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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프로그래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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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프로그래밍은 1970년대 미국에서 신흥 종교 운동의 확산에 대응하여 등장한 방법으로, 종교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을 강제로 탈퇴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에 의해 대중에게 소개되었으며, 납치, 감금, 폭력, 세뇌 등의 수단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 법적, 윤리적 논란을 야기했다. 디프로그래밍은 세뇌 이론을 바탕으로 신도들이 정신적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엑소시즘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강압적인 방식과 인권 침해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았으며, 1990년대 제이슨 스콧 사건을 계기로 비자발적 디프로그래밍은 사실상 종식되었다. 엑시트 카운슬링은 디프로그래밍과 달리 강제성이 없는 상담 방식으로, 디프로그래밍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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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프로그래밍
개요
정의특정인의 신념에 대한 강압적인 개입
관련 용어세뇌 파괴
관련 법률미국 수정 헌법 제1조
신앙의 자유
상세 정보
특징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억압하려는 시도
납치, 감금, 심리적 압박 등의 강압적인 방법 동원
목표특정 신념 체계를 버리도록 강요
기존의 사고방식으로 되돌리거나 새로운 신념 체계 주입
역사
배경1970년대 신흥 종교 운동의 확산
컬트(Cult)에 대한 사회적 우려 증가
주요 인물테드 패트릭
사건강제 개종 시도 혐의로 기소
유죄 판결
법적 쟁점
관련 법률미국 수정 헌법 제1조 (종교의 자유)
납치, 감금, 폭행 등의 범죄 행위
법적 판단종교의 자유 침해 여부 논쟁
불법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 존재
윤리적 문제
논쟁점개인의 신념의 자유 침해
강압적인 방법의 정당성 여부
비판정신적 외상(트라우마) 유발 가능성
역효과 발생 가능성
사회적 영향
사회적 인식컬트(Cult)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제고
긍정적/부정적 시각 공존
관련 단체컬트 감시 단체
기타
관련 질병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2. 배경

지난 반세기 동안 시행된 디프로그래밍 기법은 주로 특정 조직이나 그룹에 가입한 성인 자녀를 둔 부모나 친척의 의뢰로 이루어졌다. 이 방식은 때때로 퇴마 의식과 비교되기도 했으며, 법 집행 기관의 암묵적인 지지 아래 시행되기도 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신흥 종교 운동(New religious movement, NRM)이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이 시기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Ted Patrick)은 컬트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디프로그래밍을 대중화했다. 예를 들어, 미국 내 통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디프로그래밍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퍼지기도 했다.

디프로그래밍은 스스로의 의지로 특정 집단에 가입한 성인을 강제로 분리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낳았다. 사이비 종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법적, 윤리적 문제를 들어 디프로그래밍을 비판했다. 강제성이 없는 경우에는 '엑시트 카운슬링'(exit counsel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 디프로그래밍은 특정 생각에 무비판적으로 빠진 사람을 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엑시트 카운슬러 중에는 과거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었던 경우가 많다고 캐럴 지암발보(Carol Giambalvo)는 언급했다.

여러 학자들은 디프로그래밍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회학자 제임스 리처드슨(James T. Richardson)은 디프로그래밍이 비공식적인 자구책 형태를 띠지만, 결국 대상자를 강제로 집단에서 떼어내 감금하고, 집단 탈퇴에 동의하도록 강요하는 과격한 재사회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법학 교수 더글라스 레이콕(Douglas Laycock)은 1970년대 초 디프로그래밍의 핵심이 물리적 납치, 격리, 신체적 제약, 그리고 신념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되는 심문과 위협이었다고 기술했다. 변호사 존 르물트(John LeMoult)는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 개인이 겪는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압박이 나치가 수감자에게 가했던 것과 유사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테드 패트릭은 1970년대 초 '시민 자유 재단'(Citizens Freedom Foundation, CFF)을 설립하고, 가족 구성원이 신흥 종교 운동과 관계를 끊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디프로그래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의 방식에는 납치, 신체 구속, 며칠 또는 몇 주간의 감금, 음식 및 수면 박탈, 지속적인 언어적·정서적 학대, 신앙의 상징 훼손 등이 포함되었다.[9][10]

디프로그래머들은 신흥 종교 운동 구성원들이 세뇌되었다는 이론을 내세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11][12] 이 이론은 신흥 종교 운동 구성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신 통제 프로그램에 의해 조종당한다고 주장했다.[13] 테드 패트릭은 개인이 모집자의 눈빛이나 손짓에 의해 최면에 걸리고, 지속적인 주입과 통제된 환경 속에서 그 상태가 유지된다고 주장했다.[13] 그러나 대부분의 학술 연구는 사람들이 신흥 종교 운동에 가입하거나 떠나는 이유가 복잡하며, 개인의 책임과 선택 능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13]

