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켄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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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켄배커는 1931년 미국에서 설립된 전기 악기 및 앰프 제조 회사이다. 세계 최초의 상품화된 일렉트릭 기타인 "프라잉 팬"을 1932년에 발표했으며, 넥-스루 바디 구조와 스테레오 릭-오-사운드 출력을 특징으로 한다. 비틀즈의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등이 리켄배커 기타를 사용하면서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 다양한 모델의 기타와 베이스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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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켄배커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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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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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 | (정보 없음) |
설립일 | 1931년 |
설립자 | 아돌프 리켄배커 조지 뷰챔프 |
소재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 |
서비스 제공 지역 | 전 세계 |
산업 | 악기 |
제품 | 전기 기타 스틸-스트링 어쿠스틱 기타 랩 스틸 기타 콘솔 스틸 기타 베이스 기타 기타 앰프 전기 바이올린 전기 만돌린 전기 밴조 |
수익 | (정보 없음) |
영업 이익 | (정보 없음) |
순이익 | (정보 없음) |
직원 수 | (정보 없음) |
모회사 | (정보 없음) |
자회사 | (정보 없음) |
소유주 | (정보 없음) |
공식 웹사이트 | rickenbacker.com |
2. 역사
193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내셔널 스트링 인스트루먼트 코퍼레이션 출신 조지 비참 등이 '''로-패트-인 코퍼레이션'''(Elect'''Ro'''-'''Pat'''ent-'''In'''struments Corporation)을 설립하여 전기 악기와 앰프를 제조 및 판매했다. 1934년에는 '''일렉트로 스트링 인스트루먼트 코퍼레이션'''(Electro String Instruments Corporation)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1932년, 세계 최초로 상품화된 일렉트릭 하와이안 (랩 스틸) 기타 "프라잉 팬"을 발표했다. 다만, 발매 첫 해 판매량은 랩 스틸 10여 대, 스패니쉬 기타 5대 미만으로, 즉각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3]
당시 제품들은 목재가 아닌 알루미늄 다이캐스트나 베이클라이트로 제작되었다. 이는 창립자 중 한 명인 아돌프 리켄배커 (독일계)가 이미 금속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해당 설비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체 목공 설비는 갖추지 못했다.
아돌프의 먼 친척이자 격추왕으로 유명한 에디 리켄배커의 인지도를 활용하고자 브랜드명을 "리켄배커 일렉트로"로 정했다.
1953년, 펜더 일렉트릭 인스트루먼츠 사의 판매 대리점이었던 라디오&텔레비전 이큅먼트 사의 경영자 F.C. 홀이 리켄배커를 인수했다. 라디오&텔레 사는 펜더 제품을 전미에 판매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같은 해 펜더 세일즈 사가 설립되면서 펜더 제품 판매가 이전되었다. 두 회사 간 관계는 1955년까지 이어졌으나, F.C. 홀의 리켄배커 인수는 펜더와의 관계 단절 이후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후 리켄배커는 라디오&텔레 사의 판매망을 통해 전미에 판매되었다.
이 시기 독일 출신 기타 장인 로저 로스마이즐이 합류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는 많은 일렉트릭 스패니쉬 기타 모델을 개발했으며, 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랩 스틸 기타를 대체하는 주력 상품이 되었다. 로스마이즐은 훗날 펜더로 이직하여 코라도 등 어쿠스틱 바디 기타와 비틀즈 영화 "렛 잇 비"에서 조지 해리슨이 사용한 올로즈 텔레캐스터 등을 제작한다.
1960년대에는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이 모델 325 (6현, 12현), 조지 해리슨이 모델 360/12 (12현 기타) 및 모델 425 (6현 기타), 폴 매카트니가 모델 4001S (4현 베이스 기타) 등을 사용하면서 깁슨, 펜더 등 대형 제조사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들어 모델 4001은 예스의 크리스 스콰이어, 딥 퍼플의 로저 글로버, 더 잼의 브루스 폭스턴 등에 의해 주로 영국의 하드 록, 헤비 메탈, 뉴 웨이브 계열 밴드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 모즈라이트 설립자 세미 모즐리도 한때 리켄배커에 재직했다. 그는 제로 프렛을 장착하는 등 독자적인 사양의 기타를 제작하다 해고되었으나, 이는 모즈라이트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같은 시기 공장 장인 로저 로스마이즐에게 기타 제작 지도를 받았다. 「Combo」시리즈나 381 모델 등에서 보이는 바디 톱의 곡선인 「저먼 커브」는 로스마이즐이 독일인이라는 점에서 유래했다. 모즈라이트 기타에서도 유사한 곡선을 볼 수 있으며, 모즈라이트 할로우 바디 기타 「Combo」의 바디 구조 역시 리켄배커처럼 바디 재료를 뒷면에서 파내고 덮개를 덮는 방식이다.
- 1960년대, 런던 악기상 로즈 모리스사가 영국 수입 대리점이 되면서 미국 내 사양과 다른 기타들이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사운드 홀이 f홀로, 포지션 마커가 점으로 변경된 경우가 많았으며, 로즈 모리스 고유의 4자리 모델 번호가 부여되었다. (예: 존 엔트위슬, 피트 퀘이프, 도노반, 크리스 스콰이어가 처음 사용하고 이후 폴 매카트니가 연주한 베이스는 유럽 사양 모델 1999이다.) 이러한 사양은 미국에서 구할 수 없었지만, 후에 모델 4001S로 본국에서도 발매되었다.
