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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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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교 사회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시기에 서구 교회에서 등장했으며,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진보신학의 역할을 했다. 주요 사상으로는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제시, 사회적 소외 계층과 빈곤 계층 문제 해결을 위한 신학적 모색, 개인의 자유와 시장주의 경쟁을 인정하면서도 부의 독점을 견제, 나눔과 참여를 통한 평등과 부의 균형적 분배 등을 추구한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회주의를 비판해 왔으나, 사회 문제에 대한 가톨릭 논의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사회, 특히 노동자 계급의 문제와 기독교 신앙과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하는 신학 운동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무정부주의, 기독교 공산주의, 기독민주주의, 해방 신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비판과 논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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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회주의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종류사회주의 철학
기반성경, 교회 가르침, 성례
핵심 개념형제애, 협력, 평등, 민주주의
사회주의 목표협력과 집단주의, 평등, 민주주의, 평화 사회 건설
주요 주장자본주의의 결함 지적 및 사회주의 필요성 강조
변화 방법대중 설득
사회주의 정부 수립
민주적 방법
혁명
특징기독교 신학을 기반으로 사회주의 개념 정의
핵심 개념 근거하느님의 보편적 아버지 개념
다른 사회주의와의 차이점기독교 신학에 기반한 개념 정립
용어 창시자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
운동 시작 시기1848년
주요 인물존 말콤 러들로, 찰스 킹슬리
관련 잡지기독교 사회주의자
역사적 배경
등장 시기1830년대와 1840년대
사회적 문제광범위한 빈곤
아동 노동의 고통
경제적 억압
주요 인물 및 단체
주요 인물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
존 말콤 러들로
찰스 킹슬리
윌리엄 모리스
프레더릭 제임스 퍼니벌
프랜시스 벨러미
특징
주요 특징성경교회 가르침에 기반
민주적인 방법으로 혁명 추구
협력, 평등, 민주주의 사회 지향
자본주의의 결함과 사회주의 필요성 설파
관련 정보
관련 운동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관련 저널기독교 사회주의자

2. 역사

19세기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많은 기독교 교파들이 부르주아 계층과 타협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일부 기독교인들은 초기부터 자본주의의 모순, 특히 산업혁명 이후 공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에 주목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F. D. 모리스, J. M. 라드로우, 찰스 킹즐리, 토마스 휴즈 등이 19세기 중반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성육신 신학에 기반하여 노동자 교육, 협동조합 운동 등을 펼쳤으며, 이는 이후 영국 성공회 내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178] (자세한 내용은 #19세기 이후 참조)

독일에서는 19세기에 빌헬름 에마누엘 폰 케텔러 주교 등이 기독교 사회 운동을 이끌었다.[179] 이 운동은 반유대주의 성향으로 알려진 빈 시장 카를 뢰거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아돌프 히틀러가 뢰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중에서는 칼 바르트와 파울 틸리히가 사회주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틸리히는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나치 좌파 오토 슈트라서의 아버지 페터 슈트라서는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교황 비오 9세는 1864년 『오류표』를 통해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을 오류로 규정했다. 그러나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레룸 노바룸』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인정하고 국가의 노동 계급 보호 의무와 노동조합 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주의가 계급 간 증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180] 프랑스에서는 socialisme catholique|사회적 가톨릭주의프랑스어 또는 catholicisme social|사회 가톨릭주의프랑스어라는 흐름이 있었으나, 주류는 반혁명, 반자본주의적 입장을 가진 왕당파 인물들이었다.[180] 당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의 활동을 가리키는 christianisme social|사회적 기독교프랑스어라는 용어도 있었다.[180] 가톨릭 내 자유주의적 흐름(예: 펠리시테 드 라므네)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1832년 회칙 『미라리 보스』에서 파문당하는 등 배척받았다.[179]

미국에서는 도로시 데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코넬 웨스트 등이 기독교 사회주의의 주요 인물로 꼽힌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초기에는 사회 복음과 미국 사회당 활동에 참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기독교 현실주의 입장에서 반공주의로 선회했다.

그 외 캐나다의 토미 더글러스,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에콰도르라파엘 코레아 등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아베 이소, 무라이 토모지, 가와카미 키요시, 카가와 토요히코, 나카지마 시게루, 타나카 하지메, 이시카와 사무로, 쿠즈미 후사코, 카타야마 테츠, 가와카미 조타로 등 다수의 인물들이 기독교 사회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현재 기독교 사회주의를 포함한 종교 사회주의의 국제적 연대 기구로 International League of Religious Socialists|종교 사회주의 국제 연맹영어이 있으며, 이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협력 단체이다.

2. 1. 성서적 기원

감리교 신학자 이덕주 선생은 기독교 사회주의의 성서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마태복음서의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포도원 주인은 일찍 온 노동자나 늦게 온 노동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지급했다. 일찍 온 이들이 불공평하다고 항의했지만, 주인은 약속된 정당한 임금을 지급했다고 답한다. 이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노동 시간과 관계없이 생계를 보장하려 한 배려로 해석될 수 있다.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부유한 신자들이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가난한 신자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성만찬을 진행하여, 노동 후 늦게 도착한 가난한 신자들이 성만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는 가난한 교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기독교 사회주의의 기초가 될 만한 요소들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련 구절로는 신명기 15:1-5, 에스겔 18:7, 이사야 58:2-7, 야고보서 2:14, 야고보서 5:1-6, 욥기 31:16-25, 28, 요한복음 11:10-11, 레위기 25:35-38, 누가복음 4:18, 마태복음 6:24, 마태복음 19:23-24, 마태복음 25:40-46, 잠언 28:3-28, 잠언 31:9 등이 언급된다.[13]

구약성서는 빈곤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빈곤을 악인에 대한 심판으로, 부유함을 선인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잠언 13장 25절에는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과 연대를 강조하는 가르침이 많다. 특히 모세 율법은 이웃을 동등하게 대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너그러울 것을 명한다.

> 네 이웃을 압박하지 말며 …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레위기 19:13, 18)

>

>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신들의 하나님이시요 주들의 주시요 크고 강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시라 그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변호하시며 객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양식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도 객을 사랑하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신명기 10:17–19)

>

> 밭에서 추수할 때에 네 밭에 떨어진 것을 다 거두지 말 것이며 … 감람나무 가지를 다시 흔들지 말 것이며 … 포도원에서 포도를 거둘 때에 그 남은 것을 다 따지 말 것이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위하여 남겨 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던 것을 기억할지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명하노라. (신명기 24:19–22)

일부 시편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 정의에 대한 호소가 담겨 있다.

> 가난한 자와 고아에게 정의를 베풀고 괴롭힘을 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의 권리를 옹호하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구원하고 악인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라. (시편 82편(81편): 3, 4)

>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그는 자유롭게 나누어 주며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는 영원히 머물고 그의 뿔은 영화롭게 들리리라. (시편 112편(111편): 1, 9)

예언자 아모스는 정의와 공의를 강조하며,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에 대한 억압 및 불의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 이사야서의 초기 부분을 저술한 것으로 여겨지는 예언자 이사야 역시 가난한 이들과 관련된 정의와 공의의 주제를 이어받아, 이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제시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자들을 비판했다.

> 너희가 기도를 많이 해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의 손이 피로 가득함이라… 악을 그치고 선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억압 당하는 자를 돕고 고아를 위하여 변호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론하라. (이사야 1:15–17)

구약성경의 외경 또는 제2경전 중 하나인 집회서는 부의 추구를 경계한다.