시민 자유 재단(CFF)은 나중에 컬트 인식 네트워크(Cult Awareness Network, CAN)로 이름을 바꾸고,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 반컬트 운동의 중심 조직이 되었다. 이들은 디프로그래밍 활동을 합법화하려 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세뇌 이론을 퍼뜨려 정부 기관과의 연계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CFF와 CAN은 공식적으로는 1970년대 후반부터 디프로그래밍과 거리를 두는 듯했지만[14], 실제로는 디프로그래머 명단을 관리하며 유료 고객에게 알선하는 등 은밀하게 관행을 지속했다. 정확한 횟수는 알 수 없으나, 테드 패트릭 스스로 1980년에 2,000번 이상 전문적인 납치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15] 패트릭 외에도 많은 디프로그래머들이 활동했으며, 상당수는 그에게 훈련받았다.[13] 디프로그래밍은 반컬트 운동의 핵심 요소였지만, 법적·도덕적 문제와 조직의 '교육 단체' 이미지 유지 필요성 때문에 공개적으로는 부인되고 암암리에 실행되는 경향이 있었다.[16]

2. 1. 한국의 디프로그래밍 논란

(내용 없음)

3. 절차

디프로그래머들 사이에 통일된 표준 절차는 없었다. 디프로그래밍은 대상자가 신흥 종교 운동으로부터 마인드컨트롤이나 세뇌를 당한 피해자라는 가정 하에 진행되었다. 디프로그래머와 엑시트 카운슬러들이 쓴 서적에 따르면,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상자 스스로가 타인에게 정신적으로 통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3. 1. 테드 패트릭의 디프로그래밍 방식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신흥 종교 운동이 증가하던 시기,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은 "시민 자유 재단"(CFF, 나중에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으로 알려짐)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가족 구성원이 신흥 종교 운동(NRM)과 관계를 끊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디프로그래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9][10]

패트릭의 방식은 디프로그래밍 대상자를 마인드컨트롤이나 세뇌의 피해자로 간주하는 가정 하에 이루어졌다. 그는 이러한 접근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뇌 이론을 적용했는데,[11][12] 특히 개인이 특정 인물의 눈이나 손가락에서 나오는 뇌파에 의해 최면에 걸리고, 이것이 지속적인 주입과 자기 최면으로 유지된다는 독자적인 이론을 펼쳤다.[13]

패트릭이 사용한 구체적인 방법에는 유괴, 신체적 구속, 대상자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함께하며 감금하는 행위, 음식 및 수면 박탈, 지속적인 언어적 및 정서적 학대, 대상자의 신앙 상징을 훼손하는 행위 등이 포함되었다.[9][10] 디프로그래밍 과정은 일반적으로 대상자를 강제로 차량에 태워 격리된 장소로 데려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대상자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할 때까지 풀려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납치범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며칠, 때로는 몇 주에 걸쳐 언어적, 정서적, 심리적, 신체적 압박을 받았다.[21] 이러한 과정에서 총기 위협, 구타, 성폭행 등 심각한 폭력이 동반되었다는 증언도 다수 존재한다.[20] 사회학자 에일린 바커는 패트릭이 자신이 사용한 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랑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20]

패트릭의 이러한 활동은 법적 문제로 이어져, 그는 대상자 납치 및 불법 감금과 관련된 여러 중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80년에 자신이 전문 유괴범으로 2,000번 이상 고용되었다고 주장했으며,[15] 그에게 훈련받은 다른 많은 디프로그래머들이 활동하기도 했다.[13] CFF와 CAN 같은 단체들은 표면적으로는 1970년대 후반부터 디프로그래밍과 거리를 두었지만,[14] 실제로는 디프로그래머 명단을 유지하며 유료 고객들을 이들에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계속했다.

한편, 테드 패트릭의 동료였던 실비아 버퍼드(Sylvia Buford)는 디프로그래밍 과정을 다음의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 사이비교주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 '이념 대 현실'이라는 대립을 표면화한다. (예: "교주가 사람들을 이용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설파했는가?")

# 임계점: 대상자가 디프로그래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현실 인식이 이념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 자기 표현: 대상자가 마음을 열고 자신이 믿었던 종교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 동일시(identification)와 전이(transference): 대상자가 디프로그래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신자가 아닌 반대자로 여기게 된다.

3. 2. 폭력 사용 논란

디프로그래밍은 그 방식의 폭력성과 불법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낳았다. 법적 성인으로서 스스로 특정 집단에 가입하기로 선택한 사람을 강제로 분리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았으며, 사이비 종교 비판론자들조차 법적,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신흥 종교 운동(NRM)이 확산되자,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은 가족들이 NRM과의 관계를 끊도록 돕는다는 명목으로 디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그의 방식에는 납치, 신체적 구속, 음식 및 수면 박탈, 지속적인 언어적·정서적 학대, 피해자 신앙의 상징 훼손 등이 포함되었다.[9][10] 디프로그래머들은 NRM 구성원들이 세뇌되었으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상실한 정신 통제 프로그램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강압적인 행동을 정당화했다.[11][12][13] 그러나 대부분의 학술 연구는 사람들이 NRM에 가입하거나 떠나는 이유가 복잡하며, 개인의 책임과 선택 능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보여준다.[13]

