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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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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투아니아 해군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해상 방위를 담당하는 군사 조직이다. 발트해 연안에서 해상 활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92년 재창설되었다. 현재 기뢰 제거 전대, 초계함 전대, 보조함 전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임무는 영해 및 배타적 경제 수역 통제, 수중 및 해상 감시, 기뢰 제거, 해상 대테러 활동 등이다. 2004년 NATO에 가입했으며, 다양한 국가로부터 함정을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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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해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개요
리투아니아 해군 휘장
리투아니아 해군 휘장
원어 이름Lietuvos Karinės jūrų pajėgos
국가리투아니아
군 종류해군
역할영해 및 배타적 경제 수역 통제, 보호 및 방어
규모700명
지휘 구조리투아니아군
본부클라이페다
별칭해당 없음
수호 성인해당 없음
군가해당 없음
마스코트해당 없음
역사
연혁 시작1568년 3월 24일 (해양 위원회)
기간1935년–1939년, 1992년 – 현재
기념일1935년 9월 1일
지휘부
총사령관소장 기에드류스 프레메네츠카스
참모총장해당 없음
주요 지휘관해당 없음
상징
리투아니아 해군 군함기
군함기
리투아니아 해군 군함 깃발
군함 깃발

2. 역사

리투아니아 해군의 기원은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이지만, 해상 활동 역사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발트해 연안에 정착한 아이스티아인들의 발트족은 배를 만들어 무역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다. 연대기에 따르면, 13세기에 코로니아인과 사모기티아인들은 배를 타고 리가의 성을 파괴하려고 시도했다. 비테니스 공작 통치 시기 네만강에서 벌어진 선박 전투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이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609년 3월 24일 살리스문데(오늘날의 라트비아 살라츠그리바) 근처에서 얀 카롤 호드키에비치가 스웨덴 함대를 격파한 것은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승리였다. 그러나 발트해 근처 영토 상실은 리투아니아의 해양 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은 규모가 작았고 연방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역할을 했다.[18][1] 발트해에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역사상 중요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17세기 초, 폴란드는 바사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발트해 지배권을 두고 스웨덴과의 일련의 전쟁에 휘말렸다.[1] 바사 왕들은 함대 창설을 시도했지만, 왕실 재정 부족, 폴란드 귀족들의 함대 필요성 인식 부족 및 증세 거부, 그단스크의 반대로 인해 실패했다.[1] 지그문트 3세 통치 기간, 아렌트 딕만 제독의 지휘 아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은 1627년 올리바 해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했다.[1] 이 승리로 폴란드는 대서양으로의 접근을 확보하고, 유럽 외 지역 원정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1629년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동맹으로 함대를 빼앗기며 독립적인 함대 계획은 무산되었다.[1]

루벤스의 브와디스와프 4세 초상화


1625년 왕립 선박 위원회(''Komisja Okrętów Królewskich'')가 설립되었다.[1] 1637년 세임(폴란드 의회)의 최종적인 자금 할당과 함께 영구적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을 창설하려 시도했다. 1632년 왕위에 오른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는 12척의 선박을 구매하고 왕립 해군을 위한 전용 항구(브와디스와보)를 건설했다.[1] 브와디스와프 4세 국왕이 서명하고 맹세한 제58조 팍타 콘벤타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필요에 따라 해군 창설을 발표했다. 브와디스와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군대의 확장과 현대화를 지지했고, 해군 확장도 그 계획 중 하나였다.

브와디스와프는 제라르트 덴호프를 의장으로 하는 "해군 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그단스크 출신 상인 게오르그 헤벨(예르지 헤벨) 등 부유한 국왕 지지자들로 구성되었다. 세임이 새로운 배 건조 비용 지불을 꺼렸기 때문에, 헤벨이 국왕에게 10척의 배를 제공하여 새로운 함대가 만들어졌다. 이 배들은 소구경 대포를 탑재하고 있었고, 더 무거운 대포를 탑재할 수 있도록 현대화가 필요했다. 국왕은 갤리온을 건조하고 해외에서 배를 구입하려 했지만, 덴마크 배 1척을 구입하는 것 외에는 실현되지 않았다.

