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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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시다 마모루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코치로, 2025년부터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시작하여 도호쿠 복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를 거쳐 2006년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하여 2019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2020년부터 오릭스 버펄로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24년 시즌 종료 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선수 시절에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활약했고, 2010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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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마모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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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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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기시다 마모루 |
원어 이름 | 岸田 護 (기시다 마모루) |
출생일 | 1981년 5월 10일 |
출생지 | 오사카부 스이타시 |
포지션 | 투수 / 코치 / 감독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5년 |
드래프트 순위 | 대학·사회인 드래프트 3라운드 |
첫 출장 | 2006년 5월 30일 |
최종 출장 | 2019년 9월 29일 (은퇴 경기) |
NPB 데뷔 리그 | NPB |
NPB 데뷔 연도 | 2006년 |
NPB 데뷔 팀 | 오릭스 버펄로스 |
NPB 최종 리그 | NPB |
NPB 최종 연도 | 2019년 |
NPB 최종 팀 | 오릭스 버펄로스 |
등번호 | 71 |
신장 | 180cm |
체중 | 80kg |
NPB 통산 승패 | 44승 30패 |
NPB 통산 평균 자책점 | 2.99 |
NPB 통산 탈삼진 | 730 |
NPB 통산 세이브 | 63 |
선수 경력 | |
아마추어 | 리세이샤 고등학교 도호쿠 복지 대학 NTT 서일본 |
프로 | 오릭스 버펄로스 (2006년 ~ 2019년) |
코치/감독 경력 | |
코치 | 오릭스 버펄로스 (2020년 ~ 2024년) |
감독 | 오릭스 버펄로스 (2025년 ~ 현재) |
2. 프로 입단 전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역 소년 야구 팀 "다카노다이 버드"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3학년부터 투수를 맡았다.[3]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3]
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 후 경식 야구부에 입부하여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3] 같은 학교는 첫 고시엔 출전을 달성했지만, 본인의 등판 기회는 없었다.[3] 그 다음 해에는 제80회 기념 대회에서 오사카를 북과 남으로 나누어 대표교를 결정했지만, 북지구 3회전에서 오사카 부립 사쿠라즈카 고등학교에 패하여 2년 연속 출전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호쿠 복지 대학에 진학했다.[3] 1년 위에 키타니 히사미, 하시모토 켄타로가 있었으며, 4학년부터 에이스가 되어, 봄에는 MVP,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고 대학 선수권에서는 후쿠다 사토시 등과 함께 베스트 4 진출에 공헌했다.[3]
사회인 야구의 NTT 니시니혼에 입사, 1년차에 제75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3] 2005년의 제76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출전, 제32회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 준우승에 공헌하여, 같은 해 가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버펄로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3] 등번호는 '''14'''번.[3] 또한, 동료 야마자키 타카히로, 후지이 아츠시, 사이토 신스케, 와키야 료타 등도 이때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
2. 1. 유소년 시절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역 소년 야구 팀 "다카노다이 버드"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3학년부터 투수를 맡았다.[3]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3]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 후 경식 야구부에 입부하여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3] 리세이샤 고등학교는 처음으로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지만 본인은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3] 이듬해 제80회 기념 대회에서는 오사카를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나뉘어 대표 학교를 결정했지만, 북부 지역 3회전에서 구보 야스토모가 소속된 간사이 대학 제1 고등학교에 패해 2년 연속 출전은 무산되었다.
고교 졸업 후 도호쿠 복지대학에 진학했다.[3] 1년 위에 키타니 히사미, 하시모토 켄타로가 있었으며, 4학년부터 에이스가 되어, 봄에는 MVP,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고 대학 선수권에서는 후쿠다 사토시 등과 함께 베스트 4 진출에 공헌했다.[3]
사회인 야구의 NTT 니시니혼에 입사, 1년차에 제75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3] 2005년의 제76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출전, 제32회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 준우승에 공헌하여, 같은 해 가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버펄로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3] 등번호는 '''14'''번.[3] 또한, 동료 야마자키 타카히로, 후지이 아츠시, 사이토 신스케, 와키야 료타 등도 이때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
2. 2. 고등학교 시절
기시다 마모루는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역 소년 야구팀 "다카노다이 버드"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3학년 때부터 투수를 맡았다.[3]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 후 경식 야구부에 입단하여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 리세이샤 고등학교는 처음으로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지만, 기시다 본인은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3] 이듬해 제80회 기념 대회에서는 오사카를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나뉘어 대표 학교를 결정했지만, 북부 지역 3회전에서 오사카 부립 사쿠라즈카 고등학교에 패해 2년 연속 고시엔 대회 출전은 무산되었다.
고교 졸업 후 도호쿠 복지대학에 진학했다. 4학년부터 에이스가 되어, 봄에는 MVP,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고 대학 선수권에서는 후쿠다 사토시 등과 함께 베스트 4 진출에 공헌했다.