반컬트 운동 단체들은 세뇌 이론을 퍼뜨리며 디프로그래밍을 정당화하고 일부 정부 기관과 연계하기도 했다. 시민 자유 재단(CFF)과 이후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로 알려진 단체들은 공식적으로는 디프로그래밍과 거리를 두었지만[14], 실제로는 유료 고객들을 디프로그래머에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지속했다.[16] 테드 패트릭은 1980년 자신이 2,000번 이상 디프로그래밍을 수행했다고 주장했으며[15], 그에게 훈련받은 다른 많은 디프로그래머들이 활동했다.[13]

여러 학자들은 디프로그래밍의 강압성을 지적했다. 사회학자 앤슨 D. 슈프 등은 디프로그래밍이 엑소시즘과 유사하다고 보았고[17], 사회학 및 사법학 교수 제임스 T. 리처드슨은 이를 "비인기적인 신흥 종교 운동 참가자들을 강제로 집단에서 제거하고, 감금하여, 집단을 떠나도록 동의하게 만드는 급진적인 재사회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18] 법학 교수 더글러스 레이콕은 디프로그래밍의 본질을 "개종자를 물리적으로 납치하여 격리하고 신체적으로 구속한 다음, 새로운 종교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과 공격을 퍼붓고, 떠나기로 동의할 때까지 붙잡아두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19] 변호사 존 르물트(John LeMoult)는 디프로그래밍 대상자가 자신의 신념을 버릴 때까지 붙잡혀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압박을 받는 과정이며, 그 강압성을 나치가 수감자에게 가한 것에 비유했다. 미국 연방 대법원 역시 콜롬브리토(Colombrito) 대 켈리(Kelly) 사건에서 르물트가 정의한, 납치로 시작하여 고립된 장소에서 며칠 혹은 몇 주간 잠을 재우지 않고 신념 포기를 압박하는 강압적인 디프로그래밍 개념(비용은 2.5만달러에 달하기도 함)을 인용한 바 있다.[21]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의 폭력에 대한 증언은 다수 존재한다. 피해자들은 총으로 위협받거나 구타당하고, 음식과 잠을 빼앗겼으며, 심지어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20] 사회학자 에일린 바커는 테드 패트릭 스스로가 사용한 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랑했으며 여러 차례 수감되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패트릭은 디프로그래밍 대상 납치 및 불법 감금과 관련된 여러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6] 반컬트 운동과 관련된 다른 인물들도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저지른 폭력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으며[20], 1987년에는 영국 FAIR 회원 시릴 보스퍼(Cyril Vosper)가 디프로그래밍 중 신체 손상을 입힌 혐의로 독일 뮌헨에서 기소되기도 했다.

과거 디프로그래머였던 캐럴 지암발보(Carol Giambalvo)는 수갑, 총기 사용, 성적 학대, 강간과 같은 "공포 이야기"가 실제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는 소수였고 디프로그래밍이 "많은 개인을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했다.[22] 스티븐 하산과 같이 과거 디프로그래밍에 관여했던 일부 인물들은 이후 강제력이나 위협을 사용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4. 정당성 및 효과성 논란

디프로그래밍은 법적으로 성인인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여 가입한 집단에서 강제로 분리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큰 논란을 안고 있다. 심지어 사이비종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디프로그래밍의 법적,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엑시트 카운슬링(exit counseling)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사용되는 방법의 폭력성과 불법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사회학자 앤슨 D. 슈프 등은 디프로그래밍이 방법론이나 나타나는 모습 모두 엑소시즘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17] 사회학 및 사법학 교수 제임스 T. 리처드슨은 디프로그래밍을 "인기 없는 신흥 종교 운동(NRM) 참가자들을 강제로 집단에서 떼어내 감금하고, 집단을 떠나도록 동의하게 만드는 급진적인 재사회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18] 법학 교수 더글러스 레이콕은 디프로그래밍의 본질이 "개종자를 물리적으로 납치하여 격리하고 신체적으로 구속한 다음, 그가 새로운 종교를 포기하도록 끊임없이 논쟁하고 공격하며, 포기할 때까지 영원히 붙잡아두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19] 변호사 존 르물트(John LeMoult)는 디프로그래밍 대상자가 자신의 신념을 버릴 때까지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압박을 받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그 강압성을 나치가 수감자에게 가한 압박에 비유하기도 했다.

