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요급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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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요급 항공모함은 일본 제국 해군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운용한 항공모함으로, 여객선을 개조하여 제작되었다. 1930년대 조선 업계 불황을 타개하고 전시 우수 선박 확보를 위해 일본 해군이 보조금을 지원하여 건조되었으며, '히요'와 '준요' 2척이 건조되었다. 히요급은 25노트의 속도와 소류급에 준하는 장갑을 갖췄지만, 상선 개조의 한계로 인해 구획 방어 능력이 떨어지고, 함재기 운용에 기술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제2항공전대를 편성하여 미드웨이 해전 이후 기동 부대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으나,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가 침몰하고 '준요'는 종전 후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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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이 여객선을 개조하여 건조한 항공모함으로, 일본 해군 최초로 레이더를 탑재하고 알류샨 열도 공격과 남태평양 해전 등 주요 작전에 참전했다. - 항공모함 함급 - 니미츠급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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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요급 항공모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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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함급 명칭 | 히요급 항공모함 (飛鷹型航空母艦, Hiyō-gata kōkūbokan) |
유형 | 항공모함 |
건조 기간 | 1939년–1942년 |
취역 기간 | 1942년–1945년 |
총 건조 척수 | 2척 |
손실 척수 | 1척 |
해체 척수 | 1척 |
이전 함급 | 쇼카쿠급 |
이후 함급 | 다이호 |
운용 국가 | 일본 제국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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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 |
건조 조선소 | 가와사키 조선소, 고베 미쓰비시 조선소, 나가사키 |
제원 (준요 초기 상태 기준) | |
배수량 | 기준: 24,150톤 |
전장 | 전체 길이: 219.32미터 |
폭 | 26.7미터 |
흘수선 | 8.15미터 |
출력 | 56,250마력 |
추진 방식 | 2축, 2개 기어 증기 터빈 세트 |
속력 | 25.5노트 |
항속 거리 | 18노트에서 11,700해리 |
승무원 | 1,187–1,224명 |
센서 | |
레이더 | 1 × 2식 2호 1형 조기 경보 레이더 |
무장 (준공 시) | |
주포 | 6 × 2연장 12.7cm 89식 양용포 |
대공포 | 8 × 3연장 25mm 96식 대공포 |
장갑 | |
장갑대 | 25–50mm |
항공기 | |
탑재기 | 54기 |
동형함 |
2. 역사적 배경
일본 제국 해군은 조선 업계의 불황에 대처하고 전시 우수 선박 확보를 위해 일부 민간 조선소 및 건조 선박에 보조를 제공했다.[46] 샌프란시스코 항로를 위해 일본우선이 1938년 (쇼와 13년)에 계획, 1939년 (쇼와 14년)에 기공한 대형 고속 여객선 「가시하라마루」와 「이즈모마루」는 상선으로는 이전 일본 선박 중 최대였으며, 건조에 대형 우수 선박 건조 지원 시설을 적용받아 유사시에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수 있는 설계를 조건으로 일본 해군으로부터 건조 비용의 6할의 보조를 받았다[46]. 1940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을 위해 건조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지만, 기공은 1939년 3월이다. 이후 대미 관계가 악화된 1940년 (쇼와 15년)에 두 여객선은, 항공모함으로의 개조가 결정되어 1941년 (쇼와 16년)에 해군이 일본우선으로부터 건조 중인 2척을 매수. 「가시하라마루」는 「준요」(じゅんよう), 「이즈모마루」는 「히요」(ひよう)로 새롭게 명명되었다.
