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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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온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세종대왕의 장인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개국 후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병조, 공조 의랑 등을 거쳐 태종 때 영의정에 올랐다. 세종 즉위 후 국구(國舅)로서 청천부원군에 봉해졌으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간 사이 역모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사후 문종 때 복권되었으며, 묘소는 수원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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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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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심온 |
한자 표기 | 沈溫 |
로마자 표기 | Sim On |
관직 | |
직위 | 영의정 |
임기 시작 | 1418년 10월 2일 |
임기 종료 | 1419년 1월 2일 |
이전 | 한상경 |
다음 | 유정현 |
생애 | |
출생 | 1375년 |
사망 | 1419년 1월 18일 (44세) |
개인 정보 | |
국적 | 조선 |
정보 | |
본관 | 청송 심씨 |
배우자 | 삼한국대부인 순흥 안씨 |
자녀 | 슬하 5남 6녀 |
딸 | 소헌왕후 |
아들 | 심준, 심회, 심결, 심장수(서자), 심장기(서자) |
부모 | 심덕부(부), 인천 문씨 부인(모) |
형제 | 심인봉(형), 심의귀(형), 심도생 또는 심계년(형), 심징(형), 심종(동생), 심정(동생) |
기타 정보 | |
묘소 위치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13-10 |
![]() | |
별칭 |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안효공(安孝公) |
학력 | 1390년 고려 말 문과 감시(監試)에 급제 |
2. 가계와 배경
심온(沈溫, 1375~1418)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청송 심씨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심덕부는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고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심온은 1386년(우왕 12년) 12세의 나이로 과거 소과에 급제하였다.[1][2] 심온은 민무휼과 이중, 삼중으로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심온의 아들 심준이 민무휼의 딸과 결혼하여 사돈 관계이며, 민무휼은 심온의 사위 세종의 외삼촌이다. 또한 민무휼의 아버지 민제의 사위인 태종과 노한이 모두 심온의 사돈이다.
2. 1.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및 설명 |
---|---|
아버지 | 심덕부 (沈德符, 1328~1401):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좌정승 청성백[4] |
어머니 | 인천 문씨 (仁川 門氏, ?~?): 낭장 문필대(門必大)의 딸[4] |
친어머니 | 인천 문씨 (仁川 門氏, ?~?): 감문위 낭장 문필대(門必大)의 딸 |
부인 | 삼한국대부인 순흥 안씨 (三韓國大夫人 順興 安氏, ?~1444): 좌의정 영돈녕부사 소의공 안천보(安天保, 1339~1425)의 딸 |
장인 | 안천보 (安天保, 1339~1425): 좌의정 영돈녕부사 소의공 |
장모 | 영주 김씨 (寧州 金氏, ?~?) |
형 | 심인봉 (沈仁鳳, ?~?): 좌군도총제 |
형수 | 평산 신씨 (平山 申氏, ?~?): 동지밀직 신아(申雅)의 딸, 동양군부인 |
형 | 심징 (沈澄, ?~1432): 인수부윤 |
형수 | 여산 송씨 (礪山 宋氏, ?~?): 전서 송의번(宋義蕃)의 딸 |
동생 | 심종 (沈悰, ?~1418): 청원군, 태조 이성계의 부마 |
제수 | 경선공주 (慶善公主, ?~?): 태조 이성계의 둘째딸 |
동생 | 심정 (沈泟, ?~1418): 중군동지총제 |
제수 | 개성 왕씨 (開城 王氏, ?~?): 영문하부사 정양부원군 귀의군 왕우(고려 마지막왕 공양왕의 동생)의 딸 |
장녀 | 소헌왕후 (昭憲王后 沈氏, 1395~1446) |
맏사위 | 세종 (世宗, 1397~1450) |
외손 | 정소공주 (1412~1424) |
외손 | 문종 (1414~1452) |
외증손 | 경혜공주 (1436~1474) |
외증손 | 단종 (1441~1457) |
외손 | 정의공주 (1415~1477) |
