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도메 고스케
1. 개요
후쿠도메 고스케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1996년과 2004년 올림픽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8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타격왕, MVP 등을 수상하며 맹활약했고, 2008년에는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2012년 일본으로 복귀하여 한신 타이거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22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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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77년 4월 26일 |
|---|---|
| 출생지 | 가고시마현 소오군 오사키정 |
| 포지션 | 외야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좌타 |
| 데뷔 리그 | NPB |
|---|---|
| 데뷔 날짜 | 1999년 4월 2일 |
| 데뷔 팀 | 주니치 드래건스 |
| 최종 리그 | NPB |
| 최종 날짜 | 2022년 9월 23일 |
| 최종 팀 | 주니치 드래건스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 날짜 | 2008년 3월 31일 |
| 데뷔 팀 | 시카고 컵스 |
| 최종 리그 | MLB |
| 최종 날짜 | 2012년 6월 3일 |
| 최종 팀 | 시카고 화이트삭스 |
| 타율 | 0.287 |
|---|---|
| 안타 | 1,951 |
| 홈런 | 285 |
| 타점 | 1,075 |
| 도루 | 76 |
| 타율 | 0.258 |
|---|---|
| 홈런 | 42 |
| 타점 | 195 |
| 도루 | 29 |
| NPB | 주니치 드래건스 (1999–2007) 한신 타이거스 (2013–2020) 주니치 드래건스 (2021–2022) |
|---|---|
| MLB | 시카고 컵스 (2008–201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1)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2) |
| MVP | 센트럴 리그 MVP (2006년) |
|---|---|
| 타격왕 | 2회 (2002년, 2006년) |
| 베스트 나인 | 4회 (2002–2003년, 2006년, 2015년) |
| 올스타 | 4회 (1999년, 2002–2004년) |
| 골든 글러브 | 5회 (2002년, 2003년, 2005년, 2006년, 2015년) |
| 사이클링 히트 | 2회 (2003년 6월 8일), (2016년 7월 30일) |
| 올스타 | 2008년 |
|---|
| 우승 | 2회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 메달 | 1996 애틀랜타: 은메달 2004 아테네: 동메달 |
|---|
| 일본어 표기 | ja |
|---|---|
| 로마자 표기 | Hukudome Kōsuke |
| 별명 | ja ja |
| 소속 | 일본 생명 특별 코치 |
|---|---|
| 등번호 | 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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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현 출신 야구 선수 -
기타벳푸 마나부
기타벳푸 마나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213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로, 일본시리즈 우승과 MVP 수상, 명예의 전당 헌액 등 화려한 선수 경력 이후 야구 해설가, 지도자, 유튜버로 활동했다. -
가고시마현 출신 야구 선수 -
가와사키 무네노리
가와사키 무네노리는 일본 가고시마현 아이라시 출신의 야구 선수로, NPB, MLB에서 내야수로 활약했고,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독립 리그에서 선수 겸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이다. -
21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21세기 일본 사람 -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등 SF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쇼가쿠칸 만화상 등을 수상하며 SF 애니메이션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2023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
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 -
후지타 모토시
후지타 모토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를 2연패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 -
기타벳푸 마나부
기타벳푸 마나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213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로, 일본시리즈 우승과 MVP 수상, 명예의 전당 헌액 등 화려한 선수 경력 이후 야구 해설가, 지도자, 유튜버로 활동했다.
2. 프로 입단 전
가고시마현 오사키정(현 오사키정) 출신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프트볼을 시작해 6학년 때는 전국 대회에 출전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 대신 경식구를 사용하는 보이즈 리그의 '가노 빅 베어스'에 소속되어 전국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중학교 졸업 문집에는 장래 희망으로 '프로 야구 선수'를 적었다.
어린 시절, PL가쿠엔 고등학교 출신으로 주니치 드래건스에 막 입단한 다쓰나미 가즈요시를 동경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1988년 봄) 아버지와 함께 미야자키현 구시마시에서 열린 주니치 춘계 캠프를 견학갔다가, 당시 신인이었던 다쓰나미에게 배트와 사인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다쓰나미처럼 PL가쿠엔 고등학교에 진학해 주니치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여러 고등학교의 권유를 받았지만, 다쓰나미에 대한 동경과 프로 진출을 고려해 오사카부 도미다바야시시에 있는 PL가쿠엔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다. 1학년 가을부터 4번 타자를 맡았고, 2학년 때인 1994년 봄 선발 고교야구 대회(센바츠)에 유일한 2학년 주전 선수로 출전해 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2학년 겨울에는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을 경험했다.
3학년 때인 1995년, 센바츠에서는 첫 경기에서 사와이 료스케가 이끄는 초시 상업 고등학교와 만나 홈런을 치는 등 타격전을 벌였으나 연장전 끝에 패배했다. 같은 해 여름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고시엔) 오사카 지역 예선에서는 7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고교 No.1 슬러거'로 불렸다. 고시엔 본선에서는 1회전 홋카이도 공업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만루 홈런 포함 2타석 연속 홈런(대회 사상 11번째)을 치는 등 3타수 3안타 6타점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은 8강까지 진출했으나 지벤가쿠엔 고등학교에 패했다. 대회 통산 타율 .467, 2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프로 구단들의 큰 주목을 받아, 1995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요미우리 외 긴테쓰, 닛폰햄, 지바 롯데 마린스, 오릭스, 야쿠르트까지 총 7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는 고교생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6개 구단 지명(1985년)을 넘어선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추첨 결과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가 교섭권을 획득했지만, 후쿠도메는 드래프트 전부터 "주니치나 요미우리가 아니면 사회인 야구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었고, 결국 긴테쓰의 지명을 거부했다.
이후 사회인 야구팀인 닛폰 생명에 입단했다. 닛폰 생명에서는 3루수로 전향했다. 입사 1년차인 1996년, 제67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 약사자상(若獅子賞, 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는데, 당시 19세로 역대 최연소 올림픽 야구 대표 선수였다. 대회에서 2개의 홈런을 치며 팀의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1997년에는 제68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1998년 제25회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는 준우승했지만, 3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해 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사회인 야구 통산 성적은 공식전 93경기 출장, 타율 .383, 33홈런, 96타점, 25도루였다.
닛폰 생명 입사 3년차인 1998년, 다시 드래프트 대상자가 되자 "어릴 적부터 다쓰나미 선수를 동경했다"며 주니치 입단을 강력히 희망했다. 희망 입단 범위 제도가 있었던 1998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를 역지명했고, 드래프트 1순위로 주니치에 입단했다. 계약금 1억 엔, 연봉 1,300만 엔(추정)에 계약했으며, 등번호는 1번, 포지션은 내야수(유격수)였다.
3. 프로 선수 경력
PL 학원 고등학교 시절 '고교 No.1 슬러거'로 주목받으며 1995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사카 긴테츠 버팔로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지바 롯데 마린스, 오릭스 블루웨이브, 야쿠르트 스왈로스까지 총 7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는 당시 고교 선수 역대 최다 구단 경합 기록이었다. 추첨 결과 긴테츠가 교섭권을 획득했으나, 후쿠도메는 이전에 희망 구단(주니치, 요미우리) 외의 지명 시 사회인 야구로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기 때문에 긴테츠 입단을 거부하고 일본 생명에 입사했다.