디프로그래머들은 일반적으로 대상자가 세뇌의 피해자라고 가정하며 활동했다. 이러한 가정 하에, 때로는 범죄적 폭력을 포함한 극단적인 조치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은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저지른 납치 및 불법 감금 등 여러 중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6]

디프로그래밍 경험에 대한 증언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폭력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총으로 위협받거나 구타, 음식 및 수면 박탈, 심지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묘사도 있다.[20] 사회학자 에일린 바커는 테드 패트릭 스스로 자신이 사용한 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랑하기도 했다고 지적하며,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의 다른 주요 회원들도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저지른 폭력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언급했다.[20] 과거 CAN에서 활동했던 캐롤 잠발보는 납치보다는 자택, 별장, 모텔 등에 강제 구금하는 방식이 더 흔했다고 말하면서도, 구속, 구타, 무기 사용, 성적 학대, 강간과 같은 "공포 이야기"가 소수 사례에 존재했음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디프로그래밍이 "많은 개인을 해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2]

디프로그래밍의 효과성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일부 옹호자들은 높은 성공률을 주장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디프로그래밍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집단을 떠나는 비율이 실제로는 더 높다.[24] 정신 의학 교수인 솔 V. 레빈(Saul V. Levine|솔 V. 레빈eng)은 디프로그래밍이 과연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그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디프로그래밍이 효과를 보려면 피해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단에 가입했다는 점, 즉 자신의 책임과 선택 능력을 부정하고 외부 요인에 의해 정신이 조종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레빈은 이 과정이 개인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에 대한 영구적인 불안감을 심어주며, 결국 다른 사람의 지도와 조언에 의존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25] 덴마크의 기독교 반컬트 단체인 다이얼로그 센터 인터내셔널(DCI) 역시 디프로그래밍이 역효과를 낳고 비효율적이며, 대상자와 가족 간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26]

4. 1. 세뇌 이론 비판

디프로그래머들은 신흥 종교 운동(NRM)에 "세뇌" 이론을 적용하여 자신들의 강압적인 행동을 정당화했다.[11][12] 이 세뇌 이론은 NRM 구성원들이 스스로 영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부정했다. 대신, 이 이론은 해당 개인들이 독립적인 의지를 억누르는 체계적인 정신 통제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13]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은 개인이 신흥 종교 운동 모집자의 눈과 손가락에서 나오는 뇌파에 의해 최면에 걸리고, 이 상태가 지속적인 주입, 전체주의적 환경, 자기 최면으로 유지된다는 구체적인 세뇌 이론을 펼쳤다.[13]

그러나 이러한 세뇌 이론은 학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부분의 학문적 연구는 사람들이 신흥 종교 운동에 가입하거나, 머물거나, 떠나는 이유가 매우 복잡하고 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개인의 책임감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지적한다.[13] 이는 개인의 자율성을 부정하고 강압적인 개입을 정당화하는 세뇌 이론의 주장이 실제와는 거리가 있음을 시사한다.

5. 정부의 개입

디프로그래머들은 때때로 법 집행 기관이나 사법 관리들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기도 했다.[27][28] 리차드슨은 정부의 디프로그래밍 관여를 암묵적인 승인에서부터 적극적인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18]

정부의 개입 양상은 국가별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른 종교의 자유 보호 원칙 때문에 정부가 디프로그래머들의 활동을 비교적 소극적으로 방관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18]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정부 기관이 직접 나서 특정 종교나 사상(예: 파룬궁)을 억압하기 위해 디프로그래밍과 유사한 활동을 조장하고 강제하는 적극적인 개입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18] 이러한 개입은 정부가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집단에 대해 강력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설득 노력을 동원하거나, 해당 집단의 활동이나 신념 자체를 불법화하는 법률 제정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18]

이러한 정부 개입은 법적, 윤리적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비자발적 디프로그래밍을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종교 및 헌법적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로 인해 대부분 실패했다.[29] 특히 뉴욕주에서는 관련 법안이 주의회를 통과했음에도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29]

5. 1. 미국의 사례

디프로그래머들은 때때로 법 집행 기관이나 사법 관리들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기도 했다.[27][28] 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제1조가 종교 단체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관리나 기관들은 디프로그래머들의 활동을 종종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파룬궁 탄압처럼 특정 신념을 강요하기 위해 디프로그래밍과 유사한 활동을 조장하고, 심지어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18]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비자발적 디프로그래밍을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뉴욕, 캔자스, 네브래스카, 코네티컷, 일리노이, 뉴저지, 오하이오, 오리건, 텍사스 주의 입법자들이 관련 법안 제정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특히 뉴욕에서는 1980년과 1981년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주의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휴 캐리 주지사는 해당 법안들이 종교의 자유 및 기타 헌법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다른 주에서는 법안이 입법부 문턱을 넘지 못했다.[29]

5. 2. 중국의 사례

중국에서는 정부 기관이 직접 나서서 디프로그래밍과 유사한 활동을 조장하는 경우가 있다.[18] 이는 정부가 "올바른" 신념과 행동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강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며, 대표적인 사례로 파룬궁 운동에 대한 탄압을 들 수 있다.[18] 중국 정부는 "정부가 용납할 수 없다고 간주하는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강력하고, 심지어 폭력적인 노력"을 동원하며,[18] 때로는 "불인기 있는 운동이나 집단의 활동이나 신념 자체를 불법으로 만드는 법률 통과를 통해 법적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18]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단순한 묵인을 넘어선 적극적인 관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18]

