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상 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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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롭상 람파는 티베트 라마승이라고 주장하며 《제3의 눈》을 비롯한 여러 책을 저술한 인물이다. 1955년 런던에서 자신의 성장 과정을 출판하려 했으며, 일본군과 중국 공산당군에게 박해받아 영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했다. 《제3의 눈》은 티베트의 이국적인 풍습을 묘사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이후 람파가 티베트에 가본 적 없는 영국인 배관공 시릴 헨리 호스킨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람파는 자신의 몸에 롭상 람파의 영혼이 빙의되었다고 주장하며, 1960년대 캐나다로 이주하여 1981년 사망했다. 그의 저작은 티베트 불교, 오컬트 등을 다루며, 일부 독자에게는 매력적이었으나, 학계에서는 허구적이고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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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상 람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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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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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시릴 헨리 호스킨 |
다른 이름 | 튭스데이 롭상 람파 칼 쿠온 수오 |
출생일 | 1910년 4월 8일 |
출생지 | 플림프턴, 데번, 영국 |
사망일 | 1981년 1월 25일 |
사망지 | 캘거리, 앨버타 주, 캐나다 |
국적 | 영국인 캐나다인 |
직업 | 작가 |
활동 기간 | 1956년–1980년 |
배우자 | 산 라압 람파 |
작품 | |
대표작 | 제3의 눈 |
2. 생애와 《제3의 눈》 출판
1955년 여름, 스스로를 롭상 람파라고 밝힌 삭발한 인물이 런던의 세커 앤 워버그 출판사에 나타나 자신의 경험을 담은 원고의 출판을 의뢰했다. 그는 자신이 티베트의 고위 라마이며, 일본군과 중국 공산당 군대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했다.[20]
람파가 가져온 원고는 그가 어린 시절 티베트의 라마교 사원에서 겪었다고 하는 신비로운 경험들을 담고 있었다. 특히 이마에 구멍을 뚫어 영적인 능력을 얻는다는 '제3의 눈' 수술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고는 티베트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되었으며, 람파는 티베트어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등[20] 그의 주장의 진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원고는 세커 앤 워버그 출판사와 계약이 성사되어 선금 800GBP를 받고 출판 준비에 들어갔다. 출판사 측은 원고의 진위 여부에 대해 일부 학자들의 의문을 인지하고 있었으나[2], 람파 이야기의 매력에 주목하여 출판을 결정했다.
1956년 11월, 《제3의 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티베트 라마승의 성장기"라는 부제와 함께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21] 당시 《타임스 문학 부록》은 이 책을 "예술 작품에 가깝다"고 평가하기도 했다.[2] 이 책의 성공적인 출판은 람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그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1. 초기 생애와 주장
1955년 여름, 롭상 람파라고 자칭하는 삭발한 인물이 런던의 세커 앤 워버그 출판사에 나타났다. 그는 충칭 대학에서 발급받은 영문 소개장을 제시하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담은 원고의 출판을 의뢰했다. 람파는 스스로를 티베트의 고위 라마라고 소개하며, 일본군과 중국 공산당 군대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밝힌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시기 | 내용 |
---|---|
1938년 | 중화민국 공군 군의관으로 중일 전쟁에 참전 중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 |
1944년 | 미얀마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히로시마의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았으나, 원자폭탄 투하의 혼란을 틈타 탈출. |
이후 | 어선을 훔쳐 한반도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대륙 횡단을 시도했으나, 모스크바에서 소련 군인에게 체포됨. |
이후 | 감금, 투옥, 국외 추방을 당한 뒤 폴란드, 독일, 프랑스, 미국 등지를 방랑. |
1951년 | 영국으로 망명. |