- 모두 미국제이지만, 영국제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비틀즈 전성기에는 "영국, 리버풀, 리켄배커사"로 악기 구매 희망 편지가 많이 도착했다고 한다.
- 벤처스 연주로 일본에서 유명한 「파이프라인」 작곡자 선테이즈 리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카먼이 밴드 해산 후 리켄배커에 취업하여 오랫동안 공장장을 맡았으나, 최근 선테이즈 재결성으로 퇴직했다.
- 일본에는 「리켄즈」라는 음악 유닛이 존재한다. 데뷔 앨범에서는 리켄배커를 주로 사용했지만, 두 번째 앨범부터는 타사 기타 사용 비율이 늘었다.
- 2009년 12월, 미츠오카 자동차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리켄배커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오로치와 히미코 리켄배커 사양이 각각 한정 5대 예약 판매되었다. 트러스 로드 커버를 본뜬 엠블럼과 시트에 현, 테일피스 디자인을 수놓은 스티치가 적용되었다.
- 2017년 결성된 입헌민주당 마스코트 캐릭터 「입헌민주군」은 구 민주당 마스코트 캐릭터 「민주군」에 리켄배커 기타를 들게 한 것이다 ("리켄"과 "입헌"의 말장난). 고안자는 음악 평론가 타카하시 켄타로[18]이다.
2. 1. 설립과 초기 (1931-1953)
아돌프 리켄배커와 조지 뷰챔프는 1931년 전기 랩 스틸 기타를 판매하기 위해 '''Ro-Pat-In Corporation'''(Elect'''Ro-Pat'''ent-'''In'''struments)을 설립했다. 뷰챔프는 내셔널 스트링 악기 회사에서 활동했던 폴 바스, 해리 왓슨과 협력하여 악기를 설계했다.[1] Ro-Pat-In 브랜드는 'Rickenbacher'를 거쳐 최종적으로 'Rickenbacker'로 변경되었다. 초기 제품에는 'Electro'라는 브랜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1]초기 악기들은 긴 넥과 작은 원형 바디 때문에 프라이팬 기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들은 랩 스틸 기타 형태였지만, 최초의 상용화된 솔리드 바디 전기 기타였다. 현 위로 아치형으로 덮인 말굽 모양의 자화된 강철 커버가 있는 단일 픽업을 가지고 있었다. 1939년 "프라이팬" 모델 생산 중단까지 수천 대가 제작되었다.[2]
Electro String은 기타와 함께 앰프도 판매했다. 로스앤젤레스 라디오 제조업체인 밴 네스트가 최초의 Electro String 생산 모델 앰프를 설계했다. 이후 설계 엔지니어 랄프 로버트슨이 앰프를 발전시켰고, 1940년대까지 최소 4가지 다른 Rickenbacker 모델이 출시되었다. 제임스 불로우 랜싱은 랜싱 제조 회사의 Rickenbacker 프로페셔널 모델 스피커를 설계했다. 1940년대 초반, Rickenbacker 앰프는 레오 펜더에 의해 수리되기도 했는데, 그의 수리점은 펜더 악기 회사로 발전했다.
조지 보챔프는 1920년대 전자기타 이전 시대의 많은 어쿠스틱 기타리스트처럼 보드빌 공연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스틸 기타 연주자였으며, 악기가 오케스트라에서 돋보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축음기처럼 증폭용 혼이 장착된 기타를 생각했다. 발명가이자 바이올린 제작자인 존 도페라에게 접근했으나, 도페라의 시제품은 모두 실패했다. 이후 브리지 아래 기타 바디에 3개의 원뿔형 알루미늄 공명기를 장착하는 실험을 통해 보챔프를 만족시키는 악기가 만들어졌다. 그는 도페라에게 사업을 제안했고, 추가 개선 후 1927년 4월 9일 도페라는 트라이콘 기타 특허를 신청했다. 이후 도페라 형제는 로스앤젤레스 작업장에서 ''내셔널'' 브랜드로 트라이콘 기타를 만들었다. 1928년 1월 26일, 내셔널 스트링 악기 회사가 설립되었고, 아돌프 리켄배커 소유의 금속 스탬핑 공장 근처에 새 공장이 세워졌다. 이 회사는 스페인 및 하와이 스타일 트라이콘 기타, 4현 테너 기타, 만돌린, 우쿨렐레를 제작했다.[3]
아돌프 리켄배커는 1887년 스위스 바젤 태생으로, 부모 사망 후 친척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 1918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 후 "리켄배커"로 성을 변경했다. 1925년 두 파트너와 리켄배커 제조 회사를 설립, 1927년 법인화했다. 조지 보챔프를 만나 내셔널 스트링 악기 회사의 "내셔널" 금속 바디 제조를 시작했을 때, 리켄배커는 숙련된 생산 엔지니어이자 기계 기술자였다. 아돌프 리켄배커는 내셔널 주주가 되었고, 리켄배커 제조 회사 지원으로 내셔널은 하루 50대 기타 생산량을 달성했다.[3]