2. 3. 대학교 시절
기시다 마모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3학년 때부터 투수를 맡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고, 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야구부에 입단하여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 리세이샤 고등학교는 고시엔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했지만, 기시다 본인은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듬해 제80회 기념 대회에서는 오사카 북부 지역 결승에서 구보 야스토모가 소속된 간사이 대학 제1 고등학교에 패하며 2년 연속 고시엔 대회 출전은 무산되었다.고교 졸업 후 도호쿠 복지대학에 진학하여 4학년 때부터 에이스가 되었고, 봄에는 MVP와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대학 선수권에서는 후쿠다 사토시 등과 함께 팀을 베스트 4로 이끌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회인 야구 팀인 NTT 서일본에 입사하여 제75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제76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고, 제32회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2. 4. 사회인 야구 시절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역 소년 야구 팀 "다카노다이 버드"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3학년부터 투수를 맡았다.[3]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3]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 후 경식 야구부에 입부하여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3] 리세이샤 고등학교는 처음으로 고시엔 대회의 출전이 이루어졌지만 본인은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고[3] 이듬해 제80회 기념 대회에서는 오사카를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나뉘어 대표 학교를 결정했지만 북부 지역의 결승으로 구보 야스토모가 소속된 간사이 대학 제1 고등학교한테 패해 2년 연속 출전은 무산되었다.
고교 졸업 후 도호쿠 복지대학을 거쳐[3] 사회인 야구 팀인 NTT 서일본에 입사, 1년차인 제75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고[3] 2005년 제76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는 등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3] 2005년 가을에 있은 대학·사회인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버펄로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그의 동료인 야마자키 다카히로, 후지이 아쓰시, 사이토 신스케, 와키야 료타 등도 이 때 지명되어 프로 구단에 들어갔다.[3]
3. 프로 선수 시절
5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을 했다. 시즌 최종전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시오카와 타츠야에게 프로 첫 홈런이 되는 결승 솔로 홈런을 맞고, 8회까지 1실점으로 막았지만,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2군에서는 웨스턴 리그에서 선발과 릴리프 모두 기용되었으며, 3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80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9명 중 유일하게 피홈런 0개였으며, 사사구도 두 번째로 적었다.
2007년에는 1군에 정착했다. 4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8회 초에 아오노 다케시에게 역전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그 뒤 그레그 라로카가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날려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에 강판했을 때의 롱 릴리프로 많이 등판하여, 이후 실점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호투를 보였다. 시즌 후반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 1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승으로 승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 2점대로 126이닝을 던져 115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
2008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 진입이 기대되었지만, 개막 직전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이탈했다. 4월 22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첫 선발 등판을 했으며, 5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 3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5월 17일에 오른쪽 허벅지 내전근 부상으로 이탈했다. 8월 29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복귀 후 첫 등판하여 3연승으로 팀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 컸고, 투구 이닝은 전년도의 절반 가까이 줄어 4승으로 마무리했다. 이 4승은 모두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 거두었다.
2009년에는 과제였던 부상 극복을 위해, 오프 시즌에 동료 오히키 게이지의 친가인 카미스무치 신사에서 액땜을 받고, 요가에도 참여했다. 그 덕분에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하여 4월에 프로 첫 완봉승을 포함한 3연승을 거두며 한때 투수 부문 3관왕 상위에 오르는 안정적인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5월 10일에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후 7월 4일에 전력에 복귀하여 착실하게 승수를 쌓았고, 최종 등판 경기인 10월 8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개인 첫 2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하지만, 규정 투구 이닝에는 간신히 미치지 못했고, 자신이 이탈한 사이에 팀은 5월에 9연패, 6월에 7연패를 기록하는 등 대규모 연패를 반복한 것도 있어,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이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
2010년에는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했다. 개막 3차전에서 4회부터 릴리프로 등판하여, 6회 1실점의 호투로 끝까지 던져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선발로서는 중요한 순간에 버티지 못하는 투구가 다소 눈에 띄었고, 5월 9일 롯데와의 경기부터 릴리프로 전향했다. 더욱이, 개막 초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존 레스터가 안정감이 부족한 투구 내용을 보이게 되자, 6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하고, 클로저로 지명되었다[4]。마찬가지로 릴리프로 전향한 히라노 요시히사와 함께 승리 방정식을 구축하여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고, 리그전 재개 후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다. 선발로서는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85, 1승 4패, WHIP 1.38, 탈삼진율 6.61을 기록했지만, 구원 투수로는 51경기에 등판하여, 세이브 수는 늘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 2.18, 5승 1패, 11홀드, 12세이브, WHIP 1.16, 탈삼진율 9.43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 시즌에는 히다카 고우를 대신하여 선수 회장에 취임했다. 일반 여성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2011년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개막 1군에 합류했다. 전년도에 이어 승리 방정식으로 셋업맨 히라노 요시히사에 이어 리그 2위인 68경기에 등판했고, NPB 시즌 최다 기록인 66차례의 교체 완료, 닛폰햄의 다케다 히사시에 이어 리그 2위인 33세이브, 릴리프임에도 79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리드를 지키는 상황에서의 실점이나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안타를 맞는 등 6패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61과 피안타 66개, 자책점도 23개 등으로 안정감 측면에서 과제가 보이는 시즌이 되었다. 