6. 논란 및 관련 쟁점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신흥 종교 운동(NRM)이 증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이 "시민 자유 재단"(CFF)을 설립하고 디프로그래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의 방식은 대상자를 납치하여 신체적으로 구속하고, 며칠 또는 몇 주간 구금하며 음식과 수면을 박탈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포함했다. 또한 지속적인 언어적, 정서적 학대와 함께 대상자의 신앙 상징을 훼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9][10]

디프로그래머들은 신흥 종교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세뇌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강압적인 행위를 정당화했다.[11][12] 이들은 NRM 구성원들이 독립적인 의지를 상실한 채 조직적인 정신 통제 프로그램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보았다.[13] 특히 테드 패트릭은 개인이 특정 뇌파에 의해 최면에 걸리고, 지속적인 주입과 통제된 환경 속에서 그 상태가 유지된다는 독자적인 세뇌 이론을 펼쳤다.[13]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학술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NRM에 가입하거나 떠나는 이유가 복잡하며, 개인의 책임과 선택 능력이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을 보여주었다.[13]

시민 자유 재단(CFF)은 나중에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로 이름을 바꾸고,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 전역에서 활발했던 반컬트 운동의 중심 조직이 되었다. 이들은 디프로그래밍 활동을 합법화하기 위해 입법 로비를 벌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뇌 이론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며 NRM 관련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인 문제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정부 기관과의 연계를 구축하며 자신들의 활동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받으려 했다.

CFF와 CAN은 1970년대 후반부터 공식적으로는 디프로그래밍과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14] 실제로는 디프로그래머 명단을 관리하며 유료 고객에게 이들을 알선하는 등 관행을 지속했다. 정확한 횟수는 알 수 없으나, 1980년 테드 패트릭 스스로 2,000번 이상 전문적인 납치(디프로그래밍)를 수행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15] 패트릭 외에도 그에게 훈련받은 많은 디프로그래머들이 활동했다.[13] 디프로그래밍은 반컬트 운동의 이데올로기 및 경제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조직이 내세우는 "교육" 단체로서의 이미지(세금 면제 지위 등) 및 법적, 도덕적 문제와 충돌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이로 인해 디프로그래밍은 공개적으로는 부정되면서도 암암리에 계속 행해졌다.[16]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 여론은 세뇌 이론을 비교적 폭넓게 받아들였고, 언론 역시 디프로그래밍을 정당한 행위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30] 그러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 침해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었다. 디프로그래머를 고용한 가족들이 대상자의 동의 없이 사기나 납치 등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법원의 정식 심리 없이 부모가 성인 자녀에 대한 임시 후견권을 얻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31] 비판가들은 디프로그래밍 자체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하며,[32][33] 오히려 종교 단체가 아닌 디프로그래머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조종한다고 주장했다.[33][34][35][36]

결정적으로 1990년대 제이슨 스콧 사건은 디프로그래밍 관행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 사건에서 디프로그래머 릭 로스와 그를 알선한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에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되면서 CAN은 파산했으며,[37][38] 미국 내에서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비자발적 디프로그래밍은 사실상 종말을 맞게 되었다.[9]

6. 1. 시민권 및 정치적 권리 문제

디프로그래밍은 그 방법의 폭력성과 불법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낳은 행위이다. 법학 교수 더글러스 레이콕은 디프로그래밍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개종자를 물리적으로 납치하여 격리하고 신체적으로 구속한 다음, 그가 새로운 종교에 반대하는 끊임없는 논쟁과 공격을 퍼붓고, 그가 그것을 떠나기로 동의할 때까지 영원히 붙잡아두겠다고 위협하는 것이었다.[19]

디프로그래머들은 대상자가 정신 조종이나 세뇌의 피해자여서 합리적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가정하고, 때로는 범죄적 폭력을 포함한 극단적인 조치를 정당화했다. 실제로 디프로그래머 테드 패트릭은 납치 및 불법 감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6]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는 일정 수준의 폭력이 수반되는 경우가 흔했다. 총기로 위협받거나 구타당하고, 음식과 잠을 빼앗기거나 심지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도 다수 존재한다.[20] 일반적으로 피해자는 강제로 차량에 태워져 납치범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려가며, 신념을 포기할 때까지 풀려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납치범들의 요구가 충족될 때까지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언어적, 정서적, 심리적, 또는 신체적 압력을 받는다.[21] 사회학자 에일린 바커에 따르면, 악명 높은 디프로그래머였던 테드 패트릭은 자신이 사용한 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랑하기도 했다.[20]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의 관점에서 볼 때, 디프로그래머를 고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친척을 변호사나 정신과 의사의 도움 없이 디프로그래머의 손에 넘기기 위해 사기나 기타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방법(납치 포함)을 사용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전에는 정신 감정을 먼저 거친 후 정신병원 또는 비자발적 치료를 받도록 했으나, 디프로그래밍에서는 판사가 심리 없이 부모에게 성인 자녀에 대한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31]

비판가들은 디프로그래밍과 출구 상담이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32][33] 일부 시민 자유 옹호자, 사회학자 및 심리학자들은 종교 단체가 아니라 사람들을 속이고 조작하는 것은 디프로그래머라고 주장한다.[33][34][35][36]

