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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틀릿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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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곤틀릿은 죄수나 포로가 양쪽에 줄지어 선 사람들에게 구타를 당하며 통과하는 형벌이다. 이 단어는 스웨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대 로마에서 푸스투아리움, 데시마티오와 같은 형벌이 존재했다. 중세 유럽의 군대, 영국 해군,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용되었으며, 종종 죽음에 이를 때까지 가해지기도 했다. 현대에는 통과의례, 스포츠 훈련 등에서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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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틀릿 (형벌)
형벌 정보
종류신체형
목적처벌
강제
린칭
방법구타
다른 이름주살형
회색 곰 의식
개요
설명곤틀릿(gauntlet)은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몽둥이나 채찍 등으로 대상자를 때리면서 지나가게 하는 군대 형벌이다.
어원갑옷의 건틀릿(gauntlet)에서 유래되었다.
유래
고대 로마고대 로마 군대에서 병사들이 저지른 경미한 범죄에 대한 처벌로 사용되었다.
스파르타스파르타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형벌이 존재했다.
중세 유럽중세 유럽 군대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현대적 사용
군대현대 군대에서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지만, 비공식적으로 가혹행위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학교학교에서도 학생들 간의 폭력적인 괴롭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상징적 의미
통과의례일부 집단에서는 곤틀릿이 통과의례의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회적 압력곤틀릿은 사회적 압력이나 집단 괴롭힘의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의 명칭
일본ガントレット (刑罰) (간토렛토 (케-바츠))
영어Running the gauntlet (러닝 더 건틀릿)

2. 어원

"곤틀릿(gauntlet)"이라는 영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같은 철자의 곤틀릿(gauntlet, 호구 장갑)과는 관련이 없다. 스웨덴어 "gatlopp"(대로를 달린다)이 30년 전쟁 중 영국군 병사들 사이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1]

이 단어는 스웨덴어 gatloppsv에서 유래했으며, gatasv '차선'과 loppsv '코스, 달리기'에서 파생되었다.[1] 17세기에 영어로 들어왔으며, 아마도 30년 전쟁 동안 개신교 군대에서 싸운 영국 및 스웨덴 병사들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다.[2][3][4][5][6]

영어 단어는 원래 ''gantelope'' 또는 ''gantlope''로 표기되었지만,[7] 곧 그 발음은 관련 없는 단어 'gauntlet'의 영향을 받았다.[1]

3. 역사

고대 로마 군대에서는 푸스투아리움이나 십분의 일형과 같이 가혹한 형벌이 존재했다. 이러한 형벌은 로마 이후 유럽 군대에서도 곤틀릿 형태로 이어졌다. 곤틀릿은 벌을 받는 병사가 두 줄로 늘어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몽둥이, 채찍 등으로 맞는 형벌이었다.

곤틀릿은 유럽의 넓은 지역에서 행해졌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실시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불명예스러운 형벌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군대에 따라서는 곤틀릿을 통과하면 죄를 갚은 것으로 간주하여 복귀를 허용하기도 했다. 프로이센 기병은 채찍 대신 박차를 사용했고, 프랑스군과 영국 해군에서도 곤틀릿과 유사한 형벌이 존재했다.

'곤틀릿'이라는 단어는 스웨덴어의 'gatlopp'(길 경주)에서 유래했으며, 30년 전쟁을 통해 영국군에 전해졌다.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Spießrutenlaufen'(창 사이로 달리기)이라고 불렸고, 러시아스웨덴에서도 19세기까지 시행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중 일부도 곤틀릿과 유사한 의식을 행했는데, 포로가 무사히 통과하면 부족원으로 받아들였다. 예수회 선교사 이삭 조그와 대니얼 분 등이 이러한 형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니족 전사들 사이에서 곤틀릿 형벌을 받는 포로

3. 1. 고대 로마

고대 로마 군대는 파수를 게을리하거나 탈영한 병사에게 푸스투아리움(라틴어로 가지나 채찍을 의미)이라는 형벌을 내렸다.[1] 푸스투아리움은 동료 병사들이 형벌 대상자를 가지나 채찍으로 죽을 때까지 때리는 형벌로, 부대에서 탈영하여 동료들의 신뢰를 저버린 병사는 로마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1]

