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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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아그룹은 1944년 경성정공으로 시작하여 자전거 부품 생산, 자전거 생산을 거쳐 1970년대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당시 부도 위기를 겪으며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고, 2000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되었다. 기아그룹은 부도 당시 28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8위의 기업이었으나, IMF 외환 위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계열사가 정리, 합병, 청산되었고, 현재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으로서 기아자동차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1944년 경성정공 설립 이후 1998년 기아자동차 부도 및 회사정리절차 개시까지 기아그룹의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1997년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인해 기아그룹은 경영난이 심화되어, 28개 계열사가 부도를 맞게 된다. 기아자동차는 경영 여건 악화로 인해 1997년 7월 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받았다. 이후 화의 신청과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
2. 연혁
시기 주요 내용 1944년 ~ 1960년대 경성정공 설립, 자전거 및 삼륜차(K-360, T-2000) 생산, 기아마스터 브랜드 도입, CI 변경 (미쓰비시 유사 문양 → ㄱ, ㅇ자 겹침) 1970년대 ~ 1980년대 기아자동차 기업공개, 브리사 생산, 아시아자동차 인수, 봉고 출시, CI 변경 (ㄱ, ㅇ자 겹침 → kia(상단 물결표시)) 1990년대 기아자동차로 사명 변경, 김선홍 회장 취임, 스포티지, 세피아, 포텐샤 등 출시, CI 변경 (kia(상단 물결표시) → KIΛ(빨간 타원형)), 부도 및 회사정리절차
1997년 당시 기아자동차는 대한민국 재계서열 8위의 기업군이었으며, 28개의 계열회사가 있었다.
2. 1. 설립 초기 (1944년 ~ 1960년대)
1944년 12월 21일, 학산 김철호가 경성정공을 설립하였다. 1945년에는 용산, 영등포, 인천에 자전거 부품 공장을 준공하였다. 1952년에는 상호를 '''기아산업'''으로 바꾸고, 삼천리자전거를 개업하여 대한민국 최초로 완성된 자전거를 생산하였다.
1955년 기아산업은 시흥공장을 착공하여 1957년에 준공하였다. 1961년에는 이륜 오토바이 'C-100'을 생산하였고, 1962년에는 경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였다. 1965년에는 자전거를 미국에 수출하고 오토바이를 생산하였다.
1967년 1월에는 삼륜트럭 'T-2000'을 생산하면서 '''기아마스터'''라는 브랜드를 도입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CI를 변경하였는데, 미쓰비시 로고와 비슷한 문양에서 '''ㄱ'''자와 '''ㅇ'''자가 겹쳐진 형태로 바뀌었다. 1968년에는 자전거 최초로 KS마크를 획득하였다.
2. 2. 성장과 발전 (1970년대 ~ 1980년대)
1971년 피아트 124와 4륜 화물차 'E-2000', 'E-3800'을 생산하고, 기아써비스(주)를 설립하였다. 1973년에는 기아자동차를 기업공개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다. 기아정기를 인수하고 소하리공장을 확장하였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가솔린엔진 자동차를 생산하였다.[1]
1974년 일본 마쓰다와의 제휴로 대한민국 최초의 승용차 '브리사'를 생산하였고, 창원공업을 설립하였다.[1] 1975년 기아산업은 처음으로 완성차를 미국에 수출하였고, 서해공업을 인수하였다.[1]
1976년 기아기공을 설립하고 기아협력회를 설립하였다. 이륜차 생산부문은 별도법인 기아기연으로 출범시켰으며, 동국제강으로부터 아시아자동차(주)를 인수하였다.[1]
1978년 디젤엔진 자동차를 생산하였다.[1] 1979년 자전거부문을 삼천리자전거공업으로 분사하고, '푸조 604', '피아트 132'를 생산하였다.[1]
1980년 소형화물 승용차 '봉고'를 출시하였다.[1] 1981년 소형버스 '봉고 코치'를 출시하였고, 자동차산업합리화조치에 따라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전문생산업체로 지정되었으며, 기아기연을 매각하였다.[1]
1982년 기아산업은 자동차 역진제어장치를 개발하였다.[1] 1983년 일본 마쓰다와 이토추 상사의 자본 참여가 이루어졌고, 한국형 농어촌용 다목적 자동차 '세레스'를 생산하였다.[1]
1984년 기아산업은 중앙기술연구소를 준공하였다.[1] 1985년 2월 27일 기아산업의 영문명을 '''Kia Inderstrials''', '''KIA MASTER''' 등에서 '''KIA MOTORS'''로 변경하고, 브랜드 '''기아마스터'''는 폐지되었다.[1]
1986년 여의도 거산빌딩을 인수하여 기아빌딩으로 개칭하고, 미국 포드와 자본 제휴를 맺었으며, 대한중기공업(주)을 인수하였다. 기아엔터프라이즈농구단을 창단하고, '베스타'를 출시하였다.[1] 같은 해 11월 CI를 '''ㄱ'''자와 '''ㅇ'''자가 겹쳐진 것에서 '''kia'''(상단 물결표시)로 변경하였다. 동시에 자회사 아시아자동차 CI도 '''ㅇ'''자와 사다리꼴이 겹쳐진 형상에서 '''Asia'''(상단 물결표시)로 변경되었다.[1]
1987년 '프라이드'와 '콩코드'를 출시하였다.[1] 1988년 자동차 생산 100만 대를 돌파하였고, 중형 화물차 '라이노'와 '트레이드'를 생산하였다.[1] 1989년 '캐피탈'을 출시하고, 기아경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1]
2. 3. 도약과 위기 (1990년대)
1990년 3월 16일 기아자동차(주)로 회사 이름을 변경하고, 김선홍 회장이 취임하였다.[1] 아산만공장을 준공하고, '록스타'를 출시하였다.[1] 같은 해 11월 21일에는 세단형 '프라이드' 베타를 출시하였다.
