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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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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기냥은 프랑스 바르 주의 도시로, 해발고도는 약 200m이다.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나르튀비 강이 도시 인근을 흐른다. 드라기냥은 중세 시대부터 올리브와 포도 재배를 중심으로 한 작은 마을이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 바르 주의 주도가 되었다. 주요 명소로는 포병 박물관, 예술과 민속 박물관, 생 미셸 교회 등이 있으며, 독일의 투틀링겐과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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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냥
지도
드라기냥의 시계탑
일반 정보
이름드라기냥
지위준현 및 코뮌
국가프랑스
지역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바르현
행정 구역드라기냥
칸톤드라기냥
INSEE 코드83050
우편 번호83300
별칭Dracénois
로마자 표기Deuraginyang
정치
시장리샤르 스트람비오
임기2020–2026년
자치 공동체CA 드라세니 프로방스 베르동
지리
해발 고도181m
최소 해발 고도153m
최대 해발 고도603m
면적53.7km2
인구
기타
거리

2. 지리

드라기냥은 평균 해발 200m 지점에 시가지가 있으며, 폭이 약 2km인 북서-남동 방향의 계곡에 위치해 있다. 주요 하천은 아르장강으로 합류하는 나르튀비 강이다.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연간
최고 기온 기록 (°C)22.7°C25.2°C27.1°C29.5°C35°C40.8°C40°C40°C34.9°C30.8°C25.1°C22.6°C-
평균 최고 기온 (°C)12.6°C14°C17.2°C20°C24.2°C28.9°C31.8°C31.8°C27.1°C21.9°C16.2°C12.9°C21.6°C
평균 기온 (°C)7.3°C8.1°C11°C13.8°C17.8°C22.1°C24.7°C24.6°C20.5°C16.3°C11.1°C7.9°C15.4°C
평균 최저 기온 (°C)2°C2.2°C4.8°C7.6°C11.4°C15.2°C17.5°C17.4°C13.9°C10.6°C6°C2.8°C9.3°C
최저 기온 기록 (°C)-7.8°C-8°C-6.8°C-1.1°C4.2°C5.8°C10.1°C10.1°C4.1°C-3.1°C-6.2°C-8.8°C-
강수량 (mm)69.1mm52.1mm55.4mm78.4mm65.9mm61.3mm19.8mm35mm69.5mm111.3mm157.2mm90mm865mm
평균 강수일수 (≥ 1.0 mm)5.85.35.77.16.44.12.23.24.66.78.46.666.1

[3]

2. 1. 지질

해발고도는 200m이다. 드라기냥 인근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말몽(551m)이다. 드라기냥 인근의 주요 강은 나르튀비 강이다.

도시는 폭이 약 2km인 북서-남동 방향의 계곡에 위치해 있다. 드라기냥 하류의 언덕은 중기 트라이아스기에 속하는 반면, 상류의 언덕은 후기 트라이아스기에 속한다.

북쪽에는 쥐라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있는 길고 좁은 석회암 고원이 있으며, 때로는 깊은 협곡으로 교차되기도 한다. "바우스"라고 불리거나 거대한 산악 장벽이라고도 불리는 이 북부 지역은 깊게 주름지고 파열되어 동서 방향으로 연속적인 분지를 보여준다.

드라기냥은 지진의 중간 위험 구역에 있다.[4]