> 금을 사랑하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할 것이요 재물을 추구하는 자는 그것에 미혹되리라 금 때문에 멸망한 자가 많으니 그들의 멸망은 그들의 앞에 임하였느니라 그것을 숭배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며 모든 어리석은 자는 그것에 사로잡히리라. (집회서 31: 5–7)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Giovanni Paolo Pannini)의 ''예수,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쫓아내다''(1750). 성전에서 상행위를 하던 이들을 내쫓는 예수의 모습은 부당한 경제 활동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특히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과 같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14] 사도행전 4장 32절은 예루살렘 초기 교회의 모습을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공동체적 소유와 나눔의 방식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기독교인들의 생존에 기여했으며, 수 세기 동안 중요하게 여겨졌다.[15] 이는 봉건제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도 평가된다. 이후 수도원 운동 외에는 교회사에서 점차 희미해졌으나, 19세기 이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15] 기독교 사회주의는 영국 노동당 창당 이념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으며, 그 뿌리는 14세기 왓 타일러(Wat Tyler)와 존 볼(John Ball)의 농민 봉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기도 한다.[16]

신약 성서에서 예수는 자신을 굶주린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와 동일시한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최후의 심판 비유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소이자 기독교 사회주의의 중요한 근거로 간주된다. 또한 누가복음 10장 25-37절의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어지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이들까지도 포함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시 사마리아인유대인은 역사적, 종교적 이유로 깊은 갈등 관계에 있었다.

누가복음 6장 20-21절에서 예수는 평지 설교를 통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선언한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야고보서에서 부자들을 향해 매우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사회 정의를 역설하는데, 이 역시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인용하는 부분이다.

> 이제 너희 부자들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에게 임할 고난이 이르렀음이로다 너희 재물이 썩었고 너희 옷이 해졌으며 너희 금과 은이 녹이 슬었으니 그 녹이 너희의 증거가 되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품삯을 받은 일꾼들의 삯이 너희에게 부르짖고 그 부르짖음이 만군의 주의 귀에 들린지라 너희가 세상에서 사치와 방탕으로 살았고 너희가 살륙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웠도다 (야고보서 5:1-6)

신약 시대 이후에도 많은 기독교 공동체들이 재산 공유, 재분배, 공동체적 생활 양식을 실천했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후터리트의 공동체 경제 체제는 사도행전에 묘사된 초기 교회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사도행전 2:44-45)

>

>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사도행전 4:32)

>

> 그 중에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는 토지나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그들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니라 (사도행전 4:34-35)

2. 2. 교부 시대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우스는 동방 수도승 출신으로 카이사레아의 주교가 된 교부이다. 그는 교회와 수도원 주변에 여관, 구빈원, 전염병 환자를 위한 병원 등을 포함한 복합 시설을 세웠는데, 이는 후에 바실레이아스라고 불렸다. 368년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바실리우스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무관심한 부유층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부자 청년의 비유에 대한 설교에서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탐욕스러운 자는 누구인가? 풍족함으로도 만족하지 않는 자이다. 사취하는 자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을 빼앗는 자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누어 주도록 주어진 것을 사적으로 소유할 때 탐욕스럽지 않고, 사취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옷을 벗기면 우리는 그를 도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벌거벗은 자를 입히지 않는 사람은 그와 같은 이름을 받지 않아야 하는가? 너희 창고에 있는 빵은 굶주린 자의 것이며, 너희 옷장에 있는 겉옷은 벌거벗은 자의 것이며, 너희가 썩히도록 내버려 둔 신발은 맨발의 자의 것이며, 너희 금고에 있는 돈은 빈곤한 자의 것이다. 너희가 도울 수 있으면서도 돕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해 너희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역시 부유층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부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잘못 사용하고 탐욕을 부리는 것을 비판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부유한 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한다고 자주 비난받는다. 그렇다, 부유한 자들이 끊임없이 가난한 자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공격하는 것은 부유한 자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부를 악용하는 자들이다. 나는 내가 비난하는 자들이 부유한 자들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자들이라고 끊임없이 지적한다. 부는 한 가지이고, 탐욕은 또 다른 것이다. 구별하는 법을 배우라."

2. 3. 중세 및 근대 초기

잉글랜드 내전과 잉글랜드 연방(1642년~1660년) 시기에는 디거들이 기독교에 기반한 정치 및 경제 이론을 주장했다. 이는 현대 사회주의,[17][18] 특히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적 경향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19][20][21] 일부 학자들은 뮌스터 농민전쟁 당시에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22]

2. 4. 19세기 이후

서구 교회사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과학적 사회주의 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 사회주의가 등장했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다른 사회주의 운동과의 대화와 협력을 추구했다. 이는 개인 영혼 구원을 중시하는 보수 신학에 맞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진보 신학의 역할을 했다.[183] 리처드 킹슬리, 존 말콤 러들로우(John Malcolm Ludlow) 등 성공회 사제들이 사회주의의 기독교화를 주장하며 운동을 이끌었다.[184]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근대 노동계급 사회주의 운동이 대체로 세속적이고 반종교적 이념을 발전시켰다고 보았지만, E. P. 톰슨과 스티븐 요 같은 학자들은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영국에서 윤리적 사회주의가 노동 운동을 지배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노동당 창립자 중 한 명인 케어 하디는 "신약에서 사회주의를 배웠다"고 말하며 자신의 주요 영감을 그곳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회주의가 예수의 가르침을 구현하며, 교회가 부와 권력에 물들어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게 만든 맘몬으로부터 교회를 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점에서 사회주의는 반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자본주의와 현상 유지를 지지하려는 세력에 반대하는 것이었다.[23] 아일랜드에서는 제임스 코놀리가 기독교 사회주의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24] 그는 기독교 사회주의 저널인 'Labour Prophet'에 기고하며[25][26] "종교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이며, "조직된 사회주의 노동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타파할 때, 그것은 신의 교회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더럽히는 불경한 해충들로부터 신앙을 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23]

프랑스에서는 필립 뷔셰가 1820년대와 1830년대에 자신의 철학을 기독교 사회주의로 정의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존 러스킨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주의적 관점이 나타났다. 에드워드 R. 노먼은 19세기 중반 기독교 사회주의의 지적 원천으로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토마스 칼라일, 토마스 아놀드를 꼽았다.[27]

영국에서는 F. D. 모리스, 존 말콤 러들로우, 찰스 킹즐리, 토마스 휴즈 등이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848년 파리 2월 혁명 이후, 이들은 급진적 혁명 대신 "사회주의의 기독교화"를 내세우며 현세 긍정적인 성육신 신학에 기반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1848년에는 계몽 신문 '국민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the People)를 발행했고, 노동자 교육을 위해 야간 노동자 학교를 설립했다. 1850년에는 저임금 재봉사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재봉사 협회(Working Tailors' Association)를, 이후 노동자 생활 증진 협회(the Society for Promoting Working Men's Association)를 결성하여 모리스가 회장을 맡았다. 또한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소책자를 발행했다. 1854년에는 노동자 학교(Working Men's College)를 설립하고 모리스가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지식 전달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기쁨과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1860년대 들어 운동 내부에 의견 차이가 발생하며 급진적 행동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런던 이스트 엔드 베스널 그린의 부목사 스튜어트 헤드람(Stewart Headlam)은 성 마태 길드를 설립하여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급진적 행동을 추구했다. 반면 모리스는 인간 내면 성찰과 교육에 집중했고, 라드로우는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 개혁을 시도하여 국제 협동조합 운동의 기초를 마련했다.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은 잠시 쇠퇴했으나, 1880년대 후반 브룩 포스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찰스 고어 등이 기독교 사회 연합을 결성하며 부활했다. 1907년에는 더욱 실천적인 교회 사회주의 연맹(Church Socialist League)이 발족했다. 20세기 초 영국 성공회 성직자 다수가 사회주의 운동에 공감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고, 이는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템플과 마이클 램지 등에 의해 성공회 내에서 확고한 사상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178]

영향력 있는 빅토리아 시대 미술 비평가 존 러스킨은 ''가련한 이들에게''(Unto This Last, 1860)에서 사회 정의 이론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러스킨 자신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정부 비용으로 설립된 청소년 교육 학교."
  • 이러한 학교와 연계하여 정부가 "모든 생필품의 생산 및 판매를 위한 공장과 작업장" 설립.
  • 모든 실업자에게 필요하다면 일자리를 얻도록 교육하거나 강제로 일하도록 함.
  • "노인과 빈곤층에게 편안한 집 제공."


