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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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수희는 전라북도 군산 출신으로, 1980년대부터 서울 세운상가에서 노점상으로 활동하며 전국노점상연합회 회장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이후 전국빈민연합 부의장, 전국빈민협의회 공동대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서울연합 공동의장 등을 거쳐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전국연합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며 통일 운동에 참여했다. 2012년 김정일 사망 100일을 맞아 북한을 방문, 만경대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김일성을 찬양했으며,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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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수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노수희 |
| 원어명 | 盧秀熙 |
| 로마자 표기 | No Su-hui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사회 운동가 |
| 주요 활동 | |
| 죄목 | 국가보안법 위반 |
| 형벌 |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
2. 생애
노수희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으로, NBC 뉴스는 그를 "북한 단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남한 단체의 지도자"로 묘사했다.[2][7]
그는 초기 생애 및 사회 운동, 통일 운동 및 범민련 활동 외에 다음과 같은 생애를 보냈다.
2012년 3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00일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 없이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통해 방북했다. 3월 26일 평양 만경대를 방문, 방명록에 "국상(國喪) 중에도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 대신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 사과를, 만경대에 정중히 사죄드립니다."라고 기재했고, 평양 개선문에서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류 중 금수산태양궁전 및 애국렬사릉 참배(2012년 3월 27일), 백두산 밀영 방문(2012년 3월 28일) 등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공작원들과 접촉했다. 2012년 4월 25일 범민련 남·북·해외본부 공동보도문 발표 행사, 2012년 6월 15일 6·15 남북 공동선언 발표 12주년 기념 행사에도 참석했다.[11]
2012년 7월 5일, 104일간의 방북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자마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의 밀입북을 기획한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도 구속되었다.[11]
검찰은 노수희와 원진욱이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각종 모임을 개최하고, 북한 서적 등 이적 표현물을 제작·반포·소지했으며, 일본 내 북한 공작원과 통신·연락한 혐의를 적용했다.[11]
2013년 2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노수희에게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원진욱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2013년 5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은 노수희에게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으나, 원진욱에게는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11]
2. 1. 초기 생애 및 사회 운동
노수희는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으로, 익산시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으나 1968년에 중퇴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노점상으로 활동했으며, 1988년에는 전국노점상연합회 수석부회장, 1989년에는 회장 권한대행을 역임했다.1990년 전국빈민연합 부의장, 1992년 전국빈민협의회 공동대표, 1993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서울연합 공동의장, 1994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시 부의장, 1998년 전국연합 공동의장 및 상임의장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노점상연합 고문을 역임했다. 1999년에는 전국연합 8기 대의원 대회 준비위원장, 전국연합 공동의장,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연합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2001년 6·15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 공동대표, 2003년 전국연합 공동의장, 전국노점상연합 고문, 통일연대 지도위원을 역임했다. 2005년에는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 및 남측본부 부의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공안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노수희는 과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혐의로 전과 19범이다.
2. 2. 통일 운동 및 범민련 활동
노수희한국어는 1990년 전국빈민연합 부의장, 1992년 전국빈민협의회 공동대표, 1993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서울연합 공동의장, 1994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시 부의장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을 역임했고, 1998년 전국연합 공동의장, 전국연합 상임의장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1999년에는 전국연합 8기 대의원 대회 준비위원장, 전국연합 공동의장,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연합 공동의장을 역임했다.2001년에는 6·15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 공동대표, 2003년에는 전국연합 공동의장, 통일연대 지도위원을 역임했다. 2005년에는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 남측본부 부의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공안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노수희한국어는 과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혐의를 받은 전과 19범이라고 한다.[11]
2012년 3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00일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 없이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통해 항공편을 이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2012년 3월 26일에는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했다. 노수희한국어는 만경대 방명록에 "국상(國喪) 중에도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 대신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 사과를, 만경대에 정중히 사죄드립니다."라고 기재했고 평양 개선문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인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체류하는 동안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애국렬사릉 참배(2012년 3월 27일), 백두산 밀영 방문(2012년 3월 28일)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 체제를 선전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들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 그 외에 2012년 4월 25일에 열린 범민련 남측본부·북측본부·해외본부 공동보도문 발표 행사, 2012년 6월 15일에 열린 6·15 남북 공동선언 발표 12돐(12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11]
