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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촌의 폐치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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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정촌의 폐치분합은 일본에서 1888년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지방 자치 단체의 합병 및 분할 정책을 의미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헤이세이 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대규모 합병이 진행되었으며, 이는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과 지방 자치 단체의 효율성 증대를 목표로 추진되었다. 합병은 합체(신설 합병)와 편입(편입 합병)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합병 후 명칭 결정, 의원 정수 조정, 재정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이러한 정책은 지방 자치 단체의 규모를 변화시키고, 지역 정체성, 입법 기능, 지역 불균형, 소득 격차 등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민 의견 수렴 부족, 지역 대표성 약화 등의 비판을 받았다.

2. 역사

일본의 시정촌 합병 역사는 크게 세 번의 시기로 구분된다.


  • '''메이지 대합병'''(1888년~1889년): 메이지 유신 이후 1888년시제정촌제」 공포와 함께 내무대신 훈령으로 각 지방장관에게 정촌 합병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1888년 말 71,314개였던 정촌 수는 1889년 말 15,820개로 약 1/5 수준으로 급감했다.
  • '''쇼와 대합병'''(1953년~1961년): 1953년 「정촌 합병 촉진법」 시행으로 신제 중학교 하나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규모인 주민 8,000명 이상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1953년 10월 시정촌 수는 9,868개였는데, 1961년에는 3,472개가 되어 당초 목표(1/3)에 근접했다.
  • '''헤이세이 대합병'''(1999년~2010년): 1995년 '지방분권 일괄법'을 통해 '합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주민 신청을 통해 법정합병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고, 합병특례채 등 재정 지원 조치도 확충되었다. 1999년 3월 말 시정촌 수는 3,232개였으나, 2006년 4월에는 1,820개까지 감소했다.


2014년 4월 5일 도치기현 도치기시시모쓰가군 이와후네정을 편입한 이후 시정촌 합병은 실시되지 않고 있다.

2. 1. 메이지 대합병 (1888년~1889년)

메이지 유신 이후, 에도 시대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촌락(정촌)은 여전히 생활의 기반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초기 대구 소구제를 통해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으나 주민 반발로 실패했다. 1878년 군구정촌 편제법을 제정하여 촌락을 기본 단위로 인정하고 군제와 호장역을 두었지만, 부현-군-호장-정촌의 4단계 구조는 복잡하여 행정 집행에 적합한 규모로 촌락을 재편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888년 「시제 및 정촌제」 공포와 함께 내무대신 훈령으로 각 지방 장관에게 정촌 합병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강력한 정촌 합병이 진행되어, 1888년 말 71,314개였던 정촌 수는 1889년 말 15,820개로 약 1/5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때 초등학교 1개교 구역에 해당하는 약 300~500호를 정촌의 표준 규모로 삼았다.

메이지 대합병을 통해 지역 공동체였던 정촌은 근대적 의미의 행정 통치를 위한 지방공공단체로 변모했다. 그러나 대규모 합병을 피한 소규모 정촌에는 에도 시대부터의 지역적 특성이 현대까지 남아 있기도 하다.

2. 2. 메이지 대합병 이후

1889년 이후에도 정촌 합병은 계속 이어져 1898년까지 2,849개의 정촌이 추가로 사라졌다. 1898년 이후부턴 감소폭이 크게 둔화하여 1918년까지 267개의 정촌이 사라지는 데 그쳤다.

1923년 군제가 폐지되면서 정촌 합병의 움직임이 다시 커져 1918년부터 1930년 사이에 500개 정도의 정촌이 줄어들었다. 기원 2600년 기념 행사가 거행된 1940년에도 합병이 추진되는 등 1943년 무렵에는 시가 200개, 정촌이 10,476개가 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에는 시가 205개, 정이 1,797개, 촌이 8,818개였다.

2. 3. 쇼와 대합병 (1953년~1961년)

전후 일본에서 신제 중학교 설치, 시정촌 소방과 자치체 경찰 창설, 사회 복지, 보건 위생 등 시정촌의 사무가 급증했다.[10] 사무 증가에 따라 시정촌은 과거보다 더 많은 재원을 확보해야 했고, 이는 시정촌을 적정 규모로 확대할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이에 1953년 「정촌 합병 촉진법」이 시행되어, 신제 중학교 하나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규모인 주민 8,000명 이상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10] 같은 해 10월 내각은 정촌의 수를 1/3로 줄일 것을 각의 결정했으며, 1956년에는 「신시정촌 건설 촉진법」을 만들어 전국적인 규모로 시정촌 합병을 추진했다.

1953년 10월 시정촌의 수는 9,868개였는데, 쇼와 대합병을 거치면서 1961년에는 3,472개가 되어 당초 목표로 삼았던 1/3에 근접한 성과를 냈다.