노먼은 러스킨이 19세기적 의미의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노동자 대학(Working Men's College)을 통해 기독교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했으며, 특히 화가 윌리엄 모리스를 포함한 후대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러스킨의 영향을 받았다.[32] 모리스는 1884년 12월 설립된 사회주의 연맹(Socialist League)의 지도자였다.[33] 페이비언 협회는 1884년에 설립되었고, 비어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 등이 주요 회원이었다. 페이비언들은 블룸즈베리 그룹에 영향을 미쳤고 초기 영국 노동당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34]

사회주의 만화가 아트 영(Art Young)의 1917년 정치 만화, ''더 매시즈(The Masses)''


미국에도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이 있다.[28][29] 특히 유타주에서는 20세기 초 기독교 사회주의가 번성하며 급진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유타주 기독교 사회주의는 전국적인 운동의 일부였으며, 유타주의 미국 감리교회 주교 프랭클린 스펜서 스폴딩과 미국 서부 합동감리교회 목사 마이런 W. 리드 같은 목회자들이 산악 주 광부들을 위해 활동했다.[30][31] 이후 도로시 데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코넬 웨스트 등이 미국의 기독교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사회 복음을 설파하고 미국 사회당을 이끌었으나, 전후에는 기독교 현실주의 입장에서 반공주의로 전환했다.

독일에서는 19세기에 빌헬름 에마누엘 폰 케텔러 등의 기독교 사회 운동이 있었다.[179]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진 빈 시장이자 오스트리아 기독교사회당의 카를 뢰거 역시 이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뢰거에게 영향을 받았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중에서는 칼 바르트와 파울 틸리히가 사회주의 사상을 심화시켰다. 틸리히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치 좌파 오토 슈트라서의 아버지 페터 슈트라서는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 비오 9세가 1864년 『오류표』를 통해 신앙의 자유, 자유주의 신학,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을 오류로 규정했다. 그러나 1891년 레오 13세는 회칙 『레룸 노바룸』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사회주의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180] 회칙은 국가가 분배 정의를 실현하여 노동 계급을 보호하고, 노동 조합을 통해 빈곤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80] 프랑스 가톨릭에서는 19세기 후반 '사회적 가톨릭주의'(socialisme catholique프랑스어)라는 용어가 있었으나,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 '사회 가톨릭주의'(catholicisme social프랑스어)로 바뀌었다.[180] 당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의 활동을 가리키는 '사회적 기독교'(christianisme social프랑스어)라는 용어도 있었다.[180] 가톨릭과 자유주의의 협력을 주장한 펠리시테 드 라므네에 대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2년 회칙 『미라리 보스』에서 파문을 선고했다.[179] 프랑스 사회 가톨릭주의의 주류는 왕당파인 알베르 드망, 라투르 뒤팽 등으로 반혁명, 반개인주의, 반자본주의 입장을 취했다.[180]
기독교 무정부주의무정부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조직 종교에 회의적이거나 반대했지만,[38] 일부는 국가 숭배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는 등 무정부주의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제시했다.[39] 기독교 무정부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가 기독교복음에 내재되어 있으며, 유일한 권위는 예수의 가르침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위라고 믿는다.[40][41] 따라서 인간 정부의 최고 권위를 거부하며, 국가가 폭력적이고 기만적이며 우상화될 때 이를 비판한다.[42]

기독교 무정부주의의 핵심은 폭력 거부이며, 레프 톨스토이의 ''신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가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된다. 톨스토이는 국가와 결탁한 러시아 정교회복음서, 특히 산상수훈에 담긴 예수의 진정한 메시지와 분리하고자 했다. 그는 기독교 평화주의 입장에서 모든 전쟁과 이를 지지하는 교회는 비폭력과 저항 거부라는 기독교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기독교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는 톨스토이 자신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1894년 책 출판 이후 비평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43][44]

기독교 무정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인간 관계는 분권화된 권위, 섬기는 리더십, 보편적 연민으로 특징지어져야 한다고 본다.[45] 대부분은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이며,[46] 산상수훈을 사상적 기초로 삼는다.[47] 톨스토이의 ''신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현대 기독교 무정부주의의 핵심 텍스트로 여겨진다.[48]

비판은 기독교인과 세속 무정부주의자 양측에서 제기된다. 기독교인들은 종종 로마서 13장을 국가 복종의 근거로 제시하며,[49] 세속 무정부주의자들은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는 구호처럼 어떤 권위도 부정한다.[50] 기독교 무정부주의자들은 로마서 13장이 문맥에서 벗어나게 인용되었다고 보며, 요한계시록 13장과 이사야 13장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1][52]
한국에서의 기독교 사회주의한국교회사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에 일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당시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며 기독교를 비판했다. 이에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존 기독교 사회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사회주의와 기독교 간의 대화와 공존을 모색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한계와 사회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기독교계 내부의 보수성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소수 기독교인들의 실천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갈등과 대결 대신 대화와 조화를 추구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는다.[182]
기타 국가 및 국제 조직캐나다에는 토미 더글러스, 브라질에는 레오나르도 보프, 에콰도르에는 라파엘 코레아 등이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아베 이소, 무라이 토모지, 가와카미 키요시, 카가와 토요히코, 나카지마 시게루, 타나카 하지메, 이시카와 사무로, 쿠즈미 후사코, 카타야마 테츠, 가와카미 조타로 등이 있다.

현재 기독교 사회주의를 포함한 종교 사회주의 국제 기구로는 International League of Religious Socialists|종교 사회주의 국제 연맹영어이 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협력 기구이다.

2. 5. 한국에서의 기독교 사회주의

한국 교회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독교 사회주의가 주장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하여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시각으로 기독교계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존 기독교 사회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사회주의와 기독교계 간의 대화와 공존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한계와 사회주의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보수적인 태도로 인해, 기독교 사회주의는 소수 기독교인들의 실천으로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움직임은 갈등과 대결이 아닌 대화와 조화를 추구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182]

3. 주요 사상

감리교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역사신학)에 따르면, 기독교 사회주의는 빈부의 격차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하며, 다음과 같은 주요 신념을 가진다.[181]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19장 18절 말씀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서 7장 12절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행동 원리로 삼는다.
  • 빈부의 격차 문제와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소외 계층 및 빈곤 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적 탐구와 선교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 경제적 소외와 빈곤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한다. 따라서 그 해결책 역시 개인의 의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심과 사회적 책임의 틀 안에서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
  • 창의적인 생산 활동을 촉진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에 기반한 시장 경쟁의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와 경쟁이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견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 사회 구성원 간의 나눔과 참여를 통해 인간 평등을 실현하고 부의 균형 있는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생산과 분배에 필요한 물질적 기반이나 수단이 특정 개인, 국가, 혹은 집단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경계한다.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나님(하느님)에게 있으며, 인간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 유물론유심론(관념론)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적인 각성과 훈련을 통해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이룬 사람들이 생산과 분배의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인류 평화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감리교 신학자 이덕주 교수는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의 성서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마태복음서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 포도원 주인은 노동 시간에 관계없이 모든 품꾼에게 동일하게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지급했다. 이는 일찍 온 품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를 배려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주인은 약속한 정당한 임금을 지불했음을 강조하며 평등한 분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 성 바울의 고린도 교회 비판: 고린도 교회 내 부유한 신자들이 생계를 위해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가난한 신자들을 배려하지 않아, 이들이 성만찬과 같은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을 비판했다. 바울은 이러한 행위가 가난한 교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공동체 내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강조했다.

