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흑인 대이동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흑인 대이동은 1910년부터 1970년까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미국 남부에서 북부, 중서부, 서부 지역으로 이주한 대규모 인구 이동을 의미한다. 흑인 대이동은 남부의 인종 차별, 경제적 기회 부족, 1910년대 목화 바구미 피해와 같은 자연재해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북부 공장의 노동력 부족 등의 원인으로 발생했다. 이로 인해 흑인 인구 분포가 크게 변화하여 북부 도시의 흑인 인구가 급증했으며, 할렘 르네상스와 같은 흑인 문화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흑인 대이동은 주택 부족, 고용 경쟁 심화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으며, 1970년대 이후 흑인들의 남부로의 새로운 이주 현상으로 이어졌다.

2. 원인

1863년 노예 해방 선언 이후에도, 1900년까지 흑인 인구의 약 90%는 여전히 남부에 거주했다. 흑인 대이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 북부의 더 나은 교육 환경: 남부와 달리 북부에는 흑인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학교가 있었다.
  • 북부의 "약속의 땅": 많은 흑인들이 남부의 짐 크로 법에 의한 인종 차별을 피해, 인종 차별이 덜하다고 여겨지는 북부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자 했다.
  •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유럽 이민자 수가 감소하면서 북부 공장의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졌다. 1914년에는 약 120만 명의 유럽 이민자가 도착했지만, 그 다음 해에는 30만 명만 도착했다. 군대 입대도 노동력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북부 산업이 남부에서 새로운 노동력을 찾으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21]
  • 북부의 경제적 기회: 북부 사업가들은 흑인 노동자들의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 무료 교통편과 저렴한 주택 등 특별 인센티브를 제공했다.[32] 북부의 일자리는 남부의 일자리에 비해 임금이 두 배 이상 높았다.[21]
  • 전후 호황: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경제 호황은 북부 도시의 흑인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요약하면, 흑인 대이동의 주요 원인은 남부의 인종차별과 억압, 경제적 기회 부족, 그리고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였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 이민 감소와 북부 산업의 노동력 수요 증가를 가져와 흑인 대이동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1. 남부의 인종차별과 억압

1865년부터 1965년까지 린치와 인종 차별로 촉발된 살인


흑인 대이동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남부의 극심한 인종차별이었다. 남부에서는 짐 크로 법으로 대표되는 제도화된 차별이 만연했다. 이 법은 공공장소에서의 분리, 투표권 제한, 교육 기회 박탈 등 흑인들의 삶을 억압하고 사회적, 경제적 기회를 제한했다.[21]

1882년부터 1968년까지 거의 3,500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린치를 당하는 등[19] 폭력적인 인종차별 또한 흑인들이 남부를 떠나는 주요 원인이었다. 흑인들은 강제 노역, 죄수 임대와 같은 제도와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있었다.[20]

이러한 억압적인 환경은 흑인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북부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정치인은 "정치적으로 말하면 흑인이 너무 많지만,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더 많은 흑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당시 남부의 딜레마를 표현했다.[62] 이는 흑인들이 남부 경제에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동시에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1910년대 대이동이 시작되자, 남부 백인 엘리트들은 처음에는 흑인들의 이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이동이 거세지면서 남부 경제가 파탄날 것을 우려하여 흑인들의 이주를 막으려 했다. 임금 인상, 짐 크로 법의 부작용 완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백인 남부인들은 연방 관리들과 협력하여 흑인들을 남부에 묶어두려 했고, 흑인 민족주의의 부상을 두려워하여 여러 억압적인 조치들을 취했다.[62][63] 여기에는 지역 부랑자 조례, "일하거나 싸우거나" 법, 징집 명령 등이 포함되었으며, 협박과 구타도 사용되었다.[62][63]

2. 2. 경제적 기회 부족

1910년대 후반 목화 바구미가 남부의 목화밭에 들끓어 많은 소작농들은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19]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군수 산업이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흑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것은 공장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장 노동자를 위한 서비스업 일자리도 포함했다.[19] 제1차 세계 대전은 사실상 공업 중심지였던 북동부와 중서부로의 유럽인 이주 흐름을 끊었고, 이는 공장 노동자 부족을 야기했다.[19] 전후 《반이민법》(''Nativism'') 역시 인력 부족을 초래했다.[19]

북부의 일자리는 남부의 일자리와 비교하여 임금이 두 배 이상이 되는 등 많은 이점이 있었다.[21] 남부의 만연한 소작농 제도, 농업 불황, 목화 솜벌레의 광범위한 만연, 그리고 홍수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북부 도시로 이주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다.[21]

2. 3. 자연재해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와 그 여파는 수십만 명의 흑인 농부들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냈다.

