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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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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1955년 2월 27일에 실시되었으며, 자유당을 탈당한 하토야마 이치로 파가 개진당과 함께 일본민주당을 창당한 후 치러진 선거이다. 선거 결과, 일본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으며, 이후 자유당과의 합당을 통해 자유민주당을 결성하여 보수 양당 체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좌우 사회당의 통합으로 '55년 체제'의 한 축을 형성하는 등 일본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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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지도 정보
선거구별 당선자 득표율
선거 정보
국가일본
선거 유형의회 선거
이전 선거1953년 일본 총선거
이전 선거 연도1953년
선거 날짜1955년 2월 27일
다음 선거1958년 일본 총선거
다음 선거 연도1958년
선출 의석수467석
과반 의석수234석
투표율75.83% ( 1.62%p)
주요 정당 및 지도자
제1당 이미지
제1당 대표하토야마 이치로
제1당일본민주당 (1954년)
제1당 이전 선거 결과26.71%, 111석
제1당 획득 의석수185석
제1당 의석수 변동74
제1당 득표수13,536,044표
제1당 득표율36.57%
제1당 득표율 변동9.86%p
제2당 이미지
제2당 대표오가타 다케토라
제2당자유당 (일본, 1950년)
제2당 이전 선거 결과38.95%, 199석
제2당 획득 의석수112석
제2당 의석수 변동87
제2당 득표수9,849,458표
제2당 득표율26.61%
제2당 득표율 변동12.34%p
제3당 이미지
제3당 대표스즈키 모사부로
제3당일본사회당 좌파
제3당 이전 선거 결과13.05%, 72석
제3당 획득 의석수89석
제3당 의석수 변동17
제3당 득표수5,683,312표
제3당 득표율15.35%
제3당 득표율 변동2.30%p
제4당 이미지
제4당 대표가와카미 조타로
제4당일본사회당 우파
제4당 이전 선거 결과13.52%, 66석
제4당 획득 의석수67석
제4당 의석수 변동1
제4당 득표수5,129,594표
제4당 득표율13.86%
제4당 득표율 변동0.34%p
총리 정보
선거 전 총리하토야마 이치로
선거 전 총리 소속 정당일본민주당 (1954년)
선거 후 총리하토야마 이치로
선거 후 총리 소속 정당일본민주당 (1954년)
추가 정보
해산명천황의 목소리 해산
이전 선거 1당신당
이전 선거 2당199석
이전 선거 3당72석
이전 선거 4당66석
1당 대표 취임일1954년 11월
2당 대표 취임일1954년 12월
3당 대표 취임일1951년 10월
4당 대표 취임일1953년 1월
5당 대표구로다 히사오
5당노동자농민당
5당 이전 선거5석
5당 선거 전 의석5석
5당 획득 의석4석
5당 득표수357,611표
5당 득표율0.97%
5당 득표율 증감-0.07%
6당 대표도쿠다 규이치
6당일본공산당
6당 대표 취임일1945년 12월
6당 이전 선거1석
6당 선거 전 의석1석
6당 획득 의석2석
6당 득표수733,121표
6당 득표율1.98%
6당 득표율 증감0.08%

2. 배경

1954년, 자유당을 탈당한 하토야마 이치로 세력은 개진당과 합류하여 일본민주당을 창당했다. 하토야마 이치로가 초대 총재를 맡은 일본민주당은 자주헌법 제정, 재무장 등 우파적인 정책을 주요 강령으로 내세웠다.

같은 해, 제5차 요시다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12월 10일, 일본민주당의 하토야마 이치로를 총리로 하는 제1차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했다. 그러나 일본민주당은 의회 내 소수 여당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국정 운영 기반이 부족했다. 이에 하토야마 내각 출범 직전인 12월 9일, 일본민주당과 당시 좌우 양 사회당은 당수 회담을 열어 하토야마 내각 출범 후 조기에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기로 합의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민주당은 조기 총선을 통해 제1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안정적인 다수 의석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결국 1955년 1월 24일 중의원이 해산되었다. 선거 국면에서는 이른바 '하토야마 붐'이 일었는데, 하토야마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과거 GHQ(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에 의해 공직 추방을 당했던 점, 그리고 이후 병마와 싸웠던 개인사에 대한 동정 여론이 형성되면서 일본민주당 후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3. 선거 정보

