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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얼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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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이얼 퀸은 아일랜드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수, 감독, 해설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게일 축구와 헐링 선수로 활동하다가 아스널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맨체스터 시티 FC, 선덜랜드 AFC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선덜랜드에서는 케빈 필립스와의 파트너십으로 많은 골을 합작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퀸은 아일랜드 국가대표로 92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을 기록했으며, UEFA 유로 1988, 1990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 등 주요 대회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선덜랜드 AFC의 회장 겸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스카이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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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얼 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1년의 나이얼 퀸
2011년의 퀸
본명나이얼 존 퀸
출생일1966년 10월 6일
출생지더블린, 아일랜드
1.93m
포지션스트라이커
유소년 경력
유소년 클럽매너타운 유나이티드
Lourdes Celtic
아스널
선수 경력
연도1983–1990
클럽아스널
출장67
득점14
연도1990–1996
클럽맨체스터 시티
출장204
득점66
연도1996–2002
클럽선덜랜드
출장203
득점61
총 출장475
총 득점141
국가대표 경력
연도1985
국가대표팀아일랜드 U17
출장5
득점4
연도1986–1989
국가대표팀아일랜드 U21
출장5
득점0
연도1990
국가대표팀아일랜드 U23
출장1
득점1
연도1990
국가대표팀아일랜드 B
출장1
득점2
연도1986–2002
국가대표팀아일랜드
출장92
득점21
감독 경력
연도2006
클럽선덜랜드

2. 유소년 경력

퀸은 더블린 12의 페리스타운에 위치한 로버트 에메츠 클럽에서 게일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6] 또한 더블린 대표로 미성년 축구와 헐링 선수로도 뛰었다. 1983년 7월에는 더블린 대학교 GAA 대표팀 주장을 맡아 한 달간 호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16세였던 1983년에는 올-아일랜드 마이너 헐링 챔피언십 결승전에 출전했으며,[7] 프로 호주식 축구 선수 계약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축구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8] 학창 시절에는 드림나 캐슬 세컨더리 스쿨 축구팀에서 뛰었다. 청소년 축구 선수 경력은 아일랜드 클럽 매너타운 유나이티드와 더블린 12 크럼린의 루르데스 켈틱에서 시작했다.

3. 클럽 경력

"나는 아스날에서 기술을 연마했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선덜랜드는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는 선덜랜드를 사랑합니다." - 나이얼 퀸, ''자서전''[45]

풀럼 FC 입단 테스트 실패 후, 1983년 아스널 FC와 프로 계약을 맺으며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11] 1985-86 시즌 1군 데뷔 후 1986-87 시즌에는 풋볼 리그 컵 우승에 기여했으나,[16]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1990년 이적했다.[17][18] 아스널 소속으로 총 94경기 20골을 기록했다.[12]

1990년 3월, 80만파운드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하여[19] 첫 풀 시즌 22골을 넣는 등 활약했다. 골키퍼로 나서 페널티킥을 막아낸 일화도 있다.[20] 1993년 심각한 십자인대 부상을 겪었으나[19] 복귀 후에도 팀에 기여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6년간 총 245경기 78골을 기록했다.[19]

1996년 8월, 당시 클럽 최고 이적료인 130만파운드선덜랜드 AFC로 이적했다.[25] 이적 초반 부상으로 6개월을 쉬었으나,[25] 복귀 후 케빈 필립스와 뛰어난 호흡을 보이며 팀의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1999년에는 다시 한번 골키퍼로 나서기도 했다.[26] 팬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2002년 선덜랜드에서 은퇴했다.[27]

17년간의 리그 경력 동안 프리미어 리그와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총 475경기에 출전하여 141골을 기록했다.

