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엘리슨
1. 개요
래리 엘리슨은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기업인으로, 오라클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이다. 유년 시절을 시카고에서 보냈고, 일리노이 대학교를 중퇴한 후 1970년대에 CIA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데이터베이스 개발에 참여했다. 1977년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를 설립하고, 1979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출시하며 오라클 시스템즈로 사명을 변경했다. 오라클 CEO로서 회사를 성장시켰으며, 애플 이사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며, 항공, 요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관련 논란과 사생활, 부동산 관련하여 많은 이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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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로렌스 조지프 엘리슨 |
|---|---|
| 출생일 | 1944년 8월 17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 시 |
| 국적 | 미국 |
| 직업 | 사업가 투자자 |
| 직함 | 오라클 공동 창업자 오라클 이사회 의장 오라클 최고 기술 책임자 |
| 학력 |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중퇴) 시카고 대학교 (중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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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 오라클 |
|---|---|
| 연봉 | 1달러 (2009년) |
| 순자산 | 625억 미국 달러 (20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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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Adda Quinn (1967년-1974년) Nancy Wheeler Jenkins (1977년-1978년) Barbara Boothe (1983년-1986년) Melanie Craft (2003년-2010년) Nikita Kahn (2020년) Jolin (Keren) Zhu (2023년) |
|---|---|
| 자녀 | 데이비드 엘리슨 메건 엘리슨 |
| 웹사이트 | 오라클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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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기업) -
테슬라 봇
테슬라가 개발 중인 인간형 로봇 테슬라 봇(옵티머스)은 테슬라 차량 기술을 활용,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며 미래에는 친구나 동반자 역할까지 가능한 로봇으로, 전문가들은 실제 성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
테슬라 (기업) -
솔라시티
솔라시티는 2006년 설립된 태양광 회사로, 일론 머스크가 회장으로 참여했으며, 2016년 테슬라에 인수되어 테슬라 에너지에 통합되었다. -
억만장자 -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설립하여 MS-DOS와 윈도우를 개발하고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현재는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자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자선가이다. -
억만장자 -
마크 저커버그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로서, 페이스북을 창업하여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되었지만,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논란에 직면해 왔으며, 사회 공헌 활동과 메타버스 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
자동차 수집가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이란의 샤로 재위하며 근대화를 시도했지만, 이슬람 성직자, 노동계급 등의 반발과 이란 혁명으로 인해 망명하여 사망했다. -
자동차 수집가 -
이건희
이건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아들로, 삼성 회장으로서 혁신을 주도하여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나, 비자금 사건과 상속세 문제 등 논란 또한 남겼다.
2. 유년 시절과 교육
1944년 8월 17일 뉴욕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9개월에 폐렴을 앓자, 어머니는 그를 시카고의 이모 부부에게 입양 보냈다. 48세가 될 때까지 생모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엘리슨은 시카고의 중산층 지역이었던 사우스 쇼어에서 성장했다. 양어머니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웠지만, 양아버지는 엄격하고 무관심하여 종종 거리를 두었다고 회고한다. 양아버지는 엘리스 섬을 기념하여 엘리슨이라는 성을 선택했다. 그는 정부 직원으로 일하며 부동산으로 소액의 재산을 모았지만, 대공황 때 모두 잃었다.
사우스 쇼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 의예과 학생으로 입학하여 올해의 과학 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2학년 때 중퇴했다. 1966년 여름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며 컴퓨터 설계를 처음 접했다.
2.1.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엘리슨은 개혁파 유대교 가정에서 양부모에게 자랐으며, 정기적으로 시나고그에 참석했지만 종교적인 회의론자였다. 13세에 바르미츠바를 거부했다. 엘리슨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대교의 특정 교리는 제가 따르는 교리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들이 실제라고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엘리슨은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이 종교적 감정보다는 기술 부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혁신 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3. 초기 경력과 오라클
1970년대에 래리 엘리슨은 암달(Amdahl Corporation)에서 잠시 일한 후 암펙스(Ampex Corporation)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암펙스에서 엘리슨은 CIA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코드명은 "오라클"이었다.