3. 전개 과정

1차 대이동 당시, 뉴욕과 시카고를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 디트로이트, 캔자스시티, 피츠버그, 인디애나폴리스 등 8개의 주요 도시가 이주민의 3분의 2를 끌어들였다.[32] 2차 대이동에서는 이들 도시의 인구가 더욱 증가했고, 미국 서부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피닉스, 덴버, 시애틀, 포틀랜드 등도 새로운 목적지로 부상했다.[32]

이러한 이주 패턴에는 특정한 경향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1차 대이동 시기 미시시피주 출신 이주민의 절반 가량이 시카고로 향했고, 버지니아주 출신은 필라델피아로 이주하는 경향을 보였다.[32] 이는 지리적 요인, 즉 경도와 관련이 깊었다. 가장 가까운 도시가 많은 이주민을 끌어들였으며,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출신은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로 많이 이주했다.[32] 여러 목적지가 동일한 거리에 있을 경우에는 연쇄 이주 현상이 나타나, 이전에 이주한 사람들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32]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북부와 서부의 전쟁 특수 도시뿐만 아니라 산업화된 남부 도시로도 이주했다. 루이빌은 방위 산업의 발달로 경제가 성장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합성고무, 무연화약, 포탄, 차량 부품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다. 포드 자동차와 같은 기업들은 군수품 생산으로 전환했다.[33][34] 전쟁 중 노동력 부족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약 430만 명이 남부 주 내에서, 210만 명이 다른 주로 이동했다.[33][34] 루이빌의 방위 산업 고용은 정점에 달했을 때 8만 명을 넘었다. 초기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일자리가 제공되지 않았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공정고용실천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남부 산업계도 이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33][34]

이러한 이주 패턴은 네트워크 관계를 반영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전에 이주했던 북부 지역으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35]

3. 1. 1차 대이동 (1910-1940)

1863년 노예 해방 선언 이후, 흑인 인구의 극히 일부만이 북동부나 중서부에 살았고, 1900년경에도 흑인의 약 90%는 여전히 이전의 노예주에 거주했다. 흑인들은 주로 뉴욕(뉴욕주), 필라델피아(펜실베이니아주), 볼티모어(메릴랜드주),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 디트로이트(미시간주), 시카고(일리노이주), 밀워키(위스콘신주), 세인트루이스(미주리주), 오클랜드,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 등 큰 산업 도시와 중소 공업 도시로 가장 저렴한 기차표를 이용하여 이동했다. 미시시피 출신은 시카고로, 앨라배마 출신은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로, 텍사스 출신은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으로 이동했으며, 대부분 정부의 보조는 없었다.[18]



1차 대이동의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 남부의 만연한 인종차별과 짐 크로 법
  • 강제 노역, 죄수 임대
  • 인종차별 이데올로기 확산
  • 광범위한 린치 (1882년부터 1968년까지 거의 3,500명의 흑인이 린치를 당함)[19]
  • 남부의 사회적, 경제적 기회 부족
  •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북부 공장의 노동력 부족[20]
  • 북부 사업가들의 노동자 모집 (무료 교통편, 저렴한 주택 등 특별 인센티브 제공)[32]
  • 북부 일자리의 높은 임금 (남부의 두 배 이상)
  • 남부의 소작농 제도, 농업 불황, 목화 솜벌레(와타미조움시)의 만연, 홍수[21]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유럽 이민자 수가 감소하고 군대 입대가 늘면서 북부 공장의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졌다. 이는 흑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1910년부터 1930년 사이에 북부 주의 흑인 인구는 약 40% 증가했으며, 특히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시카고, 클리블랜드, 볼티모어, 뉴욕시 등에서 큰 인구 증가를 보였다.