3. 1. 아스널 FC

풀럼 FC 입단 테스트에 실패한 후, 1983년 잉글랜드 클럽 아스널 FC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센터 포워드로 영입되었으나, 아스널 3군에서 잠시 센터 하프를 맡기도 했다.[11] 아스널 합류 전, 헐링 선수로도 활동했으며, 호주 게일릭 풋볼 투어 중 호주식 축구 팀들의 제안도 받았으나, 어머니의 설득으로 아스널 트라이얼에 참가했다.[61][63] 트라이얼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1983년 10월 12일 3년 계약을 체결하며 축구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63]

처음 두 시즌 동안은 출전 기회가 적었으나, 1985-86 시즌 전반기 리저브팀에서 18경기 18골을 기록하며[64] 1군 승격 기회를 잡았다.[11] 1985년 12월,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데뷔 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7][12][64] 해당 시즌 리그 11경기에 더 출전했지만 추가 득점은 없었고, 팀은 리그 7위로 시즌을 마쳤다.[13] 시즌 종료 후 아일랜드 공화국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14]

1986-87 시즌에는 돈 하우의 뒤를 이어 조지 그레이엄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15] 퀸은 19세의 나이로 주전 자리를 확보하여 리그 35경기에 출전해 8골을 기록했다.[66] 그는 마틴 헤이즈, 페리 그로브스, 찰리 니콜라스 등과 공격진을 구성했으며,[65] 팀의 리그 4위와 풋볼 리그 컵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리그 컵 결승에서는 리버풀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16][66]

그러나 1987년 여름 아스널이 또 다른 공격수 앨런 스미스를 영입하면서[17][65] 퀸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이후 약 2시즌 반 동안 주로 벤치를 지켰다.[65] 다음 세 시즌(1987-88 시즌부터) 동안 리그 출전은 총 20경기에 그쳤고 5골을 넣는 데 머물렀다. 아스널이 리그 우승을 차지한 1988-89 시즌에는 리그 3경기 출전에 그쳐 우승 메달을 받지 못했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자 퀸은 1989-90 시즌 초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18][66] 그는 아스널에서 총 94경기(선발 81경기)에 출전하여 20골을 기록했다.[12][66]

3. 2. 맨체스터 시티 FC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하워드 켄달은 1990년 3월, 이적 마감일 직전에 80만파운드에 퀸을 영입했다.[19][67] 그는 메인 로드에서 첼시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골을 기록했다.[19] 시즌 후반에 합류했지만, 9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당시 강등권인 18위였던 팀을 14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67]

그는 첫 풀 시즌이었던 1990-91 시즌에 22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 득점원으로 활약했다.[19][68] 그의 맨시티 시절 가장 주목할 만한 경기 중 하나는 1991년 4월 20일 더비 카운티 전이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초반에 골을 넣었고, 전반 종료 직전 맨시티 골키퍼 토니 코튼이 딘 사운더스에게 반칙을 범해 퇴장당하자 골키퍼를 대신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교체 골키퍼를 두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퀸이 골문을 지켰고, 사운더스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이 패배로 더비 카운티는 강등되었다.[20][68] 또 다른 주목할 만한 경기는 1993년 11월 7일의 맨체스터 더비로, 그는 전반전에 두 골을 넣어 맨시티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0으로 앞서 나갔지만, 결국 팀은 3-2로 역전패했다.[21][71]

1993년 시즌 종료 후와 1993-94 시즌 초반, 이전에 그를 지도했던 켄달 감독이 이끄는 에버턴이 200만파운드에 퀸 영입을 시도했으나[69], 맨시티의 새 감독 Brian Horton|브라이언 호튼eng이 그를 높이 평가하여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22][70] 그러나 1993년 11월 말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72] 1993-94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했고, 이로 인해 1994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19]

그는 1994-95 시즌 초에 복귀했지만, 그가 없는 동안 주전 공격수 조합을 이룬 폴 월시와 우베 뢰슬러 때문에 항상 선발로 출전하지는 못했다.[23][72] 그럼에도 35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19] 급여 지출을 줄이려던 맨체스터 시티는 1995년 시즌 종료 후 퀸을 매각하려 했고, 스포르팅과 합의했다는 보도도 있었으나[73], 계약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이적은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23][74]

퀸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6시즌 동안 총 245경기에 출전하여 78골을 기록했으며[19], 리그 경기에서는 193경기에 출전하여 64골을 넣었다.[24]

3. 3. 선덜랜드 AFC

선덜랜드에서 퀸은 동료 공격수 케빈 필립스와의 파트너십으로 유명했는데, 두 선수는 6시즌 동안 모든 대회에서 총 194골을 합작했다.