내셔널 악기 라인은 다양성이 부족했고, 비싸고 제조가 어려운 트라이콘 기타 수요 감소로 회사는 저가 악기 생산 필요성을 느꼈다. 존 도페라는 경영 불만으로 1929년 1월 내셔널을 사임, 도브로 제조 회사(Dobro Manufacturing Corporation, 이후 도브로 코퍼레이션)를 설립하고 자체 공명 장비 악기(도브로)를 제조했다. 1929년 내셔널과 도브로 간 특허 침해 소송이 발생, 도브로는 내셔널에 200만 달러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내셔널 경영진 내부 문제와 대공황 심화로 생산이 늦어졌고, 이는 조지 보챔프의 전자기타 개발 지원으로 이어졌다.[3]
1920년대 후반, 전자기 현악기 아이디어가 알려졌고, 실험적 밴조, 바이올린, 기타 픽업이 개발되었다. 조지 보챔프는 1925년부터 전기 증폭을 실험했으나, 마이크 사용 초기 시도는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했다. 2X4 크기 목재 조각과 전동 축음기 픽업으로 한 줄짜리 테스트 기타 제작 아이디어도 추구했다. 내셔널 문제 심화로 보챔프의 실험은 엄격해졌고, 전자 공학 야간 강좌 수강 및 내셔널 동료 폴 바르트와 협력했다.[1] 만족스러운 시제품 전기 픽업 개발 후, 보챔프는 전 내셔널 작업장 장인 해리 왓슨에게 픽업 고정용 나무 목과 바디 제작을 요청했다. "프라이팬" 별명은 모양 때문이었지만, 리켄배커는 팬케이크라 불렀다.[3] 보챔프와 바르트 개발 최종 디자인은 픽업 코일을 둘러싸고 현을 감싸는 말굽 모양 자석 한 쌍으로 구성된 전기 픽업이었다.[1]

1931년 말, 보챔프, 바르트, 리켄배커 등은 전기 증폭 악기 제조 및 판매를 위해 Ro-Pat-In Corporation (elekt''RO''-''PAT''ent-''IN''struments)을 결성, 새로 개발한 A-25 하와이언 기타("프라이팬" 랩 스틸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스페니시(표준) 모델, 앰프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1932년 여름, Ro-Pat-In은 주조 알루미늄 생산 버전 프라이팬 제작, 시카고 National Company와 유사한 나무 몸체 "Electro-Spanish" 모델(표준 스페니시 일렉트릭) 소량 생산을 시작했다. 이 악기들은 현 구동 전자기 픽업을 통해 일렉트릭 기타 기원을 이룬다. 1933년 Ro-Pat-In 회사명은 Electro String Instrument Corporation으로 변경, 악기에는 "Electro" 라벨이 붙었다. 1934년 주요 파트너 아돌프 리켄배커를 기려 "Rickenbacker" 이름이 추가되었다.[4][5]
A-22 프라이팬 초기 생산 중 보챔프와 리켄배커는 나무 몸체 스페니시 기타, 솔리드 바디 프로토타입 실험, Electro-Spanish Model B와 Electro-Spanish Ken Roberts가 탄생했다. 두 모델 모두 1931년 초 실험적 제작, 1935년 공식 출시되었다. Electro-Spanish Ken Roberts 모델은 46대 한정 생산되었다. 이 모델은 최초 연주자 이름 명명 악기였다. 대부분 아치탑 기타는 14-프렛 넥 조인트였지만, 이 모델 지판은 17번째 프렛에서 바디와 연결, 하이 프렛 접근이 용이했고, 25-1/2인치 스케일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최초 양산 풀 스케일(25-1/2") 일렉트릭 기타가 되었다.[4][5]
Electro-Spanish Ken Roberts의 또 다른 기능은 세계 최초 특허 트레몰로()인 Kauffman Vib-rola 테일피스다. Ken Roberts는 수동 작동 비브라토 표준 장비 최초 악기다. 이는 Clayton Doc Kauffman과 Rickenbacker의 첫 연결 고리를 나타낸다.[4][5]
2. 2. F.C. 홀의 인수와 변화 (1953-1960년대 초)
1953년, F.C. 홀은 아돌프 리켄배커로부터 일렉트로 스트링 컴퍼니(리켄배커)를 인수했다.[1] 홀은 사업을 개편하고 회사가 개척한 스틸 기타보다는 표준 일렉트릭 및 어쿠스틱 기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1956년, 리켄배커는 넥-쓰루 바디 구조를 가진 두 개의 악기를 소개했는데, 이는 넥에서 중앙 바디 섹션을 통과하는 단일 나무 조각으로 구성된다.[1] 이는 Combo 400 기타, 모델 4000 베이스, 그리고 나중에 600 시리즈를 포함한 회사의 많은 제품의 표준 기능이 되었다.
