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이
1. 개요
김임이는 1811년 한양에서 태어난 한국 천주교 신자로, 17세에 평생 처녀로 살 것을 결심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1845년 김대건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박해를 예상하고 따랐으며, 1846년 체포되어 옥중에서도 신앙을 지켰다. 그해 9월 20일 장살형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으며,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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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임이 데레사 |
|---|---|
| 출생일 | 1811년 |
| 사망일 | 1846년 9월 20일 |
| 축일 | 9월 20일 |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 출생지 | 서울 |
| 사망지 | 서울 |
| 직업 | 순교자 |
|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
|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
|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
|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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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출생 -
막시밀리안 2세 (바이에른)
막시밀리안 2세는 바이에른 왕국의 왕으로, 학구적인 성향을 보이며 문화, 교육, 예술 발전에 힘썼으나 보수적인 반발에 직면했고, 프로이센의 범독일주의에 맞서 바이에른의 정체성을 강화하려 노력하다가 1864년 사망했다. -
1811년 출생 -
아이작 메릿 싱어
아이작 메릿 싱어는 기존 재봉틀 디자인을 개선하여 실용적인 재봉틀을 발명하고 특허를 취득했으며, 싱어사를 설립하여 재봉틀을 대량 생산, 판매함으로써 세계 의류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미국의 발명가이자 기업가, 배우였다. -
1846년 사망 -
김대건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로, 천주교 신앙을 가진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걸으며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26세에 순교하였고, 그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1846년 사망 -
현석문
현석문은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잃은 후 조선 천주교 발전에 헌신하며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기해일기》를 편찬했고, 병오박해 때 순교하여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김임이는 1846년 7월 11일 체포되기 전 날, 여동생의 집을 찾아갔다. 여동생은 김임이에게 그날 밤을 자기 집에서 묵으라고 말했지만, 김임이는 교회 지도자들과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해야 한다며 현석문 가롤로의 새 집으로 갔다. 김임이는 우술임, 이간난, 정철염과 함께 체포되어 두 달 이상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동안 모두 인내와 사랑 그리고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김임이는 네 사람 중 가장 용감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들을 격려했다. 관찬 기록(《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가혹한 심문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배교하지 않았다. 1846년 9월 20일, 김임이를 포함한 네 명의 여성과 다른 세 명의 교우는 장살형을 받거나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김임이의 순교 당시 나이는 36세였다.
2.1. 초기 생애 (1811년 ~ 1845년)
김임이는 1811년 한양의 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들의 전기를 즐겨 읽으며, 그들의 덕행을 본받아 따랐다. 김임이는 17세에 일생을 처녀로 살기로 결심하였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 특히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또한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도 돌보곤 하였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왜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는지 의심하였다. 그러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공주궁의 침모로 들어가 3년을 보냈다. 2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교우인 오빠와 함께 이문우 요한의 양모의 집과 몇몇 친척, 친구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1845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일할 때 매우 행복해했다. 또 다른 박해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으며 그것을 반겼다. 한때 김 신부가 체포된다면, 자신도 그를 따라 죽음까지 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동생에게 이 세상에서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2.2. 신앙 활동과 순교 (1845년 ~ 1846년)
김임이는 1845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행복해했다. 김임이는 또 다른 박해를 기다리는 듯했으며, 김 신부가 체포되면 자신도 따라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1846년 7월 11일, 김임이는 체포되기 전날 여동생 집에 갔지만, 교회 지도자들과 현석문 가롤로의 집에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며 그날 밤 여동생의 집에서 머물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떠났다.
우술임, 이간난, 정철염과 함께 체포된 김임이는 두 달 이상 감옥에 있었다. 김임이는 감옥에서 인내, 사랑, 겸손의 모범을 보였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격려했다. 관찬 기록(《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가혹한 심문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배교하지 않았다. 1846년 9월 20일, 김임이를 포함한 네 명의 여성과 다른 세 명의 교우는 장살형을 받거나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김임이의 순교 당시 나이는 36세였다.
2.2.1. 병오박해와 순교
김임이는 1811년 한양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성인들의 전기를 즐겨 읽고 그들의 덕행을 본받아 17세에 처녀로 살기로 결심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봉사했으며, 위험에 처한 사람들도 돌보았다.
친척과 친구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의심하자, 김임이는 공주궁의 침모로 들어가 3년을 보냈다. 2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오빠와 함께 이문우 요한의 양모 집과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1845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행복해했다. 김임이는 또 다른 박해를 기다리는 듯했으며, 김 신부가 체포되면 자신도 따라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동생에게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임이는 체포 전날 여동생 집에 갔지만, 교회 지도자들과 현석문 가롤로의 집에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며 1846년 7월 11일 체포되었다.
김임이는 우술임, 이간난, 정철염과 함께 체포되어 두 달 이상 감옥에 있었다. 이들은 감옥에서 인내, 사랑, 겸손의 모범을 보였다. 김임이는 가장 용감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격려했다. 관찬 기록(《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가혹한 심문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배교하지 않았다. 1846년 9월 20일, 김임이를 포함한 네 명의 여성과 다른 세 명의 교우는 장살형을 받거나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김임이의 순교 당시 나이는 3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