서는 정책 조율 수장을 맡았다. 이후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데이비드 윌리엄 도널드 캐머런은 1966년 10월 9일 런던 메릴본의 런던 클리닉에서 태어나 버크셔의 피즈모어에서 자랐다. 증권 중개인인 아버지 이언 도널드 캐머런과 그의 아내이자 은퇴한 치안판사이며 윌리엄 마운트 2대 남작의 딸인 어머니 메리 플뢰르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형 알렉산더 캐머런과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캐머런의 집안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먼 친척으로, 윌리엄 4세의 후손이다. 어머니 쪽 가족은 웨일스인이며, 캐머런은 스코틀랜드인, 웨일스인, 영국인이 뒤섞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증조부 중 한 명인 아서 레비타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이디시어 작가 엘리아 레비타의 후손이다.
캐머런은 두 곳의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7세부터 버크셔주 윙크필드의 헤더다운 스쿨(Heatherdown School)에서 수학했으며, 13세에는 아버지와 형을 따라 버크셔주 이튼 칼리지에 진학했다. 이튼 칼리지 재학 중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적발되어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 후 1984년부터 9개월간의 갭이어를 가졌다. 이 기간 동안 하원 토론에 참석하고, 홍콩의 자딘 매더슨(Jardine Matheson)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소련을 방문했을 때 KGB의 포섭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1985년, 옥스퍼드 대학교 브레이즈노스 칼리지(Brasenose College)에서 철학, 정치 및 경제학(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학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의 담당 교수였던 버논 보그다노르(Vernon Bogdanor)는 캐머런을 "가장 뛰어난 학생들" 중 하나로 묘사했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 캐머런은 벌링던 클럽(Bullingdon Club)의 회원이었다. 1988년 1등급 학사 학위(first-class honours)를 받고 졸업했다.
2.2. 정치 입문 전 경력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PPE)을 공부하고 최우수 학위(first class honours)를 획득했다. 1988년부터 보수당 연구부에서 근무하며 노먼 라몬트와 마이클 하워드의 특별 보좌관을 지냈다. 존 메이저 총리의 총리 질의응답 준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7년 동안 칼튼 커뮤니케이션즈에서 기업 홍보 이사로 근무했다.
2.3. 초기 정치 경력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PPE)을 공부하여 최우수 학위(first class honours)를 획득했다. 1988년 9월부터 1993년까지 보수당 연구부(Conservative Research Department)에서 근무했으며, 첫 업무는 무역 및 산업, 에너지 및 민영화였다. 에드워드 르웰린, 에드 베이지, 레이첼 웻스톤 등 젊은 동료들과 친분을 쌓았다. 1991년에는 존 메이저 총리의 총리 질문 시간 브리핑을 위해 다우닝가 10번지로 파견되었다. 그는 토니 블레어 당시 노동당 고용 대변인의 "끔찍한 이중 언어(doublespeak)"를 지적하는 등 메이저 총리의 연설을 보좌했다. 이후 보수당 연구부 정치 부문 책임자가 되었다.
1992년 총선 기간 동안 메이저 총리의 기자 회견 브리핑을 담당했으며, 이후 전략 책임자가 된 스티브 힐턴과 긴밀히 협력했다.
1997년 총선에서는 스태퍼드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1년 총선에서는 위트니 옥스퍼드셔주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의원이 되었다. 의회 입성 2년 만에 야당 간부로 승진했고, 2005년 총선 운동 기간에는 정책 조율 수장을 맡았다.
3. 보수당 대표 (2005-2010)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캐머런은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초기에는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을 여론조사에서 앞섰으나, 고든 브라운이 총리직을 승계한 후에는 지지율이 다소 하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체제하에서 보수당은 지속적으로 노동당에 우위를 점했다.