1958년에는 "카프리스"라는 프로토타입을 소개하기도 했다.[6]
2. 3. 비틀즈와 전성기 (1960년대)
1960년대에 비틀즈(The Beatles)의 사운드와 모습에 여러 리켄배커(Rickenbacker) 기타 모델이 영구적으로 연관되면서 리켄배커는 엄청난 혜택을 누렸다.[7]1960년 함부르크에서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존 레논(John Lennon)은 리켄배커 325(Rickenbacker 325)를 구입했으며, 그는 비틀즈 초창기 시절 내내 이 기타를 사용했다. 그는 결국 이 기타의 자연적인 오리나무 바디를 검은색으로 다시 마감했으며, 빅스비 비브라토 테일피스(Bigsby vibrato tailpiece)를 추가하고 컨트롤 노브를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등 다른 수정 작업을 했다.[7] 레논은 이 기타로 비틀즈가 출연한 1964년의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 데뷔 무대(그리고 같은 날 사전 녹화되었지만 2주 후에 방송된 세 번째 설리번 출연)에서 연주했다. 레논이 비틀즈 탈퇴 후 뉴욕에서 활동할 때, 그는 이 기타를 원래의 자연스러운 나무 마감으로 복원하고 금이 간 픽가드(pickguard)를 흰색으로 교체했다.[7]
리켄배커는 레논을 위해 두 대의 새로운 325를 제작하여 비틀즈가 미국을 방문한 1964년 마이애미 해변에 있을 때 그에게 보냈다. 하나는 맞춤형 12현 325 모델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정된 전자 장치와 비브라토가 장착된 업데이트된 6현 모델이었다. 그는 이 새로운 6현 모델을 비틀즈가 에드 설리번 쇼에 "두 번째"로 출연했을 때 사용했다.[7]
레논은 1964년 크리스마스 쇼에서 두 번째 325 모델을 실수로 떨어뜨려 헤드스톡이 부러졌다. 수리하는 동안 리켄배커의 영국 유통업체인 로즈 모리스(Rose Morris)는 레논에게 모델 1966(빨간색 마감과 F홀이 있는 325의 수출 버전)을 제공했다. 레논은 나중에 1966을 비틀즈 멤버인 링고 스타(Ringo Starr)에게 주었다.[7]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은 1963년 미국을 짧게 방문하는 동안 리켄배커 400 시리즈(Rickenbacker 400 series) 420을 구입했다.[7] 1964년 2월, 뉴욕시에서 리켄배커의 F.C. 홀은 밴드와 매니저를 만나 리켄배커 360/12(Rickenbacker 360/12) 모델 360/12를 해리슨에게 주었다(리켄배커가 제작한 두 번째 12현 일렉트릭 기타).[7] 이 악기는 비틀즈의 LP 앨범(LP album) ''A Hard Day's Night''과 1964년 말까지의 다른 비틀즈 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해리슨은 여생 동안 이 기타를 가끔 연주했다.
1965년 8월 21일, 비틀즈 콘서트 투어 중에 미네소타 주 음악 상점인 B-Sharp의 랜디 레스닉(Randy Resnick)은 해리슨에게 둥근 컷어웨이와 가장자리가 특징인 두 번째 모델 360/12 FG "뉴 스타일" 12현 일렉트릭 기타를 선물했다. KSTP-TV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이 행사를 기록했다. 해리슨은 이 기타를 "If I Needed Someone"이라는 곡과 비틀즈의 1966년 투어에서 사용했다.[7] 이 12현 기타는 밴드가 투어를 중단한 후 분실되어 행방이 묘연하다.[7]
비틀즈의 1965년 여름 투어 이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이전에 사용했던 가벼운 회프너(Höfner) 베이스 대신 왼손잡이용 1964 4001S FG 리켄배커 베이스를 자주 사용했다. 이 악기는 매카트니의 매우 멜로디컬한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다른 베이시스트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1967년, 매카트니는 자신의 4001에 "Hello, Goodbye" 홍보 영화와 ''Magical Mystery Tour''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이키델릭 아트(psychedelic art) 페인팅 작업을 했다.[7] 1년 정도 후, 누군가가 마감을 샌딩했다. 1970년대 초, 두 번째로 과도하게 샌딩하면서 베이스의 컷어웨이의 "포인트"가 제거되었다. 매카트니는 윙스(Wings (band))와 80년대 솔로 활동 기간 동안 리켄배커 베이스를 사용했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이 베이스로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비틀즈의 인기와 리켄배커 브랜드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인해 많은 60년대 기타리스트들이 이 브랜드를 채택했는데, 여기에는 존 포거티(John Fogerty)(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폴 칸트너(Paul Kantner)(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과 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더 후(The Who))가 포함된다.
2. 4. 1970년대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델 4001은 예스의 크리스 스콰이어, 딥 퍼플의 로저 글로버, 더 잼의 브루스 폭스턴 등이 사용하여, 주로 영국의 하드 록, 헤비 메탈, 뉴 웨이브 계열 밴드에서 널리 사용되었다.3. 특징
리켄배커 기타는 디자인, 사운드,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리켄배커 기타는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길이 방향으로 접착하여 만든 세트 넥을 가지고 있으며, 베이스는 바디 전체로 연장되는 원피스 넥을 가지고 있다. 리켄배커 악기는 더 좁은 넥(대부분 경쟁사의 너트에서 41.4mm 대 43mm)과 래커 처리된 로즈우드 지판으로 유명하여 다른 느낌을 준다.[8] 넥의 뒤틀림과 곡률을 수정하기 위해 두 개의 트러스 로드를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다.[8]
초기 리켄배커 기타는 밝은 종소리와 쟁글거리는 사운드로 유명했으며, 포크 록과 영국 침공 밴드들이 선호했다. 초기 모델에는 저출력 토스터 픽업이 장착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헤비 록의 등장과 함께 1969~70년경 고출력 픽업으로 대체되었다. 피트 타운젠드는 초기 모델이 그의 피드백 기술 개선과 마샬 사운드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8]
3. 1. 디자인
리켄배커 기타는 비교적 큰 더블 커터웨이와 헤드 부분에 '''리켄배커''' 로고가 들어간 큰 트러스 로드 커버, 그리고 바디 부분의 독특한 형태의 큰 픽가드를 장착한 것이 외형적 특징이다.[1] 브릿지 부근에는 날카로운 굴곡이 들어가 있으며, 넥은 3개의 각재를 접착한 3피스, 헤드는 5피스 구조로 되어있다.픽업은 싱글 코일(325시리즈 등에서 사용, 속칭: 토스터 픽업)과 험버커(650시리즈에서 사용) 외에도, '''하이게인'''이라고 불리는 자사제 픽업을 제조한다.[1] 이 픽업은 세미 어쿠스틱 모델인 300시리즈나 솔리드 모델인 620 (모두 12현 포함)에서 사용된다. 인레이(포지션 마크)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도트와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삼각 모양의 자사제 인레이가 있다. 이 인레이는 360, 381, 620, 660 (12현 포함)과 같은 디럭스 모델에서 사용된다.