1991년 제29회 도쿄모터쇼에 '세피아'와 '스포티지'를 출시하였다.
1992년 여의도 신사옥 별관 준공식을 가졌다. 미국, 일본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포텐샤', '타우너', '세피아'를 출시하였다.
1993년 자동차 생산 300만 대를 돌파하였다. '스포티지'를 출시하고, 엑스포자동차관을 개관하였으며, 자동차종합주행시험장을 준공하였다. 기아전자 (현 SK하이닉스)를 설립하였다.
1994년 새로운 CI를 제정하였다. '''kia'''(상단 물결표시)에서 금색 테두리를 두른 빨간 타원형 바탕에 '''KIΛ'''로 변경되었다. 연수원을 개관하고, '세피아'와 '스포티지'를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기아인터트레이드를 설립하고, 오토공장을 준공하였으며, '아벨라'를 출시하였다.
1995년 '프레지오'와 '크레도스'를 출시하고, 도쿄와 프랑크푸르트에 기술연구소를 건립하였다. 기아포드할부금융을 건립하였다.
1996년 '세피아'와 '크레도스'를 유럽에 수출하고,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을 개시하였다. '엘란'을 출시하고, 시화연구소를 건립하였으며, 자동차 생산 500만 대를 돌파하였다.
1997년 '레토나', '엔터프라이즈', '봉고 프런티어'를 생산하고, 아시아자동차판매(주)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1997년 7월 15일 기아그룹은 부도유예협약이 체결되었고, 9월 22일 기아자동차(주)는 화의를 신청하였다. 1998년 4월 15일 기아자동차(주)는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었다.
2. 4.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이후 (2000년대 ~ 현재)
1998년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인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1] 1999년 기아자동차는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그룹에 편입되었고,[1] 2000년 회사정리 절차가 종결되며 현대자동차그룹 계열로 분리되었다.[1]
2001년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로 팀명을 변경하였다.[1]
3. 기아그룹 해체
기아그룹은 현대그룹, 삼성그룹, LG그룹 등과는 달리 주식이 어느 개인이나 단체에 집중되어 있지 않아 국민그룹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기아 살리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펼쳐졌다.[1]
1998년 4월 15일 회사 정리 절차를 끝냈으며, 1999년에는 기아자동차판매, 아시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판매, 기아대전판매 등 4개사가 모두 기아자동차에 흡수 합병된다. 현대에 인수된 기아는 이러한 노력으로 2000년 1월 17일 회사정리 절차 종결을 신청하여 2000년 2월 17일 대한민국에서 최단 기간에 법정 관리를 마무리 지었다.
2001년 4월 1일 당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대한민국 30대 대규모 기업 집단 중 재계 서열 5위인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하였다. 같은 해 해태제과로부터 해태 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고, KIA 타이거즈로 사명을 바꿨다. 기아자동차를 제외하고 2000년 기아중공업은 위아(현 현대위아)로, 기아전자는 본텍(현 현대모비스로 합병)으로, 2001년 창원공업은 위스코로, 아주금속공업은 메티아로, 기아정기는 카스코(현 현대모비스)와 합병되었고, 2003년 기아특수강은 세아그룹에 편입되었으며, 2004년 세아베스틸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3. 1. 부도 과정
1997년 7월 15일 자금난에 휘청이던 기아는 28개 계열사가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받게 된다.[1] 이는 사실상의 부도였다. 9월 22일 기아자동차는 화의를 신청했고, 10월 22일 법정관리가 시작되었다.