당초, 항공모함으로 개조했을 때에는, 96식 함상 전투기 12기, 96식 함상 공격기 18기, 97식 함상 공격기 18기를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1941년이 되자 0식 함상 전투기 15기 (보용 3), 99식 함상 폭격기 20 (보용 2), 97식 함상 공격기 18 (갑판 10기) 탑재로 변경되었다.[46]
원 계획이 최대 24노트의 고속 여객선이었던 것도 있어, 항공모함 개조 후 25노트를 낼 수 있었다. 이 규모의 항공모함으로는 저속이지만, 준공 당시에는 작전 행동상 충분한 속도로 간주되었다. 다만, 대전 중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대형, 고속의 신형기의 운용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랐다. 함재기용 사출기를 실용화하지 못했던 일본 해군에게 대형 고속화되고 있던 함재기 (혜성, 덴잔)의 발함 문제, 특히 무풍 시에는 심각했으며[47], 1944년 (쇼와 19년) 8월 이후, 발함에 보조 로켓을 사용한 케이스가 있다[47]。
함교는, 당초 계획에서는, 「류호」와 같이 비행 갑판 선단 하부에 설치하고, 비행 갑판 상에는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설계 중인 정규 항공모함 「다이호」가, 기존의 현측에서 만곡시켜 내는 굴뚝을 폐지하고, 비행 갑판 상에 설치한 굴뚝과 함교를 일체화하는 구조가 결정되었으므로, 그 사전 시험의 의미도 포함하여, 구미의 항공모함에서는 표준인, 굴뚝과 일체화된 아일랜드를 일본 항공모함으로 처음 채용하고 있다[48] 。다만, 배연에 의한 기류의 혼란이 함재기의 착함을 방해하지 않도록, 굴뚝 상부를 오른쪽 바깥쪽으로 26도 경사지게 했으며, 이 점은 영미 항공모함과 다르다. 이 사선 굴뚝과 함교가 일체화된 아일랜드는, 후에 야마토급 전함에서 개조된 항공모함 「시나노」에도 채용되었다. 「히요」는 준공 시부터 함교에 2호 1형 전탐 (대공 레이더)을 장비하고 있다[49]。 격납고는 2층이며, 엘리베이터는 비행 갑판의 전부와 후부에 1기씩 설치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히요」, 「준요」 양함에 의해 제2항공전대를 편성,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항공모함 기동 부대를 지탱하는 중핵 전력으로 활약했다. 대전 후반의 탑재기는 0전 21, 혜성 18 (9기는 비행 갑판 계류), 덴잔 9의 합계 48기였다고 한다[49]。 이는, 미국 해군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탑재기의 약 절반으로 타격력도 절반이었다.
2. 1. 건조 계획 및 배경
일본 제국 해군은 조선 업계 불황에 대처하고 전시 우수 선박 확보를 위해 민간 조선소 및 건조 선박에 보조를 제공했다.[46] 일본우선이 1938년에 계획하고 1939년에 기공한 대형 고속 여객선 「가시하라마루」와 「이즈모마루」는 유사시에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수 있는 설계를 조건으로 일본 해군으로부터 건조 비용의 6할을 보조받았다.[46] 1940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을 위해 건조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지만, 기공은 1939년 3월이었다. 이후 대미 관계 악화로 1940년에 두 여객선은 항공모함으로의 개조가 결정되었고, 1941년에 해군이 일본우선으로부터 건조 중인 2척을 매수하여 「가시하라마루」는 「준요」(じゅんよう), 「이즈모마루」는 「히요」(ひよう)로 명명되었다.당초 항공모함으로 개조했을 때 96식 함상 전투기 12기, 96식 함상 공격기 18기, 97식 함상 공격기 18기를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1941년에는 0식 함상 전투기 15기 (보용 3), 99식 함상 폭격기 20 (보용 2), 97식 함상 공격기 18 (갑판 10기) 탑재로 변경되었다.[46] 원 계획이 최대 24노트의 고속 여객선이었기 때문에 항공모함 개조 후 25노트를 낼 수 있었다.
함교는 당초 류호와 같이 비행 갑판 선단 하부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다이호가 굴뚝과 함교를 일체화하는 구조가 결정되면서, 그 사전 시험으로 굴뚝과 일체화된 아일랜드를 일본 항공모함으로 처음 채용했다.[48] 굴뚝 상부를 오른쪽 바깥쪽으로 26도 경사지게 하여 배연에 의한 기류 혼란을 막았으며, 이는 야마토급 전함에서 개조된 항공모함 시나노에도 채용되었다. 「히요」는 준공 시부터 함교에 2호 1형 전탐 (대공 레이더)을 장비했다.[49] 격납고는 2층이며, 엘리베이터는 비행 갑판의 전부와 후부에 1기씩 설치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히요」, 「준요」는 제2항공전대를 편성, 미드웨이 해전 이후 항공모함 기동 부대의 중핵 전력으로 활약했다.