외손 | 세조 (1417~1468) |
외증손 | 덕종 (1438~1457) |
외고손 | 월산대군 (1454~1489) |
외고손 | 명숙공주 (1455?~1482) |
외고손 | 성종 (1457~1495) |
외증손 | 의숙공주 (1442?~1477) |
외증손 | 예종 (1450~1469) |
외고손 | 인성대군 (1461~1463) |
외고손 | 현숙공주 (1464~1502) |
외고손 | 제안대군 (1466~1525) |
외손 | 안평대군 (1418~1453) |
외손 | 임영대군 (1420~1469) |
외손 | 광평대군 (1425~1444) |
외손 | 금성대군 (1426~1457) |
외손 | 평원대군 (1427~1445) |
외손 | 영응대군 (1434~1467) |
차녀 | 청송 심씨 (沈氏, 1397~?) |
사위 | 강석덕 (姜碩德, 1395~1459): 진양부원군, 고려 마지막왕 공양왕의 사위 진원군 강회계(姜淮季)의 조카, 진주 강씨 |
외손 | 강희안 (1417~1464) |
외손 | 강희맹 (1424~1483) |
외증손 | 강귀손 (1442~1498) |
삼녀 | 청송 심씨 (沈氏, 1399~?) |
사위 | 노물재 (盧物栽, 1396~1446): 동지돈녕부사, 태종의 장인 민제의 사위 우의정 공숙공 노한(盧閈, 1376~1443)의 아들, 교하 노씨 |
외손 | 노사신 (1427~1498):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의 15대조 |
사녀 | 청송 심씨 (沈氏, 1401~?) |
사위 | 류자해 (柳子偕, ?~?): 부지돈령부사, 진주 류씨 |
외손자 | 유양 (柳壤, ?~?) |
외증손 | 유순정 (1459~1512): 중종반정 정국1등공신 |
적장남 | 심준 (沈濬, 1405~1448): 영중추원사 |
자부 | 여흥 민씨 (驪興 閔氏, 1403~?): 여원군 민무휼 (閔無恤, 1373~1416)의 딸 |
오녀 | 청송 심씨 (沈氏, 1406~1466) |
사위 | 이숭지 (李崇之, ?~1462): 전주부윤, 전의 이씨 |
서장남 | 심장수 (沈長壽, 1408~?) |
서차남 | 심장기 (沈長己, 1409~?) |
육녀 | 청송 심씨 (沈氏, 1413~?) |
사위 | 박거소 (朴去疎, 1413~?): 부지돈녕부사, 순천 박씨 |
외손자 | 박중선 (1435~1481) |
외증손 | 박원종 (1467~1510): 중종반정 정국1등공신 |
적차남 | 심회 (沈澮, 1418~1493): 영의정 청송부원군 공숙공 |
자부 | 원주 김씨 (原州 金氏, ?~?): 판중추원사 대경공 김연지(金連枝, 1396~1471)의 딸 |
적삼남 | 심결 (沈決, 1419~1470): 영중추원사 정이공 |
자부 | 거창 신씨 (居昌 愼氏, ?~?): 감사 신기(愼幾)의 딸 |
심온(沈溫)은 고려 말 청송 심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심덕부는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고, 이후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심온은 12세 (1386년)에 과거 소과에 급제했으나,[1][2] 본격적인 관직 생활은 조선 건국 이후부터 시작했다.
심온은 민무휼과 이중, 삼중 사돈관계를 형성한다.[4] 심안의는 심징의 증손자이고, 심익현은 심징의 10대손이다. 숙용 심씨는 심정의 손녀이다. 심강은 심회의 4대손, 인순왕후는 심회의 5대손, 심호는 심회의 10대손, 단의왕후는 심회의 11대손, 심능건은 심회의 14대손이다.
3. 생애
1411년, 태종 때 함경도 감사(監司)로 임명되었다. 심온은 공조판서, 호조판서,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정종의 왕비 간택 때, 자신의 딸을 추천하여 왕비로 간택되었다.
1418년 정종이 세종으로 즉위하자, 심온의 딸 심씨는 소헌왕후가 되었고, 심온은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현재 심온의 묘소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 13-10번지에 있으며, 신위는 불천위로 모셔져 제사를 이어오고 있다.
3. 1. 관직 생활
태조 1년(1392년)에 병조와 공조 의랑(정랑)을 지냈다.[1][2] 정종 때에는 대호군, 태종 7년(1407년)에는 승정원 동부대언에 올랐고, 이후 좌부대언, 의흥삼군부 동지총제 등을 지냈다. 태종 11년(1411년) 풍해도 관찰사, 12년(1412년) 참지의정부사, 13년(1413년) 대사헌으로서 육조직계제를 건의하였다. 이후 노비변정도감 제조, 의금부 제조 등을 거쳤다.
태종 14년(1414년) 형조판서, 호조판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京兆尹), 의정부 참찬, 의흥삼군부 좌군도총제, 이조판서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후 공조판서(工判), 이조판서(吏判), 의정부 참찬, 의정부 찬성 등을 지냈다.
세종 원년(1418년) 9월 3일 영의정에 올랐으며,[6] 그해 음력 9월에 세종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명으로 가는 사은사(謝恩使)의 수장(사은주문사)에 임명되었다.