일본 생명 소속으로 3년간 활약하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최연소(19세)로 발탁되어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우승(1997년) 등 사회인 야구 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사회인 야구 통산 93경기에서 타율 .383, 33홈런, 96타점, 25도루를 기록했다.
1998년 드래프트에서 역지명 제도를 통해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다츠나미 가즈요시가 소속된 주니치 드래건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계약금은 100, 연봉은 13(추정)이었으며 등번호는 1번을 받았다.
프로 입단 후 주니치 드래건스(1999년~2007년, 2021년~2022년), MLB(시카고 컵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2008년~2012년), 한신 타이거스(2013년~2020년)에서 총 24년간 활약했다.
주니치 1기 시절 타격왕 2회, 최고 출루율 3회, 골든 글러브 4회, 베스트 나인 3회를 수상하고 2006년 센트럴 리그 MVP에 올랐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일본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2008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한신 이적 후에는 2015년 다시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2016년 개인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2021년 친정팀 주니치 드래건스로 복귀하여 2시즌을 더 뛴 뒤, 2022년 9월 8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1. 주니치 드래건스 1기 (1999년 ~ 2007년)
주니치 드래건스는 1998년 신인 선수 선택 회의 (일본 프로 야구)에서 후쿠도메를 역지명 제도를 통해 1라운드로 지명했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후쿠도메는 어린 시절부터 주니치의 다츠나미 가즈요시 팬이었으며, 입단 후 팀 동료가 된 다츠나미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 계약금은 100, 연봉은 13(추정)이었고 등번호는 1번을 받았다.
1999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적극적인 기용 방침에 따라 신인임에도 개막전 선발 출장을 포함하여 많은 기회를 얻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점차 회복하여 한때 타율 3할을 기록하기도 했다.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최종적으로 13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4, 16홈런, 5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리그 최다인 121개의 삼진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리그 최다인 19개의 실책을 범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 5차전에서는 패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러 경기 후반 교체되는 경우도 잦았다. 시즌 후 연봉은 신인 야수 역대 최고 상승폭(당시)인 2900만 엔이 오른 42으로 갱신되었다.
2000년
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여전히 실책이 잦았고(유격수 10개, 3루수 4개, 총 14개) 타격 성적도 전년보다 하락했다.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야부 케이이치에게 사구를 맞아 오른쪽 비골 균열 골절상을 입어 한 달 이상 결장하는 등, 97경기 출장에 그쳤다. 시즌 후 연봉은 동결되었다.
2001년
개막 초반 8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30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는 극심한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 6월 26일 삿포로 돔 개장 후 첫 프로 야구 경기였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1회초 선두 타자로 나와 상대 투수 대럴 메이의 초구를 우중간 홈런으로 연결했다. 이는 삿포로 돔 개장 첫 경기, 첫 타석, 첫 투구에 나온 첫 홈런으로 기록되었으며, 등번호 1번인 후쿠도메가 기록하여 '1'과 관련된 진기록으로 남았다. 해당 홈런볼 낙구 지점에는 기념 플레이트가 설치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51, 15홈런, 56타점으로 부진했으며, 외야수로 출전하는 경기도 늘어났다. 시즌 후 계약 갱신 과정에서 구단 제시액(4400만 엔)을 거절하고 연봉 동결(42)을 선택했다.
2002년
야마다 히사시 감독과 사사키 쿄스케 타격 코치의 지도 아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해이다. 사사키 코치는 "2년 안에 2억 엔을 벌게 해주겠다"고 공언하며 후쿠도메와 함께 타격폼 개조에 매진했다. 또한, 니노미야 사토시 외야 수비 코치의 건의로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하여 우익수로 정착했다.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을 살린 수비로 리그 최다인 14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첫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타격에서도 3번 타자로 자리 잡으며 타율 .343을 기록, 마쓰이 히데키(당시 요미우리)의 3관왕 도전을 저지하고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즌 186안타는 당시 구단 신기록이었으며,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다. 시즌 막판 팔꿈치 통증이 있었음에도 팀 내 유일하게 전 경기에 출장했다. 시즌 후 연봉은 8000만 엔 인상된 122으로, 입단 4년 만에 1억 엔을 돌파했다.
2003년
개막전 2년 연속 홈런 및 결승타를 기록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4월 2일에는 코우즈 신고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고, 6월 8일 히로시마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9월에는 5경기 연속 홈런 및 10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했으며, 9월 15일에는 쿠보 유야를 상대로 시즌 30호 홈런을 쳐 나고야 돔 개장(1997년) 이후 구단 최초의 일본인 타자 30홈런 기록을 세웠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13, 34홈런(개인 최다), 96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리그 최다인 11개의 3루타와 첫 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획득했다. 시즌 후 연봉은 200으로 인상되어, 입단 5년 만에 2억 엔 고지에 올랐다.
2004년
개막전부터 4번 타자로 활약했으나, 8월 아테네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차출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에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1일 한신전에서 시모야나기 쓰요시에게 사구를 맞아 왼손 집게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었다. 팀은 후쿠도메 없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패배하며 그의 공백을 실감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 .277, 26홈런, 86타점이었다. 시즌 후 연봉은 동결되었다.
2005년
타이론 우즈의 가입으로 4번 타자 부담에서 벗어났다. 전년도 부상 여파로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점차 컨디션을 회복하여 최종적으로 타율 .328, 28홈런, 103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첫 100타점 시즌을 만들었다. 우즈 역시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주니치 구단 사상 첫 '100타점 콤비'가 탄생했다. 2년 연속 최고 출루율 타이틀과 통산 3번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 타격폼 수정에 힘썼으며, 연봉은 270으로 인상되었다.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예선에서는 부진했지만, 준결승 대한민국전에서 7회 대타로 나와 김병현을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려 일본의 결승 진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 홈런은 당시 한국에 2연패 중이던 일본에게 극적인 승리를 안겨주며 크게 주목받았다. 결승전 쿠바전에서도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는 등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개막 초반 5번 타자로 시작했으나 곧 3번 타자로 복귀했다. 6월 14일 세이부전에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고, 6월 말 허벅지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으나 복귀 후 타격 페이스를 유지하며 타격왕 경쟁을 이끌었다. 10월 10일 요미우리전에서는 연장 12회 결승타를 쳐 팀의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51, 31홈런, 104타점, 116득점을 기록하며 타율, 홈런, 타점, 득점에서 모두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타율 .351은 2002년에 이어 개인 통산 2번째 타격왕 타이틀이었고, 3년 연속 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차지했다. 시즌 47개의 2루타는 당시 센트럴 리그 신기록이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부진했고 팀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시즌 후 연봉 협상에서 난항을 겪었으나 최종적으로 385에 계약했다.
2007년
개막부터 부동의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활약하며 4월까지 타율 .363, 9홈런, 24타점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5월 수비 중 다이빙 캐치를 하다 부상을 입은 후 극심한 타격 부진(5월 무홈런, 31타석 연속 무안타 등)에 빠졌다. 7월에는 오른쪽 팔꿈치 통증까지 악화되어 전반기 마지막 3연전에서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3.2. 메이저 리그 시절 (2008년 ~ 2012년)
2007년 시즌 종료 후 부상자 특례 조치로 FA 자격을 얻었고, 10월 12일 FA권을 행사했다. 이전부터 메이저 리그 진출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던 그는 12월 12일 시카고 컵스와 4년 총액 48(약 53억 엔)의 계약에 합의했다. 후쿠도메는 컵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팀 역사상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등번호는 일본 시절과 동일한 1번으로 결정되었다. 12월 19일 정식 계약 후, 시카고 현지 언론에서는 그의 로마자 표기 "FUKUDOME"이 영어 비속어 "FUCK"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2008년
3월 31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리글리 필드 개막전에 "5번・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일부 팬들은 컵스 팬들의 응원 문구인 "It's gonna happen"을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우연의 일치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기도 했다. 후쿠도메는 첫 타석에서 벤 시츠를 상대로 2루타를 기록했고, 9회말에는 에릭 가니에를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터뜨리는 등 3타수 3안타 1볼넷의 맹활약을 펼쳤다. 경기는 연장전 끝에 컵스가 3-4로 패했다.