람파가 가져온 원고에는 당시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티베트의 신비로운 문화와 관습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커다란 연을 타고 하늘을 나는 법'이나 '이마에 구멍을 뚫는 수술(개두 수술)을 받고 은빛 나무 조각을 삽입하여 신비로운 '''제3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고는 영국의 서민들이 사용하는 속어가 섞인 영어로 작성되었으며, 편집자가 티베트어에 대해 질문했을 때 람파는 전혀 답변하지 못했다.[20]
여러 주요 영국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후, 원고는 세커 앤 워버그에 의해 선금 800GBP에 받아들여졌다. 당시 출판사 대표 프레드릭 워버그는 "칼 쿠온 수오 박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람파를 만났고, 그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워버그는 원고를 여러 학자에게 보내 검토를 의뢰했고, 일부는 내용의 진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제3의 눈》이라는 제목과 "티베트 라마승이 성장 과정을 말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1956년 11월에 출판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21] 《타임스 문학 부록》은 이 책을 "예술 작품에 가깝다"고 평가하기도 했다.[2]
《제3의 눈》은 람파가 일곱 살 때 초크포리의 차크포리 라마교 사원[1]에 보내져 성장하며 겪은 경험담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책의 제목은 람파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두개골 천공술과 유사한 수술에서 유래했다. 이 수술은 이마에 작은 구멍을 뚫어 제3의 눈을 각성시키고 투시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책에는 수술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도구가 뼈를 뚫고 들어갔다. 불과 약초로 처리된 매우 단단하고 깨끗한 나무 조각이 머리의 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코의 콧날에서 톡 쏘는 듯한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이 가라앉자 나는 식별할 수 없는 미묘한 향기를 인식하게 되었다. 갑자기 눈부신 섬광이 일었다. 잠시 동안 고통이 극심했다. 고통이 줄어들고 사라지면서 색깔의 소용돌이로 바뀌었다. 튀어나온 나무 조각이 움직이지 않도록 제자리에 묶는 동안, 라마 밍야르 돈둡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너는 우리 중 하나가 되었다, 롭상. 남은 인생 동안 사람들을 그들이 가장하는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람파는 설인을 목격하고, 자신의 이전 환생의 미라와 조우하는 경험을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대 역사에서 지구가 다른 행성과 충돌하여 티베트가 현재의 산악 지형이 되었다는 비밀을 배우는 입문 의식에 참여했다고도 서술했다.
2. 2. 《제3의 눈》 출판과 반응
1955년 여름, 롭상 람파라고 자칭하는 인물이 런던의 세커 앤 워버그 출판사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티베트의 고위 라마 승이며 일본군과 중국 공산당 군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하며[20], 자신의 경험을 담은 원고의 출판을 의뢰했다. 이 원고는 람파가 일곱 살 때 차크포리 라마교 사원에 보내져 겪은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1]원고에는 당시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티베트의 모습, 예를 들어 '커다란 연을 타고 하늘을 나는 법'이나 이마에 구멍을 뚫어 제3의 눈을 여는 수술 등이 묘사되어 있었다. 책의 제목 《제3의 눈》 역시 이 수술에서 유래했는데, 람파는 이 수술을 통해 투시력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책에는 수술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도구가 뼈를 뚫고 들어갔다. 불과 약초로 처리된 매우 단단하고 깨끗한 나무 조각이 머리의 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코의 콧날에서 톡 쏘는 듯한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이 가라앉자 나는 식별할 수 없는 미묘한 향기를 인식하게 되었다. 갑자기 눈부신 섬광이 일었다. 잠시 동안 고통이 극심했다. 고통이 줄어들고 사라지면서 색깔의 소용돌이로 바뀌었다. 튀어나온 나무 조각이 움직이지 않도록 제자리에 묶는 동안, 라마 밍야르 돈둡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너는 우리 중 하나가 되었다, 롭상. 남은 인생 동안 사람들을 그들이 가장하는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람파는 설인을 보고, 결국 자신의 이전 환생의 미라를 만나게 된다. 그는 또한 초기 역사에서 지구가 또 다른 행성과 충돌하여 티베트가 오늘날의 산악 왕국이 되었다는 것을 배우는 입문 의식에 참여한다.