2. 4. 고도경제성장기의 합병 (1965년~1970년대)

고도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일본은 도시화가 진전되었고 자동차 보급률도 높아졌다. 이는 광역행정의 필요성을 증대시켰고, 국회도 1965년 「시정촌의 합병 특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1] 고리야마시, 오카야마시, 구라시키시, 후지시 등이 지역 거점 도시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합병을 추진했고, 신산업 도시로 지정받기 위해 14개 시정촌이 합병해 이와키시가 탄생했다.[1]

산촌에서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자 시즈오카시처럼 인접한 도시가 산촌을 흡수하는 움직임도 많았다.[1] 정촌을 시로 만들기 위해 인구 요건을 완화하여 가모가와시, 비젠시, 도요시 등이 혜택을 받아 합병과 함께 시가 될 수 있었다.[1]

합병 연월일지방 자치 단체
1965년(쇼와 40년) 5월 1일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와 5정 6촌이 합병하여 고리야마시가 발족.
1965년(쇼와 40년) 7월 1일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가 쇼나이촌을 편입 합병.
1965년(쇼와 40년) 8월 1일고리야마시가 니시다촌, 나카다촌을 편입 합병.
1965년(쇼와 40년) 9월 1일군마현 다카사키시군난촌을 편입 합병.
1966년(쇼와 41년) 2월 10일도야마현 다카오카시가 도데마치, 나카다마치를 편입 합병.
1966년(쇼와 41년) 5월 1일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마쓰나가시가 합병 (신설 합병)하여 새로운 후쿠야마시가 발족.
1966년(쇼와 41년) 10월 1일후쿠시마현 히라시, 죠반시, 이와키시, 우치고시, 나코시와 4정 5촌 (구지하마마치, 오가와마치, 요쓰쿠라마치, 토노마치, 요시마촌, 가와마에촌, 오쿠무라, 다비토촌, 미와촌) 총 14시정촌이 합병 (신설 합병)하여 이와키시가 발족.
1966년(쇼와 41년) 10월 16일나가노시, 시노노이시, 가와나카지마마치, 사라키타촌, 신코촌, 나나카이촌, 마쓰다이마치, 와카호마치가 합병하여 나가노시가 발족.
1967년(쇼와 42년) 2월 1일오사카부 후세시, 가와치시, 히라오카시가 합병 (신설 합병)하여 히가시 오사카시가 발족.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다마시마시, 고지마시가 합병 (신설 합병)하여 새로운 구라시키시가 발족.
후쿠오카현 구루메시가 치쿠호마치를 편입 합병.
1967년(쇼와 42년) 4월 1일시가현 오쓰시가 가타타마치, 세타마치를 편입 합병.
효고현 가사이군 호조마치, 가사이마치, 이즈미마치가 합병하여 가사이시가 발족.
구루메시가 젠도지마치를 편입 합병.
1967년(쇼와 42년) 4월 26일가고시마시, 타니야마시가 합병 (신설 합병)하여 새로운 가고시마시가 발족.
1967년(쇼와 42년) 5월 17일후쿠이시가 가와니시마치를 편입 합병.
1967년(쇼와 42년) 7월 30일후쿠이시가 모리타마치를 편입 합병.
1968년(쇼와 43년) 3월 1일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가 가구라마치를 편입 합병.
1968년(쇼와 43년) 4월 1일돗토리현 요나고시가 하쿠센마치를 편입 합병.
1969년(쇼와 44년) 1월 1일시즈오카시가 오코치촌, 우메가시마촌, 다마가와촌, 이가와촌, 키요사와촌, 오카와촌을 편입 합병.
1971년(쇼와 46년) 1월 1일에히메현 미부카와마치, 미요시마치가 대등 합병하여 토요마치가 발족. 1972년(쇼와 47년) 10월 1일, 시제 시행하여 토요시가 발족.
1971년(쇼와 46년) 3월 31일지바현 가모가와마치, 에미마치, 나가사마치가 합병하여 가모가와시가 발족 (시제 시행).
1971년(쇼와 46년) 4월 1일오카야마현 비젠마치, 미이시마치가 합병하여 비젠시가 발족 (시제 시행).
1971년(쇼와 46년) 4월 29일니가타현 다카다시, 나오에쓰시가 합병 (신설 합병)하여 조에쓰시가 발족.
1971년(쇼와 46년) 9월 1일후쿠이시가 아스와마치를 편입 합병.
1973년(쇼와 48년) 12월 1일홋카이도 하코다테시가 가메다시를 편입 합병.


2. 5. 헤이세이 대합병 (1999년~2010년)

1995년, 이른바 '지방분권 일괄법'을 통해 '합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주민 신청을 통해 법정합병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고, 합병특례채 등 재정 지원 조치도 확충되었다.[11] 정령지정도시로의 이행이나 정촌이 시가 되기 위한 인구 요건도 완화되어 합병 논의가 가속화되었다. 1996년 총선에서는 자유민주당, 신진당, 민주당 등 주요 정당들이 모두 시정촌 합병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0년에는 자민당, 공명당, 보수당 연립여당이 기초자치단체 강화를 위해 시정촌 합병 후 자치단체 수를 1,000개로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시정촌은 정부로부터 합병특례채와 같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진행된 삼위일체 개혁으로 지방교부세가 대폭 삭감되었다. 합병특례채는 법정합병협의회가 책정한 합병 시정촌 건설 계획에 규정된 사업이나 기금 적립에 필요한 경비에 대해 합병 후 10년 동안 차입할 수 있는 지방채였다. 대상 사업비의 95%를 충당할 수 있고, 원리상환금의 70%를 다음 해에 보통교부세로 조치받을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러한 특례는 2005년 3월 31일까지 합병하는 시정촌에만 인정되었기 때문에 합병에 뛰어드는 시정촌이 줄을 이었다. 한편, 지방교부세의 대폭적인 삭감은 지방교부세 의존도가 높았던 소규모 정촌에 큰 타격을 주었고, 불안정한 재정 운영을 극복하기 위해 합병을 선택하는 경우도 생겼다.