4. 가톨릭 사회주의 (사회 가톨릭주의)

비오 9세, 레오 13세, 비오 10세, 베네딕토 15세, 비오 11세, 비오 12세,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등 여러 교황은 공산주의사회주의를 비판했다.[78][79] 특히 레오 13세와 비오 11세는 규제되지 않은 자본주의 역시 비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두 이념을 모두 비판하면서도, 민주적 사회주의와는 구분하며 긍정적인 측면을 언급하기도 했다.[121] 프란치스코 교황의 견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 또는 공산주의적 시각을 가졌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엇갈린다.[78][79]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은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제기된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부인하며[80] "오해"라고 밝혔다. 2016년 그는 마르크스주의 이념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처럼]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81][82]

교황 비오 9세는 1849년 저서 《Nostis et nobiscum》와 1864년 저서 《Quanta cura》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악한 이론", "타락한 가르침", "치명적인 오류"로 규정하며 비판했다.[83][84] 교황 레오 13세는 1878년 교황 회칙 《Quod apostolici muneris》에서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 지배로 이어지며, 신 대신 국가에 최고의 권력을 부여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복음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고 지적했다.[85] 학자 캐서린 루스 파칼룩은 비오 9세부터 비오 12세까지의 시기(레오 시대) 동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교황 문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으며, 교회가 이들과의 대조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고 입장을 발전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86]

1891년 회칙 《새로운 것들》(Rerum novarum)에서 교황 레오 13세는 사회주의가 자연 정의에 반하고 가정을 파괴한다고 비판했지만[87][88], 동시에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과 노동자의 권리 옹호,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89] 역사학자 이먼 더피에 따르면, 이 회칙은 당시 보수적이었던 바티칸이 노동 계급의 불만을 지지하고 19세기 사회 현실을 논의한 첫 주요 성명으로,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89] 이 회칙은 이후 모든 가톨릭의 사회 문제 논의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가톨릭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회칙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부르기도 했으며, 아일랜드미국의 노동 운동 및 성 콜럼바누스 기사단 등은 그 기원을 이 회칙에 두고 있다.[90][91] 노동 조합 및 협동조합 결성과 참여 같은 결사의 자유는 가톨릭 사회 교리의 핵심으로 여겨진다.[93][94][95][91][96][97] 아일랜드 사회주의의 상징인 별쟁이 쟁기는 가톨릭교회를 참조하여 디자인되었다.[92] 1901년 레오 13세는 회칙 《공동선에 관하여(Graves de communi re)》에서 사회주의를 "비참의 수확"이라고 언급했다.[98]

이후 교황 비오 10세는 1910년 사도적 서한 《우리의 사도적 임무(Notre charge apostolique)》에서 사회주의를 비판했고,[99]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1914년 회칙 《사도들의 복된 원천으로부터(Ad beatissimi Apostolorum)》에서 교회의 반사회주의 입장을 재확인했다.[100] 교황 비오 11세는 1931년 회칙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에서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모두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101] 그는 진정한 사회주의는 전체주의 공산주의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며, 기독교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와 연합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102] 특히 "종교적 사회주의, 기독교 사회주의는 모순되는 용어입니다. 누구도 동시에 좋은 가톨릭 신자이자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했다.[103]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1년 가톨릭 신자가 영국 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밝혔다.[106] 비오 11세 시대에는 분배주의를 주장한 미국의 도로시 데이나 정치적 신념으로 정직된 아일랜드의 사제 마이클 오플라나간과 같은 가톨릭 사회주의자들이 활동했다.[104][105] 비오 11세는 1937년 회칙 《구세주의》(Divini Redemptoris)에서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오류와 궤변으로 가득 찬 체계"이며 "정의, 평등, 박애의 가짜 이상"을 가진 것으로 규정하며 거부했다.[107][108] 교황 비오 12세는 1949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법령을 발표하여 공산주의 교리를 주장하거나 지지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파문했다.[109] 그는 1952년 사회주의에 대해 "교회는 이 싸움을 끝까지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110]

교황 요한 23세 시대의 성부는 1959년 가톨릭 신자가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111][112] 요한 23세는 1961년 회칙 《어머니이시며 스승이신 교회》(Mater et magistra)에서 사회주의가 물질적 안녕 외의 목표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 자유를 제한하며 사회적 권위의 진정한 개념을 무시한다고 비판하며 교회의 반사회주의 입장을 재확인했다.[113]

"비오 11세는 공산주의와 기독교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을 더욱 강조하고, 어떤 가톨릭 신자도 온건한 사회주의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가 시간에 얽매인 인간 사회의 교리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적 안녕 이외의 어떤 객관적인 목표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만을 목표로 하는 사회 조직 형태를 제안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동시에 사회적 권위의 진정한 개념을 무시합니다."[113]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가톨릭 좌파 개방의 일환으로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이 이탈리아 사회당과 협력하는 것을 도왔다.[114]

칠레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시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를 지지했다.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의 모임인 "사회주의를 위한 기독교인들(Christians for Socialism)"이라는 단체는 아옌데를 지지하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가톨릭 가치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1972년 4월, 400명 이상의 사제와 수녀가 참석한 이 단체의 회의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공식적인 가톨릭 지지를 촉구하고, 기독교인들이 혁명 과정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계급 투쟁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115] 이 단체는 "사회주의에는 자본주의보다 복음의 가치가 더 많다"고 말한 칠레 교황 대표 라울 실바 엔리케스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116] 1971년 5월, 칠레 주교단은 "복음, 정치, 사회주의(Evangelio, politica, y socialismos)"라는 사목 서한을 발표하여, 가톨릭 교회가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할 수는 없지만 사회주의 자체는 가톨릭 교리와 양립할 수 있으며, 무신론이나 유물론적 역사관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가톨릭 원칙의 직접적인 적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무신론이나 유물론에 기반한 사회주의는 교회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으므로 거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117]

교황 바오로 6세는 1971년 사도적 서한 《80년이 되는 해》(Octogesima adveniens)에서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그것을 정의, 연대, 평등에 대한 의지와 같은 일반적인 용어로 이상화하면서, 그 기원이 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여전히 조건 지워지는 역사적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11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1년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에서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오류는 인간학적 본질에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개인을 단순히 사회 유기체 내의 요소, 분자로 간주하여 개인의 선은 사회경제적 메커니즘의 기능에 완전히 종속됩니다. 사회주의는 또한 개인의 선은 그의 자유로운 선택, 선과 악 앞에서 그가 행사하는 독특하고 배타적인 책임에 대한 언급 없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일련의 사회적 관계로 축소되고, 도덕적 결정의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인격 개념, 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사라집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간관에서 자유 행사의 영역을 정의하는 법의 왜곡과 사유 재산에 대한 반대가 모두 발생합니다.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빼앗기고 자신의 주도로 생계를 꾸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사회 기계와 그것을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가 인격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식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고 진정한 인간 공동체 건설을 향한 진보를 방해합니다."[119]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1992년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회주의를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로 규탄하며, 2425항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교회는 현대에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관련된 전체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를 배격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자본주의'의 실천에서 개인주의와 인간 노동에 대한 시장 법칙의 절대적 우선 순위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중앙 집중식 계획에 의해서만 경제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적 유대의 기반을 왜곡하고; 시장 법칙에 의해서만 경제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시장이 충족할 수 없는 많은 인간의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정당한 위계와 공동선을 고려하여 시장과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칭찬받아야 합니다."[120]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4년 추기경 시절 이탈리아 상원 연설에서 "[많은 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가톨릭 사회 교리와 가깝고,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의식 형성에 기여했다."라고 선언했다.[121] 2005년 교황으로서 발표한 회칙 《신은 사랑이다》(Deus caritas est)에서는 "우리는 모든 것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국가가 아니라,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세력에서 나오는 주도적인 활동을 관대하게 인정하고 지원하며, 자발성과 빈곤층에 대한 밀접성을 결합하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그러한 살아있는 세력 중 하나이다. ... 결국, 정의로운 사회 구조가 자선 활동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은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을 가리고 있으며 ... 인간을 폄하하고 궁극적으로 인간 특유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확신이다."라고 밝혔다.[122] 2007년 회칙 《구원으로 이끄시는 희망》(Spe salvi)에서는 칼 마르크스를 비판하며 그의 근본적인 오류가 유물론에 있으며, 경제 구조 개선만으로 인간 구원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비판했다.[123]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빈번한 비판으로 인해 사회주의적 대의에 동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2016년 그는 세계 경제가 "[전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테러리즘"이며,[124]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처럼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들이 결정할 권리가 있는 사회에 대해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82] 나중에 공산주의자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내가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나는 교회의 사회 교리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어쩌면 조금 더 '좌파'인 인상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일 것이다."라고 대답했다.[81] 2013년에는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는 잘못되었다. 그러나 나는 평생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으므로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125]