그러나 원고는 티베트어가 아닌 영어, 그것도 속어가 섞인 형태로 쓰여 있었고, 람파는 편집자의 티베트어 질문에 전혀 답하지 못했다.[20] 이 원고는 여러 주요 영국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세커 앤 워버그의 프레드릭 워버그는 람파(당시 "칼 쿠온 수오 박사"라는 이름으로 나타남)의 인물에 매료되어 800GBP의 선금을 주고 출판 계약을 맺었다. 워버그는 원고의 진위 확인을 위해 여러 학자에게 검토를 의뢰했고, 일부는 내용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2]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제3의 눈》은 "티베트 라마승의 성장기"라는 부제와 함께 1956년 11월 출판되었고, 곧바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21] 당시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으며,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 비평지인 《타임스 문학 부록》은 이 책을 두고 "거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2]
3. 정체 폭로와 논란
『제3의 눈』 출간 직후, 전문적인 티베트학 연구가들 사이에서 책 내용의 진위와 저자 경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사립탐정 Clifford Burgess|클리포드 버지스eng의 조사를 통해 람파의 정체는 영국 플리머스 근교 출신의 배관공 아들 Cyril Henry Hoskin|시릴 헨리 호스킨eng이며, 그는 티베트 방문은커녕 영국 밖을 나가본 적도 없고 티베트어도 구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3][4][17][22] 또한 호스킨은 람파라는 이름을 쓰기 전인 1948년에 'Carl Kuon Suo|칼 쿠안 수오eng'라는 이름으로 법적 개명을 하고 심령 현상 관련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5][17][22]
이러한 사실이 데일리 메일 등 언론을 통해 폭로되자[4], 호스킨은 자신이 시릴 호스킨으로 태어난 것은 맞지만, 과거 서리주 템스 디턴에서 나무에 떨어져 뇌진탕을 겪은 후 티베트 승려인 롭상 람파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7][8] 그는 속편들을 출간하고 턱수염을 기른 라마승 복장의 사진을 공개했지만, 티베트 전문가들로부터 "라마승이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지적을 받으며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22]
미국의 저명한 티베트학자 도널드 S. 로페즈 주니어는 람파의 책들을 "고용된 적 없는 외과 수술 장치 기술자이자 배관공의 아들이 대필 작가로 스스로를 지원하려 한 작품"이라고 평가절하했다.[9] 그러나 일각에서는 초심리학에서 다루는 빙의 현상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고[22], 실제로 그의 정체가 폭로된 이후에도 람파에 대한 지지 기반은 상당 부분 유지되었다.[22]
람파는 영국 언론의 추적과 비판을 피해 아일랜드로 이주했다가[3][7], 최종적으로 캐나다로 건너가 1973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그곳에서 사망했다.[22] 이 논란은 2012년 BBC 라디오 4에서 방송된 라디오 드라마 ''The Third Eye and the Private Eye|제3의 눈과 사립 탐정eng''으로 극화되기도 했다.[10]
3. 1. 하인리히 하러와 클리포드 버지스의 조사
『제3의 눈』이 출간된 직후, 전문적인 티베트학 연구가들 사이에서 책에 기술된 내용의 진위와 저자 롭상 람파의 경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탐험가이자 티베트학자인 하인리히 하러는 이 책의 내용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리버풀 출신의 사립 탐정 Clifford Burgess|클리포드 버지스eng에게 람파의 신원 조사를 의뢰했다.[3]버지스는 약 한 달간의 조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는 1958년 2월 ''데일리 메일''을 통해 발표되었다.[4] 조사 결과, 롭상 람파로 알려진 인물은 티베트의 고승이 아니라 영국 데번주 플림턴 출신으로, 마을 배관공의 아들이자 고등학교 중퇴자인 Cyril Henry Hoskin|시릴 헨리 호스킨eng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3] 호스킨은 티베트에 방문한 경험이 전혀 없었으며, 티베트어 역시 구사하지 못했다. 그는 심령 현상이나 오컬트, 특히 티베트와 중국의 신비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로 영국을 떠난 적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17]
또한 호스킨은 롭상 람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이전인 1948년에 자신의 이름을 Carl Kuon Suo|칼 쿠온 수오eng로 법적으로 개명했던 사실도 드러났다.[5] 그는 이 이름으로 심령 현상 관련 저작이나 소설을 집필하여 여러 출판사에 판매하기도 했다.[17] [22]
한편, 몰타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프라 앤드루 버티의 부고 기사에서는 그가 람파의 정체를 서부 출신 배관공으로 폭로하는 데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6]
3. 2. 람파의 반박과 이후 행적