헤이세이 대합병은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99년 3월 말 시정촌 수는 3,232개였으나, 2006년 4월에는 1,820개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소규모 정촌이라도 원자력 발전소가 있어 전력사업교부금을 받거나 대기업이 있어 안정적인 세금 기반이 있는 경우에는 지방교부세 의존도가 낮아 합병에 나서지 않았다. 니가타현, 도야마현, 에히메현, 오이타현 등은 합병이 적극적으로 진행된 지역이지만, 도쿄도, 가나가와현, 오사카부 등은 합병이 활발하지 않았다.

2005년 4월 시행된 '합병신법'에 따라 시정촌 합병은 계속 이어졌다. '합병신법'은 도도부현에 의한 합병 추진이 포함되었지만, 합병특례채와 같은 재정 지원 조치를 규정하지 않아 합병 움직임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2009년 5월, 제29차 지방제도조사회는 '합병신법'이 다음 해 3월 폐기되면 정부 주도의 합병도 일단락되어야 한다고 답신했다. 2010년 4월, '합병신법'이 개정되어 10년 더 연장되었지만, 국가와 도도부현에 의한 합병 추진에 관한 규정은 삭제되었고, 시가 되기 위한 완화 조건도 없애는 등 정부 주도의 합병 추진 운동은 사실상 끝났다.

헤이세이 대합병을 추진하기 전에는 정의 수가 시보다 약 3배 정도 많았지만, 특례 조치에 따른 정촌의 수는 계속 감소하여 2010년 2월 1일에는 시와 정의 수가 각각 784개로 같아졌다. 2014년 4월 5일 도치기현 시모쓰가군 이와후네정도치기시에 편입된 것이 마지막 시정촌 합병이며, 이후 시정촌 수는 1,718개를 유지하고 있다.

2. 6. 헤이세이 대합병 이후

2005년 4월에 시행된 「시정촌 합병 특례 등에 관한 법률」(「합병신법」)에 근거해 시정촌 합병은 계속 이어졌다.[1] 2010년 4월 「합병신법」이 개정되어 10년 더 연장되었지만, 국가와 도도부현에 의한 합병 추진에 관한 규정은 삭제됐고 시가 되기 위한 완화 조건도 없애는 등 정부 주도의 합병 추진 운동은 사실상 끝났다.[1]

헤이세이 대합병·시정촌 수 추이(도도부현별)
도도부현1999년(헤이세이 11년) 3월 31일 시점2014년(헤이세이 26년) 4월 5일 시점증감수·증감률
시정촌 수시정촌 수시정촌
홋카이도21234154241793512915-33-16%+1+3%-25-16%-9-38%
아오모리현67834254010228-27-40%+2+25%-12-35%-17-68%
이와테현591330163314154-26-44%+1+8%-15-50%-12-75%
미야기현71105923513211-36-51%+3+30%-38-64%-1-50%
아키타현6995010251393-44-64%+4+44%-41-82%-7-70%
야마가타현44132743513193-9-20%00%-8-30%-1-25%
후쿠시마현9010522859133115-31-34%+3+30%-21-40%-13-46%
이바라키현852048174432102-41-48%+12+60%-38-79%-15-88%
토치기현49123522514110-24-49%+2+17%-24-69%-2-100%
군마현701133263512158-35-50%+1+9%-18-55%-18-69%
사이타마현924338116340221-29-32%-3-7%-16-42%-10-91%
지바현80314455437161-26-33%+6+19%-28-64%-4-80%
도쿄도402758392658-1-3%-1-4%00%00%
가나가와현37191713319131-4-11%00%-4-24%00%
니가타현112205735302064-82-73%00%-51-90%-31-89%
도야마현359188151041-20-57%+1+11%-14-78%-7-88%
이시카와현418276191180-22-54%+3+38%-19-70%-6-100%
후쿠이현35722617980-18-51%+2+29%-14-64%-6-100%
야마나시현6473720271386-37-58%+6+86%-29-78%-14-70%
나가노현12017366777192335-43-36%+2+12%-13-36%-32-48%
기후현991455304221192-57-58%+7+50%-36-65%-28-93%
시즈오카현74214943523120-39-53%+2+10%-37-76%-4-100%
아이치현883147105438142-34-39%+7+22%-33-70%-8-80%
미에현69134792914150-40-58%+1+8%-32-68%-9-100%
시가현507421191360-31-62%+6+86%-36-86%-1-100%
교토부44123112615101-18-41%+3+25%-21-68%00%
오사카부4433101433391-1-2%00%-1-10%00%
효고현91217004129120-50-55%+8+38%-58-83%0-
나라현4710201739121512-8-17%+2+20%-5-25%-5-29%
와카야마현507367309201-20-40%+2+29%-16-44%-6-86%
돗토리현394314194141-20-51%00%-17-55%-3-75%
시마네현5984110198101-40-68%00%-31-76%-9-90%
오카야마현781056122715102-51-65%+5+50%-46-82%-10-83%
히로시마현8613676231490-63-73%+1+8%-58-87%-6-100%
야마구치현5614375191360-37-66%-1-7%-31-84%-5-100%
도쿠시마현504388248151-26-52%+4+100%-23-61%-7-88%
가가와현43538017890-26-60%+3+60%-29-76%0-
에히메현70124414201190-50-71%-1-8%-35-80%-14-100%
고치현53925193411176-19-36%+2+22%-8-32%-13-68%
후쿠오카현97246586028302-37-38%+4+17%-35-54%-6-75%
사가현4973752010100-29-59%+3+43%-27-73%-5-100%
나가사키현798701211380-58-73%+5+63%-62-89%-1-100%
구마모토현941162214514238-49-52%+3+27%-39-63%-13-62%
오이타현58113611181431-40-69%+3+27%-33-92%-10-91%
미야자키현449287269143-18-41%00%-14-50%-4-57%
가고시마현96147394319204-53-55%+5+36%-53-73%-5-56%
오키나와현5310162741111119-12-23%+1+10%-5-31%-8-30%