4월에는 타율 .327, 출루율 .436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으나, 같은 달 리글리 필드 주변 기념품 가게에서 해리 캐리의 캐치프레이즈 "Holy Cow!"를 인종차별적으로 변형한 "Horry Kow" 문구와 캐리커처가 그려진 티셔츠가 판매되어 논란이 일었다. 후쿠도메는 이에 불쾌감을 표시했고, 시카고 선타임스의 보도 이후 컵스 구단은 해당 티셔츠의 판매 및 생산 중단을 지시했다.
시즌 초반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후쿠도메의 성적은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 월별 타율은 5월 .293, 6월 .264, 7월 .236, 8월 .193, 9월 .178로 꾸준히 떨어졌고, 시즌 최종 타율 .257, 장타율 .370으로 마감했다. 특히 우완 투수 상대 타율(.251)과 득점권 타율(.137)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7일 팬 투표를 통해 2008년 MLB 올스타전 선발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루 피니엘라 감독은 시즌 중 그를 꾸준히 기용하며 옹호했지만, 다저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1, 2차전 선발 출전하여 8타수 무안타 4삼진에 그치자 "더 이상 후쿠도메를 쓸 의미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3차전에는 그를 제외했다. 팀이 3연패로 탈락한 후 오헤어 공항에서는 그를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한다는 장난스러운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우익수 수비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UZR 6.0)을 보였다.
2009년
개막 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시즌 개막 후 컵스가 밀턴 브래들리를 영입하면서 후쿠도메는 중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7월부터는 부진했던 알폰소 소리아노를 대신해 리드오프 타자로 기용되었다. 타격에서는 93개의 볼넷과 38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팀 내 2위인 .375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지만, 중견수 수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수비 범위(range factor) 2.29로 메이저 리그 중견수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며 고전했다. 그럼에도 팬들 사이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누렸고, 그의 등번호 1번 유니폼은 리그 전체에서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0년
3년 연속으로 4월에 좋은 성적(타율 .344, OPS 1.084)을 기록했으나, 6월에는 월간 OPS .485라는 최악의 부진을 겪는 등 시즌 내내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8월에는 월간 타율 .365를 기록하며 반등했고, 8월 1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는 팀 린스컴을 상대로 오라클 파크 우측 담장 너머 바다에 떨어지는 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일본인 선수 최초의 기록이었으나, 타구가 깃대에 맞고 떨어져 공식적인 "스플래시 히트"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타율, 장타율, 홈런 등 일부 지표에서 컵스 이적 후 개인 최고 성적을 거두었지만, 규정 타석에는 미달했다. 다시 우익수로 돌아온 수비에서는 UZR -4.4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그린 카드를 취득하며 컵스와의 계약 종료 후에도 메이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1년
4년 연속으로 4월에 타율 .383, 출루율 .486 등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예년처럼 이후 성적이 하락했다. 전반기를 76경기 타율 .275, 3홈런, OPS .751로 마감했다. 7월 28일, 마이너 리그 유망주 아브너 아브레이유와 칼턴 스미스를 상대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등번호는 1번을 유지했다.
7월 29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 이적 후 처음 출전했고, 8월에는 타율 .293, OPS .744를 기록하며 다소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8월 12일 추신수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면서 중견수로 이동했으나, 8월 27일 추신수가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자 우익수로 복귀했다. 9월에는 4개의 홈런을 쳤지만 타율 .216, OPS .623으로 다시 부진했다. 이적 후 출루율이 .300으로 하락하며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62, 8홈런, 35타점, OPS .712에 그쳤다. 이는 타율을 제외하면 메이저 리그 진출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수비에서는 7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강한 어깨를 보여주었으나, 우익수 수비 범위(UZR -10.5)는 여전히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2012년
2월 1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1년 1(2년차 구단 옵션 3) 계약을 맺었다. 주로 대타 및 대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으나 24경기에 출전해 타율 .171, 무홈런, 4타점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남겼다. 6월 7일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6월 22일 지명할당 조치되었으며 26일 최종 방출되었다.
7월 13일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산하 트리플A 팀인 스클랜턴/윌크스-배리 레일라이더스에 합류했다. 트리플A에서 43경기에 출전해 타율 .264를 기록했지만 메이저 리그 승격에는 실패했고, 9월 3일 양키스에서도 방출되면서 그의 메이저 리그 경력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3.3. 한신 타이거스 시절 (2013년 ~ 2020년)
2012년 MLB 시즌 이후, 후쿠도메는 NPB로 복귀하여 한신 타이거스와 계약을 맺었다. 2013년에는 63경기, 2014년에는 104경기에 출전하며 제한적인 공격력을 보였으나, 38세가 된 2015년에 부활했다. 그는 총 143경기 중 3경기를 제외한 14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1, 20홈런, 24개의 2루타, 76타점을 기록했다. 이때 기록한 홈런과 타점은 주니치 드래곤스 소속으로 센트럴 리그에서 뛰었던 2006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2015 시즌 종료 후, 후쿠도메는 통산 4번째 NPB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으며, 외야수로서 통산 5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이전 골든 글러브 수상(2006년)과 2015년 수상 사이의 9년 공백은 센트럴 리그 최장 기록이다. 39세가 된 2016년에도 한신 타이거스의 외야수로 활약하며 프로 18번째 시즌을 맞았다.
2016년 7월 30일, 후쿠도메는 자신의 전 소속팀인 주니치 드래곤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사이클 히트를 달성하며 팀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후쿠도메는 NPB 역사상 4번째로 개인 통산 두 번 이상 사이클 히트를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20년 12월 2일,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4. 주니치 드래건스 2기 (2021년 ~ 2022년)
2020년 12월 18일, 주니치 드래건스와 복귀 계약을 체결하고 기자 회견을 가졌다. 이 계약을 통해 2021년 시즌부터 친정팀 주니치 드래건스로 복귀하게 되었다.
2022년 9월 8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며, 같은 해 9월 23일 공식적으로 24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후쿠도메는 20세기에 선수로 활동했던 마지막 NPB 선수로 기록되었다.
