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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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서인은 책이나 서화 등의 소유자를 나타내기 위해 찍는 도장으로, 동아시아에서 발전했다. 중국에서 기원하여 송나라 시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한국, 일본 등 한자 문화권 국가로 전파되었다. 장서인은 소장자를 표시하고, 자료의 산실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며, 서지학 연구에도 활용된다. 형태, 색상, 인문, 서체, 인재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지며, 소장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현대에는 도서관에서 간이 고무인이나 바코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귀중서에는 전통적인 장서인이 사용되기도 한다. 감장인, 수입인, 낙관인, 장서표 등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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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장 - 국새
국새는 국가 중요 문서의 진정성과 법적 효력을 보장하는 인장으로,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공포문 등에 사용되며, 시대에 따라 디자인과 재료가 변화하고 위조 및 남용은 엄중히 처벌된다. - 인장 - 대한민국의 국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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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본은 원래 목판 인쇄를 의미했으나 현재는 다양한 인쇄 방식과 대량생산품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내용 변경, 장정, 크기, 출판 정보, 미디어 종류 등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되고, 서지학적 관점과 수집가의 관점에 따라 그 정의가 다르게 적용되며, 문학 작품에서는 내용이 유사하나 차이가 있는 여러 종류의 책을 이본이라 하고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을 정본으로 본다. - 서지학 - 해동문헌총록
《해동문헌총록》은 김휴가 1616년부터 1637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편찬한 문헌 해제집으로, 고려사 등 역사서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총 670여 종의 문헌을 수록하여 임진왜란 이후 문화유산 정비에 기여했다.
장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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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인 | |
![]() | |
정의 | 서적, 서화, 그림 등에 소장자가 찍는 도장 |
종류 | 장서표 목록 |
관련 항목 | 도서관 수집 애서가 장서 장정 역사학 |
감장인 | |
감장인 | 장서인과 구분되기도 함 |
서적 감장인 | 서적에 찍는 도장 |
서화·그림 감장인 | 서화·그림에 찍는 도장 |
장서인의 예시 | |
고적상 | 다쓰마야 고이치나 겐쇼도가 사용한 인장 |
다쓰마야 고이치의 인장 | 대가당인 (http://mars.lib.kyushu-u.ac.jp/infolib/meta_pub/G0000002STAMP_395) |
2. 장서인의 역사
2. 1. 중국에서의 기원
한나라 시대까지의 중국에서는 장서인을 포함한 종이에 찍는 것에 앞서 봉니에 찍는 것이 성행했다. 짐을 묶은 끈에 덮어씌운 점토를 봉니라고 하는데, 여기에 도장을 찍어 발송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동시에 배송 중에 변조가 있었을 때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사용된 도장은 역할로서는 관인이나 공인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것으로, 특정 관직 등에만 사용이 허가된, 권력의 뒷받침을 수반하는, 공적인 인증을 위한 도장이었다.수장물에 찍힌 도장으로 확인된 것 중에서는 당나라의 태종의 "정관" 인, 현종의 "개원" 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볼 수 있는 장서인의 오래된 예는 기본적으로 궁정에서 감장한 서화에 사용되었다.
장서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송나라 시대로 여겨진다. 송나라 시대의 중국에서는, 종이와 인쇄 기술의 보급, 출판의 발달, 서화 감상 문화의 발전에 따라 종이 위의 서화에 찍는 인장이 크게 발달했다. 도서의 감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인장은 이 시대의 것으로, 왕애왕애/王涯중국어의 "영존진비" 인, 양수의 "수열고서" 인, 태조 문제의 "비각도서" 인 등이 있다.