2016년에 미야기현 구로카와군 도미야정이 시로 승격하여 도미야시가 되었고, 2018년에는 후쿠오카현 지쿠시군 나카가와정이 시로 승격하여 나카가와시가 되었다.[1]

2. 7. 추이

연도시의 수정의 수촌의 수시정촌 수
1888년 (메이지 21년) 12월-71,31471,314
1889년 (메이지 22년) 12월3915,82015,859
1947년 (쇼와 22년) 8월2101,7848,51110,505
1956년 (쇼와 31년) 4월4951,8702,3034,668
1965년 (쇼와 40년) 4월5602,0058273,392
1995년 (헤이세이 7년) 4월6631,9945773,234
2003년 (헤이세이 15년) 4월6771,9615523,190
2005년 (헤이세이 17년) 4월7391,3173392,395
2006년 (헤이세이 18년) 4월7798441971,820
2008년 (헤이세이 20년) 11월7838061931,782
2014년 (헤이세이 26년) 4월7907451831,718



일본에서는 메이지 대합병(1888년~1889년), 쇼와 대합병(1953년~1956년), 헤이세이 대합병(1999년~2010년) 등 여러 차례 대규모 시정촌 합병이 이루어졌다.[5]

3. 합병과 분할의 종류

일본의 「시정촌 합병의 특례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에 따르면 시정촌 합병은 크게 합체와 편입으로 나뉜다. 합체는 합병하려는 시정촌을 모두 폐지하고 새로운 시정촌을 설치하는 방식이고, 편입은 합병하려는 시정촌 중 하나를 존속시키고 나머지를 폐지하여 존속하는 시정촌에 편입하는 방식이다.[3]

시정촌 분할은 분할과 분립으로 나뉜다. 분할은 하나의 시정촌을 폐지하고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새로운 시정촌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분립은 하나의 시정촌을 유지한 채 그 구역의 일부를 분리하여 새로운 시정촌을 설치하는 방법이다.[3]

일반적으로 합병은 같은 도도부현 내에서 이루어지지만, 도도부현의 경계에서 서로 인접한 시정촌이 지리적·경제적 이유로 합병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데, 이를 월경 합병이라고 한다. 분할과 분립은 지리적·역사적 이유나 교통 체계, 주민의 생활권 등을 이유로 일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 제2차 세계 대전 때 국책으로 합병된 정촌이 전후에 분리되거나 쇼와 대합병 때 합병한 정촌이 새로운 시정촌 내의 대립 끝에 분리했다.[3]

3. 1. 합체 (신설 합병)

합병하려는 시정촌을 모두 폐지하고 새로운 시정촌을 설치하는 방법이다. 합병에 관련된 모든 시정촌의 법인격은 소멸되므로, 모든 시정촌장과 시정촌 의회 의원은 실직한다. 이후 합병으로 설치된 신설 시정촌에서 시정촌장과 시정촌 의회 의원 선거가 치러진다.[3] 단, 시정촌 의회 의원에 대해서는 합병 신법에 따른 재임 특례를 적용할 수도 있다. 또한, 시정촌장 선거까지 시정촌장 직무 집행자가 임명되어 시정촌장의 직무를 대행하는데, 시정촌장 직무 집행자는 합병 전의 어느 시정촌장이거나 합병 후의 시정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자가 취임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비슷한 시정촌끼리의 합병에서 주로 시행되지만, 규모 차이가 크더라도 합병 협의 결과에 따라 채택된 사례도 있다. 속칭 '신설 합병'이라고 불린다.

3. 2. 편입 (편입 합병)

합병하려는 시정촌 중에서 하나의 시정촌만 법인격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되어 유지되는 시정촌에 흡수되는 합병 방법으로, 편입 합병이라고도 한다. 편입되는 시정촌은 법인격이 모두 사라지고 시정촌장과 시정촌의회 의원도 그 직을 잃게 된다. 다만, 편입되는 시정촌의회 의원은 유지되는 시정촌의회 의원이 되는 것이 특례로서 인정될 수 있다. 유지되는 시정촌은 임기 만료나 단체장의 사망·사직이 아닌 이상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3]

합병하는 시정촌의 규모가 크게 다른 경우에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3. 3. 분할

하나의 시정촌을 폐지하고 복수의 구역으로 나누어 새로운 시정촌을 설치하는 방법이다. 분할되는 시정촌의 법인격은 소멸하기 때문에 해당 시정촌장과 시정촌 의회의 의원은 실직하며, 분할 후에 설치된 새 시정촌에서 시정촌장과 시정촌 의회의 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합체 합병의 반대어로 '해체 분할'이라는 용어로 나타내기도 한다.[3]