일부 모델에는 스테레오 아웃풋과 모노럴 아웃풋이 모두 장착되어 있으며, 릭-O-사운드라는 전용 기기로 스테레오 출력이 가능하다. 스테레오 사용 시에도 모노럴 잭은 유효하므로, 모노럴도 동시에 출력할 수 있다.
1932년에 발표된 플라잉 팬은 일반적으로 판매된 최초의 일렉트릭 기타이다. 1935년에는 자사제 일렉트릭 스페니쉬 기타가 발매되었다.[1] 일렉트릭 베이스, 전기 바이올린, 12현 기타도 세계 최초로 발매했다.
12현 모델의 넥 폭과 헤드 모양은 일반적인 6현 사양의 것과 거의 같다. 다른 제조사의 12현 모델에 비해 다루기 쉬운 이유다. 스트링 포스트는 일반적인 6현과 같은 헤드에 수직으로 6개, 클래식 기타처럼 슬롯을 열어 헤드에 수평으로 부착되는 6개를 조합했다. 이것 또한 리켄배커 특유의 특징이다. 단, 클래식 기타처럼 헤드를 완전히 뚫는 것이 아니라, 헤드의 절반 정도만 뚫려 있다.
3. 2. 사운드
밝은 종소리와 '쟁글(Jangle)'거리는 사운드로 유명한 초기 리켄배커 기타는 포크 록과 영국 침공 밴드들이 선호했다. 초기 모델에는 저출력 토스터 픽업이 장착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헤비 록의 등장과 함께 1969~70년경 고출력 픽업으로 대체되었다. 피트 타운젠드는 초기 모델이 그의 피드백 기술 개선과 마샬 사운드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8]1960년대 이후,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톰 페티와 마이크 캠벨은 1960년대 빈티지 모델을 사용하여 토스터 픽업 특유의 쟁글거리는 사운드를 얻었다. 고출력 픽업 사운드는 더 잼, R.E.M.과 같은 밴드와 관련이 있다.
리켄배커는 현재 표준 모델용으로 세 종류의 픽업을 제조한다.
픽업 종류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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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게인 싱글 코일 | 대부분의 현대 모델에 기본 장착. 피터 벅, 폴 웰러, 자니 마 등이 사용. |
빈티지 토스터 싱글 코일 | 클래식한 2슬롯 크롬 토스터와 유사한 외관. 출력은 약간 낮지만 더 밝고 깨끗한 소리를 냄. 브리티시 인베이전 기타 톤을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 |
험버커 (HB1) | 깁슨 미니 험버커 픽업과 유사한 톤. 리켄배커 650C 및 4004 베이스에 기본 장착. |
표준 픽업 외에도 빈티지 리이슈 베이스 모델에는 초기 리켄배커 프라잉 팬 모델의 픽업과 매우 유사한 호스슈 랩어라운드 스타일 픽업이 장착된다.[16]
일부 리켄배커 모델은 각 픽업을 다른 앰프 또는 이펙터 체인으로 라우팅할 수 있는 스테레오 "릭-오-사운드(Rick-O-Sound)" 출력 소켓을 특징으로 한다. 스테레오 사용 시에도 모노럴 잭은 유효하므로, 모노럴도 동시에 출력 가능하다.
3. 3. 기술적 특징
일부 리켄배커 모델은 각 픽업을 다른 앰프 또는 이펙터 체인으로 라우팅할 수 있는 스테레오 "릭-오-사운드" 출력 소켓을 특징으로 한다.[8] 넥의 뒤틀림과 곡률을 수정하기 위해 두 개의 트러스 로드를 사용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8]리켄배커 기타는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길이 방향으로 접착하여 만든 세트 넥을 가지고 있으며, 베이스는 바디 전체로 연장되는 원피스 넥을 가지고 있다.[8] 리켄배커 악기는 더 좁은 넥(대부분 경쟁사의 너트에서 41.4 mm 대 43 mm)과 래커 처리된 로즈우드 지판으로 유명하여 다른 느낌을 준다.[8]
리켄배커는 현재 생산되는 표준 모델용으로 하이 게인 싱글 코일, 빈티지 토스터 싱글 코일, 그리고 험버커의 세 종류 픽업을 제조한다.[15] 이 세 가지 픽업 디자인은 모두 동일한 풋프린트를 공유하므로, 대부분의 현재 또는 빈티지 모델에 개조하여 장착할 수 있다.[15] 톤은 사용된 자석의 종류뿐만 아니라 픽업의 보빈에 감긴 와이어의 양에 따라서도 스타일별로 다르다.[15]
대부분의 현대 모델은 싱글 코일 하이 게인 픽업을 기본 장착하고 있다. 피터 벅, 폴 웰러, 자니 마와 같은 많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의 연주자들이 이 픽업이 장착된 악기를 사용했다. 리켄배커의 HB1 험버커/듀얼 코일 픽업은 깁슨 미니 험버커 픽업과 유사한 톤을 가지며, 리켄배커 650C 및 4004 베이스에 기본으로 장착된다. 빈티지 리이슈 모델과 일부 시그니처 모델에는 클래식한 2슬롯 크롬 토스터와 유사한 토스터 탑 픽업이 장착된다. 토스터 픽업은 출력은 약간 낮지만 더 밝고 깨끗한 소리를 내며, 당시의 오리지널 장비였기 때문에 진정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기타 톤을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15]
표준 픽업 외에도 빈티지 리이슈 베이스 모델에는 초기 리켄배커 프라잉 팬 모델의 픽업과 매우 유사한 호스슈 랩어라운드 스타일 픽업이 장착된다.[16]
리켄배커사 일렉트릭 기타의 특징은 비교적 큰 더블 커터웨이와 헤드부에 '리켄배커' 로고가 들어간 큰 트러스 로드 커버를 장착하고, 바디부의 픽가드에도 크고 독특한 형태의 픽가드가 부착되어 있는 점이다. 또한, 브릿지 부근에는 날카로운 굴곡이 들어가 있다. 넥은 3개의 각재를 접착한 3피스이며, 헤드는 5피스 구조로 되어있다.
