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마 (순양전함)
1. 개요
구라마는 일본 제국 해군의 순양전함으로, 1911년 2월 28일 준공되었다. 원래 기어드 증기 터빈을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수직 삼단 팽창 왕복 기관을 장착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했으며,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폐기되어 1925년 해체되었다.
| 함명 | 구라마 (鞍馬) |
|---|---|
| 다른 함명 | 일본 함 구라마 |
| 함종 | 일등 순양함 장갑순양함 순양전함 |
| 급 | 구라마급 순양전함 |
| 이전 함명 | 이부키급 장갑 순양함 |
| 함번 | 1 |
| 약호 | GKM (1908년 10월 28일 ~ ) JGR (1913년 1월 1일 ~ ) |
| 건조 | 요코스카 해군 공창 |
|---|---|
| 계획 | 메이지 37년 임시 군사비 |
| 발주 | 1905년 1월 31일 제조 훈령 |
| 기공 | 1905년 8월 23일 |
| 진수 | 1907년 10월 21일 |
| 준공 | 1911년 2월 28일 |
| 취역 | 1911년 2월 28일 |
| 제적 | 1923년 9월 20일 |
| 최종 운명 | 1923년 9월 20일 해체 |
| 모항 | 요코스카 |
| 배수량 | 14,500 영국 톤 1920년: 14,600 영국 톤 상비: 14,636 영국 톤 신조 공시 시: 15,594 영국 톤 |
|---|---|
| 길이 | 전체 길이: 485 피트 (147.8 m) 수선 길이: (451 피트) 수선간 길이: 450 피트 (137.2 m) |
| 폭 | 최대 폭: 75 피트 6 인치 (23 m) 또는 75 피트 4+7/8 인치 |
| 깊이 | 42 피트 2+3/8 인치 42 피트 2+1/4 인치 44 피트 |
| 흘수 | 26 피트 26 피트 1+5/8 인치 26 피트 1 인치 신조 공시 시: 27 피트 3+1/4 인치 |
| 추진 | 2축 (외돌이) x 160 rpm |
| 주기관 | 직립 4기통 3단 왕복동 기관 |
| 출력 | 계획: 22,500 마력 공시: 23,081 마력 |
| 보일러 | 미야하라식 혼소 캔 단면 28기 1920년: 18기 |
| 속력 | 계획: 21.25 노트 |
| 연료 | 1920년: 석탄 1,868톤, 중유 288톤 |
| 항속 거리 | 14노트 속력으로 5,000 해리 |
| 승무원 | 계획 승무원: 844명 준공 시 정원: 842명 1920년 조사: 817명 |
| 준공 시 | 45구경 12인치 (속사)포 연장 2기 4문 45구경 8인치 (속사)포 연장 4기 8문 4.7인치 (속사)포 단장 14문 1호 단 3인치 포 4문 (또는 3인치 단장포 8문, 또는 6문) 아식 18인치 수중 발사관 현측 2문, 함미 1문 38식 2호 18인치 어뢰 6본 14인치 어뢰 4본 (함재 수뢰정용) 탐조등 90cm 4기, 75cm 1기 |
|---|---|
| 1920년 | 41식 30cm 포 4문 41식 20cm 포 8문 41식 12cm 포 14문 41식 8cm 포 (자포) 4문 41식 단 8cm 포 4문 마식 6.5mm 기관포 3정 수중 발사관 3문 탐조등 5기 |
| 장갑 정보 | 현측: 7인치 (177.8mm) - 4인치 (101.6mm) KC강 갑판: 3인치 (76.2mm) 포탑: 7인치 (177.8mm) - 5인치 (127mm) 사령탑: 8인치 (203.2mm) 바베트: 125-180mm |
|---|---|
| 다른 정보 | 수평 방어 평탄부 2인치, 경사부 2인치 수선갑대 7인치 상갑대 5인치 포대 5인치 노출 포탑 7인치 |
| 1921년 | 11척 |
|---|---|
| 1922년 | 56ft 페데트 보트 (함재 수뢰정) 1척 40ft 소형 증기선 2척 40ft 내화정 1척 30ft 커터 4척 30ft 통선 2척 20ft 통선 1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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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마급 순양전함 -
이부키 (순양전함)
이부키는 일본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원래 구라마급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으나 증기 터빈 엔진 문제와 시험함 역할로 건조가 지연되었고, 태국 국왕 대관식 참석과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1923년에 폐함되었다. -
1907년 선박 -
도네 (방호순양함)
러일 전쟁 후 일본 해군이 자체 설계 능력을 입증하고자 엘스윅 크루저 요시노를 참고하여 건조한 2등 방호순양함 도네는 일본 순양함 중 왕복 기관을 탑재한 마지막 함선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중국 수역 경비 활동에 참여 후 1933년 격침되었다. -
1907년 선박 -
이부키 (순양전함)
이부키는 일본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원래 구라마급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으나 증기 터빈 엔진 문제와 시험함 역할로 건조가 지연되었고, 태국 국왕 대관식 참석과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1923년에 폐함되었다. -
일본의 순양전함 -
쓰쿠바 (순양전함)
쓰쿠바는 러일 전쟁 후 일본 해군이 건조한 쓰쿠바급 순양전함의 1번함으로, 일본 국내 설계 및 건조 최초의 주요 군함 중 하나이며, 305mm 포를 탑재하여 강력한 공격력을 갖췄으나 1917년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했다. -
일본의 순양전함 -
이코마 (순양전함)
이코마는 일본 제국 해군의 쓰쿠바급 순양전함 중 하나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아르헨티나 독립 100주년 기념 행사 참석을 위한 세계 일주 항해를 했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해체가 결정되었다.