새로운 '폴란드 함대'는 10척의 전 상선으로 구성되었다: "차르니 오제우"(검은 독수리), "프로로크 사무엘"(선지자 사무엘), "비엘키 슬론체"(거대한 태양), "노비 차르니 오제우"(새로운 검은 독수리), 4척의 작은 배 "비아위 오제우"(흰 독수리), "카리타스", "즈비아즈다"(별), "스트제레츠"(궁수), 그리고 가장 작은 두 척 "시비엥티 피오트르"(성 베드로) 또는 "포르투나"(행운), "마위 비아위 오제우"(작은 흰 독수리)와 갤리 1척이었다. 함대 지휘는 알렉산데르 세톤 소장(후방 제독)에게 맡겨졌다.

국왕은 헬 반도에 해군 기지가 있는 두 개의 새로운 요새 (브와디스와보와 카지미에로보)를 건설했다. 약 500명의 코사크 병사들이 차이카와 함께 투입되었다.[2] 코사크는 흑해에서 약탈 습격으로 유명했고, 폴란드 함대의 주요 역할은 스웨덴의 통신 및 보급선을 방해하고 상선을 나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폴란드 귀족들은 높은 비용과 국왕 권력 강화에 대한 우려로 국왕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다. 1634년 슈툼스도르프(슈툼스카 비에스)에서 스웨덴과의 휴전이 체결되며 국왕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국왕은 배를 사용하여 상업 회사를 조직하려 했지만, 헤벨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결국 배는 매각되었고, 건설된 요새는 1640년대에 파괴되었다.

1637년, 선대는 덴마크에 의해 선전포고 없이 파괴되었다.[3] 남은 배들은 1641년부터 1643년까지 판매되었고, 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의 종말을 알렸다.[1]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 정부는 해상 방위군 창설을 시도했으나, 여러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부분적으로만 설립되었다.[4] 1923년 클라이페다 항구를 장악하면서 해상 방위군의 점진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4] 1927년 기뢰 제거함 ''Prezidentas Smetona'' (프레지덴타스 스메토나)를 구매하여 훈련함으로 취역했고,[4] 안타나스 카스켈리스(Antanas Kaskelis) 대위가 함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러 척의 소형 보트가 클라이페다 항구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했고, 해군 장교들은 해외에서 교육을 받았다. 1935년 8월 1일, 리투아니아군 최고 사령관인 스타시스 라스티키스 장군은 리투아니아 해군을 리투아니아군의 한 부서로 공식 설립했다.[4]

1935년 리투아니아 해군의 프레지덴타스 스메토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인 1939년 3월 22일, 나치 독일클라이페다 지역을 점령했다.[5] 전쟁이 발발하자 리투아니아 해군은 클라이페다를 떠나 라트비아의 리예파야 항구로 이동해야 했다.[5] 발트 3국 점령 기간 동안 3척의 러시아 선박이 1940년 스벤토이 항구에서 함선 ''Prezidentas Smetona''를 봉쇄했고, 이후 리투아니아 해군은 소련 발트해 해상 방어 부대에 편입되었다. ''Prezidentas Smetona''는 ''Korall''로 개명되어 나치 독일의 ''크리그스마리네''에 맞서 해상 전투에 참전했다.[5] 1945년 1월 11일, 해당 함선은 기뢰에 의해 핀란드 만에서 침몰했다.[5]

1990년 리투아니아 국가 재건 독립 선언 이후, 리투아니아는 자국 군대의 조직을 시작했다. 1992년 7월 4일 리투아니아 해군이 재창설되었고, 유오자파스 알기스 레이시스(Juozapas Algis Leisis)가 해안 경비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리투아니아 해군의 첫 번째 취역 함정은 당시 클라이페다 항만청에 속해 있던 A41 ''Vėtra''였다. ''Vėtra''는 수색 및 구조(SAR) 및 보급 작전에 사용되었다. 1992년, 리투아니아 해군은 러시아로부터 두 척, ''Zemaitis'' (F11)와 ''Aukstaitis'' (F12)를 인수했다. 1992년 6월 승무원 훈련 기간을 거친 후, 두 코르벳함은 국제 군사 훈련 US BALTOPS 93에 참가했다. 이는 리투아니아의 다른 해군과의 국제 협력의 시작을 알렸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리투아니아 해군은 여러 국가로부터 함선을 인수했다. 노르웨이로부터 스톰급 순찰정 3척, 독일로부터 린더우급 기뢰제거함 2척, 클라이페다 항만청으로부터 커터 1척(전 ''Vilnele'' 1983), 스웨덴으로부터 예인선 및 잠수 커터 ''Lokys''를 인수했다. 리투아니아 해군 역사상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1993년 해안 감시대를 창설한 것이며, 이후 해안 감시 서비스로 전환되었다.

