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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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 바르바라는 19세기의 한국 천주교 신자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하인으로 일하며 신앙심을 키웠다. 아버지의 강요로 이교도와 결혼하여 신앙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편 사후 기도와 선행에 전념했다. 1839년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배교를 거부하고 3개월 후 35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김 바르바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 바르바라
출생일1805년
사망일1839년 5월 27일
축일9월 20일
교파로마 가톨릭교회
출생지경기도 봉천
사망지서울
직업순교자
시복일1925년 7월 5일
시복인교황 비오 11세
시성일1984년 5월 6일
시성인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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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 바르바라는 경기도의 가난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독실하지는 않았다. 13세에 황 마리아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며 신앙심을 키웠고, 동정을 결심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요로 이교도와 결혼하여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녀를 천주교 신자로 키우려 노력했다. 남편 사후 신앙생활에 전념하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 그녀는 외국인 사제의 입국으로 더 열렬하고 행복한 신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지만 천주교 신앙을 굽히지 않았고, 교우들의 이름을 대는 것도 거부했다.

2.1. 어린 시절과 신앙

김 바르바라는 경기도의 한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다. 13세 때, 한 부유한 천주교 집안인 황 마리아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면서 영적으로 하느님을 만났고 예수에 대한 믿음이 커져갔다. 그녀는 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정직하며 근면하게 살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주의 영광을 깊이 깨닫고 동정으로 살기를 결심했다.

2.2. 결혼 생활과 시련

김 바르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교도와 혼인하였으나, 종교적인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을 개종시키려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자녀 중 한 명만 세례를 받게 했다. 혼인으로 인한 신앙의 차이는 많은 어려움을 낳았고, 이러한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2.3. 체포와 순교

김 바르바라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천주교 신앙을 굽히지 않고 교우들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3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고문, 굶주림, 목마름, 질병을 겪었다. 1839년 5월 27일, 장티푸스로 35세의 나이에 감옥의 더러운 멍석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3. 시복 및 시성

김 바르바라는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