2. 2. 기후

드라기냥의 기후는 일반적인 지중해성 기후와 같다. 서리 현상은 드물고, 연중 영하의 기온은 며칠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겨울은 온화하고 습하며, 여름은 따뜻하고 건조하다. 말몽(Malmont)과 셀브(Selves) 서부 산괴가 바람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 여름에는 강수량이 극도로 적은 반면, 가을에는 잦은 비가 내린다.[9]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연간
최고 기온 기록 (°C)22.7°C25.2°C27.1°C29.5°C35°C40.8°C40°C40°C34.9°C30.8°C25.1°C22.6°C-
평균 최고 기온 (°C)12.6°C14°C17.2°C20°C24.2°C28.9°C31.8°C31.8°C27.1°C21.9°C16.2°C12.9°C21.6°C
평균 기온 (°C)7.3°C8.1°C11°C13.8°C17.8°C22.1°C24.7°C24.6°C20.5°C16.3°C11.1°C7.9°C15.4°C
평균 최저 기온 (°C)2°C2.2°C4.8°C7.6°C11.4°C15.2°C17.5°C17.4°C13.9°C10.6°C6°C2.8°C9.3°C
최저 기온 기록 (°C)-7.8°C-8°C-6.8°C-1.1°C4.2°C5.8°C10.1°C10.1°C4.1°C-3.1°C-6.2°C-8.8°C-
강수량 (mm)69.1mm52.1mm55.4mm78.4mm65.9mm61.3mm19.8mm35mm69.5mm111.3mm157.2mm90mm865mm
평균 강수일수 (≥ 1.0 mm)5.85.35.77.16.44.12.23.24.66.78.46.666.1

[3]

3. 역사

드라기냥의 라틴어 모토는 ''Alios nutrio, meos devoro''(나는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내 자신은 삼킨다)이다.

로마 제국 멸망 후 1000년까지 드라기냥에 관해서는 묘지, 유적, 예배당, 주교의 이름과 같은 극히 적은 것들만 전해진다.

프랑스 혁명에서 지롱드파에 가담한 드라기냥은, 이어진 프랑스 제1 제정기에 번영했다. 181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퇴하자, 왕정 복고로 즉위한 루이 18세를 환영했다. 1815년 오스트리아 제국에 점령되었다. 샤를 10세 시대에는 법원이 설치되었고, 1836년에는 극장이 건설되었다.

1870년대에 필록세라 유행으로 드라기냥의 포도밭은 피해를 보았고, 1907년에 드라기냥의 와이너리는 협동 조합을 설립했다.

3. 1. 중세

전설에 따르면, 도시 이름은 라틴어 "Draco/Draconem"(''용'')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생트 에르망테르라는 이름의 주교가 용을 죽이고 사람들을 구했다. 드라기냥("Draconianum")이라는 이름은 909년에 처음 등장했다.[1]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죽이는 모습'', 15세기 미니어처


로마 제국 멸망 후 1000년까지 드라기냥에 관해서는 묘지, 유적, 예배당, 주교의 이름과 같은 극히 적은 것들만 전해진다. 909년, 클뤼니 수도원의 문헌에 처음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4] 중세 시대 동안 드라기냥은 올리브와 포도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이었다.[1] 100년 후에는 기사와 귀족이 다스리는 드라기냥에 영주가 나타났다. 암산 위에 세워진 방어 시설 자리에는 현재 시계탑이 서 있다. 드라기냥은 당시 독립국이었던 프로방스 백작령의 일부가 되었다. 드라기냥을 이미 다스리고 있던 것은 귀족들의 집단이었지만, 바일(bayle)이라고 불리는 프로방스 백작의 3명의 대관이 드라기냥으로 이주했다. 이 시대에 마을은 번영했다.[4] 13세기, 바르셀로나 백작이 프로방스 백작을 겸하게 되면서, 시가지 주변에 성벽이 축조되었다. 상업이 번성하고 많은 수도원이 건설되었다.[4]

16세기, 드라기냥은 흑사병 유행, 기근, 경제 위기, 야도의 횡행과 같은 암흑의 시대를 맞이했다. 1341년부터 1357년까지 산적 집단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1300년에는 인구 약 3500명이었지만, 1470년에는 불과 1800명 정도로 감소했다. 15세기부터 16세기, 프로방스 백작령을 두고 발루아-앙주 가문과 나폴리 왕국이 다투었다.[4]

3. 2. 근세

16세기, 드라기냥은 흑사병 유행, 기근, 경제 위기, 야도(도적)의 횡행과 같은 암흑기를 맞이했다. 1341년부터 1357년까지 산적 집단에게 공격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00년에는 인구가 약 3,500명이었지만, 1470년에는 1,800명 정도로 감소했다. 15세기부터 16세기, 프로방스 백작령을 두고 발루아-앙주 가문과 나폴리 왕국이 다투었다.

