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하라 하쿠슈
1. 개요
기타하라 하쿠슈는 일본의 시인, 동요 작사가, 평론가로, 1885년 후쿠오카현 야나가와시에서 태어나 1942년 사망했다. 그는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중퇴하고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1909년 첫 시집 『사교문』을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동요와 민요에도 관심을 가져, 잡지 '아카이 토리'에 참여하여 어린이 노래를 짓고, '빵의 모임'을 결성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200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으며, 그의 작품과 삶을 기리는 축제가 고향 야나가와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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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예술원 회원 -
카가 오토히코
가가 오토히코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정신과 의사로, 도쿄대학교 의학부에서 정신의학과 범죄학을 전공하고 등단 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사형폐지론을 주장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일본예술원 회원 및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
일본 예술원 회원 -
이소자키 아라타
이소자키 아라타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히로시마 원폭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추구하며 사회적 담론을 이끌었고, 국제적인 프로젝트와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쳐 201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건축가이다. -
일본의 작사가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일본의 작사가 -
와타나베 미사토
와타나베 미사토는 1985년 데뷔하여 'My Revolution' 등의 히트곡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 에픽 레코드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8년 연속 앨범 1위 기록을 보유한 '앨범 아티스트'로서,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에서의 스타디움 라이브와 'MISATO TRAIN' 운행, 코무로 테츠야, 오카무라 야스유키 등과의 협업, 드라마 및 영화 음악 참여, 자작곡 활동 등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생애
기타하라 하쿠슈는 1904년 도쿄로 이주하여 여러 문예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요사노 텟칸의 초청으로 '신시샤'(新詩社)에 가입하여 묘조(明星)지에 시를 발표하며 젊은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인맥을 바탕으로 화가, 음악가, 배우, 작가들을 포함하는 혁신적인 문학 그룹인 '판노 카이(빵의 모임)'을 결성했다.
1907년에는 요사노 텟칸, 키노시타 목타로, 히라노 반리, 요시이 이사무와 함께 수필집 5켤레의 구두를 출판했다.
1909년에는 문예지 스바루(昴)의 창립 멤버가 되었으며, 첫 시집 자슈몬(邪宗門, 이단자)을 발표하여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집은 풍부한 이미지와 혁신적인 구조를 통해 요사노 아키코의 미다레가미(みだれ髪)와 함께 현대 일본 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2년에는 간통 혐의로 체포되어 2주 동안 수감되었으나, 혐의는 나중에 취하되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첫 탄카 선집인 기리노 하나(桐の花, 오동나무 꽃, 1913)에서 삶에 대한 그의 관점에 종교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되었다. 이후 신쥬 쇼(真珠抄, 진주 초, 1914), 핫킨노 코마(白金之駒, 백금의 팽이, 1915) 등에서 불교적 기도 형태의 시를 발표했다.
1918년부터는 스즈키 미에키치의 요청으로 문예 잡지 아카이 토리(붉은 새)에 참여하여 어린이 노래를 만들고, 전국에서 자장가를 수집하는 일을 맡았다. 1919년에는 톤보노 메다마(잠자리의 눈), 1921년에는 마자 구스 (Mother Goose)와 우사기노 덴포(토끼 전보) 등을 출판했다. 1923년부터는 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양적 단순성”을 추구한 수이보쿠슈(水墨集, 수묵집)와 스즈메노 타마고(雀の卵, 참새의 알)를 발표했다.
1926년 도쿄로 돌아와 1928년 세타가야로 이사했다. 고지키와 같은 고전 일본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개표의 구름(海豹の雲, 1929)과 같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에는 만주를 여행했고, 남만주철도를 이용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나라현을 방문했다.
1935년에는 단카 잡지 타마를 창간하고 상징주의 운동의 선두 주자로 알려졌다. 그의 제자로는 기마타 오사무와 미야 슈지가 있었다.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의 초청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을 순방하고 시를 썼다.
1937년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거의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했다. 1940년에는 일본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42년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묘는 다마 레이엔에 있다.
그의 가족으로는 아버지 기타하라 쵸타로, 동생 기타하라 테츠오와 기타하라 요시오, 아내 토시코, 에구치 아키코, 키쿠코가 있다.