1996년 8월, 퀸은 당시 클럽 최고 이적료인 130만파운드선덜랜드로 이적하며 선수 생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75][25] 8월 18일 레스터 시티 FC와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0-0)에서는 후반 51분에 교체 투입되어 스티브 월시와 케이시 켈러의 선방에 막혀 득점하지는 못했지만, 공격을 활발하게 이끌며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76][77] 이어진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78][25]

그러나 1996년 9월 21일 코번트리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3년 전 월드컵 출전을 좌절시켰던 무릎 십자인대 부상이 재발하면서[79][25] 약 6개월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퀸이 전력에서 이탈한 동안 선덜랜드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그가 1997년 4월 초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 복귀[80]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결국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25]

1997년 8월 16일, 새로 개장한 홈 구장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친정팀 맨체스터 시티와의 개장 기념 경기에서 퀸은 역사적인 첫 골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81][26] 1997-98 시즌부터는 새로 영입된 공격수 케빈 필립스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 듀오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25] 두 선수는 1997-98 시즌부터 2002-03 시즌까지 6시즌 동안 모든 대회를 통틀어 무려 194골을 합작하며 선덜랜드의 공격을 이끌었다.

1999년 3월 브래드퍼드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골키퍼 토마스 소렌센이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나자 퀸이 대신 골키퍼 장갑을 끼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미 맨체스터 시티 시절 페널티킥을 막아낸 경험이 있던 그는 이 경기에서도 침착하게 골문을 지켜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26]

필립스와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앞세운 선덜랜드는 2시즌 만인 1999년 다시 프리미어 리그 무대로 복귀했다. 퀸은 이 시즌에 21골을 터뜨리는 등 팀의 승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선덜랜드 올해의 선수상과 북동부 스포츠 작가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26] 프리미어 리그 복귀 첫 시즌인 1999-2000 시즌에는 필립스(30골, 리그 득점왕)와 함께 도합 44골을 폭발시키며 팀이 리그 7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82]

2002-03 시즌에는 피터 리드 감독 체제 하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며 경험을 젊은 선수들에게 전수하기도 했으나,[83]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현역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는 2002년 10월 19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전이었고,[27][84] 같은 해 11월 10일 홈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 하프타임에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전하며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84]

퀸은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나는 아스날에서 기술을 연마했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선덜랜드는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는 선덜랜드를 사랑합니다."라고 밝히며 선덜랜드에서의 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강조했다.[45] 그는 17년간의 리그 경력 동안 프리미어 리그와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총 475경기에 출전하여 141골을 기록했다.

4. 국가대표 경력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오랜 기간 활약하며, UEFA 유로 1988, 1990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 등 주요 국제 대회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특히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어 아일랜드의 사상 첫 16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독일과의 경기에서 로비 킨의 극적인 동점골을 돕는 등 중요한 활약을 펼쳤다. 부상으로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퀸은 A매치 92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은퇴 당시 아일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2004년 로비 킨에 의해 경신되었다. 퀸은 2002년 FIFA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같은 해 선덜랜드와 아일랜드 대표팀 간의 은퇴 기념 경기를 열어 수익금 100만파운드 이상 전액을 자선 재단에 기부했다. 이 공로로 명예 MBE를 포함한 여러 상을 받았다.

4. 1. 초기

1985년 1월 시뷰에서 열린 북아일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6-1로 승리하며 U-17 레벨에서 아일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이 경기는 두 국가 간의 첫 번째 경기였으며, 퀸은 이먼 돌란과 함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하지만 소속팀 아스널은 퀸이 1985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986년 UEFA U-18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에 출전했다.

4. 2. 주요 대회

퀸은 1986년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삼각 토너먼트에서 개최국을 상대로 교체 출전하며 아일랜드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퀸은 아일랜드를 대표하여 두 번의 FIFA 월드컵(1990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과 한 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UEFA 유로 1988) 본선에 참가했다.