또한 군단 전체에 대한 형벌로는 십분의 일형(decimatio)이 있었다.[1] 이는 군단 병사 10명 중 1명을 제비뽑기로 선정하고, 나머지 9명이 뽑힌 1명을 곤봉 등으로 죽을 때까지 때리는 형벌이었다.[1]

3. 2. 유럽

동료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형벌은 로마 이후의 유럽 군대에서도 볼 수 있다. 벌을 받는 병사는 이열로 줄지어 선 병사들 사이("die Gasse", "샛길"이라고도 불린다)를 지나가면서 곤봉, 채찍, 등을 가진 동료들이 형벌을 집행했다 전해진다. 벌을 받는 병사의 손목이 속박되어 열 사이를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열을 이루는 병사들은 날카로운 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칙이나 한쪽 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규칙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벌을 받는 병사는 손으로 머리를 지켜도 좋다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형벌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실시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걸을 수 없게 되면 벌은 끝났다. 곤틀릿은 벌을 받는 사람의 동료 병사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 남자답게 동료들에게 제재되었다고 생각했기에 불명예스러운 형벌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군대에 따라서는 곤틀릿 형벌을 받고 반대쪽으로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을 경우에는 잘못은 갚아졌다고 보아 부대로 돌아오는 것이 용서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측에 간신히 도착해도 다시 열 사이로 되돌려져 곤틀릿 사이를 죽을 때까지 반복해서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로이센 기병의 경우는 채찍 대신에 박차를 사용했다. 프랑스군에서도 곤틀릿은 일반적인 벌이며, 특히 절도 등에 과해지고 있었다. 영국 해군에서도 절도 시에는 곤틀릿과 같은 형벌이 있어 부사관이 벌을 받는 군사의 앞을 달릴 수 없게 막아 다른 부사관이 군사를 뒤에서 눌러 로프를 짜고 채찍 등을 들고 있는 동료들 사이를 걷게 했다.

곤틀릿(형벌)은 유럽의 넓은 지역에서 행해졌으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음은 일반적인 곤틀릿 형벌에 대해 설명한다.[1]

로마 이후 유럽 군대에서 동료 병사에게 죽게 하는 형벌은 곤틀릿이었다. 벌을 받는 병사는 군장을 벗고, 두 줄로 늘어선 병사 사이("die Gasse", "작은 길"이라고도 불린다)를 통과하며, 몽둥이, 채찍, 창을 든 동료들에게 맞았다. 그동안, 검을 든 하급 장교가 벌을 받는 병사의 앞에서 걸으며, 벌을 받는 병사가 맞는 동안 도망치지 못하도록 했다. 벌을 받는 병사의 손목을 묶어 열 사이를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고, 맞는 대신 찔리는 경우도 있었다.[1]

또한 열을 이루는 병사에게는 뾰족한 무기 사용을 금지하거나, 한쪽 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벌을 받는 병사에게는 손으로 머리를 보호해도 좋다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형벌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고, 걸을 수 없게 된 곳에서 형벌이 끝났다. 곤틀릿은 동료 병사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이었고, 남자답게 동료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수치대(pillory, pranger, stocks)에서 맞는 형벌과 비교하면 불명예스러운 형벌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1]

군대에 따라 곤틀릿 사이를 달려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경우, 과오는 갚아졌다고 간주되어 부대에 복귀하는 것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 도착해도 다시 열 사이로 돌아가 곤틀릿 사이를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1]

프로이센 기병의 경우에는 채찍 대신 박차로 죄인을 때렸다. 프랑스 군대에서도 곤틀릿은 일반적인 벌이었고, 특히 절도 시 등에 가해졌다. 영국 해군에도 절도 시에는 곤틀릿과 비슷한 형벌이 있었고, 커틀러스를 든 하사관이 벌을 받는 병사 앞을 달릴 수 없도록 막고 다른 하사관이 병사를 뒤에서 밀고, 밧줄을 엮어 채찍처럼 만든 것을 휘두르는 동료들 사이를 걷게 했다. 또한 사관학교의 훈련이나 가혹 행위로 행해지기도 했다.[1]