4. 국가대표 경력
후쿠도메는 사회인 야구팀 닛폰 생명에서 활동하던 시절, 사상 최연소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팀의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이후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이던 2004년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다시 발탁되어 두 번째 올림픽 무대를 밟았고, 팀의 동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 연도 | 대표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 실패 | 희생 번트 | 희생 플라이 | 사구 | 고의 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
| 1996 | 일본 | 9 | 34 | 32 | 8 | 9 | 0 | 0 | 2 | 15 | 8 | 1 | 0 | 0 | 0 | 1 | 0 | 1 | 7 | 0 | .281 | .324 | .469 |
| 2004 | 9 | 44 | 38 | 11 | 12 | 2 | 0 | 3 | 23 | 10 | 0 | 0 | 0 | 1 | 5 | 0 | 0 | 9 | 0 | .316 | .386 | .605 |
또한 후쿠도메는 2006년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우승한 일본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특히 2006년 WBC 준결승전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김병현에게 대타로 나와 2점 홈런을 기록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쿠바를 상대로 2타점 안타를 치는 등 활약했다.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룸)
5.1. NPB
주니치 드래곤스는 1998년 신인 선수 선택 회의에서 후쿠도메를 1라운드로 유격수로 지명했다. 후쿠도메는 드래곤스의 내야수 타츠나미 카즈요시의 팬으로 자랐으며, 드래곤스에 입단했을 때 그의 팀 동료가 될 타츠나미로부터 사인을 받았다.
1999년
입단 첫 해인 1999년에는 당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적극적으로 스타팅 멤버에 기용하여 후쿠도메는 2할 8푼 4리의 타율과 1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으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팀의 신인 중 1989년의 오호 다이호 이후 10년 만에 개막전에서 선발 출장했다.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 최종적으로 1군 공식전 132경기에 출장했다. 그러나 삼진 수가 리그 1위(121개)를 기록하는 등 거친 면도 눈에 띄었고, 리그 최악의 19실책을 기록하는 등 수비면에서도 부진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사요나라 에러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페넌트레이스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패인으로 연결되는 수비 실책이 많아지는 등 경기 종반에 교체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시즌 후에는 신인 야수 중 역대 최고 상승폭(당시)인 2900만 엔 증가한 연봉 42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00년
수비 부담이 적은 3루수로 변환되었지만, 실책이 계속되었고(유격수 10개, 3루수 4개, 총 14실책) 타격도 떨어졌다.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사구를 맞아 오른쪽 비골 균열 골절로 1개월 이상 이탈하는 등 97경기 출장에 그쳤다. 시즌 후에는 현상 유지인 연봉 42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01년
개막 후 8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부진에 빠졌다. 6월 26일 삿포로 돔에서 처음 열린 프로 야구 경기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1회초, 선두 타자로서 상대 투수 대럴 메이가 던진 초구를 우중간 스탠드로 넘기는 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삿포로 돔 프로 야구 첫 경기, 첫 타석, 첫 구, 첫 홈런으로 기록되었으며, 기념 플레이트가 설치되었다. 최종 성적은 타율 .251, 15홈런, 56타점으로 저조했고, 외야수로 출전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즌 후 계약 갱신에서는 구단 제시액(4400만 엔)을 거절하고 현상 유지인 4200만 엔으로 계약했다.
2002년
호시노 감독의 후임으로 야마다 히사시 감독이 취임하고, 사사키 교스케 타격 코치의 지도 아래 타격폼을 대폭 수정했다. 또한, 니노미야 사토시 외야 수비 주루 코치의 건의로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습 끝에 우익수로 정착했고, 강한 어깨를 살려 리그 최다인 14개의 보살을 기록했다. 타격도 크게 향상되어 3번 타자로 정착, 마쓰이 히데키(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 3관왕을 저지하며 타율 .343으로 센트럴 리그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즌 186안타는 당시 구단 신기록이었다.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팀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에 출장했으며, 시즌 후에는 8000만 엔 인상된 연봉 1억 2200만 엔에 계약했다.
2003년
개막전 홈런을 2년 연속 기록했고, 4월 2일에는 개인 첫 사요나라 홈런을 쳤다. 6월 8일 히로시마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9월에는 5경기 연속 홈런, 10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했고, 9월 15일에는 개인 첫 30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13, 개인 최다인 34홈런, 96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리그 최다인 11개의 3루타와 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획득했다. 2년 연속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에는 7800만 엔 인상된 연봉 2억 엔에 계약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시즌 초반 부상과 올림픽 차출이 있었고, 8월 3일 요코하마전에서는 우익수 땅볼 아웃을 기록했다. 9월 1일 한신전에서 사구로 왼손 집게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었다. 팀은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후쿠도메의 공백 속에 일본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 .277, 26홈런, 86타점. 시즌 후에는 연봉 2억 엔(현상 유지)으로 계약했다.
2005년
타이론 우즈의 가입으로 4번 타자 부담에서 벗어났다. 시즌 초반 부진했으나 5월부터 회복세를 보였다. 9월 25일 요미우리전에서 개인 첫 100타점을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142경기 출장, 타율 .328, 28홈런, 103타점을 기록하며 최고 출루율 타이틀과 통산 3번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에는 연봉 2억 7000만 엔으로 계약했다.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예선에서는 부진했으나, 준결승 한국전에서 7회 대타로 나와 김병현으로부터 결승 2점 홈런을 쳐 일본의 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결승 쿠바전에서도 대타로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일본의 우승에 공헌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개막 후 5번 타자로 시작했으나 곧 3번 타자로 복귀했다. 6월 14일 세이부전에서 개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6월 말 허벅지 부상으로 잠시 결장했으나 복귀 후 수위 타자 경쟁을 독주했다. 10월 10일 요미우리전에서 연장 12회 결승타를 쳐 팀의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51, 31홈런, 104타점, 110득점을 기록하며 타율, 홈런, 타점, 득점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타율 .351, 30홈런, 100타점, 100득점은 주니치 선수로서 56년 만의 기록이었다. 시즌 47개의 2루타는 당시 센트럴 리그 신기록이었다. 4년 만의 수위 타자와 2년 연속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고, 센트럴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도 수상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부진했고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시즌 후 계약 협상이 난항을 겪었으나, 다음 해 2월 연봉 3억 8500만 엔에 합의했다.
2007년
개막부터 "3번·우익수"로 활약하며 4월까지 타율 .363, 9홈런, 24타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5월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쳤다. 7월 15일 한신전에서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악화되어 전반기 막판 결장했다. 시즌 후 FA를 선언하고 메이저 리그 진출을 모색했다.
한신 타이거스 시절 (2013-2020)
MLB에서 5시즌을 보낸 후, 2012년 12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와 입단 계약을 맺고 NPB로 복귀했다. 등번호는 8번.
2013년
개막부터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4월 19일 야쿠르트전에서 6년 만의 NPB 홈런 포함 2홈런 6타점(끝내기 홈런 포함)을 기록한 후, 5월 3일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다. 8월 복귀 후에는 중견수로도 출전했으나, 다시 왼쪽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63경기 출장, 타율 .198, 6홈런, 31타점에 그쳤다.
2014년
3월 30일 요미우리전에서 2루수 니시오카 츠요시와 충돌하여 부상을 입었다. 4월 29일 히로시마전에서 NPB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중반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다가 복귀 후 타격감을 회복했다. 7월 2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연장 12회 끝내기 홈런을 쳐 NPB 통산 연장 12회 이후 끝내기 홈런 최다 기록(3개)을 세웠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서는 마에다 켄타를 상대로 결승 홈런을 쳤다.
2015년
3월 29일 주니치전에서 NPB/MLB 통산 250홈런을 기록했다. 5월에는 이틀 연속 끝내기(27일 홈런, 28일 밀어내기 볼넷)를 기록하며 팀의 통산 5000승 달성에 기여했다. 시즌 20홈런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 타율 .281, 20홈런, 76타점으로 팀 내 타격 3관왕을 차지했다. 시즌 후 9년 만에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9년의 공백 후 골든 글러브 수상은 센트럴 리그 기록이다.
