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데니스
1. 개요
론 데니스는 영국 출신의 사업가로, 특히 포뮬러 1(F1)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6세에 정비공으로 경력을 시작하여 쿠퍼, 브라밤 팀에서 일했으며, 1970년대에는 론델 레이싱 팀을 설립하여 F2에 참가했다. 1980년에는 자신의 팀인 프로젝트 4를 맥라렌 F1 팀과 합병하여 맥라렌 인터내셔널을 만들고 팀 감독을 맡아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데니스는 맥라렌을 여러 차례 드라이버 및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우승시키며, 혁신적인 기술 도입과 유능한 드라이버 영입으로 팀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2000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2016년 맥라렌 테크놀로지 그룹 회장 및 CEO에서 물러났고, 2017년에는 맥라렌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데니스는 F1 업계에서 '론스피크'라는 독특한 언어 스타일로도 알려져 있다.
| 존칭 | 경 |
|---|---|
| 이름 | 론 데니스 |
| 본명 | 로널드 데니스 |
| 출생일 | 1947년 6월 1일 |
| 출생지 | 워킹, 서리 주, 잉글랜드 |
| 정당 | 보수당 |
| 학력 | 길포드 기술 대학 |
| 직업 | 사업가 모터스포츠 임원 |
| 자녀 | 3명 |
| 고용주 | 유럽 포뮬러 2 론델 (1971–1973) 프로젝트 포 (1976–1980) 포뮬러 원 쿠퍼 (–) 브라밤 (–) 맥라렌 (–) |
|---|---|
| 직책 | 팀 대표 |
| 알려진 업적 | 맥라렌 그룹 창립자 겸 CEO (1985–2009, 2014–2017) TAG Heuer 공동 소유주 (1985–1999) Absolute Taste 창립자 (1998–현재) 맥라렌 오토모티브 창립자 겸 회장 (2010–2017) 국방부 산하 공동 의장 (2017–2019) |
| 직책 | 제조/첨단 엔지니어링 분야 영국 비즈니스 홍보대사 |
|---|---|
| 임기 시작 | 2010년 |
| 임기 종료 | 2019년 1월 3일 |
| 동료 | 리처드 올버 로빈 사우스웰 |
| 총리 |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
| 이전 | 사무실 설립 |
| 후임 | 사무실 폐지 |
| 임기 시작 | 2023년 4월 22일 |
|---|---|
| 임기 종료 | 2024년 4월 21일 |
| 동료 | 앨리슨 울프 팀 피크 멜리사 디 도나토 |
| 총리 | 리시 수낙 |
| 이전 | 사무실 설립 |
-
포뮬러 원 관계자 -
디트리히 마테시츠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을 공동 창업하여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으며, 스포츠 분야 투자에도 적극적인 오스트리아의 기업가이다. -
포뮬러 원 관계자 -
크리스천 호너
크리스천 호너는 영국의 모터스포츠 경영인이자 전 레이싱 드라이버로, 드라이버 은퇴 후 아덴 인터내셔널 팀을 설립, 2005년부터 레드불 레이싱 팀 대표를 맡아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6회, 드라이버 챔피언십 7회 우승을 이끌었고, 대영 제국 훈장을 수훈했다. -
영국의 회사 설립자 -
지미 웨일스
지미 웨일스는 1966년생으로 위키피디아의 공동 설립자이며, 위키미디어 재단을 설립하여 위키백과를 지원하고 위키아를 설립하는 등 인터넷 기업가로 활동했다. -
영국의 회사 설립자 -
리처드 브랜슨
영국의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은 버진 그룹의 설립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사업 모델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동시에 여러 논란에도 직면한 인물이다. -
잉글랜드의 기업인 -
토머스 페인
토머스 페인은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국계 미국인 혁명가, 작가, 정치 사상가로서, 그의 팸플릿 『상식』은 미국 독립 여론 형성에 기여했고, 『미국의 위기』 시리즈는 미국인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으며,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인간의 권리』를 통해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고 『이성의 시대』를 통해 종교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제시했으나, 그의 급진적 사상으로 인해 말년은 고독하게 보냈다. -
잉글랜드의 기업인 -
리처드 브랜슨
영국의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은 버진 그룹의 설립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사업 모델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동시에 여러 논란에도 직면한 인물이다.