2004년, 리투아니아는 NATO 동맹의 공식 회원국이 되었다. 2006년 해군은 노르웨이 해군으로부터 전 HNoMS Vidar (N52)를 획득했다. 이 함선은 ''요트빙기스''(Jotvingis, N42)로 명명되었으며 지휘 및 보급선으로 운용되고 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해군은 덴마크로부터 4척의 플리브피스켄급 초계함을 구매했으며, P11 ''제마이티스'', P12 ''주카스'', P14 ''아욱슈타이티스'', P15 ''세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해군은 또한 클라이페다 항만 관리청으로부터 인계받은 수색 구조함 ''샤키''를 인수했다. 2013년에는 전 HMS Cottesmore와 전 HMS Dulverton을 획득하여 현대화한 후 M53 ''스칼비스''와 M54 ''쿠르시스''로 취역시켰다.
BALTOPS '20에 참가한 M53 ''Skalvis''
] 두 척 모두 기뢰 제거 전대에서 사용된다.

2020년 5월, 리투아니아 해군을 위한 세 번째 헌트급 기뢰 제거함의 조달이 영국 국방부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발표되었다.[6] 2022년 4월, 해군이 핀란드로부터 제후급 초계정을 획득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7]

2. 1. 고대 및 중세 시대

리투아니아 해군의 기원은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이지만, 해상 활동 역사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발트해 연안에 정착한 아이스티아인들의 발트족은 배를 만들어 무역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다. 연대기에 따르면, 13세기에 코로니아인과 사모기티아인들은 배를 타고 리가의 성을 파괴하려고 시도했다. 비테니스 공작 통치 시기 네만강에서 벌어진 선박 전투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이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609년 3월 24일 살리스문데(오늘날의 라트비아 살라츠그리바) 근처에서 얀 카롤 호드키에비치가 스웨덴 함대를 격파한 것은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승리였다. 그러나 발트해 근처 영토 상실은 리투아니아의 해양 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 2.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 (17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은 규모가 작았고 연방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역할을 했다.[18][1] 발트해에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역사상 중요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17세기 초, 폴란드는 바사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발트해 지배권을 두고 스웨덴과의 일련의 전쟁에 휘말렸다.[1] 바사 왕들은 함대 창설을 시도했지만, 왕실 재정 부족, 폴란드 귀족들의 함대 필요성 인식 부족 및 증세 거부, 그단스크의 반대로 인해 실패했다.[1] 지그문트 3세 통치 기간, 아렌트 딕만 제독의 지휘 아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은 1627년 올리바 해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했다.[1] 이 승리로 폴란드는 대서양으로의 접근을 확보하고, 유럽 외 지역 원정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1629년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동맹으로 함대를 빼앗기며 독립적인 함대 계획은 무산되었다.[1]

1625년 왕립 선박 위원회(''Komisja Okrętów Królewskich'')가 설립되었다.[1] 1637년 세임(폴란드 의회)의 최종적인 자금 할당과 함께 영구적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을 창설하려 시도했다. 1632년 왕위에 오른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는 12척의 선박을 구매하고 왕립 해군을 위한 전용 항구(브와디스와보)를 건설했다.[1] 브와디스와프 4세 국왕이 서명하고 맹세한 제58조 팍타 콘벤타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필요에 따라 해군 창설을 발표했다. 브와디스와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군대의 확장과 현대화를 지지했고, 해군 확장도 그 계획 중 하나였다.

브와디스와프는 제라르트 덴호프를 의장으로 하는 "해군 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그단스크 출신 상인 게오르그 헤벨(예르지 헤벨) 등 부유한 국왕 지지자들로 구성되었다. 세임이 새로운 배 건조 비용 지불을 꺼렸기 때문에, 헤벨이 국왕에게 10척의 배를 제공하여 새로운 함대가 만들어졌다. 이 배들은 소구경 대포를 탑재하고 있었고, 더 무거운 대포를 탑재할 수 있도록 현대화가 필요했다. 국왕은 갤리온을 건조하고 해외에서 배를 구입하려 했지만, 덴마크 배 1척을 구입하는 것 외에는 실현되지 않았다.