UEFA 유로 1988에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여 아일랜드의 사상 첫 16강 진출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자신의 35번째 생일에 키프로스를 상대로 득점하며 프랭크 스태플턴이 보유하고 있던 아일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20골)을 경신했다. 본선에서는 독일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로비 킨의 극적인 동점골을 헤더로 어시스트했다. 이 골은 당시 대회 준우승팀인 독일이 결승전 전까지 유일하게 허용한 실점이었다.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는 팀이 0-1로 뒤지던 후반 막판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를 로비 킨이 성공시키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에 2-3으로 패배하여 탈락했다.

퀸은 2002년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으며, 총 92캡 21골을 기록했다. 은퇴 당시 그는 아일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였으나, 이 기록은 2004년 10월 로비 킨에 의해 깨졌다.

4. 3. 은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으며, 총 92개의 캡을 기록했다. 당시 그는 21골로 아일랜드 역대 최다 득점자였으나, 이 기록은 2004년 10월 로비 킨에 의해 깨졌다.

2002년에는 선덜랜드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간의 은퇴 기념 경기를 가졌다. 그는 모든 수익금을 자선 재단에 기부했으며, 이 공로로 명예 MBE를 포함한 여러 상을 받았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출전료 대신 아픈 아이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퀸은 경기 동안 양 팀에서 모두 뛰었으며, 이 경기를 통해 100만파운드 이상을 모금했다. 경기는 아일랜드의 3-0 승리로 끝났다.

2002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Sky Sports에서 주로 친정팀 경기의 해설자로 활동했다. 2006년 7월에는 드라마빌 컨소시엄의 대표로서 친정팀인 선덜랜드 AFC를 인수하여 구단 회장 겸 감독으로 취임했다.[94] 감독으로서는 2006-07 시즌 개막 후 4연패로 부진했고, 8월 22일 리그 컵에서 베리 FC에게 패배한 후 감독 교체를 발표했다.[95] 사이판 사건으로 관계가 좋지 않았던 로이 킨을 8월 28일 감독으로 임명했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로이 킨 감독 체제에서 선덜랜드는 연승을 거듭하며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다.

2011년 10월, 퀸은 회장직에서 물러나 선덜랜드의 국제 개발 담당 이사로 취임했다.[96] 이후 가정과 축구 외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2012년 2월 아일랜드로 돌아갈 것을 발표했으며,[97] 위성 광대역 사업을 시작했다.[98]

5. 은퇴 이후 경력

2003년 37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퀸은 은퇴 후 코치, 해설가, 사업가, 행정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잠시 선덜랜드에서 코치 역할을 맡았고, 스카이 스포츠에서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톰 험프리스가 대필한 자서전 ''나이얼 퀸 – 자서전''을 출간하여 호평을 받으며 초대 영국 스포츠 도서상 최고 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31][32] 같은 해 열린 자신의 기념 경기 수익금 상당 부분을 시티 병원 선덜랜드에 기부하여 "나이얼 퀸 어린이 센터" 건립을 지원했고, 이 센터는 2004년 공식 개관했다.[33][34]

2006년에는 컨소시엄을 이끌고 선덜랜드를 인수하여 회장 겸 임시 감독을 맡았으나,[35][36] 곧 감독직은 로이 킨에게 넘기고 회장직에 집중하며 클럽의 프리미어 리그 복귀와 성장을 지원했다. 2011년 회장직에서 물러나 국제 개발 이사직을 맡다가[39] 2012년 선덜랜드를 완전히 떠났다.[40]

선덜랜드를 떠난 후에는 아일랜드의 위성 광대역 회사인 Q Sat의 회장을 맡고 있다.[41] 또한 여러 사회 활동과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더블린 대학교 문학 및 역사 협회 제임스 조이스 상, 2012년 북동부 축구 작가 협회 2011년 올해의 인물상,[58] 2013년 선덜랜드 시 자유상 등을 수상했으며,[59] 2010년에는 바비 롭슨 경 재단의 후원자로 임명되었다.[38]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의 임시 부 최고 경영자(CEO)를 무급으로 맡아 조직의 재정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42][43][44]

5. 1. 코치 및 해설가

퀸은 2003년 37세의 나이로 은퇴하여 선덜랜드에서 잠시 코치 역할을 맡았다. 또한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중계되는 전 소속팀 경기의 텔레비전 해설자 및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2006년 3월 타이 프리미어 리그의 BEC 테로 사사나 FC에서 리그 홍보와 아스널과의 연계를 위해 한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30]

이후 2012년부터는 다시 스카이 스포츠에서 해설을 시작했으며, 주로 마틴 타일러와 함께 경기를 중계한다.