2. 건조 배경 및 설계
1904년 러일 전쟁에 따른 임시 군사비로 예산이 성립되었다. 1905년 1월 31일,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 제조 훈령이 내려졌다. 같은 해 6월 11일, 일본 해군은 인호 장갑순양함의 이름을 ‘구라마’로 정하고, 첫 번째 장갑순양함은 이부키로 예정했다. 8월 23일, 인호 장갑순양함은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기공되었고, 1907년 10월 21일에 진수되었다. 진수식에는 메이지 천황의 황후(이후 쇼켄 황태후)가 참석했다. 이날부터 인호 장갑순양함은 제식 명칭을 ‘구라마’라고 부르고, 1등 순양함으로 분류했다. 1911년 2월 28일에 준공되었다.
계획 시점에서는 가토리급 전함에 준하는 포의 위력을 가진 고속함이었지만, 진수할 때쯤에는 드레드노트가 출시되면서 이미 구식함이 되어버렸다.
2.1. 기술적 문제
구라마는 더 강력한 출력을 내고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기어드 증기 터빈으로 설계되었지만, 엔진에 문제가 생겨 기존의 수직 삼단 팽창 왕복 기관으로 완성되었다. 구라마는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었다.
3. 함력
구라마는 1905년 6월 11일 일본 해군에 의해 인호 장갑순양함으로 명명되었고,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어 1907년 10월 21일에 진수되었다. 진수식에는 메이지 천황의 황후(이후 쇼켄 황태후)가 참석했다. 1911년 2월 28일에 준공되었으나,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인해 구식함이 되었다.
취역 직후, 조지 5세의 즉위 기념 관함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마무라 하야오 중장을 사령관으로 하는 파영 함대에 도네와 함께 편성되어 1911년 4월 1일 요코스카 항을 출항, 6월 24일 스핏헤드에서 열린 관함식에 참가한 후 11월 22일 요코스카로 귀환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태평양에서 영국 상선을 보호하고, 곤고, 히에이와 함께 독일령 캐롤라인 제도와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하기 위한 상륙 작전을 지원했다. 1914년 9월 14일에는 제1남견지대의 기함으로 마리아나 제도 및 캐롤라인 제도 점령 지원에 종사했다.
1915년 1월 17일 요코스카 군항에 귀항한 후, 5월 20일 제3전대 기함이 되었고, 12월 13일에는 제1함대 제2전대에 편입되어 이코마와 함께 편성되었다.
1916년 12월 1일 제2전대에서 제외되었고, 1917년 7월 23일 구레 해군 공창에서 대수리를 받았다. 1918년 4월 1일 제3함대 제5전대에 편입되었고, 5월 18일 훈련 사격 중 거제도 동해안에서 암초와 충돌하여 선체에 손상을 입었다.
시베리아 출병 지원에 참가하여 1919년 6월 22일 오미나토를 출항하여 러시아 연안을 항행하고 7월 17일 청진에 도착했다. 1920년에도 시베리아 출병 지원에 참가했다.
1921년 3월 하순에는 한반도 남부를 순항하며 해군 사상 보급 활동을 펼쳤고, 4월에는 오이타현에서 개최된 제14회 규슈 오키나와 8현 연합 공진회에 참가하여 오이타항과 우와지마항에 기항했다.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체결로 인해 폐기가 결정되었고, 1923년 9월 20일 제적되어 함정류별 등급표에서 삭제되었다. 1925년 1월 19일 고베 제강소에서 해체가 완료되었다.
3.1. 취역 초기
1905년 6월 11일, 일본 해군은 인호 장갑순양함의 이름을 ‘구라마’로 정하고, 첫 번째 장갑순양함은 이부키로 예정했다.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구라마는 1907년 10월 21일에 진수되었는데, 진수식에는 메이지 천황의 황후(이후 쇼켄 황태후)가 참석했다. 이날부터 인호 장갑순양함은 제식 명칭을 ‘구라마’라고 부르고 1등 순양함으로 분류되었다. 1911년 2월 28일에 준공되었으나, 건조 당시에는 가토리급 전함에 준하는 화력을 가진 고속함이었지만, 드레드노트가 출시되면서 구식함이 되어버렸다.
