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세 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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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나세 쇼린은 이요 국의 무장 히토쓰야나기 노부마사의 후손으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의사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쓰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고요제이 천황과 오기마치 상황의 병을 치료하여 호인을 받았다. 1603년 쇼린안을 창건했으며, 1611년에 사망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약탈된 서적을 기반으로 요안인 문고를 설립했는데, 이 문고는 조선과 중국의 의학 서적을 포함하여 다양한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요안인 문고의 장서는 흩어져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부는 중국으로 유출되기도 했다.
| 씨명 | 월지(越智) 성 히토쓰야나기(一柳) 씨, 귤(橘) 성 마나세(曲直瀬)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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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히토쓰야나기 마타고로(一柳又五郎), 마나세 쇼린(曲直瀬正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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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칭 | 요안(養庵), 요안(養安), 요안인(養安院), 교쿠오(玉翁), 세쓰사이(雪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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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소 | 다이토쿠지교쿠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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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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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 | 에이로쿠 8년 (15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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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년 | 게이초 16년 8월 9일 (1611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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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히토쓰야나기 조신(一柳恕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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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마나세 겐사쿠의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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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마나세 쇼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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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요국의 무장 히토쓰야나기 노부마사(一柳宣高)의 먼 후손인 조신(恕心)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덴쇼 4년(1576년)에 마나세 쇼세이(초대 도산)에게 의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덴쇼 10년(1582년)에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요안(養庵)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그는 스승 마나세 도산의 손녀이자 마나세 겐사쿠(2대 도산)의 딸과 결혼했다.
덴쇼 12년(1584년), 당시 일본의 실권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 그의 조카인 도요토미 히데쓰구를 섬기게 되었다. 분로쿠 원년(1592년) 1월에는 히데쓰구로부터 오미국 내 영지 250석을 하사받았다. 같은 해(1592년), 오기마치 상황의 병을 치료하여 회복시키자, 그 공으로 12월 28일 승려의 높은 지위인 호인(法印)에 서임되었다. 이때 천황의 명으로 호를 기존의 요안(養庵)에서 《순자(荀子)》의 글귀를 참고한 요안(養安)으로 바꾸었다. 분로쿠 4년(159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우키타 히데이에의 부인 고히메를 치료하였다. 히데요시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약탈해 온 서적과 히슈 노부이에(備州信家)가 제작한 창칼을 하사했다.
게이초 5년(1600년) 4월 26일에는 고요제이 상황을 치료하고 원호(院号)를 받았다. 게이초 8년(1603년)에는 쇼린안(正琳庵)이라는 절을 세웠는데, 이 절은 훗날 교쿠린인(玉林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게이초 10년(1605년), 에도 막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라 슨푸와 에도로 거처를 옮겼다. 게이초 13년(1608년)부터는 이마오지 지카키요(今大路親清), 나카라이 나리노부(半井成信), 야쿠인 소하쿠(施薬院宗伯) 등 다른 의사들과 함께 반년씩 교대로 에도에 머물며 쇼군 가문의 시의(侍醫)로 일했다.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모시는 어번(御番)을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게이초 16년(1611년) 8월 9일, 4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교토에 있는 쇼린인(正琳院)에 묻혔다.
3. 요안인 문고(養安院文庫)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는 조선의 경복궁 내 교서관(校書館) 주자소(鑄字所)를 습격하여 조선의 금속활자 20만 자와 인쇄기구, 그리고 당시 조선 왕실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과 중국의 여러 서적을 약탈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 히데요시는 이 중 일부를 1595년 마나세 쇼린에게 주었고, 쇼린은 이 서적들을 기반으로 요안인 문고(養安院文庫)를 설립하였다.
요안인 문고에는 조선과 중국의 의학 서적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며, 소장된 책에는 쇼린 자신의 장서인인 '요안인장서(養安院藏書)' 도장이 찍혀 있다. 소장 장서 중 《치종비방》(治腫秘方)이나 《심도》(心圖, 현재 베이징 대학교 도서관 소장)처럼 조선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서적도 있다. 반면, 《의방유취》(醫方類聚)나 《입학도서》처럼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으로 다시 반입되어 규장각에 소장된 책들도 있다.
막말에서 메이지 초기에 이르는 19세기 혼란기에 요안인 문고의 장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일부는 일본 구마모토현립 진기치(仁吉) 고등학교와 나라현의 덴리(天理)대학 도서관에 '요안인 본(養安院本)'이라는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다. 장서 목록인 《회천루 서목》(懷遷樓書目)은 일본 내각문고에, 옛 요안인 장서본(舊養安院藏書本) 《해동제국기》 사본은 도쿄 대학 사료편찬소에 소장되어 있다.
일부 장서는 중국으로 유출되기도 했다. 베이징 대학교 도서관에는 요안인 문고에 속했던 서적으로, 조선 중기 성리학자 주세붕이 쓴 《심도》와 함께 《격재갱운당송현시》(格齋賡韻唐宋賢詩), 《삼략직해》(三略直解)가 소장되어 있다. 조선 초기 김시습의 전기소설 《금오신화》 역시 요안인 문고에 포함되었다가 흩어진 후, 메이지 시대 여러 수집가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를 1924년 최남선이 발견하여 조선에 다시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요안인 문고 소장 장서 중 중국 문헌인 《통전》(通典), 《성해》(姓解), 《중설주》(中說注), 《중광회사》(重廣會史), 《신조입전설문정자》(新雕入篆說文正字) 등 5종은 고려 왕실 도서관 소장 서적으로 확인되었다.
4. 친족
이요국의 무장 히토쓰야나기 노부마사(一柳宣高)의 먼 후손으로 알려진 히토쓰야나기 조신(恕心)의 아들이다. 스승인 마나세 도산(초대 도산)의 손녀이자, 마나세 겐사쿠(2대 도산)의 딸과 결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