1954년 제5차 요시다 내각이 총사퇴하고 일본민주당의 하토야마 이치로를 총리로 하는 제1차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한 후, 소수 여당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위해 1955년 1월 24일 중의원이 해산되었다. 선거 과정에서는 이른바 '하토야마 붐'이 일어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이 선거는 NHK일본텔레비전이 역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이용한 개표 속보 방송을 실시한 선거라는 특징을 가진다.[2][3]

3. 1. 해산일 및 선거일

1954년 제5차 요시다 내각이 총사퇴하고, 12월 10일 일본민주당의 하토야마 이치로를 총리로 하는 제1차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했다. 총리 지명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좌우 양 사회당12월 9일 당수 회담에서 하토야마 내각 출범 후 조기에 중의원을 해산하기로 합의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소수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정권 안정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선거를 치러 제1당, 나아가 안정 다수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1955년 1월 24일 중의원이 해산되었다. 선거 과정에서는 이른바 '하토야마 붐'이 일어났다. 이는 하토야마 총리의 인품과 더불어, 과거 GHQ에 의해 공직 추방되었던 점, 그리고 병마와 싸웠던 개인사에 대한 동정 여론이 작용한 결과로, 민주당 후보들에게 많은 표가 몰리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선거 공시는 1955년 2월 1일에 이루어졌으며, 투표는 1955년 2월 27일에 실시되었다. 이번 총선거에서는 NHK가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이용한 총선거 개표 속보를 방송했으며[2], 개국한 지 1년 반 된 일본텔레비전 역시 처음으로 개표 속보를 실시했다.[3]

선거 당시 내각은 제1차 하토야마 내각(하토야마 이치로 총리, 일본민주당)이었으며, 선거 후 제2차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했다.

3. 2. 선거 제도

중선거구제를 중심으로 하되, 일부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혼합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구 종류 및 수
선거구제 종류선거구 유형선거구 수
중선거구제3인 선거구40
4인 선거구39
5인 선거구38
소선거구제1인 선거구1



1953년 12월 미국으로부터 아마미군도가 일본에 반환됨에 따라, 선거 전년도인 1954년에 아마미군도 선거구(정수 1명)가 신설되어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구는 1992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가고시마 1구에 편입될 때까지 약 40년간 중선거구제 하에서 유일한 소선거구제 선거구로 운영되었다.


  • '''투표 방식''': 비밀투표, 단기투표제를 채택하였다.
  • '''선거권''': 만 20세 이상의 일본 국민에게 부여되었다.
  • '''피선거권''': 만 25세 이상의 일본 국민에게 부여되었다.
  • '''유권자 수''': 총 49,235,375명이었으며, 이 중 남성은 23,556,833명, 여성은 25,678,542명이었다.

4. 선거 결과

1955년 2월 27일 실시된 총선거 결과, 일본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으나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하였다. 기존 제1당이었던 자유당은 의석수가 크게 줄어 제2당으로 내려앉았다. 반면, 좌우파로 분열되어 선거에 임했던 일본사회당 세력은 합계 의석수를 늘리며 선전하였다. 기타 정당 중에서는 신당동지회가 2석을 확보하였다.

이 선거는 이후 일본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해 11월 15일, 보수 세력인 일본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였고, 이들은 1993년까지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선거에서 약진한 일본사회당 (좌파)일본사회당 (우파) 역시 같은 해 통합하여 일본사회당을 결성하였다. 이로써 거대 보수 여당과 제1야당 일본사회당이 대립하는 55년 체제가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

4. 1. 정당별 득표 및 의석

1955년 2월 27일 실시된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결과, 일본민주당이 185석을 획득하여 제1당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하였다. 기존 제1당이었던 자유당은 112석을 얻는 데 그쳐 제2당으로 내려앉았다.

한편, 일본사회당은 좌파와 우파가 분열된 상태로 선거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석수를 늘리며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사회당 (좌파)는 89석, 일본사회당 (우파)는 67석을 각각 획득하여, 합계 156석으로 제1야당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그 외 일본공산당은 2석, 노동자농민당은 4석을 확보하였다. 무소속 당선자는 6명이었다.