이 당시 롯데, 제일제당, 한솔PCS, 신세기통신 등이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농구단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1]
3. 2. 계열사 운명
1997년 7월 15일 자금난에 휘청이던 기아는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을 맞아 28개 계열사가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받게 된다. 이는 사실상의 부도이며, 이로 인해 모체인 기아자동차, 아주금속공업(현 메티아), 카스코, 본텍(현대오토넷으로 합병), 위아, 위스코(현대모비스로 합병), 세아베스틸 등 6개 계열사만 남게 되었다.[1] 아시아자동차는 기아자동차와 합병되었고, 나머지 22개 계열사들은 대부분 청산, 합병, 법정관리, 화의신청 등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3.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1998년 5월 15일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 인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어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인수 협약을 맺었다.[1] 1998년 9월 10일 우선 협상 대상자인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인수 우선 대상 협상자를 매각 공매로 국제 선정 입찰에서 낙찰받아 자금난을 해결했다. 1998년 10월 7일 기아자동차는 인수 우선 대상 협상자로 선정한 현대그룹에 모체인 현대자동차로 낙찰, 인수 계약 양해 각서를 체결하고 국제 입찰하였다. 1999년 3월 기아자동차는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그룹에 편입되었다. 이후 기아그룹의 김선홍 회장은 이른바 '기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되어 서울교도소에 수감되며 퇴임하였다.
1999년 기아자동차는 회사정리계획 변경계획안 인가 결정을 하였고, 2000년 8월 31일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 즉 '왕자의 난'과 맞물려 현대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계열 분리되었다.
3. 4. 사회적 영향과 평가
기아그룹은 현대그룹, 삼성그룹, LG그룹 등과는 달리 주식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집중되지 않아 '국민그룹'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기아그룹이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기아살리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펼쳐지기도 했다.[1]
진보 진영에서는 기아 사태를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정경유착과 부실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판한다. 특히,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이 '기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되어 서울교도소에 수감되고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사건은 이러한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다.
4. 계열사
1997년 부도 당시 기아그룹의 계열사는 다음과 같다. 각 계열사의 운명은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이후 변경된 회사명 등을 포함하여 간략하게 설명한다.
회사명 | 비고 |
---|---|
기아자동차(주) | |
아시아자동차공업(주) | 대형 승합차, 상용차량 전문생산 업체 |
기아자동차판매(주) | 1999년 기아자동차(주)로 흡수합병 |
아시아자동차판매(주) | 1999년 기아자동차(주)로 흡수합병 |
기아대전판매(주) | 1999년 기아자동차(주)로 흡수합병 |
(주)기아정기 | 자동차 부품 생산 (카스코 → 현대모비스(주)로 흡수합병) |
(주)아주금속공업 | 메티아 → 현대메티아(주)로 상호변경 |
(주)창원공업 | 자동차용 기계 생산 전문기업 (위스코 → 현대위스코(주)로 상호변경) |
기아중공업(주) | 기아기공 → 기아중공업 → 위아 → 현대위아(주) 상호변경 |
기아전자(주) | 카오디오 생산업체 (본텍 → 현대오토넷 → 현대모비스(주)로 흡수합병) |
기아자동차서비스(주) | 자동차 서비스 전문 (1999년 기아자동차(주)로 흡수합병) |
기아포드할부금융(주) | 1999년 현대캐피탈(주)로 흡수합병 |
기아정보시스템(주) | 1999년 현대정보기술(주)로 흡수합병 |
(주)한국에이비시스템 | 2000년 2월 (주)기아정기로 흡수합병 |
기아특수강(주) | 특수철강과 자동차부품 생산 전문 기업 (세아베스틸(주)로 상호변경) |
(주)삼안건설기술공사 | 건축 관련 (프라임산업(주)에 매각) |
(주)기산 | 건설업체 |
기산개발 | |
기산엔지니어링 | 건축 엔지니어링 관련 기술업체 |
기산상호신용금고 | 금융사 |
아신창업투자 | 금융사 |
부기산업 | |
(주)성산 | |
(주)기아인터트레이드 | |
기아모텍(주) | 서해공업의 후신 |
(주)케이티 | 건축 엔지니어링 관련 기술업체 |
화천금형공업(주) | |
(주)모스트 | |
대경화성(주) | |
기아경제연구소 | |
기아창업투자 | |
기아 엔터프라이즈 농구단 | |
학산복지재단 | |
학산언론재단 | |
학산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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