하지만, 도시 내 경쟁 심화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었다. 특히 유럽 이민자들과 흑인들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미국노동총연맹(AFL)은 직장에서의 분리를 주장했고, 흑인과 백인이 함께 일하는 것에 항의하는 파업도 있었다. 1917년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 폭동에서는 40명에서 200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의 흑인이 집에서 쫓겨났다.[24] 미국 유색인종 지위 향상 협회(NAACP)는 침묵 행진으로 이에 대응했다.[24]

1919년 여름과 가을에는 인종적 긴장이 폭력으로 이어져 '레드 서머(Red Summer)'로 불렸다. 워싱턴 D.C., 시카고, 오마하, 녹스빌, 일레인 등 여러 도시에서 폭동이 발생했다.[25] 시카고 폭동에서는 38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250000USD 상당의 재산이 파괴되고 1000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28]

제임스 그레고리는 그의 저서 ''남부 디아스포라''에서 191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흑인 이주가 활발했으며, 1930년까지 130만 명의 전 남부 거주민이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고 계산했다. 대공황으로 인해 이주는 크게 감소했지만, 1940년대 농업 기계화로 인해 더 많은 흑인들이 북쪽이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3. 2. 2차 대이동 (1940-1970)

1930년대대공황으로 인해 이주가 감소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을 위한 방위 산업 증강과 전후 경제 호황으로 1960년대까지 더 많은 흑인들이 남부를 떠나면서 이주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이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족들을 개발 중인 교외 지역으로부터 배제하는 차별적인 주택 정책으로 인해 도시 지역의 과밀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뉴욕과 뉴저지주 북부 교외 지역에서는 6만 7천 건의 주택 담보 대출이 G.I. 법안에 의해 보장되었지만,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한 것은 100건 미만이었다.[30][31]

2차 대이동에서는 미국 서부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피닉스, 덴버, 시애틀, 포틀랜드 등도 주요 목적지로 추가되었다.

특정 남부 주와 도시를 북부와 서부의 해당 목적지와 연결하는 명확한 이주 패턴이 있었다. 예를 들어, 1차 대이동 중 미시시피주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거의 절반은 시카고로 갔고, 버지니아주 출신 사람들은 필라델피아로 이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부분 이러한 패턴은 지리(경도)와 관련이 있으며, 가장 가까운 도시가 가장 많은 이주민을 끌어들였다. 여러 목적지가 동일한 거리에 있을 경우, 이전에 이주한 사람들이 설정한 경로를 따라 이주하는 연쇄 이주가 더 큰 역할을 했다.[32]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북쪽과 서쪽으로 전쟁 특수 도시로 이주하는 것 외에도 산업화된 남부 도시로도 이주했다. 루이빌의 방위 산업 증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루이빌의 경제가 성장했다. 합성고무, 무연화약, 포탄, 차량 부품 생산 등 다양한 산업이 있었다. 포드 자동차 회사가 군용 지프 생산으로 공장을 전환하는 등 많은 산업이 전쟁 노력을 위한 제품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힐러리치 앤 브래드스비사(Hillerich & Bradsby)는 처음에는 야구 배트를 만들다가 총열 생산으로 전환했다.[33][34]

전쟁 중 방위 산업에서 노동자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전쟁 중 산업계의 부족한 일자리를 채울 기회를 얻었는데, 남부 주에서 약 430만 명이 주내 이동을 하고 210만 명이 주간 이동을 했다. 루이빌의 방위 산업 고용은 약 8만 명을 넘는 정점에 달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일자리가 제공되지 않았지만, 방위 산업의 일자리 수요 증가와 공정고용실천위원회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의해 서명되면서 남부 산업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직장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33][34]

이주 패턴은 네트워크 관계를 반영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전에 이주했던 북부 지역으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무작위로 선택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한 명이 남부 출생지에서 목적지 카운티로 이동하면 평균 1.9명의 추가적인 흑인 이주민이 같은 이동을 했다"고 한다.[35]

4. 결과 및 영향

대이동은 흑인들에게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1863년 노예 해방 선언 당시 북동부나 중서부에 거주하는 흑인 인구는 8% 미만이었으나, 대이동을 통해 1910년에서 1930년 사이 북부 흑인 인구는 약 20% 증가했다. 특히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클리블랜드 등 대도시에서 흑인 인구가 크게 늘었다.[1] 1910년 디트로이트의 흑인 인구는 6,000명이었으나, 1929년 대공황 시작 시점에는 12만 명으로 증가했다.[1]