3. 4. 분립

하나의 시정촌을 유지한 채 그 구역의 일부를 잘라내어 새로운 시정촌을 설치하는 방법이다.[3] 분리 전의 시정촌은 법인격이 유지되며 시정촌장과 의회 의원도 그 직을 잃지 않는다. 다만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구역에 주소를 두고 있는 의회 의원은 피선거권을 상실하므로 「지방자치법」 제127조에 의거해 의회 자격 결정 의결로 그 직을 잃는다. 의원과 달리 시정촌장은 피선거권 자격에 주소 요건이 없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그 직을 잃지 않는다. 분리되는 시정촌에서는 시정촌장과 시정촌의회 의원을 새로 선출해야 한다.[3]

어느 쪽이든 지리, 역사, 교통 체계, 주민의 생활권이 다른 복수의 지역을 함께 가지고 있는 시정촌에서 실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3]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국책으로 합병한 정촌이 종전 후에 분립되거나, 쇼와 대합병으로 합병한 정촌이 신 시정촌 내의 대립으로 분립되는 사례가 있었다.[3]

3. 5. 월경 합병

일반적으로 합병은 동일한 도도부현 내의 시정촌끼리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 경계에 인접해 있고 지리적, 경제적 이유 등으로 동일한 도도부현 내보다 다른 도도부현의 시정촌과의 교류가 깊다면, 현 경계를 넘는 합병이 모색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월경 합병'''(월현 합병, 현경 합병)이라고 부른다.

4. 합병 후의 명칭

합병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자치단체(시정촌)의 이름은 보통 법정합병협의회에서 결정하지만, 이름 후보는 주민 공모를 통해 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러 시정촌이 합쳐져 새로 만들어지는 경우(신설 합병)에는 공모를 자주 한다.

합병 방식에 따라 새 이름이 결정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신설 합병 (합체): 여러 시정촌이 합쳐져 새로운 자치단체가 만들어지는 경우.
  • 합병에 참여하는 시정촌 중 하나의 이름을 사용
  •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사용
  • 편입 합병: 하나의 시정촌이 다른 시정촌을 흡수하는 경우.
  • 흡수하는 쪽(편입하는 시정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이름들이 자주 사용된다.

  • 옛 지명 회피: 이전 시정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 광역 지명 사용: 군(郡)과 같이 넓은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을 사용한다. (예: 지바현 소사시)
  • 합성 지명 사용: 합병하는 시정촌들의 이름을 섞어서 만든다. (예: 이바라키현 오미타마시)
  • 방위 지명 사용: 동서남북과 같은 방향을 나타내는 이름을 사용한다. (예: 가가와현 히가시카가와시)
  • 히라가나/가타카나 지명: 한자 대신 히라가나 또는 가타카나를 사용한다. (예: 사이타마현 도키가와정)


새로운 자치단체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름에 대한 의견 차이로 합병 협상 자체가 결렬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합병하는 시정촌들의 규모가 비슷할 경우, 어떤 이름을 사용할지를 두고 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름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 구(区) 이름 채택: 구의 이름을 사용한다.
  • 합병 지역 이름 조합: 합병되는 지역들의 이름을 합쳐서 새로운 이름을 만든다. (예: 도쿄도 오타구)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하거나(예: 平和|헤이와|평화일본어), 잘 알려진 주변 지역 이름에 방향을 덧붙이는 방식(예: 니시토쿄시)도 자주 사용된다.

헤이세이 대합병 시기에는 히라가나 이름을 가진 지자체가 급증했다. 과거 일본의 도시 이름은 한자만 사용했지만, 1960년 무쓰시를 시작으로 히라가나 지자체가 늘어났다.

5. 합병의 영향

1999년 지방분권 운동이 시작된 후, 지방자치법과 시정촌 합병에 관한 특별법(SLMM) 개정을 바탕으로 중앙 정부는 시정촌 통합에 강력한 재정적,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합병을 추진했다.[3] 중앙 정부는 시정촌 수를 1,000개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러한 인센티브를 사용하여 현(県) 정부가 합병을 추진하도록 촉구했지만, 합병이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헤이세이 대합병|heisei-no-daigappei일본어으로 알려진 대규모 시정촌 합병이 이루어져, 지방 자치체 수는 3,232개에서 1,727개로 감소했다. 2000년대 초반의 삼위일체 개혁일본어은 많은 소규모 지방 자치체가 자발적으로 다른 자치체와 합병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5]

일본의 대부분 농촌 시정촌은 중앙 정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며, 일자리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공공 사업에 돈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중앙 정부는 자체 재정 적자를 겪고 있어 시정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합병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는 시정촌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정책을 강제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다이센시와 같은 일부 도시는 일시적으로 매우 큰 시 의회를 갖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연방주의의 한 형태로 보고,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을 더 자율적인 주로 구성된 연합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합병은 지방 시정촌에 국한되었으며, 도도부현 합병은 일부 지역에서 논의되고 있다.

스즈키와 하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 시정촌 합병은 입법 활동과 조례 제안 수행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정촌 합병 이후 지방 의회는 더 적은 수의 시정촌 조례를 제안하여, 합병 후 공동체가 더 나쁜 입법 수행을 경험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시정촌 규모 확대는 입법 수행과 부정적인 관련이 있었다.