'곤틀릿'(gauntlet)이라는 영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같은 철자의 단어(gauntlet, 갑옷의 장갑)와는 무관하다. 아마도 스웨덴어의 'gatlopp'(길 경주)가 30년 전쟁 중에 영국군 병사들 사이에 들어온 것일 것이다. 이러한 형벌은 독일오스트리아, 특히 프로이센 왕국의 군대에서 'Spießrutenlaufen'(울부짖는 채찍 사이를 달림)이라고 불리며 계속되었다. 러시아에서도 19세기까지 이러한 형벌이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18세기까지 군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이러한 형벌이 행해졌다.[1]

3. 3.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가운데 동부 삼림 지대의 이로쿼이 연방 문화권에 속하는 몇몇 부족은 두 줄로 서서 막대기를 든 사람들 사이를 포로가 달리게 하는 곤틀릿 형벌을 실시했다. 포로인 적 부족원이 무사히 달려 나갈 수 있으면, 이로쿼이족의 부족원으로서 받아들이기도 했다.[16]

예수회의 선교사인 이삭 조그는 1641년에 이로쿼이족에 붙잡혀서 건틀릿 형벌을 받았다. 그는 책 《북아메리카의 예수회 순교자들》에 실린 편지에서 "이로쿼이족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막대기를 든 채 줄을 선 젊은 남자들을 만났고...", 그와 그의 동료 프랑스인들은 "우리에게 타격을 가할 시간을 주기 위해" 그들 앞을 천천히 걸어가야 했다고 묘사했다.[16] 대니얼 분, 윌리엄 크로퍼드 등도 인디언 부족에게 붙잡혔을 때 이 형벌을 받았다.

1755년, 찰스 스튜어트는 대협곡 학살 당시 레나페족 전사들에게 포로로 잡혀 키타닝 마을에 도착하자 곤틀릿을 통과해야 했다. 그는 이 관행에 대한 묘사를 다음과 같이 제공한다.

> 마을에 들어서자 우리는 양쪽에 약 100명씩 있는 두 줄의 인디언들 사이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도끼, 톰호크, 커틀라스, 쇠사슬, 나무 조각 등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끼로는 때리지 않았고, 톰호크의 머리와 손잡이만 사용했으며, 커틀라스의 칼날을 사용했지만, 죽일 정도로 심하게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는 그 중 하나로 이마 옆을 맞아 뼈가 드러났고, 거의 같은 시점에 나무 조각에 머리를 맞아 땅에 쓰러졌다. 이런 취급을 받은 것은 더 나이든 남녀뿐이었고, 젊은 포로들은 남녀 모두 무사했다.[17]

배닝턴 전투에서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이 되기 여러 해 전, 존 스타크는 원주민에게 붙잡혀 곤틀릿을 통과해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던 스타크는 자신을 치려는 첫 번째 사람의 무기를 빼앗아 그 전사를 공격하여 그들을 기절시켰다. 전사와 추장은 이 일에 너무 놀라 곤틀릿을 중단하고 그를 부족에 입양했다. 그는 나중에 아모스 이스트먼과 함께 163USD에 몸값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18]

아메리카 원주민 기숙학교에서는 탈주한 아메리카 원주민 아이들에게 이 형벌을 가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핫 라인"이라고 불렸다.

3. 4. 폴란드 인민 공화국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 공산주의 당국은 정치적 반대자, 범죄자, 시위자, 수감자들을 곤틀릿과 비슷한 가혹행위에 처하게 했는데, 이를 ścieżka zdrowiapl (직역하면 '건강 길'이지만, 초기 운동 시설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사용됨)라고 불렀다.

얀 유제프 립스키는 저서 ''KOR, 폴란드의 노동자 방어 위원회 역사, 1976–1981''에서 1976년 6월 시위 당시 한 범죄자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발데마르 미할스키는 이렇게 증언했다.