선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는 평균자책점 2.00으로 2승, 2위 닛폰햄에게는 2패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 0.93으로 선전하는 한편, 시즌 중 여러 번 3위 다툼을 했던 라쿠텐과는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40, 자책점 6으로 2패를 기록하는 등 고전했다. 또한, 이 해에는 감독 추천으로 개인 첫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제1전 9회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타자 연속 삼진, 대학 시절을 보낸 도호쿠에서의 제3전에서도 9회에 등판하여, 피안타 1개로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5]。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1억 1000만 엔에 서명했고, 불과 1년 만에 선수 회장을 스즈키 후미히로에게 넘겨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 1월 22일 오사카부이바라키시에서 열린 행사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6], 메이저 도전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일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부 해결해야 납득하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7]。이 해에도 개막부터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고, 5월에는 1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50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6월에는 10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는 등, 다른 구단도 마무리 투수가 부진하거나 부상 등으로 고정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난한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8월 19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1점 뒤진 9회 초에 등판했지만, 견제사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았지만 하세가와 유야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4연타를 허용하며 3실점, 이 경기 이후에는 히라노 요시히사와 보직을 바꿔 중간 계투로 전환했다[8]。중간 계투로 전환된 후에는 3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9월 1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투구 중 오른쪽 허벅지 내전근 부상을 당해 다음 날 등록 말소[9]。본거지 최종전이 된 10월 7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복귀 등판하여, 최종 이닝을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 해에는 52경기에 등판하여 4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42의 성적을 남겼다.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는 전술한 경기 외에도, 5월 10일 경기에서 3점 리드인 9회 초 2사에서 3연타를 허용하여, 마츠나카 노부히코에게 통산 350홈런이 되는 동점 2점 홈런을 맞은 것도 있어, 7경기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8.59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선발 재전환을 목표로 했지만, 2월 캠프 중에 왼쪽 허벅지 뒤쪽 근육 파열[10]로 조절이 늦어져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팀은 개막전 로테이션의 롯데와의 경기에서 두 번이나 연장 12회를 치르는 등, 중간 계투 투수를 투입했기 때문에, 키시다를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중간 계투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11]。8월 13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8회에 중전 안타를 잡으려다 점프했을 때 오른발 발등을 다쳐 등록 말소. 검사 결과, 리스 프랑 관절 인대 손상으로 판명되어[12], 시즌 중 복귀는 절망적이었다.
2014년에는 4년 만의 선발 첫 등판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후 성적이 좋지 않아 다시 중간 계투로 배치 전환되었다. 주로 승리 패턴 투수 앞이나 휴식 시 등 백업 요원으로서 55경기에 등판하여 자기 신기록인 12홀드를 기록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다음 해부터 3년 계약을 체결했다[13]。
2015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초반 부진했지만, 다른 릴리프진이 부진하면서 중반 이후 승리 패턴에 정착하여 15홀드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16경기 등판에 6홀드에 그쳤다. 2017년에는 4경기에 등판했다. 선발로 전환했지만, 선발로 던진 것은 4월 29일 소프트뱅크전뿐이었고, 나머지 3경기는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14] 2018년,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는 24경기 등판에서 2승 0패,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12세이브를 기록했다. 통산 투구 이닝은 25이닝 1/3이었다.[15] 2019년, 5월 5일에 오세안 버팔로스 스타디움 마이시마에서 열린 라쿠텐과의 2군 경기가 공식전 첫 등판이 되었다. 라쿠텐 하시모토 이토를 전 구종 스트레이트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16] 9월 29일, 교세라 돔에서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은퇴 경기가 열렸고, 익숙한 9회 초에 등판했다. 타카다 토모키를 모두 직구로 3구 삼진으로 처리하며, 현역 생활을 마쳤다. 경기 후에는 은퇴 기념식이 열렸다.[17] 전 팀 동료인 한신의 니시 유키, 닛폰햄의 카네코 카즈히로 등도 키시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18]
3. 1.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 (2006-2019)
5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을 했다. 시즌 최종전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시오카와 타츠야에게 프로 첫 홈런이 되는 결승 솔로 홈런을 맞고, 8회까지 1실점으로 막았지만,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2군에서는 웨스턴 리그에서 선발과 릴리프 모두 기용되었으며, 3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80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9명 중 유일하게 피홈런 0개였으며, 사사구도 두 번째로 적었다.2007년에는 1군에 정착했다. 4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8회 초에 아오노 다케시에게 역전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그 뒤 그레그 라로카가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날려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에 강판했을 때의 롱 릴리프로 많이 등판하여, 이후 실점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호투를 보였다. 시즌 후반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 1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승으로 승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 2점대로 126이닝을 던져 115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 진입이 기대되었지만, 개막 직전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이탈했다. 4월 22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첫 선발 등판을 했으며, 5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 3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5월 17일에 오른쪽 허벅지 내전근 부상으로 이탈했다. 8월 29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복귀 후 첫 등판하여 3연승으로 팀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 컸고, 투구 이닝은 전년도의 절반 가까이 줄어 4승으로 마무리했다. 이 4승은 모두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 거두었다.