3.1. 2005년 보수당 대표 선거
David Cameron영어은 젊고 혁신적인 후보로 비쳐 보수당 지도자로 당선되었다. 200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게 패배한 후, 마이클 하워드의 사퇴로 치러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하원의원 재선 후 그림자 내각의 교육·기술 장관을 역임했으나, 마이클 하워드의 사퇴에 따라 실시된 보수당 당수 선거에 "젊은 세대에 의한 개혁"을 기치로 출마하였다. 초기에 캐머런의 당선은 유력시되지 않았으나, 인기 가수 닐 세다카를 연상시키는 39세의 젊은 나이와 상쾌한 언변이 지지를 얻어 국회의원 예비선거를 승리하고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결선 투표에서는 당내 실력자이자 그림자 내무장관이었던 데이비드 마이클 데이비스를 큰 차이로 누르고 제20대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3.2. 야당 대표 시절 활동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캐머런은 보수당을 중도 노선으로 이끌며, 블레어의 노동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2009년 유럽 의회 선거 이후, 캐머런은 보수당의 유럽 의회 의원들을 유럽 인민당에서 분리하여 유럽 보수 개혁주의 그룹(ECR)을 창설했다. 이는 유럽 인민당이 유럽 연방주의자와 리스본 조약 지지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캐머런은 동맹 결성을 기념하기 위해 바르샤바의 팔라디움 영화관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다. 전 벨기에 총리이자 유럽 인민당 지도자인 빌프리트 마르텐스는 캐머런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캐머런의 운동은 한 가지 중요한 예외, 즉 유럽을 제외하고 모든 정책 영역에서 그의 당을 중도로 되돌리는 것이었습니다. ... 그의 전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그의 유럽 회의주의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비판했다.
4. 총리 재임 (2010-2016)
2010년 5월 11일 고든 브라운이 총리직에서 사임하자, 엘리자베스 2세는 브라운의 권고에 따라 캐머런에게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도록 초청했다. 43세의 캐머런은 1812년 리버풀 경 이후 가장 젊은 총리가 되었다. 그는 10번가 다우닝 스트리트 밖에서 가진 첫 연설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자유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할 의사를 밝혔다.
캐머런은 "당파적인 차이를 제쳐두고 공공의 이익과 국가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첫 조치 중 하나는 2010년 5월 11일 자유민주당 당수 닉 클레그를 부총리로 임명한 것이다.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하원에서 363석을 차지하여 76석의 넉넉한 다수당을 확보했다.
2010년 6월, 캐머런은 집권 당시 경제 상황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평가하고 지출 삭감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경고했다. 2015년 초, 그는 정부의 긴축 프로그램이 현금으로는 아니지만 GDP 비율로는 예산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2010년 12월, 캐머런은 FIFA 부회장 정몽준과 회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2018년 월드컵 개최권을 놓고 영국에 대한 표 매수 거래가 논의되었다.
캐머런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데 동의했고, 찬반투표를 위한 투표용지에서 "데보맥스" 옵션을 제거했다. 성공적인 투게더 캠페인에 대한 그의 지지는 여왕에게 개입을 요청하는 데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그는 또한 연정 파트너의 요청으로 실시된 투표 제도 변경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현상 유지를 유지하기 위한 성공적인 캠페인을 지원했다. 영국의 유럽 연합 회원 자격에 관한 2016년 국민투표는 그의 영국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영국의 헌법적 미래에 대한 세 건의 국민투표가 전례 없이 실시되었음을 의미한다.
캐머런은 자신의 보수당 의원 중 찬성보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성 결혼을 지지했으며, 이는 정부 내 자유민주당 의원과 야당인 노동당 의원의 지지가 필요함을 의미했다. 재임 초기에 그는 리비아에서 유엔이 지원하는 군사 작전에 대한 영국의 참여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했지만, 캐머런은 1782년 이후 최초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 작전 제안에 대해 하원에서 외교 정책 투표에서 패한 총리가 되었다. 그 후, 버락 오바마는 의회의 승인을 요청했지만, 결국 승인되지 않았다.
내각 발족 직후인 5월 29일, 재무성 수석 담당관인 데이비드 로즈가 연인(남성, 동성애) 소유 주택을 임차하고, 4만 파운드 이상의 임대료를 의원 경비 명목으로 부정 수령한 스캔들로 사임했다. 6월 15일에는 북아일랜드에서 1972년 발생한 블러디 선데이 사건에 대해, 1998년 이후 영국 정부가 지속해 온 사빌 조사 보고서가 제출됨에 따라 영국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10월에는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예산 삭감안을 발표했다. 이것이 실행될 경우 공무원 49만 명이 실업하고, 군사비 대폭 감축이 예상된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러한 군사비 감축으로 인해 앞으로 이라크 전쟁 규모의 군사 작전 참여는 불가능해진다.