새로운 '폴란드 함대'는 10척의 전 상선으로 구성되었다: "차르니 오제우"(검은 독수리), "프로로크 사무엘"(선지자 사무엘), "비엘키 슬론체"(거대한 태양), "노비 차르니 오제우"(새로운 검은 독수리), 4척의 작은 배 "비아위 오제우"(흰 독수리), "카리타스", "즈비아즈다"(별), "스트제레츠"(궁수), 그리고 가장 작은 두 척 "시비엥티 피오트르"(성 베드로) 또는 "포르투나"(행운), "마위 비아위 오제우"(작은 흰 독수리)와 갤리 1척이었다. 함대 지휘는 알렉산데르 세톤 소장(후방 제독)에게 맡겨졌다.

국왕은 헬 반도에 해군 기지가 있는 두 개의 새로운 요새 (브와디스와보와 카지미에로보)를 건설했다. 약 500명의 코사크 병사들이 차이카와 함께 투입되었다.[2] 코사크는 흑해에서 약탈 습격으로 유명했고, 폴란드 함대의 주요 역할은 스웨덴의 통신 및 보급선을 방해하고 상선을 나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폴란드 귀족들은 높은 비용과 국왕 권력 강화에 대한 우려로 국왕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다. 1634년 슈툼스도르프(슈툼스카 비에스)에서 스웨덴과의 휴전이 체결되며 국왕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국왕은 배를 사용하여 상업 회사를 조직하려 했지만, 헤벨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결국 배는 매각되었고, 건설된 요새는 1640년대에 파괴되었다.

1637년, 선대는 덴마크에 의해 선전포고 없이 파괴되었다.[3] 남은 배들은 1641년부터 1643년까지 판매되었고, 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해군의 종말을 알렸다.[1]

2. 3. 독립 리투아니아 (1918-1940)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 정부는 해상 방위군 창설을 시도했으나, 여러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부분적으로만 설립되었다.[4] 1923년 클라이페다 항구를 장악하면서 해상 방위군의 점진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4] 1927년 기뢰 제거함 ''Prezidentas Smetona'' (프레지덴타스 스메토나)를 구매하여 훈련함으로 취역했고,[4] 안타나스 카스켈리스(Antanas Kaskelis) 대위가 함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러 척의 소형 보트가 클라이페다 항구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했고, 해군 장교들은 해외에서 교육을 받았다. 1935년 8월 1일, 리투아니아군 최고 사령관인 스타시스 라스티키스 장군은 리투아니아 해군을 리투아니아군의 한 부서로 공식 설립했다.[4]

2. 4. 제2차 세계 대전 (1939-1945)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인 1939년 3월 22일, 나치 독일클라이페다 지역을 점령했다.[5] 전쟁이 발발하자 리투아니아 해군은 클라이페다를 떠나 라트비아의 리예파야 항구로 이동해야 했다.[5] 발트 3국 점령 기간 동안 3척의 러시아 선박이 1940년 스벤토이 항구에서 함선 ''Prezidentas Smetona''를 봉쇄했고, 이후 리투아니아 해군은 소련 발트해 해상 방어 부대에 편입되었다. ''Prezidentas Smetona''는 ''Korall''로 개명되어 나치 독일의 ''크리그스마리네''에 맞서 해상 전투에 참전했다.[5] 1945년 1월 11일, 해당 함선은 기뢰에 의해 핀란드 만에서 침몰했다.[5]

2. 5. 현대 리투아니아 해군 (1990-)

1990년 리투아니아 국가 재건 독립 선언 이후, 리투아니아는 자국 군대의 조직을 시작했다. 1992년 7월 4일 리투아니아 해군이 재창설되었고, 유오자파스 알기스 레이시스(Juozapas Algis Leisis)가 해안 경비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리투아니아 해군의 첫 번째 취역 함정은 당시 클라이페다 항만청에 속해 있던 A41 ''Vėtra''였다. ''Vėtra''는 수색 및 구조(SAR) 및 보급 작전에 사용되었다. 1992년, 리투아니아 해군은 러시아로부터 두 척, ''Zemaitis'' (F11)와 ''Aukstaitis'' (F12)를 인수했다. 1992년 6월 승무원 훈련 기간을 거친 후, 두 코르벳함은 국제 군사 훈련 US BALTOPS 93에 참가했다. 이는 리투아니아의 다른 해군과의 국제 협력의 시작을 알렸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리투아니아 해군은 여러 국가로부터 함선을 인수했다. 노르웨이로부터 스톰급 순찰정 3척, 독일로부터 린더우급 기뢰제거함 2척, 클라이페다 항만청으로부터 커터 1척(전 ''Vilnele'' 1983), 스웨덴으로부터 예인선 및 잠수 커터 ''Lokys''를 인수했다. 리투아니아 해군 역사상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1993년 해안 감시대를 창설한 것이며, 이후 해안 감시 서비스로 전환되었다.