『제3의 눈』 출간 직후 티베트 연구가들로부터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의 경력에 대한 의혹도 커졌다. 결국 사립탐정 Clifford Burgesseng의 조사를 통해 람파가 실제로는 플리머스 근교 출신의 배관공 아들 Cyril Henry Hoskineng이며, 티베트는 물론 영국 밖을 나가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3][4][17][22] 호스킨은 이전에 '''Carl Kuon Suoeng''' 박사라는 이름으로 심령 현상 관련 글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기도 했다.[5][17][22]이러한 사실이 데일리 메일 등을 통해 폭로되자[4], 람파는 아일랜드 호스에서 언론과 대면했다. 그는 자신이 시릴 호스킨으로 태어났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현재 자신의 몸은 롭상 람파의 영혼이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박했다.[7] 그의 세 번째 책인 『The Rampa Storyeng』에 따르면, 그는 서리주 템스 디턴의 정원에서 올빼미 사진을 찍으려다 전나무에서 떨어져 뇌진탕을 겪었다. 이때 티베트 승려(롭상 람파)가 나타났고, 호스킨은 현생에 불만족했기에 그가 자신의 몸을 넘겨받는 것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람파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롭상 람파의 몸은 제2차 중일전쟁 중 일본군에게 고문당한 후유증 등으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어[8](이는 두 번째 책 『Doctor from Lhasaeng』에 기술됨), 영혼의 전이 과정을 통해 호스킨의 몸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8]
람파는 평생에 걸쳐 『제3의 눈』이 실제 경험담이라고 주장했다.[9] 1964년 판 서문에서는 "나는 화요일 롭상 람파이며, 그것이 나의 유일한 이름이고, 현재 법적인 이름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불리지 않는다"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턱수염을 기르고 삭발한 라마승 모습의 사진을 공개하자, 티베트 전문가들은 "라마승이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그의 주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22] 미국의 저명한 티베트학자 도널드 S. 로페즈 주니어(Donald S. Lopez Jr.eng)는 그의 책들을 "고용된 적 없는 외과 수술 장치 기술자이자 배관공의 아들로, 대필 작가로 스스로를 지원하려 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신빙성을 낮게 보았다.[9]
다만, 일각에서는 초심리학에서 연구되는 빙의 현상의 가능성을 들어, 롭상 람파의 영혼이 실제로 호스킨의 몸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22] 실제로 그의 정체가 폭로된 후에도 람파에 대한 지지 기반은 크게 약화되지 않았다.[22]
람파는 영국 언론의 추적을 피해 아일랜드로 이주했고, 이후 캐나다로 건너가 1973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그곳에서 사망했다.[22]
3. 3. 캐나다 이주와 사망
자신의 정체가 폭로되고 영국 언론으로부터 사기꾼이라는 비난에 직면하자[12], 람파는 아일랜드로 이주했으나[3] 언론의 추적을 피하지 못했다.[7] 결국 그는 1960년대에 캐나다로 이주했다.[12]이때 그의 아내 산 라'아브(San Ra'ab)와 그의 동료이자 비서인 쉴라 로즈(Sheila Rose, "버터컵")가 동행했다. 작가 에릭 뉴비는 쉴라 로즈에 대해 "라마의 집에서 제자로 살기 위해 로이즈 오브 런던 회원인 남편과 세 아이를 두고 온, 앳된 얼굴의 매우 영국적인 소녀"라고 묘사했다.[12][13] 람파와 그의 아내, 그리고 쉴라 로즈는 1973년에 함께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했다.[12][17]
롭상 람파는 1981년 1월 25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2]
4. 람파의 저작과 사상
롭상 람파는 1956년 출간된 첫 저서 『제3의 눈』을 시작으로 다수의 책을 저술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책들은 티베트 불교, 초심리학, 오컬트 등을 주제로 다루며, 독자들에게 신비로운 티베트와 영적 세계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제3의 눈』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티베트학 연구자들에게는 티베트 연구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저작들은 출간 초기부터 내용의 진위 여부와 저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 및 논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들은 꾸준히 출판되었으며, 뉴에이지 운동을 비롯한 후대의 다양한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4. 1. 주요 저작 목록
람파의 첫 저서인 『제3의 눈』은 1956년에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그는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주요 저작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3의 눈(The Third Eye)'' (1956)
- ''금성의 방문(My Visit to Venus)'' (1957) - 이 책은 람파가 직접 쓴 원고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의 허락 없이 출판되었다. 람파는 나중에 특정 조건(수정 및 수익금 기부) 하에 출판을 승인했다.[14]
- ''라사에서 온 의사(Doctor from Lhasa)'' (1959)