2. 2. 여객선에서 항공모함으로의 개조
일본 해군은 조선 업계 불황에 대처하고 전시 우수 선박 확보를 위해 민간 조선소 및 건조 선박에 보조를 제공했다.[46] 일본우선이 1938년 계획, 1939년 기공한 대형 고속 여객선 「가시하라마루」와 「이즈모마루」는 유사시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수 있는 설계를 조건으로 일본 해군으로부터 건조 비용의 6할을 보조받았다.[46] 1940년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을 위해 건조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지만, 기공은 1939년 3월이다. 이후 대미 관계 악화로 1940년 두 여객선은 항공모함으로의 개조가 결정, 1941년 해군이 매수하여 「가시하라마루」는 「준요」, 「이즈모마루」는 「히요」로 명명되었다.항공모함 개조 시, 초기에는 96식 함상 전투기 12기, 96식 함상 공격기 18기, 97식 함상 공격기 18기를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1941년 0식 함상 전투기 15기 (보용 3), 99식 함상 폭격기 20 (보용 2), 97식 함상 공격기 18 (갑판 10기)로 변경되었다.[46] 최대 24노트 고속 여객선이었던 덕분에 개조 후 25노트를 낼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작전 행동에 충분한 속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대전 중기 이후 등장한 신형기 운용에는 어려움이 따랐고, 사출기를 실용화하지 못했던 일본 해군은 혜성, 덴잔 발함 문제, 특히 무풍 시에 심각했다.[47] 1944년 8월 이후, 발함에 보조 로켓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47]
함교는 당초 「류호」처럼 비행 갑판 선단 하부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설계 중인 정규 항공모함 「다이호」의 구조를 시험하기 위해 굴뚝과 일체화된 아일랜드를 일본 항공모함으로 처음 채용했다.[48] 배연에 의한 기류 혼란을 막기 위해 굴뚝 상부를 오른쪽 바깥쪽으로 26도 경사지게 했다. 「히요」는 준공 시부터 함교에 2호 1형 전탐 (대공 레이더)을 장비했다.[49] 격납고는 2층, 엘리베이터는 비행 갑판 전부와 후부에 1기씩 설치되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히요」, 「준요」는 제2항공전대를 편성, 미드웨이 해전 이후 항공모함 기동 부대의 중핵 전력으로 활약했다. 대전 후반 탑재기는 0전 21, 혜성 18 (9기는 비행 갑판 계류), 덴잔 9의 합계 48기였다.[49]
2. 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일본 해군은 조선 업계 불황에 대처하고 전시 우수 선박 확보를 위해 민간 조선소 및 건조 선박에 보조금을 제공했다.[46] 일본우선이 1938년 계획, 1939년 기공한 대형 고속 여객선 가시하라마루와 이즈모마루는 대형 우수 선박 건조 지원 시설을 적용받아 유사시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수 있는 설계를 조건으로 일본 해군으로부터 건조 비용의 6할을 보조받았다.[46] 1940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건조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지만, 기공은 1939년 3월이다. 이후 대미 관계 악화로 1940년 두 여객선은 항공모함으로의 개조가 결정되어 1941년 해군이 일본우선으로부터 건조 중인 2척을 매수, 「가시하라마루」는 「준요」, 「이즈모마루」는 「히요」로 명명되었다.태평양 전쟁에서, 「히요」, 「준요」는 제2항공전대를 편성, 미드웨이 해전 이후 항공모함 기동 부대의 중핵 전력으로 활약했다. 원 계획이 최대 24노트의 고속 여객선이었던 덕분에, 항공모함 개조 후 25노트를 낼 수 있었다. 함교는 류호와 같이 비행 갑판 선단 하부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다이호가 굴뚝과 함교를 일체화하는 구조가 결정되면서, 구미 항공모함의 표준인 아일랜드를 일본 항공모함으로 처음 채용하였다.[48] 굴뚝 상부를 오른쪽 바깥쪽으로 26도 경사지게 하여 배연에 의한 기류 혼란을 막았으며, 이는 후에 야마토급 전함에서 개조된 항공모함 시나노에도 채용되었다. 「히요」는 준공 시부터 함교에 2호 1형 전탐 (대공 레이더)을 장비하고 있다.[49] 격납고는 2층이며, 엘리베이터는 비행 갑판의 전부와 후부에 1기씩 설치되어 있다.
대전 중기부터 등장한 대형, 고속의 신형기 (혜성, 덴잔) 운용에는 어려움이 따랐으며, 사출기를 실용화하지 못했던 일본 해군은 무풍 시 발함 문제에 직면했다.[47] 1944년 8월 이후, 발함에 보조 로켓을 사용한 케이스가 있다.[47] 대전 후반 탑재기는 0전 21, 혜성 18 (9기는 비행 갑판 계류), 덴잔 9의 합계 48기였다고 한다.[49] 이는 미국 해군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절반 수준이었다.