1481년, 드라기냥을 포함한 프로방스 백작령은 프랑스 왕국에 병합되었다.

종교 개혁 시대, 드라기냥은 가톨릭 교회 신자였지만, 여러 차례 프로테스탄트의 공격을 받았다. 1590년 10월에는 사보이 공국의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에게 점령당했다.

17세기, 드라기냥에서 봉건 제도가 붕괴되었다. 드라기냥이 프롱드의 난에서 프롱드 측에 가담한 것으로 인해, 루이 14세는 드라기냥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을 파괴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왕은 시계탑 재건을 허락했다.

3. 3. 근대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1790년에 드라기냥은 바르의 "주도"가 되었다. 비록 이 도시가 데파르트망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었다.[1] 드라기냥은 1974년까지 주청 소재지로 남았다.[1] 19세기와 20세기 상당 부분 동안 드라기냥 사람들("Dracénois", 영어로는 "Draceners")은 자유주의 정당(급진 사회주의 정당, 사회당)에 투표했다.[1]

이 도시는 1942-44년 독일 국방군에 점령되었으며, 드래군 작전 이후 1944년 8월에 해방되었다.[1] 1976년 "국립 포병 학교"("Ecole nationale d'artillerie")를 유치했으며, 2010년에는 "국립 보병 학교"("Ecole nationale d'infanterie")를 유치했다.[1] 군대의 도착은 도시의 발전을 수반했다.[1] 20세기 후반에 이 작은 마을은 도시가 되었다. 1954년에는 13,400명, 2000년에는 33,000명, 2010년에는 38,000명의 시민이 있었다.[1] 2010년 6월 15일, 이 도시는 홍수로 물에 잠겼다.[1] 폭우로 인해 이 도시에서 12명이 사망했고, 인근 지역에서 25명이 사망했다.[1]

16세기, 드라기냥은 흑사병 유행, 기근, 경제 위기, 야도의 횡행과 같은 암흑의 시대를 맞이했다. 1341년부터 1357년까지 산적 집단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1300년에는 인구 약 3500명이었지만, 1470년에는 불과 1800명 정도로 감소했다. 15세기부터 16세기, 프로방스 백작령을 두고 발루아-앙주 가문과 나폴리 왕국이 다투었다.

1481년, 드라기냥을 포함한 프로방스 백작령은 프랑스 왕국에 병합되었다.

종교 개혁 시대, 드라기냥 전체는 가톨릭교회 신자였지만, 여러 차례 프로테스탄트의 공격을 받았다. 1590년 10월에는 사보이 공작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에게 점령당했다.

17세기, 드라기냥에서의 봉건 제도가 붕괴되었다. 드라기냥이 프롱드의 난에서 프롱드 측에 가담한 것으로 인해, 루이 14세는 드라기냥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을 파괴했다. 그러나 수십 년 후에 왕은 시계탑의 재건을 허락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지롱드파에 가담한 드라기냥은, 이어진 프랑스 제1 제정기에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다. 181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퇴하자, 왕정 복고로 즉위한 루이 18세를 환영했다. 1815년, 드라기냥은 오스트리아 제국에 점령되었다. 샤를 10세 시대에는 법원이 설치되었고, 1836년에는 극장이 건설되었다. 19세기 전체에 걸쳐 드라기냥은 번영했다.

1870년대에 필록세라 유행으로 드라기냥의 포도밭은 피해를 입었다. 1907년에 드라기냥의 와이너리는 협동 조합을 설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드라기냥은 이탈리아군에 점령되었다 (이탈리아 남프랑스 진주 영역). 이어서 1944년, 독일군이 침공해왔다. 독일의 장군 노이링크는 드라기냥으로 이주했고, 게슈타포와 경찰대가 드라기냥에서 활동했다. 드라기냥 시민의 많은 수가 마을을 떠나, 인적이 드문 바르 고지로 숨었다. 레지스탕스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1944년 8월 15일, 프랑스 국내군(:fr:Forces françaises de l'intérieur)에 의해 드라기냥은 해방되었다.