취역 직후 구라마는 조지 5세의 즉위 기념 관함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마무라 하야오 중장을 사령관으로 하는 파영 함대에 도네와 함께 편성되었다. 1911년 3월 하순, 시마무라 중장과 구라마, 도네의 승무원은 메이지 천황을 알현했다. 4월 1일, 두 척의 순양함(구라마, 도네)은 요코스카 항을 출항하여 6월 24일 스핏헤드에서 열린 관함식에 참가했다. 이후 11월 22일 요코스카로 귀환했다.
3.2. 제1차 세계 대전
구라마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의 연합국 참전을 지원했다. 태평양에서 영국 상선을 보호하고, 곤고, 히에이와 함께 독일령 캐롤라인 제도와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하기 위한 상륙 작전을 지원했다.
1914년 8월 23일, 일본은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9월 14일, 구라마(기함), 쓰쿠바, 아사마, 제16구축대(우미카제, 야마카제), 난카이마루, 엔카이마루로 제1남견지대를 편성했다. 9월 17일 후타미 항을 출항하여 통상 보호와 마리아나 제도 및 캐롤라인 제도 점령 지원에 종사했다.
1915년 1월 17일, 요코스카 군항에 귀항했다. 5월 7일에는 구레 항을 출항하여 양쯔강 방면의 경비를 수행하고, 5월 11일 중증포에 귀착했다. 5월 20일, 제3전대 기함이 되었다. 12월 13일, 제1함대 제2전대에 편입되었고, 제2전대는 구라마와 이코마 두 척으로 편성되었다. 12월 15일, 제2전대 기함이 되었다.
3.3. 전간기 및 시베리아 출병
1916년(다이쇼 5년) 12월 1일, 구라마는 제2전대에서 제외되었다. 1917년(다이쇼 6년) 7월 23일, 구레 해군 공창에서 대수리(기관 총검사) 및 빌지 킬 후단을 연장하는 공사가 실시되었다. 1918년(다이쇼 7년) 3월까지 대수리가 진행되었고, 3월 26일 수리 공시에서는 19.879노트의 속도를 기록했다.
1918년(다이쇼 7년) 4월 1일, 제3함대 제5전대에 편입되었다. 5월 18일, 훈련 사격 중 거제도 동해안에서 암초와 충돌하여 선체에 손상을 입고 침수되었다. 진해 요항부에서 응급 수리를 받은 후, 7월 25일 제5전대에서 제외되었다. 12월 1일, 제3함대 제5전대에 복귀하여 이부키, 미카사와 함께 3척으로 편성되었다.
시베리아 출병 지원에 참가하여, 1919년(다이쇼 8년) 6월 22일 오미나토를 출항하여 러시아 연안을 항행하고 7월 17일 청진에 도착했다. 8월 19일부터 25일 사이에는 이부키, 아카시와 함께 도야마현후시키, 이시카와현아나미즈, 와지마, 가나자와의 가나자와항을 방문했다. 가나자와에서는 승무원 약 500명이 상륙하여 가나자와시를 방문했고, 일반 공개에는 약 2만 명이 참가했다.
1919년(다이쇼 8년) 9월부터 10월까지 40cm 신호용 탐조등 2기를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설치했다. 전년에 이어 시베리아 출병 지원에 참가했다. 1920년(다이쇼 9년) 5월 22일 오타루를 출항하여 러시아 연안을 항해, 7월 17일 오타루에 귀착, 7월 25일 오타루를 출항하여 10월 10일 오도마리에 귀착, 10월 13일 오도마리를 출항하여 10월 20일 오타루에 귀착했다.
1920년(다이쇼 9년) 12월 1일, 제5전대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함대 편성은 없었다. 1921년(다이쇼 10년) 3월 하순에는 한반도 남부를 순항하며 해군 사상 보급 활동을 펼쳤다. 구레에서 310명을 태우고 출항하여 전투 훈련 및 함내 견학을 실시하고, 진해에 입항하여 승객들은 경성으로 이동했다. 부산에서 일반 공개를 실시하고, 벳푸를 거쳐 구레로 귀항했다.
1921년(다이쇼 10년) 4월에는 오이타현에서 개최된 제14회 규슈 오키나와 8현 연합 공진회에 참가하여 오이타항과 우와지마항에 기항했다. 오이타항에는 스오와 함께 정박했고, 우와지마항에는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정박했다. 이후 미쓰하마항을 거쳐 구레로 귀항했다.
3.4.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과 퇴역
1922년 2월 6일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의해 폐기가 결정되었다. 10월 시점에서 구라마는 제4 예비함이 되어 사세보 군항에 계류되었으며, 정원은 102명(함장과 기관장은 결원 예정)이었다.
1923년 9월 20일 제적되었고, 함정류별 등급표에서도 삭제되었다.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구라마의 병장 철거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1월 8일까지 어뢰 발사관의 육상 인양이 종료되었고, 이어서 11월 9일부터 29일까지 보일러의 육상 인양을 실시했다. 1925년 1월 19일, 고베 제강소에서 해체가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