2004년, 리투아니아는 NATO 동맹의 공식 회원국이 되었다. 2006년 해군은 노르웨이 해군으로부터 전 HNoMS Vidar (N52)를 획득했다. 이 함선은 ''요트빙기스''(Jotvingis, N42)로 명명되었으며 지휘 및 보급선으로 운용되고 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해군은 덴마크로부터 4척의 플리브피스켄급 초계함을 구매했으며, P11 ''제마이티스'', P12 ''주카스'', P14 ''아욱슈타이티스'', P15 ''세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해군은 또한 클라이페다 항만 관리청으로부터 인계받은 수색 구조함 ''샤키''를 인수했다. 2013년에는 전 HMS Cottesmore와 전 HMS Dulverton을 획득하여 현대화한 후 M53 ''스칼비스''와 M54 ''쿠르시스''로 취역시켰다. ] 두 척 모두 기뢰 제거 전대에서 사용된다.

2020년 5월, 리투아니아 해군을 위한 세 번째 헌트급 기뢰 제거함의 조달이 영국 국방부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발표되었다.[6] 2022년 4월, 해군이 핀란드로부터 제후급 초계정을 획득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7]

3. 주요 임무

빌뉴스에서 해군 의장대 병사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해군의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다.

  •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영해 및 배타적 경제 수역 통제, 보호 및 방어.
  • 수중, 해상 감시 및 영해 통제.
  • 기뢰 제거 작전.
  • 해상 대테러 활동.
  • 해상 수송 및 해상 통신망의 보호 및 통제.
  • 수색 구조(SAR) 작전.

4. 함대 구성

4. 1. 기뢰 제거 전대

기뢰 제거 전대는 노르웨이에서 인수한 지휘 및 지원함 N42 ''Jotvingis''[8]영국에서 인수한 헌트급 기뢰전 함정 M53 ''Skalvis'', M54 ''Kuršis''[8]로 구성되어 있다. M53 ''Skalvis''와 M54 ''Kuršis''는 2013년 5월 18일에 정식 취역하였다.[8] 2020년에 인수한 또 다른 헌트급 기뢰전 함정 M55는 2023년 취역을 목표로 현대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8]

4. 2. 초계함 전대

초계함 전대에는 덴마크에서 도입한 플뤼베피스켄급 다목적 군함 4척이 있다. P11 ''Žemaitis''는 2008년[8], P12 ''Dzūkas''는 2009년, P14 ''Aukštaitis''는 2010년, P15 ''Sėlis''는 2016년에 각각 취역하였다.[8] 이 외에도 스웨덴에서 제작하고 2023년 클라이페다 항구에서 인수한 P351 Žaibas[9]핀란드에서 제작하여 2025년에 인도 예정인 2척의 Jehu급 상륙정[7][9]이 해상 보안 및 순찰 임무를 수행한다.

이름사진원산지종류건조취역
P11 Žemai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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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 군함19852008
P12 Dzūk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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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009
P14 Aukštai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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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010
P15 Sė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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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016
P351 Žai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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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보안 및 순찰19972023
-
150px
해상 보안 및 순찰-계획 2025


4. 3. 보조함 전대

PGL ''Šakiai''는 소련에서 1986년에 건조되어 2009년에 취역한 수색 및 구조선이다.[8] 2025년에 새로운 수색 및 구조선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H21 ''Vilnelė''는 1983년에 건조되어 1992년에 취역한 지원선(커터)이다.[8] H22 ''Atlas''는 스웨덴에서 1955년에 건조되어 2000년에 취역한 예인선이며, 쇄빙선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8]

4. 4. 퇴역 함정

그리샤 III급 코르벳 F11 젬마이티스, F12 아욱슈타이티스, 린다우급 기뢰제거함 M51 쿠르시스, M52 수두비스, 스톰급 초계정 P31 쥬카스, P32 셀리스, P33 스칼비스, 그리고 지원함 및 절단선 A41 베트라, H23 로키스가 있었다.[10][11][12][13][14]

5. 계급

5. 1. 장교

리투아니아 해군 장교의 계급은 NATO 코드 OF-1부터 OF-10까지 분류된다.[15] 장성급 장교(Generolai)에는 제독(Admirolas), 중장(Viceadmirolas), 소장(Kontradmirolas), 준장(Flotilės admirolas)이 있다.[15] 선임 장교(Vyresnieji karininkai)는 해군 대령(Jūrų kapitonas), 해군 중령(Komandoras), 해군 소령(Komandoras leitenantas)으로 구성된다.[15] 초급 장교(Jaunesnieji karininkai)에는 해군 대위(Kapitonas leitenantas), 선임 해군 중위(Vyresnysis leitenantas), 해군 중위(Leitenantas)가 있다.[15]