5. 2. 선덜랜드 AFC 회장 겸 감독

2008년 빌라 파크에서 퀸


2006년 6월, 퀸은 아일랜드의 부유한 사업가들로 구성된 드러마빌 컨소시엄을 이끌고 선덜랜드의 지배 지분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35] 같은 해 7월, 퀸은 선덜랜드의 회장이자 감독으로 취임했다.[36] 이 거래는 7월 27일에 마무리되어 컨소시엄이 클럽의 완전한 통제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선덜랜드는 퀸 감독 체제 하에서 치른 첫 4번의 리그 경기에서 모두 패배했다. 8월 22일에는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버리에게 2-0으로 패배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37] 이 경기 후 퀸은 다음 경기 전까지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나 회장직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로이 킨에게 감독직을 맡기기 위한 포석이었다. 킨의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이탈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예상 밖의 결정이었다.

로이 킨은 2006년 8월 28일 선덜랜드 감독으로 공식 임명되었다. 이 결정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선덜랜드는 로이 킨 감독의 지휘 아래 풋볼 리그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퀸은 선덜랜드를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새로운 선수 영입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며 팀 강화를 지원했다.

2011년 10월, 엘리스 쇼트가 퀸의 뒤를 이어 선덜랜드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퀸은 클럽의 국제 개발 이사로 임명되어 활동을 이어갔으나,[39] 2012년 2월, 클럽 운영에 참여한 지 6년 만에 이 직책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떠나면서 선덜랜드가 강팀으로 도약할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것이 자신의 목표였다고 밝혔다.[40]

클럽취임퇴임기록
경기승리무승부패배승률 %
선덜랜드 AFC2006년 7월 25일2006년 8월 30일610516.67


5. 3. 기타 활동



퀸과 패트릭 비에이라가 11 다우닝가에서 헤더 게임에 참여하고, 길레스피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모습, 2011년


2003년 37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퀸은 잠시 선덜랜드에서 코치 역할을 맡았다. 또한 스카이 스포츠에서 전 소속팀 경기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6년 3월에는 타이 프리미어 리그BEC 테로 사사나 소속으로 리그 홍보와 아스널과의 연계를 위해 한 경기에 출전했다.[30]

2002년 선수 시절, 퀸은 톰 험프리스가 대필한 자서전 ''나이얼 퀸 –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 책은 호평을 받으며 초대 영국 스포츠 도서상 최고 자서전 부문을 수상했고,[31] 윌리엄 힐 올해의 스포츠 도서상 후보에도 올랐다.[32] 같은 해 열린 자신의 기념 경기 수익금 상당 부분을 시티 병원 선덜랜드에 기부하여 새로운 어린이 센터 건립을 지원했다. 이 센터는 그의 공로를 기려 "나이얼 퀸 어린이 센터"로 명명되었으며, 퀸은 2004년 공식 개관식에 참석했다.[33][34] 퀸은 이러한 공로 등으로 2003년 명예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을 받았다.

2006년 6월, 퀸은 아일랜드 사업가들로 구성된 드러마빌 컨소시엄을 이끌고 선덜랜드의 지배 지분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35] 7월에는 선덜랜드의 회장이자 임시 감독이 되었다.[36] 감독으로서 초기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곧 감독직에서 물러나 로이 킨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이는 2002년 월드컵 당시 킨의 대표팀 이탈 사건으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을 고려할 때 예상 밖의 결정이었다. 킨의 지휘 아래 선덜랜드는 풋볼 리그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프리미어 리그로 즉시 복귀했다. 퀸은 회장으로서 선수 영입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며 클럽의 성장을 지원했다.