총 투표율은 75.84%를 기록했다.[1]

정당득표수득표율의석 수의석 증감
일본민주당1353604336.57%185+74
자유당984945726.61%112–87
일본사회당 (좌파)568331215.35%89+17
일본사회당 (우파)512959313.86%67+1
일본공산당7331211.98%2+1
노동자농민당3576110.97%4–1
기타정당4966141.34%2+1
무소속12290813.32%6–5
합계37014832100%4670


4. 2. 투표율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투표율은 75.84%로, 지난 제26회 총선거 대비 1.62% 증가하였다.

성별 투표율은 다음과 같다.

  • 남성: 79.95% (지난 선거 대비 1.60% 증가)
  • 여성: 72.06% (지난 선거 대비 1.62% 증가)


투표 관련 상세 정보는 아래 표와 같다.

구분수치비율
유권자 수49,235,375명100.0%
투표자 수37,338,021명75.84%
기권자 수11,897,354명24.16%
유효표 수37,014,832표99.13% (투표자 대비)
무효표 수323,189표0.87% (투표자 대비)



출처: 총무성 통계국, 전후 주요 정당의 변천과 국회 내 세력의 추이

5. 선거의 영향

이 선거는 이후 일본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선거 결과는 주요 정당들의 합당과 재편으로 이어졌고, 이는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될 일본의 정치 구도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1]

5. 1. 보수 합당과 '55년 체제'

총선거 결과, 하토야마 이치로가 이끄는 일본민주당은 제1당이 되었으나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다. 반면 자유당은 의석수가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맞았다.[1] 한편, 좌파 사회당과 우파 사회당은 합쳐서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넘기며 약진했다. 이는 하토야마 총리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헌법 개정 발의를 저지할 수 있는 의석 수로, 개혁 진영에게는 중요한 성과였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좌우 사회당은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선거 결과 좌파의 우위가 확인되었다.

선거 후 3월 18일 소집된 제22특별국회에서 하토야마 이치로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어 제2차 하토야마 내각을 구성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내각은 여전히 소수 여당이었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국회 개회 직후 중의원 의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추천한 미키 무네키치가 자유당과 사회당의 연합으로 낙선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안정적인 보수 정권 유지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결국 1955년 11월 15일, 일본민주당과 자유당은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자민당)을 창당했다.[1] 같은 해, 선거 전 약속대로 좌파 사회당과 우파 사회당도 통합하여 일본사회당을 결성했다.

이로써 일본 정치에는 보수 여당인 자민당과 진보 야당인 일본사회당이 대립하는 이른바 55년 체제가 확립되었다. 자민당은 이후 1993년까지 무려 38년간 장기 집권하며 일본 정치의 주도권을 유지하게 된다.[1]

5. 2. 한일 관계에 미친 영향

6. 평가 및 의의

선거 결과, 민주당은 61석을 늘려 제1당으로 부상한 반면, 자유당은 선거 전보다 68석이나 줄어들며 당 수뇌부와 각료급 거물 의원 다수가 낙선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1][2]

한편, 좌파 사회당이 17석, 우파 사회당이 1석 의석을 늘리면서 개혁 진영의 의석이 전체 3분의 1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헌법 개정 발의를 저지할 수 있는 중요한 의석 확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1][2] 또한, 선거 후 재통합을 공약했던 좌우 사회당 내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좌파의 우위가 확정되었다.[1]

선거 후 3월 18일 소집된 제22특별국회에서 하토야마 이치로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어 제2차 하토야마 내각이 구성되었다.[1][2] 그러나 민주당은 제1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소수 여당이었기 때문에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별국회 개회 직후 중의원 의장 선출 과정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미키 타케키치 후보가 자유당과 좌우 사회당의 통합 후보 마스야니 슈지에게 패배한 것은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1] 결국 내정과 외교 모두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하토야마 내각의 상황은, 미키 타케키치 등을 중심으로 보수 세력의 통합, 즉 자유민주당 결성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1] 이는 향후 일본 정치의 장기적인 보수 우위 구도인 55년 체제 형성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참조

[1] 서적 Elections in Asia: A data handbook, Volume II 2001
[2] 웹사이트 NHKは何を伝えてきたか-NHKテレビ番組の50年 http://www.nhk.or.jp[...] 2011-04-10
[3] 뉴스 62年前はほぼ手作業!衆院選“開票速報” https://news.ntv.co.[...] 2018-03-03
[4] 서적 議会制度百年史
[5] 서적 国政選挙総覧 1947-2016
[6] 서적 国政選挙総覧 194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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