이러한 인구 이동은 할렘 르네상스와 시카고 흑인 르네상스 등 흑인 문화 발달에도 기여했다. 제이콥 로렌스는 ''이주 시리즈''라는 회화 시리즈를 통해 북부 도시에 적응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주민들의 고투를 주제로 다루었다.[37] 블루스 가수 머디 워터스, 하울린 울프, 버디 가이 등 많은 이들이 미시시피 델타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흑인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39]

하지만, 대이동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1917년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 폭동에서는 40명에서 200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집에서 쫓겨났다.[24] 1919년 여름과 가을에는 레드 서머(Red Summer)로 알려진 기간 동안 미국 주요 도시에서 흑인과 백인 미국인 사이의 폭력과 폭동이 발생했다.[25] 시카고에서 발생한 인종 폭동으로 38명이 목숨을 잃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250000USD 상당의 재산 피해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28]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교육받은 흑인들은 대이동 이후 더 나은 직업을 얻을 수 있었고, 일부는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1]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산업에 종사하는 흑인 노동자 수는 50만 명에서 90만 1천 명으로 거의 두 배가 되었다.[42] 대공황 이후,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산업노동조합회의(CIO) 결성을 통해 흑인들은 더욱 숙련된 직업과 감독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주택 부족 문제가 발생했고, 모기지 차별과 레드라이닝과 같은 차별로 인해 흑인들은 주거 선택에 제한을 받았다.[52] 1934년 국가주택법은 도시 지역, 특히 흑인 거주 지역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여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켰다.[52]

4. 1. 인구 분포 변화

1863년 노예 해방 선언 당시 북동부나 중서부에 거주하는 흑인 인구는 8% 미만이었다. 1900년경에도 흑인의 약 90%는 여전히 이전에 노예 제도가 있던 주에 거주했다. 대이동에 참여한 흑인들은 주로 뉴욕(뉴욕주), 필라델피아(펜실베이니아주), 볼티모어(메릴랜드주),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 디트로이트(미시간주), 시카고(일리노이주), 밀워키(위스콘신주), 세인트루이스(미주리주), 오클랜드,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 등 대규모 산업 도시로 이동했다. 이들은 가장 싼 기차표를 이용해 이동했으며, 미시시피 출신은 시카고, 텍사스 출신은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식이었다. 흑인들은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으로 이동했고, 대부분 정부 보조는 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남부 흑인들의 북쪽 대이동 (제이콥 로렌스 작품)


북부에서는 1910년에서 1930년 사이 흑인 인구가 약 20% 증가했다. 특히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클리블랜드 등에서 큰 증가폭을 보였다. 1910년 디트로이트의 흑인 인구는 6,000명이었으나, 1929년 대공황 시작 시점에는 12만 명으로 늘었다. 다른 대도시들 역시 흑인 인구가 증가했다.

도시 지역에 흑인들이 집중되자, 일부 백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작된 교외 개발이 끝난 후 도심 지역에서 저당 차별과 레드라이닝(융자 차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교육받은 흑인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했고, 많은 흑인들이 중산층 하위 계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대이동은 흑인 전체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2. 흑인 문화의 발달

대이동은 할렘 르네상스와 시카고 흑인 르네상스 등 흑인 문화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카리브해 이민자들의 영향도 받은 흑인 문화 부흥은 흑인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제이콥 로렌스는 젊은 시절 뉴욕에서 활동하며 ''이주 시리즈''라는 회화 시리즈를 통해 북부 도시에 적응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주민들의 고투를 주제로 다루었다.[37] 1941년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로렌스의 ''시리즈''는 큰 주목을 받았고, 그는 곧 당대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38]

블루스 가수 머디 워터스, 하울린 울프, 버디 가이 등 많은 이들이 미시시피 델타에서 시카고로 이주했다. 델타 출신 피아니스트 에디 보이드는 ''리빙 블루스'' 잡지에서 "인종차별에서 벗어나 제 재능으로 무언가를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카고로 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시카고는 천국이 아니었지만, 제가 태어난 곳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39]

