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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 (17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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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 루치아는 1769년에 태어나 1839년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복자이자 성인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천주교 신자로, 남편의 신앙 방해로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사 일을 돕고 병자들을 돌보았다. 김 루치아는 열렬한 신앙심으로 개종에 기여했으며,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71세의 고령에도 배교를 거부하고 태형을 받았다. 1839년 8월 말에서 9월 초, 포도청 감옥에서 순교했으며,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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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 (1769년) - [인물]에 관한 문서

2. 생애

김 루치아는 '곱추 루치아'로 불렸으며, 어린 시절부터 천주교 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신앙생활의 어려움으로 집을 나와 교우들과 함께 지내며 가사를 돕고 병자를 돌보는 등 공동체 생활을 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깊은 신앙심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 구원에 대한 열정을 지녔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71세의 나이로 옥고를 치렀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태형을 당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1839년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포도청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나이는 71세였다.

2. 1. 장애인 여성

김 루치아는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어 일반적으로 비신자들 사이에서는 "곱추 할멈"으로, 천주교 교우들에게는 "곱추 루치아"로 불렸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천주교 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비신자 남성과 결혼했지만, 남편이 다른 천주교인들과 어울리거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막자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얹혀 살았다. 교우들은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했고, 김 루치아는 그들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가사 일을 돕고 아이들과 병자들을 돌보았다. 하느님 앞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다는 믿음 아래, 그녀의 깊은 신앙과 겸손함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이러한 삶은 그녀가 평범한 장애인 여성을 넘어 영웅적인 순교자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2. 2. 열렬한 신앙

순교자 정신은 일반적으로 신념과 용기로 나타난다. 김 루치아와 같은 여성에게서 이러한 정신이 발견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를 차별 없이 대하시는 하느님자비와 그녀의 깊은 신앙, 그리고 겸손함이 어우러져 평범한 지체장애인 여성이었던 그녀를 영웅적인 순교자로 만들었다.[1]

김 루치아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한번은 김 루치아가 어떤 양반지옥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양반이 "너는 지옥이 매우 좁은 곳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다 들어갈 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김 루치아는 "나으리께서는 결코 만 권의 책을 담는 당신의 작은 마음이 너무 작거나 좁다고 생각하신 적이 없으실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양반은 배우지 못한 여성의 지혜와 능변에 감탄했다고 전해진다.[1]

2. 3. 박해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김 루치아는 체포되었다. 당시 71세의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 안에서 다른 아픈 수감자들을 돌보고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돈까지 나누어 주었다.

2. 3. 1. 굳은 신념

순교자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굳은 신념과 용기는 김 루치아에게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를 차별 없이 대하시는 하느님자비에 대한 깊은 믿음, 그리고 그녀의 겸손함은 평범한 지체장애인 여성이었던 그녀를 영웅적인 순교자로 만들었다.

김 루치아는 고령이었기에 처음에는 형벌을 면제받았지만, 배교를 강요하는 온갖 교활한 심문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결같이 신앙을 지키며 배교를 거부했다. 포졸들이 다른 천주교 신자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강요했을 때에도, 그녀는 오직 천주를 위해서 죽겠다고 답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늙고 여윈 몸으로 태형 30대를 맞아야 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 매 맞는 소리가 마치 뼈를 때리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증언했다. 옥방으로 돌아온 김 루치아는 심한 매질의 후유증으로 병들고 쇠약해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되었다.

2. 3. 2. 순교

순교자 정신은 일반적으로 신념과 용기로 표현된다. 김 루치아에게서 이러한 정신이 발견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를 차별 없이 대하시는 하느님자비와 그녀의 깊은 신앙, 그리고 겸손함이 어우러져 평범한 지체장애인이었던 그녀를 영웅적인 순교자로 만들었다.

태형을 당한 지 약 사흘 후인 1839년 8월 말에서 9월 초 경, 김 루치아는 포도청의 여성 감옥에서 몇몇 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신앙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71세였다.

3. 시복 · 시성

순교자 정신의 핵심인 신념과 용기는 김 루치아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녀의 깊은 신앙과 겸손함은 하느님자비와 어우러져, 지체장애인이었던 그녀를 영웅적인 순교자로 이끌었다.

곱추 김 루치아는 1925년 7월 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2] 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다.[3] 이후 1984년 5월 6일에는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거행된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참조

[1] 웹사이트 http://newsaints.fai[...]
[2] 백과사전 103위 성인 (百三位聖人) http://preview.brita[...] 2014-11-16
[3] 뉴스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https://web.archive.[...] 평화방송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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