2.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
서리주 워킹 (서리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론 데니스는 16세에 학교를 떠나 웨이브리지(쓰이지 않는 브룩랜즈 서킷 근처)에 있는 톰슨 & 테일러 개러지에서 도제 미케닉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965년, 18세에 쿠퍼 포뮬러 1 팀의 미케닉이 되어 요헨 린트의 차량을 담당했다. 3년 후 린트를 따라 브라밤 팀으로 이적했다. 1969년 린트가 팀 로터스로 이적했을 때, 데니스는 브라밤에 남아 잭 브라밤 경을 위해 일했다. 데니스는 F1 차량 유지에 철두철미한 기준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대부분의 미케닉들이 전통적인 작업장 조건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는 한 점 티끌도 없는 깨끗함을 주장했으며, 레이스가 끝난 뒤마다 그가 맡은 차량은 보통 작업 환경보다는 수술실에 가까운 조건에서 분해되었다.
잭 브라밤이 1971년에 은퇴했을 때, 데니스와 그의 동료 미케닉 닐 트런들은 자신들의 팀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1972년, 그의 고향인 워킹 (서리주)에 론델 레이싱을 설립했다.
3. 론델 레이싱 설립
잭 브라밤이 1971년에 은퇴하자 데니스와 그의 동료 정비사 닐 트런들은 자신들만의 팀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1971년, 데니스의 고향인 워킹에 론델 레이싱이 설립되었다. 론델 레이싱은 1970년대 중반에 포뮬러 2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론델은 단순한 고객 팀 이상을 꿈꿨고, 데니스는 모툴을 추가 후원자로 찾아 론델 F1 차량 자금을 지원하도록 했다. 1974년에는 레이 제솝이 설계한 F1 차량이 계획되었지만, 에너지 위기가 모툴의 지원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데니스는 F1 벤처를 지원할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고, 트런들은 제솝이 설계한 차량으로 계속 활동하는 동안 블라소풀로스와 그로브가 팀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토큰 레이싱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데니스는 재정비하여 말보로의 지원을 받는 F2 팀을 결성했다. 1975년 데니스는 프로젝트 쓰리 팀을 설립했고, 그의 차량은 다시 한번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1976년 데니스는 프로젝트 포 레이싱을 설립했다. 이 팀은 포뮬러 2와 포뮬러 3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필립 모리스 (말보로)의 지원을 받아 1979년과 1980년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프로젝트 포는 또한 프로카 BMW M1 레이싱카의 제작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4. 맥라렌 합류와 F1 챔피언 등극
1980년, 데니스의 프로젝트 4는 맥라렌 포뮬러 1 팀과 합병(정확히는 역인수)되어 맥라렌 인터내셔널(McLaren International)이 되었다. 데니스는 팀 감독으로 취임하여 팀을 재건했다. 디자이너 존 바나드(John Barnard영어)를 고용하여 혁신적인 탄소 섬유 복합소재 섀시 MP4/1을 만들었다. 만수르 오제( Mansour Ojjeh프랑스어)의 TAG 그룹과 협력하여 포르쉐에 터보 차저 엔진 개발을 의뢰했다. 니키 라우다를 설득하여 F1에 복귀시켰고, 알랭 프로스트를 영입했다. 1984년, 맥라렌은 16번의 레이스 중 12번 우승하며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모두 차지했다. 라우다는 단 0.5 포인트 차이로 프로스트를 이기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1985년, 프로스트가 드라이버 타이틀을 획득하고 맥라렌은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방어했다. 1986년, 맥라렌은 윌리엄스에게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내줬지만, 프로스트는 드라이버 타이틀을 획득했다.
5. 혼다와의 협력과 갈등
혼다(TAG)와의 협력은 1987년 TAG 엔진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시작되었다. 1988년, 맥라렌은 혼다 엔진을 사용하고 알랭 프로스트와 아이르통 세나를 드라이버로 기용하여 16번의 경기 중 15번을 우승하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프로스트와 세나, 두 명의 최고 드라이버를 동시에 기용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데니스는 이 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 프로스트 대신 게르하르트 베르거가 영입되었고, 맥라렌은 1991년까지 4년 연속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 더블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0년과 1991년에는 세나가 연속으로 드라이버 타이틀을 획득하며 맥라렌의 F1 지배력이 계속되었다.
6. 1990년대의 침체와 회복
1990년대 초, 미카 하키넨을 테스트 드라이버로 채용했지만, 1992년에 윌리엄스가 다시 우위를 점하면서 맥라렌은 7년 동안 타이틀 우승을 하지 못했다. 1993년에는 혼다 엔진을 잃게 되었고, 데니스는 포드, 그리고 베네통과 엔진 공급을 놓고 경쟁해야 했다. 1994년에는 푸조와 파트너십을 맺었지만 실패했고, 1995년에 메르세데스와 엔진 공급 계약을 체결하여 이 관계를 이어갔다.