2012년 7월 5일 104일 동안에 걸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류 생활을 끝내고 판문점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귀환하자마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당국에 체포되었다.[11] 노수희한국어의 밀입북을 기획했던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당국에 구속되었다.[11]
검찰 당국은 노수희한국어, 원진욱이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대한민국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중앙위원 총회 등 각종 모임을 개최한 혐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제작한 서적 《삼천리 강산》, 《민족대단결》 등 260여 종에 달하는 이적 표현물을 제작·반포·소지한 혐의, 일본에서 활동하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과 3차례에 걸쳐 통신·연락(회합·통신)한 혐의를 판시했다.[11]
2013년 2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0부는 노수희한국어에게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으며 원진욱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2013년 5월 2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노수희한국어에게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지만 원진욱에게는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11] 노수희한국어는 범민족통일연합 남측본부의 부의장이다.[7] 그는 NBC 뉴스에 의해 "북한 단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남한 단체의 지도자"로 묘사되었다.[2]
3. 무단 방북 및 체포 (2012년)
노수희는 2012년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경유하여 북한에 들어갔다.[6]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던 중 체포되었다. 2013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징역 4년형 및 출소 후 3년간 선거권 등 권리 박탈을 명령했다.[7] 2016년 7월에 출소했다.
법원은 "허가 없이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했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노수희의 방북을 주선한 활동가 원진욱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6]
3. 1. 방북 배경 및 과정
노수희는 2012년 7월,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허가 없이 북한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체포되었다. 그는 북한에서 한반도 통일을 촉구하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강경한 대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3][4] 그는 공동경비구역에서 통일 한반도 깃발을 흔들었고, 꽃다발을 든 많은 북한 주민들이 그를 환송했다. AP 통신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대한민국 보안 요원, 공동경비구역에 배치된 대한민국 육군 병력 및 헌병들이 이미 노수희의 체포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5] 노수희가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즉시 체포되어 끌려갔다. 그는 체포에 저항했다. 국경 뒤에 있던 북한 주민들은 이 행동에 대해 욕설을 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현장에 있던 북한 국경 경비병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노수희는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3월에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었다.[6]3. 2. 북한 체류 및 활동
노수희는 2012년 7월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한 후 귀환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한반도 통일을 촉구하고, 강경한 대북 정책을 펼친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3][4] JSA에서 그는 통일된 한반도의 깃발을 흔들고 꽃다발을 든 많은 수의 북한 주민들의 환송을 받았다. AP 통신의 영상은 노수희가 국경선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 이미 많은 수의 대한민국 보안 요원, 공동경비구역(JSA)에 배속된 대한민국 육군 병력, 그리고 헌병들이 그의 체포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5]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들어선 직후, 그는 즉시 체포되어 끌려갔다(그는 체포에 저항했다). 그러자 국경 뒤에 있던 격분한 북한 주민들은 그 행동에 대해 욕설을 퍼부으며 격렬히 항의했다. 현장에 있던 북한 국경 경비병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 행사를 위해 3월에 중국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들어갔었다.[6] 2013년 2월, 그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또한 그가 출소 후 3년 동안 선거권 등 그의 권리를 박탈하도록 명령했다.[7] 그는 2016년 7월에 출소했다.법원 판결은 "허가 없이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했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활동가 원진욱은 노수희의 방북을 주선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과 연락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6]
3. 3. 귀환 및 체포
노수희는 2012년 7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한 후 귀환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는 방북 기간 동안 한반도 통일을 촉구하고, 강경한 대북 정책을 펼친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3][4]JSA에서 그는 통일된 한반도의 깃발을 흔들고 꽃다발을 든 많은 수의 북한 주민들의 환송을 받았다. AP 통신의 영상에는 노수희가 국경선에 접근할 때, 이미 많은 수의 대한민국 보안 요원, 공동경비구역 (JSA)에 배속된 대한민국 육군 병력, 그리고 헌병들이 그의 체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5] 대한민국으로 들어선 직후, 그는 즉시 체포되어 끌려갔으며(체포에 저항했다), 국경 뒤에 있던 격분한 북한 주민들은 그 행동에 대해 욕설을 퍼부으며 격렬히 항의했다. 현장에 있던 북한 국경 경비병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노수희는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 행사를 위해 3월에 중국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들어갔었다.[6] 2013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그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하고, 출소 후 3년 동안 선거권 등 그의 권리를 박탈하도록 명령했다.[7] 그는 2016년 7월에 출소했다.