이쿠타는 성공적인 합병 사례도 있지만, 많은 합병된 시정촌이 새로운 공유된 지역 이미지와 정체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결론지었다. 헤이세이 대합병은 지역 브랜드에 대한 오해로 특징지어졌으며, 이는 지역 정체성 달성을 위한 중장기적인 지역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라우쉬는 합병 후 정책에 더 나은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히로사키시 합병 사례를 통해 도시 관광 정책이 히로사키에만 집중되어 관련 소규모 시정촌 관광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의원 수 삭감의 경우, 헤이세이 대합병으로 미야자키현 지방 의원 정수는 2005년 7월 768명에서 2019년 3월 387명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미야자키 니치니치 신문은 합병으로 시정촌 수가 줄어든 것과 더불어 인구 감소 및 재정난으로 각 의회에서 정수 삭감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18]

지역 집약화와 관련해서는, 합병 후에도 구 과소 지역은 인구 유출과 지역 쇠퇴가 멈추지 않아 중심부에서 떨어진 과소 지역 주민들은 합병에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사가 신문은 합병하지 않아도 도로, 다리, 수도 등 공공 인프라 유지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유바리시는 인구 감소에도 "계속 살 수 있는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주택 집약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시영 주택 집약으로 유지비 및 난방비 삭감, 저층화로 계단 오르내리기 부담 경감 등 주민에게도 이점이 있다.[19]

5. 1. 긍정적 영향

住民生活일본어 및 서비스의 편리성 향상: 주민의 생활 행동권에 맞는 행정 서비스의 광역화가 이루어진다. 통근, 통학, 통원, 쇼핑 등의 행동권역은 기존의 행정 구획을 넘는 경우가 많지만, 행정 구역이 광역화됨으로써 주민등록등본 발급 등의 창구 서비스를 근무지나 외출지 등 가까운 곳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문화회관, 도서관, 스포츠 시설 등의 각종 공공 시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용에 제한이 있거나 이용 요금에 차이가 있는 등 인접 마을의 시설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건으로 이용이 가능하게 된다. 시정촌 행정에 요구되는 기능도 고도화, 복잡해지고 있지만, 전문적 지식을 갖춘 직원을 확보함으로써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이타마현 후지미노시에서는 합병 특례 채권을 활용하여 초등학교 및 중학교의 내진 보강, 대규모 개수 공사를 실시했다.[16] 군마현 기류시에서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직원이 배치되었다.[16][17]

지역 만들기의 계기: 합병 논의를 통해 자신의 마을을 재검토하는 기회가 된다. 합병 후에도 마을 만들기 비전 실현을 위해 주민, 각 단체의 지역 만들기에 대한 주체적인 참가가 기대된다. 도야마시에서는 합병으로 시내 도로가 정비되었다.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에서는 일체적인 브랜딩에 의한 광역 관광 거점 만들기가 이루어졌다.[16]

행정 재정의 효율화: 개별 자치체가 해온 관리 업무를 하나로 집약함으로써 직원 수 및 경비를 삭감하는 한편, 새로운 행정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부문에 충당할 수 있다. 직원 수도 인구당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행정 서비스의 향상을 도모하면서 인건비 및 경비를 억제할 수 있다. 읍·면장 및 시구정촌 등 지방 의원의 총수가 줄어 인건비가 절감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재정 기반이 적은 소규모 자치체는 합병으로 재정 기반이 안정되었다.[16][17] 다만, 합병으로 소멸하는 자치체에서도 퇴직 연령까지 시정촌 직원의 지위는 법률로 보장되기 때문에, 인원 억제·삭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합병 후 수년 이상 경과한 시점부터이다. 또한, 지소의 배치 방식에 따라서도 그 효율화 효과는 상당히 달라진다.

5. 2. 부정적 영향

일본에서 시정촌 합병은 지역 정체성 약화, 지역 간 불균형 심화, 주민 의사 반영 부족, 소득 불평등 심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했다.[20]

  • 지역 정체성 약화: 기존 시정촌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역사와 전통이 합병으로 인해 단절되고, 새로운 통합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이쿠타는 헤이세이 대합병이 지역 브랜드에 대한 오해로 인해 지역 정체성 달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3]
  • 지역 간 불균형 심화: 합병은 중심 지역으로의 인구 집중을 가속화하고, 주변 지역의 쇠퇴를 초래했다. 라우쉬는 히로사키시의 합병 사례를 예로 들며, 합병 후 도시 관광 정책이 히로사키에만 집중되어 주변 소규모 시정촌의 관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3]
  • 주민 의사 반영 부족: 합병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지역 대표성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의원 수 삭감으로 인해 과소 지역의 대표성이 더욱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했다.[12] 2015년 통일 지방 선거의 정촌 의원 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된 의원의 비율이 20%를 넘었으며, 일부 정촌에서는 후보자 부족으로 정수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12]
  • 소득 불평등 심화: 재정 기반이 취약한 시정촌을 흡수 합병하면서, 합병된 시정촌 내에서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03년에는 지니 계수가 0.325 이상인 자치단체가 50% 정도였으나, 합병 후인 2006년에는 약 76%로 증가했다.[20]

6. 합병 절차

시정촌 합병은 지방자치법과 시정촌 합병에 관한 특별법(SLMM)에 따라 진행된다. 1999년 지방분권 운동 이후, 중앙 정부는 시정촌 통합을 장려하기 위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했다.[3]

합병 절차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임의 합병 협의회 등에서 사전 협의를 진행한다. 주민 발의로 법정 합병 협의회가 설치되는 경우에는 사전 협의가 없을 수도 있다.

