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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혁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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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궁민혁명론은 일본 신좌익의 사상으로, 전공투 운동의 한계를 인식한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일본의 민족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들은 '궁민'에 대한 조직을 시도했으며, 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은 반일 테러를 감행했다. 오타 료 등은 아이누와 오키나와인을 반일 투쟁의 대상으로 보고, 아이누 해방 동맹과 류큐 독립당을 부추겨 독립을 선동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일본 해체를 위한 전쟁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 오타 료는 '류큐 혁명 15년 계획'을 통해 구체적인 침략 전쟁 계획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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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혁명론
궁민혁명론
유형정치이념
성격극좌
주창자가네시카 히데오
주요 내용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궁민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함
반제국주의
반스탈린주의
관련 인물다케우치 요시미
미야자키 마나부
가를로스 마리겔라
관련 사건
사건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
연속 기업 폭파 사건
관련 단체적군파

2. 궁민혁명론의 등장 배경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보았으나, 룸펜 프로레타리아트는 혁명 의욕이 없고 반혁명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경시했다. 다만 미하일 바쿠닌아나키스트들은 룸펜 프로레타리아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신좌익 활동가들은 고도 경제 성장으로 노동자들이 혁명성을 상실했다고 보고, 룸펜 프로레타리아트를 혁명의 주체로 하는 '궁민혁명론'을 주장했다.[1]

2. 1. 일본 신좌익의 궁민혁명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는 "노동자 계급"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최하층 계급은 너무 가난하여 하루 벌어 하루 살기가 벅차 혁명에 대한 의욕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반혁명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룸펜 프로레타리아트"로 경시했다. (무정부주의자미하일 바쿠닌 등은 룸펜 프로레타리아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본의 신좌익 활동가 중 "세계혁명낭인(게바리스타)"을 자칭하는 다케나카 로, 히라오카 마사아키, 오타 료 등은 새롭게 "궁민혁명론"을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는 "일반 노동자는 고도 경제 성장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면서 혁명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소외된 궁민(룸펜 프로레타리아트)이야말로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일본에서의 궁민의 구체적인 예로 아이누 민족, 일용직노동자, 재일 한국·조선인, 오키나와인, 부락민을 들고 있다.[1]

이 이론은 전공투 운동의 정체를 느끼고 있던 신좌익 활동가에게 강한 영향을 주어, 일본의 민족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2] 그리고 이러한 "궁민"에 대한 오르그를 시도하여 그들을 포섭하려 했다.[3]

3. 궁민혁명론과 반일 사상

궁민혁명론은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의 주체로 여겨졌던 노동자 계급이 아닌, 소외된 궁민(룸펜 프로레타리아트)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일본에서는 아이누 민족, 일용직노동자, 재일 한국·조선인, 오키나와인, 부락민 등이 궁민으로 제시되었다.[1]

이 이론은 전공투 운동의 정체를 느끼던 신좌익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일본의 민족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2] 이들은 "궁민"에 대한 오르그를 시도했다.[3]

궁민혁명론은 반일 테러를 감행한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반일 망국론으로 발전했다.

3. 1. 아이누와 오키나와에 대한 주목

오타 료는 자신의 저서 《다시, 변방 최심부로 향하여 퇴각하라!》에서 일본인은 '수천 년 동안의 황국 정신'에 젖어 있어 좌익조차 전향 가능성이 있지만, 아이누와 오키나와인은 일본에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일 투쟁의 활동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인이기는 하지만 약 100년 전에 편입된 '새로 붙은 백성'인 아이누와 오키나와인은 아직 '수천 년 동안의 황국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으므로, 반일 투쟁의 굳건한 활동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오타 료 등은 당시 결성된 지 얼마 안 된 아이누 해방 동맹과 류큐 독립당을 부추겨 '아이누 독립'과 '류큐 독립'을 선동했다. 그러나 궁민혁명론자의 진정한 목적은 아이누와 오키나와인의 민족 자결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해체 전쟁의 선봉으로 삼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이누·류큐 독립 후의 건국 비전으로 대일 침략 전쟁과 일본 전멸이 당연하다는 듯이 내걸렸다.

3. 2. 류큐 혁명 15년 계획

오타 료는 일본 국민이지만 약 100년 전에 편입된 "새로 붙은 백성"인 오키나와인은 "수천 년 동안의 황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아 반일 투쟁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라고 보았다.(유물사관)[1]

오타 료 등은 류큐 독립당을 부추겨 "류큐 독립"을 선동했지만, 진정한 목적은 오키나와인의 민족 자결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해체 전쟁의 선봉으로 삼는 것이었다. 류큐 독립 이후에는 대일 침략 전쟁과 일본 전멸을 목표로 했다.[1]

3. 2. 1. 계획 내용

오타 료는 "류큐 혁명 15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1]

  • '류큐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일장기, 천황의 초상화, 성조기를 공개적으로 소각한다.
  • 오키나와 현 내의 자위대 시설이나 자위대원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다.
  • '류큐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 오키나와 현민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다.
  • 자위대 내에 스파이망을 구축한다.
  • 지하 방송국을 설치한다.
  • 야마바루나 사키시마 제도에 '해방구'를 설치한다.
  • 오키나와 현 밖에서 '류큐 공화국'의 깃발 아래 테러를 개시한다.
  • 오키나와 주둔 주일 미군 내의 흑인 병사·군속을 조직화하여, 류큐 혁명의 동지로서 반란을 유도한다.
  • '류큐 공화국 임시 혁명 정부'를 수립한다.
  • '류큐 공화국 혁명군'에 의한 아마미 침략을 감행한다.
  • '류큐 공화국 혁명군'에 의한 해상 교통로를 차단한다.

참조

[1]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
[2] 서적 「当事者」の時代 光文社 2012
[3] 서적 なぜ日本の教育は間違うのか ~復興のための教育学~ 扶桑社 2012
[4] 간행물 「琉球共和国」独立の檄 情況出版 1971
[5]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
[6] 서적 「当事者」の時代 光文社 2012
[7] 서적 なぜ日本の教育は間違うのか ~復興のための教育学~ 扶桑社 2012
[8] 간행물 「琉球共和国」独立の檄 情況出版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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