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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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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남주(1946년)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이다. 그는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를 중퇴했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유신헌법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1973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이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에 가입하여 사회운동을 이어갔으며,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시집 《진혼가》를 출간했다. 1988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된 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활동하다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는 강렬하고 전투적인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며, 반외세, 분단 극복, 광주 민주화 운동 등 현실의 모순을 비판했다. 주요 저서로는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등이 있으며, 프란츠 파농의 저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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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1946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김남주
김남주
이름김남주
원어 이름金南柱
출생일1946년 10월 16일
출생지미 군정 조선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직업시인, 작가, 사회운동가
학력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국적대한민국
활동 기간1969년 ~ 1994년
부모김봉수(부), 문일님(모)
배우자박광숙
자녀김토일(아들)
언어한국어
장르시문학, 소설, 번역
웹사이트김남주 作家 팬 카페
수상신동엽창작기금
단재상
윤상원상
민족예술상

2. 생애

2. 1. 학력

2. 2. 학생운동 시절

김남주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아버지 김봉수와 어머니 문일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정책을 비판하고 반발하여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1969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그 해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전남대 재학 시절에 3선개헌과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적극으로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 10월 초 유신 헌법이 선포되자 그는 이강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로 유신을 반대하는 신문인 「함성」을 발간하였다. 이후 어렵게 「함성」을 운영하다가 1973년에 제호를 「고발」로 개칭하여 발간하였다. 그 해 「고발」을 전국에 배포하려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1973년 국가보안법 혐의로 복역하고 전남대학교에서 제적당했다. 8개월간 복역한 후 해남으로 귀향해 농사일을 하였다. 1974년 〈진혼가〉와 〈잿더미〉를 위시해 시 7편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런 문학 활동 이외에도 전남과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활발히 주도하였다.

2. 3. 사회운동

1975년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자, 김남주는 '시'와 '돌멩이를 든 데모대'로는 대한민국 사회 지배계급의 벽을 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철의 조직'을 결성하기로 계획했다.[1] 이를 위해 광주에서 사회과학책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인 카프카를 열었으나 경영난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1]

1977년 해남에서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된 해남농민회의 조직 결성에 참여하였다. 그 뒤 같은 해, 광주로 가서 황석영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를 열고 활동하다가 사상성 문제로 수배받았다.

1978년 수배를 피해 상경하여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에 가입하였다.[1] 같은 해 재야 활동 동지인 박광숙과 혼인하였다.

2. 4. 투옥과 문학 활동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다시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4년 첫 시집인 《진혼가》를 출간하였다. 《진혼가》는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우유팩에 날카롭게 간 칫솔대로 눌러 써서 지은 시와 산문을 면회객들을 이용해 감옥 밖으로 몰래 내보낸 것들이었다.

수년에 걸친 문인들의 구명 운동과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곳곳의 문인들이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문과 서한을 정부에 발송하였으나 전두환 정부는 거부했다. 1987년 6월 항쟁 다음 해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1988년 12월, 형 집행 정지를 처분받고 9년 3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상임 이사를 맡으면서 활발한 문학 활동과 사회 참여 활동을 병행하였다. 창작 이외에도 프란츠 파농, 파블로 네루다 등의 외국의 사회 발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문학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는 옥중에서도 시와 수필을 계속 썼으며, 편지와 서신을 보내 청년 운동가들을 독려하였다.[2] 김남주는 옥중 서신에서 일본어를 배워서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2]

그는 전사 시인, 혁명 시인[2] 으로도 알려졌는데 그가 '시인'이 아닌 '전사[1]'라고 자칭하였다.

2. 5. 석방과 타계

1989년 그는 10년 넘게 자신의 옥바라지를 한 남민전 동지 박광숙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이 되었으나 1992년 췌장암으로 건강이 악화하여 사퇴하였다.

1993년 2월 군사독재 정권이 붕괴되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김영삼의 특별 지시로 사면되어 복권되었다. 그러나 수감에 따른 후유증과 과로로 말미암아 건강이 악화되어 1994년 초 광화문 인근의 한 병원에 입원하였고, 결국 그해 2월 13일 췌장암을 이겨 내지 못하고 별세했다. 사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되었다.

3. 작품성

김남주의 시는 강렬하고 전투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며, 유장하면서도 강렬한 호흡으로 반외세와 분단 극복, 광주 민주화 운동과 노동 문제를 비롯한 현실의 모순을 질타하고 참다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1]

4. 수상 경력

1974년 《창작과비평》에 〈잿더미〉를 위시해 시 7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1992년 제6회 단재상 문학부문, 1993년 제3회 윤상원상, 1994년 제4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5. 저서와 역서


  • 《진혼가》(청사, 1984)
  • 《나의 칼 나의 피》(인동, 1987)
  • 《조국은 하나다》(남풍, 1988)
  • 《솔직히 말하자》(풀빛, 1989)
  • 《사상의 거처》(창작과비평사, 1991)
  • 《이 좋은 세상에》(한길사, 1992)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비평사, 1995) ISBN


== 시선집 ==

  • 《학살/Hak-sal영어》(한마당, 1988)
  • 《사랑의 무기》(창작과비평사, 1989)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1991)
  • 《꽃 속에 피가 흐른다》(창비, 2004) - 2008년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


== 번역서 ==

  • 프란츠 파농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청사, 1978)
  • 하이네·브레히트·네루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 1988)
  • 하이네 《아타 트롤》(창작과비평사, 1991)

5. 1. 시집


  • 《진혼가》(청사, 1984)
  • 《나의 칼 나의 피》(인동, 1987)
  • 《조국은 하나다》(남풍, 1988)
  • 《솔직히 말하자》(풀빛, 1989)
  • 《사상의 거처》(창작과비평사, 1991)
  • 《이 좋은 세상에》(한길사, 1992)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비평사, 1995) ISBN

5. 2. 시선집


  • 《학살》(학살/Hak-sal영어) (한마당, 1988)
  • 《사랑의 무기》(창작과비평사, 1989)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1991)
  • 《꽃 속에 피가 흐른다》(창비, 2004) - 2008년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

5. 3. 번역서


  • 프란츠 파농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청사, 1978)
  • 하이네·브레히트·네루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 1988)
  • 하이네 《아타 트롤》(창작과비평사, 1991)

6. 가족

유족으로 남민전 동지인 부인 박광숙과 아들 토일이 있다.

7. 기타

1999년 4월 1일에 방송된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차광수 씨 역할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참조

[1] Daum 김남주 http://100.daum.net/[...]
[2] 뉴스 신여성의 명암, 히라쓰카 라이초 http://h21.hani.co.k[...] 한겨레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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