1990년대 제이슨 스콧 사건은 이러한 논란 속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디프로그래머 릭 로스는 디프로그래밍 시도가 실패한 후 오순절교 계열 단체의 전 회원인 제이슨 스콧에게 소송을 당했다. 1995년, 배심원단은 로스에게 보상적 손해 87.5만달러와 징벌적 손해 2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며, 이후 5천달러와 200시간의 봉사로 합의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심원단이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 역시 이 행위에 공모했다고 판단하여 CAN에게 약 100만달러의 징벌적 손해를 부과했다는 점이다.[37][38] 이 판결은 CAN을 파산으로 몰고 갔으며,[37][38] 미국에서 비자발적 디프로그래밍 관행을 사실상 종식시키는 계기로 여겨진다.[9]

6. 2. 제이슨 스콧 사건

1990년대, 디프로그래머 릭 로스(Rick Ross)는 오순절교 계열 단체인 라이프 태버내클 교회(Life Tabernacle Church)의 전 회원 제이슨 스콧에 대한 디프로그래밍 시도가 실패한 후 소송을 당했는데, 이 사건이 제이슨 스콧 사건이다.[37][38]

1995년, 배심원단은 로스에게 보상적 손해로 87.5만달러, 징벌적 손해로 2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이후 5천달러와 200시간의 봉사로 합의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배심원단이 반컬트 운동 단체인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 역시 이 사건의 공범이라고 판단하여, CAN에게 약 100만달러의 징벌적 손해 배상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로 인해 CAN은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37][38]

제이슨 스콧 사건은 미국에서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비자발적 디프로그래밍 관행이 사실상 종식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9] 이 사건은 디프로그래밍 행위의 불법성과 함께, 이를 조장하거나 관여한 반컬트 운동 단체의 책임 문제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7. 반(反)컬트 운동과 디프로그래밍

디프로그래밍은 지난 반세기 동안 주로 신흥 종교 운동(NRM)에 가입한 성인 자녀를 둔 부모나 친척의 의뢰로 시행되었다. 이는 대상자를 강제로 납치, 감금하고 신체적·정신적 압박을 가하여 특정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과정으로[9][10], 퇴마 의식에 비유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법 집행기관이나 사법기관의 암묵적인 지지 하에 이루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국 내 통일교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잔혹 동화(atrocity story)들이 디프로그래밍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법적 성인의 종교의 자유와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논란을 낳았으며, 사이비 종교에 비판적인 이들조차 디프로그래밍의 법적·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제력 없이 대화를 통해 탈퇴를 유도하는 엑시트 카운슬링(exit counseling)과는 구별된다.

네바다주립대학의 제임스 리처드슨 교수는 디프로그래밍을 "사적이고 자구적인 과정이지만, 비주류 신흥종교운동 참여자를 강제로 집단에서 분리시켜 감금하고 탈퇴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과격한 재사회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법학 교수 더글라스 레이콕은 "물리적 납치와 격리, 신체적 제한, 논쟁거리가 될 만한 질문을 끊임없이 퍼부어서 개종자가 가지고 있는 신흥종교 신앙을 공격하며, 탈퇴에 동의할 때까지 계속 붙잡아둘 것이라고 위협"하는 방식이라고 기술했으며, 변호사 존 르물트는 디프로그래밍이 가하는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압박을 나치가 수감자에게 가한 고문 수준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신흥 종교 운동이 증가하자,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은 반컬트 운동의 일환으로 디프로그래밍을 대중화했다. 그는 "시민 자유 재단"(CFF, 이후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으로 변경)을 설립하고 디프로그래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CFF/CAN과 같은 반컬트 단체들은 디프로그래밍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뇌 이론을 적극 활용했으며, NRM 구성원들이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없는 세뇌 피해자라고 주장했다.[11][12][13] 테드 패트릭은 개인이 모집자의 눈과 손가락에서 투사된 뇌파에 의해 최면에 걸리고, 그 상태가 지속적인 주입, 전체주의적 환경, 자기 최면으로 유지된다는 이론을 펼쳤다.[13] 그러나 대부분의 학문적 연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NRM에 가입하고, 유지하거나, 떠나는 이유가 복잡하고, 그룹과 개인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 개인의 책임과 선택 능력이 지속적으로 존재함을 나타냈다.[13]

CFF와 CAN은 1970년대 후반부터 표면적으로는 디프로그래밍과 거리를 두려 했으나[14], 실제로는 디프로그래밍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지속했다. 이들 단체는 디프로그래머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에게 유료로 소개하는 활동을 했으며[40], 디프로그래밍에 필요한 통신, 운송, 숙소 등 지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9] 이러한 활동은 반컬트 단체들이 스스로를 "교육" 단체로 제시해야 할 필요성(예: CFF는 교육 신탁으로 세금 면제 지위를 받음)과 활동의 불확실한 법적 및 도덕적 지위 사이에서 모순을 드러냈으며, 결과적으로 디프로그래밍이 공개적으로는 부인되면서도 은밀하게 지속되는 결과를 낳았다.[16]

