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울리야노바
1. 개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울리야노바는 183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16년 사망한 인물이다. 부유한 의사의 딸로 태어나 재택 학습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1863년 교사가 된 후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와 결혼했다. 슬하에 8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의 사망과 자녀들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한 고난을 겪었다. 1902년과 1910년에는 각각 프랑스와 스톡홀름에 있는 아들 블라디미르를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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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블랑크 |
|---|---|
| 출생일 | 1835년 3월 6일 |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
| 사망일 | 1916년 7월 25일 |
| 사망지 | 페트로그라드 |
| 배우자 |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 (1863년 결혼, 1886년 사망) |
| 자녀 |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포함 8명 |
| 아버지 | 알렉산드르 드미트리예비치 블랑크 |
|---|
| 알려진 이유 | 블라디미르 레닌의 어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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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계 러시아인 -
블라디미르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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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계 러시아인 -
칼 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
칼 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은 핀란드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핀란드 독립에 기여하고 섭정과 대통령을 역임하며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을 이끌었으며 핀란드 원수 칭호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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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 카스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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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
아이작 아시모프는 20세기 미국의 소설가이자 생화학자, 과학 대중화 저술가로, 로봇 공학 3원칙과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통해 SF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16년 사망 -
우겐 도르지
우겐 도르지는 부탄의 명문가 출신 정치인으로, 20세기 초 왕실 정부에서 요직을 겸임하며 영국 및 티베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부탄 근대화에 기여했다. -
1916년 사망 -
이인직
이인직은 대한제국 시대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받는 『혈의 누』를 통해 신소설의 효시로 여겨지나, 친일 활동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문학적 업적과 친일 행적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생애
마리야는 1863년 물리학과 수학 교사였던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와 결혼했다. 이울리야노프 가족은 펜자에서 살다가 니즈니노브고로드를 거쳐 일리야가 초등학교 장학관으로 임명되면서 심비르스크로 이주했다.
마리야는 삶 속에서 가족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1869년에는 어린 딸 올가가, 1873년에는 아들 니콜라이가 사망했다. 1886년에는 남편 일리야 울리야노프가 사망했고, 1887년에는 장남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가 정치범으로 사형되었다. 1891년에는 딸 올가 울리야노바가 사망했고, 안나 울리야노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마리아 울리야노바 또한 정치범으로 체포와 추방을 반복했다.
그녀는 추방된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으며, 1902년 여름 프랑스 제3공화국에, 1910년 가을 스톡홀름에 머물고 있던 블라디미르를 찾아갔다. 1916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가족 배경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1835년 3월 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의사였던 알렉산드르 드미트리예비치 블란크(Александр Дмитриевич Бланк러시아어)와 안나 이바노브나 그로쇼프(Анна Ивановна Гроссшопф러시아어) 사이에서 6명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알렉산드르 블란크는 동방 정교회로 개종한 유대인이라는 견해와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 제국으로 편입시킨 독일 식민지 주민들의 후손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가 동방 정교회로 개종한 유대인이며 본명이 스룰 모셰비치 블란크, 혹은 이스라일 모이세에비치 블란크라고 하는 자료가 있으나 일부 역사가들은 그 인물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마리야의 어머니 안나 이바노브나는 스웨덴계 독일인 요한 그로쇼프(Johann Groschopf독일어)와 루터교 신자였던 스웨덴인 안나 외스테드트(Anna Östedt스웨덴어) 사이에서 태어났다. 1838년 마리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알렉산드르는 시누이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Екатерина Ивановна러시아어)에게 자녀들의 양육권을 맡겼다. 이들은 카잔 근처에 땅을 매입한 후 자녀들과 함께 그곳으로 이사했다.
마리야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 문학과 서양 문학에 관한 지식을 재택학습으로 습득했다. 이후 그녀는 1863년 교외 학위를 받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2.2. 어린 시절과 교육
마리야는 1835년 3월 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의사였던 알렉산드르 드미트리예비치 블란크(Александр Дмитриевич Бланк러시아어)와 안나 이바노브나 그로쇼프(Анна Ивановна Гроссшопф러시아어) 사이에서 6명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알렉산드르 블란크의 출신에 관해서는 동방 정교회로 개종한 유대인이라는 견해와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 제국으로 편입시킨 독일 식민지 주민들의 후손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가 동방 정교회로 개종한 유대인이며 본명이 스룰 모셰비치 블란크, 혹은 이스라일 모이세에비치 블란크라고 하는 자료가 있으나 일부 역사가들은 그 인물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마리야의 어머니 안나 이바노브나는 스웨덴계 독일인 요한 그로쇼프(Johann Groschopf독일어)와 루터교 신자였던 스웨덴인 안나 외스테드트(Anna Östedt스웨덴어) 사이에서 태어났다.