전후, 캉주엘 기지 및 군사 학교가 설치되었다.

3. 4. 현대

19세기와 20세기 상당 부분 동안 드라기냥 사람들("Dracénois", 영어로는 "Draceners")은 자유주의 정당(급진 사회주의 정당, 사회당)에 투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드라기냥은 이탈리아군에 점령되었다 (이탈리아 남프랑스 진주 영역).[1] 이어서 1944년, 독일군이 침공해왔다.[1] 독일의 장군 노이링크는 드라기냥으로 이주했고, 게슈타포와 경찰대가 드라기냥에서 활동했다.[1] 드라기냥 시민의 많은 수가 마을을 떠나, 인적이 드문 바르 고지로 숨었다.[1] 레지스탕스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었다.[1] 1944년 8월 15일, 프랑스 국내군(:fr:Forces françaises de l'intérieur)에 의해 드라기냥은 해방되었다.[1]

전후, 캉주엘 기지 및 군사 학교가 설치되었다.[1] 1976년 "국립 포병 학교"("Ecole nationale d'artillerie")를 유치했으며, 2010년에는 "국립 보병 학교"("Ecole nationale d'infanterie")를 유치했다. 군대의 도착은 도시의 발전을 수반했다. 20세기 후반에 이 작은 마을은 도시가 되었다. 1954년에는 13,400명, 2000년에는 33,000명, 2010년에는 38,000명의 시민이 있었다. 2010년 6월 15일, 이 도시는 홍수로 물에 잠겼다. 폭우로 인해 이 도시에서 12명이 사망했고, 인근 지역에서 25명이 사망했다.

4. 인구

연도인구
17936113
18006561
18068010
18218616
18319804
18369794
18418588
18469876
18518972
185611052
186110082
18669819
18729446
18769223
18819133
18869753
18919816
18969963
19019671
19069770
19119974
19219199
19269441
193111418
193612130
194611801
195413402
196214522
196818376
197521448
198226667
199030183
199932829
200737117
201237476
201739340



드라기냥의 인구 자료는 EHESS[7]와 INSEE (1968-2017)[8]에서 제공되었다.

5. 교통

드라기냥은 A8 고속도로, D 1555번 국도와 연결된다. Trans-en-Provence에서 시내 남쪽을 통과해 중심부를 우회하고, 북쪽에 있는 병원으로 빠르게 갈 수 있는 우회로가 있다. 이 도시는 파리에서 869km, 마르세유에서 141km, 니스에서 89km 떨어져 있다.

1981년부터 TGV가 운행하는 레자르-드라귀냥이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다. 드라귀냥 광역 공동체는 과거 드라기냥 기차역을 버스 터미널로 개조하여 버스 셔틀을 운행하고 있다.[1]

드라기냥의 도시 교통은 TED 공동체에서 관리하며, 바르 일반 평의회 소속 버스는 드라기냥에서 툴롱, 브리뇰 등으로 운행한다.[1] 현재 드라기냥 시내에서 레자르-드라귀냥역까지 더 빠르게 연결하는 간선급행버스체계(BHNS) 프로젝트가 연구 중이다.[1]

5. 1. 도로

드라기냥 시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없지만, 주요 고속도로인 A8 고속도로와 D 1555번 국도를 통해 직접 연결되어 있다.

Trans-en-Provence에서 도착하여 시내 남쪽을 통과해 시내 중심부를 우회하고, 시내 북쪽에 있는 병원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우회로가 있다.

이 도시는 파리에서 869km, 마르세유에서 141km, 니스에서 89km, 툴롱에서 86km, 프레쥐에서 30km, 디뉴레뱅에서 105km, 생트로페 만에서 약 35km 떨어져 있다.