엘리슨은 에드거 F. 코드(Edgar F. Codd)가 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논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1977년, 그는 두 명의 파트너와 함께 2,000달러(그중 1,200달러는 그의 돈)를 투자하여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DL)를 설립했다. 1979년, 회사는 관계형 소프트웨어(RSI)로 이름을 바꾸었다.
3.1. 오라클의 성장과 위기
1979년, 래리 엘리슨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 '관계형 소프트웨어(RSI)'를 통해 오라클 데이터베이스(Oracle Database)의 첫 번째 상용 버전인 '오라클 버전 2'를 출시했다. '오라클 버전 1'은 존재하지 않았다. 1983년, 회사는 주력 제품의 이름을 따서 공식적으로 '오라클 시스템즈(Oracle Systems Corporation)'로 사명을 변경했다.
1990년, 오라클은 '선불' 마케팅 전략의 부작용으로 인해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다. 영업 담당자들이 미래의 판매액을 현재 분기에 미리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매출을 부풀렸고, 이로 인해 수익을 과대 계상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오라클은 수익을 두 번이나 수정해야 했고, 집단 소송까지 겪게 되었다. 엘리슨은 훗날 이 사건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사업적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당시 유닉스(Unix) 및 윈도우즈 운영 체제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시장에서는 사이베이스(Sybase), 오라클, 잉그레스, 인포믹스 등이 경쟁하고 있었다. 오라클은 한때 사이베이스에 뒤처지기도 했으나, 1994년에는 인포믹스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인포믹스와의 치열한 경쟁은 3년 동안 실리콘밸리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인포믹스는 심각한 매출 감소와 수익 수정 발표를 겪었고, 결국 CEO 필 화이트는 투옥되었으며, 2001년 IBM에 인수되었다.
인포믹스와 사이베이스의 몰락 이후, 오라클은 1990년대 후반까지 데이터베이스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2000년대 이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SQL 서버와 IBM의 DB2가 오라클의 주요 경쟁자로 부상했다.
3.2.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
Larry Ellison영어은 스티브 잡스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후 애플 이사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엘리슨은 잡스의 결혼식에서 사진사를 맡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4. 오라클 CEO 이후 활동
1990년대 후반, 오라클은 마이크로소프트 SQL 서버와 IBM DB2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베이스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에 복귀한 후, 엘리슨은 애플 이사회 이사로 재직하다 2002년에 사임했다.
2005년, 엘리슨은 내부자 거래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오라클 명의로 1억 달러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2006년에는 포브스(Forbes)에서 캘리포니아 주 최고 부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9년, 오라클은 휴렛패커드(HP)와의 경쟁 끝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인수했다. 2010년 유럽 연합은 이 인수를 승인했으며, 이 인수로 오라클은 썬이 인수한 오픈 소스 데이터베이스 MySQL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2010년, 엘리슨은 마크 허드 휴렛패커드(HP) CEO 해고에 대해 "최악의 인사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오라클은 마크 허드를 사프라 캐츠와 함께 공동 회장으로 영입했다.
2010년대에도 엘리슨은 포브스 억만장자 목록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에는 9460만 달러를 벌었다. 2014년, 엘리슨은 오라클 CEO 자리에서 물러나 마크 허드에게 자리를 넘겼고, 자신은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회장직을 맡았다.
2016년, 오라클은 넷스위트를 93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엘리슨은 이 인수로 개인적으로 35억 달러를 벌었다. 2018년, 엘리슨은 테슬라 이사회에 합류했다가 2022년에 이사회를 떠났다.
2022년 기준, 엘리슨은 오라클 주식의 42.9%를 소유하고 있으며, 2023년 6월 기준 테슬라 주식의 1.4%를 소유하고 있다. 엘리슨이 공동 설립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프로젝트 로닌은 2024년에 문을 닫았다.
4.1. 정치적 활동
엘리슨은 국가안보국(NSA)의 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을 비판하며, "스노든은 NSA의 데이터 수집으로 '잘못된 피해'를 입은 단 한 사람도 지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2년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정치인 모두에게 기부했으며, 2014년 말에는 자택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랜드 폴을 위한 모금 행사를 주최했다.