3. 2. 심온의 옥사
조선 세종 원년(1418년) 음력 9월 3일, 심온은 사위인 세종이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영의정에 올랐다.[6] 그 해 음력 9월, 심온은 세종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명나라로 가는 사은사(謝恩使)의 수장(사은주문사)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때, 태종에 대한 불경죄를 이유로 심온의 아우 심정 등이 체포되었다.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심온이 명나라에 있는 동안 좌의정 박은, 영돈녕부사 유정현 등의 무고로 심정이 처형당했다.[6]
심온이 좌의정에 임명되었을 때, 우의정은 반남 박씨 박은이었다.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였고, 잦은 분쟁이 있었다.
한편,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상당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중요한 결정은 그의 승인을 필요로 했다. 조선 건국 이후 태종은 정도전 등의 사대부들과 새 왕조의 통치를 두고 자주 충돌했다. 태종은 왕이 왕국의 유일한 권위자여야 한다고 믿고 강력한 세력가들의 영향력을 억제하려 했다.
태종이 상왕으로서 군권을 유지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강상인 등 여러 관리들이 세종에게 직접 군사 관련 사항을 보고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태종은 그의 권위에 도전한 병조 관리들을 징계했다. 이 사건은 심온이 명나라 사신으로 출발하기로 예정된 약 10일 전에 발생했다.
그 여파로 강상인과 박세우 등 병조의 많은 관리들이 투옥되었다. 태종은 적극적으로 사건 처리에 참여했다. 며칠간의 심문 끝에 강상인은 건국 공신의 지위 때문에 사면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병조는 모든 군사 관련 사항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태종에게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헌부가 박세우와 강상인에게 엄중한 처벌을 원했지만, 강상인의 강등으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약 두 달 후, 태종은 사건을 재개하고 관련자들을 다시 소환했다. 심온의 형인 심정 등 새로운 용의자들이 지목되었다. 심온은 배후 조종자로 고발되었다. 박세우의 자백에 따르면, 심온, 강상인 등은 군권 분할이 불가능하다고 논의했고, 그 결과 세종에게 직접 보고하게 되었다.[3]
심온은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후 수원으로 이감되었다. 수원에서 그는 고문을 받고 죄를 자백했으며, 음력 12월 23일 독약을 마시고 죽임을 당했다.[6]
4. 사후
심온은 조작된 죄목으로 처형되었고, 이후 박은이 최고 국무총리에 올랐다. 심온의 가족 대부분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왕비 자리에서 폐위될 위기에 처했으나, 세종과 태종의 지지로 위기를 넘겼다.[1]
태종 재위 기간 심온의 이름은 금기시되었고, 세종도 심온의 명예를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종 즉위 후 심온은 죄를 용서받고 최고 국무총리로 복권되었으며, 안효공(안효공|安孝公한국어)으로 추봉되었다.[1]
심온의 가족들은 계속 번성하였고, 둘째 아들 심회는 세조 때 최고 국무총리를 지냈다.[1]
5. 논란
심온 사건이 발생한 지 7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심씨 가문과 박씨 가문은 화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씨 가문은 박은이 역모 사건에 대한 누명을 씌운 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1]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박은이 태종의 왕권 전체주의를 위한 계획에서 단순한 도구였을 뿐이라는 데 동의한다.[1] 보수적인 군주였던 태종은 왕비의 가문이 조선 왕조에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1] 고려 시대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태종은 권력을 다른 비왕족 가문에 넘겨주는 위험성을 믿게 되었다.[1] 심온 가문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그 가문의 존경받는 혈통(심씨 가문은 주나라 문왕의 직계 후손 중 하나이다)을 고려했을 때, 태종은 세종의 미래 통치를 위해 심온을 제거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1]
6. 대중문화 속 심온
심온은 여러 드라마에서 다양한 배우들이 연기했다.
- 2008년 KBS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최상훈이 심온 역을 맡았다.[4]
-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한인수가 심온 역을 맡았다.[4]
- 2015년 MBC 드라마 퐁당퐁당 LOVE에서는 정규수가 심온 역을 맡았다.[4]
6. 1. 드라마
참조
[1]
웹사이트
심온
https://terms.naver.[...]
2019-05-24
[2]
웹사이트
세종의 장인, 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
http://contents.hist[...]
우리역사넷
[3]
웹사이트
Kang et al. Are Interrogated And Shim On Is Identified As Ringleader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4]
간행물
세종실록 권2, 세종 즉위년(1418년) 12월 25일(경자) 2번째 기사
[5]
문서
세종대왕의 처남 심준이 세종대왕의 외삼촌 민무휼의 딸과 결혼하여 이중 인척관계가 되었다.
[6]
간행물
세종실록 즉위년(1418) 9월 3일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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