3. 설계 및 특징
히요급 항공모함은 일본우선주식회사(NYK)에서 고속 호화 여객선 ''이즈모마루''와 ''카시와라마루''로 발주되었으나, 해군성의 보조를 받아 항공모함으로 개조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1] 전장은 약 219.32m, 선폭은 26.7m, 흘수는 8.15m였다. 기준 배수량은 24,150톤이었다.[2] 승무원은 1,187명에서 1,224명의 장교와 사병으로 구성되었다.[3]
두 함선은 미쓰비시-커티스 감속 증기 터빈 세트를 장착하여 56,250shp의 출력을 냈으며, 각 세트는 직경 5.5m의 프로펠러를 구동했다.[4] 증기는 6개의 수관 보일러에서 공급되었는데, ''준요''는 미쓰비시 삼동 드럼 보일러를, ''히요''는 가와사키-라몽 보일러를 장착했다. 이 보일러들은 일본 해군 최고 수준의 성능으로, 시마카제의 기관을 능가하고 미국 해군의 에식스급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50] 설계 속도는 25.5노트였으나, 해상 시운전에서 이를 초과했다. 연료유 4,100톤을 탑재하여 18노트에서 11,700해리 이상의 항속 거리를 가졌다.[4]
히요급은 상선 개조 항공모함이었지만, 소류에 준하는 장갑을 갖춰, 상선 개조 항공모함으로서는 이례적인 방어력을 보유했다. 탄약고 갑판 등은 25mm DS 강판, 기관실 현측은 20mm + 25mm DS 강판으로 구성되었다.[46] 기관 부분은 2중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50] 그러나 군함처럼 구획이 세분화되지 않아, 피해를 입었을 때 구획 방어 능력은 열등했다.[55]
''히요''는 1942년 10월 20일에 기관 고장을 일으켜 남태평양 해전과 제3차 솔로몬 해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의 항공 전력에 차질이 발생했다.[51] 또한, ''히요''는 연료 만재 시 우현으로 7도 기울어지는 문제가 있어, 1943년 말 좌현 공소에 밸러스트를 채워 만재 시 기울기를 우현 3도로 줄였다.[54]
미국 해군은 마리아나 해전에서 ''히요''를 격침했을 때 '진다카(はやたか)급 항공모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56]
3. 1. 기본 제원
히요급 항공모함은 일본우선주식회사(NYK)에서 고속 호화 여객선 ''이즈모마루''와 ''카시와라마루''로 발주되었으나, 해군성의 보조를 받아 항공모함으로 개조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1] 전장은 약 219.32m, 선폭은 26.7m, 흘수는 8.15m였다. 기준 배수량은 24,150톤이었다.[2] 승무원은 1,187명에서 1,224명의 장교와 사병으로 구성되었다.[3]두 함선은 미쓰비시-커티스 감속 증기 터빈 세트를 장착하여 56,250shp의 출력을 냈으며, 각 세트는 직경 5.5m의 프로펠러를 구동했다.[4] 증기는 6개의 수관 보일러에서 공급되었는데, ''준요''는 미쓰비시 삼동 드럼 보일러를, ''히요''는 가와사키-라몽 보일러를 장착했다. 이 보일러들은 일본 해군 최고 수준의 성능으로, 시마카제의 기관을 능가하고 미국 해군의 에식스급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50] 설계 속도는 25.5노트였으나, 해상 시운전에서 이를 초과했다. 연료유 4,100톤을 탑재하여 18노트에서 11,700해리 이상의 항속 거리를 가졌다.[4]
히요급은 상선 개조 항공모함이었지만, 소류에 준하는 장갑을 갖춰, 상선 개조 항공모함으로서는 이례적인 방어력을 보유했다. 탄약고 갑판 등은 25mm DS 강판, 기관실 현측은 20mm + 25mm DS 강판으로 구성되었다.[46] 기관 부분은 2중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50] 그러나 군함처럼 구획이 세분화되지 않아, 피해를 입었을 때 구획 방어 능력은 열등했다.[55]
''히요''는 1942년 10월 20일에 기관 고장을 일으켜 남태평양 해전과 제3차 솔로몬 해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의 항공 전력에 차질이 발생했다.[51] 또한, ''히요''는 연료 만재 시 우현으로 7도 기울어지는 문제가 있어, 1943년 말 좌현 공소에 밸러스트를 채워 만재 시 기울기를 우현 3도로 줄였다.[54]
미국 해군은 마리아나 해전에서 ''히요''를 격침했을 때 '진다카(はやたか)급 항공모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56]
3. 2. 기관 및 추진 체계