7. 1. 소개 및 리베이트 시스템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신흥 종교 운동(NRM)이 증가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라 칭한 테드 패트릭은 "시민 자유 재단"(CFF)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가족 구성원이 신흥 종교 운동과의 관계를 끊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디프로그래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패트릭이 사용한 방법에는 유괴, 신체적 구속, 피해자와 끊임없이 함께하며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구금하는 것, 음식 및 수면 박탈, 지속적인 언어적·정서적 학대, 그리고 피해자 신앙의 상징을 훼손하는 행위 등이 포함되었다.[9][10]

디프로그래머들은 신흥 종교 운동에 대해 세뇌 이론을 적용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11][12] 이 이론은 신흥 종교 운동의 구성원들이 진정한 영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부정하고, 대신 이들이 독립적인 의지를 억누르는 체계적인 정신 통제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었다고 주장했다.[13] 테드 패트릭의 세뇌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모집자의 눈과 손가락에서 투사된 뇌파에 의해 최면에 걸리며, 그 상태는 지속적인 주입, 전체주의적 환경, 자기 최면으로 유지된다고 보았다.[13] 그러나 대부분의 학문적 연구는 사람들이 신흥 종교 운동에 가입하고, 머무르거나 떠나는 이유가 복잡하며, 그룹과 개인에 따라 다르고, 일반적으로 개인의 책임과 선택 능력이 지속적으로 존재함을 시사했다.[13]

시민 자유 재단은 나중에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대와 80년대에 등장한 전국적인 반컬트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체가 되었다. 반컬트 운동은 활동을 합법화하기 위해 주 및 국가 차원에서 입법 조치를 추진했으나 매우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여러 정부 기관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이는 주로 세뇌/정신 통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결과로, 신흥 종교 운동과의 연관성을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적인 문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반컬트 운동가들의 더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에 유사 합법성을 부여했다.

CFF와 CAN은 디프로그래밍을 지지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공식적으로는 이 관행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14] 이러한 명백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 관행을 계속 지원했다. CFF와 CAN은 디프로그래머 목록을 유지하며 수천 명의 유료 고객을 활동가 회원에게 소개했다. 발생한 총 횟수는 알 수 없지만, 1980년 테드 패트릭은 전문 유괴범으로 2,000번 이상 고용되었다고 주장했다.[15] 그의 활동 기간 동안과 그 이후에 많은 다른 운영자들이 등장했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패트릭에게 훈련을 받았다.[13] 디프로그래밍 관행은 반컬트 이데올로기와 경제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가족 구성원을 빼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반컬트 조직이 스스로를 "교육" 단체로 제시해야 할 필요성(예를 들어, CFF는 교육 신탁으로 세금 면제 지위를 받았다)과 충돌했으며, 불확실한 법적 및 도덕적 지위와도 맞물렸다. 이로 인해 디프로그래밍은 공개적으로 부인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관행은 은밀하게 계속되었다.[16] 반컬트 단체들은 지속적인 디프로그래밍에 필요한 통신, 소개, 운송 및 숙소의 지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39]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는 사람들이 기부금이나 수수료의 형태로 "커미션"을 받는 대가로 디프로그래머에게 사람들을 소개하는 리베이트 시스템을 운영했다. (NARDEC)[40] 릭 앨런 로스, 스티븐 하산, 캐롤 잠발보와 같은 디프로그래머들이 CAN이 소개한 디프로그래머에 속했다.[39]

8. 역사적 사례

디프로그래밍은 일부 방법의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성격으로 인해 시작부터 많은 논란이 된 관행이다.[17][18][19] 특히 "디프로그래밍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패트릭과 그가 설립한 "시민 자유 재단"(CFF, 이후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으로 변경)은 신흥 종교 운동(NRM)에 참여한 가족 구성원을 되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유괴, 신체적 구속, 학대 등이 포함된 강압적인 디프로그래밍 서비스를 제공했다.[9][10] 이들은 NRM 구성원들이 세뇌당했으며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으나,[11][12][13] 이러한 주장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3] 디프로그래밍 과정에서의 폭력성은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과 가해자 자신의 인정으로 확인되었으며,[20][21] 테드 패트릭을 비롯한 다수의 디프로그래머들이 납치, 불법 감금 등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6][20] 아래는 디프로그래밍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들이다.