2.1. 어린 시절과 문학 입문 (1885-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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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하라는 1885년 1월 25일 후쿠오카현 야나가와시에서 술 제조업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하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했다. 학생 시절 시마자키 도손의 시, 특히 시집 『젊은 풀의 모음집』(若菜集, 1897)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 시집은 신체시 형식으로 쓰여졌다.
1887년(메이지 20년), 남동생 테츠오가 태어났고, 같은 해에 하쿠슈에게 큰 영향을 준 유모 시카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1891년(메이지 24년), 야도메 심상소학교에 입학했다. 1897년(메이지 30년), 야나가와 고등소학교에서 현립 전습관 중학교(현 후쿠오카현립 전습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1899년(메이지 32년) 성적 하락으로 유급되었다. 이 무렵부터 시가에 열중하여 잡지 『문고』, 『묘조』 등을 읽었고, 특히 묘조파에 기울었다. 1901년(메이지 34년) 큰 화재로 기타하라가의 술 창고가 전소되어 가산이 기울기 시작했다. 하쿠슈는 문학에 열중하여 동인지에 시문을 게재했고, 이 해에 처음으로 "하쿠슈"라는 호를 사용했다.
1904년(메이지 37년), 장시 『임하의 묵상』이 카와이 스이메이의 칭찬을 받아 『문고』 4월호에 게재되었다. 감격한 하쿠슈는 아버지 몰래 중학교를 자퇴하고,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 예과에 입학했다. 상경 후, 같은 고향 출신인 와카야마 보쿠스이와 친하게 교류했다. 이 무렵, 호를 "샤스이(射水)"라 칭했으며, 친구인 나카바야시 소스이, 보쿠스이와 함께 "와세다의 삼수"라고 불렸다.
2.2. 문단 활동과 '빵의 모임' (1904-1909)
1904년 도쿄로 이주한 기타하라는 여러 문예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1906년 요사노 텟칸의 초청으로 '신시샤'(新詩社, 신시사)에 가입, 묘조(明星)지에 시를 발표하여 젊은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많은 작가 및 시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기타하라는 화가, 음악가, 배우, 작가들을 포함하는 혁신적인 문학 그룹인 '판노 카이(빵의 모임)'을 결성했다.
1909년 문예지 스바루(昴,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첫 시집 자슈몬(邪宗門, 이단자)을 발표하여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집은 풍부한 이미지와 혁신적인 구조를 통해 요사노 아키코의 미다레가미(みだれ髪)와 함께 평론가들로부터 현대 일본 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3. 『사교문』과 『추억』 (1909-1912)
기타하라는 1909년에 문예지 스바루(昴,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창립 멤버가 되었으며, 그곳에 첫 시집인 자슈몬(邪宗門, 이단자)을 발표하여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풍부한 이미지와 혁신적인 구조를 통해 이 시집은 요사노 아키코의 미다레가미(みだれ髪)와 함께 평론가들로부터 현대 일본 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타하라의 초기 성공에 이어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세상을 묘사한 오모이데(思い出, 추억, 1912)가 출간되었다.
2.4. 간통 사건과 종교적 영향 (1912-1915)
1912년, 기타하라는 간통 혐의로 체포되어 2주 동안 수감되었다. 혐의는 나중에 취하되었지만,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첫 탄카 선집인 기리노 하나(桐の花, 오동나무 꽃, 1913)에서 삶에 대한 그의 관점에 종교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되었다. 이는 그의 두 번째 선집 신쥬 쇼(真珠抄, 진주 초, 1914)와 세 번째 선집 핫킨노 코마(白金之駒, 백금의 팽이, 1915)에서 드러났으며, 여기에는 불교적 기도 형태의 한 줄 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수이보쿠슈(水墨集, 수묵집, 1923)와 스즈메노 타마고(雀の卵, 참새의 알, 1921)에서 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양적 단순성”을 추구했다.