히요급 항공모함은 미쓰비시-커티스 감속 증기 터빈 세트와 6개의 수관 보일러를 장착하여 추진되었다.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제작한 이 증기 터빈은 각 세트가 5.5m 프로펠러를 구동하며, 총 56,250shp(41,950kW)의 출력을 냈다.[4] ''준요''는 미쓰비시 삼동 드럼 보일러를, ''히요''는 가와사키-라몽 보일러를 사용했으며, 두 보일러 모두 420°C의 온도에서 작동했다. ''준요''의 보일러는 42기압, ''히요''의 보일러는 40기압으로 작동하여, 시마카제급 구축함의 기관을 능가하고 미국 해군의 에식스급에 필적하는 성능을 보였다.[50]이 기계 장치는 상선용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건조된 항공모함 히류의 기계 장치보다 4배 이상 무거웠다.[4] 설계 속도는 25.5노트였으나, 해상 시운전에서 두 척 모두 이를 초과했다. 4,100t의 연료유를 탑재하여 18노트에서 11,700해리(21,700km) 이상의 항속 거리를 가졌다.[4]
하부 격납고는 보일러실 바로 위에 위치하여 온도 상승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널빤지를 깔았다.[46] 스크루의 직경은 5.5m로 일본 해군 최대 직경이었다.[50] 1942년 10월 20일, ''히요''는 기관 고장을 일으켜 남태평양 해전과 제3차 솔로몬 해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의 항공 전력에 차질이 생겼다.[51]
히요급은 상선 개조 항공모함이었지만,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의 개조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소류에 준하는 수준의 장갑을 갖추었다. 탄약고 갑판, 후부 현측, 가솔린 탱크 갑판은 25mm DS 강판, 기관실 현측은 20mm + 25mm DS 강판으로 구성되었다.[46] 기관 부분은 이중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50]
연료 만재 또는 미탑재 시 함교가 우현에 위치하여 우현으로 7도 기울어지는 문제가 있었으나, 1943년 말 ''히요''에서는 좌현 공소에 밸러스트를 채워 만재 시 기울기를 우현 3도로 줄였다.[54] 그러나 군함처럼 구획이 세분화되지 않아 피해를 입었을 때 구획 방어 능력은 떨어졌다.[55]
3. 3. 비행 갑판 및 함재기 운용 능력
히요급 항공모함의 비행 갑판은 길이 210.3m, 최대 폭 27.3m였다.[5] 일본 항공모함 최초로 함교와 굴뚝이 통합된 대형 함교가 우현에 설치되었으며, 배기가 비행 작전에 방해되지 않도록 26° 각도로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6]함선에는 각각 약 153m 길이, 15m 너비, 5m 높이의 2개의 겹쳐진 격납고가 있었다.[7] 각 격납고는 4개의 방화 커튼으로 세분할 수 있었고, 측면에는 소화용 폼 분사기가 설치되었다.[7] 격납고에는 각 변이 14.03m인 둥근 모서리가 있는 2개의 사각형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며,[7] 최대 5,000kg의 용량을 가졌고 하부 격납고에서 비행 갑판까지 15초가 걸렸다.[7] 함선에는 9개의 케이블이 있는 전기식 구레형 모델 4 착함 장치가 장착되었고, 2개의 Type 3 충돌 방벽도 장착되었다.[7] 항공기 사출기는 장착되지 않았으며, 비행 갑판 좌현, 후방 엘리베이터 바로 뒤에 크레인이 설치되어 접었을 때 비행 갑판과 수평을 이루었다.[7]
원래 탑재 항공기는 12대의 미쓰비시 A5M "클로드" 전투기 (보관용 4대 포함), 18대의 아이치 D3A "발" 급강하 폭격기 (예비용 2대 추가) 및 18대의 나카지마 B5N "케이트" 어뢰 폭격기로 구성될 예정이었다.[8] 그러나 1942년에 함선이 취역할 때 A5M 대신 12대의 미쓰비시 A6M 제로 전투기 (보관용 3대 포함)로 수정되었다.[8] 미드웨이 해전의 교훈으로 인해 함선의 전투기 수는 21대의 제로로 강화되었고, B5N은 9대로 줄었다.[8] 연말까지 제로 6대가 동수의 D3A를 대체하여 A6M 27대, D3A 12대, B5N 9대가 되었다.[8] 이 모든 항공기를 격납고에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갑판 아래의 혼잡을 줄이기 위해 보통 8~9대가 비행 갑판에 보관되었다.[8]
3. 4. 무장 및 방어 체계
히요급 항공모함은 대공포, 레이더 등 무장 체계와 장갑, 격벽 등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주무장은 선체 측면의 스폰슨에 장착된 12문의 40구경 12.7cm 89식 대공포로, 쌍열 포좌에 탑재되었다.[10] 이 포는 분당 8~14발의 속도로 23.45kg 포탄을 발사했으며, 포구 속도는 700~725m/s였다. 45°에서 최대 사거리는 14,800m, 최대 고도는 9,400m였다.[11] 함선에는 8문의 3연장 96식 25mm 경대공포가 비행 갑판 옆에 장착되었고,[9] 1943년 중반과 말에서 1944년 초에 걸쳐 3연장 포좌가 추가되었다. 1944년 6월 필리핀 해 해전 이후, 준요는 96식 25mm 포에 3문의 3연장 포좌, 2문의 2연장 포좌, 18문의 단열 포좌로 강화되었고, 6문의 28연장 대공 로켓 발사기로 보충되었다.[14] 12cm 로켓의 무게는 22.5kg, 최대 속도는 200m/s, 최대 사거리는 4,800m였다.[13] 1944년 10월, 준요는 총 91문의 25mm 포신을 보유했다.[14]