과제였던 부상 극복을 위해, 오프 시즌에 동료 오히키 게이지의 친가인 카미스무치 신사에서 액땜을 받고, 요가에도 참여했다. 그 덕분에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하여 4월에 프로 첫 완봉승을 포함한 3연승을 거두며 한때 투수 부문 3관왕 상위에 오르는 안정적인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5월 10일에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후 7월 4일에 전력에 복귀하여 착실하게 승수를 쌓았고, 최종 등판 경기인 10월 8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개인 첫 2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하지만, 규정 투구 이닝에는 간신히 미치지 못했고, 자신이 이탈한 사이에 팀은 5월에 9연패, 6월에 7연패를 기록하는 등 대규모 연패를 반복한 것도 있어,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이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
2010년에는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했다. 개막 3차전에서 4회부터 릴리프로 등판하여, 6회 1실점의 호투로 끝까지 던져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선발로서는 중요한 순간에 버티지 못하는 투구가 다소 눈에 띄었고, 5월 9일 롯데와의 경기부터 릴리프로 전향했다. 더욱이, 개막 초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존 레스터가 안정감이 부족한 투구 내용을 보이게 되자, 6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하고, 클로저로 지명되었다[4]。마찬가지로 릴리프로 전향한 히라노 요시히사와 함께 승리 방정식을 구축하여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고, 리그전 재개 후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다. 선발로서는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85, 1승 4패, WHIP 1.38, 탈삼진율 6.61을 기록했지만, 구원 투수로는 51경기에 등판하여, 세이브 수는 늘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 2.18, 5승 1패, 11홀드, 12세이브, WHIP 1.16, 탈삼진율 9.43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 시즌에는 히다카 고우를 대신하여 선수 회장에 취임했다. 일반 여성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2011년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개막 1군에 합류했다. 전년도에 이어 승리 방정식으로 셋업맨 히라노 요시히사에 이어 리그 2위인 68경기에 등판했고, NPB 시즌 최다 기록인 66차례의 교체 완료, 닛폰햄의 다케다 히사시에 이어 리그 2위인 33세이브, 릴리프임에도 79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5] 하지만, 리드를 지키는 상황에서의 실점이나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안타를 맞는 등 6패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61과 피안타 66개, 자책점도 23개 등으로 안정감 측면에서 과제가 보이는 시즌이 되었다. 선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는 평균자책점 2.00으로 2승, 2위 닛폰햄에게는 2패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 0.93으로 선전하는 한편, 시즌 중 여러 번 3위 다툼을 했던 라쿠텐과는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40, 자책점 6으로 2패를 기록하는 등 고전했다.
또한, 이 해에는 감독 추천으로 개인 첫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제1전 9회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타자 연속 삼진, 대학 시절을 보낸 도호쿠에서의 제3전에서도 9회에 등판하여, 피안타 1개로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5]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1억 1000만 엔에 서명했고, 불과 1년 만에 선수 회장을 스즈키 후미히로에게 넘겨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 1월 22일 오사카부이바라키시에서 열린 행사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6], 메이저 도전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일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부 해결해야 납득하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7]。이 해에도 개막부터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고, 5월에는 1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50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6월에는 10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는 등, 다른 구단도 마무리 투수가 부진하거나 부상 등으로 고정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난한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8월 19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1점 뒤진 9회 초에 등판했지만, 견제사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았지만 하세가와 유야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4연타를 허용하며 3실점, 이 경기 이후에는 히라노 요시히사와 보직을 바꿔 중간 계투로 전환했다[8]。중간 계투로 전환된 후에는 3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9월 1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투구 중 오른쪽 허벅지 내전근 부상을 당해 다음 날 등록 말소[9]。본거지 최종전이 된 10월 7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복귀 등판하여, 최종 이닝을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 해에는 52경기에 등판하여 4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42의 성적을 남겼다.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는 전술한 경기 외에도, 5월 10일 경기에서 3점 리드인 9회 초 2사에서 3연타를 허용하여, 마츠나카 노부히코에게 통산 350홈런이 되는 동점 2점 홈런을 맞은 것도 있어, 7경기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8.59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선발 재전환을 목표로 했지만, 2월 캠프 중에 왼쪽 허벅지 뒤쪽 근육 파열[10]로 조절이 늦어져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팀은 개막전 로테이션의 롯데와의 경기에서 두 번이나 연장 12회를 치르는 등, 중간 계투 투수를 투입했기 때문에, 키시다를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중간 계투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11]。8월 13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8회에 중전 안타를 잡으려다 점프했을 때 오른발 발등을 다쳐 등록 말소. 검사 결과, 리스 프랑 관절 인대 손상으로 판명되어[12], 시즌 중 복귀는 절망적이었다.