- ''람파 스토리(The Rampa Story)'' (1960)
- ''고대인의 동굴(Cave of the Ancients)'' (1963)
- ''라마와의 동거(Living with the Lama)'' (1964) - 람파는 이 책의 내용이 자신의 애완 샴 고양이 '피피 그레이휘스커스 부인'에게서 받아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 ''영원한 당신(You Forever)'' (1965)
- ''고대인의 지혜(Wisdom of the Ancients)'' (1965)
- ''사프론 로브(The Saffron Robe)'' (1966)
- ''삶의 챕터(Chapters of Life)'' (1967)
- ''열 번째 너머(Beyond The Tenth)'' (1969)
- ''불꽃을 지피며(Feeding the Flame)'' (1971)
- ''은둔자(The Hermit)'' (1971)
- ''열세 번째 양초(The Thirteenth Candle)'' (1972)
- ''촛불(Candlelight)'' (1973)
- ''황혼(Twilight)'' (1975)
- ''그대로! (As It Was!)'' (1976)
- ''나는 믿는다(I Believe)'' (1976)
- ''세 개의 삶(Three Lives)'' (1977)
- ''티베트 현자(Tibetan Sage)'' (1980)
4. 2. 사상과 논란
티베트학자 도널드 S. 로페즈 주니어는 1998년 저서 『샹그릴라의 죄수들』에서 롭상 람파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유럽의 다른 티베트학자 및 불교학자들과 논의하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티베트에 관해 처음 접한 책이 람파의 『제3의 눈』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로페즈에 따르면, 일부 학자들에게는 람파가 묘사한 세계에 대한 매력이 오히려 그들을 티베트 전문 연구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로페즈는 이러한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미시간 대학교 학생들에게 『제3의 눈』의 저자에 대한 배경 정보 없이 책을 읽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책을 호평했다. 심지어 6주 동안 티베트 역사와 종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관련 자료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제3의 눈』이 매우 신뢰할 수 있고 설득력 있으며, 이전에 접했던 어떤 자료보다도 티베트를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평가했다.
5. 티베트 독립 운동과의 관계
롭상 람파의 저작들은 서구 사회에 티베트의 문화와 영성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책들이 널리 읽히면서 많은 사람이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와 함께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인권 문제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관심 증가는 티베트 독립운동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데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롭상 람파 본인의 정체성 논란과 그의 저작 내용이 실제 티베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허구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이 때문에 그의 활동이 티베트 문제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신비주의적 환상을 강화했다는 지적도 있으며, 티베트 망명 정부나 관련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기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5. 1. 달라이 라마와의 관계
롭상 람파는 그의 저서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티베트 문제의 지지자였다. 1972년, 람파의 프랑스어 대리인 알랭 스탕케는 14대 달라이 라마에게 편지를 보내 람파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의 부비서는 "소위 T. 롭상 람파 박사가 쓴 책을 믿지 않습니다. 그의 저작물은 매우 상상력이 풍부하고 허구적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14대 달라이 라마는 이전에 람파의 책이 허구적임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를 위한 좋은 홍보가 되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6. 한국어 번역본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해당 섹션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7. 평가와 유산
롭상 람파의 저작, 특히 그의 데뷔작인 『제3의 눈』은 출간과 동시에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곧이어 그의 실제 정체와 책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과 논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논란은 그의 삶과 저작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로 이어졌으며, 그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그의 주장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다.