시카고의 브론즈빌(Bronzeville) 지역은 "흑인 메트로폴리스(Black Metropolis)"로 불리며 1924년부터 1929년까지 황금기를 맞았다. 이 지역에는 흑인 소유 기업들이 번성했으며,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YMCA"가 설립되어 이주민들의 구직을 지원했다.[58]

4. 3. 정치적 영향

북부에서는 1910년과 1930년 사이 흑인 인구가 약 20% 정도 상승했다.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클리블랜드 등의 도시는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1] 예를 들어, 1910년 디트로이트의 흑인 인구는 6,000명뿐이었지만,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에는 12만 명으로 늘었다. 다른 대도시에도 흑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도시에 흑인이 집중되면서, 일부 백인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시작된 교외 개발이 끝난 후 미국의 도심지 지역에서 ‘저당 차별’(''Mortgage discrimination'')과 ‘레드라이닝’(''redlining'', 특정경계지구 설정)을 사용했다. 그러나 반대로, 교육을 받은 흑인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흑인이 차례로 중산층의 아래 단계(로우와 미들 클래스)에 오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이동은 흑인 전체를 도왔다고 말할 수 있다.[1]

4. 4. 사회적 갈등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북상과 공장에서 백인과 흑인 노동자들의 혼합은 긴장감을 고조시켰는데, 이는 주로 백인 노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미국노동총연맹(AFL, American Federation of Labor)은 직장에서 유럽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분리를 주장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일하는 것을 항의하는 파업과 같은 비폭력 시위도 있었다. 직장 내 인종차별을 주장함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면서 곧 폭력이 발생했다.[24]

1917년, 가장 잔혹한 직장 폭동 중 하나로 알려진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 폭동(East St. Louis riot)에서 40명에서 200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집에서 쫓겨났다. 미국 유색인종 지위 향상 협회(NAACP,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는 침묵 행진(Silent March)으로 알려진 행진으로 이 폭력 사태에 대응했다. 1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과 여성이 뉴욕 할렘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 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계속해서 갈등과 긴장에 직면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갈등이 계속되었다.[24]

1919년 여름과 가을에 인종적 긴장이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레드 서머(Red Summer)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기간은 미국 주요 도시에서 흑인과 백인 미국인 사이의 폭력과 장기간의 폭동으로 특징지어졌다.[25] 이 폭력의 원인은 다양하다. 폭력의 영향을 받은 도시로는 워싱턴 D.C.(Washington D.C.), 시카고, 오마하(Omaha), 녹스빌(Knoxville), 그리고 멤피스(Memphis)에서 남서쪽으로 약 112.65km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인 일레인(Elaine)이 있다.[26]

시카고에서 인종 폭동이 정점에 달했으며, 폭동 중 가장 많은 폭력과 사망이 발생했다.[27] 1922년 시카고의 인종 관계에 대한 공식 보고서인 "시카고의 흑인: 인종 관계와 인종 폭동 연구"의 저자들은 시카고에서 폭력적인 폭발로 이어진 많은 요인들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로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백인 남성들의 일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1918년 전쟁이 끝나자 많은 남성들이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일자리가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할 의향이 있는 흑인 남성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6]