89식 포를 제어하기 위해 함선 양쪽에 2개의 94식 고각 사격 통제 장치가 장착되었고, 각 통제 장치에는 4.5m 거리 측정기가 장착되었다.[15] 4개의 95식 통제 장치가 25mm 포를 제어했고, 1943년 초에 한 쌍이 더 추가되었다. 조기 경보는 2개의 2식 2형 1호 공중 탐색 레이더로 제공되었다. 이 중 처음 것은 1942년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각 함선의 함교 상단에 장착되었고, 다른 하나는 1943년 동안 추가되었다. 1944년에는 준요에 소형 3식 1형 3호 공중 탐색 레이더가 추가되었다.[16]
히요급은 여객선에서 개조되었기 때문에 장갑을 많이 추가할 수 없었지만, 이중 선체를 가지고 있었다. 25mm 두께의 듀콜 강철판 두 개가 함선의 기계실 측면을 보호했다. 항공 휘발유 탱크와 탄약고는 듀콜 강철 한 겹으로 보호되었다. 또한, 기계실은 침수를 제한하기 위해 가로 및 세로 격벽으로 추가로 세분화되었다.[9] 상선 개조 항공모함이었지만,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의 개조가 염두에 있었기 때문에, 장착된 장갑은 소류에 준하는 내용 (수중 방어 장갑은 열등) 이었으며, 상선 개조 항공모함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탄약고 갑판, 후부 현측, 가솔린 탱크 갑판이 25mm DS 강판, 기관실 현측만 20mm + 25mm DS 강판으로 구성되어 있다.[46] 기관 부분도 2중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50]
미국 해군은 마리아나 해전에서 히요를 격침했을 때 '진다카 (はやたか)급 항공모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56]
3. 5. 기술적 문제점 및 한계
히요급 항공모함은 상선 이즈모마루와 카시와라마루를 개조한 것으로, 건조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의 개조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1] 일본 해군의 보조금을 받아 건조되었으며, 이중 선체, 추가 연료 탱크, 강화된 갑판, 항공기 엘리베이터 설치 공간 등 항공모함으로의 개조를 용이하게 하는 여러 설계를 적용했다.[1]기관은 미쓰비시-커티스 감속 증기 터빈을 장착했으며, 준요는 미쓰비시 삼동 드럼 보일러, 히요는 가와사키-라몽 보일러를 사용했다.[4] 이 보일러들은 일본 해군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졌으며, 심지어 시마카제의 기관을 능가하고 미국의 에식스급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50] 그러나 하부 격납고가 보일러실 바로 위에 위치하여 온도 상승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널빤지를 깔아야 했다.[46] 추진축은 2축이었지만, 스크루 직경은 일본 해군 최대 크기인 5.5m였다.[50]
상선 개조 항공모함임에도 불구하고, 히요급은 소류에 준하는 수준의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46] 탄약고, 현측, 가솔린 탱크 갑판 등에 DS 강판이 사용되었고, 기관 부분은 이중 바닥으로 설계되었다.[46][50] 그러나 상선 구조의 한계로 인해 군함에 비해 구획이 세분화되지 않아 피해를 입었을 때 방어 능력이 떨어졌다.[55] 또한, 함교가 우현에 위치하여 연료 적재 상태에 따라 함체가 기울어지는 문제가 있었으며, 밸러스트를 사용하여 이를 보정해야 했다.[54]
1942년 10월, 히요는 기관 고장을 일으켜 남태평양 해전과 제3차 솔로몬 해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의 항공 전력에 차질을 빚게 했다.[51] 미국 해군은 마리아나 해전에서 히요를 격침했을 때, 이 함급을 "진다카(はやたか)급 항공모함"으로 칭했다.[56]
4. 운용 및 실전 기록
태평양 전쟁에서, "히요", "준요" 양함에 의해 제2항공전대를 편성,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항공모함 기동 부대를 지탱하는 중핵 전력으로 활약했다. 대전 후반의 탑재기는 0전 21, 혜성 18 (9기는 비행 갑판 계류), 덴잔 9의 합계 48기였다고 한다[49]。 이는, 미국 해군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탑재기의 약 절반으로 타격력도 절반이었다.