명・청 시대가 되면서 장서인이 더욱 널리 퍼졌다. 사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졌고, 그것 자체가 취미나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2. 2. 한국 장서인의 발달
2. 3. 일본에서의 발달
장서인은 중국에서 일본, 조선 등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국가로 전래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장서인이 널리 퍼진 것은 중세 이후 중국에서 송원판 서적이 성행하여 수입된 것과 관련이 있다. 소장자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 인으로는 8세기 쇼소인 보물, 고묘 황후 친필의 『두가립성잡서요략』[3]에 날인된 고묘 황후의 "적선등가"와 "내가사" 인이 있고, 장서 전용 인으로는 『금강장다라니경』[4]에 날인된 "호류지 일체경" 인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서료의 인, 『문관사림』 권말 "냉연원" 인, "사아원" 인 (사가인) 등도 일본 상고의 장서인의 고례로 알려져 있다.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무렵까지의 서적에서는 장서인의 사용례도 있지만, 소장 사실은 인이 아닌 식어로서 붓으로 쓰인 것이 많았다. 이 시대의 장서인은 사찰의 경전에 대한 인만 확인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 장서인의 사용이 본격화되었다. 가나자와 문고 인은 문고 인의 선구로 여겨진다. 이 무렵의 문고 인으로는 아시카가 학교의 "노지코쿠" 인, 사찰 장서인으로는 고잔지의 "고잔지" 인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에도 시대 이후 서적이 서민에게 퍼져 독서 인구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장서인이 나타났다. 다이묘나 번교는 당당한 인을 만들었고, 국학자를 비롯한 개인 장서가는 독자적인 의장이나 인문을 사용했다. 취미성이 높은 장서인이 성행한 것은 "강운위수" 인[5], "도춘" 인 등 수십 개의 장서인을 구분해서 사용한 하야시 라잔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소설책에는 대본소의 장서인이 많이 보인다. 장서인보가 편찬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3. 장서인의 형태
장서인은 주색(주인)이 가장 많고, 먹색(흑인, 먹인)이 그 다음으로 많다. 주는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기 어렵고, 먹과 종이의 색상과 잘 조화되어 자주 사용되었다.[7] 원래 주는 고귀한 색으로 여겨져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먹색도 사용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선의 영향으로 화려함을 피해 먹색 인장이 사용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모모야마 시대 이후에는 안료 정제 기술 발전으로 남색 인장, 청색 장서인도 등장했다. 그 외에 흑, 녹, 치자색 등도 사용되었다. 근대 도서관에서는 서적 원상 보존을 위해 부조 인쇄나 엠보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문은 소유자의 이름이나 호 다음에 "장서", "장", "가장", "도서", "지인", "문고" 등을 더한 것이 많다. 특히 도서관 장서인은 정형적인 인문을 취한다. 거주지나 출신지 등을 더한 것도 있으며, 중국 인장에서 자주 보인다. 개인 장서가 인장에는 시구나 와카, 이용자나 후세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은 유인도 보인다.
문자는 진의 팔체에서 시작하는 중국 고서체를 기본으로 하지만, 해서, 행서, 초서, 연면체 평가나, 가타카나 등도 사용되며, 드물게 라틴 문자도 보인다.}} 특히 국학자의 것에는 평가나, 가타카나, 만요가나, 신대문자를 사용한 것이 많다.
인장 형태는 문자를 테두리(곽)로 둘러싸는 양식이 일반적이다. 곽 형태는 정사각형이 대부분이지만, 원형도 있다.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단책 모양 곽, 이중 곽 등도 사용되었다. 표형, 타원형, 능형, 표주박형, 정형도 보인다. 크기는 15cm각 정도의 큰 것부터 6mm각 정도의 작은 것까지 있다. 도서관에서는 큰 인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인재로는 동, 철, 금, 은, 옥, 석, 도, 목, 죽 등 다양한 것이 사용된다.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에는 금속이 많았다. 근대 도서관에서는 나무 인장이나 물소 인장이 많고, 고무 인장도 사용된다.