픽업은 싱글 코일(325시리즈 등에서 사용, 속칭: 토스터 픽업)과 험버커(650시리즈에서 사용) 외에도, '하이게인'이라고 불리는 자사제 픽업을 제조하고 있다. 이 픽업은 세미 어쿠스틱 모델인 300시리즈나 솔리드 모델인 620 (모두 12현 포함)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인레이(포지션 마크)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도트와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삼각 모양의 자사제 인레이가 있다. 이 인레이는 360, 381, 620, 660 (12현 포함)과 같은 디럭스 모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일부 모델에는 스테레오 아웃풋과 모노럴 아웃풋이 모두 장착되어 있으며, 릭-O-사운드라는 전용 기기로 스테레오 출력이 가능하다. 스테레오 사용 시에도 모노럴 잭은 유효하므로, 모노럴도 동시에 출력 가능하다.
12현 모델의 넥 폭과 헤드 모양은 일반적인 6현 사양의 것과 거의 같아서, 다른 제조사의 12현 모델에 비해 다루기 쉽다. 스트링 포스트는 일반적인 6현과 같은 헤드에 수직으로 6개, 클래식 기타처럼 슬롯을 열어 헤드에 수평으로 부착되는 6개를 조합하여, 이것 또한 리켄배커 특유의 특징이다. 단, 클래식 기타처럼 헤드를 완전히 뚫는 것이 아니라, 헤드의 절반 정도만 뚫려 있다.
4. 모델
리켄배커는 다양한 기타와 베이스 기타 모델을 생산해왔다. 기타 모델로는 330, 360, 620, 4000 시리즈 등이 있으며, 베이스 모델로는 4001, 4003 등이 있다.
4. 1. 기타
리켄배커(Rickenbacker)는 다양한 종류의 기타 모델을 생산해왔다. 주요 모델들은 다음과 같다.종류 | 모델명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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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 어쿠스틱 | 330, 360, 370, 381 등 | 300 시리즈는 바디 형태에 따라 330/340(각진 형태)과 360/370(둥근 형태)으로 나뉜다. |
솔리드 기타 | 620, 650, 660 등 | 600 시리즈는 물결 모양의 더블 커터웨이가 특징이다. 650 모델은 험버커 픽업을 사용한다. |
빈티지 시리즈 및 C 시리즈 | 325, 360/12C63 등 | 초기 모델의 복각판이다. |
콤보 시리즈 | 콤보 400, 900, 950, 1000 등 | 리켄배커 창업 초기에 발매된 모델들이다. |
시그니처 모델 | 존 레논, 조지 해리슨, 톰 페티, 레미 킬미스터 등 | 유명 음악가들과 협력하여 제작된 모델들이다. |
일부 모델에는 스테레오 출력과 모노 출력이 모두 장착되어 있으며, 릭-O-사운드라는 전용 기기로 스테레오 출력이 가능하다. 스테레오 사용 시에도 모노 잭은 유효하므로, 모노도 동시에 출력 가능하다.[4]
1932년에 발표된 플라잉 팬은 일반적으로 판매된 최초의 일렉트릭 기타이다. 외주 바디에 픽업을 조립한 일렉트릭 스페니쉬 기타도 같은 해에 발매되었다. 자사제 일렉트릭 스페니쉬 기타는 1935년에 발매되었다. 일렉트릭 베이스와 일렉트릭 바이올린, 12현 기타도 세계 최초로 발매했다.[4][5]
12현 모델의 넥 폭과 헤드스톡 모양은 일반적인 6현 사양의 것과 거의 같아서, 다른 제조사의 12현 모델에 비해 다루기 쉽다. 스트링 포스트는 일반적인 6현과 같은 헤드에 수직으로 6개, 클래식 기타처럼 슬롯을 열어 헤드에 수평으로 부착되는 6개를 조합하여, 이것 또한 리켄배커 특유의 특징이다. 단, 클래식 기타처럼 헤드를 완전히 뚫는 것이 아니라, 헤드의 절반 정도만 뚫려 있다.[4]
- 모즈라이트사를 설립한 세미 모즐리도 한때 재직하고 있었다. 제로 프렛을 박는 등, 독자적인 사양을 가진 기타를 마음대로 제작했기 때문에 해고되었지만, 이것이 모즈라이트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공장에 있던 장인 로저 로스마이즐에게 기타 제작 지도를 받았다. 「Combo」시리즈나 381 모델 등에서 볼 수 있는 바디 톱의 곡선을 「저먼 커브」라고 부른다. 이는 로스마이즐이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모즈라이트에도 이와 유사한 곡선이 보인다. 또한, 모즈라이트의 할로우 바디 기타 「Combo」의 바디 구조도, 리켄배커와 마찬가지로 바디 재료를 뒷면에서 파내고, 뒷면에서 덮개를 덮는 형태로 구성한다는 구성도, 리켄배커를 본뜬 것이다.[4]
- 1960년대, 런던의 악기상 로즈 모리스사가 영국의 수입 대리점이 되면서, 동사의 주문으로 미국 국내 사양과 다른 기타가 많이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사운드 홀이 f홀이 되고, 포지션 마커가 점으로 바뀐 것이 많다. 이들에는 로즈 모리스 고유의 4자리 모델 번호가 붙어 있었다. 예를 들어 존 엔트위슬, 피트 퀘이프, 도노반, 크리스 스콰이어가 처음 입수했고, 나중에 폴 매카트니가 연주했던 베이스는 유럽 사양의 모델 1999이다. 이와 같은 사양의 것은 미국에서 구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모델 4001S로 본국에서도 발매되었다.[7]
- 벤처스의 연주로, 일본에서 익숙한 「파이프라인」을 작곡한 선테이즈의 리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카먼이 밴드 해산 후 취업하여 오랫동안 공장장을 맡았지만, 선테이즈가 최근 재결성하게 되면서 퇴직했다.