== 주요 참전 해전 ==
히요급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항공모함으로 활약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4척의 주력 항공모함을 잃은 후, 히요급 항공모함은 기동부대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했다.[17]
''준요''는 알류샨 열도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더치 하버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8] 이후 제2 항공전대에 배속되어 과달카날 전역에 투입,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 미 해군 호넷에 피해를 입히는 데 기여했다.[22] ''히요''는 기계 문제로 인해 과달카날 전역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라바울로 이동하여 일본군을 지원했다.[20][21]
''준요''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일본군 증원 부대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뉴기니의 웨왁으로 증원 병력을 수송하는 작전을 지원했다.[24][25] ''히요''는 1943년 6월 어뢰 공격을 받아 수리를 위해 일본으로 귀환했다.[21]
1944년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는 미 해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21][14] ''준요''는 함교 근처에 폭탄을 맞았으나,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19] 이후 ''준요''는 보르네오로 자재를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44년 12월 미 해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19]
히요급 항공모함은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 특히,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가 침몰하면서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손실 및 최후 ==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는 1944년 6월 20일, 미국 해군 함재기의 공격을 받았다. USS 벨로 우드(CVL-24)에서 발진한 TBF 어벤저가 투하한 어뢰에 맞아 우현 기관실이 파괴되고 화재가 발생했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21][14] 그러나 2시간 후, 누출된 가솔린 증기가 폭발하면서 전력이 끊기고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21][14] ''히요''는 에서 선수부터 침몰했으며, 구축함들이 약 1,000명을 구조했으나 247명의 장교와 사병은 사망했다.[21]
''준요''는 함교 근처에 두 발의 폭탄을 맞았으나, 큰 피해는 없었고 비행 작전이 중단되었다.[19] 제652 항공대는 F6F 헬캣 2대와 TBF 어벤저 9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항공기 11대를 잃고 3대가 비상 착륙했다.[33] 7월 10일, 제652 항공대는 해산되었고, 남은 인력은 제653 항공대에 배속되었다.[33]
''준요''는 구레에서 수리 후, 10월 27일까지 일본 내해에 머물렀다.[19] 11월 3일, 보르네오로 자재 수송 임무 중 잠수함 SS-387의 공격을 받았으나, 호위함 가 어뢰를 요격하고 침몰했다.[19] 1944년 12월 9일, 마닐라에서 귀환 중 잠수함 SS-400, SS-390, SS-395의 공격을 받고 어뢰 3발을 맞았으나, 한 개의 엔진으로 항해하여 다음 날 사세보에 도착했다.[19]
1945년 3월, 자재 부족으로 수리가 중단되었고, 4월 1일에 사세보의 에비스 만으로 옮겨졌다.[14] 4월 23일, 위장 작업이 시작되었고, 6월 20일 경계함으로 재분류되었다.[14] 8월 5일, 무장이 제거되었고, 9월 2일 연합군에 항복했다.[14] 10월 8일, 미국 기술팀은 ''준요''를 구조적 손실로 평가했다.[14] ''준요''는 11월 30일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고, 1946년 6월 1일부터 1947년 8월 1일까지 사세보에서 해체되었다.[14]
4. 1. 주요 참전 해전
히요급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항공모함으로 활약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4척의 주력 항공모함을 잃은 후, 히요급 항공모함은 기동부대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했다.[17]''준요''는 알류샨 열도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더치 하버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8] 이후 제2 항공전대에 배속되어 과달카날 전역에 투입,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 미 해군 호넷에 피해를 입히는 데 기여했다.[22] ''히요''는 기계 문제로 인해 과달카날 전역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라바울로 이동하여 일본군을 지원했다.[20][21]
''준요''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일본군 증원 부대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뉴기니의 웨왁으로 증원 병력을 수송하는 작전을 지원했다.[24][25] ''히요''는 1943년 6월 어뢰 공격을 받아 수리를 위해 일본으로 귀환했다.[21]
1944년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는 미 해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21][14] ''준요''는 함교 근처에 폭탄을 맞았으나,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19] 이후 ''준요''는 보르네오로 자재를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44년 12월 미 해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19]
히요급 항공모함은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 특히,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가 침몰하면서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2. 손실 및 최후