2012년 기준으로 장성급 장교는 9명 미만, 해군 대령은 30명 미만, 해군 중령은 127명 미만, 해군 소령은 375명 미만으로 제한된다.[16]

NATO 코드OF-9OF-8OF-7OF-6OF-5OF-4OF-3OF-2O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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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Viceadmirolaslt소장/Kontradmirolaslt준장/Flotilės admirolaslt해군 대령/Jūrų kapitonaslt해군 중령/Komandoraslt해군 소령/Komandoras leitenantaslt해군 대위/Kapitonas leitenantaslt선임 해군 중위/Vyresnysis leitenantaslt해군 중위/Leitenantaslt


5. 2. 부사관 및 수병

리투아니아 해군의 부사관은 Vyresnysis laivūnas(선임 부사관), Laivūnas, Štabo laivūnas, Vyresnysis seržantas (선임 부사관), Seržantas (부사관) 계급으로 구성된다.[17] 수병 계급은 Grandinis, Vyresnysis jūreivis (선임 수병), Jūreivis (수병), Jaunesnysis jūreivis (훈련병)으로 구성된다.[17]

NATO 코드OR-9OR-8OR-7OR-6OR-5OR-4OR-3OR-2O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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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스니시스 라이부나스/Vyresnysis laivūnaslt라이부나스/Laivūnaslt슈타보 라이부나스/Štabo laivūnaslt비레스니시스 세르잔타스/Vyresnysis seržantaslt세르잔타스/Seržantaslt그란디니스/Grandinislt비레스니시스 유레이비스/Vyresnysis jūreivislt유레이비스/Jūreivislt야우네스니시스 유레이비스/Jaunesnysis jūreivislt


참조

[1] 서적 Historia panstwa i prawa polskiego Paristwowe Wydawnictwo Naukowe 1987
[2] 문서
[3] 서적 The Swedish Imperial Experience 1560-1718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06-07
[4] 웹사이트 Klaipeda State Seaport http://www.worldport[...] World Port Source 2014-03-23
[5] 웹사이트 The impact of the World War II on Lithuanian Navy http://kariuomene.ka[...] Ministry of National Defence Republic of Lithuania 2014-03-23
[6] 웹사이트 Lithuania procures 3rd Hunt-class mine hunter from the UK https://navalnews.ne[...] 2020-05-02
[7] 웹사이트 Lithuania to buy patrol boats from Finland – ministry https://www.lrt.lt/e[...] LRT 2022-04-27
[8] 웹사이트 Ministry of National Defence Republic of Lithuania http://www.kam.lt/in[...] 2014-12-14
[9] 웹사이트 Klaipėdos uosto direkcija Karinėms jūrų pajėgoms perdavė katerį https://www.15min.lt[...] 2023-12-28
[10] 간행물 The Naval Institute Guide to Combat Fleets of the World: Their Ships, Aircraft, and Systems 2007
[11] 웹사이트 Lietuvos kariuomenė :: Kariuomenės struktūra » Karinės jūrų pajėgos » Aktualijos http://kariuomene.ka[...] 2014-12-14
[12] 웹사이트 Kateris H-23 "Lokys" http://www.vdkaromuz[...]
[13] 웹사이트 Jau teikiami siūlymai įveiklinti nurašytą Karinių jūrų pajėgų laivą "Sūduvis" https://www.15min.lt[...] 2021-02-07
[14] 웹사이트 Lietuvos kariuomenė :: Kariuomenės struktūra » Karinės jūrų pajėgos » Aktualijos http://kariuomene.ka[...] 2014-12-14
[15] 웹사이트 Krašto apsaugos sistemos karių uniformų skiriamųjų ženklų etalonų ir jų dėvėjimo tvarkos aprašo 2 priedas https://www.e-tar.lt[...] 2024-10-24
[16] 문서
[17] 웹사이트 Krašto apsaugos sistemos karių uniformų skiriamųjų ženklų etalonų ir jų dėvėjimo tvarkos aprašo 2 priedas https://www.e-tar.lt[...] 2024-10-24
[18] 서적 Historia panstwa i prawa polskiego Paristwowe Wydawnictwo Naukowe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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