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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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소운은 부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시를 공부하고 일본 시단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문학을 일본에 소개한 시인, 수필가, 번역가이다. 일제강점기 말 친일 행적으로 인해 논란이 있었으나,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65년 영구 귀국 후 1980년 문단에서 은퇴했으며, 사후 도쿄대학에 기증된 저작권료를 기금으로 김소운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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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일제강점기의 번역가 - 박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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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 친일파 - 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2. 생애
부산 출신인 김소운은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기타하라 하쿠슈( 北原白秋일본어 ) 문하에서 시를 공부한 뒤 일본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의 민요와 동요, 시를 일본에 번역 소개했고, 수필도 활발히 창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간체 장편 수필로 일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목근통신》(1952), 수필집 《삼오당잡필》(1955) 등이 있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 세 쌍의 일화를 소개한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잘 알려져 있다.
1920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개성중학교 야간부를 중퇴하고, 제국통신((共同通信)의 전신) 기자로 일했다. 1927년 시라토리 쇼고(白鳥省吾)가 주재하는 잡지 『지상의 낙원(地上の楽園)』에 「조선농민가요(朝鮮農民歌謡)」를 연재하여 문단에 인정받았다. 1928년 이후 기타하라 하쿠슈와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후원으로 『조선민요집』, 『조선동요선』, 『조선시집』 등을 간행하여 조선 문화에 무지했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와도 친분이 있었다.
1945년 2월 귀국했으나,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로마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참석차 일본에 들른 자리에서 한 발언 때문에 한국 정부에 의해 귀국길이 막혔다. 이후 14년간 일본에 머물며 무로 세이세이(室生犀星) 등과 교류했다. 자서전으로 『천애에 살아도(天の涯に生くるとも)』가 있다.
일본 체류 중 이승만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어 1965년에야 영구 귀국했다. 1968년 김소운으로 개명한 이후 1980년 문단에서 은퇴했고, 1981년 사망했다.
도쿄대학(東京大学) 교수 하가 토오루(芳賀徹)와 고보리 케이이치로(小堀桂一郎)와 친분이 있었고, 사후 그의 저작권료는 도쿄대학교 비교문학회에 기증되었다. 이를 기금으로 김소운상(金素雲賞)이 제정되어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 업적에 수여되었는데, 제1회 수상자는 우에가키토 데이이치(上垣外憲一)였으나 이후에는 주로 한국과 중국 유학생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1979년 시호다 이누히코(四方田犬彦)가 한국으로 강의를 갔을 때는 하가의 추천서를 가지고 갔다.
부인 김한림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전신인 구가협 창설을 주도했고, 딸 김윤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한 농민운동가이다.[3] 큰딸 김영의 딸은 일본 가수 사와 도모에이다.
2. 1. 친일 논란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제외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위해 발표한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1943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야마모토 원수의 국장일〉 등 3편이다.[1]김소운의 친일 혐의에 대해서는, 친일 작품 발표 시기가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일제강점기 말기에 몰려있고 편수도 적은 점, 평생에 걸친 주요 관심사가 한국 문학의 번역 소개였고 일본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한 공으로 1980년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는 점, 보통학교 재학 중 밀항으로 도일한 김소운에게는 일본이 문학적인 고향이었다는 점 등 여러 요소 때문에 유가족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2]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
3. 작품 활동
김소운은 일본에서 기타하라 하쿠슈( 北原白秋일본어) 문하에서 시를 공부한 뒤 일본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 시라토리 쇼고(白鳥省吾)가 주재하는 잡지 『지상의 낙원(地上の楽園)』에 '조선농민가요(朝鮮農民歌謡)'를 연재하여 문단에 인정받았다. 1928년 이후 기타하라 하쿠슈와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후원으로 『조선민요집(朝鮮民謡集)』, 『조선동요선(朝鮮童謡選)』, 『조선시집(朝鮮詩集)』 등을 간행하여 조선 문화에 무지했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와도 친분이 있었다.
이후 한국의 민요와 동요, 시를 일본에 번역 소개했고, 수필도 활발히 창작했다. 서간체 장편 수필 《목근통신》(1952), 수필집 《삼오당잡필》(1955) 등이 있고,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잘 알려져 있다. 『諺文朝鮮口伝民謡集』(1933년)은 현재에도 한글 방언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3. 1. 주요 작품 목록
4. 학력 및 가족 관계
5. 수상
1974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받았다. 1981년, 메이하라 타케시(梅原猛)를 대표로 하는 일본문화디자인회의(日本文化デザイン会議)로부터 국제문화디자인대상을 수상했다.
6. 김소운 연구
김소운은 도쿄대학(東京大学) 교수 하가 토오루(芳賀徹) 및 고보리 케이이치로(小堀桂一郎)와 친분이 있었다. 사후 그의 저작권료는 도쿄대학교 비교문학회에 기증되어 이를 기금으로 김소운상(金素雲賞)이 제정되었다. 김소운상은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 업적에 수여되었는데, 제1회 수상자는 우에가키토 데이이치(上垣外憲一)였으나 이후에는 주로 한국과 중국 유학생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1979년 시호다 이누히코(四方田犬彦)가 한국으로 강의를 갔을 때는 하가의 추천서를 가지고 갔다.
『언문조선구전민요집』(諺文朝鮮口伝民謡集, 1933년)은 현재에도 한글 방언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조
[1]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09-17
[2]
뉴스
母는 민주투사 父는 친일작가?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08-29
[3]
뉴스
“김소운 친일문인 규정 억울 우리문학 日소개 애썼을뿐”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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