장서인 날인 위치는 표지, 면지(표지 뒷면), 유지(표지 다음 흰 종이), 권두, 권말 등이 있다. 화한서에서는 권두 부근이 많고, 권두지 서명 아래 또는 위 여백, 란 상부, 란외 여백이 자주 사용된다. 양장본은 표제지 앞면이나 뒷면, 유지에 날인한다. 권말 여백에 날인하는 경우도 있으며, 여백 중앙에 날인되기도 한다. 책 종이에 직접 날인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종이 조각에 날인하여 장서표로 붙이기도 한다.
여러 사람을 거친 서적은 서명 아래 란 내에서 최초 소장자 인장을 제일 아래로 하고 순서대로 위를 향해 쌓아 올리거나, 서명 바로 아래부터 아래를 향해 계속하는 것이 통례이다. 동일 소장자가 1권에 여러 개 인장을 날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륭제는 《쾌설시청첩》[10] 등 애장한 서화에 10개 이상 인장을 날인했다. 본문에 겹치지 않고, 구장서와 겹치지 않도록 날인하는 것이 좋다.
3. 1. 인장의 색상
3. 2. 인문 (印文)
3. 3. 서체
3. 4. 인장의 형태와 크기
3. 5. 인재 (印材)
4. 장서인의 용도 및 역할
장서인은 압날된 품을 띠고 나가거나 양도받은 사람에게 원래의 소장 장소와 소장자를 알리고, 그 품의 산실을 방지하는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대출을 전제로 하는 장서에 장서인이 찍히는 경우가 많다.
감정 안목이 있는 구장자가 제시되어 있으면, 그 서물이 선본이라는 것과 내용의 신빙성이 높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저명인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는 장서인은 찍힌 책의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장서인은 소유자가 바뀔 때마다 추가되기 때문에, 서지학에서는 도서나 서화의 편력을 해명하기 위한 단서 중 하나로 사용된다. 소유자 자신이 고유의 인을 날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기록이나 정리를 위해 후세 사람이 과거 소유자 이름의 인을 찍거나, 전래를 위조하여 귀중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찍거나, 부자 대대로 같은 장서인을 공유하거나, 빌린 책에 빌린 사람이 찍은 인 등도 있어 실제 구장자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주인이 알려지지 않은 인과 책도 많이 남아 있다.
소장자의 서명과 함께 대출 중 취급에 주의하는 문구, 반환을 재촉하는 문구, 사후 서물 취급을 지시하는 문구가 더해진 장서인도 종종 보인다. 이러한 종류의 장서인으로 잘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다.
- 반노부토모의 인: "이 책을 빌려보는 사람이 있다면 다 읽고 얼른 돌려주세요"
- 아오야기 분조의 인: "각을 접지 말 것, 뇌를 말지 말 것, 먹으로 더럽히지 말 것, 쥐가 갉아먹게 하지 말 것, 폭에 침을 뱉어 걸지 말 것"[13]
- 아베 랏사이의 인: "또 빌려주기는 싫어 아베 키닌"
- 나가사와 반오의 인: "내가 죽으면 팔아서 황금으로 바꿔라. 부모의 물건이라고 벌레에게 먹게 하지 말라. 나가사와 반오 장서기"
애서가를 비롯한 개인의 장서인 중에는 소유자를 밝히는 실용성을 넘어 서물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기 위해 의장이나 인문에 궁리를 더한 것이 있다. 아름다운 장서인은 그 자체가 예술적 가치를 낳거나 책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반대로 무사려한 장서인은 책을 더럽힐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책의 장정과 조화를 이룬 의장의 인을 선택하고, 함부로 여러 개나 너무 큰 인을 찍지 않는 것이 좋다.