2012년 4월 10일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회담하고, 영국과 일본이 방위 장비를 공동 개발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2013년 2월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1919년 4월 영국 식민지 군이 저지른 암리차르 학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명확하게 사과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2014년 9월 13일에는 ISIL(ISIS)이 영국 국적 남성을 참수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악마의 짓이다. 범인을 추적하여 재판을 받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적어 분노를 표출했다.
2015년 영국 총선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이 팽팽했고, 지역 정당과 극우 정당도 일정한 지지를 얻는 등 2대 정당 중 어느 한쪽의 단독 정권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지만, 예상외로 보수당이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여 총리를 계속 맡게 되었다. 동시에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을 해소했다. 선거 운동에서는 총리에 재선될 경우 3기를 목표로 하지 않겠다는 것과 유럽 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16년 6월 23일에 실시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파가 승리한 결과를 받아들여 "명확한 결과가 나왔으므로 내가 지도자를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영국 총리직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후임 당수로 테리사 메이가 선출됨에 따라 7월 13일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4.1. 제1기 (2010-2015): 연립 정부
2010년 5월 7일에 실시된 영국 의회 총선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을 제치고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헝 의회가 되었다. 이후 57석을 차지한 자유민주당과의 연정 협상 끝에 5월 12일 연립정부가 구성되었고, 캐머런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정부 구성 의사를 밝혔다. 43세의 캐머런은 1812년 리버풀 경 이후 가장 젊은 총리가 되었다.
10번가 다우닝 스트리트 밖에서 가진 첫 연설에서 캐머런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자유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할 의사를 밝혔다. 그는 "당파적인 차이를 제쳐두고 공공의 이익과 국가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첫 조치 중 하나로 2010년 5월 11일 자유민주당 당수 닉 클레그를 부총리로 임명했다.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하원에서 363석을 차지하여 76석의 넉넉한 다수당을 확보했다.
2010년 6월, 캐머런은 집권 당시 경제 상황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평가하고 지출 삭감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경고했다. 2015년 초, 그는 정부의 긴축 프로그램이 현금으로는 아니지만 GDP 비율로는 예산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2010년 12월, 캐머런은 FIFA 부회장 정몽준과 회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2018년 월드컵 개최권을 놓고 영국에 대한 표 매수 거래가 논의되었다.
캐머런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데 동의했고, 찬반투표를 위한 투표용지에서 "데보맥스" 옵션을 제거했다.
캐머런은 자신의 보수당 의원 중 찬성보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성 결혼을 지지했으며, 이는 정부 내 자유민주당 의원과 야당인 노동당 의원의 지지가 필요함을 의미했다. 재임 초기에 그는 리비아에서 유엔이 지원하는 군사 작전에 대한 영국의 참여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했지만, 캐머런은 1782년 이후 최초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 작전 제안에 대해 하원에서 외교 정책 투표에서 패한 총리가 되었다.
세계 금융 위기에 대응하여 캐머런은 긴축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는 정부 예산 적자와 영국의 복지 국가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공공 지출 감소로 구성된 적자 감축 프로그램이었다. 국민보건서비스와 교육은 "보호"되었고 직접적인 지출 삭감으로부터 보호받았다. 캐머런과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구조적 적자(즉, 투자와 반대로 현재 지출에 대한 적자)를 없애고 GDP 대비 정부 부채를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까지 GDP 대비 적자는 2010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4.2. 제2기 (2015-2016): 단독 정부
캐머런은 2015년 5월 7일 하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며 영국 총리로 재선되었다. 보수당의 총선 승리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와 해설가들이 제2의 헝 의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캐머런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70년 만에 처음으로 연립 정부를 이끈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닉 클레그의 역할에 감사를 표했다. 1992년 이후 처음으로 보수당 단독 정부를 구성한 캐머런은 1900년 총선에서 솔즈베리 경 이후 완전한 임기 후 재선되어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캐머런은 시리아 공습 확대에 대한 하원의 지지를 확보했다. 같은 해 초, 캐머런은 이슬람 극단주의와 파괴적인 가르침에 맞서 싸우기 위한 5개년 전략을 제시했다.