시카고에서 폭동과 폭력이 진정될 무렵 38명이 목숨을 잃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250000USD 상당의 재산이 파괴되었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28] 전국 다른 도시에서도 레드 서머의 폭력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레드 서머는 미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인종적 긴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러한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폭력은 192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 혁명인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를 예고했다.[27] 1940년대 시카고의 에어포트 홈즈 인종 폭동(Airport Homes race riots), 1943년 디트로이트 인종 폭동(1943 Detroit race riot)과 주택 및 고용 차별에 대한 인종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동부의 다른 도시에서도 인종 폭력이 다시 발생했다.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대이동 이후 직업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결국 어느 정도의 계층 이동성을 얻었지만, 이주민들은 상당한 차별을 겪었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주했기 때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주민들은 도시 유럽계 미국인 노동 계급(그들 중 많은 수가 최근 이민자들이었다)의 반감을 자주 샀다. 임금 협상 능력이나 고용 확보 능력을 우려한 백인들은 새로운 노동 경쟁의 유입에 위협을 느꼈다. 때때로 가장 두려워하거나 분개하는 사람들은 19세기의 마지막 이민자들이나 20세기의 새로운 이민자들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특히 철강, 자동차, 조선, 식품 가공 산업에서 산업 고용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산업에 종사하는 흑인 노동자 수는 50만 명에서 90만 1천 명으로 거의 두 배가 되었다.[42] 대공황 이후,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철강 및 식품 가공 산업의 노동자들이 인종 간 노동 조합인 산업노동조합회의(CIO)에 조직되면서 더 많은 진전이 있었다. 노동 조합은 많은 직업의 분리를 종식시켰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이전에 비공식적으로 백인에게만 예약되어 있던 더욱 숙련된 직업과 감독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주민과 새로운 유럽 이민자 모두 인구가 너무 빨리 증가하여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주택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자원이 적었던 새로운 이민자들은 가장 오래되고 낡은 주택을 두고 경쟁해야 했다. 민족 집단은 변화에 저항하는 영토를 만들었다. 차별은 종종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혼잡한 지역으로 제한했다. 도시의 기존 주민들은 교외에 새로운 주택이 개발됨에 따라 새 주택으로 이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모기지 차별과 레드라이닝은 도심 지역에서 새로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주민들이 자신의 주택을 결정하거나 공정한 가격을 얻는 능력을 제한했다. 장기적으로 1934년 국가주택법은 도시 지역,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대출 이용 가능성을 제한하는 데 기여했다.[52]

5. 한국 사회와의 관련성

(이전 출력에서 변경된 내용이 없으므로, 동일한 결과를 출력합니다.)

(주어진 원본 소스가 비어있으므로, '흑인 대이동'의 '한국 사회와의 관련성' 섹션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6. 새로운 대이동 (New Great Migration)

미국 민권 운동의 정치적·시민적 성과 이후 1970년대부터 흑인 이주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흑인들이 남부의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이주 방향은 달라졌다.[73][74]