2.5. 동요와 민요에 대한 관심 (1918-1929)
1918년, 스즈키 미에키치의 요청으로 문예 잡지 아카이 토리(붉은 새)에 참여하여 어린이 노래를 만들고, 잡지에 투고된 시를 심사하며, 전국에서 자장가를 수집하는 일을 맡았다. 1919년, 아카이 토리에 연재했던 어린이 가사 모음집인 톤보노 메다마(잠자리의 눈)를 출판했다. 1921년에는 영어 고전 번역 모음집인 마자 구스 (Mother Goose)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자장가 모음집인 우사기노 덴포(토끼 전보)가 출판되었다.
1922년 4월호부터 코도모노 쿠니(어린이 나라)는 독자들에게 어린이 노래를 투고하도록 권장했고, 기타하라는 심사와 논평을 담당했다. 1929년, 그는 어린이 노래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인 미도리노 숏카쿠(녹색의 촉수)를 출판했다.
기타하라 하쿠슈가 작사한 주요 동요 및 민요는 다음과 같다.
2.6. 만년과 죽음 (1930-1942)
1930년 기타하라는 남만주 철도의 초청으로 만주를 여행했다. 귀국길에는 나라에 들러 자주 가족 여행을 떠났다. 1932년에는 요시다 잇포, 오키 아쓰오와 함께 시 잡지 『신시론』을 창간했다. 1933년에는 오해로 인해 스즈키 미에키치와 절교하여, 이후 『아카이토리』에 글을 쓰는 일은 없어졌다. 같은 해 황태자 아키히토 친왕이 탄생하자, 봉축가 『황태자님 태어나셨다』(작곡: 나카야마 신페이)를 헌정했다. 1934년에는 『하쿠슈 전집』을 완결하고, 가집 『백남풍』을 간행했다. 타이완 총독부의 초청으로 타이완을 여행하기도 했다.
1935년, 기타하라는 신유현체를 표방하여 타마 단가회를 결성하고, 가시 『타마』를 창간했다.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의 위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을 여행했다. 같은 해 50세 축하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1937년, 당뇨병 및 신장병의 합병증으로 안저출혈을 일으켜 입원했다. 시력은 거의 잃었지만, 가작(歌作)에 더욱 몰두했다. 1938년에는 히틀러 유겐트의 방일에 즈음하여 『만세 히틀러 유겐트』를 작사하는 등, 국가주의로의 경향이 강해졌다. 1940년, 일본 문화 중앙 연맹의 위촉으로 교성곡 『해도동정』 (곡: 노부토키 기요시)의 작시에 임했다. 1941년 봄, 수십 년 만에 야나가와에 귀향하여 난칸에서 숙부의 묘를 참배하고, 미야자키와 나라를 순회했다. 같은 해 제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지만, 연말에 걸쳐 병세가 악화되었다.
1942년, 가와다 준과 일본 문학 보국회가 정보국과 대정익찬회의 후원으로 『애국 백인 일수』를 편찬했을 때, 기타하라 하쿠슈도 선정위원으로 선정되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병상에서 집필과 편집을 계속했다. 11월 2일, 당뇨병과 신장병으로 인해 아사야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57세였다.
같은 해 11월 12일, 훈4등 서보장을 수여받았다. 묘소는 다마 영원(도쿄도 후추시)에 있다.
3. 작품 세계
기타하라 하쿠슈는 1904년 도쿄로 이주하여 여러 문예지에 시를 투고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06년 요사노 텟칸의 초청으로 '신시샤'(新詩社)에 가입, 묘조(明星)에 시를 발표하며 젊은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요사노 텟칸, 키노시타 목타로, 히라노 반리, 요시이 이사무와 함께 수필집 5켤레의 구두를 출판했다. 또한, 많은 작가, 시인, 화가, 음악가, 배우들과 교류하며 혁신적인 문학 그룹인 '판노 카이(빵의 모임)'을 결성했다.
1909년 문예지 스바루(昴) 창립 멤버로 참여, 첫 시집 자슈몬(邪宗門, 이단자)을 발표하여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집은 풍부한 이미지와 혁신적인 구조로 요사노 아키코의 미다레가미(みだれ髪)와 함께 현대 일본 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세상을 묘사한 오모이데(思い出, 추억, 1912)를 출간했다.