- 일본에 「리켄즈」라는 음악 유닛이 존재한다. 데뷔 앨범은, 리켄배커를 그 이름 그대로 메인으로 사용했지만, 두 번째 앨범부터는 타사의 기타를 사용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 2009년 12월에, 일본의 자동차 회사 미츠오카 자동차와의 콜라보레이션에 의한 「리켄배커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오로치와 히미코의 리켄배커 사양이 각각 한정 5대를 예약 판매했다. 트러스 로드 커버를 본뜬 엠블럼과 시트에 현과 테일피스 디자인을 수놓은 스티치가 베풀어졌다.
- 2017년에 결성된 입헌민주당의 마스코트 캐릭터 「입헌민주군」은, 구 민주당의 마스코트 캐릭터 「민주군」에게 리켄배커 기타를 들게 한 것이다("리켄"과 "입헌"의 말장난). 고안자는 음악 평론가 타카하시 켄타로[18]이다.
4. 2. 베이스

4000 시리즈는 1957년에 처음 출시된 리켄배커 베이스 기타이다. 4000 시리즈에 이어 4001 (1961년), 4002 (1977년에 출시된 한정판 베이스), 4008 (1970년대 중반에 출시된 8현 모델), 4003 (1979년, 1986년에 4001을 완전히 대체하여 2024년까지 생산 중)가 출시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4004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4005는 할로우 바디 베이스 기타로 제작되었으며 (1965년부터 1984년까지), 다른 4000 시리즈 베이스와는 달리 새로운 스타일의 360-370 기타와 유사했다. 4001S (1964년 출시)는 기본적으로 4001과 동일하지만 바인딩이 없고 닷 지판 인레이가 적용되었다. 이 모델은 RM1999라는 이름으로 영국에 수출되었다. 폴 매카트니는 초창기 4001S 모델 중 하나를 받았으며 (그의 모델은 왼손잡이용이었고, 나중에 제로 프렛을 포함하도록 수정되었다). 매카트니 외에도 4001의 초기 사용자는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 더 후의 존 엔트위슬, 더 킹크스의 피트 콰이프, 예스의 크리스 스콰이어[9] (그는 기술적으로 RM1999 영국 수입품을 사용했다)[10], 러시의 게디 리 등이 있다.
4003S ("스탠다드") 모델은 1985년에 출시되었고 2000년에 단종되었다가 2015년에 다시 출시되었다. 이 모델은 닷 넥 마커와 바인딩이 없는 4001S와 유사했다. 1985년부터 2002년까지 4003과 4003S는 블랙 하드웨어와 블랙 바인딩 옵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특별판으로는 4003 블루 보이, 4003 CS (크리스 스콰이어), 블랙스타, 섀도우 베이스, 턱시도, 4003 레드넥 등이 있었다.
리켄배커 베이스는 독특한 톤을 가지고 있다. 4001 및 4003 베이스는 넥-스루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제작된 3000 시리즈는 볼트 온 방식의 21 프렛 넥을 가진 저렴한 악기였다. 1975-76년에는 접착식 "세트 넥" 4000 버전 (넥이 깁슨 레스 폴처럼 세팅됨)이 있었으며, 20 프렛 넥, 닷 인레이, 바인딩 없음 (4001S와 유사) 및 브리지 포지션의 싱글 모노 픽업만 장착되었다. 배크먼-터너 오버드라이브의 프레드 터너는 4000을 ''낫 프래자일'' 앨범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했으며, "You Ain't Seen Nothing Yet" 프로모션 클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베이스는 ''Four Wheel Drive''의 게이트폴드 슬리브에도 등장한다.
1970년대에 리켄배커 베이스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주류가 되었으며, 제네시스의 마이크 러더포드와 예스의 크리스 스콰이어와 같은 영국의 베이시스트들이 대표적이다. 스콰이어는 시그널을 분리하여 기타 앰프와 베이스 앰프를 모두 통해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스테레오로 리켄배커를 연주한 최초의 연주자 중 한 명이었다.[9] 로토사운드 라운드와운드 현을 사용한 그의 공격적인 피킹 기술과 결합하여, 으르렁거리고 갈리는, "콘크리트 믹서" 톤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계속해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모방되고 있다.

