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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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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소운은 부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시를 공부하고 일본 시단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문학을 일본에 소개한 시인, 수필가, 번역가이다. 일제강점기 말 친일 행적으로 인해 논란이 있었으나,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65년 영구 귀국 후 1980년 문단에서 은퇴했으며, 사후 도쿄대학에 기증된 저작권료를 기금으로 김소운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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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소운
초명김교중
아호삼오당, 소운
출생일1907년 1월 5일
출생지대한제국 경상남도
사망일1981년 11월 2일
사망지대한민국 부산직할시
국적대한제국→대한민국
직업시인, 수필가, 번역문학가
배우자김한림
자녀김인범(맏아들), 김영(첫째딸), 김윤(막내딸)
경력
주요 경력매일신보 기자, 조선아동교육회 회장
활동 기간1923년 ~ 1980년
학력
학력일본 도쿄 가이세이 중학교 중퇴 (1921년)
장르
장르수필, 시문학

2. 생애

부산 출신인 김소운은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기타하라 하쿠슈( 北原白秋일본어 ) 문하에서 시를 공부한 뒤 일본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의 민요와 동요, 시를 일본에 번역 소개했고, 수필도 활발히 창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간체 장편 수필로 일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목근통신》(1952), 수필집 《삼오당잡필》(1955) 등이 있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 세 쌍의 일화를 소개한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잘 알려져 있다.

1920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개성중학교 야간부를 중퇴하고, 제국통신((共同通信)의 전신) 기자로 일했다. 1927년 시라토리 쇼고(白鳥省吾)가 주재하는 잡지 『지상의 낙원(地上の楽園)』에 「조선농민가요(朝鮮農民歌謡)」를 연재하여 문단에 인정받았다. 1928년 이후 기타하라 하쿠슈와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후원으로 『조선민요집』, 『조선동요선』, 『조선시집』 등을 간행하여 조선 문화에 무지했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와도 친분이 있었다.

1945년 2월 귀국했으나,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로마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참석차 일본에 들른 자리에서 한 발언 때문에 한국 정부에 의해 귀국길이 막혔다. 이후 14년간 일본에 머물며 무로 세이세이(室生犀星) 등과 교류했다. 자서전으로 『천애에 살아도(天の涯に生くるとも)』가 있다.

일본 체류 중 이승만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어 1965년에야 영구 귀국했다. 1968년 김소운으로 개명한 이후 1980년 문단에서 은퇴했고, 1981년 사망했다.

도쿄대학(東京大学) 교수 하가 토오루(芳賀徹)와 고보리 케이이치로(小堀桂一郎)와 친분이 있었고, 사후 그의 저작권료는 도쿄대학교 비교문학회에 기증되었다. 이를 기금으로 김소운상(金素雲賞)이 제정되어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 업적에 수여되었는데, 제1회 수상자는 우에가키토 데이이치(上垣外憲一)였으나 이후에는 주로 한국과 중국 유학생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1979년 시호다 이누히코(四方田犬彦)가 한국으로 강의를 갔을 때는 하가의 추천서를 가지고 갔다.

부인 김한림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전신인 구가협 창설을 주도했고, 딸 김윤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한 농민운동가이다.[3] 큰딸 김영의 딸은 일본 가수 사와 도모에이다.

2. 1. 친일 논란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제외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위해 발표한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1943년매일신보》에 발표한 〈야마모토 원수의 국장일〉 등 3편이다.[1]

김소운의 친일 혐의에 대해서는, 친일 작품 발표 시기가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일제강점기 말기에 몰려있고 편수도 적은 점, 평생에 걸친 주요 관심사가 한국 문학의 번역 소개였고 일본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한 공으로 1980년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는 점, 보통학교 재학 중 밀항으로 도일한 김소운에게는 일본이 문학적인 고향이었다는 점 등 여러 요소 때문에 유가족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2]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

3. 작품 활동

김소운은 일본에서 기타하라 하쿠슈( 北原白秋일본어) 문하에서 시를 공부한 뒤 일본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 시라토리 쇼고(白鳥省吾)가 주재하는 잡지 『지상의 낙원(地上の楽園)』에 '조선농민가요(朝鮮農民歌謡)'를 연재하여 문단에 인정받았다. 1928년 이후 기타하라 하쿠슈와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후원으로 『조선민요집(朝鮮民謡集)』, 『조선동요선(朝鮮童謡選)』, 『조선시집(朝鮮詩集)』 등을 간행하여 조선 문화에 무지했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와도 친분이 있었다.