4년 만의 선발 첫 등판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후 성적이 좋지 않아 다시 중간 계투로 배치 전환되었다. 주로 승리 패턴 투수 앞이나 휴식 시 등 백업 요원으로서 55경기에 등판하여 자기 신기록인 12홀드를 기록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다음 해부터 3년 계약을 체결했다[13]。
2015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초반 부진했지만, 다른 릴리프진이 부진하면서 중반 이후 승리 패턴에 정착하여 15홀드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16경기 등판에 6홀드에 그쳤다. 2017년에는 4경기에 등판했다. 선발로 전환했지만, 선발로 던진 것은 4월 29일 소프트뱅크전뿐이었고, 나머지 3경기는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14] 2018년,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는 24경기 등판에서 2승 0패,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12세이브를 기록했다. 통산 투구 이닝은 25이닝 1/3이었다.[15] 2019년, 5월 5일에 오세안 버팔로스 스타디움 마이시마에서 열린 라쿠텐과의 2군 경기가 공식전 첫 등판이 되었다. 라쿠텐 하시모토 이토를 전 구종 스트레이트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16] 9월 29일, 교세라 돔에서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은퇴 경기가 열렸고, 익숙한 9회 초에 등판했다. 타카다 토모키를 모두 직구로 3구 삼진으로 처리하며, 현역 생활을 마쳤다. 경기 후에는 은퇴 기념식이 열렸다.[17] 전 팀 동료인 한신의 니시 유키, 닛폰햄의 카네코 카즈히로 등도 키시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18]
3. 1. 1. 2006년
5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을 했다. 시즌 최종전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시오카와 타츠야에게 프로 첫 홈런이 되는 결승 솔로 홈런을 맞고, 8회까지 1실점으로 막았지만,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4] 2군에서는 웨스턴 리그에서 선발과 릴리프 모두 기용되었으며, 3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80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9명 중 유일하게 피홈런 0개였으며, 사사구도 두 번째로 적었다.3. 1. 2. 2007년
2007년에는 1군에 정착했다. 4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8회 초에 아오노 다케시에게 역전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그 뒤 그레그 라로카가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날려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에 강판했을 때의 롱 릴리프로 많이 등판하여, 이후 실점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호투를 보였다. 시즌 후반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 1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승으로 승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 2점대로 126이닝을 던져 115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3. 1. 3. 2008년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 진입이 기대되었지만, 개막 직전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이탈했다. 4월 22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첫 선발 등판을 했으며, 5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 3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5월 17일에 오른쪽 허벅지 내전근 부상으로 이탈했다. 8월 29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복귀 후 첫 등판하여 3연승으로 팀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 컸고, 투구 이닝은 전년도의 절반 가까이 줄어 4승으로 마무리했다. 이 4승은 모두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 거두었다.3. 1. 4. 2009년
과제였던 부상 극복을 위해, 오프 시즌에 동료 오히키 게이지의 친가인 카미스무치 신사에서 액땜을 받고, 요가에도 참여했다. 그 덕분에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하여 4월에 프로 첫 완봉승을 포함한 3연승을 거두며 한때 투수 부문 3관왕 상위에 오르는 안정적인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5월 10일에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후 7월 4일에 전력에 복귀하여 착실하게 승수를 쌓았고, 최종 등판 경기인 10월 8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개인 첫 2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하지만, 규정 투구 이닝에는 간신히 미치지 못했고, 자신이 이탈한 사이에 팀은 5월에 9연패, 6월에는 7연패를 기록하는 등 대규모 연패를 반복한 것도 있어,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이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3. 1. 5. 2010년
2010년에는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했다. 개막 3차전에서 4회부터 릴리프로 등판하여, 6회 1실점의 호투로 끝까지 던져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선발로서는 중요한 순간에 버티지 못하는 투구가 다소 눈에 띄었고, 5월 9일 롯데와의 경기부터 릴리프로 전향했다. 더욱이, 개막 초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존 레스터가 안정감이 부족한 투구 내용을 보이게 되자, 6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하고, 클로저로 지명되었다[4]。마찬가지로 릴리프로 전향한 히라노 요시히사와 함께 승리 방정식을 구축하여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고, 리그전 재개 후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다. 선발로서는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85, 1승 4패, WHIP 1.38, 탈삼진율 6.61을 기록했지만, 구원 투수로는 51경기에 등판하여, 세이브 수는 늘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 2.18, 5승 1패, 11홀드, 12세이브, WHIP 1.16, 탈삼진율 9.43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 시즌에는 히다카 고우를 대신하여 선수 회장에 취임했다. 일반 여성과의 결혼을 발표했다.3. 1. 6. 2011년