새로운 대이동(New Great Migration)은 남부 전역에 고르게 분포되지 않았다. 초기 대이동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대이동은 주로 애틀랜타, 샬럿, 휴스턴, 댈러스, 롤리, 워싱턴 D.C., 탬파, 버지니아비치, 샌안토니오, 멤피스, 올랜도, 내슈빌, 잭슨빌 등과 같은 도시와 대도시 지역을 향하고 있다. 특히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샬럿 대도시권은 미국의 흑인 이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다. 1975년부터 1980년 사이에 샬럿은 2,725명의 흑인 순증가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에 7,497명으로,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23,313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이러한 순증가의 증가는 애틀랜타, 샬럿, 댈러스, 휴스턴이 뉴 그레이트 마이그레이션 이주민들에게 성장하는 인기 지역임을 보여준다.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남부에 거주하는 흑인 미국인의 비율은 1990년 이후 증가해 왔으며, 가장 큰 증가는 해당 지역의 대도시 지역에서 나타났다. 애틀랜타 대도시권의 흑인 인구는 1990년부터 202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하여 최근 인구 조사에서 200만명을 넘어섰다. 샬럿 대도시권의 흑인 인구 또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휴스턴 대도시권과 댈러스-포트워스 대도시권은 모두 흑인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을 최초로 기록했다. 샌안토니오; 롤리와 그린즈버러; 올랜도를 포함한 몇몇 더 작은 대도시권도 상당한 증가를 보였다.[75][76] 주요 목적지는 특히 조지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 메릴랜드주, 버지니아주, 테네시주, 플로리다주텍사스주와 같이 일자리가 가장 많은 주들이다. 미시시피주, 루이지애나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앨라배마주아칸소주를 포함한 다른 남부 주들은 귀환 이주로 인한 흑인 인구의 순증가가 거의 없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Great Migration (1910–1970) https://www.archives[...] 2022-03-21
[2] 웹사이트 The Great Migration http://americanexper[...] 2019-10-03
[3] 웹사이트 The Long-Lasting Legacy of the Great Migration https://www.smithson[...] 2019-10-03
[4] 웹사이트 Black Metropolis https://depts.washin[...] University of Washington 2021-03-25
[5] 간행물 The Long-Lasting Legacy of the Great Migration https://www.smithson[...] 2021-07-31
[6] 서적 Colonial America to 1763 https://archive.org/[...] Facts on File
[7] 웹사이트 Colonial and Pre-Federal Statistics https://www2.census.[...] United States Census Bureau 2020-12-24
[8] 보고서 Historical Census Statistics on Population Totals by Race, 1790 to 1990, and by Hispanic Origin, 1970 to 1990, for the United States, Regions, Divisions, and States http://mapmaker.rutg[...] United States Census Bureau 2002-09-01
[9] 웹사이트 Table 33. Louisiana – Race and Hispanic Origin: 1810 to 1990 https://www.census.g[...]
[10] 웹사이트 Race and Hispanic Origin for States https://web.archive.[...] 2013-06-24
[11] 웹사이트 Table 39. Mississippi – Race and Hispanic Origin: 1800 to 1990 https://www.census.g[...]
[12] 웹사이트 The Second Great Migration https://web.archive.[...] New York Public Library 2017-01-17
[13] 서적 The American Negro Reference Book Prentice Hall
[14] 웹사이트 The Second Great Migration https://web.archive.[...] New York Public Library 2016-03-23
[15] 서적 The Promised Land: The Great Black Migration and How It Changed America Alfred A. Knopf
[16] 웹사이트 The New Great Migration: Black Americans' Return to the South, 1965–2000 https://www.brooking[...] The Brookings Institution 2008-03-19
[17] 뉴스 Racism Is Everywhere, So Why Not Move South? https://www.nytimes.[...] 2017-07-09
[18] 뉴스 Returning South: A family revisits a double lynching that forced them to flee to Chicago 100 years ago https://www.chicagot[...] 2020-09-22
[19] 웹사이트 Lynchings: By State and Race, 1882–1968 https://web.archive.[...] University of Missouri-Kansas City School of Law 2010-07-26
[20] 서적 African Americans: A Concise History https://archive.org/[...] Pearson Education, Inc. 2012
[21] 서적 Black protest and the great migration : a brief history with documents https://www.worldcat[...] Bedford/St. Martin's 2003
[22] 웹사이트 Migrations – The African-American Mosaic Exhibition – Exhibitions (Library of Congress) https://www.loc.gov/[...] 2018-01-15
[23] 웹사이트 Exodus to Kansas https://www.archives[...] 2017-08-29
[24] 서적 Black protest and the great migration : a brief history with documents https://www.worldcat[...] Bedford/St. Martin's 2003
[25] 학술지 New Perspectives on Lynching, Race Riots, and Mob Violence 2011-03-01
[26] 서적 The Negro in Chicago: A Study in Race Relations and a Race Riot in 1919 U of Chicago P
[27] 웹사이트 Chicago Race Riot of 1919 https://www.britanni[...]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2017-05-20
[28] 서적 Black Metropolis: A Study of Negro Life in a Northern City Harcourt, Brace and Company 1945
[29] 웹사이트 Sharecropping https://web.archive.[...] 2018-03-06
[30] 서적 When affirmative action was white : an untold history of racial inequality in twentieth-century America W.W. Norton 2006
[31] 서적 When Affirmative Action Was White: An Untold History of Racial Inequality in Twentieth-Century America https://books.google[...] W. W. Norton & Company 2022-12-07
[32] 웹사이트 The Great Migration: The African American Exodus from The South http://priceonomics.[...] 2016-02-02