2016년
6월 20일 오릭스전에서 NPB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고, 6월 25일 히로시마전에서 미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7월 30일 친정팀 주니치전에서는 개인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이는 NPB 역대 4번째 복수 달성자이며, 39세 3개월의 나이로 최고령 기록을 경신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1경기 출장, 타율 .311, 11홈런, 59타점을 기록했다.
2017년
구단 사상 최고령인 40세에 팀 주장에 취임했다. 시즌 중 수비 위치를 우익수에서 좌익수로 변경했다. 12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3, 18홈런, 79타점을 기록했다. 9월 3일 주니치전에서 NPB 통산 350 2루타를 달성했다. DeNA와의 CS 1차전 1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쳐 포스트시즌 최고령 결승 홈런 기록(40세 5개월)을 경신했다.
2018년
계속해서 팀 주장을 맡았다. 6월 14일 닛폰햄전에서 홈런을 쳐 NPB 사상 33번째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했다. 7월 3일 주니치전에서 NPB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23경기 출장, 타율 .280, 14홈런, 72타점을 기록했다.
2019년
팀 주장을 이토하라 켄토에게 넘겼다. 4월 6일 히로시마전에서 NPB 통산 1000타점을 달성했다(역대 46번째, 41세 11개월로 역대 2위 최고령). 5월 5일 DeNA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 센트럴 리그 통산 5만호 홈런, 한신 레이와 첫 끝내기 홈런, 센트럴 리그 최고령(42세) 끝내기 홈런 기록을 동시에 세웠다. 시즌 중 부상으로 두 차례 등록 말소되었으나, 7월 28일 요미우리전에서 NPB 통산 1000득점을 사상 최고령(42세 3개월)으로 달성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4경기 출장, 타율 .257, 10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2020년
NPB 현역 최고령 선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타격 부진으로 출전 기회가 크게 줄었다. 개막 다음 달부터는 1군 야간 경기와 2군 주간 경기에 연이어 출전하는 (소위 '부모 자식 게임') 경우가 잇따랐다. 10월 20일 구단으로부터 다음 시즌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현역 속행을 희망하여 11월 6일 퇴단이 발표되었고,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주니치 드래곤스 복귀 및 은퇴 (2021-2022)
2020년 12월 12일, 친정팀 주니치 드래곤스와 계약하며 14년 만에 복귀했다. 등번호는 9번.
2021년
4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교류전 등에서 활약했다. 5월 29일 닛폰햄전에서는 4안타를 기록했고, 7월 7일 요미우리전에서 주니치 복귀 후 첫 홈런을 쳤다. 8월 27일에는 역대 최고령으로 통산 1000볼넷을 달성했고, 9월 12일에는 구단 역대 최고령 홈런 기록을 세웠다. 10월 10일에는 역대 최고령으로 NPB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시즌 후반 팀의 B클래스가 결정적인 상황이었기에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1군에서 말소되었다.
2022년
개막전에서 역대 최고령 선발 출장 기록(44세 11개월)을 세웠으나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5월 26일 세이부전에서 시즌 첫 안타(2루타)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역대 최고령 2루타 기록(45세 1개월)을 경신했다. 9월 8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9월 23일 요미우리전에서 은퇴 경기를 치렀고, 9회 우익수로 출전한 뒤 마지막 타석에서 2루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 수상 및 주요 경력 ===
| 수상 내역 | 횟수 | 연도 |
|---|---|---|
| 센트럴 리그 MVP | 1회 | 2006년 |
| 수위 타자 | 2회 | 2002년, 2006년 |
| 최고 출루율 | 3회 | 2003년, 2005년, 2006년 |
| 베스트 나인 (외야수) | 4회 | 2002년, 2003년, 2006년, 2015년 |
| 골든 글러브상 (외야수) | 5회 | 2002년, 2003년, 2005년, 2006년, 2015년 |
| 월간 MVP (타자) | 1회 | 2002년 9월 |
| 최우수 JCB・MEP상 | 1회 | 2006년 |
| 우수 JCB・MEP상 | 1회 | 2005년 |
| JA 전농 Go・Go상 | 5회 | 강견상: 2002년 9월, 2003년 9월, 2004년 9월, 2005년 9월 최다 2·3루타상: 2005년 8월 |
| 스카이퍼! 드라마틱 사요나라상 연간 대상 | 1회 | 2014년 |
| 월간 사요나라상 | 3회 | 2013년 4월, 2014년 7월, 2015년 5월 |
5.2. MLB
2007년 12월 11일, 조 아본을 대리인으로 하여 시카고 컵스와 4년 총액 48(약 53억 엔)의 계약에 합의했다. 12월 19일 구단에서 정식 계약을 체결했으며, 등번호는 1번으로 발표되었다. 후쿠도메는 인터뷰에서 컵스를 선택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팀에서 뛰는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시카고에 훌륭한 일본인 커뮤니티가 있고 자녀를 키우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컵스 입단 결정 후, 현지 시카고 언론은 후쿠도메의 로마자 표기인 "FUKUDOME"이 영어 욕설인 "FUCK"을 연상시킨다고 우려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2008년 3월 31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MLB 개막전에 "5번・우익수"로 선발 출장하며 리글리 필드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여러 컵스 팬들이 후쿠도메에게 컵스 팬들의 구호인 "It's gonna happen"("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또는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을 오역한 것으로 보이는 "우연의 일치다"라고 쓰인 사인보드를 내거는 해프닝이 있었다. 후쿠도메는 첫 타석에서 상대 선발 벤 시츠를 상대로 2루타를 기록했고, 9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는 브루어스 마무리 투수 에릭 가니에를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며 3타수 3안타 1볼넷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4월 한 달간 타율 .327, 출루율 .436, 장타율 .480, OPS .915를 기록하며 팀의 볼넷 증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라이선스 없는 컵스 의류를 판매하는 기념품 판매대에서 "Horry Kow"(Engrish영어로 해리 캐리의 "Holy Cow!" 캐치프레이즈를 변형한 단어)라는 문구와 함께, 만화풍의 아시아 글씨체와 과장된 해리 캐리 스타일 안경을 쓴 컵스 만화 곰이 그려진 티셔츠가 판매되었다. 기념품 판매대 운영자는 해당 티셔츠가 시즌 최고 판매 상품이었지만 일부 고객이 불쾌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후쿠도메는 이 티셔츠에 대해 "셔츠 제작자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로잡아야 한다. 재미로 만들었을 수도 있고, 인종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반응했다. 이 문제가 시카고 선타임스에 보도된 후, 컵스는 해당 티셔츠의 판매 및 생산 중단을 명령했다.
후쿠도메는 초반 활약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성적이 하락했다. 월별 타율은 4월 .327에서 5월 .293, 6월 .264, 7월 .236, 8월 .193, 9월 .178로 꾸준히 떨어졌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100에 그쳤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57, 장타율 .370이었다. 특히 우투수 상대 타율은 .251, 2아웃 주자 득점권 상황에서는 .137로 부진했다. 그의 슬럼프는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7일 팬 투표를 통해 2008년 MLB 올스타전 선발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컵스 감독 루 피니엘라는 후쿠도메의 수비 기여도를 높이 평가하며 그를 계속 기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팀이 진출한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NLDS)에서 다저스를 상대로 1, 2차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8타수 무안타 4삼진으로 극도로 부진했다. 2차전 패배 후 피니엘라 감독은 "더 이상 후쿠도메를 쓸 의미가 없다"고 공언하며 3차전에는 마이크 폰테노나 리드 존슨을 기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3차전 이동을 위해 이용한 오헤어 국제공항에서는 "후쿠도메 코스케 씨, 신시내티 레즈로 가주세요. 트레이드가 결정되었습니다"라는 장난스러운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팀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3연패로 탈락했다. 우익수로서 수비 지표는 ± 시스템 +1, DRS +3, UZR +6.0을 기록했다.