하드 록 분야에서는 딥 퍼플의 로저 글로버가 리켄배커의 유명한 애호가였다. 러시의 게디 리는 밴드의 초기 음악에 리켄배커를 사용했다. 또 다른 열성 팬으로는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이 있었는데, 그의 심하게 개조된 4001은 빨간색 바디에 흰색 하드웨어와 트림을 갖추고 있으며, 그룹의 ''킬 뎀 올''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모터헤드의 보컬/베이시스트 이안 "레미" 킬미스터도 주목할 만하며, 리켄배커는 그를 위해 60대의 "레미 킬미스터" 시그니처 베이스를 제작했는데, 4004LK는 3개의 픽업, 금색 하드웨어 및 참나무 잎 모양의 정교한 목재 조각을 갖추고 있었다. 2019년, 회사는 슬립과 옴의 저명한 베이시스트이자 오랜 리켄배커 지지자인 알 시스네로스를 기리는 420대의 알 시스네로스 시그니처 베이스를 제작했다. 시스네로스의 4003AC 모델은 시그니처 픽가드, 지판의 녹색 인레이, 탈착식 썸 레스트를 특징으로 한다.[11]
리켄배커 베이스의 사운드는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의 영국 펑크/뉴 웨이브 음악 폭발에서 초기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글렌 매트록 (섹스 피스톨즈), 폴 시모논 (더 클래시), 피터 훅 (조이 디비전), 브루스 푹스톤 (더 잼), 폴 그레이 (더 댐드, 에디 앤 더 핫 로즈), 토니 제임스 (제너레이션 X), 마이클 브래들리 (더 언더토즈), 유스 (킬링 조크)와 미국의 마이크 밀스 (R.E.M.) 및 키라 로슬러 (블랙 플래그) 등이 사용했다.
브라질 베이시스트 알렉스 말헤이로스(Azymuth)는 밴드의 초기 시절(특히 1972년과 1977년 사이)에 4001 베이스를 사용했다. 그의 매우 풍부한 삼바, 재즈, 펑크 접근 방식은 크리스 스콰이어와 폴 매카트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 악기는 이러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주요 전기 베이스 기타 시리즈
모델명 | 설명 |
---|---|
4001 | 1961년 출시 |
4002 | 1977년에 출시된 한정판 베이스 |
4003 | 1979년 출시, 1986년에 4001을 완전히 대체하여 2024년까지 생산 중 |
4003S | 1985년에 출시, 2000년에 단종, 2015년 재출시 |
4004 | 생산 중단 |
4005 | 할로우 바디, 생산 중단 |
4080 |
5. 한국에서의 리켄배커
모즈라이트사를 설립한 세미 모즐리는 한때 리켄배커에서 재직하며 독자적인 사양의 기타를 제작하다 해고되었는데, 이것이 모즈라이트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18] 벤처스의 연주로 일본에서 익숙한 '파이프라인'을 작곡한 선테이즈의 리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카먼도 밴드 해산 후 리켄배커에 취업하여 오랫동안 공장장을 맡았다.[18]
2009년 12월에는 일본의 자동차 회사 미츠오카 자동차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리켄배커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오로치와 히미코의 리켄배커 사양이 각각 한정 5대 예약 판매되었다.[18] 트러스 로드 커버를 본뜬 엠블럼과 시트에 현과 테일피스 디자인을 수놓은 스티치가 특징이다.
2017년에 결성된 입헌민주당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입헌민주군'은 구 민주당의 마스코트 캐릭터 '민주군'에게 리켄배커 기타를 들게 한 것이다. 이는 '리켄'과 '입헌'의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말장난이며, 음악 평론가 타카하시 켄타로가 고안했다.[18]
참조
[1]
서적
The Rickenbacker Book
Miller Freeman Books
1994-01-01
[2]
웹사이트
Rock On - 'Born To Rocks' opens
https://www.bbc.co.u[...]
[3]
서적
The History Of Rickenbacker Guitars
Centerstream Publishing
[4]
웹사이트
Rickenbacker Ken Roberts Model Hollow Body Electric Guitar, c. 1935
http://www.retrofret[...]
Retrofret
2015-10-07
[5]
웹사이트
The Earliest Days of the Electric Guitar
http://www.rickenbac[...]
RIC
2015-08-08
[6]
웹사이트
Vintage Vault: 1964 Rickenbacker 325
https://www.premierg[...]
2019-03-12
[7]
서적
Beatles gear: all the fab Four's instruments, from stage to studio
[8]
간행물
Pete Townshend: On Guitar-Smashing Regrets, Stylistic Evolution, and Becoming a Gear Aficionado
http://www.premiergu[...]
2010-04-01
[9]
웹사이트
Remembering Chris Squire, the Very Loud, Beating Heart of Yes
https://slate.com/cu[...]
2015-06-29
[10]
웹사이트
How Chris Squire got his iconic bass tone
https://www.guitarwo[...]
2022-08-22
[11]
웹사이트
Rickenbacker Guitars Reveals the 4003AC Al Cisneros Signature Bass
https://www.notreble[...]
2019-08-09
[12]
웹사이트
News
http://www.rickenbac[...]
Rickenbacker.com
1958-07-15
[13]
웹사이트
Gallery
http://www.rickenbac[...]
Rickenbacker.com
[14]
웹사이트
All Models
http://www.rickenbac[...]
Rickenbacker.com
[15]
웹사이트
FAQ
http://www.rickenbac[...]
Rickenbacker.com
[16]
웹사이트
4001C64
http://www.rickenbac[...]
Rickenbacker.com
[17]
웹사이트
Guitar Wars: 8 Times Guitar Companies Freaked Out About Trademark Infringement
https://www.ultimate[...]
[18]
뉴스
「民主くん」ソックリ?立憲民主くん鹿児島に登場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10-16
[19]
문서
Rickenbacker Japan Official Site カタロ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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