5. 2. 철도

1981년 이래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레자르-드라귀냥으로, TGV가 운행하며 시내 중심에서 12km 떨어져 있다.[1] 드라귀냥 광역 공동체는 과거 드라귀냥 기차역을 버스 터미널로 개조하여 버스 셔틀을 운행하고 있다.[1] 드라귀냥 기차역에는 SNCF와 광역 교통을 위한 두 개의 개찰구가 있다.[1]

레자르-드라귀냥 역

5. 3. 대중교통

드라기냥의 도시 교통은 TED 공동체에서 관리하며, 이 공동체는 3개의 도시 노선과 레자르-드라기냥, 아퓌, 플라요스크, 르 뮈이, 로르그 등의 다른 자치단체로 가는 노선을 제공한다. 바르 일반 평의회 소속 버스는 드라기냥에서 툴롱, 브리뇰, 오프, 파이앙스, 프레쥐, 르 뤽으로 운행한다.[1]

현재 25분 걸리는 드라기냥 시내에서 레자르-드라기냥역까지 17분 만에 연결하는 BHNS(간선급행버스체계) 프로젝트가 연구 중이다.[1]

6. 경제

농업(올리브, 포도)이 활발하지만, 군사, 교육, 병원, 형무소와 같은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7. 문화

드라기냥에는 다음과 같은 명소가 있다.

명칭설명
포병 박물관나폴레옹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인도차이나 등 여러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예술과 민속" 박물관
론 아메리카 묘지 및 기념관드래군 작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곳으로, 미국 제2차 세계 대전 묘지이다.
생 미셸 교회
노트르담 뒤 푀플 교회
돌멘 피에르 드 라 페(요정의 돌)과일 바위라고도 불린다.



드라기냥의 돌멘


또한, 드라기냥은 독일의 투틀링겐과 자매 도시이다.[1]

7. 1. 명소


  • 나폴레옹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인도차이나 등 여러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포병 박물관
  • "예술과 민속" 박물관
  • 드래군 작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론 아메리카 묘지 및 기념관 (미국 제2차 세계 대전 묘지)
  • 생 미셸 교회
  • 노트르담 뒤 푀플 교회
  • 과일 바위라고도 불리는 돌멘 피에르 드 라 페(요정의 돌)

7. 2. 자매 도시

8. 인물

출신 인물출생/사망기타
니콜라 아녜시출생
카를 "사이코" 아무수출생벨라토르 격투 챔피언십 종합격투기 선수
장마리 오베르송사망
세바스티앙 부앙출생암벽 등반가
패트리샤 버크사망영국 배우
조르주 클레망소드라기냥 지역구 의원(1885–1893) 및 동 지역구 상원의원(1902–1920), 1906-1909년 및 1917–1920년 프랑스 총리
알랭 코르네스출생
미셸 콩스탕탱사망
아벨 두에출생
미카엘 파브르출생
귀스타브 페리에드라기냥에서 수학
에스테브 가르생출생
클로드 게출생식물학자
막시맹 이나르드라기냥의 정치인
미셸 라푸르카드사망
이폴리트 메주-무리에출생
샤를로트 모렐출생
루이 모레리드라기냥에서 수학
앙리 뮐레프랑스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 드라기냥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며 생애 마지막 30년을 드라기냥에서 보냄
에밀 올리비에드라기냥의 정치인, 드라기냥 지역구 의원, 1870년 총리
릴리 퐁스출생
로널드 시얼사망영국 예술가
필리프 세갱드라기냥에서 수학
조르주 티유사망
크리스토퍼 톨킨1975년부터 2020년 1월 사망할 때까지 드라기냥에서 거주
알랭 콘수학자
거주 인물
다니엘 비달가수


참조

[1] 웹사이트 Répertoire national des élus: les maires https://www.data.gou[...] 2020-12-02
[2] 웹사이트 Météo France http://france.meteof[...]
[3] 웹사이트 Fiche Climatologique Statistiques 1991-2020 et records https://donneespubli[...] Météo-France 2022-09-09
[4] 웹사이트 Didacticiel de la règlementation parasismique http://www.planseism[...]
[5] 간행물 Draguignan
[6] 웹사이트 Population en historique depuis 1968 https://www.insee.fr[...]
[7] 간행물 Draguignan
[8] 웹사이트 Population en historique depuis 1968 https://www.insee.fr[...]
[9] 웹인용 Fiche Climatologique Statistiques 1991-2020 et records https://donneespubli[...] Météo-France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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