2011년에도 마무리 투수로서 개막 1군에 합류했다. 전년도에 이어 승리 방정식으로 셋업맨 히라노 요시히사에 이어 리그 2위인 68경기에 등판했고, NPB 시즌 최다 기록인 66차례의 교체 완료, 닛폰햄의 다케다 히사시에 이어 리그 2위인 33세이브, 릴리프임에도 79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5] 하지만, 리드를 지키는 상황에서의 실점이나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안타를 맞는 등 6패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61과 피안타 66개, 자책점도 23개 등으로 안정감 측면에서 과제가 보이는 시즌이 되었다. 선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는 평균자책점 2.00으로 2승, 2위 닛폰햄에게는 2패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 0.93으로 선전하는 한편, 시즌 중 여러 번 3위 다툼을 했던 라쿠텐과는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40, 자책점 6으로 2패를 기록하는 등 고전했다.또한, 이 해에는 감독 추천으로 개인 첫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제1전 9회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타자 연속 삼진, 대학 시절을 보낸 도호쿠에서의 제3전에서도 9회에 등판하여, 피안타 1개로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5]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1억 1000만 엔에 서명했고, 불과 1년 만에 선수 회장을 스즈키 후미히로에게 넘겨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3. 1. 7. 2012년
2012년 1월 22일 오사카부이바라키시에서 열린 행사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6], 메이저 도전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일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부 해결해야 납득하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7]。이 해에도 개막부터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고, 5월에는 1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50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6월에는 10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는 등, 다른 구단도 마무리 투수가 부진하거나 부상 등으로 고정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난한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8월 19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1점 뒤진 9회 초에 등판했지만, 견제사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았지만 하세가와 유야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4연타를 허용하며 3실점, 이 경기 이후에는 히라노 요시히사와 보직을 바꿔 중간 계투로 전환했다[8]。중간 계투로 전환된 후에는 3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9월 1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투구 중 오른쪽 허벅지 내전근 부상을 당해 다음 날 등록 말소[9]。본거지 최종전이 된 10월 7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복귀 등판하여, 최종 이닝을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 해에는 52경기에 등판하여 4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42의 성적을 남겼다.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는 전술한 경기 외에도, 5월 10일 경기에서 3점 리드인 9회 초 2사에서 3연타를 허용하여, 마츠나카 노부히코에게 통산 350홈런이 되는 동점 2점 홈런을 맞은 것도 있어, 7경기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8.59를 기록했다.3. 1. 8. 2013년
2013년에는 선발 재전환을 목표로 했지만, 2월 캠프 중에 왼쪽 허벅지 뒤쪽 근육 파열[10]로 조절이 늦어져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팀은 개막전 로테이션의 롯데와의 경기에서 두 번이나 연장 12회를 치르는 등, 중간 계투 투수를 투입했기 때문에, 키시다를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중간 계투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11]。8월 13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8회에 중전 안타를 잡으려다 점프했을 때 오른발 발등을 다쳐 등록 말소. 검사 결과, 리스 프랑 관절 인대 손상으로 판명되어[12], 시즌 중 복귀는 절망적이었다.3. 1. 9. 2014년
4년 만의 선발 첫 등판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후 성적이 좋지 않아 다시 중간 계투로 배치 전환되었다. 주로 승리 패턴 투수 앞이나 휴식 시 등 백업 요원으로서 55경기에 등판하여 자기 신기록인 12홀드를 기록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다음 해부터 3년 계약을 체결했다[13]。3. 1. 10. 2015-2019년
2015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초반 부진했지만, 다른 릴리프진이 부진하면서 중반 이후 승리 패턴에 정착하여 15홀드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16경기 등판에 6홀드에 그쳤다. 2017년에는 4경기에 등판했다. 선발로 전환했지만, 선발로 던진 것은 4월 29일 소프트뱅크전뿐이었고, 나머지 3경기는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14] 2018년,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는 24경기 등판에서 2승 0패,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12세이브를 기록했다. 통산 투구 이닝은 25이닝 1/3이었다.[15] 2019년, 5월 5일에 오세안 버팔로스 스타디움 마이시마에서 열린 라쿠텐과의 2군 경기가 공식전 첫 등판이 되었다. 라쿠텐 하시모토 이토를 전 구종 스트레이트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16] 9월 29일, 교세라 돔에서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은퇴 경기가 열렸고, 익숙한 9회 초에 등판했다. 타카다 토모키를 모두 직구로 3구 삼진으로 처리하며, 현역 생활을 마쳤다. 경기 후에는 은퇴 기념식이 열렸다.[17] 전 팀 동료인 한신의 니시 유키, 닛폰햄의 카네코 카즈히로 등도 키시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18]4. 지도자 경력
기시다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시즌 동안 일본 프로 야구의 오릭스 버펄로스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1] 2020년 10월 15일, 오프 시즌에 오릭스 2군 투수 코치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19] 등번호는 '''71'''이었다.[19] 2021년부터는 코치의 1군·2군 구분이 없어짐에 따라, 기시다는 투수 코치가 되었다.[20][21]
2024년 10월 9일, 같은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나카지마 사토시의 후임으로, 2025년 시즌부터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2] 구단이 1989년 한큐에서 오릭스가 된 이후 처음으로, 타 구단 선수 경험 및 지도 경험이 없는 완전한 자체 육성 출신 1군 감독이며,[22] 오릭스 버펄로스의 선수로 재적 경험이 있는 최초의 감독이다.