해방 신학과 같은 운동들은 사회주의와 가톨릭교의 양립성을 주장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비판받았다.[126][127] 2017년부터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는 실천적 가톨릭 신자인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의 직전 의장이다.[128]

프랑스가톨릭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사회적 가톨릭주의(socialisme catholique)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기피되면서 사회 가톨릭주의(catholicisme social)로 바뀌었다.[180] 당시 프랑스에는 프로테스탄트의 활동을 가리키는 사회적 기독교(christianisme social)라는 용어도 있었다.[180] 가톨릭과 자유주의의 협력을 주장한 펠리시테 드 라므네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1832년 회칙 《미라리 보스》에서 파문당했다.[179] 라므네 외에도 라코르데르, 몽탈랑베르, 마르크 상니에 등 자유주의적 가톨릭주의자들이 있었지만, 프랑스 사회 가톨릭주의의 주류는 왕당파인 알베르 드묑이나 라투르 뒤팽 등으로, 반혁명, 반개인주의, 반자본주의 입장을 취했다.[180]

5. 개신교에서의 기독교 사회주의

감리교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역사신학)에 따르면, 기독교 사회주의는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하며,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가진다.[181]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19장 18절 말씀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서 7장 12절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가 되어야 한다.
  • 빈부의 격차 문제,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계층과 빈곤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학적 모색과 선교적 실천을 추구해야 한다.
  • 경제적 소외와 빈곤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그 해결을 개인의 결단에만 의지하지 않고 공동체적 관심과 사회적 책임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창의적 생산을 촉진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바탕으로 한 시장주의 경쟁을 인정하지만, 자유와 경쟁이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문제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 나눔과 참여를 통해 인간 평등과 부의 균형적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 생산과 분배의 물질적 바탕과 수단이 개인이나 국가 또는 특정 집단의 독점 소유물이 되는 것을 경계하며, 모든 물질의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관리해야 한다.
  • 유물론유심론을 양자택일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종교적 각성과 훈련을 통해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신의 조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이 생산과 분배의 조화를 이루어 인류 평화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


이덕주 교수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성서적 근거를 다음에서 찾는다.

  • 마태복음서의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포도원 주인은 일찍 온 노동자나 늦게 온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하루 품삯인 일 데나리온을 지급했다. 일찍 온 이들이 불공정하다고 항의했지만, 주인은 약속한 대로 정당하게 임금을 지불했다고 답한다. 이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노동 시간에 상관없이 배려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성 바울로의 고린토 교회 비판: 고린토 교회에서 부유한 신자들이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가난한 신자들을 배려하지 않아, 이들이 성만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는 가난한 교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기독교 사회주의'''는 '''종교 사회주의'''라고도 불리며,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근거하여 사회 문제, 특히 노동자 계급 문제와 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등장한 개신교 교회의 신학 운동이다. 이는 인간의 책임 아래 정의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일과 하나님 나라 사이의 조화를 찾으려 했다.[185]

신학자 헤르만 쿠터는 역사의 진보를 낙관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며 당시 문화교회의 문제들을 지적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종교적 주관주의나 현실 세력과의 타협 등 기독교 내부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사회주의를 반 기독교 사상으로 보고 적대했던 것과 달리,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은 사회주의를 존중했다. 스위스 자펜빌에서 목회하며 부르주아의 착취로 고통받는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칼 바르트1914년 "사회주의복음의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할 적용이다."라고 주장했으며, 1915년 스위스 사회민주당, 1931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회, 정치 참여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파울 틸리히 역시 "사회 참여를 무시하면서 내세만 찾는 기독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회주의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기독교의 정신과 일치하며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사회주의를 존중해야 하며, 그 힘을 자신의 신앙 안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보았다. 게오르크 분슈는 사회주의를 기독교의 몸으로, 예수의 산상설교에서 나타나는 기독교 정신을 사회주의의 영혼으로 보았다.

그러나 히틀러민족사회주의 정권의 탄압과 종교 사회주의를 위험하게 여긴 기독교인들의 경계로 인해 종교 사회주의는 영향력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마르크스주의기독교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종교 사회주의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부 종교 사회주의자들은 칼 마르크스의 정치적, 경제적 분석을 종교적, 신학적 해석에 수용하기도 한다.

=== 지역별 개신교 사회주의 ===

==== 한국 ====

한국 교회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독교 사회주의가 주장되었다. 1920-30년대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근거하여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며 기독교를 비판했다. 이에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존 기독교 사회 운동의 한계를 느끼며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대화 및 공존을 모색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한계와 사회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기독교계 내부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소수 기독교인들의 실천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갈등과 대결이 아닌 대화와 조화를 추구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182]

==== 영국 ====

마르크스와 엥겔스과학적 사회주의 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F. D. 모리스, 존 말콤 러들로, 찰스 킹즐리, 토머스 휴스 등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1848년 파리 2월 혁명 이후 급진적인 혁명 대신 "사회주의의 기독교화"를 표방하고 성육신 신학에 기반한 운동을 전개했다.[184][178]

이들은 1848년 저렴하고 읽기 쉬운 계몽 신문 『국민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the People)를 발행했고, 노동자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야간 노동자 학교를 설립했다. 1850년에는 저임금 재봉사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재봉사 협회(Working Tailors' Association)를, 이후 노동자 생활 증진 협회(the Society for Promoting Working Men's Association)를 결성했으며,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라는 소책자도 발행했다. 1854년에는 노동자 대학(Working Men's College)을 설립하여 모리스가 교장을 맡았고, 많은 지식인들이 법률, 문학, 과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료 강의를 제공했다. 이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과중한 노동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기쁨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178]

1860년대 들어 운동 참여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발생하며 급진적인 행동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런던 이스트엔드의 부목사였던 스튜어트 헤드람(Stewart Headlam)은 성 마태 길드(Guild of St Matthew)를 설립하여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급진적 행동을 추구했다. 반면, 운동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모리스는 인간 내면의 성찰을 중시하며 교육에 집중했고, 이로 인해 운동의 구심력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노동자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했던 러들로는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 개혁을 시도했고, 이는 이후 국제 협동조합 운동의 중요한 흐름으로 이어졌다.[178]

1880년대 후반에는 브룩 포스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찰스 고어 등에 의해 기독교 사회 연합(Christian Social Union)이 결성되었고, 1907년에는 더욱 실천적인 활동을 목표로 교회 사회주의 연맹(Church Socialist League)이 발족했다. 20세기 초 영국 성공회 성직자 다수가 사회주의 운동에 공감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템플과 마이클 램지(Michael Ramsey) 등에 의해 계승되어 영국 성공회 내에서 확고한 사상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178]

영국 감리교에서도 많은 이들이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감리교 목사이자 노동당 정치인이었던 도널드 소퍼는 웨스트 런던 감리교 선교회(West London Methodist Mission)를 통해 빈곤층 지원에 힘썼다.[136] 감리교도들은 영국의 초기 노동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사회주의 정당인 영국 노동당은 "마르크스보다 감리교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37]