필리핀 해 해전에서 ''히요''는 1944년 6월 20일, 미국 해군 함재기의 공격을 받았다. USS 벨로 우드(CVL-24)에서 발진한 TBF 어벤저가 투하한 어뢰에 맞아 우현 기관실이 파괴되고 화재가 발생했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21][14] 그러나 2시간 후, 누출된 가솔린 증기가 폭발하면서 전력이 끊기고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21][14] ''히요''는 에서 선수부터 침몰했으며, 구축함들이 약 1,000명을 구조했으나 247명의 장교와 사병은 사망했다.[21]''준요''는 함교 근처에 두 발의 폭탄을 맞았으나, 큰 피해는 없었고 비행 작전이 중단되었다.[19] 제652 항공대는 F6F 헬캣 2대와 TBF 어벤저 9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항공기 11대를 잃고 3대가 비상 착륙했다.[33] 7월 10일, 제652 항공대는 해산되었고, 남은 인력은 제653 항공대에 배속되었다.[33]
''준요''는 구레에서 수리 후, 10월 27일까지 일본 내해에 머물렀다.[19] 11월 3일, 보르네오로 자재 수송 임무 중 잠수함 SS-387의 공격을 받았으나, 호위함 가 어뢰를 요격하고 침몰했다.[19] 1944년 12월 9일, 마닐라에서 귀환 중 잠수함 SS-400, SS-390, SS-395의 공격을 받고 어뢰 3발을 맞았으나, 한 개의 엔진으로 항해하여 다음 날 사세보에 도착했다.[19]
1945년 3월, 자재 부족으로 수리가 중단되었고, 4월 1일에 사세보의 에비스 만으로 옮겨졌다.[14] 4월 23일, 위장 작업이 시작되었고, 6월 20일 경계함으로 재분류되었다.[14] 8월 5일, 무장이 제거되었고, 9월 2일 연합군에 항복했다.[14] 10월 8일, 미국 기술팀은 ''준요''를 구조적 손실로 평가했다.[14] ''준요''는 11월 30일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고, 1946년 6월 1일부터 1947년 8월 1일까지 사세보에서 해체되었다.[14]
5. 동형함
wikitable
함선 | 한자 | 원래 이름 | 건조자 | 기공 | 진수 | 취역 | 운명 |
---|---|---|---|---|---|---|---|
히요 | 히요/飛鷹일본어 | 이즈모 마루(이즈모 마루/出雲丸일본어) | 가와사키 중공업 고베 | 1939년 11월 30일 | 1941년 6월 24일 | 1942년 7월 31일 | 필리핀 해 해전 중인 1944년 6월 20일 격침 |
준요 | 준요/隼鷹일본어 | 카시와라 마루(가시와라 마루/橿原丸일본어) |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 1939년 3월 20일 | 1941년 6월 26일 | 1942년 5월 3일 | 1946년~1947년 해체 |
5. 1. 준요 (隼鷹)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1939년 3월 20일 ''카시와라 마루''(橿原丸)라는 이름으로 기공되어, 1941년 6월 26일 진수되었다. 1942년 5월 3일 취역하였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침몰하지는 않았다. 이후 수리를 받았으나, 1946년부터 1947년까지 해체되었다.5. 2. 히요 (飛鷹)
히요는 원래 일본 우선 라인(NYK)의 원양 정기 여객선 이즈모 마루(出雲丸)로 가와사키 중공업 고베 조선소에서 1939년 11월 30일에 기공되었다. 1941년 6월 24일 진수되었고, 1942년 7월 31일에 취역하였다. 필리핀 해 해전 중인 1944년 6월 20일, 미군 함재기의 공격으로 침몰했다.6. 평가 및 영향
6. 1. 군사적 평가
6. 2. 역사적 의의 및 영향
7. 대중문화 속 히요급
참조
[1]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2]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3]
서적
Jentschura, Jung & Mickel
[4]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5]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6]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7]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8]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9]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10]
서적
Sturton
[11]
서적
Campbell
[12]
서적
Campbell
[13]
서적
Campbell
[14]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15]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16]
서적
Stille
[17]
서적
Lengerer & Rehm-Takahara
[18]
서적
Brown
[19]
서적
Tully
"1999"
[20]
서적
Brown
[21]
서적
Tully
"2006"
[22]
서적
Brown
[23]
서적
Hata
[24]
서적
Brown
[25]
서적
Hata
[26]
서적
Hata
[27]
서적
Hata
[28]
서적
Hata
[29]
서적
Hata
[30]
서적
Palomar & Genda
[31]
서적
Brown
[32]
서적
Brown
[33]
서적
Hata
[34]
서적
日本海軍全艦艇史
[35]
서적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36]
서적
写真日本の軍艦第4巻
[37]
문서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38]
서적
日本航空母艦史
[39]
서적
写真日本の軍艦第4巻、日本航空母艦史、日本の航空母艦
[40]
문서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41]
문서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42]
문서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43]
문서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44]
문서
航空母艦 一般計画要領書 附現状調査
[45]
서적
写真日本の軍艦第4巻
[46]
서적
川崎戦歴
[47]
서적
川崎戦歴
[48]
서적
軍艦メカ2 日本の空母
光人社
1991
[49]
서적
川崎戦歴
[50]
간행물
雑誌 丸 2010年11月号 飛鷹型空母特集
[51]
서적
艦爆隊長
[52]
서적
空母艦爆
[53]
서적
証言
[54]
서적
飛鷹副長
[55]
서적
飛鷹副長
[56]
웹사이트
大騒ぎ程の海戰ではなく 日本第三艦隊位の出動か 一飛行機母艦ほか三船撃沈の報(眞珠灣ニミツ司令長官公報發表)
https://hojishinbun.[...]
Yuta Nippō, 1944.06.23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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