2008년에는 더블린 대학교의 문학 및 역사 협회로부터 제임스 조이스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바비 롭슨 경 재단의 후원자로 임명되었다.[38]

2011년 10월, 엘리스 쇼트가 퀸의 뒤를 이어 선덜랜드 회장이 되었고, 퀸은 클럽의 국제 개발 이사로 활동했다.[39] 그러나 2012년 2월, 클럽 운영에 6년간 참여한 후 선덜랜드를 완전히 떠났다.[40]

선덜랜드를 떠난 후에는 아일랜드의 위성 광대역 회사인 Q Sat의 회장을 맡고 있다.[41] 2012년부터 다시 스카이 스포츠에서 마틴 타일러 등과 함께 축구 해설을 맡기도 했다. 같은 해 북동부 축구 작가 협회로부터 2011년 올해의 인물상을 받았고,[58] 2013년 11월에는 선덜랜드 시로부터 자유상을 받았다.[59]

2020년 1월, 퀸은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의 임시 부 최고 경영자(CEO)로 임명되어 조직의 재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무급으로 일하기로 결정했다.[42][43] 그는 같은 해 9월 이 직책에서 물러났다.[44]

6. 팬들과의 관계

퀸은 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를 상징하는 응원가인 Niall Quinn's Disco Pants|나이얼 퀸스 디스코 팬츠영어는 팬들과의 격의 없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이 노래는 1992년 맨체스터 시티 소속 시절, 이탈리아 페놀라에서 열린 프리 시즌 투어 중에 처음 만들어졌다.[45] 당시 퀸은 팀 동료 스티브 맥마흔과 다툼이 있은 후, 찢어지고 피가 묻은 셔츠를 벗은 채 릭 홀든과 함께 컷오프 청바지만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맨체스터 시티 팬들이 즉석에서 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고, 퀸 자신도 이 노래가 "내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따라다닐 줄은 몰랐다"고 회상했다.[45]

퀸이 선덜랜드로 이적한 후, 이 응원가는 선덜랜드 팬들에게도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선덜랜드 팬 매거진 ''A Love Supreme''은 이 노래를 싱글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했으며, 1999년 4월에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56위에 오르기도 했다.[46]

퀸과 선덜랜드 팬들 사이의 유대감은 그가 선수 은퇴 후 선덜랜드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도 이어졌다. 2007년 3월, 선덜랜드가 카디프 원정 경기에서 승리한 뒤, 약 80명의 선덜랜드 팬들이 브리스톨 공항에서 뉴캐슬로 돌아가는 이지젯 항공편 탑승을 거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팬들은 비행기 탑승 전 공항에서 퀸을 발견하고 "나이얼 퀸의 디스코 바지"를 부르며 환호했는데, 항공사 측은 일부 팬들이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이들의 탑승을 막았다.[47]

이 소식을 들은 퀸은 팬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하여 항공사의 처사에 항의하며 자신도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리고 발이 묶인 팬들을 위해 클럽 자금 8천파운드 이상을 들여 택시와 미니밴을 수배하여 팬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47] 이 사건은 퀸이 팬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7. 사생활

퀸의 부모는 모두 티펄레리 출신이다.[48] 그의 아버지와 외삼촌들은 티퍼레리 소속으로 헐링을 했다.[48] 그는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1] 현재 킬데어에 거주하고 있다.[48] 1992년부터 아일랜드 모델 질리언 로와 결혼했으며,[49] 슬하에 아슬링과 마이클, 두 자녀를 두고 있다.[50]

2011년에는 위성 광대역 사업체인 Q 샛을 운영하는 회사에 70만유로를 투자했다. 이후 아일랜드 내 3,000가구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했던 Q샛의 회장을 맡았지만, 2017년에 사업이 중단되었다.[51]

2005년, 퀸은 음주 운전을 인정하여 3개월 동안 운전 면허가 정지되고 200EUR의 벌금을 부과받았다.[52]

그는 축구 클럽과 협력하여 비공개 및 지역 클럽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개인 팟캐스트인 Team Taca의 설립자이자 회장이다.