이후 한국의 민요와 동요, 시를 일본에 번역 소개했고, 수필도 활발히 창작했다. 서간체 장편 수필 《목근통신》(1952), 수필집 《삼오당잡필》(1955) 등이 있고,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잘 알려져 있다. 『諺文朝鮮口伝民謡集』(1933년)은 현재에도 한글 방언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3. 1. 주요 작품 목록

출판 연도제목출판사비고
1929년조선민요집태문관朝鮮民謠集|조선민요집일본어
1933년조선동요선이와나미 서점朝鮮童謠選|조선동요선일본어, 이와나미 문고
1933년조선민요선이와나미 서점朝鮮民謠選|조선민요선일본어, 이와나미 문고
1933년조선구전민요집제일서방朝鮮口伝民謠集|조선구전민요집일본어
1940년유색의 구름 조선시집가와데쇼보有色の雲 朝鮮詩集|유색의 구름 조선시집일본어
1942년은다목공텐유쇼보銀多木公|은다목공일본어
1942년삼한옛이야기가쿠쇼샤三韓昔噺|삼한옛이야기일본어
1942년푸른 잎산가쿠쇼보青い葉|푸른 잎일본어
1943년조선시집 전·중기흥풍관朝鮮詩集 前・中期|조선시집 전·중기일본어
1943년조선사담텐유쇼보朝鮮史譚|조선사담일본어
1952년마이동풍첩고려서적馬耳東風帖|마이동풍첩일본어
1953년당나귀 귀의 왕님 한국옛이야기고단샤驢馬の耳の王様 韓国昔噺|당나귀 귀의 왕님 한국옛이야기일본어
1953년조선시집소겐샤朝鮮詩集|조선시집일본어
1954년파를 심은 사람 조선민화선이와나미 소년문고葱を植えた人 朝鮮民話選|파를 심은 사람 조선민화선일본어
1954년조선시집이와나미 문고朝鮮詩集|조선시집일본어
1954년원수 30년다비드샤怨讐三十年|원수 30년일본어
1955년희망은 아직 버릴 수 없다가와데 신쇼希望はまだ棄てられない|희망은 아직 버릴 수 없다일본어
1955년삼오당잡필진문사三五堂雑筆|삼오당잡필일본어
1956년아시아의 사등선실다이니혼유벤카이 고단샤アジヤの四等船室|아시아의 사등선실일본어
1957년단종육신코리안 라이브러리端宗六臣|단종육신일본어
1957년민족의 그늘과 햇빛코리안 라이브러리民族の陰と陽|민족의 그늘과 햇빛일본어
1968년정해한일사전휘문출판사精解韓日辞典|정해한일사전일본어
1974년일본이라는 이름의 기차동수사日本という名の汽車|일본이라는 이름의 기차일본어
1979년가까운 먼 나라에서신초샤近い遠い国から|가까운 먼 나라에서일본어
1981년마음의 벽 김소운 에세이선사이말출판회心の壁 金素雲エッセイ選|마음의 벽 김소운 에세이선일본어
1981년안개가 개는 날 김소운 에세이선 2사이말출판회霧が晴れる日 金素雲エッセイ選 2|안개가 개는 날 김소운 에세이선 2일본어
1982년미당·서정주 시선 - 조선 민들레의 노래동수사未堂・徐廷柱詩選 - 朝鮮蒲公英の歌|미당·서정주 시선 - 조선 민들레의 노래일본어
1983년하늘 끝에 산다 해도신초샤空の果てに住むとて|하늘 끝에 산다 해도일본어
1985년삼한옛이야기고단샤三韓昔噺|삼한옛이야기일본어
1986년조선사담고단샤朝鮮史譚|조선사담일본어


4. 학력 및 가족 관계

구분내용
학력
가족 관계
기타전처의 아들은 시인이자 작가인 북원철(北原綴)이며, 그의 저서로는 『시인, 그 허상과 실상 - 아버지 김소운의 경우』가 있다.


5. 수상

1974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받았다. 1981년, 메이하라 타케시(梅原猛)를 대표로 하는 일본문화디자인회의(日本文化デザイン会議)로부터 국제문화디자인대상을 수상했다.

6. 김소운 연구

김소운은 도쿄대학(東京大学) 교수 하가 토오루(芳賀徹) 및 고보리 케이이치로(小堀桂一郎)와 친분이 있었다. 사후 그의 저작권료는 도쿄대학교 비교문학회에 기증되어 이를 기금으로 김소운상(金素雲賞)이 제정되었다. 김소운상은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 업적에 수여되었는데, 제1회 수상자는 우에가키토 데이이치(上垣外憲一)였으나 이후에는 주로 한국과 중국 유학생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1979년 시호다 이누히코(四方田犬彦)가 한국으로 강의를 갔을 때는 하가의 추천서를 가지고 갔다.

『언문조선구전민요집』(諺文朝鮮口伝民謡集, 1933년)은 현재에도 한글 방언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조

[1]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09-17
[2] 뉴스 母는 민주투사 父는 친일작가?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08-29
[3] 뉴스 “김소운 친일문인 규정 억울 우리문학 日소개 애썼을뿐”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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