장서인에는 장서 날인 전용으로 만들어진 것과 다른 목적의 인이 유용된 것이 있다. 유용되는 인으로는 도장이나 낙관이 있다. 동일 소장자가 복수의 장서인을 가지고 대상 서적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도서관은 이용자에게 빌린 책과 사물의 구별을 쉽게 하고, 도난 시 발견을 쉽게 하기 위해 관명을 넣은 장서인을 찍는다. 새로 장서로 하는 책에는 등록과 동시에 장서인을 찍고, 폐기 등의 이유로 제적할 때는 취소선 등으로 인을 무효로 한다. 도서관 장서의 장서인은 이용자에게 사물과 도서관 장서를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며, 종종 대형의 눈에 띄는 인이 표제지나 간기에 찍힌다. 장서인은 위조되거나 은멸되거나 표제지째로 뜯어지는 위험이 있어 도난 검출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장서인과는 별도로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작은 인(숨은 인, 복인)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14] 손이 많이 가므로 별로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명가의 옛 장서품이라고 판단되면 책의 상품 가치가 오르는 등 가짜 장서인이 찍힌 책이 있다. 예를 들어 금택문고 인에는 가짜 인이라고 감정된 예가 많다.
4. 1. 소장자 명시 및 관리
4. 2. 서지학적 연구 자료
4. 3. 이용자 및 후대에 대한 주의
4. 4. 예술적 가치
5. 현대의 장서인
장서인은 본래 한적과 화장본에 사용되었지만, 근대에 들어 유통이 늘어난 양장본에도 마찬가지로 날인되었다.
근대 도서관에서는 간이 고무인을 장서인으로 사용하거나, 장서인 사용을 중단하고 바코드가 붙은 태그 등에 관명을 기입하여 그 기능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날짜를 기입하여, 수입인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고전적 등의 귀중서에는 그러한 사무적인 인은 어울리지 않고, 의장이 갖춰진 전통적인 장서인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어, 도서관에서도 장서인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6. 장서인과 유사한 것
장서인과 유사한 것으로는 제작자가 찍는 낙관인, 수령 날짜 등을 기록한 수입인, 종이 조각으로 붙이는 장서표 등이 있다.
감장인은 소장자를 나타내 서적에 찍는 장서인과 달리, 서화에 찍는 것을 말한다. 소장자가 아닌 사람이 감정 또는 감상을 했다는 선언을 위해 찍는 인(印)도 감장인에 포함된다. 서적에 찍는 인과 서화에 찍는 인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장서인, 장인, 수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수입인(또는 등록인)은 수령 연월일, 책의 등록 번호 등을 기재함으로써 책의 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찍는다. 한편, 장서인은 이용자에게 책의 소속처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처럼 구별은 있지만 양자의 역할은 상당히 중복된다. 실제로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 관명과 수령 연월일을 병기하여 장서인과 수입인을 합친 인으로 일원화하는 도서관도 많다.
낙관인, 장판인, 괴성인은 모두 작가나 출판자에 의해 책 또는 작품에 찍힌다. 한편, 장서인은 책의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장서표는 책의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한 종이 조각이며, 장서인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장서표가 종이 조각으로 붙여지는 데 반해, 장서인은 책의 지면에 직접 찍힌다. 장서표는 서양에서 발달했고, 장서인은 동양에서 발달했다. 장서인을 찍은 종이 조각이 장서표로 붙여지는 경우도 있다.
식어, 전령기는, 고전적 간기 등에서, 인기가 아닌 필기로 소유 및 전래의 사실을 써 놓은 것이다.
참조
[1]
문서
東京大學圖書
[2]
서적
支那史
吉川弘文館
189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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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内庁 正倉院宝物検索
http://shosoin.ku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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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場陀羅尼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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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28回常設展示 印の継承譜 ―国立国会図書館の印と印影― 国立国会図書館蔵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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蔵書印はなぜ朱色な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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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文学研究資料館蔵書印データベース
http://base1.nijl.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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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州大学蔵書印データベース URLID 646
http://mars.lib.k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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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立故宮博物院 セレクション
http://www.npm.gov.t[...]
[11]
웹사이트
伴信友
http://www.ndl.go.jp[...]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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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学者の蔵書印・蔵書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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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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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城県図書館だより「ことばのうみ」第23号
http://www.library.p[...]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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趣味で使う印章
http://www.hanko-zni[...]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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