[33] 서적 Way up north in Louisville : African American migration in the urban South, 1930–1970 https://www.worldcat[...]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10
[34] 웹사이트 Black History in Kansas City http://www.blackchic[...] 2021-06-01
[35] 학술지 Migration Networks and Location Decisions: Evidence from US Mass Migration https://www.aeaweb.o[...] 2021-06-28
[36] 웹사이트 Review: The Warmth of Other Suns: The Epic Story of America's Great Migration http://www.publisher[...] 2010-09-00
[37] 웹사이트 Module 1: Introduction and Definitions http://www.saylor.or[...] Saylor.org
[38] 뉴스 Jacob Lawrence Is Dead at 82; Vivid Painter Who Chronicled Odyssey of Black Americans https://www.nytimes.[...] 2000-06-10
[39] 서적 Rockin' in Time Pearson
[40] 서적 On The Shoulders Of Giants : My Journey Through the Harlem Renaissance Simon & Schuster
[41] 간행물 Historical Census Statistics on Population Totals By Race, 1790 to 1990, and By Hispanic Origin, 1970 to 1990, For The United States, Regions, Divisions, and States https://www.census.g[...] U.S. Bureau of the Census – Population Division
[42] 간행물 African Americans and the American Labor Movement http://www.moma.org/[...]
[43] 간행물 Population of the 100 Largest Cities and Other Urban Places in the United States: 1790 to 1990 https://www.census.g[...] U.S. Bureau of the Census – Population Division
[44] 간행물 Historical Census Statistics on Population Totals by Race, 1790 to 1990, and by Hispanic Origin, 1970 to 1990, for Large Cities and Other Urban Places in the United States U.S. Census Bureau 2005-02-00
[45] 웹사이트 Harlem Renaissance https://www.britanni[...] 2020-08-19
[46] 웹사이트 A Brief Look at The Bronx http://www.bronxhist[...]
[47] 논문 The Social and Economic Status of the Black Population in the U.S.: An Historical View, 1790–1978
[48] 논문 Changes in Labor Market Discrimination Over Time
[49] 서적 The Other Bostonians: Poverty and Progress in the American Metropolis, 1880–1970 https://archive.org/[...] Harvard University Press
[50] 보고서 Historical Statistics of the United States: From Colonial Times to 1957 https://fraser.stlou[...] U.S. Census Bureau,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51] 서적 America in Black and White: One Nation, Indivisible Simon & Schuster
[52] 논문 Racialization and the State: The Housing Act of 1934 and the Creation of the 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
[53] 논문 Albany, New York and the Great Migration
[54] 간행물 Reflections on the Great Migration to Western Pennsylvania https://journals.psu[...]
[55] 서적 African Americans in Pennsylvania: Shifting Historical Perspectives Penn State Press
[56] 문서 Reflections on the Great Migration to Western Pennsylvania
[57] 서적 Black exodus : the great migration from the American South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58] 웹사이트 History http://www.trcwabash[...]
[59] 논문 The Origins of Soul Food in Black Urban Identity: Chicago, 1915–1947
[60] 문서 'Ruralizing' the City: Theory, Culture, History, and Power in the Urban Environment http://austin.zeider[...]
[61] 웹사이트 The Black History of San Diego https://www.sandiego[...]
[62] 서적 The Great Black Migration: A Historical Encyclopedia of the American Mosaic
[63] 서적 Introduction to African American Studies: Transdisciplinary Approaches and Implications
[64] 서적 White rage : the unspoken truth of our racial divide
[65] 웹사이트 Where the Hillbilly Highway ends https://www.appalach[...] Appalachian History 2011-08-16
[66] 서적 The Butler: A Witness to History 37 Ink
[67] 웹사이트 August Wilson and The Migration to Pittsburgh https://www.hartford[...]
[68] 웹사이트 Historical Census Statistics on Population Totals By Race, 1790 to 1990, and By Hispanic Origin, 1970 to 1990, For The United States, Regions, Divisions, and States https://www.census.g[...]
[69] 웹사이트 The Black Population: 2000 http://health-equity[...]
[70] 웹사이트 The Black Population: 2010 https://www.census.g[...]
[71] 웹사이트 Population Division Working Paper – Historical Census Statistics On Population Totals By Race, 1790 to 1990, and By Hispanic Origin, 1970 to 1990 – U.S. Census Bureau https://www.census.g[...]
[72] 웹사이트 Population of the 100 Largest Cities and Other Urban Places In The United States: 1790 to 1990 https://www.census.g[...] 2017-12-10
[73] 서적 Diversity Explosion: How New Racial Demographics Are Remaking America Brookings Institution Press
[74] 뉴스 After nearly 100 years, Great Migration begins reversal https://www.usatoday[...] 2015-03-18
[75] 뉴스 Latinos, Blacks Show Strong Growth in San Antonio as White Population Declines https://www.expressn[...] 2021-08-13
[76] 뉴스 Still looking for a 'Black mecca,' the new Great Migration https://www.washingt[...] 2022-01-14
[77] 간행물 The New Great Migration: Black Americans' Return to the South, 1965–2000 http://www.brookings[...] The Brookings Institution 2008-03-1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