선거 공약대로 캐머런은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투표 일정을 확정하고, "개혁된 EU" 내에서 영국의 잔류를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6년 2월, EU 회원국으로서 영국의 지위에 대한 재협상이 타결되었다. 탈퇴 옵션은 "British"와 "exit"의 합성어인 브렉시트로 알려지게 되었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율 72%로 유럽연합 탈퇴 찬성 52%, 반대 48%의 결과가 나왔다. 결과 발표 몇 시간 후인 6월 24일, 캐머런은 2016년 10월 보수당 전당대회 시작 전에 총리직에서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0번가 다우닝 스트리트 앞에서 한 연설에서 그는 EU 잔류를 지지했던 자신의 입장을 언급하며 "우리나라를 다음 목적지로 이끌어갈 선장이 되는 것은 저에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국민투표 이후 캐머런과 그의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인디펜던트지의 매슈 노먼은 칼럼에서 이 국민투표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인 무모함"이라고 비난했다. 7월 말, 의회 외교위원회는 캐머런이 공무원들에게 브렉시트 계획을 세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위원회는 이를 "중대한 과실"이라고 규정했다. 가족과 함께 10번가 다우닝 스트리트를 떠나면서 한 그의 작별 연설에서는 자기 희생적인 공직 생활의 가치를 강조했다.
보수당 당수 선거는 9월 9일로 예정되었고, 새로운 당수는 10월 2일 시작되는 가을 전당대회까지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7월 11일, 안드레아 리드섬이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 철수하고 테리사 메이가 새로운 보수당 당수로 확정됨에 따라, 캐머런은 7월 12일 마지막 내각 회의를 열고, 마지막 총리 질의응답 후 7월 13일 오후 여왕에게 사임을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캐머런은 7월 11일 10번가 다우닝 스트리트 앞에서 사임 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난 후 마이크에 잡힌 캐머런이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추가로 주목을 받았다. 마지막 총리 질의응답 후, 캐머런은 국회의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고, 그의 마지막 말은 "저도 한때 미래였습니다"였다. 이는 2005년 토니 블레어에게 했던 그의 말, "그는 한때 미래였습니다"를 반복한 것이었다. 캐머런은 같은 날 여왕에게 사임을 제출했다.
5. 총리 퇴임 이후 (2016-2023)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2016년 6월 총리직 사임을 발표한 데이비드 캐머런은 9월 12일 하원의원직도 사퇴하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노스테드 영지에 임명되었고, 그의 위트니 지역구 의원직은 보수당 동료인 로버트 코츠가 계승했다.
캐머런은 2016년 10월 국민봉사단(National Citizen Service) 후원회장이 되었고, 2017년 1월에는 영국 알츠하이머 연구소(Alzheimer's Research UK) 회장으로 임명되어 치매(dementia)에 대한 인식 개선과 연구 자금 지원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총리직 이후 캐머런의 주요 임명은 다음과 같다.
2019년에는 회고록 포 더 레코드를 출판하여 총리 재임 시절의 경험과 결정들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캐머런은 그린실 캐피털(Greensill Capital) 로비 스캔들에 연루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총리 시절 금융업자 렉스 그린실(Lex Greensill)을 무보수 자문관으로 임명했던 그는, 2018년 그린실 캐피털의 자문관이 되어 상당한 가치의 주식 옵션을 보유하게 되었다. 2019년에는 렉스 그린실과 맷 핸콕(Matt Hancock) 보건 및 사회복지부 장관과의 비공개 회의를 주선했고, 2020년 그린실 캐피털이 파산하기 전에는 정부에 로비를 하여 대출 규정을 완화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6. 외무장관 재임 (2023-2024)
2023년 11월 13일, 리시 수낵 총리의 내각 개편으로 제임스 클레벌리의 후임 외무장관에 임명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동시에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아 상원 의원이 되었으며, 마거릿 대처 이후 귀족 작위를 받은 최초의 전직 총리가 되었다. 2023년 11월 17일 옥스퍼드셔주 치핑 노턴의 치핑 노턴의 캐머런 남작(Baron Cameron of Chipping Norton)으로 서임되었다.
캐머런의 외무장관 재임 기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국제 분쟁으로 특징지어졌다. 2023년 11월 23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베에리 학살 현장을 방문하여 이스라엘 외무장관 엘리 코헨을 만났고, 이후 이스라엘 총리 벤자민 네타냐후와 만나 가자 지구에 대한 추가 지원을 논의했다. BBC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관리들에게 "국제 인도주의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며 팔레스타인 사상자 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점령된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정착민 폭력"은 "완전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4년 1월,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가자에 대한 물 공급 복원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부인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집단학살 사건을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1월 말,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4년 2월, 미국 상원의 우크라이나, 타이완,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 법안을 지지하며, 서방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조지아 침공(2008년)과 크림반도 및 돈바스 점령(2014년) 때 보였던 약점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4년 4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당시 영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동일한 지원을 제공하면 "위험한 확전"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영국 외무장관으로서 처음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했다.