1912년 간통 혐의로 체포되어 2주간 수감되었으나, 혐의는 취하되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첫 와카집 기리노 하나(桐の花, 오동나무 꽃, 1913)에서 삶에 대한 관점에 종교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된다. 이후 신쥬 쇼(真珠抄, 진주 초, 1914), 핫킨노 코마(白金之駒, 백금의 팽이, 1915) 등에서 불교적 기도 형태의 한 줄 시를 선보였고, 수이보쿠슈(水墨集, 수묵집, 1923), 스즈메노 타마고(雀の卵, 참새의 알, 1921)에서 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양적 단순성”을 추구했다.
1918년 오다와라로 이사한 후, 스즈키 미에키치의 권유로 『붉은 새』의 동요, 아동시란을 담당하며 뛰어난 동요 작품을 발표, 이후 구어적이고 가요적인 시풍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37년 당뇨병과 신장병 합병증으로 안저출혈이 발생하여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가작에 더욱 몰두했다. 1938년 히틀러 유겐트 방일 때 『만세 히틀러 유겐트』를 작사하는 등 국가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4. 평가
기타하라 하쿠슈는 평생 200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다. 시 잡지 지조 준레이(지상의 순례)를 편집하여 하기와라 사쿠타로 등 후대 작가들이 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도왔다. 도요 에이와 여자 학원을 포함하여 전국 고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많은 시들은 오늘날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타하라가 편집한 6권 분량의 출판물인 니혼 덴쇼 도요 슈세이(일본 전통 동요 전집)은 1976년에 출간되었다.
그의 고향인 야나가와에서는 매년 11월에 기타하라의 삶과 작품을 기리는 [http://golocal.inktails.com/2008/10/hakushusai-celebrationhakushusai-celebration/ 연례 축제]가 열린다. 도시의 운하를 따라 무대가 설치되고, 밤에는 불빛 아래에서 기타하라의 작품 팬들이 그의 시와 구절을 낭독한다. 운하 퍼레이드와 음악 공연도 열린다.
5. 기타하라 하쿠슈와 한국
기타하라 하쿠슈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의 작품과 문학 활동은 한국 문학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그의 초기 시집인 《자슈몬》(邪宗門, 이단자)과 《오모이데》(思い出, 추억) 등은 풍부한 이미지와 혁신적인 구조를 통해 당시 일본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는 한국의 근대 시 형성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주어진 자료에는 기타하라 하쿠슈와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은 없다. 그의 문학 활동은 주로 일본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요사노 텟칸, 키노시타 목타로 등 일본 문인들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6. 기념 사업
기타하라는 평생 200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다. 시 잡지 지조 준레이(지상의 순례)를 편집하여 하기와라 사쿠타로 등 후대 작가들이 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도왔다. 도요 에이와 여자 학원을 포함한 전국 고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많은 시들은 오늘날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타하라가 편집한 6권 분량의 니혼 덴쇼 도요 슈세이(일본 전통 동요 전집)는 1976년에 출간되었다.
기타하라의 삶과 작품을 기리는 연례 축제는 11월 한 달 동안 그의 고향인 야나가와에서 열린다. 도시 운하를 따라 무대가 설치되고, 밤에는 불빛 아래에서 기타하라 작품의 팬들이 그의 시와 구절을 낭독한다. 운하 퍼레이드와 음악 공연도 열린다.
오다와라 문학관 하쿠슈 동요관 부지 내에는 하쿠슈 동요비가 있으며, 「붉은 새 꼬마 새」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덴초지 경내에도 같은 비가 있다.
미사키 하쿠슈 축제 (미우라시, 7월 - 12월) - 조가섬의 하쿠슈 비 앞 광장에서 열리는 「비전제」 외에 하쿠슈전, 동요 축제, 단가 대회, 하이쿠 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2019년에는 오오모리 나오가 출연한 영화 이 길이 공개되었다.
1990년에는 NHK에서 NHK 스페셜 "톤카존의 출분 ~백추·'추억'의 세계~"가 방영되었다.
2023년 3월에는 구마모토현 난칸마치에서 만화 고향의 위인 "기타하라 하쿠슈 이야기 두 개의 고향"이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