4. 1. 오릭스 버펄로스 코치 (2020-2024)
기시다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시즌 동안 일본 프로 야구의 오릭스 버펄로스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1] 2020년 10월 15일, 오프 시즌에 오릭스 2군 투수 코치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19] 등번호는 '''71'''이었다.[19] 2021년부터는 코치의 1군·2군 구분이 없어짐에 따라, 기시다는 투수 코치가 되었다.[20][21]4. 2. 오릭스 버펄로스 감독 (2025-)
기시다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시즌 동안 일본 프로 야구의 오릭스 버펄로스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 2024년 10월 9일, 기시다가 버펄로스의 새로운 감독이 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1] 2025년 시즌부터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2] 구단이 1989년 한큐에서 오릭스가 된 이후 처음으로, 타 구단 선수 경험 및 지도 경험이 없는 완전한 자체 육성 출신 1군 감독이며,[22] 오릭스 버팔로스의 선수로 재적 경험이 있는 최초의 감독이다.5. 플레이 스타일
던질 때에 목을 조금 기울이면서 천천히 다리를 올려 날카롭게 팔을 흔드는 독특한 폼으로부터, 최고 속도 152km/h의 바로 앞에서 성장하는 속구와 세로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을 축으로 하여 커브나 슈트도 섞는다.[23][24][25] 포크볼을 던질 수는 없지만 대신에 체인지업을 포크볼과 같이 자각해서 다루고 있다고 하였다.[26]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오릭스의 감독을 맡았던 오카다 아키노부는 2010년 시즌 도중부터 기시다를 마무리로 맡긴 경위에 대해, "기시다에 관해서는, 내년부터 마무리 투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팀 상황을 고려하여, 그 단계에서 마무리를 맡게 했다"고 말하며, 처음부터 기시다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할 의향을 분명히 했다.[27]
6.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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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성적 | |||||||||||||||||||||||||
---|---|---|---|---|---|---|---|---|---|---|---|---|---|---|---|---|---|---|---|---|---|---|---|---|---|
연도 | 구단 | 경기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고의4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2006 | 오릭스 | 6 | 1 | 0 | 0 | 0 | 0 | 0 | 1 | 0 | .000 | 51 | 13.1 | 11 | 3 | 2 | 0 | 0 | 10 | 0 | 0 | 4 | 4 | 2.70 | 0.99 |
2007 | 39 | 11 | 0 | 0 | 0 | 4 | 3 | 0 | 3 | .571 | 516 | 126.0 | 124 | 7 | 24 | 2 | 4 | 115 | 5 | 0 | 46 | 41 | 2.93 | 1.21 | |
2008 | 12 | 10 | 0 | 0 | 0 | 4 | 1 | 0 | 1 | .800 | 272 | 67.1 | 70 | 7 | 7 | 0 | 1 | 58 | 1 | 0 | 23 | 22 | 2.94 | 1.16 | |
2009 | 19 | 19 | 3 | 2 | 1 | 10 | 4 | 0 | 0 | .714 | 561 | 139.1 | 134 | 10 | 20 | 0 | 3 | 124 | 3 | 0 | 53 | 48 | 3.10 | 1.11 | |
2010 | 57 | 6 | 2 | 0 | 0 | 6 | 5 | 12 | 11 | .545 | 440 | 104.2 | 107 | 6 | 24 | 2 | 1 | 96 | 4 | 1 | 42 | 38 | 3.27 | 1.25 | |
2011 | 68 | 0 | 0 | 0 | 0 | 5 | 6 | 33 | 0 | .455 | 289 | 69.0 | 66 | 5 | 15 | 3 | 1 | 74 | 2 | 0 | 23 | 20 | 2.61 | 1.17 | |
2012 | 52 | 0 | 0 | 0 | 0 | 4 | 2 | 18 | 3 | .667 | 214 | 52.0 | 49 | 5 | 13 | 4 | 0 | 49 | 3 | 1 | 15 | 14 | 2.42 | 1.19 | |
2013 | 37 | 0 | 0 | 0 | 0 | 3 | 2 | 0 | 11 | .600 | 191 | 46.2 | 43 | 3 | 7 | 0 | 0 | 53 | 2 | 0 | 16 | 11 | 2.12 | 1.07 | |
2014 | 55 | 4 | 0 | 0 | 0 | 4 | 3 | 0 | 12 | .571 | 326 | 80.1 | 65 | 8 | 20 | 0 | 2 | 67 | 4 | 0 | 33 | 30 | 3.36 | 1.06 | |
2015 | 50 | 0 | 0 | 0 | 0 | 4 | 3 | 0 | 15 | .571 | 213 | 52.2 | 46 | 2 | 13 | 0 | 1 | 54 | 0 | 0 | 17 | 15 | 2.56 | 1.12 | |
2016 | 16 | 0 | 0 | 0 | 0 | 0 | 0 | 0 | 6 | ---- | 66 | 13.2 | 20 | 4 | 6 | 0 | 0 | 11 | 1 | 0 | 13 | 12 | 7.90 | 1.90 | |
2017 | 4 | 1 | 0 | 0 | 0 | 0 | 0 | 0 | 0 | ---- | 27 | 6.0 | 5 | 1 | 3 | 0 | 1 | 4 | 0 | 0 | 2 | 2 | 3.00 | 1.33 | |
2018 | 17 | 0 | 0 | 0 | 0 | 0 | 0 | 0 | 1 | ---- | 59 | 15.1 | 13 | 0 | 2 | 0 | 0 | 14 | 0 | 0 | 4 | 4 | 2.35 | 0.98 | |
2019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1 | 0.1 | 0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00 | 0.00 | |
통산: 14년 | 433 | 52 | 5 | 2 | 1 | 44 | 30 | 63 | 63 | .595 | 3226 | 786.2 | 753 | 61 | 156 | 11 | 14 | 730 | 25 | 2 | 291 | 261 | 2.99 | 1.16 |
수비 성적 | |||||||
---|---|---|---|---|---|---|---|
연도 | 구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2006 | 오릭스 | 6 | 2 | 1 | 0 | 0 | 1.000 |
2007 | 39 | 9 | 14 | 1 | 1 | .958 | |
2008 | 12 | 4 | 15 | 1 | 2 | .950 | |
2009 | 19 | 7 | 23 | 0 | 2 | 1.000 | |
2010 | 57 | 6 | 13 | 1 | 1 | .950 | |
2011 | 68 | 3 | 7 | 1 | 0 | .909 | |
2012 | 52 | 1 | 11 | 0 | 0 | 1.000 | |
2013 | 37 | 3 | 4 | 1 | 1 | .875 | |
2014 | 55 | 7 | 18 | 1 | 1 | .962 | |
2015 | 50 | 2 | 7 | 0 | 0 | 1.000 | |
2016 | 16 | 3 | 1 | 0 | 0 | 1.000 | |
2017 | 4 | 0 | 2 | 0 | 0 | 1.000 | |
2018 | 17 | 1 | 1 | 0 | 0 | 1.000 | |
2019 | 1 | 0 | 0 | 0 | 0 | ---- | |
통산 | 433 | 48 | 117 | 6 | 8 | .965 |
== 개인 기록 ==