1838년 마리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알렉산드르는 시누이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Екатерина Ивановна러시아어)에게 자녀들의 양육을 맡겼다. 이들은 카잔 근처에 땅을 매입한 후 자녀들과 함께 그곳으로 이사했다.
마리야는 재택학습으로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 문학과 서양 문학을 공부했다. 이후 1863년 교외 학위를 받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물리학과 수학 교사로 활동하던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와 결혼했다. 이울리야노프 가족은 펜자에서 살다가 니즈니노브고로드를 거쳐 일리야가 초등학교의 장학관으로 임명되면서 근무지가 있는 심비르스크로 이주했다.
2.3. 결혼과 가정생활
마리야는 1863년 물리학과 수학 교사였던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와 결혼했다. 이울리야노프 가족은 펜자에서 살다가 니즈니노브고로드를 거쳐 일리야가 초등학교 장학관으로 임명되면서 심비르스크로 이주했다.
마리야는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1869년에는 딸 올가가, 1873년에는 아들 니콜라이가 사망했다. 1886년에는 남편 일리야 울리야노프가 사망했고, 1887년에는 장남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가 정치범으로 사형되었다. 1891년에는 딸 올가 울리야노바가 사망했으며, 안나 울리야노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마리아 울리야노바 또한 정치범으로 체포와 추방을 반복했다.
그녀는 추방된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으며, 1902년 여름 프랑스 제3공화국에, 1910년 가을 스톡홀름에 머물고 있던 블라디미르를 찾아갔다.
마리야와 일리야 울리야노프 사이에는 8명의 자녀가 있었고, 그 중 2명은 영아기에 사망했다. 자녀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이름 | 출생 | 사망 |
|---|---|---|
| 안나 울리야노바 | 1864년 | 1935년 |
|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 | 1866년 | 1887년 |
| 올가 | 1868년 | 1869년 |
|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 1870년 | 1924년 |
| 올가 울리야노바 | 1871년 | 1891년 |
| 니콜라이 | 1873년 | 1873년 |
|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 1874년 | 1943년 |
| 마리아 울리야노바 | 1878년 | 1937년 |
2.4. 가족의 비극과 시련
마리야는 가족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1869년 어린 딸 올가가, 1873년에는 아들 니콜라이가 사망했다. 1886년에는 남편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가 사망했고, 1887년에는 장남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가 정치범으로 사형되었다. 1891년에는 딸 올가 울리야노바가 사망했다. 안나 울리야노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마리아 울리야노바 또한 정치범으로 체포와 추방을 반복했다.
마리야는 추방된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으며, 1902년 여름 프랑스 제3공화국에, 1910년 가을 스톡홀름에 머물고 있던 블라디미르를 찾아갔다.
2.5. 레닌과의 관계
마리야는 남편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가 사망한 1886년 이후, 자녀들의 혁명 활동을 지원하며 그들의 운명을 함께 했다.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은 여러 차례 체포와 추방을 반복했는데, 마리야는 추방된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을 지지했다. 1902년 여름에는 프랑스 제3공화국에, 1910년 가을에는 스톡홀름에 머물고 있던 레닌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녀의 자녀들 중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는 정치범으로 사형되었고, 올가 울리야노바는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안나 울리야노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마리아 울리야노바 또한 정치적인 이유로 체포와 추방을 반복했다.
2.6. 사망
마리야는 삶 속에서 가족들을 여럿 잃었다. 1869년에는 갓난 아이였던 올가가 사망했고, 1873년에는 니콜라이가 사망했다. 1886년에는 남편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가 사망했고, 1887년에는 장남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가 정치범으로 사형되었다. 1891년에는 딸 올가 울리야노바가 사망했으며, 안나 울리야노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마리아 울리야노바 또한 정치범으로 체포와 추방을 반복했다.
그녀는 추방된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으며, 1902년 여름 프랑스 제3공화국에, 1910년 가을 스톡홀름에 머물고 있던 블라디미르를 찾아갔다. 1916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 관계
마리야는 1863년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리야노프와 결혼했고 1886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다. 이들 사이에는 8명의 자녀가 있었고, 그 중 2명은 영아일 때 사망했다.
| 이름 | 출생 | 사망 |
|---|---|---|
| 안나 울리야노바 | 1864년 | 1935년 |
|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 | 1866년 | 1887년 |
| 올가 | 1868년 | 1869년 |
|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 1870년 | 1924년 |
| 올가 울리야노바 | 1871년 | 1891년 |
| 니콜라이 | 1873년 | 1873년 |
| 드미트리 일리치 울리야노프 | 1874년 | 1943년 |
| 마리아 울리야노바 | 1878년 | 1937년 |