==== 프랑스 ====

칼뱅주의(Calvinism)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는 1870년대 토미 팔로(Tommy Fallot)의 설교를 통해 사회 기독교(Christianisme Social) 운동이 등장했다.[131] 초기에는 빈곤층의 문맹 퇴치와 알코올 중독 문제 해결 등에 집중했다.[132]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사회 기독교 운동은 평화주의와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나아갔다. 이 운동 내에서는 자크 마르탱(Jacques Martin), 필로 베르니에(Philo Vernier), 앙리 로제(Henri Roser)와 같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베르나르 라베르뉴(Bernard Lavergne), 조르주 라세르(Georges Lasserre)와 같이 협력과 연대를 중시하는 경제학자들, 그리고 신학자 폴 리쾨르 등이 활동했다. 운동의 목사 중 한 명인 자크 칼텐바흐(Jacques Kaltenbach)는 앙드레 트로크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비시 정권 하에서는 수용소 수감자 지원과 유대인 탈출 지원 등 저항 활동이 나타났고, 사회 기독교 운동은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재탄생하며 새로운 좌파 정치 흐름과 맞물려 기독교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고문 규탄, 유럽 통합 논쟁, 식민지 해체 문제 등 광범위한 정치 활동에 참여했으며,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기 위해 고용주, 관리자, 노동조합 대표 간의 회의를 주선했다. 1968년 5월 혁명 이후 프랑스 칼뱅주의는 더욱 좌파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133]

1960년대에 작성된 교리 문서 「교회와 권위(Church and Authorities)」는 마르크스주의적 성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133] 교회는 원자력 문제나 제3세계 정의 문제와 같은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사회 기독교 운동은 잠시 중단되었으나,[132] 2010년 6월 240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청원을 통해 재개되어[132] 현재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134] 경제적으로 프랑스 칼뱅주의자 다수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며 자유 시장 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135] 정치 및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133] 프랑스 인구의 2%만이 개신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총리 중 세 명이 칼뱅주의자였으며, 그중 두 명은 사회주의자였다.[135]

==== 웨일스 ====

웨일스에서는 칼빈주의 장로교가 가장 큰 비국교 종파이다. 그 기원은 18세기 그리피스 존스(Griffith Jones)가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시작한 순회 자선 학교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까지 웨일스 비국교도들 사이에서는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정교분리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신념 때문이었다.

엠리스 앱 이완(Emrys ap Iwan)은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 ''Y Ddwy Alwedigaeth''(''두 가지 소명'')에서 이러한 수동적인 경건주의에 도전하며, 신앙이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어와 문화를 포함한 모든 세상적인 것들이 신성한 기원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웨일스 민족주의 사회민주당인 플라이드 컴리의 창립자 중 다수는 존 에드워드 다니엘을 포함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다니엘은 웨일스에 신정통주의를 도입한 신학자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플라이드 컴리 2세대 지도자인 R. 투두르 존스는 그의 정치적 입장과 칼빈주의 교리를 결합하여 20세기 후반 웨일스 기독교 사회에 중요한 비전을 제시했으며, 국가는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들이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이드 컴리의 칼빈주의 전통은 비폭력적인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리스 로이드(Rhys Llwyd)에 따르면, 이들은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모두 거부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을 정화한 사건을 폭력이 아닌 상징적 행위로 해석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비폭력 직접 행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적을 사랑하되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는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했다. 플라이드 컴리는 여전히 자신들을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의 일부로 여긴다.

==== 호주 ====

호주에서는 학자 롤란드 보어(Roland Boer)가 칼뱅주의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하려는 시도를 했다.[129] 그는 2010년 인터뷰에서 "기독교 내부에 강력한 정치적, 신학적 급진주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처음에는 칼뱅주의 신학이 이러한 관심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칼뱅 자신도 성경의 급진적 잠재력과 자신의 보수적 성향 사이에서 갈등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130]

==== 미국, 캐나다, 일본 등 ====

=== 국제 기구 ===

현재 기독교 사회주의를 포함한 종교 사회주의 전반의 국제 기구로서 종교 사회주의 국제 연맹 (International League of Religious Socialists)이 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협력 기구이다.

6. 비판과 논쟁

영국에서는 비국교도부터 로마 가톨릭교도, 특히 영국 고교회파 의식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기독교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165] 그러나 일부 사회주의자들은[166][167] 기독교 사회주의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적이며 그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168] 또한 일부 종교 지도자들과 교황들은 사회주의의 무신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아 사회주의를 거부했다. 반면, 대륙 개혁교회 목사인 앙리 닉(Henri Nick)은 "내가 비판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잘못 불리는 무신론이다"라고 말하며 기독교 사회주의를 옹호하기도 했다.[169]

영국 고교회파 기독교 사회주의는 가톨릭이 개신교의 개인주의와 청교도주의에 맞서 벌인 논쟁의 일부였으며, 이로 인해 많은 반의식주의 개신교도들은 가톨릭과 사회주의를 연관짓기도 했다.[170] 영국의 특수 침례교 설교자였던 찰스 해든 스펄전은 사회주의 이론을 비판하며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곧 너무 많은 것을 얻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집단주의적 기독교를 개인적인 신앙보다 열등하게 여겼으며, "개인적 기독교의 황금을 기독교 사회주의의 천한 금속으로 바꾸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71] 프랑스 루터교 목사인 토미 팔로(Tommy Fallot)는 "사회주의는 복음에서 상당 부분의 프로그램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복음이 하려는 것처럼 정의의 기둥 위에 사회를 세우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은 복음과 예언자들에 대한 비난을 의미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기독교 사회주의를 옹호했다.[172]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좌우 정치 스펙트럼에 따라 나뉜다. 기독교 좌파는 예수낙태 반대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이민자들의 권리를 우선시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독교 우파는 예수가 부의 재분배, 불법 이민, 낙태, 동성결혼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73] 보수적인 견해는 경제교육재단(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의 명예회장인 로렌스 리드, 미국 보수주의자이자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조니 무어 주니어,[174] 그리고 미국 가족 협회(American Family Association) 소속의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미국 전통 보수주의자인 브라이언 피셔[176] 등의 주장에서도 나타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론인 퀸틴 레츠는 "예수는 공정함을 설교했다. 거의 좌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라고 말하며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177]

현대적인 의미의 기독교 사회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기독교 사회주의"를 언급하며, 기독교의 주장이 사회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귀족 계급의 불만을 신성화하기 위한 '성수(聖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초기 저서에서 "영국은 어떤 계급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고, 무지할수록 더 많은 미래를 가진다는 이상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모든 혁명기의 특징이다. 특히 이것은 기독교를 낳은 종교 혁명 당시에 드러났듯이 말이다. '행복하라, 가난한 자여'"라고 언급하며 초기 기독교와 하층 계급의 관계에 주목했다.

7. 관련 인물 및 단체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에는 신학자, 정치인, 사회 운동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참여했으며, 여러 국가에서 관련 단체와 정당이 활동했다. 대표적인 사상 흐름으로는 해방 신학, 사회 복음 운동 등이 있으며, 각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구체적인 인물과 단체, 지역별 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7. 1. 한국

감리교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역사신학)는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홍성사)을 썼다.