2009년 컵스가 우익수 밀턴 브래들리를 영입하면서 후쿠도메는 중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시즌 초반인 4월에는 타율 .338, 출루율 .461, 장타율 .592, OPS 1.052로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5월 이후 타율 .245, 출루율 .360, 장타율 .393으로 다시 부진했다. 특히 좌투수 상대 타율이 .164에 그쳐 후반기에는 좌투수 선발 시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늘었다. 7월부터는 부진한 알폰소 소리아노를 대신해 컵스의 리드 오프 타자를 맡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중견수 수비에서도 고전하여, 중견수로서 ± 시스템 -8(양대 리그 최저 6위), DRS -5(양대 리그 최저 8위), UZR -7.6(양대 리그 최저 7위)을 기록하며 모든 선발 메이저 리그 중견수 중 가장 낮은 수비 범위(range factor, 2.29)를 보였다. 하지만 우익수 수비는 여전히 준수하여 44경기 출장에 ± 시스템 +9, DRS +8, UZR +7.8을 기록했다. 타격에서는 93개의 볼넷과 38개의 2루타를 기록했으며, .375의 출루율은 팀 내 2위였다.
2010년 3년 연속으로 4월에는 좋은 성적(타율 .344, 출루율 .443, 장타율 .525, OPS 1.084)을 기록했지만, 6월에는 월간 OPS .485라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8월 2일에는 타율이 .247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반등하여 8월 한 달간 타율 .365, 출루율 .467, OPS 1.118이라는 MLB 진출 후 최고의 월간 성적을 기록했다. 8월 10일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는 팀 린스컴을 상대로 우측 스탠드를 넘기는 홈런을 쳤는데, 이는 일본인 최초의 "스플래시 히트"로 기록될 뻔했으나, 펜스 끝 깃발에 맞고 바다에 떨어져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9월에 다시 부진하며 시즌을 마감했고, 최종적으로 타율, 장타율, 홈런 등에서 컵스 이적 후 최고 성적을 기록했지만 기복이 심해 3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수비에서는 다시 우익수로 기용되었으나 ± 시스템 -3, DRS -3, UZR -4.4로 부진했다. 시즌 후 시카고 시내에 아파트를 구입하고 그린 카드를 취득하며 컵스와의 계약 종료 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1년 4월에는 타율 .383, 출루율 .486, 장타율 .400, OPS .886으로 또다시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예년처럼 컨디션이 하락했다. 7월까지 1타석당 평균 투구 수는 4.34개로 리그 1위를 기록하는 등 선구안은 여전했지만, 전반기를 76경기 출장, 타율 .275, 3홈런, OPS .751의 성적으로 마쳤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동안 후쿠도메는 팬들에게 빠르게 호감을 얻었고,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등번호 1번 유니폼은 컵스에서 활약하는 동안 리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유니폼 중 하나였다.
* MLB 올스타 게임 선정: 1회 (2008년)
6. 개인 기록
| 구분 | 내용 | 비고 | |
|---|---|---|---|
| 센트럴 리그 MVP | 1회 | 2006년 | |
| 수위 타자 | 2회 | 2002년, 2006년 | |
| 최고 출루율 | 3회 | 2003년, 2005년, 2006년 | |
| 베스트 나인 (외야수 부문) | 4회 | 2002년, 2003년, 2006년, 2015년 | |
|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 | 5회 | 2002년, 2003년, 2005년, 2006년, 2015년 | |
| 사이클링 히트 | 2회 | 2003년 6월 8일 (vs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6년 7월 30일 (vs 주니치 드래곤스) | NPB 최고령(39세 3개월) 달성 |
| NPB 전 구단 상대 홈런 | 1회 | 2018년 6월 14일 달성 | 역대 33번째 |
| 통산 2루타 | 400개 | 2021년 4월 18일 달성 | 역대 13번째, NPB 최고령(43세 11개월) 달성 |
| 통산 사사구 | 1000개 | 2021년 8월 27일 달성 | 역대 16번째, NPB 최고령 달성 |
| 통산 경기 출장 | 2000경기 | 2021년 10월 10일 달성 | 역대 54번째, NPB 최고령 달성 |
| 기타 기록 | 삿포로 돔 개장 1호 홈런 | 2001년 6월 26일 (vs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기타 기록 | 주니치 구단 시즌 최다 안타 | 186안타 (2002년) | |
| 기타 기록 | 주니치 구단 시즌 최다 득점 | 105득점 (2003년) | |
| 기타 기록 | 센트럴 리그 시즌 최다 2루타 | 47개 (2006년) |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동메달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6.1. NPB
주니치 드래곤스는 1998년 신인 선수 선택 회의에서 후쿠도메를 1순위로 지명하여 유격수로 영입했다. 후쿠도메는 어린 시절부터 주니치의 내야수 타츠나미 카즈요시의 팬이었으며, 입단 후 팀 동료가 된 타츠나미에게 직접 사인을 받기도 했다.
1999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신인 후쿠도메를 개막전부터 선발 출장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점차 회복하여 한때 타율 3할을 기록하기도 했다.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최종적으로 132경기에 출전해 타율 .284, 16홈런, 5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리그 최다인 121개의 삼진과 리그 최다인 19개의 실책을 기록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도 보였다. 특히 유격수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끝내기 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비 불안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이어져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경기 후반에 교체되는 경우가 잦았다. 시즌 후 연봉은 신인 야수 역대 최고 상승폭(당시)인 2,900만 엔이 인상된 4,200만 엔으로 결정되었다.
2000년
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실책은 여전히 많았고(유격수 10개, 3루수 4개, 총 14개) 타격 성적도 전년보다 하락했다. 시즌 중 좌완 투수 선발 경기에서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고,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야부 케이이치에게 사구를 맞아 오른쪽 비골 골절 부상을 당해 한 달 이상 결장했다. 결국 97경기 출장에 그쳤다. 추계 캠프에서는 수비 능력 향상을 인정받아 MVP로 선정되었고, 연봉은 동결되었다.
2001년
개막 후 8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30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빠져 6월에는 타율이 .227까지 떨어졌다. 최종 성적은 타율 .251, 15홈런, 56타점으로 저조했다. 내야 주전 경쟁에서 밀려 외야수로 출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6월 26일, 삿포로 돔에서 열린 첫 프로 야구 경기(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1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상대 투수 대럴 메이의 초구를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삿포로 돔 개장 첫 경기, 첫 타석, 초구를 공략한 제1호 홈런으로 기록되었으며, 등번호 1번인 후쿠도메가 기록한 상징적인 홈런으로 남았다. 삿포로 돔에는 이 홈런볼 낙하 지점에 기념 플레이트가 설치되었다. 시즌 후 연봉 협상에서는 구단 제시액(200만 엔 인상)을 거절하고 전년과 같은 4,200만 엔에 계약했다.