기시다 마모루는 2006년 5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 9회초에 구원 투수로 첫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6월 1일 주니치와의 경기(오사카 돔)에서는 8회초에 후쿠도메 고스케로부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9월 27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는 첫 선발로 등판하여 8이닝 1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07년 4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7회초에 구원 등판하여 2이닝 1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4월 1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는 8회초에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7월 2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는 7이닝 1실점으로 첫 선발 승리를 따냈다.
2009년 4월 1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첫 완투 승리 및 첫 완봉 승리를 동시에 기록했다. 2010년 6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는 9회초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올스타전에는 2011년과 2012년에 출장했다.
== 등번호 ==
기시다 마모루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등번호 14번을 사용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는 등번호 18번을 사용했고, 2020년부터는 등번호 71번을 사용하고 있다.
6. 1. 개인 기록
기시다 마모루는 2006년 5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 9회초에 구원 투수로 첫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6월 1일 주니치와의 경기(오사카 돔)에서는 8회초에 후쿠도메 고스케로부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9월 27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는 첫 선발로 등판하여 8이닝 1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2007년 4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7회초에 구원 등판하여 2이닝 1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4월 1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는 8회초에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7월 2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는 7이닝 1실점으로 첫 선발 승리를 따냈다.
2009년 4월 1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첫 완투 승리 및 첫 완봉 승리를 동시에 기록했다. 2010년 6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스카이마크 스타디움)에서는 9회초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올스타전에는 2011년과 2012년에 출장했다.
6. 2. 등번호
기시다 마모루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등번호 14번을 사용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는 등번호 18번을 사용했고, 2020년부터는 등번호 71번을 사용하고 있다.참조
[1]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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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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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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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六列伝】岸田護投手、オリックスひと筋12年…投手陣をけん引/東北スポーツ(1/3ページ)
https://www.sanspo.c[...]
2017-10-19
[4]
뉴스
岸田3人でピシャリ!プロ初Sで新守護神に
http://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0-06-11
[5]
웹사이트
東北福祉大出身の岸田が完封リレー締める
https://www.sponichi[...]
2011-07-2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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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リ岸田「メジャー行きたい」
https://www.nikkansp[...]
2012-01-2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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岸田 メジャー挑戦視野「それを全部クリアしないと納得して行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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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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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リ・岸田と平野を配置転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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岸田 故障離脱…岡田監督 今季は「もう無理や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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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2012프로야구올사진선수명감
일본스포츠기획출판사
[24]
서적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2009
아스페크트묵
[25]
간행물
프로야구 투수 「구종리스트」 『야구코조』6월호, 白夜書房, 잡지18801-6, 158페이지.
[26]
간행물
『[[주간 베이스볼]]』2011년 5호, [[베이스볼・매거진사]], 잡지20441-2/7, 52페이지.
[27]
간행물
[[계간 베이스볼・타임즈]]Vol.6 2010프로야구총집호 12구단&전선수철저데이터북
[28]
웹사이트
18 岸田 護 選手名鑑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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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9월29일(일)발매! 岸田護투수 은퇴기념 상품!|오릭스・버팔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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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기시다 마모루 아직 보지 못한 정상에 팔을 휘두르다/최연장자의 의지 {{!}} 야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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