7. 1. 비판적 평가
『제3의 눈』 출간 직후, 전문 티베트 연구가들은 책 내용과 저자 경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탐험가이자 티베트학자 하인리히 하러는 의혹 해소를 위해 리버풀 출신 사립탐정 클리포드 버지스(Clifford Burgess)를 고용해 람파의 배경 조사를 의뢰했다.[3]
버지스의 조사 결과는 1958년 2월 ''데일리 메일''에 발표되었고,[4] 람파의 주장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조사 결과, 롭상 람파의 본명은 시릴 헨리 호스킨(Cyril Henry Hoskin)이며, 영국 데번주 플림턴 출신의 배관공 아들이었다. 그는 티베트 방문 경험이 없었고 티베트어도 구사하지 못했다.[3] 호스킨은 심령 현상, 오컬트, 특히 티베트와 중국 신비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영국을 떠난 적도 없었다. 그는 1948년, 롭상 람파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합법적으로 칼 쿠온 수오(Carl Kuon Suo)로 개명했고,[5] 이 이름으로 심령 현상 관련 글을 써서 출판사에 팔려 했다.[22] 몰타 기사단의 프라 앤드루 버티 또한 람파의 정체를 밝히는 데 관여했다는 주장이 있다.[6]
정체가 폭로되자 영국 언론은 아일랜드 호스까지 그를 추적했고, 람파는 의혹에 직접 해명해야 했다.[7] 그는 자신이 시릴 호스킨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자신의 몸은 롭상 람파의 영혼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7] 그의 세 번째 책 『람파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서리주 템스 디턴 정원의 전나무에서 올빼미 사진을 찍으려다 떨어져 뇌진탕을 겪었다. 이때 만난 티베트 승려(롭상 람파)가 자신의 몸을 차지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람파의 원래 몸이 제2차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고문당해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영혼의 전이 과정을 통해 호스킨의 몸을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8]
람파는 턱수염을 기르고 삭발한 라마승 모습의 사진을 공개했지만, "라마승은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는 등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제3의 눈』이 실제 경험담이라고 주장했고, 1964년 판 서문에는 "나는 화요일 롭상 람파이며, 그것이 나의 유일한 이름이고, 현재 법적인 이름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불리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실체가 드러난 후에도 그의 지지 기반은 크게 줄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빙의 현상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티베트학자 도널드 S. 로페즈 주니어는 람파의 책들을 "고용된 적 없는 외과 수술 장치 기술자이자 배관공의 아들이, 대필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려 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9]
이 논란은 2012년 8월 BBC 라디오 4에서 방송된 데이비드 레몬과 마크 에클스톤의 라디오 드라마 ''제3의 눈과 사립 탐정''으로 극화되기도 했다.[10] 람파(호스킨)는 이후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주했고, 1973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한 뒤 사망했다.
참조
[1]
서적
The Third Eye
Secker & Warburg
[2]
obituary
T. Lobsang Rampa
http://i.imgur.com/k[...]
2013-12-23
[3]
뉴스
Lobsang Rampa: The Mystery of the Three-Eyed Lama
https://tricycle.org[...]
2018-01-28
[4]
서적
Prisoners of Shangri-La: Tibetan Buddhism and the West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5]
서적
Prisoners of Shangri-La: Tibetan Buddhism and the West
[6]
obituary
Fra Andrew Bertie
http://www.thetimes.[...]
2008-02-23
[7]
간행물
Fictitious Tibet: the Origin and Persistence of Rampaism
[8]
문서
The Rampa Story
[9]
서적
Prisoners of Shangri-La: Tibetan Buddhism and the West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0]
웹사이트
Johnny Mundo Talks About His Rivalry With Prince Puma
http://www.mandatory[...]
BBC Radio 4
2018-01-08
[11]
서적
T. Lobsang Rampa: New Age Trailblazer
TGS Publishing
[12]
서적
A Traveller's Life
Picador
[13]
웹사이트
Rampa T. Lobsang
https://abcbookworld[...]
[14]
서적
Feeding the Flame
Corgi Books
[15]
문서
[16]
문서
[17]
문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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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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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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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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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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