엘리슨은 마르코 루비오의 2016년 대통령 선거 입후보를 지지하는 초당파 정치행동위원회(super PAC)인 보수 해결책 PAC의 최고 기부자 중 한 명이었다. 2016년 2월 기준으로 엘리슨은 PAC에 총 4를 기부했다. 2020년에는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에 있는 자신의 부동산에서 모금 행사를 열도록 허용했지만, 엘리슨은 참석하지 않았다. 2022년 1월, 엘리슨은 팀 스콧 상원의원(R-SC)과 관련된 기회 문제 펀드(Opportunity Matters Fund) 슈퍼 PAC에 15를 기부했는데, 이는 2022년 미국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재정적 기여 중 하나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2022년 5월, 엘리슨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 며칠 만에 투표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전략에 초점을 맞춘 전화 회의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에는 폭스 뉴스 진행자 션 해니티,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제이 세큘로, 그리고 투표 진실(True the Vote)의 변호사 제임스 보프 등이 참석했다.
5. 자선 활동 및 기타 사업
엘리슨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선 활동을 하고 있다. 1992년 고속 자전거 사고로 팔꿈치를 다친 후,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에서 치료를 받고 로렌스 J. 엘리슨 근골격계 연구 센터 설립 기금으로 5를 기부했다. 1998년에는 새크라멘토 캠퍼스의 UC 데이비스 의료센터에 로렌스 J. 엘리슨 외래 환자 진료 센터가 문을 열었다.
2001년 9·11 테러에 대응하여, 엘리슨은 연방 정부에 국가 신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며 신분증을 발급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기증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이는 논란이 되었다.
2016년에는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암 연구 센터인 USC 로렌스 J. 엘리슨 변혁 의학 연구소 설립을 위해 200를 기부했다. 이 연구소는 엘리슨 공과대학(Ellison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2023년 옥스퍼드에 추가 캠퍼스가 설립되어 매년 2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엘리슨은 세러노스(Theranos)의 초기 투자자였으며,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서명한 억만장자 중 한 명이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방위군 친구들(Friends of the Israel Defense Forces)에 기부하는 등 다양한 자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1. 항공, 영화, 요트 등
엘리슨은 자격을 갖춘 조종사로, 여러 대의 항공기를 소유하고 있다. 샌호세 시와 심야 이착륙 제한을 위반한 문제로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다. 이는 샌호세 미네타 국제공항에서 약 34019.40kg가 넘는 항공기 때문이었다. 2000년 1월, 엘리슨은 자신의 걸프스트림 V 항공기가 "제조사로부터 두 가지 중량으로 비행이 인증"되었으며, "조종사는 샌호세에 착륙할 때 항공기 무게를 약 34019.40kg 이하로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2001년 6월, 미국 지방 법원 판사 제러미 포겔은 엘리슨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엘리슨은 이탈리아 훈련기 SIAI-Marchetti S.211과 퇴역한 소련 전투기 MiG-29 등 군용기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미국 정부는 MiG-29의 수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엘리슨은 2010년 영화 아이언맨 2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엘리슨은 오라클 팀 USA를 통해 요트 경주에 참가한다. 2003 루이뷔통컵 참가를 위해 BMW 오라클 레이싱을 설립했다. 2010년에는 제33회 아메리카스컵에서 엘리슨의 요트 USA 17호가 승리하여,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아메리카스컵이 미국으로 돌아왔다. 엘리슨은 두 번째 레이스에서 승무원으로 활동했다. 2013년에는 제34회 아메리카스컵에서 에미레이트 팀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했다. 오라클 팀은 1-8의 열세를 극복하고 9-8로 승리하여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전극 중 하나"로 불린다.
2019년, 엘리슨은 러셀 커츠와 함께 국제 경주 시리즈인 세일GP를 시작했다.