1990년대 중반, 데니스는 1996년에 에이드리언 뉴이를 기술 이사로 영입했다. 1998년, 미카 하키넨과 함께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모두 차지했다. 1999년, 하키넨은 두 번째 드라이버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컨스트럭터 타이틀은 페라리에게 돌아갔다.
7. 2000년대 이후
2000년에 데니스는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 2001년, 팀 리더였던 미카 하키넨이 은퇴하자, 데니스는 키미 라이코넨과 계약했다.
2005년, 맥라렌은 다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르노 F1 팀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설상가상으로, 에이드리언 뉴이가 팀을 떠나 2006년부터 레드불 레이싱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2005년 12월, 맥라렌은 보다폰과의 타이틀 스폰서십 계약과 2007년부터 페르난도 알론소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맥라렌은 2006년 포뮬러 원 시즌에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2007년, 맥라렌은 페르난도 알론소와 루이스 해밀턴을 영입하여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팀은 알론소와 해밀턴 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데니스는 두 선수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고 주장했지만, 2007년 중국 그랑프리 이후 "우리는 키미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페르난도와 경쟁하고 있었다"고 말해 논란이 되었다. 또한, 이 시즌은 팀이 페라리 지적 재산 절도 및 사용에 연루된 2007년 포뮬러 원 스파이 스캔들로 인해 FIA로부터 1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고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포인트를 박탈당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2009년, 데니스는 맥라렌 CEO 자리에서 물러나 마틴 휘트마시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2014년, 데니스는 맥라렌 그룹 CEO로 복귀하여 F1 팀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2016년, 데니스는 주주들과의 갈등으로 맥라렌 테크놀로지 그룹 회장 겸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7년, 데니스는 맥라렌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8. "론스피크(Ronspeak)"
"론스피크(Ronspeak영어)"는 맥라렌 팀 보스였던 론 데니스가 사용하던 화법을 가리키는 신조어이다. F1 패독에서는 쓸데없이 복잡하고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상징하는 구절이 되었다. 데니스는 F1 저널리스트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 과도하게 비즈니스적이며 신중한 대답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용어는 잡지 《F1 레이싱》에서 자주 쓰였다.
F1 레이싱의 전 편집장인 매트 비숍은 이 용어가 데니스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론스피크"가 결점이 아니라 오히려 유익하고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데니스는 페르난도 알론소가 맥라렌 팀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설명하면서, 그의 경험과 능력이 "F1 팀이 [시간 낭비적인] 기술적 막다른 골목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고, 그 결과 자동차 개발의 진전이 더 선형적으로 이루어지게 했다"라고 말했다. 비숍은 이를 론스피크의 전형적인 예시로 묘사하며, "논리적이고, 유익하며, 통찰력 있다. [하지만] 신중하기도 하다... 알론소의 뛰어난 종합적인 능력과 그의 전임자들의 능력을 비교하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일본 잡지 등에서는 "론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9. 기타 사업 및 활동
1998년, 데니스는 앱솔루트 테이스트(Absolute Taste)를 공동 설립했다. 2016년 12월, 원 이벤트 매니지먼트에 인수되었다. 2019년까지 데니스는 영국 정부의 사업 홍보대사로 국제통상부에서 일했다. 또한, 중국 투자 그룹인 민셩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 고문을 맡았다.
만수르 오제와 TAG 그룹은 고급 시계 제조업체인 호이어(Heuer)를 인수하여 현재의 태그 호이어를 설립했다. 오제는 사업의 상당 부분을 데니스에게 매각했고, 두 사업 파트너는 1999년에 이 시계 제조업체를 LVMH에 매각했다.
2007년, 데니스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열망을 달성하고, 성공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롤 모델이 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선 단체 드림체이싱을 설립했다. 그의 자선 단체의 첫 번째 사업은 에티오피아 가족을 위한 후원 프로그램으로, Fida International 자선 단체를 지원하여 40명 이상의 가족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일부에게 교육 비용을 지불했다.
1989년 맥라렌 카를 설립하고, 1993년 디자이너 고든 머레이가 제작한 맥라렌 F1 판매를 시작하는 등 자동차 관련 타 업종에도 적극 진출했다.
또한, "파라곤"이라고 불리는 초호화 본사 사옥(맥라렌 테크놀로지 센터: MTC)을 완공했다. 2000년 대영 제국 훈장 코맨더(CBE)를 수훈했다.
10. 서훈
* 2000년 모터스포츠 공헌으로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
* 2024년 산업 및 자선 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