연도대상단체설명탈교사
1974캐시 크램프턴[41]러브 패밀리납치 및 탈교 과정이 미국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다. 성공적인 탈교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단체로 복귀했다. 탈교사는 납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테드 패트릭
1980수잔 워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35세 교사사형 폐지 연대, 아프리카 인민 연대 위원회, 반핵[30]부모의 사주를 받은 4명의 남성에 의해 길거리에서 납치되어 밴에 감금되었다.[30][42] 부모는 탈교를 위해 2.7만달러를 지불했으며, 탈교 과정에는 재갈 물리기, 침대에 수갑 채우기, 2주간 음식 및 물 제한, 반복적인 위협 등이 포함되었다.[43] 이러한 고초에도 불구하고 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으며, 부모를 고소하지는 않았다.[44]테드 패트릭
1980로베르타 맥엘피시, 26세의 투손 웨이트리스[7]웨슬리 토마스 가족사이비 종교에 가입했다고 생각한 친척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납치되었으나, 탈교 시도 전에 탈출했다.[45] 탈교사는 공모, 납치, 불법 감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년 징역 및 5천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46]테드 패트릭
1981스테파니 리에스밀러, 오하이오 거주 여성레즈비언 관계부모가 고용한 탈교사에게 납치되어 의사에 반해 감금되었으며, 반복적으로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부모와 탈교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으나, 논란 끝에 기각되었다.[30][47][48]
1981토마스 워드통일교35일 동안 감금되어 탈교사와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 워드의 민사 소송에서 미국 제4순회 항소 법원은 연방 민권법이 종교적 차별로부터 보호한다고 판결했으며, 이는 당시 흔했던 유사 사건에서의 "부모 면책" 원칙과 배치되는 판결이었다.[31]
1982클레르 샤토, 21세, 프랑스 디종통일교디종 시내에서 낮에 납치되어 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의료 심리 검사 결과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세뇌"의 징후는 없었다. 가족 구성원과 ADFI 소속 "전문 탈교사" 등 7명이 프랑스 형법 제341조 위반(납치) 혐의로 기소되었다.[49][50]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납치를 동반한 탈교 시도가 점차 줄어드는 계기가 되었다.[51]7명: ADFI 및 가족 구성원
1990캐런 레버, 33세의 컴퓨터 컨설팅 회사 이사라마 세미나시애틀 공항에서 3명의 남성에게 붙잡혀 밴으로 끌려갔다. 부모가 고용한 7명의 탈교사에 의해 8일 동안 24시간 감시 하에 사생활 없이 감금되었다. 탈교 시도가 실패하자 탈교사들은 레버를 공항 주차장의 차로 돌려보냈다. 시애틀 경찰은 납치 및 불법 감금 혐의로 기소할 근거가 있다고 조언했다.[52]조셉 심하르트
1990엘마 밀러, 아미쉬 여성아미쉬 내 진보적 종파남편이 아내를 자신과 기존 아미쉬 교회로 되돌리기 위해 탈교사들을 고용했다. 남편, 형제, 그리고 다른 두 명에 대해 공모 혐의로 형사 고발이 이루어졌으나, 검사의 요청으로 취하되었다.[53][54]테드 패트릭
1990년대제이슨 스콧라이프 타버내클 교회 (국제 연합 오순절 교회)탈교 시도는 실패했다. 스콧은 교회를 떠난 후 소송을 제기했다.[55] 배심원단은 스콧에게 손해 배상으로 87.5만달러, 징벌적 손해 배상으로 컬트 인식 네트워크(CAN)에 100만달러, 탈교사 릭 로스에게 25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로스에 대한 배상금은 나중에 5천달러 및 "전문 컨설턴트 및 개입 전문가"로서 200시간의 봉사로 합의됨).[55]릭 로스


9. 엑시트 카운슬링

엑시트 카운슬링(Exit Counseling)은 강제적인 디프로그래밍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상담 기법이다. 디프로그래밍이 개인을 강제로 감금하고 물리적 제약을 가하는 반면, 엑시트 카운슬링은 대상자가 언제든지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이다.[56] 이러한 비강제성은 상담사와 대상자 간의 라포 형성을 용이하게 하고, 대상자를 소외시키거나 분노, 공포를 느끼게 할 가능성을 낮춘다고 여겨진다.[56]

엑시트 카운슬러는 주로 "가족 개입" 과정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상담사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논리와 설득을 통해 대상자가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를 바꾸도록 유도한다.[56] 캐럴 지암발보(Carol Giambalvo)에 따르면, 엑시트 카운슬러는 과거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었던 경우가 많다.

디프로그래밍과 엑시트 카운슬링의 주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57]

구분디프로그래밍엑시트 카운슬링
강제성대상자 강제 감금 및 물리적 제약자발적 참여, 언제든 퇴장 가능
접근 방식강압적 재사회화라포 형성, 논리 및 설득
가족 참여가족을 과정에 대비시키는 수준가족과 직접 협력, 개입 요청자의 기여 기대
사전 조건특별한 조건 없음가족과 대상자 간 합리적/존중하는 의사소통 확립 필요
비용 (1993년 추정)최소 1만달러2천달러 ~ 4천달러 (조사 필요시 증가)
위험성높은 법적/심리적 위험 (가족 소원 등)상대적으로 낮은 법적/심리적 위험
신뢰도강압으로 인해 비판의 신뢰도 저하 가능성자발성 기반으로 비판의 신뢰도 확보 용이



엑시트 카운슬링은 강압에 의존하는 디프로그래밍(후견인 제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법이며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됨)과 달리 자발성에 기반하므로, 상담 과정에서 제시되는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한 비판이 대상자에게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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