7. 2. 해외

기독교 공산주의기독교에 기반하여 예수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산주의를 이상적인 사회 제도로 지지하도록 요구한다는 견해를 따르는 종교적 공산주의의 한 형태이다. 기독교 공산주의자들은 성경의 증거를 통해 신약전서의 사도들을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사후 공산주의 사회를 세웠다고 주장한다.[53]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카우츠키 등 여러 공산주의 사상가들도 예수가 공산주의를 가르쳤고 사도들이 이를 실천했다는 점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54] 이는 일반적으로 역사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55] 마르크스는 초기 저술에서 "그리스도가 인간이 그의 모든 신성, 그의 모든 종교적 속박을 털어놓는 중재자라면, 국가는 그가 그의 모든 신성 부재, 그의 모든 인간적 자유를 넘겨주는 중재자이다"라고 언급하며 이러한 연관성을 강조했다.[56]

해방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사회경제적 분석을 결합하여 "가난한 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치적 해방"[59] 및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60]을 강조한다.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61]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레오나르도 보프, 후안 루이스 세군도, 호세 소브리노와 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예수회 사제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구호를 널리 알렸는데, 이는 1968년 예수회 총장 페드로 아루페가 처음 사용했으며, 1971년 세계 주교 시노드는 "세상 안의 정의"를 주제로 채택했다.[62][63]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루벵 알베스,[64][65][66] 호세 미게스 보니노,[67] C. 레네 파딜라[68] 등 해방 신학의 복음주의 지지자들이 1970년대에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강조하는 종합적 사명을 주장했다.[69] 해방 신학은 미국과 남아프리카의 흑인 신학,[70][71] 팔레스타인 해방 신학,[72][73] 인도의 달릿 신학,[74] 한국의 민중 신학[75][76][77] 등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19세기 자본주의 확산 과정에서 많은 기독교 교파가 부르주아 계급과 타협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일부는 자본주의의 모순, 특히 산업혁명 이후 공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에 주목했다.
영국영국에서는 F. D. 모리스, 존 맬컴 러드로우, 찰스 킹즐리, 토마스 휴즈 등이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나섰다. 1848년 파리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았으나, 급진적인 혁명보다는 "사회주의의 기독교화"를 추구하며 현세를 긍정하는 성육신 신학에 기반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1848년, 이들은 대중 계몽을 위해 저렴하고 읽기 쉬운 신문 『국민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the People)를 발행했고, 러드로우는 직접 거리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노동자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야간 노동자 학교를 설립했으며, 토마스 휴즈도 여기에 참여했다. 1850년에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재봉사들의 생활 개선과 계몽을 위해 재봉사 협회(Working Tailors' Association)를 결성했고, 이후 노동자 생활 증진 협회(the Society for Promoting Working Men's Association)를 조직하여 모리스가 회장을 맡았다. 또한 모리스 등은 소책자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를 발행했다.

1854년에는 노동자 학교(Working Men's College)를 설립하고 모리스가 교장이 되었다. 많은 지식인이 무료로 법률, 문학, 과학, 수학, 역사, 예술, 음악 등 다양한 강좌를 제공했으며, 토요일에는 야외 활동도 진행했다. 이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과중한 노동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삶의 기쁨과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1860년대 들어 운동 내부에 의견 차이가 발생하며 행동적이고 급진적인 운동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런던 이스트 엔드의 부목사 헤드람(L.S. Headlam)은 성 마태 길드를 설립하여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급진적 행동을 지지했다. 반면, 모리스는 인간 내면의 성찰을 중시하며 교육에 집중했고, 이로 인해 운동의 구심력이 약화되었다. 러드로우는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 개혁을 시도했으며, 이는 19세기 말 국제 협동조합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은 잠시 주춤했으나, 1880년대 후반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찰스 고어 등이 기독교 사회 연합을 결성하며 부활했다. 1907년에는 더욱 실천적인 활동을 목표로 교회 사회주의 연맹(Church Socialist League)이 발족했다. 20세기 초 영국 성공회 성직자 다수가 사회주의 운동에 공감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템플(1881-1944)과 마이클 램지(Michael Ramsey) 등으로 이어지며 영국 성공회 내에서 확고한 사상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178]
프랑스칼뱅주의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는 1870년대 토미 팔로(Tommy Fallot)의 설교를 통해 사회 기독교(Christianisme Social) 운동이 시작되었다.[131] 초기에는 빈곤층의 문맹 퇴치와 알코올 중독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132]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평화주의와 에큐메니즘(교회 일치 운동)으로 방향을 넓혔다. 이 운동에서는 자크 마르탱(Jacques Martin), 필로 베르니에(Philo Vernier), 앙리 로제(Henri Roser)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베르나르 라베르뉴(Bernard Lavergne), 조르주 라세르(Georges Lasserre)처럼 협동과 연대를 중시하는 경제학자, 그리고 폴 리쾨르 같은 신학자들이 활동했다. 운동의 목사 중 한 명인 자크 칼텐바흐(Jacques Kaltenbach)는 앙드레 트로크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비시 정권 시기에는 수용소 수감자 지원, 유대인 탈출 지원 등 저항 활동을 펼쳤고, 사회 기독교 운동은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기독교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재탄생했다. 이는 새로운 정치 좌파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했다. 활동 범위는 고문 규탄, 유럽 통합 논쟁, 식민지 해체 문제 등으로 확장되었고, 새로운 경제 질서 모색을 위해 고용주, 관리자, 노동조합 대표 간의 회의를 주선하기도 했다. 1968년 5월 혁명 이후 프랑스 칼뱅주의는 더욱 좌파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133]

1960년대에 작성된 「교회와 권위(Church and Authorities)」라는 문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성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133] 교회는 원자력 문제나 제3세계 정의 문제 등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사회 기독교 운동은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잡지 「다른 시간들(Other Times)」의 발행도 멈췄으나,[132] 2010년 6월 24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운동을 재개했으며,[132] 현재는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134] 경제적으로는 다수의 칼뱅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자유 시장 경제를 장려하는 데 기여했으며, 프랑스의 주요 기업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135] 그러나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133] 프랑스 인구의 2%만이 프로테스탄트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총리 중 세 명이 칼뱅주의자였으며, 그중 두 명은 사회주의자였다.[135]
웨일스웨일스에서는 칼빈주의 장로교가 가장 큰 비국교 종교이다. 그 기원은 17세기 그리피스 존스(1684~1761)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순회 자선학교 시스템을 시작했다. 19세기까지 웨일스 비국교도들 사이에서는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교회와 국가 분리라는 전통적 신념 때문이기도 했다.

엠리스 앱 이완은 그의 설교 ''Y Ddwy Alwedigaeth''(''두 가지 소명'')에서 이러한 수동적 경건주의에 도전하며, 신앙이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일스 민족주의 사회민주당인 플레드 컴루의 창립자 중 다수가 존 에드워드 다니엘을 포함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했다고 주장하며 웨일스에 신정통주의를 소개했다. 플레드 컴루의 2세대 지도자 R. 투두르 존스는 정치적 입장과 칼빈주의 교리를 통합하여 20세기 후반 웨일스 기독교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국가는 질서를 유지하고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레드 컴루의 칼빈주의 전통은 비폭력적인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리스 루이드(Rhys Llwyd)에 따르면, 이들은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모두 거부하며,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을 폭력이 아닌 상징적 행위로 해석하여 비폭력 직접 행동의 근거로 삼았다. 플레드 컴루는 여전히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의 일부로 여겨진다.
독일19세기 독일에서는 빌헬름 에마누엘 폰 케텔러(Wilhelm Emmanuel von Ketteler, 1811-77) 등이 주도한 기독교 사회 운동이 있었다.[179]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진 빈 시장이자 오스트리아 기독교 사회당 소속의 카를 뢰거 역시 이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뢰거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중에서는 칼 바르트와 파울 틸리히가 사회주의 사상을 심화시켰다. 틸리히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치 좌파였던 오토 슈트라서의 아버지 페터는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교황 비오 9세는 1864년 『오류표』를 통해 신앙의 자유, 자유주의 신학,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을 오류로 규정했다. 그러나 1891년, 레오 13세는 회칙 『레룸 노바룸』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사회주의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하면서도, 국가가 분배 정의를 실현하고 노동 계급을 보호해야 하며, 노동 조합을 통해 빈곤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80]
기타 국가