2002년
후쿠도메에게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해였다. 전년도 시즌 종료 후, 과거 긴테츠 감독 시절 후쿠도메의 교섭권을 획득했던 사사키 교스케가 타격 코치로 부임했다. 사사키 코치는 "2년 안에 연봉 2억 엔 선수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후쿠도메와 함께 타격폼 개조에 매진했다. 하루 3,000번의 스윙 연습 끝에 타격 능력이 크게 향상되어 3번 타자로 자리 잡았다. 이 해 후쿠도메는 타율 .343을 기록하며 마쓰이 히데키의 타격 3관왕 도전을 저지하고 센트럴 리그 수위 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또한 시즌 186안타를 기록하며 츠보우치 미치노리가 가지고 있던 주니치 구단 시즌 최다 안타 기록(177안타)을 갱신했다. 이 활약으로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수비에서는 야마다 히사시 감독과 니노미야 사토시 외야 수비 코치의 조언에 따라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했다. 초반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꾸준한 기용 속에 우익수로 정착했고, 타고난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활용한 수비로 리그 최다인 14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했다. 생애 첫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다. 시즌 후반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수비만 소화하는 경기도 있었지만, 팀 내 유일하게 전 경기에 출장했다. 시즌 후 연봉은 8,000만 엔 인상된 1억 2,200만 엔으로 올랐다. 이는 타츠나미와 함께 구단 야수 사상 가장 빠른 25세 시즌 후 1억 엔 돌파 기록이었다.
2003년
개막전(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2년 연속 개막전 홈런을 기록했고, 결승타를 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4월 2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개인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4월 한 달간 개인 최다인 6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시즌 초반부터 맹타를 휘둘렀다. 6월 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개인 통산 첫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8월 17일 야쿠르트전에서는 2타석 연속 홈런 포함 4타점을 기록하며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9월에는 5경기 연속 홈런과 10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했고, 9월 15일 요미우리전에서는 쿠보 유야를 상대로 시즌 30호 홈런을 쳐 개인 첫 30홈런 고지에 올랐다. 이는 나고야 돔 개장(1997년) 이후 레오 고메스에 이어 두 번째이자 일본인 타자로는 최초의 30홈런 기록이었다. 10월 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는 시즌 105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니시자와 미치오가 1950년에 세운 구단 기록(104득점)을 경신했다.
최종적으로 타율 .313, 34홈런, 96타점(모두 팀 내 1위)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리그 최다인 11개의 3루타와 함께 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처음으로 획득했다. 시즌 후 연봉은 7,800만 엔 인상된 2억 엔으로 올랐다. 입단 동기 이와세 히토키와 함께 구단 사상 가장 빠른 입단 5년차, 그리고 구단 사상 최연소(26세) 2억 엔 돌파 기록이었다. 사사키 코치의 "2년 안에 2억 엔 선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2004년
춘계 캠프에서 오른쪽 종아리 부상으로 시즌 초반 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5월 16일 요코하마전에서 5안타 6타점(개인 최다 타이)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고, 이 경기에서 2홈런을 추가하며 나고야 돔 통산 홈런 51개로 최다 타이기록을 세웠다. 5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이시카와 마사노리를 상대로 시즌 10호 홈런을 쳐 입단 후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8월에는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에서 복귀한 후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이어갔으나, 9월 1일 한신전에서 시모야나기 고에게 사구를 맞아 왼손 검지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시즌을 마감했다. 팀은 후쿠도메의 공백 속에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패배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 .277이었지만, 부상 전까지 4번 타자를 맡으며 한때 리그 타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후 연봉은 동결되었다.
2005년
전년도까지 2년 연속 센트럴 리그 홈런왕이었던 타이론 우즈가 요코하마에서 이적해 오면서 4번 타자 부담을 덜게 되었다. 전년도 손가락 부상 여파로 시즌 초반에는 타율 .231로 부진했지만, 5월부터 타격감을 회복하여 6월에는 타율 3할대에 진입했다. 9월 25일 요미우리전에서 우에하라 고지를 상대로 시즌 27호 홈런을 치며 개인 첫 100타점을 달성했다. 이는 주니치 선수로는 1999년 고메스 이후 처음이었으며, 같은 해 100타점을 넘긴 우즈와 함께 주니치 구단 역사상 첫 '100타점 듀오'를 결성했다. 시즌 중 왼쪽 옆구리 부상으로 잠시 결장하기도 했으나, 14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28, 28홈런, 103타점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2번째 최고 출루율 타이틀과 통산 3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시즌 후 그립 위치를 조정하는 등 타격폼을 수정했고, 연봉은 2억 7,000만 엔으로 인상되었다.
2006년
시즌 개막 전 열린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대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선발에서 제외된 준결승 대한민국전에서 7회 대타로 나와 김병현을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리며 일본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중계 캐스터가 "살아나라 후쿠도메!"라고 외친 직후 홈런이 나와 큰 화제가 되었다. 결승전에서도 쿠바를 상대로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치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활약하며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개막 초반 잠시 부진했으나 이내 타격감을 회복하여 5월(.370), 6월(.362)에 맹타를 휘둘렀다. 6월 14일 세이부전에서 크리스토퍼 기셀을 상대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6월 말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잠시 2군에 내려갔으나, 7월 말 복귀 후 8, 9월에도 월간 타율 .350 이상을 기록하며 수위 타자 경쟁에서 독주했다. 10월 10일,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요미우리전 연장 12회초에 결승타를 쳤고, 이 경기를 통해 시즌 타율 .351, 31홈런, 104타점(개인 최다), 100득점을 달성했다. 타율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은 주니치 선수로는 1950년 니시자와 미치오 이후 56년 만의 기록이었다. 또한 이 경기에서 시즌 46번째 2루타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신기록을 세웠고, 최종적으로 47개까지 늘렸다. 이 해 후쿠도메는 4년 만의 수위 타자와 2년 연속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차지했고, 팀 동료 우즈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며 주니치가 타격 3개 부문 타이틀을 휩쓸었다. 시즌 후 센트럴 리그 MVP와 4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시즌 후 메이저 리그 진출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연봉 협상은 난항 끝에 다음 해 2월, 3억 8,500만 엔에 합의했다.
2007년
개막부터 부동의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활약하며 4월 말까지 타율 .363, 9홈런, 24타점으로 타격 3개 부문에서 모두 리그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하지만 5월 10일 히로시마전 수비 중 다이빙 캐치를 하다 부상을 당했고, 이후 극심한 타격 부진(31타석 무안타 등)을 겪으며 타율이 3할 아래로 떨어졌다. 7월에는 오른쪽 팔꿈치 통증까지 악화되어 전반기 막판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메이저 리그에서 5시즌을 보낸 후, 후쿠도메는 2013년 일본 프로 야구로 복귀하여 한신 타이거스와 계약했다.
한신 타이거스 시절 (2013~2020)
복귀 첫 두 시즌(2013년 63경기, 2014년 104경기) 동안은 제한적인 출전 기회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15년에는 3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활에 성공했다. 143경기 중 14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1, 20홈런, 24개의 2루타, 76타점을 기록하며 2006년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 활약으로 통산 4번째 베스트 나인과 5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특히 골든 글러브는 2006년 이후 9년 만의 수상으로, 이는 센트럴 리그 최장 기간 공백 후 수상 기록이다.