8. 통계

나이얼 퀸은 17년간의 프로 선수 경력 동안 프리미어리그와 풋볼 리그에서 총 475경기에 출전하여 141골을 기록했다.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총 92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을 기록했으며, 은퇴 당시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였다. 이 기록은 2004년 10월 로비 킨에 의해 경신되었다.

8. 1. 클럽 경력 통계

출처:[106][107]

클럽, 시즌 및 대회별 출전 및 득점
클럽시즌리그FA컵리그컵합계
디비전출장득점출장득점출장득점출장득점
아스널1983-841부 디비전00000000
1984-8500000000
1985-861213020171
1986-8735841934812
1987-881122030162
1988-8931000031
1989-9062112194
합계67141021649320
맨체스터 시티1989-901부 디비전94000094
1990-91382021304321
1991-92351210323914
1992-93프리미어리그39951304710
1993-941550031186
1994-9535840624510
1995-9632842313911
합계1936616421624076
선덜랜드1996-97프리미어리그1220011133
1997-981부 디비전351421003715
1998-99391820534621
1999-2000프리미어리그371410003814
2000-013473100378
2001-023861000396
2002-0380000080
합계20361926421867
선수 경력 합계4731413584314551163


8. 2. 국가대표 경력 통계

연도별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106]
아일랜드 대표팀
연도출장득점
198620
198751
198850
198910
199093
199143
199291
199392
199432
199581
199673
199710
199831
199992
200081
200151
200240
합계9221



''득점 및 결과 목록은 아일랜드의 득점을 먼저 나열하며, 스코어 열은 퀸의 각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낸다.''

나이얼 퀸의 국제 경기 득점 목록
#개최일개최지대전 상대스코어결과대회
11987년 11월 10일더블린이스라엘5-05-0친선 경기
21990년 6월 2일타칼리몰타0-10-3
31990년 6월 21일팔레르모네덜란드1-11-11990년 FIFA 월드컵
41990년 10월 17일더블린터키4-05-0UEFA 유로 1992 예선
51991년 2월 6일렉섬웨일스0-10-3친선 경기
60-2
71991년 3월 27일런던잉글랜드1-11-1UEFA 유로 1992 예선
81992년 4월 29일더블린미국3-04-1친선 경기
91993년 3월 31일북아일랜드2-03-0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101993년 4월 28일덴마크1-11-1
111994년 10월 12일리히텐슈타인3-04-0UEFA 유로 1996 예선
124-0
131995년 3월 29일북아일랜드1-01-1
141996년 6월 2일크로아티아2-22-2친선 경기
151996년 8월 31일에셴리히텐슈타인0-30-51998년 FIFA 월드컵 예선
160-5
171998년 10월 14일더블린몰타4-05-0UEFA 유로 2000 예선
181999년 6월 9일북마케도니아1-01-0
191999년 10월 9일스코페0-11-1
202000년 6월 4일이스트러더퍼드남아프리카 공화국2-12-1U.S. 컵
212001년 10월 6일더블린키프로스2-04-0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8. 3. 감독 경력 통계

2006년 7월 선덜랜드의 회장이자 감독으로 부임했으나[36], 리그 개막 후 4연패를 당하고 리그컵에서도 탈락하는 등[37] 성적 부진으로 인해 약 한 달 만인 8월 말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로이 킨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감독으로서의 공식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국적시작종료기록
경기승률
선덜랜드잉글랜드2006년 7월 25일2006년 8월 30일610516.67


9. 수상 경력

'''클럽'''



'''개인'''

연도수상 내역비고
1990올해의 아일랜드 영 플레이어[55]
1991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
1998-99PFA 올해의 팀: 1998-99 시즌 1부 디비전[56]
1999선덜랜드 올해의 선수
1999북동부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
2002PFA 공로상
2002영국 스포츠 도서상 최고 자서전 부문[31]자서전 나이얼 퀸 – 자서전
2003명예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외국인 대상 정원외 수훈
2003비콘 펠로우십 상[57]의료 및 어린이 자선 단체 기여 공로
2008제임스 조이스 상더블린 대학교 문학 및 역사 협회
2011북동부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인물[58]2012년 수상
2013선덜랜드 자유시 시민상[5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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