  • 호주: 학자 롤란드 보어(Roland Boer)는 칼뱅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종합을 시도했다.[129] 그는 기독교 내의 급진적 전통과 칼뱅주의의 잠재적 연결 가능성을 탐구했다.[130]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이자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대표였던 케빈 러드도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159][160][161]
  • 미국: 도로시 데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코넬 웨스트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초기에 사회 복음 운동과 미국 사회당을 이끌었으나, 전후에는 기독교 현실주의 입장에서 반공주의로 돌아섰다. 프랜시스 벨러미는 충성의 서약 원 저자이자 침례교 목사로서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12][139] 윌리엄 드와이트 포터 블리스는 미국 감리교회 사제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다.[141] 마이런 W. 리드는 미국 서부 사회 복음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다. 해리 F. 워드는 영국 출신 미국 감리교 목사이자 정치 운동가였다.[36]
  • 캐나다: 토미 더글러스는 서스캐처원주 총리를 지낸 침례교 목사이자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146]
  • 라틴 아메리카: 브라질의 엘데르 카마라 주교,[143] 레오나르도 보프, 에콰도르의 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144] 등이 있다.
  • 뉴질랜드: 존 아처는 전 크라이스트처치 시장이자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였다.[138] 월터 내시는 전 뉴질랜드 총리이자 뉴질랜드 노동당 지도자였다.[158]
  • 러시아: 세르게이 불가코프는 러시아 정교회 사제, 철학자, 경제학자였다.[142] 이반 프로카노프는 종교 지도자이자 신학자, 정치인이었다.
  • 인도네시아: 아미르 샤리푸딘은 정치 운동가이자 두 번째 인도네시아 총리였다.
  • 일본: 아베 이소, 무라이 토모지, 가와카미 키요시, 카가와 토요히코, 나카지마 시게루, 타나카 하지메, 이시카와 사무로, 쿠즈미 후사코, 가타야마 데쓰(전 일본 총리이자 일본 사회당 소속), 가와카미 조타로 등이 있다.[164]

주요 인물

이름국가주요 활동/직책
존 아처뉴질랜드전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138]
에딘 발루미국기독교 비저항주의 지지자, 기독교 아나키스트 전통 내 사회주의자[8]
프랜시스 벨러미미국침례교 목사, 충성의 서약 원 저자[12][139]
토니 벤영국국회의원, 노동당 운동가[140]
윌리엄 드와이트 포터 블리스미국감리교회 사제, 작가, 편집자, 사회주의 운동가[141]
롤란드 보어호주학자, 칼뱅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종합 시도[129]
세르게이 불가코프러시아러시아 정교회 사제, 철학자, 경제학자, 신학자[142]
엘데르 카마라브라질올린다 이 레시페 대교구 주교, 사회주의자[143]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회주의와 예수 가르침 연관[144]
퍼시 디어머영국사제, 예배학자, 사회주의자[145]
토미 더글러스캐나다서스캐처원주 총리, 침례교 목사[146]
매리언 하워드 던햄미국교사, 운동가,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여성 전국 사회주의 연맹 서기[147]
프레더릭 제임스 퍼니벌영국언어학자, 뉴 잉글리시 딕셔너리 공동 창립자[11]
배리 가디너영국노동당 의원, 기독교 민주 사회주의자[148][149]
찰스 고어영국기독교 사회 연합 창립자
데이비드 벤트리 하트미국동방 정교회 철학 신학자, 유럽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 동참[150]
케어 하디스코틀랜드/영국정치인, 노동조합 지도자, 노동당 및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창립자[157]
토마스 휴즈영국변호사, 판사, 작가,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참여[9]
휴렛 존슨영국성공회 사제, "붉은 캔터베리 대주교"[151][152]
R. 투두르 존스웨일스플레드 컴루 지도자, 신학자
가타야마 데쓰일본전 일본 총리, 일본 사회당[164]
마틴 루터 킹 주니어미국침례교 목사, 시민권 운동가[153]
찰스 킹즐리영국대학교수, 작가, 잉글랜드 교회 사제, 기독교 사회주의 창시자[3]
케네스 리치영국성공회 사제, 신학자, 주빌리 그룹 창립자[154][155][156]
존 맬컴 러드로우영국/인도변호사,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지도자[3]
에프.디. 모리스영국성공회 신학자, 작가, 기독교 사회주의 창시자[3]
월터 내시뉴질랜드전 뉴질랜드 총리, 뉴질랜드 노동당 지도자[158]
라인홀드 니부어미국신학자, 사회 복음 운동 지도 (초기)
이반 프로카노프러시아/소련종교 지도자, 신학자, 정치인
마이런 W. 리드미국변호사, 성결교 목사, 정치 운동가, 사회 복음 운동 지도자
케빈 러드호주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지도자[159][160][161]
존 러스킨영국작가, 철학자, 기독교 사회주의에 영향[10]
아미르 샤리푸딘인도네시아정치 운동가, 전 인도네시아 총리
R. H. 타우니영국철학자, 윤리적 사회주의자[162][163]
윌리엄 템플영국캔터베리 대주교, 신학자[178]
파울 틸리히독일/미국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데스몬드 투투남아프리카신학자, 전 케이프타운 성공회 대주교
해리 F. 워드영국/미국감리교 목사, 정치 운동가[36]
코넬 웨스트미국철학자, 활동가
브룩 포스 웨스트콧영국기독교 사회 연합 창립자


주요 단체 및 정당

단체/정당국가
페루 농민전선페루
그리스 기독교 민주당그리스
좌파 기독교인영국
네덜란드 기독교 사회당네덜란드
스위스 기독교 사회당스위스
시민 좌파칠레
이탈리아 민주당 파벌이탈리아
영국 노동당 파벌영국
기독교 사회주의자 연맹네덜란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니카라과
르 실롱프랑스
루마니아 사회민주당루마니아
젊은 공화당 연맹프랑스



현재 기독교 사회주의를 포함한 종교 사회주의 국제 기구로 '종교 사회주의 국제 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Religious Socialists)이 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협력 기구이다.

7. 3. 단체

영국에서는 F. D. 모리스, J. M. 라드로우, 찰스 킹즐리, 토마스 휴즈 등이 중심이 되어 성육신 신학에 기반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노동자 계몽을 위해 『국민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the People)를 발행하고 야간 노동자 학교를 설립했으며, 1850년에는 저임금 재봉사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재봉사 협회(Working Tailors' Association)를 결성했다. 이후 노동자 생활 증진 협회(the Society for Promoting Working Men's Association)를 결성하여 모리스가 회장을 맡았고, 소책자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를 발행했다. 1854년에는 노동자 학교(Working Men's College)를 설립하여 모리스가 교장이 되었다. 1860년대 이후 운동 내 의견 차이가 발생하며 헤드람(L.S. Headlam)은 보다 급진적인 행동을 추구하며 성 마태 길드(St. Matthew's Guild)를 설립했다. 라드로우는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 개혁을 시도하여 국제적인 협동조합 운동의 기초를 마련했다. 1880년대 후반에는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찰스 고어 등이 기독교 사회 연합(Christian Social Union)을 결성했으며, 1907년에는 더욱 실천적인 활동을 목표로 교회 사회주의 연맹(Church Socialist League)이 발족했다.[178]

독일에서는 19세기 빌헬름 에마누엘 폰 케텔러(Wilhelm Emmanuel von Ketteler) 등의 기독교 사회 운동이 있었다.[179] 이 운동은 반유대주의로 알려진 빈 시장이자 오스트리아 기독교 사회당의 카를 뢰거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아돌프 히틀러 역시 뢰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 좌파였던 오토 슈트라서의 아버지 페터 슈트라서 역시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미국에서는 라인홀드 니부어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사회 복음을 설파하며 미국 사회당을 이끌기도 했으나, 전후 반공주의로 돌아섰다.

현재 기독교 사회주의 관련 국제 기구로는 종교 사회주의 국제 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Religious Socialists)이 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협력 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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