2016년 7월 30일, 친정팀 주니치 드래곤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이는 NPB 역사상 4번째 복수 사이클링 히트 달성자이자, 39세 3개월의 나이로 달성한 최고령 기록이었다.
2018년 6월 14일에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NPB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했다. (역대 33번째)
2020년 시즌 종료 후 한신에서 방출되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주니치 드래곤스 복귀 (2021~2022)
2021년, 14년 만에 친정팀 주니치 드래곤스로 복귀했다.
* 4월 18일: 히로시마전에서 통산 400번째 2루타를 기록했다. (역대 13번째, 43세 11개월 최고령 달성)
* 8월 27일: 요미우리전에서 통산 1000번째 사사구를 기록했다. (역대 16번째, 최고령 달성)
* 10월 1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역대 54번째, 최고령 달성)
2022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7. 은퇴 이후
은퇴 후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 Dramatic Baseball (일본 TV 방송망, 주쿄 TV 방송)
* 도카이 라디오 갓츠 나이터 (도카이 라디오 방송)
* 메이저 리그 중계 (NHK BS1)
* 주니치 스포츠 전속 평론가 (계열사인 도쿄 주니치 스포츠에도 기고)
* 오하요 아사히입니다 (아사히 방송 테레비, 스포츠 코멘테이터, 화요일 담당)
8. 인물 및 기타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방송과 매체에 출연하고 있다.
야구 해설가로서
* Dramatic Baseball (일본 TV 방송망, 주쿄 TV 방송)
* 도카이 라디오 갓츠 나이터 (도카이 라디오 방송)
* 메이저 리그 중계 (NHK BS)
* 주니치 스포츠 전속 평론가 (계열사인 도쿄 주니치 스포츠에도 기고)
* 오하요 아사히입니다 (아사히 방송 테레비, 스포츠 코멘테이터, 화요일 담당)
CM 출연
* 메나드 아오야마 리조트 (나고야 지역 라디오 CM)
* 알렉스 (나고야 지역 라디오 CM, 주니치 선배인 야마모토 마사 투수와 함께 2007년부터 잠시 출연. CM에서는 과거 출연했던 알렉스 오초아의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BGM은 사설 응원단에 의한 자신의 응원가)
* 나고야시 교통국 (나고야 시영 지하철 메이조선 나고야 돔 앞 야다역을 포함한 오조네역~스나다바시역 구간 개통 시의 텔레비전 CM, 이와세 히토키 투수와 함께 출연)
만화
* 『후쿠도메 고스케 이야기』 (1996년 8월, 슈에이샤, 월간 소년 점프 단편 작품) 원작: 야자키 료이치, 만화: 오타 후미히코
8.1. 인물
애칭은 "도메 씨" 등으로 불린다.
야구를 시작했을 때는 오른손 타자였으나 오른손 힘이 너무 강해 타구가 전부 왼쪽으로 휘어 파울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 등의 권유로 왼손 타자로 전향했다。
주니치 입단 직후인 1998년 말, 주니치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생선을 많이 먹었고, 낚시도 자주 갔다"라고 말했다. 당시 호시노 센이치 감독도 "(후쿠도메는) 생선을 많이 먹어서 몸이 튼튼하게 자란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에히메 현립 이마바리 니시 고등학교 출신의 좌완 투수였던 후지이 슈고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제1회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으로 함께 선발된 이후 절친한 사이다。 후지이 역시 와세다 대학을 거쳐 NPB의 4개 구단(야쿠르트, 일본햄, 요미우리, DeNA)에서 투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후쿠도메와는 NPB의 시범경기나 1군 공식전에서 여러 차례 맞대결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팽이나 켄다마를 잘했다". 2002년 12월 27일 NHK의 프로그램 '도카이 2002・올해'에 생방송으로 출연했을 때, 켄다마의 "홈런"이라는 기술을 성공시켰다。
매니지먼트는 요시모토 흥업이 담당하고 있다。
한신 이적 후인 2013년 4월 23일, 친정팀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전에서는 5회말 팀 동료 쿠보타 토모유키가 그 해 첫 1군 등판에서 8실점을 하자, 이닝 종료 후 한신 벤치 위에서 쿠보타를 향해 야유를 보낸 관중에게 그라운드에서 맞서는 장면이 있었다。 한편, 좌익수로 출전했던 2017년 9월 12일 요미우리전(고시엔)에서는 연장 12회 초 테라우치 타카유키가 친 좌익수 펜스 직격 타구(기록은 2루타)를 처리하는 도중, 좌익수 스탠드의 관중이 후쿠도메를 향해 플라스틱 용기를 던졌다. 용기는 후쿠도메의 머리 위를 지나 좌익수 페어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한신 입단 당시에는 팀 동료이자 같은 가고시마현 출신인 야마토(마에다 야마토), 에노키다 다이키, 가네다 가즈유키를 식사에 초대하여 "가고시마현인회"를 열었다。 다만, 가네다는 2017년에 오릭스, 야마토는 같은 해 시즌 후 DeNA, 에노키다는 2018년 시범경기 기간 중에 세이부로 이적했다.
NPB 현역 최고령 선수로서 한신에서 맞이한 2020년 시즌에는, 신인 선수로서 공식전 시즌 최다 안타 센트럴 리그 기록(159안타)을 전년에 세운 주전 중견수 치카모토 코지가 개막 이후 타율 1할대로 부진했다. 자신 역시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던 후쿠도메는, 히로시마 원정 중이던 7월 3일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예정되었던 히로시마전이 우천으로 취소되자, 같은 스타디움의 실내 연습장에서 치카모토에게 직접 타격 지도를 했다. 불과 10분간이었지만, 치카모토는 이 지도를 계기로 타격 폼을 수정하여 7월 월간 타율 .276, 8월 .362를 기록하는 등 점차 컨디션을 회복했다. 1군 감독으로서 지도 상황을 지켜본 야노 감독은 "(타격 부진 탈출의) 계기는 어디서든 잡을 수 있으니, 치카(치카모토)에게 같은 좌타자인 (후쿠도메) 코스케에게 배우는 것은 좋았다고 생각한다"라며 후쿠도메의 열정적인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일본 TV의 『처음 뵙겠습니다! 가장 먼 친척씨』(2022년 1월 2일 방송)에서 7촌 조카(7촌 혈족)가 배우 겸 가수인 키타무라 타쿠미임이 밝혀졌다。
8.2. 논란
시카고 컵스 시절이던 2008년 4월, 리글리 필드 근처의 한 기념품 판매대에서 인종차별적인 문구가 담긴 티셔츠가 판매되어 논란이 되었다. 해당 판매대는 시카고 컵스의 공식 라이선스 없이 의류를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문제가 된 티셔츠에는 만화풍의 아시아 글씨체와 과장된 해리 캐리 스타일의 안경을 쓴 컵스 마스코트 곰이 그려져 있었고, "Horry Kow"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유명 캐스터 해리 캐리의 캐치프레이즈 "Holy Cow!"를 Engrish 방식으로 비꼬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기념품 판매대 운영자는 이 티셔츠가 시즌 최고 판매 상품이라고 밝혔으나, 일부 고객들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쿠도메는 통역을 통해 "셔츠 제작자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재미로 만들었든 인종을 비하하려는 의도였든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논란은 지역 언론인 시카고 선타임스에 보도되었고, 이후 시카고 컵스 구단은 해당 판매대 운영자에게 티셔츠 판매를 중단하고 생산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