> 첫날, 트럭에서 경찰차까지 약 50m의 "건강 길"을 걸었다. 천천히 걸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모두가 나를 때릴 수 있었다. 주먹, 곤봉, 부츠로 맞았다. 결국 쓰러졌다. 곤봉 세례를 받아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차량에서 2층까지 "건강 길"... 이발하러 갈 때 - 또 다른 "건강 길"은 방문에서 차까지 약 40m였다... 테이블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또 10m... 감방 9번까지 "건강 길"(10m)... 감옥 트럭을 타고 법원으로; 물론 또 "건강 길"... 감옥에서 다른 감옥으로 또 다른 "길"이 있었다. 키엘체로 이송될 때 아침에 또 "건강 길"에서 살아남았다.

4. 현대적 사용

현대 사회에서 곤틀릿과 비슷한 관행은 다른 입문식이나 의례에서도 나타난다. 폴리와그는 처음 적도를 통과하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의례인데, 여기에는 매질을 가하는 방식이 포함된다.[19]

4. 1. 군사 관습

비슷한 관행은 통과의례와 같이 다른 입문식과 의식에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처음 적도를 통과하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폴리와그에서는 매질을 가하는 방식도 포함된다.[19]

테일후크 협회의 해군해병대 조종사들을 위한 한 컨벤션에서 여성 참가자들이 호텔 복도에서 남성 참가자들에게 추행을 당하며 곤틀릿을 통과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20]

4. 2. 스포츠

새로운 벨트 승급을 기념하며 벨트 통과 의례를 치르는 모습


라크로스아이스하키 같은 특정 팀 스포츠에서 곤틀릿은 선수들이 팀 전체에게 순차적으로 블로킹 또는 체크를 받는 훈련의 일반적인 이름이다.[21]

브라질 유술에서는 학생이 다음 색상 벨트로 승급할 때 동료 학생 두 줄 사이를 달려가면서 벨트로 맞는 의례를 치르는 경우가 있다.[22]

참조

[1] 웹사이트 gaunt·let2 also gant·let https://www.ahdictio[...] 2015-03-24
[2] 웹사이트 Online Etymology Dictionary http://www.etymonlin[...] 2011-01-04
[3] 서적 Gantelope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2004
[4] 서적 Gauntlet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2004
[5] 서적 Gauntlet Word Origins, A&C Black 2005
[6] 서적 Gauntlet Word Histories and Mysteries, Houghton Mifflin 2004
[7] 웹사이트 Running the Gamut and Running the Gauntlet http://www.dailywrit[...] 2017-04-20
[8] 서적 Garner's Modern American Usage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9] 서적 The Dictionary of Disagreeable English
[10] 웹사이트 gantlet http://www.merriam-w[...] 2013-09-18
[11] 웹사이트 gantlet http://www.collinsdi[...] 2013-09-18
[12] 웹사이트 gauntlet2 https://en.oxforddic[...] Oxford dictionaries 2018-09-12
[13] 서적 The Wooden World: An Anatomy of the Georgian Navy Naval Institute Press
[14]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Ships and the Sea
[15] 문서 Administrative Papers of Governors Richard Nicolls and Francis Lovelace, 1664–1673 Genealogical Publishing Co.
[16] 간행물 The Jesuit Martyrs of North America The Universal Knowledge Foundation
[17] 논문 The Captivity of Charles Stuart, 1755-57 https://www.jstor.or[...] The Mississippi Valley Historical Review 1926-06
[18] 문서 Memoir and Official Correspondence of Gen. John Stark: With Notices of Several Other Officers of the Revolution. Also, a Biography of Capt. Phinehas Stevens and of Col. Robert Rogers, with an Account of His Services in America During the "Seven Years' War." https://archive.org/[...] G.P. Lyon
[19] 웹사이트 The U. S. S. West Virginia: Crossing the Equator http://www.wvculture[...] West Virginia Division of Culture and History
[20] 서적 The Tailhook Report https://books.google[...] MacMillan 2003-12-31
[21] 웹사이트 The Drill – Running the Gauntlet http://www.cbc.ca/sp[...] CBC 2012-07-10
[22] 웹사이트 The Gauntlet (Belt Whipping) https://www.bjjheroe[...] 2018-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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