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구치 요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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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니구치 요시로는 일본의 건축가로, 1904년 가나자와에서 태어나 1979년 사망했다. 도쿄 제국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도쿄공업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문화공로자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는 일본 전통 건축과 서구 모더니즘의 조화를 추구하며,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도쿄 국립 박물관 동양관 등 다수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또한, 메이지 시대 건축물 보존을 위해 메이지무라 마을 건설에 기여했으며, 아들 다니구치 요시오 또한 저명한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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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력
다니구치 요시로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3. 주요 작품




4. 저서
5. 가계
6. 일화
메이지 시대 건축의 대표작인 로쿠메이칸이 해체되는 모습을 야마노테선 열차 안에서 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 것이, 이후 박물관 메이지무라의 구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17] 당시 나고야 철도 사장이었던 쓰치카와 모토오와 의견이 맞아 메이지무라 개관을 위해 노력했다. 다니구치와 쓰치카와는 가나자와 제4고등학교 동급생이자 친구였다.
7. 사상과 영향
다니구치 요시로는 전통적인 일본 건축과 서구 모더니즘 사이의 과도기적 시대에 활동하며, 두 양식의 조화를 추구한 건축가이다. 1923년 간토 대지진을 겪으면서, 지진에 강한 새로운 건축 방식을 모색하게 되었다. 유럽의 건축 기술과 독일의 국제 양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의 고전주의 건축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니구치는 서구 모더니즘 건축이 일본의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일본 전통 건축의 미학과 고대 그리스의 고전주의, 국제 양식의 이상적인 순수 미학 등 다양한 요소들을 융합하여 일본에 맞는 새로운 건축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마에카와와 단게 겐조와 같은 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일본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건축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4][5]
그의 작품은 주로 공공 영역의 프로젝트 형태를 취했으며, 중요한 실용적 기능을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비극적인 역사와 새로운 이상과 미래에 대한 약속을 심어주는 일본의 문화적 지혜를 전달해야 하는 문화적 실체에 초점을 맞췄다.
7. 1. 모더니즘과 전통의 조화
다니구치 요시로는 전통적인 일본 건축과 서구 모더니즘 사이의 전환기에 활동한 건축가이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유럽의 건축 기술과 국제 양식에 주목했다. 특히 독일의 현대 건축 운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알베르트 슈페어의 지도 아래 일본 대사관 정원을 설계하기도 했다.[2]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니구치는 현대 유럽 건축의 "스타일"이 일본의 문화적 맥락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본 전통 건축의 미학, 고대 그리스 고전주의,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로 대표되는 국제 양식의 순수 미학, 바우하우스 건축의 이상 등 다양한 요소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건축 방식을 모색했다. 그는 강철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지진에 강한 도시를 건설하는 데 집중했다.[4]
다니구치는 마에카와 구니오, 단게 겐조와 같은 모더니스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건축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5] 그는 전통과 현대의 연결 고리로 여겨지기도 한다.[6]
다니구치는 주로 공공 건축물 설계에 참여했으며, 교육 시설, 박물관, 극장, 문화 센터 등 다양한 건물을 통해 일본의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1952년부터 역사 보존 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문화재 전문가 위원회와 일본 문화청에서 활동했다.[7] 1965년에는 메이지 무라 마을 건설에 참여하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국 호텔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건축물들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7. 2. 역사 보존 운동
메이지 시대 건축의 대표작인 로쿠메이칸이 해체되는 모습을 야마노테 선 차 안에서 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 것이, 이후 박물관 메이지무라의 구상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17] 당시 메이테쓰 사장 쓰치카와 모토오와 의견이 맞아 메이지무라 개관을 위해서 노력했다. 다니구치와 쓰치카와는 가나자와 제4고등학교의 동급생으로 친구였다.1952년에는 역사 보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 문화재 전문가 위원회와 일본 문화청에 합류했다.[7] 1965년에는 메이지무라 마을을 건설했는데, 이곳은 그에게 영감을 준 일본의 메이지 시대 건축과 서양 건축에 대한 일본적 해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현대 작품의 대규모 재건 및 구조를 위한 나고야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단지이며, 여기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국 호텔이 포함되어 있으며, 1968년에 해체되어 다니구치의 지휘 아래 메이지 무라에서 조심스럽게 조각조각 재건되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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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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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eger
1960
[2]
간행물
Yoshiro Taniguchi and Hi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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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05
[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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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서적
Contemporary Architects
The Macmillan Press LTD
1980
[5]
간행물
Yoshiro Taniguchi and His Work
Shinkenchiku-sha
1966-05
[6]
간행물
The Architects: Japan
EMAP Publishing LTD
1962-09
[7]
서적
Banraisha : Taniguchi Yoshirō to Isamu Noguchi no kyōsōshi
Kajima Shuppankai
2006
[8]
뉴스
私の履歴書 谷口吉生(4)父設計の自邸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7-06-04
[9]
뉴스
朝日新聞
朝日新聞東京本社
1961-04-15
[10]
웹사이트
名誉市民
https://www4.city.ka[...]
2022-07-21
[11]
뉴스
私の履歴書 谷口吉生(2)芸術と縁深く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7-06-02
[12]
문서
松井清足
https://jahis.law.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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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웹사이트
永谷園ホールディングス役員構成
http://www.ullet.com[...]
[14]
웹사이트
萬來舎―谷口吉郎とイサム・ノグチの協奏詩
https://www.kinokuni[...]
2021-08-19
[15]
뉴스
私の履歴書 谷口吉生(3)疎開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7-06-03
[16]
뉴스
柔らかな光を生む、そろばん玉のように連なる「切子玉形」の照明は古墳時代の首飾りを模した。テーブルと椅子は上から見ると梅の花のよう
日本経済新聞
2014-08-18
[17]
뉴스
明治建築の何に彼はひかれたのだろう。▼れんが造りのなかは天井に竹のすのこが組まれ、窓の光を反射し伸びやかな空間をつくっている教会堂。石造りの壁に花の文様をいくつも刻み、雰囲気を和らげている電話交換局――。明治村に集めたものは、日本で育まれた素材や意匠を西洋建築に上手に織り込んでいる。そこに谷口の視線は注がれていたのではない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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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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