2. 관계 시정촌 의회의 의결을 거쳐 법정 합병 협의회(법정협)를 설치한다. 법정협은 관계 시정촌의 장 및 의회, 직원, 주민 대표 등으로 구성된다.

3. 법정협에서 합병 시정촌 기본 계획, 합병 기일, 합병 방식, 합병 후 시정촌 명칭 및 청사 위치, 사무 사업 조정 방침, 시의회 의원 처리, 지역 자치구 설치 등에 대해 협의하고 합의한다.

4. 관계 시정촌장 간 합병 협정에 조인한다. (임의)

5. 관계 시정촌 의회에서 시정촌의 폐치분합 및 관계 의안을 의결한다.

6. 도도부현 지사에게 신청한다.

7. 도도부현 의회에서 의결한다.

8. 도도부현 지사가 "폐치분합 처분의 결정"을 하고, 결정서를 관계 시정촌장에게 교부하고, 총무대신에게 보고한다.

9. 총무대신의 관보 고시에 의해 합병이 법적으로 결정된다.
주민 발의 제도: 1995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유권자의 50분의 1 이상의 서명으로 시정촌장에게 법정협 설치를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시즈오카시와 시미즈시의 합병이 이 제도를 활용한 사례이다.

합병 협의가 성사되면 관계 시정촌장에 의한 합병 협정서 조인식이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조인식은 기념 행사로, 도도부현 지사, 지역구 출신 도도부현 의원 및 국회의원 등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거행되기도 한다.

지방자치법 제252조에 따라, 지방공공단체는 사무의 일부를 공동 관리·집행하고, 연락 조정을 도모하며, 광역적인 계획을 작성하기 위해 '보통 지방공공단체의 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다.

7. 비판

平成の大合併|헤이세이 대합병일본어은 중앙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정책 추진, 지역 주민의 의사 무시, 지역 간 불균형 심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1] 특히,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고 지역 소멸을 가속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본의 대부분의 농촌 시정촌은 중앙 정부의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며, 이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공공 사업에 돈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1] 중앙 정부는 자체적인 재정 적자를 겪고 있어, 시정촌 시스템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합병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시정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강제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합병 결과, 다이센시와 같은 일부 도시는 일시적으로 매우 큰 시 의회를 갖게 되었다.

스즈키와 하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의 시정촌 합병은 입법 활동과 조례 제안의 수행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정촌 합병 이후 지방 의회는 더 적은 수의 시정촌 조례를 제안했으며, 이는 합병 후의 공동체가 더 나쁜 입법 수행을 경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시정촌 규모의 확대가 입법 수행과 부정적인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1]

이쿠타는 지역 전체의 공통된 특성을 포용하는 성공적인 합병 사례도 있지만, 새로운 공유된 지역 이미지와 정체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합병된 시정촌도 많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헤이세이 대합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지역 브랜드에 대한 오해로 특징지어졌으며, 이는 지역 정체성을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지역 경쟁력으로 이어졌다.[1]

라우쉬는 합병 후 정책에 더 나은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그는 히로사키시가 이와키정 및 소마 촌과 합병한 사례를 지적하며, 이 합병에서 도시 관광 정책은 히로사키의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관련 소규모 시정촌의 관광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1]

1999년 이후 20년 동안 헤이세이 대합병, 경비 절감, 지방 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감소 등으로 시구정촌 의회의 지방 의원 정수가 6만 113명에서 2018년에는 3만 339명으로 반감되었다. 그러나 지방 의원 정수를 반감시킨 후에도 지방 의회 선거 중 통일 지방 선거 시기에는 특히 "무투표나 정수 부족이 발생하여 줄이는 경우"가 과소 지역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2015년의 통일 선거의 정촌 의원 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된 의원"의 비율이 2할을 넘어 4개 정촌에서는 "후보자가 모일 것 같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후보자 수 자체가 정수 미만이었다.[12]

8. 한국과의 비교

市町村|しちょうそん|시정촌일본어 합병 논의를 유도하고, 시정촌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시정촌 합병이 고려될 수 있는 조합(패턴)으로서, 복수의 패턴을 포함하는 합병 시정촌의 조합을 작성하여 공표한 현(県)도 있었다.

새로운 시정촌의 본청 위치 문제는 해당 자치단체 간에 중심 지역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관계 자치단체의 체면 문제도 겹쳐 매우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청사는 자치단체의 중심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아키타현니카호시 등과 같이 실제로 이 문제로 합병 협의가 꼬이는 경우도 있다.[1] 또한 시가현다카시마시와 같이 신 청사의 위치를 둘러싼 결과, 건설이 예정된 장소와는 다른 곳에 있는 구 자치단체의 청사(구: 신아사히정청사)를 잠정적으로 사용하게 된 자치단체도 있다.[1]

