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인당 김씨
1. 개요
덕인당 김씨는 1880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진사를 지낸 김사준의 딸이다. 1893년 의화군 이강과 혼인하여 연원군부인에 봉해졌으며, 이후 의친왕비로 격상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이강공비가 되었고, 광복 이후 서예로 소일하며 서울 종로구에서 거주하다가 1964년 별세하여 홍유릉에 합장되었다. MBC 드라마 《제1공화국》, 《대원군》, KBS 드라마 《명성황후》 등 여러 작품에서 묘사되었다.
| 작위 | 연원군부인(延原君夫人) |
|---|---|
| 의친왕비(義親王妃) | |
| 이강공비(李堈公妃) | |
| 배우자 | 의친왕 이강 |
| 본명 | 김숙(金淑) |
| 다른 이름 | 김덕수(金德修) |
| 왕가 | 대한제국 황실과 친정 연안 김씨 |
| 왕조 | 대한제국 |
| 아버지 | 김사준 |
| 친인척 | 고종 태황제(시아버지) |
| 귀인 덕수 장씨(시어머니) | |
| 명성태황후 여흥 민씨(시적모) | |
| 순종 효황제(이복 시아주버니) | |
| 순명효황후 여흥 민씨(이복 손윗동서) | |
| 순정효황후 해평 윤씨(이복 손윗동서) | |
| 영친왕 이은(둘째시동생) | |
| 이방자(둘째 손아랫동서) | |
| 출생일 | 1880년 12월 22일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고양군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사동궁 별궁 안동별궁 |
| 사망 원인 | 저혈압 증세로 병사 |
| 사망일 | 1964년 1월 14일 |
| 능묘 | 홍유릉 예하 의친왕묘 |
| 매장지 |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
| 종교 | 불교 → 천주교(세례명: 마리아) |
| 문장 | 사동궁 이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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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
이곤 (1919년)
이곤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의 아들인 조선 왕족으로, 토지 매각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생활고를 고려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말단직을 거쳐 국회 수위로 근무하다 홍릉 거주지 철거 과정에서 문화재 관리국과 갈등을 겪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의친왕 -
이석 (1941년)
대한제국 의친왕 이강의 아들인 이석은 가수로 활동하며 '비둘기 집' 등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고, 베트남 전쟁 참전 후 미국 이민을 거쳐 귀국하여 황실 문화 알리기에 힘쓰며 전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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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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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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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1880년 경기도 고양에서 진사를 지낸 김사준의 딸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연안 김씨이다. 1881년 가족과 함께 한성부(현재의 서울)로 이주하여 성장하였고, 1886년 김수덕에서 김숙(金淑)으로 개명하였다. 유년 시절 경기도 양주에서 잠시 거주하기도 했다.
연안 김씨 가문으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의 14대 외손녀이자, 임영대군의 14대 외손녀였다. 또한, 중종의 맏딸인 효혜공주의 남편 김안로의 14촌이자,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의 13촌 간접 사촌이었다. 인목왕후와 선조의 딸 정명공주의 9촌이자, 혜경궁의 5촌 간접 사촌이기도 했다. 순원왕후의 8촌이며, 효현왕후와 철인왕후의 9촌이기도 했다.
1893년 12월 6일, 명성황후의 간택을 거쳐 의화군 이강과 혼인하여 연원군부인(延原郡夫人)에 봉해졌다. 1900년 남편 의화군이 의친왕으로 봉해지면서 친왕비(親王妃)로 격상되었다. 1907년 7월 20일 시아버지 고종 황제가 이복 시아주버니 순종에게 선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이강공비'로 격하되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서울 종로구 별궁 의친왕부 사저촌에서 주로 거주하며 서예로 소일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을 겪었으며, 1955년 장면을 대부로 하여 천주교로 개종하고 세례명 '마리아'를 받았다. 이후 가회동 안국동 별궁, 창덕궁 낙선재, 풍납동 승광재 별저 등에서 여생을 보냈다. 1963년 11월 10일부터 저혈압으로 투병하다가, 1964년 1월 24일 83세로 별세하였다. 사후,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내 의친왕 묘역에 합장되었다.
2.1. 초기 생애 (1880년 ~ 1893년)
1880년 경기도 고양에서 진사를 지낸 김사준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 김씨로, 부계 혈통을 통해 왕실과 먼 친척 관계를 맺고 있었다. 1881년 가족과 함께 한성부(현재의 서울)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886년 김수덕에서 김숙(金淑)으로 개명하였다. 유년 시절 경기도 양주에서 잠시 거주하기도 했다.
그녀는 연안 김씨 가문으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의 14대 외손녀이자, 임영대군의 14대 외손녀였다. 또한, 중종의 맏딸인 효혜공주의 남편 김안로의 14촌이자,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의 13촌 간접 사촌이었다. 인목왕후와 선조의 딸 정명공주의 9촌이자, 혜경궁의 5촌 간접 사촌이기도 했다. 순원왕후의 8촌이며, 효현왕후와 철인왕후의 9촌이기도 했다.
2.2. 혼인과 왕족 생활 (1893년 ~ 1910년)
1893년 12월 6일, 명성황후의 간택을 거쳐 의화군 이강과 혼인하여 연원군부인(延原郡夫人)에 봉해졌다. 혼인 전, 그녀의 아버지는 인목왕후가 쓴 편지를 민씨에게 전했는데, 그 편지에는 인목왕후의 결혼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인해 같은 가문의 여성은 왕족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민씨는 김씨 부인의 덕을 마음에 들어하여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 혼인 후, 남편 의화군 이강은 호화로운 생활을 위해 많은 소송, 빚, 뇌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남편은 사이가 좋지 않아 자녀를 갖지 못했고, 이로 인해 의화군은 결혼 생활 동안 13명의 후처를 두고 12명의 의붓아들과 9명의 의붓딸을 두었다.
1900년 남편 의화군이 의친왕으로 봉해지면서, 군부인에서 친왕비(親王妃)로 격상되었다. 1907년 7월 20일 시아버지 고종 황제가 이복 시아주버니 순종에게 선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2.3.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1910년 ~ 1964년)
1910년 경술국치로 '이강공비'로 격하되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서울 종로구 별궁 의친왕부 사저촌에서 주로 거주하며 서예로 소일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을 겪었다. 1955년 장면을 대부로 하여 천주교로 개종하고 세례명 '마리아'를 받았다. 이후 가회동 안국동 별궁, 창덕궁 낙선재, 풍납동 승광재 별저 등에서 여생을 보냈다. 1963년 11월 10일부터 저혈압으로 투병하다가, 1964년 1월 24일 83세로 별세하였다. 사후,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내 의친왕 묘역에 합장되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
| 아버지 | 김사준 | 1855년 | 1917년 |
| 어머니 | 창원 황씨 | 1855년 | ? |
| 남편 | 의친왕 이강 | 1877년 3월 30일 | 1955년 8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