6. 논란
엘리슨은 내부자 거래 혐의와 과도한 연봉 문제로 논란이 되었다. 2005년, 엘리슨은 4년 된 내부자 거래 소송을 오라클 명의로 100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엘리슨의 연봉은 다음과 같았다.
| 연도 | 연봉 | 보너스 | 기타 보상 | 총 보상 |
|---|---|---|---|---|
| 2005년 | 975000USD | 6500000USD | 955100USD | - |
| 2007년 | 1000000USD | 8369000USD | - | 61185024USD |
| 2008년 | 1000000USD | 10779000USD | - | 84598700USD |
| 2009년 | - | - | - | 56800000USD |
2006년 포브스(Forbes)는 그를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2009년 8월 22일, 엘리슨은 2010년 회계연도 기본급을 1000000USD에서 1USD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1994년, 인포믹스(Informix)는 시베이스(Sybase)를 제치고 오라클의 주요 경쟁사가 되었다. CEO 필 화이트와 엘리슨 간의 경쟁은 3년 동안 실리콘밸리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97년 인포믹스는 매출 감소와 수익 수정 발표를 했고, 필 화이트는 투옥되었다. IBM은 2001년 인포믹스를 인수했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에 복귀한 후 엘리슨은 애플 이사회 이사가 되었으나, 2002년 사임했다.
6.1. 이스라엘 관련 논란
2019년에 래리 엘리슨이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이스라엘 평화 운동가, 고고학자들에게 비판받는 불법 합병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같은 해, 엘리슨 등 이스라엘 지지자들을 상대로 10억 달러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소송은 엘리슨 등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인종적으로 정화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르며, 집단 학살에 자금을 지원하는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긴밀한 관계인 엘리슨은 이스라엘 거물 아르논 밀찬에게 변호사를 해고하도록 로비하여 네타냐후가 그의 부패 사건에 연루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21년에는 엘리슨이 네타냐후에게 오라클 직책을 제안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7. 사생활
엘리슨은 1944년 8월 17일 뉴욕시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미국 육군 항공대 조종사였다. 그는 9개월 때 폐렴을 앓았고, 이후 이모와 삼촌에게 입양되어 시카고에서 성장했다.
엘리슨은 개혁 유대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종교적인 교리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13세에 바르미츠바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은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이스라엘인들의 혁신 정신 때문이라고 밝혔다.
엘리슨은 네 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967년 애다 퀸(Adda Quinn)과 결혼, 1974년 이혼.
* 1976년 낸시 휠러 젠킨스(Nancy Wheeler Jenkins)와 결혼, 1978년 이혼.
* 1983년 바버라 부스(Barbara Boothe)와 결혼, 1986년 이혼. 슬하에 데이비드와 메건 두 자녀를 두었으며, 이들은 영화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 2003년 로맨스 소설가 멜라니 크래프트(Melanie Craft)와 결혼, 스티브 잡스가 결혼식 사진사였다. 2010년 이혼.
7.1. 부동산
엘리슨은 부동산 업계에서 대저택 구매광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캘리포니아, 하와이 등지에 수많은 고급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2004년에는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Woodside)에 200를 들여 가쓰라 이궁에서 영감을 얻은 일본식 정원과 건축 양식을 본뜬 저택을 건설했다. 이 저택은 인공 호수와 광범위한 내진 보강 공사가 특징이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말리부(Malibu)에 180가 넘는 가치의 부동산 12채 이상을 매입했다. 특히 말리부의 카본 비치(Carbon Beach)에 있는 5개의 인접 부지를 65에 구입한 것은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주택 거래였다. 샌프란시스코 패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에 있는 그의 집에는 1가 투입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데, 배수된 수영장 한쪽 끝에 록 콘서트 규모의 비디오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텅 빈 수영장 구멍을 거대한 서브우퍼로 활용한다.
2010년에는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Newport)에 있는 아스터 가문(Astor family)의 여름 별장이었던 아스터 가문의 비치우드 저택을 10.5에 매입했다.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Rancho Mirage)에 있는 249에이커(약 100.7ha) 규모의 포커파인 크릭 에스테이트(Porcupine Creek Estate)와 프라이빗 골프 코스를 42.9에 매입했다.
2012년에는 하와이 라나이 섬의 98%를 인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엘리슨은 이 섬을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로 만들어 농작물을 일본 등으로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20년 12월, 그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자신이 98%를 소유한 라나이(Lānaʻi)로 이주했다.
2022년에는 플로리다주 마날라판(Manalapan)에 있는 22에이커(약 8.9ha) 규모의 부동산을 173에 매입했는데, 이는 플로리다 역사상 가장 비싼 주택 매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