법원 판결은 "허가 없이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했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노수희의 방북을 주선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과 연락한 혐의로 또 다른 활동가 원진욱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6]
4. 재판 및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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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반응 및 평가
미국의 NK 뉴스는 노수희의 체포를 "북한에게 명확하지만 불필요한 선전 승리"라고 묘사했다.[8] 가디언의 한 기사는 "이번 체포는 서방 언론에서 아주 작은 파장을 일으켰는데, 이는 북한에 우호적이고 남한에 비우호적인 이야기가 지난 20년간 유럽과 미국 언론이 전달해 온 메시지와 쉽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9]
북한의 국영 통신사는 "체포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인민들이 격분했다"고 밝히며, 이를 인권 유린이라고 묘사했다.[10]
5. 1. 대한민국 내 반응
미국의 NK 뉴스는 노수희의 체포를 "북한에게 명확하지만 불필요한 선전 승리"라고 묘사했다.[8] 가디언의 한 기사는 "이번 체포는 서방 언론에서 아주 작은 파장을 일으켰는데, 북한에 우호적이고 남한에 비우호적인 이야기는 지난 20년간 유럽과 미국 언론이 전달해 온 메시지와 쉽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9]북한의 국영 통신사는 "체포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인민들이 격분했다"고 밝히며, 이를 인권 유린이라고 묘사했다.[10]
5. 2. 국제 사회 반응
미국의 NK 뉴스는 노수희의 체포를 "북한에게 명확하지만 불필요한 선전 승리"라고 묘사했다.[8] 가디언의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번 체포는 서방 언론에서 아주 작은 파장을 일으켰는데, 이는 북한에 우호적이고 남한에 비우호적인 이야기가 지난 20년간 유럽과 미국 언론이 전달해 온 메시지와 쉽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9]북한의 국영 통신사는 이 체포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이 격분했다"고 밝히며, 이를 인권 유린이라고 묘사했다.[10]
5.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응
NK 뉴스는 노수희의 체포를 "북한에게 명확하지만 불필요한 선전 승리"라고 묘사했다.[8] 가디언의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번 체포는 서방 언론에서 아주 작은 파장을 일으켰는데, 이는 북한에 우호적이고 남한에 비우호적인 이야기가 지난 20년간 유럽과 미국 언론이 전달해 온 메시지와 쉽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9]북한의 국영 통신사는 "체포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인민들이 격분했다"고 밝히며, 이를 인권 유린이라고 묘사했다.[10]
참조
[1]
간행물
Südkoreaner nach Rückkehr aus Nordkorea verhaftet
http://www.spiegel.d[...]
2012-07-05
[2]
뉴스
South Korea activist arrested as he steps across border on return from North
http://photoblog.nbc[...]
NBC News
2012-07-05
[3]
뉴스
South Korea Arrests Activist After Unauthorized Trip to North
https://www.nytimes.[...]
2012-07-05
[4]
뉴스
South Korean unification activist arrested on return from N Korea
https://www.bbc.co.u[...]
2012-07-06
[5]
웹사이트
SKorean activist No Su-hui arrested as he returns from unauthorised trip to the North - YouTube
https://www.youtube.[...]
2015-07-31
[6]
뉴스
South Korean activists jailed for visit to North
http://www.scmp.com/[...]
2013-02-08
[7]
뉴스
Pro-N. Korean activist gets jail term for illegal trip to Pyongyang
http://english.yonha[...]
Yonhap News
2013-02-08
[8]
뉴스
An Unnecessary Propaganda Victory for Pyongyang
http://www.nknews.or[...]
2012-07-06
[9]
뉴스
South Korea good, North Korea bad? Not a very useful outlook
https://www.theguard[...]
2012-07-19
[10]
웹사이트
DPRK People Enraged at S. Korean Regime's Abuse of Human Rights
http://www.kcna.co.j[...]
KCNA
2012-07-07
[11]
트위터
교도통신 보도 체포 영상
https://twi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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