2024년 6월, 러시아 장난꾼 보반과 렉서스에게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정보와 도널드 트럼프와의 비공개 만찬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에 패배하면서 캐머런은 외무장관직에서 물러났고, 후임은 데이비드 램미가 되었다.
7. 정책 및 가치관
데이비드 캐머런은 스스로를 "현대적 온건 보수주의자"이자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라고 묘사한다. 그는 마거릿 대처의 열렬한 팬이지만, 대처리즘을 추종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자유보수주의를 주장하지만, 이데올로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경제 정책: 캐머런은 금융 위기 당시 정부의 금융기관 통제 실패 원인으로 고든 브라운 총리가 1997년에 실시한 금융기관 감독 권한 분리를 지적하며, 잉글랜드 은행(중앙은행)의 감독 권한 회복을 주장했다. 그는 긴축 재정을 통해 재정 적자 감축을 추진했다.
* 사회 정책: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며,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에는 과거 대처 정부의 동성애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영국 무슬림들이 영국 문화에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 외교 정책: 다자주의를 지지하며, NATO, UN, G8, EU 등 국제기구나 동맹을 통한 협력을 강조했다. 인도주의적 개입을 옹호하며, 수단 다르푸르의 대량 학살과 같은 경우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도와 영국 간의 관계 강화를 지지하며, 2010년에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특별 관계"라고 칭했다.
7.1. 논란 및 스캔들
데이비드 캐머런은 총리 재임 기간과 퇴임 이후 여러 논란과 스캔들에 휩싸였다.
2016년 4월, 파나마 문서 유출로 인해 캐머런의 아버지가 조세 회피처에 펀드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캐머런은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이후 총리 취임 전에 해당 펀드를 소유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적절한 세금 처리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과거 조세 회피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것과 상반된 행동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볼소버 선거구의 노동당 의원 데니스 스키너는 의회 논쟁에서 캐머런을 "Dodgy Dave"라고 칭하며 비판했고, 이는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캐머런을 비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2011년에는 캐머런 총리의 모친이 캐머런 총리의 계좌로 두 차례에 걸쳐 총 100000GBP를 송금하여 상속세를 회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총리 퇴임 후에는 그린실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캐머런은 2018년부터 그린실 캐피털의 자문역으로 활동하며 정부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9년에는 렉스 그린실과 보건 및 사회복지부 장관 맷 핸콕과의 비공개 회의를 주선했고, 2020년에는 그린실 캐피털이 파산하기 직전 정부에 규정 완화를 통해 대출을 받도록 로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외에도 캐머런은 고등학교 및 대학교 시절 대마초를 흡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2007년 1월 출판 예정이던 전기에서 이 사실이 언급되자 본인도 이를 인정했다. 2013년 10월에는 식빵 한 덩이의 가격을 모른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대중과의 거리감이 드러나기도 했다.
8. 평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불경기에서 비교적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엄격한 긴축 재정을 펼쳤고, '그레이트 브리튼' 해체 위기라고 불렸던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를 부결시켰으며, 2015년 총선거에서는 예상 밖의 승리로 보수당 단독 정권을 이끌었다. 이러한 성과로 보수당 총리로서 일정 부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16년 EU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영국의 EU 탈퇴를 초래하면서 이러한 평가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원래 EU 회의론자였지만, EU 탈퇴까지는 지향하지 않았던 캐머런은 당내 강경한 EU 탈퇴파의 압력을 이용하여 EU에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한편, 당내 강경파를 억누르기 위해 국민투표라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여 패배했다. EU와 국내 친EU파의 관점에서 보면, 캐머런은 자신의 정치 생명과 당의 일체성을 위해 국가의 운명을 희생한 셈이 되었다.
영국 전후사를 전공하는 82명의 연구자 평가에서, 캐머런은 전후 영국 총리 중에서 수에즈 사태로 사임한 앤서니 이든, 단명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더글러스 홈에 이어 낮은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