헤이세이 시대에는 시정촌 합병이 재정 건전화라는 맥락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고, 주민들도 시정촌 청사 건설 등의 지출에 대해 엄격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구 시정촌의 청사와는 별도로 새로운 자치단체로서의 청사를 새로운 장소에 신축하려는 경우는 적으며, 시와 정으로 합병한 자치단체에서는 합병 전의 재정력 차이 등으로 시청과 정청의 본청사 규모에 큰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대로 구 시청의 청사를 본청, 구 정청의 청사를 분청사 또는 행정 센터로 하는 예가 적지 않다.[1] 다카시마시의 신 청사도 토지는 취득했지만, 현 시점에서는 착공의 전망은 전혀 서 있지 않다.[1] 더욱이 다카시마시는 구: 신아사히정 청사를 확장하여 시청으로 영구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시장이 당선되었고, 합병 협정이 파기될 것이라는 이유로 구: 마키노정과 신 시청이 세워질 예정이었던 구: 이마즈정의 다카시마시로부터의 분립을 목표로 하는 주민 운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1]

시·읍·면 의회의원 정수와 임기 취급은 의원에게는 신분과 관련된 관심사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법상 "합체(신설 합병)에 있어서의 관계 시·읍·면" 및 "편입(편입 합병)에 있어서의 편입되는 시·읍·면"에서는 시·읍·면의 법인격이 소멸되므로, 해당 의회의 의원은 당연히 실직하게 된다.[1]

국가에서는 합병 특례법에서 다음과 같은 특례를 정했으며, 이 제도는 2005년(헤이세이 17년) 시행된 합병 신법에도 계승되었다.[1]


  • '''정수 특례''' - 합병 직후에 일시적으로 의원 정수를 늘리는 특례[1]
  • '''재임 특례''' - 합병 전의 의회 의원이 합병 후에도 일정 기간 의원으로서 재직할 수 있는 특례[1]


이러한 특례를 적용할지는 합병 협의회의 협의에 따른다. 특례 내용은 합체(신설 합병)와 편입(편입 합병)에서 다르다.[1]

관계 시정촌의 재정 문제도 해당 시정촌 내부에서 상당히 문제시되는 경우가 있었다. 시정촌의 지방채·기금 잔액 상황을 포함한 재정 상황 그 자체는 주민에게도 공표되며, 또한 비교 가능한 형태로 결산 결과가 공표된다. 그러나 토지 개발 공사의 재정 상황, 혹은 제3섹터에 대한 만성적인 지출금·차입금 등, 시정촌의 보통 회계에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의 숨겨진 부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1]

또한, "저금"이라고 할 수 있는 기금에 대해서도 "합병이 결정되기 이전부터 예정된 사업"이라고 강변하면서 "새로운 시정촌으로 가져가면 손해"라는 식으로 합병 전에 급하게 사업을 하거나, 지구 단체에 배포하는 사례도 보였다.[1]

신설 합병인지 편입 합병인지를 두고 대립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1] 미나미타카라키군아리에정, 니시아리에정, 후쓰정, 후카에정, 아리아케정의 5개 정은 시마바라시와의 합병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시마바라시로의 편입인지 (신) 시마바라시의 신설인지를 두고 대립이 일어나, 최종적으로 아리아케정을 제외한 4개 정이 주변 4개 정과 대등 합병하여 미나미시마바라시가 되었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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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Consolidation of Local Governments in Japan and Effects on Sister City Relationships https://web.archive.[...]
[3] 문서 Ehime Prefecture, n.d. cite in {{harvtxt|Suzuki|Ha|2018|p=765}}
[4] 문서 MIC (2010) cited in {{harvtxt|Miyazaki|2018|p=1065}}
[5] 논문 The impact of the Trinity Reforms and the Heisei Mergers on processes of peripherisation in Japan's mountain villages https://www.academia[...] 2011
[6] 문서 Morikawa (2011) cited in {{harvtxt|Rausch|2012|p=192}}
[7] 웹사이트 Local Government in Japan https://www.jlgc.org[...] Council of Local Authorities for International Relations 2024-01-07
[8] 문서 Ikuta (2006) cited in {{harvtxt|Rausch|2012|pp=198–199}}
[9] 문서 未実施期間は2024年(令和6年)4月時点で10年に達しており、これは[[1979年]]([[昭和]]54年)に[[兵庫県]][[加古川市]]が[[印南郡]][[志方町]]を編入してから、[[1984年]](昭和59年)に[[長野県]][[飯田市]]が[[下伊那郡]][[鼎町]]を編入するまでの期間(5年10ヶ月)よりも長く、この状態が現在も続いている。
[10] 문서 鹿児島県]]は「財政的に適正となる基準」として12,000人以上を標準とした(『鹿児島県市町村変遷史』 [[1967年]](昭和42年) pp.332 - 334)。
[11] 뉴스 全国の「市」と「町」、同数の784に http://www.yomiuri.c[...] 読売新聞社 20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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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문서 三島村(1990)
[14] 문서 三島村(1990)
[15] 문서 鹿児島県市町村変遷史 p.110
[16] 웹사이트 平成の大合併、自治体の手応えは 福井県内の市町は大半が肯定的 {{!}} 政治・行政 {{!}} 福井のニュース https://www.fukuishi[...] 2019-04-01
[17] 웹사이트 県内9市町「成果」、3市「判断見送り」 平成の大合併アンケート http://www.minyu-net[...] 2019-04-01
[18] 웹사이트 市町村の議員定数半減「387」 「大合併」前比 https://www.the-miya[...] 2019-04-01
[19] 웹사이트 コンパクトなまちづくり 人口減見据え早期対策を|論説|佐賀新聞LiVE https://www.saga-s.c[...] 2019-04-01
[20] 서적 「平成の大合併」の政治経済学 勁草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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